앞에 세워진 여러 대의 랜드로버를 보며 주세호는 점점 더 어리둥절해졌다.하지만 이내 차량마다 두 명의 까만 슈트를 입은 천하회 조직원이 서 있는 게 보였다.그들은 차가운 표정으로 목석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이상한 사람과 이상한 차를 바라보던 주세호는 끝내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안녕하세요. 혹시 어떻게 오셨어요? 왜 여기에 차를 대고 있는 거예요?”질문을 받은 천하회 조직원은 차가운 표정으로 주세호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우리는 서경 천하회 사람입니다.”“서경 천하회요?”이를 들은 주세호가 화들짝 놀랐다.천하회가 무엇인지 당연히 주세호도 잘 알고 있었다.그것보다 천하회의 노정연, 서양 등 사람이 계속 윤구주와 친분을 쌓고 싶어 한다는 걸 더 잘 알고 있었다.용인 빌리지에 이렇게 많은 천하회의 조직원이 나타났다는 건 설마 윤구주를 만나러 온 걸까?이렇게 생각한 주세호는 바로 용인 빌리지로 달려갔다.용인 빌리지.백경재, 노정연과 서양 등은 아직도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주세호가 아래서 다급하게 뛰어왔다.“주 회장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백경재는 멀리서 달려오는 주세호를 발견하고는 얼른 앞으로 다가가 인사했다.“저하의 결혼식을 미리 준비하러 왔어요.”“아참, 아래에 천하회 사람들이 쫙 깔려있던데 무슨 일이에요? 서경에서 온 차량도 엄청나게 많던데.”주세호가 궁금해서 물었다.백경재가 웃으며 저편에 있는 노정연과 그 일행을 가리키며 말했다.“그건, 저쪽에 물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주세호의 눈빛이 노정연 쪽으로 향했다.그러자 노정연이 웃으며 다가왔다.“회장님, 안녕하세요.”“정연 씨,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천하회 사람들이 왜 갑자기 용인 빌리지에 대거 몰려온 거예요? 서경 차량도 엄청나게 많던데.”주세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회장님, 오해하셨어요. 천하회 회장님이 강성으로 올라오셨어요.”노정연이 이렇게 설명했다.뭐라고?“천하회 회장님이 오셨다고요?”주세호가 놀라서 물
박창용의 말을 듣고 원성일과 주세호도 더는 인사치레를 하지 않았다.하지만 주세호는 여전히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아까 사령관님께서 한 가족이라고 했는데 설마 원 회장님도 저하를 알고 계셨던 건가요?”“네, 주 회장님 말씀이 맞아요. 저하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 목숨도 저하가 구해주셨는걸요.”“저하가 없었으면 저 원성일도 오늘이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원성일이 이렇게 말했다.“이런 우연이 있다니.”주세호가 놀라며 말했다.“그러게요. 저도 아직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이번에 제 부하가 저한테 윤 선생님을 소개해 주지 않았으면 윤 선생님이 저하일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원성일이 감탄하며 말했다.그러더니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저하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서경에서 듣고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꼭 저하를 위해 복수하겠다고 생각했죠.”“반년 새에 10국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 외에 저하가 생전에 쓰던 물건을 찾고 있었습니다.”“그러다 찾아낸 정보라면 저하가 생전에 쓰시던 구주령이 판인국 놈들 손에 들어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여 강성에 사람을 보내 저하의 구주령을 어떻게든 찾아 모셔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하가 강성에 있을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원성일은 끝내 모든 걸 털어놓았다.주세호가 이를 듣더니 웃으며 말했다.“아, 그랬군요.”“하하, 왜 전에 노정연 씨가 그 가짜 구주령을 꼭 사들이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했는지 알겠네요. 원 회장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네요.”이를 들은 윤구주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윤구주가 원성일에 대한 인상은 늘 좋은 편이었다.천하회는 종래로 힘을 무기로 사람을 괴롭히지 않았고 화진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적이 있다.하지만 더 중요한 건 원성일이 윤구주에 대한 뜨겁고 진솔한 마음이었다.“음, 괜찮네요.”“이번에 상일이 동생도 왔고 주 회장님도 왔고 민도살도 강성에 있어요.”“만약 정태웅과 천현수, 그리고 저하의 곁을 따랐던 4대 장군도 있었다면 정
뚱땡이가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말끔한 서생은 귀에 피가 날 것 같았는지 끝내는 늑대와도 같은 눈을 뜨더니 그 뚱땡이를 힘껏 노려봤다.“야 이 머리에 살만 찐 놈아, 돌대가리야?”“형님이 전보에서 어떻게 당부했는지 잊었어?”한 소리 들은 뚱땡이는 멈칫하더니 말했다.“음, 어떻게 당부했는데?”“형님은 우리더러 꼭 비밀리에 만나러 오라고 하셨어. 들키는 순간 죽음이라고도 하셨고.”“넌 그 대가리에 똥만 들었어? 지금 이 상황에 어떻게 우리 암부의 전용기를 타?”“네가 말해 봐. 만약 우리가 암부를 떠났다는 사실을 그 사악한 여자가 알기라도 하면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자세히 보니 뚱땡이와 서생은 바로 화진 암부의 양대 지휘사 백곰과 늑대였다.되레 욕을 먹은 정태웅은 이제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윤구주에 관한 일이라면 그가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꼭 기억해야 한다.정태웅은 살이 잘 오른 머리를 긁적이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네 말이 맞아. 됐지? 나도 너랑 더는 입씨름하기 싫어. 스튜어디스 누나들 찾아서 농담이나 까먹어야지.”정태웅은 이렇게 말하더니 비즈니스석 뒤편으로 걸어갔다.화진 암부의 두 번째 수장으로서 정태웅은 적응력이 뛰어났다.제일 중요한 건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었다.비즈니스석 뒤편으로 오자마자 정태웅은 아리따우면서도 청순한 스튜어디스와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스튜어디스는 170은 되는 키에 몸매가 죽여줬고 볼륨감이 살아 있었다. 검은 스타킹을 신은 다리는 사람의 피를 꺼꾸로 쏟게 했다.이를 본 정태웅은 야릇한 눈빛으로 스튜어디스의 봉곳한 가슴을 바라봤다.이에 어여쁜 스튜어디스의 표정이 점점 난감해졌다.“승객님, 비행기가 곧 강성에 도착할 예정이오니 빨리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난류로 비행기가 흔들려서 다칠까 봐 걱정입니다.”아리따운 스튜어디스는 어떻게든 이 뚱땡이를 밀어내려 했다.하지만 정태웅의 낯짝은 그 철판보다 두꺼웠고 헤헤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지방이 두꺼워서 다칠 수가
그저 한대 내리쳤을 뿐인데 대머리 사장의 머리가 산산조각났다.옆에 있던 스튜어디스가 그 피를 전부 뒤집어썼다.피로 물든 이 광경에 스튜어디스는 다리가 후들거렸고 “악”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정태웅은 단번에 대머리 남자를 때려죽이고는 시체를 힘껏 걷어찼다.“대머리 새끼가 감히 내 앞에서 설쳐?”“그리고 뭐? 뚱땡이?”“모르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뚱땡이인 거.”정태웅은 그 시체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모를 정도로 걷어차고 나서야 동작을 멈추었다.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혼비백산한 채로 눈물만 흘리는 스튜어디스에게 말했다.“스튜어디스분, 놀라지 말아요. 이 대머리는 죽어도 싸요. 아참, 아까 주제로 돌아가면 왜 그렇게 피부가 하얀 거예요? 몸매는 왜 이렇게 좋고요?”“아아아아! 사람 살려!”아리따운 스튜어디스는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었기에 놀라서 바로 울음을 터트렸고 크게 비명을 질렀다.하지만 정태웅은 소리를 지르는 스튜어디스의 새하얀 목을 단번에 부여잡더니 서늘한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겁먹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소리는 왜 지르는 거예요?”“한 번만 더 소리 지르면 옷 홀딱 벗겨서 실컷 즐긴 다음에 죽이고 다시 즐긴 다음에 또 죽일 거예요.”이렇게 모진 말을 정태웅은 웃으며 말했고 스튜어디스는 그 자리에 기절했다.이때,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뚱땡이, 또 사고 친 거야? 얼른 그 여자 풀어줘.”이때 늑대 천현수가 정태웅의 뒤에 나타났다.정태웅은 천현수를 보더니 웃으며 손을 풀었다.“그래, 그래, 네 말 들으면 되잖아?”천현수는 고개를 숙여 정태웅의 공격에 머리가 깨진 대머리 남자의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놀라서 완전히 넋을 잃은 스튜어디스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뚱땡이, 하루라도 얌전히 지나가는 날이 없지? 내가 너한테 얘기했잖아. 우린 비밀리에 강성에 가는 거라고. 그런데 여기서 사람을 죽이면 어떡해?”천현수가 욕설을 퍼부어도 정태웅은 딱히 화내지 않고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대
정태웅은 사람을 죽이고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리를 꼬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중얼거렸다.“곧 가성에 도착하니 저하를 만날 수 있겠네.”암부에는 세 미치광이가 있었는데 다 오너 9급 이상의 경지였다.호존은 용맹하고 백곰은 살인에 중독되어 있고 늑대는 계략에 능했다.이 사람들이 바로 화진에서 이름난 암부의 3대 지휘사였다....한시간 뒤.용인 빌리지 앞에 한 택시가 멈춰 섰다.거기에 차를 대고 있던 랜드로버 차량 행렬이 너무 이목을 끌었기에 원성일은 일단 차를 빼고 용인 빌리지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하여 지금 용인 빌리지는 깔끔하기 그지없었다.안개만이 빌리지를 맴돌고 있었다.택시가 멈춰서고 동글동글한 몸집의 남자가 깔끔한 서생 한 명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두 사람은 바로 암부의 백곰과 늑대였다.“늑대야, 저하가 정말 여기 있는 거 맞아?”차에서 내린 정태웅은 흥분하며 눈앞에 보이는 용인 빌리지를 올려다봤다.“그럼 이 뚱땡이가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저하를 뵐 수 있게 된 거야?”정태웅의 소리가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그래.”“어머나.”“드디어 저하를 만나게 되었어. 아아아! 저하 혹시 살이 빠지거나 초췌해지지는 않았을까? 이렇게 오래 못 봤는데 우리가 보고 싶지는 않았을까?”정태웅은 이렇게 말하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그러면서 코까지 훌쩍였다.울면서 콧물까지 흘리는 정태웅을 보며 천현수는 그의 튼실한 엉덩이를 걷어찼다.“멍청아, 그만 울어.”“가자, 저하 뵈러.”천현수는 이렇게 말하더니 용인 빌리지로 걸음을 옮겼다.뒤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던 정태웅은 엉덩이를 문지르며 얼른 그 뒤를 따랐다.용인 빌리지.암부의 백곰과 늑대가 도착했을 때 윤구주는 원성일, 박창용, 그리고 주세호와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이때 윤구주의 눈동자가 반짝 빛나더니 바깥쪽을 내다봤다. 익숙한 두 개의 기운이 순간 윤구주의 신경을 자극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입꼬리를 올리며 밖을 내다봤다.“왔네.”“저하, 누가 왔다는 거예요
잠깐 사이에 정태웅은 먼저 산 정상에 도착했다.그가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절세의 그림자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윤구주였다.윤구주 뒤로는 창용 부대의 박창용과 천하회의 원성일, 그리고 강성 갑부 주세호도 있었다.윤구주를 발견한 정태웅이 “어머나” 하고 소리를 질렀다.“저하!”“정말 저하 맞아요?”“이 뚱땡이가 드디어 저하를 뵙습니다.”털썩.정태웅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엉엉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뒤에서 빠른 속도로 따라오던 늑대 천현수도 윤구주를 보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무릎을 꿇었다.“천현수, 저하를 뵙습니다.”윤구주는 환한 미소로 옛 친우들을 맞이했고 그들이 무릎을 꿇는 걸 보고는 얼른 앞으로 다가가 부축했다.“일어나. 형제끼리 무슨 인사치레야.”정태웅은 바닥에 꿇어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오히려 윤구주의 다리를 끌어안더니 아들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저하,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그거 아세요? 반년 전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뚱땡이 그만 울다가 죽을 뻔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존경하고 숭배하던 왕이 10국의 왜놈들에게 당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근데 그 모든 게 가짜였죠.”“10국의 졸병들이 어찌 천하무적의 저하를 무찌를 수 있겠습니까?”정태웅은 이렇게 구시렁거리더니 윤구주의 다리를 끌어안고 계속 울기만 했다.이 광경에 박창용 등은 폭소하기 시작했다.“태웅아, 콧물을 저하의 옷에 묻히면 어떡하니. 우리 저하는 화진의 제일 인왕이야. 한 개 군으로 10국의 전사와 대적했고 그 결과 10국의 전사들이 무기를 버린 채 땅을 내어주며 화해를 빌었지. 근데 무슨 수로 우리 저하를 무찔러?”박창용이 패기 넘치게 말했다.“어?”“사령관님, 사령관님이 왜 여기 계세요?”정태웅은 박창용의 목소리에 빨개진 눈으로 올려다봤다.“하하하하! 저하의 결혼식인데 안 올 수가 있나.”박창용이 박장대소했다.“네?”“저하께서 결혼하신다고요?”정태웅이 듣더니 넋
결국 천현수가 뒤에서 정태웅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말했다.“뚱땡아, 그만 질척거려. 어렵게 저하를 만났는데 좀 진지해질 순 없니?”엉덩이를 맞은 정태웅은 그제야 아픈 곳을 주무르며 윤구주의 다리를 놓아주었다.“난 그냥 저하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야. 뭘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굴어?”“하하하하.”이 말에 사람들이 다시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암부의 3대 지휘사가 그렇게 한자리에 모였다.암부는 윤구주가 직접 창설했고 윤구주의 친위군이었다.민규현, 정태웅, 천현수는 윤구주가 직접 선발한 사람들이었고 끝내는 지금의 3대 지휘사가 되었다.그들을 윤구주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또한 윤구주가 제일 믿는 친우기도 했다.지금 그들과 한곳에 모였으니 하고 싶은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그 속에서 정태웅의 활약이 제일 돋보였고 기분도 제일 좋아 보였다.잔혹하고 살인에 중독되어 있었지만 윤구주에게만큼은 충성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의 말에 따르면 윤구주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그는 윤구주가 살았던 구주전에서 지내며 단식으로 구주왕을 기렸다고 했다.“뚱땡아, 정말 저하를 위해 제사를 지내온 거야?”옆에 있던 박창용이 농담조로 물었다.“당연하죠.”“저하는 제게 부모님과 같은 존재고 평생 존경하는 분이지요. 그런 분을 기리는 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정태웅이 이렇게 답했다.하하하!박창용이 큰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뚱땡이가 말이 많고 사고도 잘 치지만 저하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죽도록 슬퍼했어요.”늑대 천현수가 이렇게 말했다.“보세요. 늑대도 이렇게 말하는데 제가 헛소리 한 거 아니죠?”“저하, 저의 이런 충성심을 봐서라도 다리를 좀만 더 안게 해주면 안 될까요?”정태웅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봤다.하지만 돌아온 건 윤구주의 차가운 한마디였다.“저리가.”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렸다.사람들이 웃고 나니 정태웅이 다시 입을 열었다.“하지만 저하, 10국과의 전쟁은 어떻게 된 일이에요? 분명
진실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저 여자라고? 저 여자는 저하의 약혼녀잖아!”정태웅이 첫 번째로 소리를 질렀다.늑대 천현수와 천하회의 원성일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당시 윤구주와 문아름의 결혼 소식은 화진 전체가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비록 그 결혼식은 결국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문아름이 윤구주의 약혼녀라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그렇기에 독을 써서 윤구주를 해친 사람이 문아름이라는 걸 알게 되자 다들 깜짝 놀랐다.“내 약혼녀기 때문에 내가 경계하지 않은 거야. 그게 아니었다면 이 세상에 누가 감히 날 독으로 해칠 수 있겠어?”윤구주가 매섭게 말했다.그 말에 사람들은 깨달은 얼굴을 했다.윤구주의 말대로 그의 실력이라면 독으로 그를 해친다는 건 말도 안 됐다.문아름이 윤구주의 약혼녀이기 때문에 방심해서 기린화독에 당했을 것이다.“빌어먹을!”“정말 못된 여자군요!”“정말 지독해요!”“저하를 해친 사람이 그 악독한 여자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정태웅은 펄쩍 뛸뻔했다.“그 지독한 여자가 자꾸 우리 암부를 견제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심지어 군부대 전체를, 저하를 따랐던 장군들을 전부 비밀리에 죽였어요.”“그 여자가 저하를 해쳤었군요!”천현수도 주먹을 꽉 쥐고 강하게 말했다.“정태웅, 천현수, 왜 비밀리에 서울로 와서 저하를 뵙게 된 건지 알겠지?”박창용이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정태웅과 천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원성일, 자네도 이젠 내가 왜 저하가 살아있다는 걸 소문내지 말라고 했는지 알겠지?”박창용이 다시금 천하회의 원성일을 바라보며 말했다.원성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저하, 이제 그 지독한 여자가 저하를 해쳤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지금 당장 병사들을 데리고 서울로 가서 그 지독한 여자를 죽입시다!”정태웅이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말했다.그가 말하자마자 천현수가 맞장구를 쳤다.“정태웅 말이 맞습니다!”“저하, 저하께서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저
유니스가 그렇게 얘기하자 다른 설국 대신들도 맞장구를 쳤다.“맞습니다. 여성이 어떻게 우리 설국의 국주가 된단 말입니까?”“비록 세나미 씨는 세나스 각하의 딸이긴 하지만 국주가 된다는 건 어림없는 일입니다.”설국 대신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윤구주는 단호히 말했다.“다들 똑똑히 들어. 난 오늘 당신들에게 통보하러 온 거야. 의논하러 온 게 아니라고. 알겟어?”그의 말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설국 대신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구주왕, 선 넘지 마세요! 우리 설국에서 감히 행패를 부리는 겁니까? 우리나라의 위엄과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까?”대학사 유니스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위엄? 금전에도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들이 감히 나라의 위엄을 입에 담아?”윤구주가 유니스를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전, 전, 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전 설국을 대표하여 항의합니다. 세나미 씨가 국주가 된다면 전 차라리 죽겠습니다.”유니스는 죽겠다면 위협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윤구주는 피식 웃었다.“죽겠다고? 그러면 내가 그 소망을 들어주지.”윤구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지현이 마치 총알과도 같이 날아가서 대학사의 가슴팍을 꿰뚫었다.피가 금전에 흩뿌려지면서 유니스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유니스가 윤구주의 손에 죽자 금전에 있던 설국 대신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졌다.세나미는 앞으로 나서더니 윤구주를 향해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질렀다.“왜, 왜 또 사람을 죽인 거야? 나랑 약속했잖아.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저자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는데 왜 날 원망하는 거지? 그리고 이렇게 고집불통인 노인네가 여기 남아있으면 설국의 미래에 방해만 될 뿐이야.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윤구주는 말을 마친 뒤 남은 설국 대신들을 바라보았다.“이젠 당신들 차례야. 얘기해 봐. 내 말대로 할 의향이 있는지.”윤구주가 그렇게 얘기하자 설국 대신들은 모두 겁을 먹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다
“구주왕, 당신은 우리 국주를 죽였어요. 게다가 우리 설국의 금전까지 점유했죠. 대체 뭘 어쩔 생각입니까?”이때 유니스 대학사가 앞으로 나서며 매섭게 말했다.윤구주는 그를 천천히 바라보며 말했다.“난 설국의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리고 싶어.”“정상으로요?”대신들은 놀랐다.“맞아.”윤구주는 말을 이어갔다.“난 죽어 마땅한 설국인들에게 다 벌을 주었어. 지금 설국은 국주의 자리가 비었지. 그래서 나는 설국의 새로운 국주를 정할 생각이야. 그래야만 설국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뭐라고?’“우리 설국의 새로운 국주를 정하겠다고 한 겁니까?”“그... 그럴 수 있나요?”윤구주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대신들은 모두 화들짝 놀랐다.이곳을 설국이고 윤구주는 심지어 설국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윤구주가 무슨 자격으로 설국을 대신하여 설국의 국주를 정한단 말인가?“구주왕! 우리 설국의 일에 화진인인 당신은 끼어들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설국의 국주는 당연히 설국 백성들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설국의 국주를 정한다는 거죠?”유니스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난 윤구주니까. 난 설국의 존망을 정할 수 있어. 내가 설국의 존재를 허락한다면 설국은 존재할 수 있고 내가 설국을 망하게 할 생각이라면 설국은 망할 거야.”패기 넘치는 말이 윤구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윤구주는 자신이 한 나라의 존망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얼마나 놀라운가?“이... 이... 정말 너무 하는군요!”유니스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씩씩댔다.윤구주는 그를 아예 무시해 버렸다.“내가 당신을 괴롭힌다고 해도 당신이 뭘 어쩔 수 있지? 내가 지금 명령을 내린다면 화진의 병사 수십만 명이 이곳으로 몰려와서 설국을 공격할 거야. 믿기지 않는다면 어디 한 번 해보든가.”윤구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현재 화진의 병사들 수십만 명이 낙일성으로 향하고 있었다.윤구주가 명령을 내린다면 그들은 곧바로 설국을 평정할 수
설국 금전.천 년 가까이의 역사가 있는 대전은 엉망이었다.게다가 금전의 지반은 땅 밑으로 우묵하게 내려앉았다.백옥이 깔린 금전의 지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균열과 틈이 생겼다.이 순간, 유니스 대학사는 설국의 문무백관을 이끌고 금전 밖에 도착했다.커다란 금전을 바라보면서 유니스는 갑자기 눈빛이 혼탁해지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설국이 재앙을 맞이했군요.”길게 한숨을 내쉰 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백옥 계단으로 올라갔다.대신들은 그의 뒤를 따랐다.댕.댕.댕우렁찬 종소리는 아직도 끊이지 않았다.유니스는 설국의 문무 대신들을 이끌고 금전을 올랐고 곧 그들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세나미였다.“세나미 아가씨야...”“세나미 아가씨께서 살아계셨어!”세나미를 본 대신들은 모두 흥분했다.세나미는 이때 유니스가 문무 대신들을 데리고 온 걸 보고 빠르게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드디어 오셨군요!”유니스는 서둘러 말했다.“세나미 씨, 다치지는 않았습니까?”“네, 괜찮아요.”세나미가 말했다.“그런데 세나미 씨께서는 그 악마에게 납치당한 것 아니었습니까? 왜 그가 그냥 풀어준 거죠?”일부 대신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세나미가 말했다.“절 풀어준 이유는... 그가 우리 설국에 아주 중요한 일을 전하기 위해서예요.”“아주 중요한 일이요?”“그 악마는 우리 설국인들을 수도 없이 죽였어요. 심지어 국주님의 목까지 베었죠. 그런데 또 뭘 하려는 거죠?”유니스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세나미가 말했다.“여러분도 아시죠? 화진의 구주왕 말입니다.”그녀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문무 대신들은 모두 침묵했다.구주왕.설국에 있어서는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다.지금 때문만이 아니라 6년 전 구주왕이 설국을 항복시켰기 때문이다.“그가 천하무적의 구주왕이면 뭐 어떤가요? 이 세상에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겠어요?”유니스는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유니스 대학사님, 제 말을 들어주세요.
윤구주가 설태현의 목을 벤 뒤로 설국의 종은 계속해 울었다.그렇게 종은 1박 2일을 울렸고 그러다 이 순간 갑자기 멈췄다.그리고 대신에 힘이 느껴지는 종소리가 들려왔다.그 종소리는 설국 금전 조정에서 국가 대사를 의논함을 의미하는 종소리였다.설국 수도의 거리 양쪽에 있던 수많은 백성들이 그 종소리를 들었다. 그 종소리가 설국 수도에 널리 울려 퍼졌을 때 백성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금전을 바라보며 의논했다.“어떻게 된 일이지? 우리 금전의 종소리가 멈췄어. 대신에 조정에서 국가 대사를 의논하는 의미를 종소리가 울리는데?”“설마 우리 화진을 침략했던 그 악마가 떠난 걸까?”“모르겠어.”백성들이 의논하고 있을 때 황성의 한 대학사부 밖에는 설국의 문무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눈앞의 대학사부는 화진의 재상부와 비슷했다.설국의 대학사는 유니스라고 불렸다.유니스는 설국 백관의 우두머리이자 세 명의 국주의 중용을 받았던 원로로서 설국에서의 지위가 높았다.이때 금전에서 우렁찬 소리가 대학사부에 울려 퍼졌다.“대학사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우렁찬 소리와 함께 백발에 건장한 체구를 가진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그가 바로 설국의 원로 유니스였다.유니스가 나타나자 그곳에 있던 문무 대신들 모두 예를 갖추었다.“대학사님을 뵙습니다.”유니스는 그 자리에 있던 문무 대신들을 쓱 훑어보더니 천천히 말했다.“다들 왔습니까?”“네, 대학사님.”“대학사님, 설국이 재앙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다른 나라에서 알려졌습니다. 더욱 괘씸한 것은 지금까지 그 어떤 나라도 지원하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이때 군복을 입은 설국의 장군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분노에 차서 말했다.“그리고 그 밖에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판인국과 연국에서는 우리의 대사관을 폐쇄했습니다.”한 신하가 입을 열었다.유니스는 두 사람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들면서 비참하게 웃으며 말했다.“약한 나라에는 외교가 없다는 말이 있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설국은 아주 작은 나라였다.게다
맞는 말이었다.윤구주는 비록 설국인들을 많이 죽였지만 사실 그가 죽인 사람들 중 죽어 마땅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흑여산맥 국경 지역에서 설국의 10만 병사들은 화진의 백성들을 박해했다.그들이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설국의 군신인 세나미가 모를 리가 없었다.그리고 그의 아버지 세나스도 마찬가지였다.그동안 세나스는 계속해 설국의 병력을 키우며 6년 전의 패배로 얻은 치욕을 씻으려고 화진과 전쟁을 치를 생각이었다. 세나미는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윤구주가 만약 설국 국주를 죽이지 않고 두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된다면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윤구주의 말을 들은 세나미는 충격을 받았다.“나는 항상 죽어 마땅한 사람들만 죽였어. 내가 조금 전 얘기한 사람들 중 죽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있었나? 만약 내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든 날 찾아와 복수해. 하지만 명심해. 벌레만도 못한 설국이 감히 정말로 우리 화진과 전쟁을 할 생각이라면 사상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는 걸 말이야. 어쩌면 백만 명, 천만 명일 수도 있어. 심지어 나라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겠지.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너도 잘 알 거야.”윤구주의 말은 칼이 되어 세나미의 마음을 사정없이 후벼팠다.이 순간 설국의 군신인 세나미는 넋을 놓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녀는 그제야 윤구주가 한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비록 윤구주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람이고 설국인을 2, 3만 명 가까이 죽이고 설국 국주의 목까지 베었지만, 윤구주의 말대로 설국과 화진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죽는 사람은 절대 2, 3만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어쩌면 백만 명, 천만 명... 심지어 모든 설국인이 죽을 수도 있었다.윤구주의 엄청난 실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6년 전 설국의 백만 대군이 윤구주로 인해 낭파산에서 죽었던 걸 떠올린 순간 세나미는 정신이 문득 들었다.그녀는 멍하니 그곳에 서 있다가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그녀
그녀는 거의 1분 가까이 넋을 놓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파란색 눈동자를 크게 뜨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지금... 지금 생사인을 그냥 없앤 거야?”“그러면 내가 뭘 하려는 건 줄로 알았는데?”윤구주는 고개를 돌려 세나미에게 되물었다.세나미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그녀는 윤구주가 자신의 미모에 반해서 옷을 벗으라고 한 건 줄 알았다.그런데 그는 사실 그녀의 생사인을 풀어줄 생각이었을 뿐이었다.그녀가 괜한 생각을 한 걸까?세나미는 그런 생각이 들자 얼굴이 화끈거렸다.“일단 옷부터 입어.”윤구주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세나미는 그제야 자신이 나체임을 깨닫고 서둘러 바닥에 널브러진 옷들을 주워서 입었다.그런 뒤 그녀는 가만히 옆에 서 있었다.움직이지도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했다.윤구주가 비록 그녀의 생사인을 풀어주기는 했지만 그녀를 죽이는 건 여전히 그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그러니 그녀는 감히 도망칠 수가 없었다.“왜... 왜 날 죽이지 않는 거야? 왜 날 놓아주려는 거야?”세나미는 용기를 내서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난 처음부터 널 죽일 생각이 없었거든.”윤구주의 말은 사실이었다.흑여산맥에서 세나미가 화진의 유목민들을 놓아주고 그들에게 물과 식량을 나눠주는 걸 본 순간부터 윤구주는 이미 측은지심이 생겼다.설국은 처단해야 했지만 세나미는 처단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국적이 다르니 입장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당신이 날 죽이지 않았다고 해도 난 당신에게 고마워할 생각이 없어. 난 오히려 당신을 증오해!”세나미는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세나미는 설국인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윤구주의 손에 죽었다.심지어 윤구주는 설국의 국주의 목까지 베었다.가족의 원수이며 설국의 원수인 윤구주를 그녀가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윤구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날 증오하는 건 상관없어. 날 죽일 실력이 된다면 언제든 날 찾아와서 복수해. 하지만 지금은 한 가지 해줘야 할 일이 있어.”윤구주는 그렇게 말
국제중재기구 출신의 두 사람이 떠난 뒤 윤구주는 다시 설국 금전으로 돌아왔다.아수라장인 설국 금전 안에서 세나미는 멍하니 서 있었다.조금 전 세나미는 국제중재기구의 사람들이 윤구주를 제압할 수 있기를 바랐다.그러나 윤구주가 파란 머리카락의 여자를 일격에 죽이는 걸 본 순간, 그녀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앞으로는 설국을 위해 나서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금전 안, 윤구주는 안으로 들어간 뒤 세나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공기 취급했다.윤구주는 과거 설국 국주가 앉았었던 의자에 앉은 뒤 세나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이리 와.”마치 하인을 부르는 듯한 태도였다.그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세나미는 겁에 질린 채 윤구주의 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세나미가 얌전히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자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겉옷 벗어.”‘뭐라고?’그 말을 들은 순간 세나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개를 들었다.겉옷을 벗으라니?“이 악마... 뭘 하려는 거야?”세나미는 두려운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면서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윤구주는 짜증 난 표정이었다.“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벗으라면 벗어!”“싫어! 죽일 거면 그냥 죽여. 하지만 날 모욕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세나미는 분노 때문에 눈이 벌게졌다.한때 설국의 군신이자 설국 미래의 황후였던 그녀가 윤구주의 앞에서 옷을 벗는 치욕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그러나 윤구주는 더 설명해 주지 않았다.그가 손을 올려서 손가락을 움직이자 기운 하나가 세나미 가슴 쪽의 혈 자리에 닿았다.그 혈 자리를 눌린 세나미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이 악마,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만약 날 모욕한다면 귀신이 되어서도 절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세나미가 필사적으로 울부짖어도 윤구주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손가락을 움직였고 그 순간 기운 하나가 세나미의 옷을 찢
밀라나가 다시 한번 말했다.밀라나는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자랐다.그녀는 서방 제2 제국 황실 공작의 딸이었다.어렸을 때부터 유럽 교황청에서 생활한 그녀는 아시아 국가를 무시했고 그래서 아주 거만했다.밀라나는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돌려 눈앞의 윤구주를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어요. 구주왕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우리 국제중재기구에 불경을 저지른다는 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다름없어요! 화진은 동방의 용이라고 불리지만 아무리 강해도 세계를 적으로 돌리면 결국 망하게 될 거예요.”밀라나의 말을 듣던 윤구주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천천히 왼손을 들었고 기다란 그의 손가락은 허공에 멈췄다.손을 들어 올린 순간, 윤구주의 훤칠한 몸에서 눈부신 흰빛이 뿜어졌다.그 흰 빛은 바로 윤구주의 적선의 빛이었다.흰빛이 나타나자 어마어마한 살기가 밀라나를 둘러쌌다.“조금 전 그 말만으로도 당신은 죽어 마땅해.”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허공에서 살짝 움직였다.그 순간 무시무시한 적선기가 지현으로 변했다.그 공격은 신도 없앨 수 있고 악마도 벨 수 있었다.그 모습을 본 순간 옆에 서 있던 레이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구주왕, 안 됩니다... 밀라나는... 밀라나는 제2 제국 프로이트 공작의 하나뿐인 딸입니다!”그러나 윤구주는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이 세상에 감히 그를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촤악!빛나는 지현이 밀라나의 가슴팍을 꿰뚫었다.제2 제국 황실 출신의 밀라나는 그렇게 윤구주의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눈보라가 휘몰아쳤고, 운이 좋지 않았던 밀라나의 시체는 눈보라 속에서 쓰러졌다.그녀는 입을 벌리고 있었고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그런데 몇 초 사이, 그녀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눈보라 속에서 죽었다.제2 제국의 엄청난 천재가 윤구주의 일격에 죽을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게다가 상대는 국제중재기구의 일원이었다.윤구주는 밀라나를 죽
윤구주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가장 처음 놀란 것은 레이였다.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칠살 절정 강자인 레이는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어떻게... 어떻게 당신일 수가... 당신은 분명... 죽었는데?”레이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레져서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레이 님, 왜 그러세요?”건장한 체구의 아나스는 레이의 모습을 보고 서둘러 물었다.옆에 있던 팔이 잘린 밀라나는 궁금증이 생겼다.“저 사람은... 화진의 구주왕이에요. 6년 전 홀로 10국과 싸웠던 그자 말이에요!”레이는 윤구주의 신분을 얘기했다.‘뭐라고?’그 말에 아나스와 밀라나 모두 넋이 나갔다.구주왕?화진의 왕?윤구주를 본 아나스는 몸과 영혼 다 윤구주의 기운에 억눌린 것만 같았다.윤구주로 인해 팔이 잘린 밀라나는 안색이 종잇장처럼 창백했다.“화진의 구주왕이라고요? 이미 죽은 거 아니었나요? 설마 화국이 우리 10국을, 전 세계를 속인 건가요?”아나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윤구주를 본 순간, 그들의 몸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윤구주는 온몸이 흰빛으로 둘러싸였다.조각된 듯한 이목구비를 가진 윤구주는 마치 신처럼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국제중재기구에 날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윤구주의 목소리에 경멸이 어려 있었다.마치 국제중재기구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구주왕, 조금 전에는 저희가 무례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저희 국제중재기구는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칠살 절정인 레이는 윤구주를 본 순간 서둘러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옆에 있던 아나스와 팔이 잘린 밀라나는 레이가 윤구주를 향해 정중하게 예를 갖추자 완전히 넋이 나갔다.윤구주는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계속해 말했다.“국제중재기구는 아마도 설국 일 때문에 온 거겠지?”“...네.”레이는 비록 인정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국제중재기구가 왔으니 얘기해줄게. 설태현의 목은 내가 잘랐어. 설국의 백 년 국운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