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에 있는 ‘기린화독’을 수련하고 있는 로 누르는 것 외에 천 년 된 빙설화의 한기로 누르면 효과가 더 좋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에게 천 년 된 한성 약재가 한 그루밖에 없었다. 한성 약재 두 개만 더 모으면 윤구주는 기린화독을 완전히 풀 수 있게 된다.기린화독만 풀면 윤구주는 다시 절정에 오를 수 있다.“그래, 독을 푸는 거야.”윤구주의 눈이 점차 서늘해지기 시작했다.…주씨 가문, 윈워터힐스.저번에 윤구주와 함께 경매에 참석한 뒤로 주세호는 다시 윤구주를 보지 못했다.주세호가 바쁘다거나 다른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윤구주가 만나자는 기별이 없으니 함부로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서재 안, 주세호는 늘 그랬듯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얼마나 지났는지 도우미가 갑자기 들어왔다.“회장님, 문 앞에 귀빈이 찾아와 회장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시간 없다고 전하세요.”주세호는 바로 거절했다.“네.”도우미가 나가려다 다시 멈췄다.“회장님, 말로는 서경에서 왔다고 했고 천하회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시간 없다고 전할까요?”천하회?주세호는 천하회 이 세글자를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서경 천하회는 주세호도 당근 잘 알고 있었다.천하회는 서경 지역의 왕으로 통했다. 그리고 전에 홍월 경매사에서 주최한 경매에서 주세호는 천하회의 조직원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그들은 전에 윤구주를 괴롭힌 적이 있다.천하회가 갑자기 자기를 찾아온 저의가 뭔지 주세호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됐어요. 들어오라고 하세요.”주세호가 결국 이렇게 지시했다.“네.”10분 뒤.한복을 입은 절세의 노정연이 서양과 마 선생을 데리고 주세호의 서재로 들어왔다.“이렇게 불쑥 회장님을 뵈러 왔는데 혹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들어오자마자 노정연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어여쁘게 웃으며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주세호를 바라봤다.주세호는 천하회의 사람들을 보고는 얼굴을 굳히더니 서늘하게 말했다.“실례까지는 아닙니다. 그냥 천하회
이렇게 진귀한 핏빛 인삼을 보며 주세호가 물었다.“제 기억이 맞다면 우리 DH그룹은 천하회와 아무런 거래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값비싼 선물을 하시는 거죠?”노정연이 물었다.“회장님, 너무 내외하신다. 이렇게 약소한 선물로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우리 천하회가 주 회장님과 친분을 쌓고 싶습니다.”‘나와 친분을 쌓고 싶다고?’주세호는 바보가 아니었다.DH그룹과 서경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그리고 돈도 많고 권력도 센 천하회가 갑자기 친분을 쌓고 싶다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주세호가 콧방귀를 끼더니 말했다.“저는 돌려서 말하는 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했으니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하시죠.”노정연이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주 회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저희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주 회장님, 회장님을 통해 윤구주 선생님을 알고 지내고 싶습니다.”윤구주라는 이름이 나오자 주세호는 바로 깨달았다.‘역시, 이 사람들은 저하를 뵈러 온 거야.’“회장님, 오해는 하지 마세요.”“천하회에서 윤구주 선생님을 뵙고 싶어 하는 건 그냥 존경하고 숭배해서예요. 나쁜 의도는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회장님께서 저희를 좀 소개해 주면 안 될까요?”노정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주세호를 바라봤다.주세호는 오히려 껄껄 크게 웃었다.“소개해 주는 건 어려울 것 같네요.”노정연은 이 결과를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회장님, 일단 먼저 거절할 생각 마시고 천하회의 성의를 먼저 들어주세요.”노정연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주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천하회는 서경의 7개 도와 54개 시를 관할하고 있습니다. 서경에서 천하회 말이라면 따르지 않을 자가 없지요. 게다가 천하회는 3개의 당과 4개의 각을 소유하고 있고 인재가 많을뿐더러 고수가 넘쳐납니다. 재력이라면 서경에서 따라올 자가 없고요.”“노정연 씨, 지금 저 주세호를 협박이라도
천하회는 정말 윤구주와 친분을 쌓고 싶었다.윤구주와 같은 거물을 천하회가 알고 지낸다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았다.그러다 결국 중원까지 따낼지도 모른다.이는 노정원의 소원이었다. 그래서 계속 윤구주를 만나고 싶어 했던 것도 있다.하지만 그녀는 윤구주의 진짜 신분이 뭔지 모른다.이를 알게 된다면, 그녀가 아는 윤구주가 화진을 떠들썩하게 했던 9주의 군신인 걸 알게 된다면 아마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도 있다.천하회가 열심히 윤구주를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 강성시 시청.판인국의 습격과 암살 사건이 일어난 후 시장 임기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하지만 바빠도 윤구주는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그에게 윤구주는 생명의 은인이었고 강성시의 수호신이었다. 그래서 꼭 직접 윤구주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유 비서, 전에 찾으라고 했던 신님의 주소는 찾았나?”공무를 처리한 임기준이 옆에 선 비서에게 물었다.“시장님,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조사하든 윤 선생님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그럴 리가 있나?”임기준이 물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시청 경찰서에서 조회해 봤는데 윤 선생님의 기록은 아예 없었습니다.”유선호가 대답했다.이에 임기준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강성시에 윤구주 같은 인재가 있다는 게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왜 경찰서에서 윤구주라는 사람을 조회해도 결과가 안 나오는 거지? 설마 그 신님 강성시 사람이 아닌 건가?’임기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유 비서, 빨리 암부에 연락해서 은인인 윤구주 선생님을 찾아보라고 해요. 무슨 수를 쓰든 간에 내 목숨을 살려준 그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으니.”“네, 지금 바로 연락하겠습니다.”유선호는 이렇게 말하더니 암부 조직원에게 연락하러 물러갔다.천하회와 강성시 시청에서 다 만나고 싶어 하는 윤구주는 계속 조용히 용인 빌리지에 머물고 있었다.어느날, 소채은은 윤구주가 보고 싶어 전화를 걸었고 그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하여 윤구주
“설마 윤구주 그 새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러 온 건가?”소청하는 주변에 늘어선 별장들을 살피며 의아해했다.강성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소청하는 이 별장이 얼마나 비싼지 잘 알고 있었다.아무거나 짚어도 몇십억 또는 몇백억을 호가했다.소청하의 마음속에 윤구주는 거렁뱅이나 다름없는데 재벌들이 모여 사는 곳에 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앞에 위치한 빌리지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다고 소문이 난 곳이었다.“이 계집애가 이렇게 번화한 구역에 누굴 만나러 온 거지?”소청하는 멀찌감치 숨어서 혼자 생각했다.소채은은 용인 빌리지에 도착하자마자 윤구주에게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냈다.문자를 본 윤구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용인 빌리지에서 아래로 마중을 나왔다.소채은은 차에 있었기에 윤구주가 용인 빌리지에서 나온 건 보지 못했다. 그저 윤구주가 이 근처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멀찌감치 숨어 있던 소청하는 달랐다. 그는 윤구주가 용인 빌리지에서 나오는 걸 똑똑히 보았다.“미친, 그럴 리가 없잖아!”“윤구주 그 찌질이가 어떻게 강성시에서 제일 비싼 용인 빌리지에서 나와? 설마 저기 사는 건가?”“아니.”“그럴 리 없어.”소청하는 눈을 비비며 놀란 눈빛으로 멀리 있는 용인 빌리지를 바라봤다.용인 빌리지는 강성시에서 으뜸가는 저택이었다.5년 전에 완공했고 시가가 몇백억을 호가했다.전해지는 데 따르면 빌리지의 소유자가 강성시 제일 갑부 주세호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지금 왜 윤구주가 빌리지에서 나오는 거지?’소청하는 도무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지라 마음이 착잡했다.“설마. 그냥 저 새끼가 우연히 지나친 거겠지. 아니면 그 주제에 이렇게 비싼 곳에서 어떻게 살아?”소청하는 이렇게 말하며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하려 했다.소채은은 백미러로 윤구주를 보고는 신나서 차에서 내려 윤구주를 향해 걸어갔다.“구주야, 왜 항상 나를 여기서 기다리게 해?”“강성시에서 제일 비싼 구역
윤구주는 당연히 소채은을 원망할 생각이 없었다.“바보야, 내가 왜 화를 내. 그런 생각하지 마.”소채은이 이를 듣더니 기쁜 표정으로 윤구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헤헤. 우리 구주가 화 안 낼 줄 알았어.”“근데 걱정하지 마. 내가 소씨 그룹 장사를 더 열심히 해서 스폰해 줄게. 우리 구주한테 말도 못할만큼 큰 별장 사서 안에서 살게 해줄게.”소채은의 말에 윤구주는 입꼬리가 올라갔다.둘은 그렇게 수다를 한참 더 떨다가 쇼핑하러 갔다.멀찌감치 숨어 있던 소청하는 윤구주가 소채은과 함께 떠나고 나서야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 하지만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우뚝 솟은 용인 빌리지를 바라봤다.“빌어먹을!”“정말 빌어먹을!”“윤구주 그 거렁뱅이가 왜 여기 있어!”“아니야. 직장도 없는 병신이 어떻게 이렇게 번화한 별장 구역에 세 들어 살겠어?”소청하는 생각할 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는 걸음을 옮겨 용인 빌리지 아래로 향했다.고개를 들고 두눈을 크게 뜬채 용인 빌리지를 바라봤다.빌리지 위로 안개가 자욱이 껴 있었다.해가 중천인데 빌리지는 안개가 자욱했기에 빌리지가 어떤 상황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쯧쯧, 역시 강성시에서 제일 비싼 용인 빌리지야.”“빌리지 위로 낀 안개만 봐도 천국 같네.”소청하는 부러운 눈빛으로 용인 빌리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근데 윤구주 그 거렁뱅이는 용인 빌리지에 무슨 일로 왔지? 여기서 알바라도 하나? 아니면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나?”“안 되겠어. 조사해 봐야겠어.”“그 거렁뱅이 놈이 재벌인 척하면서 여기 산다고 거짓말하면서 내 딸한테 사기 치면 어떡해.”소청하는 이렇게 생각하며 위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걸음을 옮겨 산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산길을 밟자마자 주변에 낀 안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는 마치 산이 갈라지고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기세로 갑자기 사방에서 그를 향해 몰려왔다.천하회의 사람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인데 소청하 같은 일반인은 더 감당이
그녀는 두씨 집안의 두나희였다.이때 백경재가 기절한 소청하를 업고 산길로 걸어왔다.심심해서 대문 앞에 앉아있던 두나희는 백경재가 갑자기 사람을 업고 오자 눈동자가 커지더니 그쪽으로 달려갔다.“어르신, 뭐해요? 왜 시체를 업고 와요?”백경재는 두나희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기절한 소청하를 잡아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소청하는 저쪽에 널브러졌다.“망할 어르신, 내가 묻잖아요. 허구한 날 왜 시체를 업고 오냐고요?”두나희는 바닥에 던져져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소청하를 보고 그가 죽은 줄로 알았다.“어린애가 뭘 안다고.”“이런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쓰레기가 죽을 리가 있나? 그냥 저하가 배치한 운산대진에 놀라 쓰러진 거야.”백경재가 말했다.두나희는 궁금한지 앞으로 다가가 소청하의 상태를 살폈다.자세히 보니 소청하는 죽은 게 아니라 그냥 기절한 것이었다.“어르신, 지금 이렇게 쓰러졌는데 구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두나희가 물었다.“내가? 저 사람을?”“꿈도 꾸지 마.”“저 자식 눈에 돈밖에 없는 놈이야. 죽여버려도 시원찮을 판에 내가 왜 구해?”백경재가 욕설을 퍼부었다.“왜 그렇게 미워하는 거예요?”두나희는 백경재가 이 정도로 화를 내자 이유가 궁금해졌다.“미워하면 안 돼?”“눈에 돈밖에 없는 저 자식 채은 아가씨 아버지 되는 사람이야.”“이 빌어먹을 놈이 글쎄 우리 저하를 감히 얕잡아보는 것도 모자라 말끝마다 저하를 모욕하고 있어. 저하가 채은 아가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저하가 착해서 그렇지 나 같았으면 진작에 죽여버렸어.”백경재가 말했다.뭐?“이 사람이 그 여우 같은 언니 아버지라고요? 그리고 감히 우리 구주 오빠를 욕보였다고요?”두나희가 이를 듣더니 펄쩍 뛰었다.“그래!”백경재가 대꾸했다.“이 빌어먹을 새끼가! 열 빡치네!”두나희가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약간은 미쳐 있는 이 소녀는 원래도 윤구주가 소채은을 좋아하는 걸 질투하고 있었다.근데 소청하가 소채은의 아버지고 윤구
두나희가 진짜 소청하를 죽이려 들자 백경재는 어이가 없었다.백경재는 두나희가 미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든 해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됐어. 그만해. 정말 저 돈밖에 모르는 자식 죽였다가 저하가 영원히 너 상대하지 않을 수도 있어.”백경재가 얼른 말했다.두나희는 윤구주가 화낸다는 소리에 동그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물었다.“진짜요?”“당연하지.”“그래요. 그럼 일단 살려두죠 뭐. 근데 혼 좀 내주는 건 괜찮잖아요?”두나희가 얍삽하게 웃으며 말했다.백경재는 기절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소청하를 힐끔 쳐다봤다.원래도 돈밖에 모르는 소청하를 역겨워하던 백경재라 두나희를 딱히 막지는 않았다.“숨만 붙여둬. 다른 건 상관 안 할게.”“아하하. 알겠어요. 나한테 맡겨요.”두나희는 겉보기에는 7, 8살밖에 안 되어 보였지만 실력은 무사의 경지와 다를 바 없었다.소녀는 작은 손을 들어 소청하의 다리를 잡더니 짐짝을 끌듯이 질질 어디론가 끌고 가 훈육했다.백경재는 실눈을 뜨고 웃었다.…점심.고급 승용차 몇 대가 용인 빌리지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린 건 강성시 제일 갑부 주세호였다.정갈한 슈트를 맞춰 입은 그의 뒤로 몇 명의 보디가드 외에 천하회의 노정연 등 사람이 따랐다.오늘 그는 특별히 천하회의 멤버들을 데리고 윤구주를 뵈러 온 것이다.절세의 노정연은 연보라색의 한복을 입고 있었고 그 뒤로는 귀선경지를 수련하는 마 선생과 대무사 서양이 따랐다.고개를 들어 용인 빌리지를 힐끔 보던 주세호가 말했다.“노정연 씨, 이쪽입니다. 저하는 빌리지에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말하더니 주세호는 걸음을 옮겨 용인 빌리지로 향하는 산길을 타기 시작했다.“회장님, 잠시만요.”노정연이 갑자기 주세호를 불러세웠다.“왜 그러십니까?”주세호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회장님, 이렇게 불쑥 찾아가도 괜찮겠죠? 무슨 일 없겠죠?”조금 겁이 나는 노정연이었다.저번에 윤구주를 미행했다가 하마터면 윤구주 손에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게다가 암부의 민도살
“어? 주 회장님이셨군요!”백경재는 주세호를 보더니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백 대사님, 안녕하세요!”주세호가 얼른 인사를 건넸다.“주 회장님, 오늘 어쩐 일로 이 용인 빌리지에 오신 거예요? 어? 이 자식들 천하회 사람들 아닌가요? 이 자식들은 왜 또 왔대요?”백경재는 주세호의 뒤에 노정연 등 사람들이 있는 걸 보고 안색이 달라졌다.“백 대사님, 오해하지 마세요! 전 천하회 사람들을 데리고 저하를 뵈러 온 겁니다!”주세호가 서둘러 말했다.“저하를 뵈러 온 거라고요?”백경재는 천하회 사람들을 힐끗 보았다.“죄송합니다. 저하께서는 조금 전에 나가셔서 아마 당장은 돌아오지 않으실 겁니다.”백경재가 솔직히 말했다.“괜찮습니다. 저희가 기다리겠습니다! 밖에서 기다려도 괜찮습니다!”노정연이 서둘러 말했다.그녀는 오늘에도 허탕을 치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백경재는 비록 천하회를 못마땅히 여겼지만 주세호와 윤구주가 보통 사이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그렇게 백경재는 주세호와 천하회 사람들을 데리고 산을 올라 윤구주를 기다렸다.주세호가 천하회 사람들을 데리고 산에 오른 지 20분이 되지 않았을 때, 또 차 여러 대가 용인 빌리지에 도착했다.맨 앞에 있는 아우디 A6 여러 대 뒤로 검은색 승용차들이 따르고 있었다.차 문이 열리고, 가장 처음 아우디에서 내린 사람은 강성시 정계 인사들이었다.그중 시장 임기준이 선두에 섰고 그의 뒤로는 비서실장, 국회의원, 행정팀장 등 사람들이 있었다.그들은 강성시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들로 저번에 제1교도소에 갇혔던 자들이었다.그들은 윤구주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감사패를 들고 시장 임기준과 함께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그들은 윤구주가 목숨을 구해준 것에 감사하는 동시에 강성시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준 것에 감사했다.강성시 정치인들이 차에서 내리자 뒤에 줄지어 서 있던 승용차에서 암부 직원 30명가량이 내렸다.앞장선 사람은 당연하게도 암부 3대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
성수인 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야 진정한 전쟁이 시작된다!백호의 두 눈은 완전히 야수의 눈으로 변했고, 싸늘한 눈빛으로 청현을 노려봤다.“몸 풀었으니 이제는 진짜 싸움이다. 서요산 검사야, 어디 한번 버텨봐라?”성수와 하나가 된 백호는 이제 기술 따윈 필요 없었다. 무적의 성수, 오직 전투만이 답이다!백호가 다시 돌진했다. 성수인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기가 청현의 양기를 단번에 압도했다.순식간에 전세 역전이다. 이번엔 청현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지다.그 대단한 서요산 검기는 성수의 수호막을 하나도 뚫지 못했다.둘은 하늘에서 땅으로, 지하에서 다시 아홉 겹 구름 위로 날아오르며 싸웠다.쾅! 쾅쾅쾅!구름 위로부터 울려 퍼지는 격전의 소리는 천둥을 방불케 했고, 땅이 울리는 순간 진북왕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서요산 검종의 검객이 이렇게 강했단 말인가...백호 저 자식은 또 뭐야? 그냥 제자가 아니라 괴물이잖아?’진북왕은 인생 전체가 부정당한 기분이었다.‘난 지금까지 도대체 뭘 수련한 거지...?’쾅!!다시금 천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청현은 하늘에서 땅으로 수직 낙하하였다.지면을 강타하며 피를 뿜었고 온몸은 찢기고 뼈는 대부분 부서졌다.그 순간 하늘에서는 거대한 성수의 허상이 떠올랐다.서울 상공을 덮은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 검은 구름을 만들었고 음기가 태양을 가리는 순간 청현도 정신적 혼란 상태에 빠졌다.“말도 안 돼... 난 양기를 끌어왔어! 저런 사악한 자들을 억제하려고!”“악은 정의를 이길 수 없다며! 젠장...!” 청현이 이를 악물고 낮게 으르렁댔다.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절대로 무릎 꿇을 수는 없었다!그는 도를 위해 태어난 자. 반드시 입도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음풍이여 올라와라!”그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슛— 하고 일어나서 온몸에서는 살기가 폭발했고, 그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단 악마 그 자체였다.대지가 진동하고 지하 깊은 곳의 음기가 그의 주변으로 솟아올랐다.“화극대법! 음기입체!”
부우우웅!청현은 땅과 하늘의 기운을 끌어모아 음과 양이 모두 담긴 영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백호 악마야! 마법의 검을 받아라!”순간 천지가 진동했고 양의 힘이 검을 타고 맴돌면서 날카로운 검빛이 한층 한층 휩싸였다. 산이 흔들리고, 서울 전체에 끔찍한 검 소리가 울려 퍼졌다!청현의 인간성은 별로이지만 실력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백호는 죽음이 코앞에 온 듯한 위협을 느꼈다.위험하다!하지만 백호는 놀라기는커녕 미소를 지었다. 광기 넘친 눈빛으로 완전히 이성을 잃은 모습이었다.청현의 양기 가득한 검은 하늘과 땅을 찢을 듯 백호를 향했다. 백호의 가슴엔 피가 터지고 갈비뼈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다! 백호는 음신사체를 수련했으니 저 양기 가득한 검 앞에서는 완전히 억눌리는군!”진북왕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이대로라면 청현은 완전히 백호와 청해 모두 쓸어버릴 수 있었다.상성만 아니었으면 청해는 그렇게 허무하게 지지 않았을 것이다.마치 보조자항처럼 위대한 인물이라도 부처님 흉내까지 내면서도 미친 스님 앞에선 꼼짝도 못 하였다.“양이 음을 억제하긴 하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내가 보도자항를 이긴 건 진정한 불도를 닦고 열심히 마음속으로부터 수행했기 때문이었지, 그자는 껍데기만 따라 했지 마음으로 도를 닦지 못했으니 진 거야.”“백호가 음혼인 건 맞지만 그게 곧 악마라는 뜻은 아니다.”“청현도 마찬가지야. 그가 진짜 양인지 음인지 아직 판단할 때가 아니야.”미친 스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스승님 제발 그만 하세요.이 상황에서 폼 잡으려고 온 거면 진짜... 제자가 지금 반쯤 죽었는데요?”공수이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후후, 우리 어리숙한 제자야. 바보인 채로 사는 게 차라리 낫지.”미친 스님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음양이니 정의니 하는 건 진북왕엔 관심 밖이다.지금 중요한 건 오직 하나—백호가 청현의 상대가 될 수 있느냐는 것!아니면 최소한 임정설이 폐관
백호는 어깨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아내더니 청현의 눈앞에서 그대로 부러뜨렸다. 그 광경을 본 청현은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이 미친놈아! 내 검을 부러뜨려? 죽여버릴 거야 이 자식아!”청현은 눈이 빨갛게 변하며 광기 어린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분노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온몸을 감쌌다.백호는 그런 그를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우리 왕께서 말씀하셨지. 진정한 검객은 검 없이도 싸운다고. 그깟 검 하나쯤이야. 네놈은 검의 형상만 쫓을 뿐 검객의 마음은 가지지 못했어. 그따위로 무슨 검객이냐?”쿵!청현은 완전히 제 정신을 잃었다.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짐승처럼 날뛰며 백호에게 돌진했다. 맹렬한 화염처럼 끓어오르는 기세로 백호와 뒤엉켰다.한편 진동왕 일행은 중상을 입고 거의 죽어가던 청해를 간신히 구조해 냈다.그때 미친 스님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직접 손으로 불법을 펼쳐 청해를 보호하기 시작했다.“이 노승은 그저 그의 숨만 붙들어놨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상처 그대로 두면 앞으로 몸은 끝장일 겁니다.”미친 스님이 진동왕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진동왕은 그것도 잊은 채 다그치듯 물었다.“스님 그 검객은 대체 뭐 하는 놈입니까? 어째서 검객 주제에 그런 무서운 음기를 품고 있는 겁니까?”“청현은 서요산 검종 종주의 직계 제자요. 검종에서도 지극히 큰 기대를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원래라면 차기 거목이 되었을 사람입니다. 하지만 후계자 문제는 검종 종주도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청현의 인성을 살펴보려고 일부러 결정 시점을 미뤘습니다. 예상대로 청현은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동문 수련생 열댓 명을 중상을 입혔습니다. 그 잔혹함은 종주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후에 등장한 후배 함지우는 호연정기로 심법을 닦고 도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며 신뢰를 얻었습니다.”미친 스님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구주를 움직이게 할 자격이 있는 자는 결국 당대의 진짜 영웅입니다. 그리고 윤구주는 그 모든 자 위에 있는 사람
“너도 억울해할 필요 없어. 네가 화진을 위해 공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전적으로 구주왕에 대한 충성심 위에 쌓인 것일 뿐이야. 앞으로 네가 성장하면 윤구주도 널 통제하지 못할 테니 그 전에 널 제거하려 할 거다.”말이 끝나자 청현은 순식간에 수천 미터를 날아 수비영으로 다시 뛰어들었다.삼척청봉이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그 검 끝은 백호를 정확히 겨눴다.날카로운 검의 울림은 수 킬로미터 안의 모든 이들의 고막을 찢을 듯 진동하며 어지러움을 유발했다. “지껄이지 마. 죽이려면 날 죽여. 내 형제들을 어떻게 죽였지? 그리고 여긴 어딘 줄 아나? 이곳은 화진 서울이야. 너 같은 쓰레기가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백호의 눈빛은 살기로 가득했고 상공엔 살기가 짙게 뭉쳐 수신의 형상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그 위압감은 실로 섬뜩할 정도였다.솔직히 이런 백호의 모습은 정말 마인으로 오해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그는 윤구주에 대한 충성은 변함없었지만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윤구주만이 아니었다.구주의 전우와 화진의 백성들 그 모든 이들이 그가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그의 행보는 그를 점점 인간 요귀로 만들어가고 있었다.“그래? 지금은 네가 그들을 인정하고 있어도 언젠가 네가 마인으로 타락하게 된다면 그때는 네 의지대로 되지 않을 거야. 난 간다. 미리 경고했으니 후회하지 마. 내게 자비란 없다.”슈욱!청현은 한 자루 검과 함께 어둠을 가르며 잔상처럼 백호를 향해 돌진했다.한 줄기 칼날의 섬광이 나타나며 수천 개의 검기가 일제히 백호에게 쏟아졌다.쾅! 쾅! 쾅!각 칼날 하나하나가 구오지존 초입의 수련자를 가볍게 썰어버릴 위력이었지만 백호의 몸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대부분의 검기는 튕겨 나갔고 일부는 살을 파고들었지만 뼈에 닿으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휙!강풍이 맹렬히 불어치는 가운데 청현은 백호의 천령개를 향해 칼을 날카롭게 휘둘렀다.슉!백호는 머리를 살짝 비켜 피했지만 칼은 그의 어깨를 정확히 내리꽂
화진의 외곽에서 청룡의 흔적을 추적하던 빙신전 전주는 갑자기 신경을 곤두세우며 말했다.“늙은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뭔가 감지된 거야?”현모와 주작은 즉시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몇 번을 말해. 난 황보웅이라고.”빙신전 전주가 차갑게 대답했다.“헛소리 작작 해. 널 신발이라 안 부른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 청룡은 찾았어?”성질 더러운 주작은 그에게 전혀 봐주는 법이 없었다.“아니. 백호한테 걸어둔 천술이 강제로 해제됐어.”황보웅이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뭐라고?”현모와 주작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서울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현모와 주작은 즉시 위성 전화로 서울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근처 도시에 연락한 결과 서울에 이상 상황이 발생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고 했다.그들은 이미 서울로 인원을 파견했다고 전했다.“젠장! 진동왕 그 늙은 놈 처음부터 믿지 않았어. 청해는 더 말할 것도 없고!”주작은 크게 분노하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현모는 차분하게 말하며 주작을 진정시켰다.황보웅은 무관심하게 말했다.“진동왕 임성진이야 고작 구오 경지에 불과해서 그가 뭘 하든 별 소용없어. 청해는... 그놈은 이제 더 이상 반역하지 않을 거야. 곤륜 구역은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거든. 구주왕은 더 말할 것도 없고.”현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웅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말도 소용이 없었다. 설령 서울에 큰 위기가 닥쳤다 해도 이곳에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걱정하지 마. 국주도 서울에 있고 왕이 말했듯이 국주가 이제 최고급 신급에 올랐으니 진형만 유지하고 주변 도시에 원군을 요청하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야.”현모는 힘차게 말했다. 이어서 두 사람에게 청룡 추적에 전념할 것을 지시했다.황보웅은 서울의 사상자 수에는 무관심했고 윤구주만 무사하면 대국에 지장이 없다고 여겼다.그리하여 세 사람은 다시 깊은 산과 밀림으로 들어가서 청룡을 추적했다.한
청해는 모든 일을 마무리한 후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죽음을 기다렸다.청의 검객은 그의 곁을 무심히 지나가며 담담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네가 곤륜 구역의 사술사긴 해도 화진 백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건 충성이라 할 만하다. 윤국주에게 끝까지 의리를 지켰군. 내가 굳이 너를 죽일 필요는 없어. 정리할 게 있다면 정리하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해라.”청해의 마지막 충성을 보고 청의 검객은 그를 살려두었다.그리고 얼음 진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청해가 온 힘을 다해 짜놓은 얼음 결계는 한 번에 산산조각 나버렸다.“이 미친놈. 차이가 너무 크잖아. 고급 신급뿐인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강력할 수 있지?”청해는 욕설을 퍼부으며 이를 악물었다.그래도 자신이 오늘 죽으면 화진을 위해 싸운 셈이니 윤구주가 자신을 잘 묻어주고 이름을 남길 거라고 생각했다.평생 신령으로 살아온 청해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명예를 되새기며 웃고 있었다.멀리서 진동왕 일행이 도착했지만 그는 발을 디디기도 전에 칼날 같은 살의와 검의 기운에 압도당했다.바로 그 순간 그는 미친 스님의 말을 떠올렸다. 임정설이 올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백호의 생명은 위태로웠다.그는 얼음 속에 갇혀 전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백호 네 안에는 살기가 너무 많다. 성수의 피를 융합한 이상 언젠가는 인간계의 마인으로 폭주할 것이다. 윤국주는 결코 너를 죽일 수 없겠지만 내가 대신 끝내주마.”청현의 검 끝에서 한 줄기 서늘한 빛이 뻗어 나와 얼음 결계를 뚫고 백호의 단전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청의 검객인 청현은 이미 그 흐름을 감지하고 있었다.성스러운 짐승의 피를 깨뜨린다면 백호는 죽을 운명이었다.진동왕은 숨을 삼킨 채 그 칼끝을 노려보고 있었다.하지만 구주군은 더는 참지 못했다.“대장님을 구하라. 돌격.”수천 명의 구주군이 함성을 지르며 청현을 향해 돌진했다.하지만 청현은 단 한 번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그는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더니 순식간에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아 손바닥
진짜 부처의 금빛 광채가 서울 하늘을 뒤덮었다.수많은 불빛이 만불종의 보도자항을 송두리째 태워버렸다.그의 육신이 타들어 가며 내면의 음험한 영혼과 사악한 기운이 드러나자 그동안 그에게 속아왔던 이들은 마침내 진실을 깨달았다.그는 진정한 부처가 아니라 불교의 이름을 악용해 사술을 부리는 사악한 존재였음을. 불빛은 순식간에 희미해졌고 하늘의 황금 형상은 다시 검은 구름에 삼켜졌다.지상에 남은 금빛 실루엣도 점차 사라지며 그 자리에는 누더기 법복을 입은 한 스님의 모습이 드러났다.그는 바로 공수이의 스승인 미친 스님이었다.최고급 신급에 근접한 존재였다.“역시 스승님. 평소에는 미친 척하시더니 제대로 할 땐 정말 대단하시네요.”공수이는 온몸이 엉망이 되었음에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미친 스님? 200년 전 풍화산의 불동 주지 스님 이름이 뭐였더라?”진동왕 임성진은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그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불은 본래 형상이 없으니 내가 불을 닦는다면 이름 자체가 무의미하지요.”미친 스님은 아미타불을 외우며 몇 개의 단약을 꺼내 진동왕과 공수이에게 먹였다.하지만 은용위의 부대는 이미 요승 불경의 손에 전멸한 후였다. 미친 스님은 그들을 위해 자리에 앉아 초혼 의식을 치렀다.“스님 지금은 초혼할 때가 아닙니다. 그들이 백호를 노리고 있음이 분명해요. 청해도 위험한 상황일 겁니다. 부디 백호를 구해주십시오.”진동왕은 숨을 고르자마자 미친 스님을 향해 절박하게 외쳤다.예의를 갖추지 못한 것은 상황이 너무나 긴급했기 때문이었다.그 말을 들은 미친 스님은 안타깝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내 도행은 보도자항과 팽팽한 대결 수준입니다. 그를 죽일 수 있었던 건 수련이 아니라 운 때문이었습니다. 백호에게 닥친 이 재앙은 그의 운명에 이미 각인된 것입니다.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뭐... 뭐라고요?”곤륜 구역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고인조차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진동왕은 충격을 받았다.“어서 말하거라.
“미친놈. 이 가짜 스님아, 당장 꺼져.”공수이는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혈액을 인으로 새겼다.그의 피는 놀랍게도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십장 금불인이 발동되었다.공수이가 모든 힘을 다해 불러낸 공격은 보도자항이 소환한 금불상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네 놈이 고작 불법 몇 년 수련했다고 대단한 줄 아느냐? 서방여래는 만불지존이다. 네가 감히 뭐로 나와 겨룬단 말이냐. 깨져라.”보도자항은 냉소를 띠며 금불상의 양손을 모았다. 그러자 손끝에서 번개 같은 금뢰가 튀어나와 공수이의 금강불인을 산산이 부수었다.그 충격에 공수이는 완전히 쓰러졌다.그는 바닥에 쓰러져 일어설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되었다. 문득 공수이는 이것이 정말 여래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찮은 요귀가 어찌하여 참불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게 세상 이치인가? 내가 배운 불법은 전부 거짓인가? 아니면 선악을 막론하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건가?”그 순간 하늘을 가르며 천지의 정기를 품은 무지갯빛 호연정기가 짙은 기운을 가르며 쏟아졌다.“금강인 불문을 열어라. ”거대한 메아리 같은 음성이 하늘을 울렸고 곧이어 백장 금인이 칠색 구름을 타고 서울 상공에 강림했다.“뭐라고?”보도자항의 표정이 굳었다.그 압도적인 기운은 그의 숨조차 막히게 했다.“불.”백장 금인이 왕부로 내려오자마자 뱉은 한마디에 보도자항이 펼쳤던 모든 사술이 산산조각 나버렸다.“안돼... 나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군. 이 세상에 아직도 대승 불법을 익힌 자가 남아 있었다니.”보도자항은 이를 갈며 몸을 떨었다.그는 질투에 사로잡혔다.왜 자신은 만불종 종주임에도 이런 참된 불법의 정수를 얻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불본무도 심성위령. 일념으로 도를 향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너희 같은 자들은 마음을 그르쳐 불을 왜곡하고 형상 없는 불을 우상화해 신처럼 떠받들었다. 만불종은 불타의 이름을 빌려 사익을 취했고 종교를 가장해 세상을 속였으며 그 어떤 정의로운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