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이가 인터넷에 사진도 있고 춤추는 영상도 있다고 하니 정태웅은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도대체 어떻게 생긴 연예인인데 갓 곤륜 지역에서 올라온 공수이를 이렇게 홀딱 반하게 했는지 궁금했다.“얼른 찾아서 보여줘 봐. 내가 어떤지 봐줄게.”정태웅은 말하며 핸드폰을 꺼내 공수이에게 넘겨줬다.공수이는 핸드폰을 받고 은설아를 검색했다.은설아의 이름을 검색하니 은설아에 대한 소식이 떴다.아주 핫한 탑 연예인으로서 은설아의 모든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실시간 검색을 눌러보니 은설아에 관한 소식이 위에 있어서 공수이는 콘서트 영상을 아무거나 하나 눌렀다.“태웅이 형, 이 사람이에요!”공수이가 말하며 핸드폰을 정태웅에게 주자 정태웅은 흥분하며 핸드폰을 받아들었다.“보자.”“오올, 몸매 죽이는데!”영상을 찍은 사람이 좀 멀리 있어 정태웅은 은설아의 몸은 한눈에 알아봤으나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조금 뒤에 클로즈업한 화면에서 드디어 은설아의 예쁜 얼굴을 보게 됐다.“X발!”정태웅은 갑자기 욕을 했다.“왜 그러세요?”공수이는 정태웅이 심각하게 놀란 모습을 보고 물었다.정태웅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춤을 추고 있는 은설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확신을 한 다음 정태웅이 고개를 돌려 공수이에게 물었다.“수이야, 네가 좋아한다는 연예인이 이 사람이야?”“네! 무슨 문제 있어요?”공수이는 아리송했다.“이거 완전 큰 문제네!”정태웅이 갑자기 펄쩍 뛰었다.“무슨 문제인데요? 태웅 형!”공수이는 자신이 은설아를 좋아하는 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싶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너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알아요! 제가 그저께 구한 예쁜 누나예요! 이름은 은설아예요!”공수이가 말했다.“아니, 틀렸어! 이름이 은설아인 건 나도 알아! 내 뜻은 은설아 씨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냐는 거야!”정태웅이 말했다.누구를 좋아하는지 아냐는 말을 들은 공수이는 흠칫했다.“예쁜 누나요? 전 그저 나쁜 자식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누
윤구주의 방을 십여 초 동안 멍하니 보고 있던 공수이가 정신을 차리고 묻자 정태웅이 큰소리로 웃었다.“그러니까 예쁜 누나가 좋아하는 나쁜 자식이 바로 우리 형님이라는 거예요?”“빙고.”이 말을 듣자마자 공수이는 낯빛이 어두워졌고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크게 소리치는 공수이에 정태웅이 웃으며 말했다.“왜 불가능한데? 수이야, 은설아 씨는 널 알기 전에 이미 저하를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때는 서남에 있었을 때였는데 누가 봐도 은설아 씨는 저하를 아주 좋아했지만 저하는 형수님이 계셔서 단칼에 거절하셨지.”정태웅의 말을 듣고 공수이는 어리벙벙해 있었다.윤구주는 은설아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윤구주가 떠날 때 은설아가 그렇게 슬퍼했던 것인가?그래서 매번 나쁜 자식이라고 할 때마다 윤구주가 공수이의 딱밤을 때렸던 것인가?그렇게 된 일이었다니.그 공수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운이 없을 수 있어요? 어쩌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형님의 여자라니요? 아아아아! 창피해서 어떻게 살아요!”윤구주를 좋아하는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게 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수이는 머리를 박고 죽고 싶었다.어쨌거나 공수이와 윤구주는 차이가 매우 컸다.그리고 공수이는 윤구주에게서 여자를 뺏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아니, 그럴 엄두는 당연히 없었기에 그냥 속상하고 아픈 마음에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왜? 왜 그래?”그때 곤륜 지역에서 온 공수이가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는 것을 본 천현수가 달려와 물었다.“너 왜 수이를 울려?”천현수는 공수이가 우는 것을 보고 정태웅을 욕했다.“뭐라는 거야? 내가 왜 수이를 괴롭혀!”정태웅이 말에 천현수가 다시 물었다.“그럼 수이가 왜 이렇게 서럽게 우는데?”“실연해서 그러는 거야...”정태웅이 뒤돌아 슬프게 울고 있는 공수이를 보며 말했다.“실연?”천현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심지어 우리 저하 때문에 실연한 거라
“이건 서해 클럽의 여자야! 그리고 이 여자! 이 중에서 안 예쁜 여자가 어디 있어? 수이야, 내가 지금 널 데리고 체험하러 갈게! 뭐? 톱스타? 예쁜 누나? 그냥 돈만 있으면 네가 시키는 건 다 할 거야!”정태웅이 가슴팍을 치며 말하자 공수이는 듣자마자 눈을 반짝였다.“진짜예요? 태웅이 형?”“당연하지!”“좋아요! 태웅이 형, 지금 당장 체험하러 가요!”공수이가 정태웅에게 말했다.“지금? 이렇게 급하게?”“당연하죠! 제발요! 동생이 지금 슬퍼하고 있잖아요!”“그래, 가자! 나랑 같이 제대로 체험하러 가자고!”공수이의 말에 정태웅은 당장 공수이를 데리고 여자들의 따뜻한 품을 느끼러 갔다.이 두 사람이 떠난 지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방에서 나온 윤구주는 사라진 공수이와 정태웅에 천현수를 향해 물었다.“현수야, 태웅이 하고 수이는?”“저하, 태웅이가 수이를 데리고 클럽에 갔어요!”“뭐? 클럽?”윤구주가 이맛살을 찌푸렸다.“네! 수이가 실연 때문에 너무 슬퍼해서 위로해 주겠다고 하면서 태웅이가 데리고 나갔어요!”“하, 둘이 무슨 클럽이야!”...늦은 밤, 한 택시가 윤구주가 사는 곳 문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차가 멈추고 정태웅은 술에 취한 공수이를 데리고 내렸다.두 사람의 몸에서는 술 냄새가 심하게 났고 얼굴, 목 할 것 없이 보이는 곳에는 키스 마크가 가득했다.“태웅이 형, 술... 저 술 더 마실래요...”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고 있는 공수이는 완전히 취했지만 계속 술을 마시겠다고 했다.“수이야, 더 마시면 안 돼! 집에 도착했어! 저하께서 보시기라도 하면 우린 끝장이야!”정태웅은 공수이를 부축하며 휘청휘청 정원 안으로 들어왔다.정태웅은 얼른 공수이를 부축해서 침대에 눕혀 놓고 나서야 안심하고 방에서 나갔다.방 안에서는 몸이 술 냄새로 찌든 공수이가 알코올 향을 풍기며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이때 방안의 기운에 자그마한 파동이 일어나더니 한 노인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나타났다.자세히 보니 바로 공수이를 따라다니
말을 마친 장풍혁은 다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작은 별장 안방에서는 윤구주가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문 씨 세가의 기린 화독을 없애고 내가 다시 절정으로 회복한 뒤로 윤구주가 매일 밤 제일 많이 하는 것이 명상이다.그런데 윤구주가 명상하고 있을 때 공기 중에 갑자기 미묘한 파동이 일어났다.그에 윤구주는 눈을 뜨지도 않고 말했다.“오셨으면 나오세요.”말이 끝나자마자 요동치던 기운 사이에서 갑자기 흐릿한 사람 모습이 나타났다.바로 공씨 가문의 집사였다.“어떻게 날 느낀 거죠?”모습을 드러낸 장풍혁은 놀란 표정으로 윤구주를 쳐다봤다.장풍혁의 은신술은 오악, 육도인 최정상의 절전도 느껴내기 어려운데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바로 느낀 윤구주에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작 사상 절정밖에 안 되시면서 제 앞에서 기운을 숨기려 하시다니요? 절 너무 우습게 보신 거 아닌가요?”윤구주가 갑자기 눈을 뜨며 장풍혁을 쳐다보자 공씨 가문 절정 집사인 그도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 났다.그 압박감은 장풍혁은 순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공기는 점차 탁해졌고 장풍혁의 발아래에 있던 지면은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당신... 뭘 하려는 겁니까?”장풍혁은 무서워 나기 시작했다.장풍혁의 말에 윤구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당신은 제자백가, 공씨 가문의 사람인가요?”윤구주가 물으니 장풍혁이 대답했다.“네...”“수이를 보호하러 오신 건가요?”윤구주가 또 물었다.“네...”“수이를 봐서 오늘은 그저 보내드릴게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만약 다음에도 저를 건드리신다면 그땐 그냥 보내드리지 않을 겁니다.”윤구주는 이 말을 하고 다시 눈을 천천히 감았다.큰 산에 눌리고 있는 것 같았던 압박감이 윤구주가 눈을 감는 순간 사라지며 장풍혁의 몸은 다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장풍혁은 놀란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윤구주를 봤다. 만약 윤구주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면 저는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에 장풍혁은 바로 주제 파악을 하며
“만약 사실이라면 저하 조심하시는 게 좋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마가에서 이미 사람을 서울에 보냈다고 합니다. 마가의 사람만 온 게 아니고 제자백가의 예가, 배씨 가문, 그리고 다른 가문에서도 사람을 보내온다고 합니다. 아마도 저하를 찾아와 복수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장풍혁은 드디어 상황을 다 말했다.하지만 윤구주는 이 말을 듣고 헛웃음을 흘렸다.“날 찾아 복수를 한다고요? 그래요, 오라고 하세요.”윤구주는 이미 화진 3대 서열의 문벌을 정돈했는데 지금 또 다른 세가가 나왔다 한들 다 함께 처리해버리면 그만이었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곤륜에서 왕위에 오를 때 윤구주가 한 맹세는 그냥 거짓이 되어버리는 것이기에 윤구주는 어차피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다.눈앞에 있는 장풍혁은 윤구주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그럼 전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말을 마친 장풍혁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다.장풍혁이 사라지고 난 후 윤구주는 다시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윤구주가 문벌, 세가를 두려워할 사람인가?당시, 윤구주가 천하의 무술을 통치하고 화진의 3대 무술의 서열을 거의 붕괴시켜 화진 무술의 대일통을 성공시켰다.근데 지금 제자백가 따위가?윤구주는 마음에 담지도 않았다.다음날 윤구주가 방에서 나가자 정원 안에서는 남궁서준이 칼을 안은 자세로 검심을 단련하고 있었고 용민, 철영, 재이 등 사람은 정원 밖을 지키고 있었다.정원을 한번 쳐다본 윤구주는 이내 공수이의 방으로 갔다.어제 술을 많이 마신 공수이는 아직도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술 냄새가 심했고 얼굴에는 키스 마크로 가득했으며 전혀 스님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공수이를 쳐다보던 윤구주가 손가락을 들어 기운을 조금 움직여 공수이의 미간에 넣었다.“누구야?”그에 공수이가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형님? 왜 여기 계세요?”공수이는 윤구주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눈을 비비며 물었다.“어젯밤에는 재밌게 놀았어?”윤구주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공수이는
공수이가 잔뜩 억울한 얼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윤구주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난 그저 은스타님을 우연히 만났을 뿐이지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그럼 지금 형님의 말대로라면 예쁜 누나의 일방적인 생각이란 말입니까?”공수이가 얼굴을 들고 말했다.윤구주는 대답하지 않았다.제자백가의 공씨 가문 세자인 공수이가 총명하다는 사실은 더 말하면 입 아플 정도이다. 윤구주가 대답이 없는 것을 본 공수이는 곧바로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공수이는 손을 내밀어 윤구주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역시 우리 형님! 대단하십니다!”“미친 스님이 말하길 이 시대에 형님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만났다는 건 그야말로 천하의 재수 없는 일이라고 했죠!”꼬마 스님은 입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윤구주는 하하 큰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웃었다.이 말은 애초에 곤륜 구역에서 미친 스님 한 사람만이 한 말이 아니었다.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아무리 재주가 빼어난 하늘의 총애를 받은 이들이 오더라도 윤구주의 앞에서는 초라하기 그지없어지기 때문이다.이것은 그들의 비애인 동시에 공수이의 비애이기도 했다.하지만 공수이는 진짜로 화를 내진 않았다.다만 그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였다.“예쁜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이 형님이라면 저 공수이는 진심으로 탄복합니다!”“그런데 예쁜 누나는 몸매며 얼굴이며 인품까지 모두 완벽한데 형님은 왜 받아들이지 못하십니까? 만약 저라면 당장 예쁜 누나를 제 사람으로 만들고도 남았을 겁니다!”공수이는 잔뜩 옹졸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네가 알긴 뭘 알아!”“난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윤구주의 머릿속에는 소채은의 아름다운 자태가 떠올랐다.“부인이 생긴 겁니까? 누굽니까? 누군데 이렇게 행운인 겁니까?”공수이는 얼른 물었다.“그 사람은 소채은이라고 해.”윤구주가 대답했다.“소채은? 듣기에는 아주 평범한 이름 같습니다. 하지만 형님의 눈에 들었다면 절대 흔치 않은 절세미인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헤헤, 형님,
공가는 제자백가 중에서 유명한 제일이다.이른바 유교 천하가 있다면 공가는 바로 제자백가의 하늘이었다.“됐어!”윤구주는 손을 내저었다.“그래봤자 아주 작은 마가일 뿐이야. 애초에 내 안중에도 없었어.”“내가 신경 쓰이는 건 다른 거야.”윤구주의 말을 들은 공수이는 냉큼 물었다.“또 누가 형님의 심기를 건드렸습니까? 저한테 말해보십시오!”“그들은 바로 유명전이야!”윤구주는 차갑게 유명전의 이름을 뱉었다.“유명전? 백여 년 전에 우리 곤륜 구역에서 쫓기다가 사라진 지 백 년이 다 돼가는 그 신비 조직 말입니까?”꼬마 스님이 바로 물었다.“맞아!”“유명전은 백 년간 자취를 감췄으니 오늘날 갑자기 다시 나타난다면 반드시 화진 대란을 일으킬 거야!”공수이가 맞장구를 쳤다.“빌어먹을 것들! 그럼 제가 저번에 죽인 사람 몇이 유명전의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응?”“네가 유명전의 사람을 마주친 적이 있다는 말이냐?”윤구주는 눈썹을 꿈틀거렸다.“그렇습니다 형님. 저번에 이 유명전의 사람들이 예쁜 누나를 납치하려고 했지만, 결국엔 저 때문에 저승으로 갔습니다!”꼬마 스님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은설아?”유명전이 은설아를 납치하려고 했다는 말을 들은 윤구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형님도 그 누나가 극히 드문 수련한 성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그 인간들도 예쁜 누나를 납치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꼬마 스님이 말했다.공수이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마침내 깨달았다.윤구주는 그 누구보다도 은설아가 영음성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다만 도법을 함부로 전수해서는 안 되었다.그래서 윤구주는 은설아가 영음성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도 말해준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은설아가 유명전이 눈독을 들인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들은 윤구주는 자신의 마음속에 늘어난 걱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유명전.아홉 대전의 염라이자 사대 명부이다.그뿐만 아니라 명부에는 고수들이 셀 수 없이 많다.만약 그들이 정말
“술 좀 줘... 술 좀 가져다줘!”취할 대로 취한 은설아는 미친 사람처럼 밖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순식간에 경호원 몇 명이 달려왔고 인사불성으로 취한 은설아를 발견하자 걱정 어린 말을 건넸다.“설아 씨 괜찮으십니까?”온몸이 술기운에 사로잡힌 은설아는 술기운 가득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술 좀 줘... 나 술 마실 거야!”“설아 씨는 이미 충분히 취했습니다. 더 마시면 안 됩니다. 아직 콘서트가 세 개나 더 남아있단 말입니다!”한 경호원이 걱정했다.“참견하지 마! 술이나 달라고!”지금의 은설아에게 콘서트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은설아는 오로지 술만 마시고 싶어 했다. 더 취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취하고 싶었다.이렇게 해야만 자신이 더는 윤구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경호원들은 자신이 결코 은설아를 막을 수 없음을 깨닫고는 한숨을 쉬며 하는 수 없이 은설아에게 계속 술을 가져다줬다.두 명의 경호원이 막 방을 나섰을 때였다. 돌연 한 줄기 핏발이 번쩍였다. 지익! 두 사람은 반응할 틈도 없이 목에서 선혈을 쏟아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두 경호원이 죽고 난 후에야 피부는 검게 그을리고 얼굴에는 붉은 반점이 가득한 추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입은 툭 튀어나오고 볼은 원숭이 볼 같았다.정말이지 추함의 극치였다.하지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길 수 없는 아우라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그는 붉은 혓바닥을 내어 손에 들고 있던 피로 흥건한 칼을 핥았다. 사악하고 음침한 그 기운은 결국 방안의 술에 잔뜩 취한 은설아에게로 닿았다.“이 여자가 바로 그 여자야?”“나쁘지 않군! 역시 유일무이한 수련한 성체야!”그는 괴상하게 웃으며 사악한 눈길로 은설아의 굴곡이 선명한 육감적인 몸매를 훑었다.“그 세 멍청한 놈들은 영음지체도 똑바로 못 지키다니, 하찮은 나부랭이들이구나! 오늘 이 영음지체는 바로 내 것이 될 것이다! 킬킬킬!”괴상하게 웃은 추한 노인은 순식간에 은설아의 곁으로 갔다.술에 절어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