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뒤 화진의 국주는 고개를 들며 그윽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그 어린놈에게 희망을 걸었었다. 하지만... 운명을 피해 갈 수는 없었지. 왕권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16년 전의 그 억울한 사건을 저질렀어. 3대 서열이 궐기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 상황에서 나는 그놈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구나. 내가 나선다면 수십 년 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피로 바꿔온 이 태평성세가 한순간에 무너질 테니 말이다.”한진모는 그 말을 듣더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현명하십니다, 국주님!”“아니. 난 이미 한 번 잘못을 범했다. 더는 잘못을 저지를 수는 없어. 한진모, 윤구주에게 내 명을 전하도록 해. 그놈이 뭘 하든지 나는 언제나 그놈 편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이것을 전해줘.”국주는 말하면서 갑자기 고검을 꺼내서 한진모에게 건넸다.전설에 따르면 그 검은 신들이 황제를 위해 만든 검으로 황금빛을 띤 천 년 된 고검이었다. 검의 한쪽에는 일월성신이, 다른 한쪽에는 산천초목이 그려져 있었다.검 손잡이의 한쪽에는 농경과 가축 기르는 법이 쓰여 있고 다른 한쪽에는 천하를 통일하는 책략이 적혀 있었다.전설에 따르면 그 검은 무한한 힘을 품고 있고 요괴도, 마귀도 벨 수 있는 신검이라고 한다.그 검의 이름은 헌원하우검이었다.그 검은 날이 없었으나 황제도 벨 수 있고 백성도 벨 수 있었다.그 검을 든 자는 보고를 올리기 전에 사람을 벨 수 있는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다.그것이 바로 화진 최고의 제왕의 검이었다.국주가 이 제왕의 검을 윤구주에게 넘겨줄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명 받들겠습니다!”한진모는 두 손으로 정중하게 제왕의 검을 건네받은 뒤 조심스럽게 손에 들었다.황성 최고 실력자가 제왕의 검을 건네받자 국주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흐린 하늘을 바라보았다.“지금부터 살육이 시작되겠구나. 이번에 노룡산으로 간 세가가 총 몇 개인지 말해보거라.”국주가 갑자기 말했다.“국주님, 제가 아는 바로
“윤구주 이 빌어먹을 놈.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어. 왜?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주도, 말해 봐요. 왜 그 망할 놈은 내가 아니라 여자 연예인을 선택한 거죠? 내가 그 연예인보다 못해요?”이홍연은 눈물을 흘리면서 옆에 있는 주도에게 하소연했다.옆에 서 있던 주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그녀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남녀 간의 사랑 같은 것은 200살 넘는 주도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먼 이야기였다.“공주님, 그만 슬퍼하세요. 어쩌면 잠깐 머리가 어떻게 돼서 그 연예인을 사랑하게 된 걸지도 모르죠. 제가 보기에 윤구주는 언제가 공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돌아올 겁니다.”그러나 이홍연은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아뇨. 난 윤구주가 돌아오는 걸 원하지 않아요. 난 윤구주가 미워요! 미워 죽겠어요! 난 윤구주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윤구주를 죽여버려야만 내 한이 풀린다고요!”공주의 말을 들은 주도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역시 여자는 건드리면 안 된다니까. 얻지 못하면 죽이려고 하다니, 정말 무시무시하네.’주도는 비록 그렇게 생각했지만 절대 그런 얘기를 입에 담지는 않았다.이홍연이 슬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밖에서 시종이 달려왔다.“공주님, 내각대학사 은성구 어르신께서 뵙기를 청합니다!”슬퍼하고 있던 이홍연은 곧바로 말했다.“안 만날 거야. 꺼지라고 해.”시종은 이홍연이 슬퍼한다는 걸 알고 감히 그녀를 방해할 수는 없어 곧바로 대답했다.“네!”시종이 물러나려는데 이홍연이 갑자기 말했다.“잠깐! 조금 전에 내각대학사 은성구 어르신이라고 했어?”“그렇습니다, 공주님!”시종은 황급히 대답했다.이홍연은 내각과 윤구주 사이에 깊은 갈등이 있다는 걸 알았다.게다가 저번에 태화루에서도 모순이 있었다.윤구주는 공공연히 내각 여덟 장로 중 한 명인 지안수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그래서 내각의 은성구가 그녀를 만나러 왔다고 하는 말을 들은 이홍연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들어오라고 해!”시종은
내각대학사의 말을 들은 이홍연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였다.“그걸 어떻게 안 거죠?”“무심결에 들은 얘기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은성구는 서둘러 말했다.이홍연은 사실 내각 여덟 장로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저번에 태화루에서도 만약 윤구주에게 상처를 받지 않았더라면 절대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이홍연은 윤구주가 죽도록 미웠다.특히 윤구주가 그 여자 연예인과 알콩달콩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은성구가 윤구주를 언급하자 이홍연은 곧바로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흥! 윤구주 그 망할 놈이 제게 상처를 줬다는 걸 안다고 했죠? 그렇다면 그 자식을 죽여줄래요? 그래야 제 화가 풀릴 것 같은데.”은성구가 말했다.“공주님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죽이겠습니다!”“그래요? 그건 윤구주를 죽일 생각이 있단 말인가요? 하지만 제가 아는 바로 내각의 여덟 장로에게는 그럴만한 실력이 없을 텐데요?”이홍연의 조롱에도 은성구는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말했다.“공주님, 맞는 말씀입니다. 저희 여덟 장로만 나선다면 윤구주를 죽일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제 곁의 마동한 도련님이 나서준다면 아마 가능할지도 모릅니다.”“누구라고요?”이홍연은 당황했다.이때 마동한이 갑자기 은성구의 옆에서 걸어 나왔다.“제자백가 중 마씨 일가의 후손 마동한, 공주님을 뵙습니다.”남다른 분위기를 지닌 마동한이 이홍연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제자백가요? 세가 사람인가요?”이홍연의 시선이 마동한에게로 향했다.“그렇습니다.”마동한이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마동한을 본 이홍연은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화진 무도의 3대 서열은 문벌, 세가, 종문으로 이루어졌고 그중 제자백가는 세가를 대표했다.제자백가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고 수많은 제자를 두고 있었으며 조정에서 활동하며 혼란에 빠졌던 시대에 세상을 평정할 수 있는 계략을 내놓았었다.그중 마씨 일가는 기관술로 굉장히 유명했고 제자백가
옆에 있던 주도는 이홍연이 마씨 일가와 손을 잡고 윤구주를 죽이겠다고 하자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어쩔 수 없었다.세상 무서울 게 없는 여섯째 공주는 한 번 이성을 잃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주도는 고개를 들어 이홍연에게 말을 건네던 마씨 일가의 후손 마동한을 바라보았다.“음?”주도는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마동한을 유심히 살펴보았다.곧 옅은 자줏빛의 빛줄기가 그의 동공에서 쏘아져서 마동한의 몸을 감쌌다.빛줄기를 통해 보이는 건 마동한의 몸에 붙어있는 검은 인영이었다.검은 인영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영혼 같기도, 그림자 같기도 했다.“소문에 따르면 제자백가의 뛰어난 인재들 곁에는 호위자가 있다던데. 저 자식이 그렇게 건방진 이유가 있었어.”주도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그렇게 이홍연과 연합한 뒤 마동한과 은성구는 공주저를 떠났다.그들이 떠나자 주도는 그제야 이홍연의 곁으로 다가갔다.“공주님, 설마 정말로 저들과 연합하여 그 이상한 놈을 상대할 생각입니까?”그가 말한 이상한 놈은 바로 윤구주였다.“당연하죠. 그 망할 놈이 절 배신하고 제게 상처를 줬잖아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 자식을 용서할 수 있겠어요?”이홍연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휴, 하지만 윤구주를 죽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공주님,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조금 전 그 마동한이라는 놈은 절대 좋은 놈이 아닙니다. 그들과 연합했다는 사실을 국주님과 희빈마마에게 들킨다면 호되게 혼나실 겁니다!”주도는 이홍연을 설득하려고 했다.그러나 단단히 화가 난 이홍연이 그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상관없어요! 전 윤구주가 후회하기를 바라요. 그래야만 분이 풀릴 것 같다고요!”이홍연이 그렇게 말하자 주도는 어이없었다.그는 눈앞의 이홍연 때문에 일이 더욱 수습하기 힘들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주도는 실눈을 뜨면서 고개를 살짝 들더니 중얼거렸다.“세가 연합? 나마저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은설아는 윤구주를 따른 뒤로부터 윤구주의 일상생활을 책임졌다.이러한 상황이 윤구주는 익숙하지 않았다.그는 은설아를 곁에 두고 지켜주면서 유명전의 놈들에게 빼앗기지 않게 그녀의 영음지체를 돌봐줄 생각이었다.그런데 은설아는 마치 여자 친구처럼 그를 돌봐주면서 그의 곁을 지켰다.“구주 씨, 삼계탕을 끓였는데 좀 먹어봐요...”“구주 씨, 옷 씻을 거 있어요? 제가 씻어줄까요?”“구주 씨, 힘들어요? 제가 어깨 주물러 줄까요?”은설아의 적극적인 태도에 윤구주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설아 씨, 사실 이러지 않아도 돼요. 오늘부터 설아 씨에게 법문을 가르쳐줄게요. 일단 먼저 수련해 봐요. 어때요?”윤구주는 은설아를 피하고자 수련이라는 핑계를 댔다.“수련이요? 하지만 전 예전에 수련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는걸요. 수이 씨 말을 들어 보니 수련을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기초를 다지는 게 좋다면서요? 전 이미 나이도 있는데 지금 수련하는 건 너무 늦지 않을까요?”은설아는 아름다운 눈망울을 깜빡이면서 윤구주에게 물었다.“일반인이었다면 이 나이에 수련하는 건 많이 늦었죠. 하지만 설아 씨는 수련에 적절한 영음지체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이제 눈을 감아요. 제가 정명결을 가르쳐줄게요. 정명결로 몸도, 기운도 단련할 수 있어요. 지금 단계에 수련하기에 딱 좋죠.”윤구주의 말을 들은 은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구주 씨 말대로 할게요!”말을 마친 뒤 은설아는 눈을 감았다.그녀가 눈을 감은 순간 윤구주는 손을 들어 그녀의 미간을 콕 찔렀고, 그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빛줄기가 은설아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잠시 뒤, 은설아의 머릿속에 마음을 수련하는 글들이 빽빽이 나타났다.그것 외에 그림도 있었다.그 그림들은 마치 영화처럼 플레이되면서 그녀의 머릿속에 조금씩 떠올랐다.머릿속에 나타난 장면들을 본 은설아는 매우 흥분했다.“구주 씨, 제 머릿속에 글과 그림들이 나타났어요. 정말 너무 신기해요!”윤구주는 웃었다.“신기해할 거
동시에 윤구주는 유명전에 갇혀 있는 그의 형제 청룡을 찾아야 했다.청룡을 떠올리자 무시무시한 살기가 윤구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유명전! 100년 전 곤륜은 유명전을 완전히 처단하지 않았지. 이번에야말로 너희를 뿌리 뽑아주겠어. 전부 죽여주도록 하지!”시간은 빠르게 흘렀다.유명전이 모습을 드러낸 뒤로 민규현, 정태웅, 천현수 등 암부 구성원들은 유명전의 행방을 찾는 일을 전담했다.마당에는 꼬맹이 남궁서준이 하루 종일 바위처럼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수련하고 있었다.꼬맹이는 겨우 14살이었다.그러나 그의 기운은 아무도 얕볼 수 없었다.마당 안에서 남궁 서준은 가부좌를 틀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보이지 않는 검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파리 한 마리가 그의 곁을 날아가다가 슉 소리와 함께 검기에 의해 가루가 되었다.“세상에, 정말 대단한 꼬맹이란 말이야. 저 검기를 봐. 곤륜에 있는, 천재라고 불리는 그 자식들보다 더 강하다니까. 몇 년 더 흐르면 검선이 되겠어.”옆에 있던 공수이가 중얼거리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남궁서준을 바라보았다.그는 남궁서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에게로 다가갔다.“또 수련하고 있는 거야?”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남궁서준은 방해를 받게 되자 싸늘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그쪽이랑 뭔 상관인데요?”“쳇, 난 그냥 좋은 마음으로 물어본 것뿐인데 왜 그렇게 날을 세워?”공수이는 짜증 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별일 없으면 비켜요. 남 수련하는 거 방해하지 말고.”남궁서준은 쌀쌀맞게 대꾸한 뒤 다시 눈을 감았다.공수이는 화가 치밀었다. 그는 윤구주만 아니었어도 절대 남궁서준을 가만두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다.공수이는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혹시 나한테 무슨 불만이 있는 거야? 아니면 날 질투하는 거야?”“흥, 질투라뇨? 내가 왜 그쪽으로 질투해요?”남궁서준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면서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연히 나랑 구주 형님의 사이를 질투하는 거겠지. 태웅 형님 말을 들어보
공수이도 수인을 맺었고 쿵 소리와 함께 그의 미간에 ‘卍'’ 문양이 나타났다.그 문양이 나타나자마자 아주 거대한 금빛 방패가 마당 전체를 뒤덮었다.그것은 불가의 금강 법이었다.그 금강 법은 일반적인 금강 법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했다.남궁서준의 날뛰는 검기들이 공수이의 금강 법 위로 사정없이 떨어지면서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공수이의 금강 법을 파괴할 수는 없었다.“해봐. 계속 공격하라고. 날 어떻게 벨 건지 궁금하네!”공수이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금강 법 안에 서서 남궁서준을 자극했다.하얗던 얼굴이 빨갛게 될 정도로 화가 난 남궁서준은 완전히 폭발했다.그는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금지술, 칠성!”금지술을 시전하자 아주 강력한 검붉은색의 기운이 남궁서준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졌다.조금 전까지 화창하던 하늘은 남궁서준이 금지술 칠성을 시전하자마자 밤처럼 어두워졌다.하능릉 올려다보니 7개의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별빛이 나타나자마자 기괴한 검붉은색의 무시무시한 에너지들이 남궁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음? 화진의 금지술을 할 줄 안다고? 대단한걸? 그 금지술 우리 구주 형님이 가르쳐준 거지? 젠장, 구주 형님 너무 편애하는 거 아냐? 왜 나한테는 이런 금지술을 가르쳐주지 않은 거지?”공수이는 계속해 자극했고 남궁서준은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금지술을 시전하는 순간 그의 몸은 온통 검붉은색으로 변했다.특히 그의 두 눈은 완전히 피에 굶주려 있었다.“금지술, 북두칠성 참격!”남궁서준의 목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검붉은색 기운들이 하늘 높이 치솟으며 7개의 빛줄기가 되었다. 그 7개의 빛줄기는 하늘에 나타난 7개의 별과 맞닿았고 남궁서준은 곧 날아올라서 7명이 되었다.7개의 환영이 하늘에 나타나서 북두칠성 진형을 이루었고, 그들은 곧 하늘에서 내려와 공수이를 공격했다. 남궁서준이 시전한 금지술 칠성을 본 공수이는 더는 비웃지 못하고 합장했다.“금강호!”금강 법은 그 목소리와 함께 반짝이기 시작하더니
“그리고 너!”윤구주는 갑자기 싸늘한 시선으로 공수이를 노려보았고 공수이는 겁을 먹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윤구주는 다짜고짜 공수이의 빡빡 민 머리에 힘껏 꿀밤을 먹였다.“이 자식, 왜 쓸데없이 내 동생을 건드리고 난리야? 또 한 번 내 동생을 건드린다면 바닥에 눌러놓고 흠씬 두들겨 팰 줄 알아!”윤구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꿀밤을 맞은 공수이는 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서둘러 말했다.“형님, 잘못했어요. 그만 때리세요. 형님에게 맞아서 더 멍청해지면 어떡해요?”“쌤통이다!”윤구주는 당연히 두 사람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두 사람을 제대로 혼내지 않는다면 앞으로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불쌍하게도 두 사람은 윤구주에게 혼난 뒤 전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됐어. 너희 둘은 먼저 물러나. 귀한 손님이 오셨거든.”윤구주가 갑자기 시선을 들면서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귀한 손님이요? 어디요?”공수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이미 왔어.”윤구주는 고개를 들었다.윤구주가 말을 마치자마자 관모를 쓰고 환관 옷을 입은 수염 없는 남자가 마당 입구에 섰다.“한진모 구주왕을 뵙습니다. 기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하지만 너른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황성 최고 실력자 한진모가 갑자기 이곳으로 찾아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한진모가 도착한 뒤 제일 처음 입을 연 사람은 공수이였다.공수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눈앞의 한진모를 바라보았다.“세상에, 늙은 환관이네요. 언제 도착했대요? 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요!”’공수이는 경악했다.남궁서준은 한진모를 본 순간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무시무시한 검의를 내뿜기 시작했다. 마치 큰 적을 앞에 둔 사람처럼 말이다.황성 최고 실력자라고 불리는 한진모는 두 사람을 보고 슬쩍 웃을 뿐이었다.“한진모, 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지?”윤구주는 황성 최고 실력자 한진모를 보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저하, 저는 국주님의 명령을 받고 저하를 뵈러 온 것입
자신의 강한 기운만 믿고 있던 손형재는 누구도 안중에 없었다.“이 사람들은 누군데 작은 주인님을 해하려 하는 것일까요?”철영이 주먹을 불끈 쥐며 묻자, 천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온 것으로 보아 호락호락한 놈들은 아닌 것 같아요.”천현수의 말을 듣고 있던 철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쾅!바로 그 순간, 우레와 같은 폭발음과 함께 맨손으로 덤볐던 절정이 민규현의 호마권에 맞고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했다.그의 몸이 뒤로 젖혀지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칼을 사용하던 절정도 버티기 힘들어하긴 마찬가지였다.이 절정은 검을 휘두르는 검술만 쓰다 보니 온몸에 호마의 기운이 가득한 민규현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다.그의 허점이 드러나는 순간, 민규현은 재빨리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세게 쳤다.이 절정도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두 절정이 민규현의 상대가 전혀 아닌 것을 확인한 변만산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함께 덤벼서 저 자들을 죽여버리자.”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주위에 있던 3명의 절정이 공격 태세를 갖췄다.번개 같은 힘을 가진 변만산이 긴 창으로 허공을 가로지르며 민규현을 향해 달려갔지만,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민규현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오히려 그의 뒤에 있던 호영이 점점 더 난폭해지기 시작했다.절정에 발을 들인 후부터 그의 호마는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호영이 울부짖는 소리와‘펑펑’하는 소리가 나며 민규현은 6명의 절정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그러던 중, 이들의 싸움을 한참 지켜보고 있던 현문 도자가 불쑥 입을 열었다.“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들! 삼중천 절정조차도 못 이기면 어떡해? 그야말로 세가의 수치야!”이 현문 도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힘차게 한 발짝 내디뎠다.쿵쿵!땅이 심하게 흔들리며 검은 현기가 이 도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손형재가 손을 들어 올리자, 먹물 같은 검은 현기가 순식간에 검은 대검으로 변하더니 무지개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민규현을 향해 날
두 사람이 괜찮다는 말을 듣고서야 민규현은 고개 들어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세가 절정과 현문 도자를 쏘아보았다.이때 장원 안에 있던 천현수, 철영, 은설아도 함께 밖으로 뛰쳐나왔다.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재이와 용민을 보더니 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너희들은 누구야? 어디서 감히 행패야?”건장한 체격을 가진 민규현이 호마 기운을 뿜어내며 소리쳤다.뒤에 있던 위압적인 호랑이 그림자는 그를 더욱 난폭해 보이게 만들었다.“암부 3대 지휘자인 호존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 이렇게 만날 줄이야!”이때 세가 쪽에서는 변씨 성의 노인이 나섰다.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민규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 노인을 흘끗 쳐다봤다.“너도 세가 출신이냐?”“지휘사라 그런지 보는 안목이 있네. 난 서남 세가인 변만산이야.”상대방이 세가 출신이라는 말에 민규현의 얼굴이 싸늘해졌다.민규현의 뒤에 있던 천현수와 은설아도 마찬가지로 안색이 어두워졌다.노룡산 전투 이후 제자백가의 그 누구도 감히 행패 부릴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서남 세가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이 변씨 성을 가진 절정이 제자백가가 아닌 다른 세가 출신이 분명했다.“빌어먹을! 서남 세가마저 구주왕을 찾으러 왔다고?”민규현이 직설적으로 말하자, 변만산이 웃었다.“민 지휘사의 말이 맞아. 구주왕이 문벌과 세가에 진 빚을 내가 갚아주러 왔어.”“너희 같은 오합지졸들이 구주왕을 상대하겠다고?”민규현이 거칠게 소리쳤다.“당연하지. 하지만 우리는 구주왕에게 복수하러 왔을 뿐 암부와 척지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 구주왕을 어서 나오라 해.”변만산이 말했다.“하하하!”민규현은 갑자기 크게 웃었다.“쓰레기 같은 놈들이 망발을 잘도 지껄여대는구나.”그의 뒤에 떠 있던 청색 호영이 울부짖자, 민규현의 온몸에서 호마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민 지휘사가 기어코 막겠다면 어쩔 수 없지.”변만산이 눈빛이 차가워졌다.“죽여버려!”그의 말에 아까부터 벼르고 있던 2명의 절정이 나섰다.이들 6명의 절
“빌어먹을! 절정이라니!”용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재이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당신들 누구야? 어딜 감히 침범해?”용민이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우리는 구주왕을 찾고 있으니 싸우기 싫으면 썩 비켜! 그러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야.”손형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뭐라? 작은 주인님을 찾는다고?”용민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손형재와 그의 뒤에 있는 절정들을 쏘아보았다.“잘못 찾아왔네. 작은 주인님은 이곳에 없어.”용민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손형재의 뒤에 있던 1명의 세가 절정이 코웃음을 쳤다.“말이 많구나!”이 절정은 말하자마자 번개처럼 빠르게 용민을 향해 달려갔다.용민은 비록 실력이 있다고는 하나 신급 수준에 불과했다.이 세가 절정의 공격에 그는 황급히 두 손바닥을 모으더니 온몸의 힘을 손에 집중시킨 후 절정을 향해 공격했다.하지만 그가 손바닥으로 절정을 치려는 순간 그 절정도 손바닥을 내밀며 맞받아쳤다.펑!두 손바닥이 마주치자, 용민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뒤로 십여 미터 튕겨 나갔다.그리고 땅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용민 씨! 괜찮나요?”튕겨 나간 용민이를 본 재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난… 난 괜찮으니 어서 규현에게 가서 이 상황을 알려.”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용민은 바닥에서 일어났다.“곧 황천길로 갈 텐데 뭔 발악이야?”독수리 눈을 가진 세가 절정이 말을 내뱉자마자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2개의 장영을 발산하며 용민에게 일격을 가하려고 했다.그 모습을 본 재이가 장영을 막으려고 긴 채찍을 휘두르며 달려갔다.“제 주제를 모르나 보네.”장영이 재이가 들고 있던 긴 채찍을 휘감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펑’하는 소리와 함께 재이 역시도 절정의 힘에 밀려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죽여주마.”독수리 눈을 가진 이 세가 절정은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재이와 용민이에게 상처를 입힌 것도 모자라 살기 어린 눈빛으로 두 사람에게 일격 가할 준비를 하고 있
문아름의 설득에 손형재는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그러면 아름 씨의 청을 받아들여 이 자들을 데려가도록 할게요.”손형재의 말에 얼굴에 미소가 번진 문아름은 6명의 절정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어서 도자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도자님, 감사합니다.”말을 마친 6명의 세가 절정은 손형재의 뒤에 다가갔다.“구주야, 네가 이번에 어떻게 죽는지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볼 거야.”손형재는 눈빛에는 살의가 가득했다.문아름이 떠나자, 현문의 장로인 구진철이 다급히 물었다“형재 씨, 정말로 저 화진의 구주왕을 죽일 생각인가요?”“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손형재가 말했다.“형재 씨의 생각이 짧은 것 같아서요. 문씨 세가의 목적은 오직 형재 씨를 이용하려는 것이에요. 그리고 다른 종문이 아직 나서지 않고 있는 마당에 우리 현문만 나서는 것이 이 늙은이는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드네요.”구진철이 계속해서 충고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말을 손형재는 전혀 듣지 않았다.“구 장로님이 지나친 걱정을 하는 것 같아요. 3대 서열 중의 1순위인 우리 현문이 하찮은 구주왕조차도 없애지 못한다면 어찌 종문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단 말입니까?”“도자님…”구진철이 또다시 그를 설득하려 하였으나 손형재의 얼굴에는 이미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그만하세요. 저는 이리 하기로 정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세요. 장로님이 저와 함께하기 싫다면 산으로 돌아가든지.”말을 마친 후, 손형재는 구진철을 무시하고 밖으로 향해 걸어갔다.제멋대로 행동하는 손형재를 보며 구진철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서울의 외곽.정태웅이 공수이를 데리고 떠난 후, 장원에는 용민, 철영, 재이, 그리고 은설아, 민규현, 천현수 등이 남았다.장원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용민이 재이에게 말했다.“재이야, 작은 주인님의 소식은 아직 없는 거냐?”그의 입에서 나온 작은 주인님이란 윤구주를 말하는 것이었다.윤신우가 손수 키웠던 3명 사사의 목숨이 윤신우가 준 것이니 윤구주에게 충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오만방자한 손형재가 절대로 용납할 리 없었다.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더욱 그러했다.“몰락한 왕인 주제에 오만하기 짝이 없네요. 제가 그의 목을 베서 아름 씨의 원한을 풀어드릴 것이니 안심하세요.”살기 가득한 눈빛을 한 손형재의 말을 들은 문아름은 자신의 계략이 먹혔다는 걸 알아챘다.윤구주를 처리하기 위해 종문이 나서준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을 무도 3대 서열의 종문 두목인 그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마워요. 만약 도자님이 정말로 미쳐 날뛰는 구주를 없애준다면 저희 문씨 세가는 도자님의 은혜를 잊지 못할 겁니다.”문아름이 말했다.“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그가 어디 있는지 안다면 지금 당장 미친 구주에게 달려가 그의 모가지를 따겠는데.”살기 어린 눈빛으로 보아 손형재가 정말로 윤구주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 문아름은 생각했다.“구주가 어디 있는지 제가 알아요.”문아름이 갑자기 말했다.“어디 있는데요?”손형재가 서둘러 그녀에게 물었다.“서울 외곽에 있는 그의 어머님 댁에 있어요.”윤구주의 개인정보를 문아름은 손형재에게 알려주었다.“그 미친놈이 어디 있는 것을 알았으니, 그의 명도 여기까지인가 보구나. 아름 씨,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 그를 죽이러 가겠어요.”이 현문 도자가 정말로 윤구주를 죽이려는 하자, 문아름이 말했다.“도자님, 잠깐만요!”“왜요?”손형재가 뒤돌아보며 물었다.“구주가 당시 수련한 봉왕팔기로 천하를 제압했잖아요. 혼자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만약을 대비해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소개해 드릴 게요.”문아름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너희들도 이제 나와.”그네의 말에 절정의 기운이 감도는 6명의 강자가 갑자기 지하 궁전에 나타났다.이 6명의 리더는 검은 머리와 흰머리가 반반인 노인이었다.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있던 노인의 주름투성이 얼굴에는 희끄무레한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노인의 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절정 강자들이었다.“형재 씨를 만나 뵙게
손형재가 차갑게 웃었다.“무슨 일이 있어도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된다고 이 늙은이는 생각합니다. 또한 6대종문이 의논을 거친 후에 움직이라고 회장님께서 저에게 신신당부도 했고요.”구진철의 말에 손형재는 콧방귀를 뀌었다.“또 6대종문. 천 년이나 더 된 우리 종문은 왜 단독으로 일 처리를 못하고 매번 다른 종문들과 논의해야 하는 겁니까?”구진철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갑자기 현문 제자가 뛰어왔다.“도자님, 밖에 도자님을 뵈러 온 분이 계세요.”“누군데?”손형재가 물었다.“문씨 세가의 문아름 씨요.”문아름이라는 말에 손형재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그녀가 나를 찾아왔다고? 어서 들여보내.”“네!”현문 제자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봉황관을 쓴 절세미인 문아름이 들어왔다.마치 천하를 호령하는 고대의 황후 같았지만,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손형재를 향해 예의를 갖췄다.“아름이 도자님을 뵙습니다.”문아름을 보자마자 손형재는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아름 씨, 너무 예를 차리실 필요 없어요.”“아니에요. 도자님은 하늘이 내리신 현문의 미래니 당연히 예를 갖춰야죠.”문아름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만하기 짝이 없던 손형재가 이런 말을 들었으니, 입이 귀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아름 씨가 어인 일로 예까지 발걸음하셨는지?”손형재가 물었다.“당연히 그 윤 씨 성을 가진 사람 때문이죠.”문아름은 천천히 말했다.“윤 씨요? 혹시 백성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은 그 구주왕 말인가요?”손형재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네. 맞아요. 도자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와 구주는 혼인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녀는 억울한 듯 눈물을 흘렸다.문아름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본 현문 도자는 서둘러 그녀를 위로했다.“아름 씨, 어서 그 눈물을 거두세요. 혹시 그가 아름 씨를 괴롭혔나요?”“아니요. 저를 괴롭힌 적은 없지만 구주는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데다 고집불통이에요. 평생을 그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네 말이 틀리지는 않아. 하지만 종문이 우리 편에 서지 않을지도 몰라. 특히 만불종과 서요산 검종.”문창정은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았다.만불종은 영리하여 주도적으로 전쟁에 개입하는 일이 없었고, 화진에서 명성이 자자한 서요산 검종은 베일에 싸여있어서 문씨 세가조차도 그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문아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안심하세요. 화진에는 6대종문이 있어서 이 두 종문이 아니더라도 4개의 종문이 남아있어요. 특히 역사가 유구한 현문 회장인 창현진인은 이미 백 년 전에 절정 경지에 오른 인물이에요. 그래서 현문을 선봉으로 내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문아름의 말을 들은 문창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현문을 인간 방패로 쓰겠다는 말이냐?”“바로 그거예요. 할아버지께서도 현문 도자의 본성을 잘 알잖아요. 그를 최대한 이용해 먹어야죠.”현문 도자에 대해 말할 때 문아름의 얼굴에는 요염한 미소가 번졌다.손녀의 생각을 잘 알고 있던 문창정이 말했다.“한 번 시도해 볼만한 방법이긴 한데 현문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아. 특히 구씨 성을 가진 늙은 장로는 문무를 겸비하여 얕잡아보면 안 돼.”“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문아름이 말했다.“그래. 그러면 현문의 일은 너에게 맡길게.”문창정이 결론을 내렸다.…서울에 온 이후로 현문의 사람들은 문씨 세가의 지하 궁전에 머물고 있었다.이 순간, 십여 명 현문의 제자들이 화려한 거실 양쪽에 서 있었고, 가운데 벽화 앞에는 현문 도자인 손형재가 서 있었다.벽화에 그려진 인물은 다름 아닌 절세미인인 문아름이었다.선녀 같은 문아름을 바라보며 이 도자가 혼자서 중얼거렸다.“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인이 여기 있었네.”“콜록콜록.”이때 그의 옆에서 갑자기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형재 씨, 이 늙은이가 할 말이 있는데 말해도 될지 모르겠네요.”말을 꺼낸 사람은 손형재와 함께 산에서 내려온 현문 장로인 구진철이었다.“어서 말해보세요. 구 장로님.”시선을
한참 지나서야 민규현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종문이 움직인 것은 분명 저하 때문일 거야.”그 말에 천현수도 한마디 했다.“화진의 무도 3대 서열의 실력 차가 분명하다고 해도 어찌 됐든 같은 줄기에서 뻗어져 나온 것이잖아요. 종문이 움직인 것은 저하가 전에 노룡산에서 세가를 학살한 것이 누설되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현수야. 3개 종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라고 암부에 전해.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보고하라 하고.”민규현이 지시를 내렸다.“네!”…서울의 어느 숨겨진 지하 궁전, 절세미인인 문아름이 봉황관을 쓴 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문창정이었다.“할아버지.”“현문, 만불종, 칠수방 사람들이 모두 서울에 도착했어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문아름이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문창정을 바라보며 물었다.“서두를 것 없어. 6대종문이 모두 모인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아.”문창정이 차분하게 답했다.“하지만 서요산은 물론 천도궁과 자운각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요. 이들을 계속 기다려야 한단 말이에요? 제가 알기로는 구주가 설국을 수복한 이후 국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그리고 육도진도 태산에 갔고요. 아마 곧 큰 일이 터질 것 같아요.”문아름의 말에 문창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육도진이 태산에 갔다고?”“네.”“무슨 연유로?”문창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문아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황성 사람들이 비밀로 하고 있어서 무엇 때문에 갔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들 말로는 조만간 국주의 움직임이 있을 거래요. 하지만 그 사람 때문에 국주가 움직인 것은 확실해요.”‘그’라는 말에 문창정의 안색이 아까보다 더 어두워졌다.“할아버지. 만약 국주가 정말로 구주의 편을 든다면 저의 왕위가 온전치 못할 것 같아요.”문아름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놨다.‘하긴 화진의 왕으로서 위대한 업적이 없다면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긴 하
은설아는 마음속으로 윤구주를 존경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모하는 마음이 더 컸다.무예가 출중하다면 윤구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그녀가 그와의 실력 차를 줄이기 위해 열심히 수련한 것이었다.붉은 치마를 입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재이가 열심히 수련하는 은설아의 모습을 보고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설아 씨, 실력이 많이 늘었으니 인제 그만 쉬도록 하세요.”윤설아가 말했다.“괜찮아요. 아직 할만해요.”윤설아의 말에 재이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설아가 열심히도 수련하네. 내가 어렸을 때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수련하는 윤설아를 바라보며 용민이 혼자서 중얼거리자, 강철 몸을 가진 철영도 한마디 했다.“사랑 때문에 저 짓거리 하고 있는 거예요.”“뭣이라?”철영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용민은 어리둥절했다.한마디만 내뱉고 철영은 정원 밖을 빠져나왔다.“야! 이 자식아. 말하다 말고 어디 가? 사랑 때문이라니?”용민이 그를 뒤쫓아가며 물었다.은설아가 한창 수련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민규현과 천현수가 얘기를 나누며 방 안에서 나왔다.“이놈아, 수이 소식이 아직 없다고?”말을 꺼낸 사람은 민규현이었다.“없어요. 형님.”천현수가 답했다.“수이 때문에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민규현이 계속 말했다.“흑여산맥 쪽의 저하 소식은 없고?”“그쪽에서 보내온 소식통에 따르면 저하는 이미 그곳에서 떠났대요.”“그렇다면 서울로 돌아온다는 말이냐?”민규현이 서둘러 묻자, 천현수는 고개를 저었다.“그들의 말로는 서울 아니고 강성으로 갔대요.”“강성?”강성이란 말에 민규현은 어리둥절했다.“형님, 잊으셨어요? 형수님이 강성에 있잖아요.”천현수가 그에게 상기시켜 주자, 민규현은 자기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내가 이렇게 멍청하다니까. 맞아. 저하가 서울에 온 이후로 형수님을 본지가 꽤 되었으니, 강성에 가는 것도 이해는 되지.”“그건 그렇고 형님, 암부가 최근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대요.”천현수가 갑자기 화제를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