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돌아가.”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나 집으로 돌아가면 보고 싶어 할 거야?”두나희는 눈이 빨개져서 울먹이며 말했다.“그럼.”윤구주가 대답했다.“정말?”두나희가 흥분해서 물었다.“진짜.”“헤헤, 역시 오빠가 최고야! 휴, 그래도 아쉽다. 오빠가 그 여우 언니랑 결혼한다니.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오빠를 떠나지는 않았을 텐데.”두나희는 눈물 한 방울을 떨구더니 소매로 닦았다.“하지만 나도 이젠 내려놨어. 난 아직 어리니까! 나 앞으로 커서 오빠한테 시집 가도 되지? 어른들이 그러던데, 결혼하고 이혼할 수 있다고! 나 크면 오빠는 그 언니랑 이혼하고 나랑 결혼하는 거야. 난 그 여우 언니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울 거니까 오빠도 틀림없이 날 좋아하게 될 거야!”“...”“됐다. 나 갈게! 오빠, 나 그리워해야 해! 참, 어르신한테 나 갔다고 얘기해줘!”두나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윤구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윤구주도 두나희를 붙잡지는 않았다.두나희는 두씨 일가 사람이니 말이다.두나희가 윤구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을 때, 산기슭에 주차된 차 안에서 누군가 비몽사몽 눈을 떴다.그는 국방부 후방지원부대 부부장 임진형이었다.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그는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웠다.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는 임진형은 깨어난 뒤 앞에 있는 두씨 일가의 부하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생수 한 병을 건네받은 그는 단숨에 반병을 마시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둘째 도련님은?”임진형은 다 마시고 나서 병을 내려놓으며 물었다.“둘째 도련님은 넷째 아가씨를 데리러 산에 갔습니다.”부하가 대답했다.“산?”임진형은 고개를 들어 용인 빌리지를 바라보더니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그는 먼저 기지개를 켠 뒤 걸음을 옮겨 빌리지 쪽으로 걸어갔다. 고개를 든 그는 산 중턱에 두현무, 자서와 해저 등이 있는 걸 보았다.그는 아무 생각 없이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갑자기 그의 앞에 낯익은 왕의 모습
“귀신이야... 귀신...”겁에 질린 임진형은 산 아래로 도망쳤다.산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두씨 일가의 부하들은 임진형이 겁에 질린 얼굴로 미친 듯이 도망쳐 내려오자 서둘러 그에게 달려가서 물었다.“임 부장님, 왜 그러세요?”“귀신! 내가... 귀신을 봤어!”임진형은 벌벌 떨면서 달렸다.심지어 그는 차도 타지 않으려 하고 미친 사람처럼 도망쳤다.정신이 나간 것처럼 도망치는 임진형을 본 두씨 일가의 부하들은 의아했다.잠시 뒤, 두현무가 두나희와 중상을 입은 자서, 해저와 함께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두나희는 산에서 내려오면서 이따금 미련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용인 빌리지를 바라보았다.“흑흑, 나 아주 오랫동안 오빠를 보지 못하겠지?”그런 생각이 들자 두나희는 너무 슬픈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옆에 있던 두현무는 여동생과 윤구주 사이를 알지 못했다.그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이렇게 작은 강성에 저렇게 무시무시한 인물이 있다니.게다가 그는 두씨 일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 공법을 한눈에 알아봤다.“설마 4대 고대 무술 일가 사람인가?”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나희야,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두현무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닦고 있는 두나희에게 말했다.“뭘 묻고 싶은데?”두나희는 작은 얼굴을 쳐들었다.“그 사람과 어떻게 알게 됐는지 궁금해. 그 사람 대체 정체가 뭐야?”두현무가 물었다.두나희는 뺨에 맺힌 눈물방울을 닦으면서 말했다.“우리 오빠 말하는 거야? 사실 난 오빠와 우연히 알게 됐어...”곧이어 두나희는 김 노파가 강성에 왔던 일들을 곧이곧대로 얘기했고, 윤구주가 김 노파를 죽인 일까지 전부 말했다.‘뭐라고?’“그 사람이 김 노파를 죽였다고?”두현무는 놀랐다.그리고 뒤에 있던 자서와 해주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두나희를 바라보았다.두나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하지만 전부 오빠 탓은 아니야. 김 노파가 굳이 오빠 심기를 건드려서 죽은 거거든! 그런데 김 노파를 위해
두현무는 말을 마친 뒤 그들과 함께 돌아갔다.차에 탄 두현무는 차 안에 있던 임진형이 사라진 걸 보았다.“음? 임 부장님은?”두현무가 궁금한 듯 묻자 앞에 있던 부하가 서둘러 대답했다.“임 부장님은 도망치셨습니다.”“뭐라고? 도망쳤다고?”두현무는 황당했다.“네, 조금 전 임 부장님은 무슨 이유에선지 미친 사람처럼 귀신을 봤다면서... 겁에 질린 얼굴로 도망치셨습니다. 저희가 불러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더라고요.”부하의 말에 두현무는 어리둥절했다.그는 임진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는 비록 음흉하고 여자를 밝혔지만 정치질만큼은 남들보다 월등히 잘했다.게다가 그는 현재 후방지원부대의 부부장이었다.국방부의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그가 겁에 질려서 도망쳤다니?게다가 귀신을 봤다고?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먼 곳을 바라보던 두현무는 고개를 돌려 용인 빌리지를 보았다. 그는 왠지 갈수록 이 일이 윤구주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됐어. 여긴 좀 이상해. 우리는 얼른 떠나는 게 좋겠어.”두현무가 말했다.“둘째 도련님, 김 노파의 복수는 하지 않는 겁니까?”이때 팔이 부러진 자서와 해저가 함께 입을 열었다.“복수? 너희들 실력으로 복수할 수 있겠어?”두현무가 일침을 놓았다.5품 대가인 자서는 그 말을 듣자 수치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그러나 사실이었기 때문에 치욕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용인 빌리지 안.한 남자가 뒷짐을 진 채로 산허리에 서서 마치 왕이 천하를 내려다보듯 두현무 등 사람들이 떠나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두씨 일가라. 내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곧 세상에 알려지겠군.”그렇게 중얼거린 뒤 윤구주는 순식간에 사라졌다....소씨 저택.윤구주와 소채은의 결혼식 날짜가 정해진 뒤 소청하는 무척 즐거워했다.지금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딸이 곧 결혼한다고, 그것도 윤구주와 결혼한다고 얘기하고 싶었다.그의 행동에 이웃들뿐만 아니라 천희수마저 그가 미친 건 아닐지 의심했다.천희수는 소청하가 왜 갑자기 달라졌
화진의 수도, 서울.이곳은 화진의 정치, 금융 중심으로 세계 최대의 무역 중심지였다.이곳에는 부자들과 권력가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쉽게 설명하자면 지하철을 타도 어느 정치가의 발을 밟을 수 있을 정도였다.서울의 서진.그곳에는 엄청난 궁전들이 있었다.그 궁전들은 기세가 웅장하고 아주 드넓었다.그곳이 화진에서 가장 유명한 국방부 최고사령부라는 건 서울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화진에서 육해공 3군 모두 최고사령부의 지휘에 따랐다.화진 국방부의 왕이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멀리서 궁전들을 바라볼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우뚝 솟은 9개의 거대한 기둥이다.기둥은 각각 수 미터의 너비에 그 위에는 금룡이 조각되어 있었다.화진에서는 9와 용을 숭상한다.9개의 용이 조각된 거대한 기둥은 궁전들의 최전방에 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 기세가 산천을 삼키고 천하를 뒤흔들 듯했다.9개의 기둥 뒤에는 웅장한 기세의 궁전이 있었다.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구주전이었다.이 전당은 당시 화진의 왕, 구주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의 구주전은 십여 명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안이 텅텅 비어 있었다.과거 구주전은 최고 기밀 기지인 사령부였다.이곳에서는 5미터마다 실탄을 장착한 경위들을 볼 수 있었고 이 경위들은 모두 무사급 이상이었다.무도 실력뿐만 아니라 그들 모두 특전사 이상의 총기 전문가였다.그리고 이 궁전들의 최후방에는 아주 특별한 전당이 있다.그곳은 다른 궁전들보다 훨씬 더 높고 사치스러웠다.금사남목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에는 아주 커다랗게 이황전 세 글자가 조각되어 있었다.그곳은 화진의 새로운 왕 이황왕의 궁전이었다.옛 왕은 세상을 떴고 새로운 왕이 세상을 다스린다.현재 이황왕은 화진의 4대 고대 무술 가문 중 하나인 문씨 가문의 딸 문아름이었다.그녀는 지난 100년 동안 화진에서 처음 나온 국방부의 여왕이었다.그리고 한때는 구주왕의 약혼녀이기도 했다.지금 이 순간, 이상하게도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그녀의 몸에서 발산되던 금빛은 수련에 따라 점차 희미해졌다.그러다 마침내 그녀의 가냘픈 몸이 격렬하게 떨렸고 온몸을 뒤덮었던 금빛은 마치 쫓기기라도 한 듯 펑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문아름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위태롭게 숨을 쉬었다.“역시 수련할 수 없는 건가?”문아름은 실망스러운 듯 말했다.아름다운 눈망울을 가진 그녀는 고개를 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아름아, 내가 그랬잖니? 이 신공은 비록 천하제일이지만 너한테는 맞지 않는다고 말이야. 이건 아무래도 그의 신공이니까.”이때 밀폐된 암실에서 갑자기 희미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그것은 안개 같기도, 혼령 같기도 했다.검은 그림자 너머 노인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으나 그의 외모는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문아름은 그 노인이 나타난 순간, 당황하지 않고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할아버지, 이 구양진용결은 정말 그만 수련할 수 있는 건가요?”‘그’를 언급하자 문아름의 목소리가 확연히 달라졌다.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 신공은 신급 경지에 다다른 내공을 근간으로 할 뿐만 아니라 그 영패의 현오심법을 보조로 해야만 수련할 수 있어. 당시 이 신공은 곤륜에서 흘러나왔는데 나조차도 그 오의를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러니 정말로 이 신공을 수련할 생각이라면 잃어버린 영패를 손에 넣는 수밖에 없어.”그 말을 들은 문아름의 입가에 서글픈 미소가 걸렸다.“영패요? 그 영패는 이미 그의 시신과 함께 죽음의 바다에 가라앉았어요.”그 말을 할 때 문아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노인은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왜?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한 거냐?”“아뇨, 아니에요!”문아름은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었다.“당황할 필요 없다. 그냥 말해본 거니까. 사실 네가 그를 잊지 못하는 것도 정상이지. 어쨌든 그와 같은 왕은 이 세상에 몇 없으니 말이야. 하지만 우리 문씨 가문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너도 반드시 그를 잊어야
노인이 떠난 뒤 문아름은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 아름다운 두 눈을 꼭 감았다.“구주 오빠, 우리 평생 함께하자!”“구주 오빠, 무술 가르쳐줘!”“구주 오빠, 사랑해. 난 오빠랑 같이 이 세상의 풍경을 보고 싶어. 평생 내 곁에 있어 줘야 해...”지난 추억들이 영화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갔고 어느샌가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눈가에서 천천히 흘러내려 마침내 그녀의 백옥 같은 흰 팔 위로 떨어졌다.차가운 눈물 한 방울을 바라보며 문아름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러나 팔을 털자 별안간 그녀의 온몸에서 악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그 순간, 조금 전의 부드럽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무자비한 기운이 감돌았다....같은 시각, 국방부 입구에 차 한 대가 빠르게 달려왔다.차가 멈추고 누군가 허둥지둥 차에서 내렸다.자세히 보니 그는 며칠 전 강성에 갔었던 후방지원부대 부부장 임진형이었다.임진형은 그날 윤구주를 본 뒤로 완전히 겁에 질려서 다른 건 신경 쓸 새도 없이 곧바로 전용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하루 종일 끼니조차 챙기지 못하고 돌아온 그는 곧장 국방부로 돌아왔다.국방부 입구에 도착한 뒤 임진형은 미친 사람처럼 국방부 대문을 향해 돌진했다.“누가 감히 국방부에 난입하려고 해?”분노에 찬 소리가 들려왔다.입구에 있는 네 명의 실탄을 장착한 국방부 경비원이 임진형을 향해 새까만 총구를 겨누었다.“난 후방지원부대 부부장 임진형이다. 급한 용무가 있어 왕을 뵈어야겠다!”임진형이 숨을 헐떡이며 서둘러 품속에서 자신의 후방지원부대 영패를 꺼냈다.경비원들은 영패를 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왕께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폐관 수련하는 동안은 아무도 방해하게 하지 말라고, 그리고 무단 침입자는 죽이라고 하셨습니다.”“급한 일이라고! 아주 큰 일이란 말이다! 시간이 지체되어 왕께서 죄를 물으신다면 너희 모두 죽게 될 거다.”임진형이 매섭게 소리쳤다.국방부 경비원들은 그 말을 들은 후 망설이는 눈빛으로 임진형을 바라보았다.그
“그저 급한 일로 저하를 뵙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강성에서 죽은 사람을 봤다고 했습니다. 죽었어야 했는데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그 말에 문아름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죽은 사람?”그녀는 잠깐 침묵했다가 말했다.“들어오라고 해.”“네!”잠시 뒤 임진형이 들어왔다.이황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임진형은 검을 안은 채로 이황전 입구에 앉아있는 초췌한 남자를 보았다.남자는 두 눈을 감고 마치 바위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그를 본 순간, 임진형은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그는 검을 품은 사내를 쳐다볼 용기조차 없어서 급히 그를 피해서 에둘러 돌아가 이황전 안으로 들어갔다.웅장하고 장엄한 이황전 안에는 경국지색의 여자가 조용히 앉아있었다.그녀는 이황왕 문아름이었다.임진형은 궁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그녀를 보았다.임진형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임진형, 저하를 뵙습니다!”문아름은 덤덤한 얼굴로 그를 힐끗 보았다.“일어나시죠. 말해봐요, 왜 갑자기 서울로 돌아온 거죠?”임진형이 서둘러 말했다.“저하, 급한 용무가 있어 빨리 저하께 보고하려고 서둘러 돌아왔습니다.”“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급한 거죠?”문아름이 물었다.임진형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저하, 제 말에 절대 놀라셔서도, 화를 내셔서도 안 됩니다. 이 일은 정말 큰 일입니다.”“하하.”문아름은 웃었다.그녀의 미소는 모두를 홀릴 듯했지만 그녀의 웃음 속에는 살의가 숨겨져 있었다.“말해보세요. 무슨 일이길래 내가 놀랄 거로 생각하는 건지 궁금하네요.”임진형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에야 말했다.“저하, 저는 강성에서 죽었어야 할 사람을 봤습니다.”“그가 누군가요?”문아름이 물었다.“구주왕입니다.”임진형은 떨리는 목소리로 국방부에서 금기시되는 이름을 내뱉었다.“뭐라고요?”그 말에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던 문아름이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폈다.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섬뜩한 살기가 번뜩였다. 그녀는 눈
임진형은 눈앞의 새로운 왕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새로운 왕을 정할 때 국방부의 한 중장이 문아름은 왕의 자격이 없다고 직언했었다.소문에 의하면 그 중장은 다음 날 바로 머리가 잘리고 오장육부가 전부 파인 채 가죽만 집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그 생각이 떠오르자 임진형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면서 서둘러 대답했다.“네... 네!”곧이어 임진형은 강성에서 윤구주를 보았던 일을 곧이곧대로 얘기했다.그는 두씨 가문에서 두나희를 데리러 갔다는 것도, 윤구주가 용인 빌리지에 있었다는 것도 전부 얘기했다.줄곧 안색이 좋지 않던 문아름은 그 얘기를 듣더니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그가 확실해요?”임진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확실합니다! 틀림없습니다! 당시 저는 후방지원부대에서 잡일이나 맡았지만 그를 자주 보았습니다. 게다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왕의 기운은 정말로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전 그가 확실하다고 장담합니다!”그 말에 문아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가 살아있다고? 진짜일까? 그는 우리 문씨 일가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기린화독에 당했고 심지어 10국의 신급 강자들에게 공격받아 죽음의 바다에 빠졌는데 살아있을 리가.’그러나 생각을 바꾼 문아름은 곧바로 마음이 일렁였다.‘하지만 그는 왕이었어. 화진의 최강자이기도 했지. 이 세상에 기린화독에 당한 채로 14명의 신급 강자와 죽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밖에 없을 거야.’문아름은 윤구주의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렸다.그는 한때 무적이었다.문아름은 별안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제부터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아요. 만약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서 내게 들킨다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알고 있죠?”문아름의 매정한 목소리가 임진형의 귓속을 파고들었다.임진형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네, 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문아름은 아름다운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윤구주, 정말 살아있는 거야? 부디 날 실망하게 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
성수인 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야 진정한 전쟁이 시작된다!백호의 두 눈은 완전히 야수의 눈으로 변했고, 싸늘한 눈빛으로 청현을 노려봤다.“몸 풀었으니 이제는 진짜 싸움이다. 서요산 검사야, 어디 한번 버텨봐라?”성수와 하나가 된 백호는 이제 기술 따윈 필요 없었다. 무적의 성수, 오직 전투만이 답이다!백호가 다시 돌진했다. 성수인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기가 청현의 양기를 단번에 압도했다.순식간에 전세 역전이다. 이번엔 청현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지다.그 대단한 서요산 검기는 성수의 수호막을 하나도 뚫지 못했다.둘은 하늘에서 땅으로, 지하에서 다시 아홉 겹 구름 위로 날아오르며 싸웠다.쾅! 쾅쾅쾅!구름 위로부터 울려 퍼지는 격전의 소리는 천둥을 방불케 했고, 땅이 울리는 순간 진북왕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서요산 검종의 검객이 이렇게 강했단 말인가...백호 저 자식은 또 뭐야? 그냥 제자가 아니라 괴물이잖아?’진북왕은 인생 전체가 부정당한 기분이었다.‘난 지금까지 도대체 뭘 수련한 거지...?’쾅!!다시금 천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청현은 하늘에서 땅으로 수직 낙하하였다.지면을 강타하며 피를 뿜었고 온몸은 찢기고 뼈는 대부분 부서졌다.그 순간 하늘에서는 거대한 성수의 허상이 떠올랐다.서울 상공을 덮은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 검은 구름을 만들었고 음기가 태양을 가리는 순간 청현도 정신적 혼란 상태에 빠졌다.“말도 안 돼... 난 양기를 끌어왔어! 저런 사악한 자들을 억제하려고!”“악은 정의를 이길 수 없다며! 젠장...!” 청현이 이를 악물고 낮게 으르렁댔다.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절대로 무릎 꿇을 수는 없었다!그는 도를 위해 태어난 자. 반드시 입도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음풍이여 올라와라!”그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슛— 하고 일어나서 온몸에서는 살기가 폭발했고, 그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단 악마 그 자체였다.대지가 진동하고 지하 깊은 곳의 음기가 그의 주변으로 솟아올랐다.“화극대법! 음기입체!”
부우우웅!청현은 땅과 하늘의 기운을 끌어모아 음과 양이 모두 담긴 영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백호 악마야! 마법의 검을 받아라!”순간 천지가 진동했고 양의 힘이 검을 타고 맴돌면서 날카로운 검빛이 한층 한층 휩싸였다. 산이 흔들리고, 서울 전체에 끔찍한 검 소리가 울려 퍼졌다!청현의 인간성은 별로이지만 실력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백호는 죽음이 코앞에 온 듯한 위협을 느꼈다.위험하다!하지만 백호는 놀라기는커녕 미소를 지었다. 광기 넘친 눈빛으로 완전히 이성을 잃은 모습이었다.청현의 양기 가득한 검은 하늘과 땅을 찢을 듯 백호를 향했다. 백호의 가슴엔 피가 터지고 갈비뼈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다! 백호는 음신사체를 수련했으니 저 양기 가득한 검 앞에서는 완전히 억눌리는군!”진북왕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이대로라면 청현은 완전히 백호와 청해 모두 쓸어버릴 수 있었다.상성만 아니었으면 청해는 그렇게 허무하게 지지 않았을 것이다.마치 보조자항처럼 위대한 인물이라도 부처님 흉내까지 내면서도 미친 스님 앞에선 꼼짝도 못 하였다.“양이 음을 억제하긴 하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내가 보도자항를 이긴 건 진정한 불도를 닦고 열심히 마음속으로부터 수행했기 때문이었지, 그자는 껍데기만 따라 했지 마음으로 도를 닦지 못했으니 진 거야.”“백호가 음혼인 건 맞지만 그게 곧 악마라는 뜻은 아니다.”“청현도 마찬가지야. 그가 진짜 양인지 음인지 아직 판단할 때가 아니야.”미친 스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스승님 제발 그만 하세요.이 상황에서 폼 잡으려고 온 거면 진짜... 제자가 지금 반쯤 죽었는데요?”공수이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후후, 우리 어리숙한 제자야. 바보인 채로 사는 게 차라리 낫지.”미친 스님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음양이니 정의니 하는 건 진북왕엔 관심 밖이다.지금 중요한 건 오직 하나—백호가 청현의 상대가 될 수 있느냐는 것!아니면 최소한 임정설이 폐관
백호는 어깨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아내더니 청현의 눈앞에서 그대로 부러뜨렸다. 그 광경을 본 청현은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이 미친놈아! 내 검을 부러뜨려? 죽여버릴 거야 이 자식아!”청현은 눈이 빨갛게 변하며 광기 어린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분노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온몸을 감쌌다.백호는 그런 그를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우리 왕께서 말씀하셨지. 진정한 검객은 검 없이도 싸운다고. 그깟 검 하나쯤이야. 네놈은 검의 형상만 쫓을 뿐 검객의 마음은 가지지 못했어. 그따위로 무슨 검객이냐?”쿵!청현은 완전히 제 정신을 잃었다.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짐승처럼 날뛰며 백호에게 돌진했다. 맹렬한 화염처럼 끓어오르는 기세로 백호와 뒤엉켰다.한편 진동왕 일행은 중상을 입고 거의 죽어가던 청해를 간신히 구조해 냈다.그때 미친 스님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직접 손으로 불법을 펼쳐 청해를 보호하기 시작했다.“이 노승은 그저 그의 숨만 붙들어놨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상처 그대로 두면 앞으로 몸은 끝장일 겁니다.”미친 스님이 진동왕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진동왕은 그것도 잊은 채 다그치듯 물었다.“스님 그 검객은 대체 뭐 하는 놈입니까? 어째서 검객 주제에 그런 무서운 음기를 품고 있는 겁니까?”“청현은 서요산 검종 종주의 직계 제자요. 검종에서도 지극히 큰 기대를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원래라면 차기 거목이 되었을 사람입니다. 하지만 후계자 문제는 검종 종주도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청현의 인성을 살펴보려고 일부러 결정 시점을 미뤘습니다. 예상대로 청현은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동문 수련생 열댓 명을 중상을 입혔습니다. 그 잔혹함은 종주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후에 등장한 후배 함지우는 호연정기로 심법을 닦고 도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며 신뢰를 얻었습니다.”미친 스님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구주를 움직이게 할 자격이 있는 자는 결국 당대의 진짜 영웅입니다. 그리고 윤구주는 그 모든 자 위에 있는 사람
“너도 억울해할 필요 없어. 네가 화진을 위해 공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전적으로 구주왕에 대한 충성심 위에 쌓인 것일 뿐이야. 앞으로 네가 성장하면 윤구주도 널 통제하지 못할 테니 그 전에 널 제거하려 할 거다.”말이 끝나자 청현은 순식간에 수천 미터를 날아 수비영으로 다시 뛰어들었다.삼척청봉이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그 검 끝은 백호를 정확히 겨눴다.날카로운 검의 울림은 수 킬로미터 안의 모든 이들의 고막을 찢을 듯 진동하며 어지러움을 유발했다. “지껄이지 마. 죽이려면 날 죽여. 내 형제들을 어떻게 죽였지? 그리고 여긴 어딘 줄 아나? 이곳은 화진 서울이야. 너 같은 쓰레기가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백호의 눈빛은 살기로 가득했고 상공엔 살기가 짙게 뭉쳐 수신의 형상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그 위압감은 실로 섬뜩할 정도였다.솔직히 이런 백호의 모습은 정말 마인으로 오해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그는 윤구주에 대한 충성은 변함없었지만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윤구주만이 아니었다.구주의 전우와 화진의 백성들 그 모든 이들이 그가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그의 행보는 그를 점점 인간 요귀로 만들어가고 있었다.“그래? 지금은 네가 그들을 인정하고 있어도 언젠가 네가 마인으로 타락하게 된다면 그때는 네 의지대로 되지 않을 거야. 난 간다. 미리 경고했으니 후회하지 마. 내게 자비란 없다.”슈욱!청현은 한 자루 검과 함께 어둠을 가르며 잔상처럼 백호를 향해 돌진했다.한 줄기 칼날의 섬광이 나타나며 수천 개의 검기가 일제히 백호에게 쏟아졌다.쾅! 쾅! 쾅!각 칼날 하나하나가 구오지존 초입의 수련자를 가볍게 썰어버릴 위력이었지만 백호의 몸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대부분의 검기는 튕겨 나갔고 일부는 살을 파고들었지만 뼈에 닿으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휙!강풍이 맹렬히 불어치는 가운데 청현은 백호의 천령개를 향해 칼을 날카롭게 휘둘렀다.슉!백호는 머리를 살짝 비켜 피했지만 칼은 그의 어깨를 정확히 내리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