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는 그를 보지 않았다.그리고 그와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다.그는 마치 바위처럼 그곳에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산속에서 바람이 불어와 윤구주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흩날렸다.그는 고개를 숙여 싸늘한 시선으로 제4나사염군의 시체를 보았다.그리고 곧 그의 눈동자에서 금빛 불꽃 화염이 뿜어졌다.쿵!귀신 가면을 쓴 나사염군의 시체는 곧 불에 타서 재가 되었다.유명전 제4염군의 시체가 재가 돼버린 뒤 윤구주는 차갑게 등을 돌려 자리를 떴다....노룡산 대전이 끝났다.유명한 관광지였는데 이제 산꼭대기는 안타깝게도 폐허가 되어버렸다.천 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던 적성루조차 완전히 무너져 내려서 처참한 몰골이었다.폐허 속에서 윤구주의 형제들은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며 그곳에 서 있었다.공주인 이홍연은 옆에 서서 묵묵히 윤구주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오늘 사실 그녀는 아주 모순적이었다.그녀는 사실 화풀이를 하려고 윤구주를 상대할 생각이었는데 윤구주가 정말 위험해질 것 같자 곧바로 후회되었다.그런데 지금 윤구주가 무사한 걸 보니 또 저도 모르게 망설였다.그녀는 윤구주를 십여 년 동안 힘겹게 기다렸는데, 윤구주는 정작 여자 연예인과 서로 끌어안고 있었으니 그걸 생각하면 속이 뒤집혔다.이때 한 목소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안녕하세요, 누나!”이홍연은 처음 누나라고 불려서 살짝 놀라 고개를 돌려 보았다. 곧 대머리인 스님이 뒤에 서 있는 게 보였다.“넌 누구야? 아까 날 뭐라고 부른 거야?”이홍연은 놀란 표정으로 뒤에 있던 스님에게 물었다.“전 공수이라고 해요. 법명은 나최고예요!”“풉!”이홍연은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공수이의 얼굴에 대고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하, 나최고라고? 날 웃겨 죽일 생각인 거야? 세상에 그렇게 웃긴 법명이 어디 있어?”이홍연은 배를 잡고 깔깔 웃었지만 그 모습은 요정처럼 아주 아름다웠다.“진짜예요! 전 정말 공수이예요!”꼬마 스님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이홍연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
공수이는 아주 똑똑했다.이홍연의 말을 들은 그는 곧바로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알아냈다.그는 반질반질한 머리를 긁적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이 공주님 진심으로 우리 형님을 좋아하는 것 같네. 날 통해서 뭔가 알아내려는 게 분명해. 안 돼! 나 공수이는 절대 형님에게 미안할 짓을 할 수 없어. 난 꼭 형님에게 도움이 돼서 가장 훌륭한 동생이 될 거야!’그런 생각들을 한 뒤 공수이는 곧바로 똑똑하게 말했다.“공주님, 틀리셨어요. 우리 형님 곁에는 비록 미녀들이 아주 많지만 우리 형님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공주님인 것 같아요!”‘뭐라고?’“윤구주가 날 가장 좋아한다고?”이홍연의 아름다운 눈이 커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네, 맞아요! 공주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형님은 공주님을 굉장히 신경 쓰세요. 저번에 잠을 잘 때 공주님의 이름을 중얼거리기도 했거든요. 심지어 저희에게 앞으로 공주님이 형수님이 될 거라고 말했어요!”공수이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지어냈다.형수님이라는 호칭을 처음 듣게 된 이홍연은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동시에 꿀을 잔뜩 먹은 것처럼 달콤한 느낌이 마음속을 꽉 채웠다.“진짜? 윤구주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이홍연은 아주 기쁜 얼굴로 물었다.“네!”공수이는 아주 적극적으로 대답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해 말했다.“그 외에도 형님은 공주님이 자기 소꿉친구라고, 둘도 없는 존재라고 했어요! 참, 그리고 형님은 공주님에게 사랑의 증표를 전달하라고 했어요!”이홍연은 그 순간 깜짝 놀랐다.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흥분해서 말했다.“사랑의 증표도 있다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공주님, 전 출가한 사람이에요.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제가 왜 공주님을 속이겠어요? 잠시만요. 지금 당장 사랑의 증표를 건네줄게요!”공수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서둘러 자신의 백보 가방을 뒤졌다.그는 안에 손을 넣고 한참을 휘적였고 잠시 뒤 수정 반지 하나를 안에서 꺼냈다.“공주님, 받
황실의 여섯째 공주는 공수이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뒤 마음속 그늘이 전부 사라졌다.그녀는 아주 기쁘고 또 행복했다.윤구주가 자신을 무척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에 기뻤고, 윤구주가 자신에게 사랑의 증표까지 주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공수이가 이홍연을 속이고 있을 때 정태웅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달려왔다.“수이 동생, 공주님과 무슨 얘기를 나눈 거야?”공수이는 즐거움 가득한 얼굴의 이홍연을 바라보면서 깊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우리 형님을 살짝 도와준 것뿐이에요.”“도와줬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정태웅은 아리송했고 공수이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응? 수이 동생, 공주님이 들고 있는 반지, 전에 수이 동생이 말했던 그 물건을 저장할 수 있는 수납 반지 아냐? 그걸 왜 공주님에게 준 거야? 젠장, 나한테 주겠다고 약속했었잖아!”정태웅은 이때 갑자기 이홍연이 들고 있는 반지를 보았다.“쉿! 어서 조용히 해요!”정태웅의 말을 들은 공수이는 서둘러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왜? 아니야?”정태웅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태였다.공수이는 서둘러 정태웅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 말했다.“형님은 몰라요. 제가 저 수납 반지를 공주님에게 드린 건 전부 구주 형님을 위해서예요!”“응? 그게 무슨 뜻이야?”정태웅은 계속 물었다.공수이는 조금 전 이홍연에게 거짓말을 한 사실을 전부 털어놓았고 정태웅은 공수이의 말을 듣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에 있는 천진난만해 보이는 꼬마 스님을 보더니 그의 어깨를 힘껏 두드렸다.“세상에, 수이 동생. 수이 동생 정말 엄청난 인재였네! 그런 방법이 있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대단해! 진짜 대단해!”공수이는 칭찬을 받게 되자 헤실헤실 웃었다.“수이 동생 덕분에 앞으로 공주님은 우리 저하를 귀찮게 하지 않겠어!”정태웅은 고개를 돌려 다른 쪽에서 기뻐하고 있는 이홍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먼 곳, 이홍연은 기쁜 얼굴로 수납 반지를 들고 있다가 그것을 왼손
윤구주가 돌아왔다.윤구주가 돌아오자 윤구주의 형제들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서 외쳤다.“저하!”윤구주는 주위를 쭉 둘러보더니 염수천에게 물었다.“다 처리했어?”“저하, 세가의 잔당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염수천이 말했다.“그래.”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저하, 이 세가들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염수천은 갑자기 배씨 일가, 반씨 일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옆에 있던 배씨 일가, 반씨 일가 사람들은 처리라는 말을 듣고 하나같이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려서는 두려움에 찬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가 죽이라고 할까 봐 두려운 듯했다. 윤구주가 죽이라고 한다면 그들 모두 오늘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될 테니 말이다.윤구주는 배씨 일가, 반씨 일가 사람들을 싸늘한 시선을 바라보더니 그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배씨 일가, 반씨 일가 사람들은 윤구주가 다가오자 다들 겁을 먹고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저하, 살려주십시오! 저희 배씨 일가는 저하의 심기를 건드린 적이 없습니다!”배도찬은 윤구주가 조금씩 다가오자 겁먹은 얼굴로 저도 모르게 말했다.“맞습니다, 저하! 저희 반씨 일가도 저하의 심기를 거스른 적이 없습니다!”반씨 일가의 노인 한 명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윤구주는 두 가문 사람들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멈춰 서더니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당신들 말대로 당신들은 오늘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어. 만약 내 심기를 건드렸다면 당신들은 이미 시체가 되었겠지.”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오늘 당신들을 한 번 살려줄 수는 있어. 하지만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내가 직접 당신들을 죽여서 배씨 일가와 반씨 일가를 멸문시킬 거야!”윤구주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저하, 살려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오늘 이후로 저희 두 가문은 저하께 충성을 바칠 것이고 절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배씨 일가, 반씨 일가 사람들은 입장을
뭇 형제는 윤구주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금위군 통령인 염수천은 이해하였다! 윤구주는 화진 제일 인왕이자 화진의 구주 전신으로 불리고 있다! 이 칭호에 걸맞게 그는 나라를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하기에 그는 자신이 이용당하는 한 자루의 칼이 될지라도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필경 그는 화진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진사람이기에! “슬기로운 왕이시여! 의리 있는 왕이시여!” 염수천은 공경스럽게 윤구주를 향해 큰절하였다. 이건 염수천이 윤구주를 향한 경의뿐만 아니라, 화진 국주의 윤구주에 대한 감정을 담은 절이었다. “구주야, 무슨 얘기 하고 있어?” 분위기가 점점 엄숙해지고 있을 무렵 이홍연이 갑자기 다가왔다. 윤구주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얼굴에 기쁨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아무것도! 그저 염수천 통령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지.” 윤구주는 이홍연이 조정의 싸움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그렇구나!” “구주야! 나 이제 화 풀렸어! 그리고 너의 선물 고마워!” 이홍연이 살짝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화? 선물?” 윤구주는 살짝 어안이 벙벙했다. 이홍연은 가늘고 곧은 손을 뻗어 윤구주한테 이리저리 흔들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 선물 무척 마음에 들어! 그래서 인제 그만 널 용서해 주려고!” 말을 마친 뒤 이홍연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하지만 남겨진 윤구주는 얼빠진 얼굴로 서 있었다! 방금 이홍연이 말하며 흔들던 손위의 반짝이던 물건은 아무리 봐도 반지였다!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어이없어하였다. (헐? 쟤가 방금 뭐라 한 거야? 내가 언제 선물을 했다고 그러지? 게다가 그 선물이 반지라고?) 머릿속은 의혹함으로 가득하였지만, 이홍연이 기뻐하는 모습에 윤구주는 더는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노룡산에서의 전쟁이 이로써 끝났다. 윤구주는 앞으로의 뒤처리를 염수천한테 맡겼다. 금위군 통령으로서 이런 뒤처리는 식은 죽 먹기였기에 그도 긴말 안 하고
우뚝 솟은 황성 중 금란 대전 내에 9마리의 용이 수놓아져 있는 용포를 입은 늠름한 자태의 남자가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빨간색 관복 차림에 사모를 쓴 노인이 서 있었다. 하얀 피부에 수염 한 올 없는 이 노인이 바로 황성 제일 내시 총관 한진모이다! 용포를 입고 있는 남자는 바로 화진의 국주이다. “진모야, 노룡산의 일은 일단락되었느냐?” 국주의 목소리는 몹시 우렁찼다. 황성 내 제일 절정으로 불리는 내시 총관 한진모가 몸을 굽힌 채 웃으며 대답했다. “국주님께 아룁니다! 노룡산의 일은 이미 마무리되었습니다!” “국주님의 예상대로 제자백가는 배씨, 반씨 이 두 가문을 제외한 모든 가문이 저하에 의해 멸문당하였습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윤신우님도 노룡산에 계셨습니다!” “유명전의 제4명군도 해치웠습니다!” 늙은 내시는 모든 소식을 조금의 숨김도 없이 국주한테 일렀다! 하하하! 이 소식들을 들은 국주는 벌떡 일어서선 크게 웃었다! “좋구나! 좋아!” “역시 내 화진의 제일 전신이야, 나를 실망하게 하는 법이 없어!” 호탕하게 웃으며 이 말은 한 국주는 다시 말하였다.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으니, 앞으로 모든 것을 윤구주한테 맡겨야겠지!” “진모야, 그 어린놈이 앞으로 뭘 할 것 같으냐?” 국주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한진모가 황급히 머리를 절레절레 돌리며 말했다. “저는 아둔하여 잘 모르겠습니다!” 국주는 손을 등 뒤에 진채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예상한 것이 틀리지 않았다면 윤구주는 나를 찾으러 올 것이다!” “국주님을요?” “그래!” “내 예상대로라면 윤구주는 이미 나를 찾으러 오는 길에 있을 것이다!” 국주는 유유히 답했다. 한진모는 잠깐 멈칫하다 다시 말문을 열었다. “국주 님의 뜻은 이 모든 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까?”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끝이 웬 말이냐?” 국주의 말은 패기로 가득 차 넘쳤다. “내가 왜 헌원하우검을 윤구주한테 하사했는지 아느냐?” 한진모는 얼
“저하, 이 대답에 만족하십니까?” 황성 제일 절정인 한진모가 미소를 띠고 윤구주한테 물었다. 윤구주는 그 성지를 돌돌 말린 다음 품에 안고 머리를 들어 답했다. “만족한다!” “저하께서 만족하시다니 다행입니다!” “아 국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하라고 하셨습니다. 뒷감당은 국주님께서 맡으시겠다고!” 한진모는 말을 마친 뒤 항상 그래왔듯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윤구주는 머리를 들어 금란 대전을 바라보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국주님께 대신 감사함을 전해주거라!” 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몸을 돌려 떠났다. 한진모는 멀어지는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하 가시는 길이 무탈하기를 빕니다!” 그는 금란 대전 앞에서 윤구주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돌려 떠났다. 윤구주는 드디어 국주의 성지를 받았다. 성지는 간단했다. 그 안에 쓰여 있는 죽을 사자가 모든 것을 대표했다. 지금 이 순간 윤구주는 드디어 그가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있게 되었다.......황성 내 오른쪽은 내각 요지이다. 바로 내각의 여덟 장로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조정에서 내각 여덟 장로의 지위는 화진 우상 육도진과 맞먹었다. 화진에서 고관 귀족부터 노비 백성까지 내각의 여덟 장로의 손이 안 닿는 곳이 없었다. 그러하기에 이 여덟의 장로 모두 태사와 동급이었다. 은씨 저택 내엔 내각 여덟 장로의 우두머리인 은성구가 눈을 감은 채 폭신한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의 옆엔 야한 옷차림의 두 미인 궁녀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은 그의 다리에 앉은 채 여지를 그의 입에 넣어주었고 다른 한 명은 그의 머리를 마사지해 주고 있었다! 은성구는 올해로 70여 세의 고령이다. 하지만 그의 기력은 몹시 좋았다! 매일 밤 그는 2, 3명의 미녀와 함께 잠자리에 들곤 하였다! 그의 이런 습관은 이미 30년간 지속되었다! 은성구가 나른해져서 풍월을 즐기고 있을 때 갑자기 신급 호위 한 명이 달려 들어왔다. “어르신,
이 말에 은성구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럴 리가?” “마씨 가문은? 그리고 6년 전의 세가 절정들은?” 은성구가 급히 물었다.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마씨 세가가 노룡산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노룡산에 간 세가 성원 중 반씨와 배씨 가문 이외에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호위의 말에 은성구 손안에 쥐어져 있던 방금 껍질을 벗긴 여지가 이리저리 흔들거리더니 결국 땅바닥에 떨어졌다. 은성구는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서는 온몸이 굳어졌다! 십여 초간 멍때리다가 그는 갑자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거짓말하지 마라!” “마씨 가문이 제자백가를 불러 모았고 6년 전 절정 강자들이 10여 명이나 되는데 그들이 아무리 미련하다 한들 어떻게 살아남은 이 하나 없을 수 있단 말이냐?” 은성구는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다 죽었다고? 마동한도 죽었어? 심지어 그 10여 명의 절정 강자들도 다 죽었다고?’은성구는 이런 결말을 한순간에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빠져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다 죽을 수 있지?” “혹시 황성의 국주가 손을 쓴 건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닙니다!” “전해져온 소식에 의하면 오직 한 사람이 죽인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윤구주 저하입니다!” 윤구주의 이름이 들려오자 은성구는 다리가 후들거려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원래 그들은 윤구주를 죽일 예정으로 판을 짠 것이었다. 그런데 역으로 윤구주한테 전부 살해당하다니! 윤구주를 떠올리니 두려움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은성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쓸모없는 녀석! 마동한 그 쓸모없는 녀석! 맘에 드는 놈 하나 없어!” 은성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기라도 한 듯 말하였다. “큰일 났네!” “혹여 윤구주 그놈이 내각의 명령패를 발견하기라도 했다면 내가 마씨 가문과 손잡은 것을 알게 된 거 아냐?” 은성구의 표정이 삽시에 변하였다! “빨리!” “모든 이한테 명령하거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