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야, 정훈이 만났어?”양민아는 도시락통을 쓰다듬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일이 있어서 강남 시티에 없는 것 같아요.”“없다고?”김세연은 뭔가 의심이 들었다. 그녀는 미리 강남 시티에 있는 아주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연정훈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양민아를 보낸 것이기 때문이었다.그녀는 갑자기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을 때 우물쭈물하던 것이 생각났다.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었다.“아이고, 미안해서 어떡해? 내 실수로 헛걸음을 시켰네.”“괜찮아요. 저도 마침 지나가는 길이었고요. 게다가 어머님께서 직접 만든 음식을 먹었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김세연은 웃으면서 속으로 더욱 그녀가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비록 양지원의 친딸은 아니었지만 양민아는 유일한 아가씨였다. 이렇게 귀한 신분을 가졌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다하다니, 임유정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시간도 늦었으니 밖에서 머물지 말고 일찍 쉬어.”“네, 그럼 어머님 안녕히 계세요.”김세연이 전화를 끊었다.차 안에서, 미소가 사라진 양민아는 연정훈과 안시연이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타일렀다.저런 여자와 같게 굴지 말라고, 그럴 가치도 없다고 말이다.그녀는 양씨 가문의 유일한 아가씨였다. 양씨 가문이 존재하는 한, 연정훈의 아내로 될 사람은 그녀뿐이었다.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조용히 차를 몰고 떠났다.연씨 가문 본가.김세연은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불평했다.“당신 아들이 점점 더 한심해지고 있어. 연씨 가문의 자식이 아니랄까봐... 겉으로 보면 멀쩡해 보여도 사실 누구보다 심하게 놀지.”연재혁은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혔다.‘아들을 욕하면 아들을 욕할 것이지, 왜 나까지 욕 해.’그는 소파에 기대어 서류를 보면서 머리도 들지 않았다.“아직 젊으니 좀 노는 것도 괜찮지, 뭐. 그렇다고 품위에 영향이 가진 않을 거야.”김세연이 베개로 그를 때렸다.“언젠가 밖에서 데려온 년을 집에 들이면 얼마나 심한 문제인지 알게
안시연은 구혜은의 초청을 받아 초연 전시회 기획에 참가하기로 했다.그녀는 전문적인 면에서는 구혜은보다 훨씬 못했지만 주요 목적은 기획과 마케팅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틈만 나면 전시관으로 달려갔고 문제가 생기면 연정훈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책 향기가 가득한 서재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질문을 했고 연정훈은 빈틈없이 대답해 주었다. 그 책상에 그녀의 글씨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밤을 보내면서 남겼던 그녀와 연정훈의 흔적도 새겨져 있었다.“침대 위에서든 밖에서든 연 교수님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잘하시나 봐요.”정이슬이 그녀를 조롱했다.전시관의 텅 빈 곳에서 휴대전화로 정이슬과 문자를 주고받던 안시연은 정이슬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정이슬은 계속해서 그녀를 놀리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녀는 또 오전에 있었던 일을 끄집어냈다.“초연 예술관은 아직 개관도 안 했는데 너랑 연정훈 씨 이야기는 이미 인터넷에 퍼졌어.”이게 바로 안시연으로 하여금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한 달 동안 그녀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따라 전시회를 기획해 왔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다.그런데 엊그제부터 어디선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연정훈이 30억에 가까운 돈을 들인 초연 예술관은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만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특히 그 ‘N’자 로고는 그 여자의 이름에 들어가는 알파벳이라고 할 정도로 다들 수많은 해석을 하고 있었다.“네 이름에 마지막 알파벳이잖아. 예술관 이름에 연 자가 들어간 것도 그렇고.”정이슬이 계속해서 말했다.“초연에 들어가는 알파벳이겠지.”“어쨌든 달달해서 좋아. 나는 네 이름에 있는 알파벳이라고 생각할 거야. 초연에 있는 알파벳이고 뭐고 난 몰라!”안시연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사실 그녀도 좀 기대를 했다.엊그제 연정훈 사무실에 가서 밥을 먹었을 때도 비서님께서 은근히 그녀를 놀렸던 것이었다. 이 알파벳이 그녀의 이름과 꼭 맞다고 말이다.연정훈이 의도한
여자들에게는 정말 타고난 촉이 있는 것 같았다.양민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안시연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연정훈을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다.비서의 말을 들은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기다릴게요.”“네.”비서가 막 가려고 하는데 안시연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무슨 일 이시죠?”“초연 예술원 아세요?”안시연이 물었다.“좀 알긴 합니다만...”“그럼 동쪽 A 전시관에 누가 전시를 할 예정인지는 아시나요?”비서는 알고 있었다.“대표님께서 양 아가씨에게 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 아가씨는 그곳에서 마지막 천문 전시회를 열 거라고 들었고요.”안시연은 잠자코 있다가 곧 빙긋 웃었다.“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비서는 물러갔다.창가에 앉아 있는 안시연은 마음이 복잡했다.구혜은은 고의로 그녀에게 이런 시련을 안겨준 것이 분명했다. 전시관을 위해서 그녀를 찾은 것뿐이 아니라 양민아의 천문 전시회와 비슷한 간에 개막을 하기로 결정했다. 두 집안의 대결인 셈이었다. 장 교수님이 업계에서 영향력이 좀 있다고 해도 양씨 가문의 세력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었다.그러면 손님 수는 양민아보다 눈에 띄게 적을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장 교수님을 뵐 면목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안시연을 끌어들여 연정훈을 이용해 양민아와 겨뤄 보려는 작전이었다.이런 속임수를 그녀는 처음에 알아채지 못했다.하지만 연정훈은?그도 눈치채지 못한 걸까?그런 스캔들이 있는데 개의치 않는 건가?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참에 사무실 문이 열렸다.그녀는 사무실에서 나오는 연정훈과 시선을 마주쳤다.“끝났어요?”그녀가 일어서며 물었다.연정훈은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아직. 저녁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안시연은 그의 겉옷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골라줘요, 겉옷?”“응.”연정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옆으로 지나갔다.“좀 점잖은 색으로 골라줘.”안시연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며칠 동안 그의 이런 일들은 항상 그녀가 하고
안시연은 할 말을 잃었다.양민아는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계속 말했다.“양씨 가문과 연씨 가문은 오래전부터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였어. 저랑 정훈이의 조상 부터 모두 절친이었어. 우리 쪽에 와서 어떻게 이런 보잘것없는 일로 서로 얼굴을 붉힐 수 있겠어? 폐막식의 장소를 예술관으로 정한 것도 정훈이를 돕기 위해서야.”‘보잘것없다고?’알고 보니 이 전시회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안시연의 마음은 가루약이라도 씹은 듯 씁쓸했다.양민아는 그녀를 한 눈 쳐다보고 말했다.“인터넷에 올라온 글들 다 봤지?”안시연은 애써 침착한 척했다.“조금만 봤어요.”“신경 쓰지 마. 홍보를 위해서라면 홍보팀에선 어떤 원고든 쓸 수 있어.”“그렇죠.”그녀는 말끝을 흐리더니 또 입을 열었다.“정훈이가 너에 대한 감정도 분명 진심이일 거야.”그녀는 조금도 사심이 없는 것처럼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안시연은 그녀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다른 뜻을 못 알아들을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의 진정한 목적은 안시연에게 연정훈이 그녀를 위해 한 일들은 전부 경인 예술관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잔인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었다.그녀는 속으로 심호흡하며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알고 있어요.”양민아는 미소를 지었다.마침, 차가 도심 한복판을 지나가고 있었다.거대한 모니터에는 예술관 홍보가 한창이었고 왼쪽 상단에 있는 ‘N’ 자가 시선을 끌었다.양민아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난 처음 이 ‘N’ 자를 봤을 때부터 Nancy를 생각했어.”안시연은 그녀가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로 농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이으려고 할 때 양민아는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한때 걔는 나를 사랑의 라이벌로 여기고 날 찾아와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어.”안시연이 문득 깨달았다.‘양민아 씨가 말한 사람이 소현주...?’안시연이 계속 말이 없자 양민아는 이제 막 실수를 깨달은 듯 웃으며 덮었다.“미안, 혹시 소현주 몰라?”안시연은 짐짓
안시연은 침착하게 맞섰다.“선배, 저희 전시관은 홀 동쪽에 있잖아요. 연 대표님이 이쪽으로 오시려면 길을 돌아야 한답니다.”구혜은은 웃으며 말했다.“후배가 여기 있는데 조금 먼 길을 돌아올 가치도 없겠어요?”안시연도 똑같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는 비즈니스인 이니 사소한 일 대신 전체적인 형세를 돌봐야 하죠. 선배, 우리 일이나 잘하는 게 어떨까요?”“시연 씨의 말이 맞네요.”구혜은은 화를 내지 않았다.인간관계를 정세에 따라 교활하게 처리하는 것은 그녀만의 스킬이었다.예전에는 안시연을 험담하느라 바빴지만 지금은 이익을 위해 안시연의 비위를 맞춰 줄 수도 있었다.안시연은 몸을 돌려 떠났다.그녀는 창가에 서서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연정훈이 먼저 어디로 가는지는 상관이 없었고, 대신 그가 그들의 일을 가지고 떠벌리고 있는지 신경 쓰였다.그녀는 이익 극대화에 대해 동의하는 편이었지만 그들의 관계는 특별했고 네트워크의 힘은 어마어마했으므로 만약 그녀의 정보가 유출된다면 그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없었다.조용히 생각하던 차에 갑자기 전시홀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구혜은이 제일 먼저 나서서 팀원들을 모두 불러 루틴에 따라 일 처리를 진행했다.안시연은 서둘러 마스크를 착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에 과연 많은 미디어 기자가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두 팀의 경호원이 앞장서서 길을 내주자 연정훈과 몇몇 상사들이 비로소 전시홀로 향했다.안시연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았고 이런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을 그녀는 장 교수와 그의 팀에게 남겨주었다.연정훈은 검은색 수트를 입고 있었는데 신사처럼 고급스러우면서도 우아했고, 잘 다려진 바짓가랑이는 그가 걸어 다닐 때 그의 훤칠한 다리를 더 꼿꼿하게 부각해 주었고, 배가 불룩 나온 기름진 중년 상사들 사이에서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안시연은 그렇게 빛나는 그를 보며 마음속에서 맴돌던 의문은 잠시나마 풀려졌다.그녀는 그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여유 있게 연설하는 모습을
매체 기자들 앞에서 연정훈과 양민아는 매우 여유로웠다.그 이야기에 대하여 그들은 회피하고 더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나란히 무대 위에 서서 화제의 중심을 모두 예술관으로 이끌었다.하지만 여전히 포기할 줄 모르고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기자가 있었다.양민아는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연정훈을 한 눈 보고 말했다.“여러분, 연 대표님은 항상 공사 구분이 확실하신 분이에요. 예술관의 준공은 아무 개인적인 이유 없이 오직 경인시의 관광을 돕고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입니다.”그러면서 카메라는 연정훈으로 향했다.연정훈의 답변은 양민아가 한 말과 별다르지 않았다.안시연은 무대 아래쪽에 서서 카메라의 규칙적인 작동 소리를 무심코 들으며 침묵을 지켰다.옆 사람은커녕 그녀 자신도 연정훈과 양민아가 매우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의 사고방식 또한 완전히 일치했다.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그들은 이미 장내의 흐름을 손에 넣었다.이런 능력은 그녀에게 아마 한 평생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진행자가 주의를 주기 전까지 그녀는 생각에 빠져 무대 위의 말들이 하나도 안 들렸다.“다음 순서로 연 대표님과 여러 상사분께서 함께 이번 전시회 제막식 기념 테이프 커팅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장 교수는 안시연을 불러내고 구혜은과 같이 팀을 대표하여 무대에 오르게 했다.단지 연정훈의 체면을 봐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안시연은 알고 있었다.그녀는 평온하게 웃더니, 자신보다 더 무대에 설 자격을 갖춘 선배를 추천하고 자신은 인파 속으로 조용히 숨어버렸다.무대 위, 연정훈과 장 교수가 중앙에 서 있고 그들 옆에는 양민아가 서 있었다.기념 테이프가 잘린 동시에 ‘찰칵’, 완벽한 단체 사진이 완성되었다.귓가에선 박수 소리와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안시연은 마치 진정한 스태프처럼 자질구레한 일을 차분하게 처리하며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바쁘게 움직였다.도중에 연정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한 통 걸었다.서로 한 층만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그는 VIP
“당신을 때린다고요? 내가 때리는 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이런 곳에 누구 마음대로 오는 건데요.”양지원은 드센 태도로 소현정의 따귀를 두 번 때리고는 화가 나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나한테 초대장이 있는데 왜 오면 안 되죠?”“초대장? 저기 마침 전시회 책임자가 계시네요.”양지원이 비웃고는 고개를 돌려 안시연을 보며 말했다.안시연은 두피가 당기는 듯했다. “양 대표님, 필요한 거라도 있으신가요?”양지원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소현정의 초대장을 가져다가 땅에 던졌다.“이분은 다른 사람의 초대장을 남용했으니 당장 내보내 주시길 바래요.”소현정은 얼굴을 감싸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쳐다봤다.안시연이 그 초대장을 들어 위에 있는 이름을 보니 오성호였다.이 이름은 아무 이름이 아닌 재벌 랭킹에서도 유명한 양지원의 남편이었다.양지원이 이 여성에 대한 태도를 보니 안시연은 금세 이해가 되었다.정실과 첩이 부딪쳤는데 첩이 양지원의 남편의 초대장을 가지고 있은 것이다.VIP 관람 구역에는 실명이어야 하고 오는 사람마다 다 귀빈이기에 혼인이 오지 못하여 대신 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람을 내쫓는다면 밖에 있는 기자들에게 화젯거리를 만들어주게 된다.안시연이 생각하는 동안 양지원은 계속 부담을 주고 있었다.“이 여자는 성이 소씨 라고요.”소현정은 이 말을 듣고 말했다.“이건 내 남편 초대장이에요. 남편 대신 와도 괜찮죠?”안시연은 심장이 덜컹하는 듯했다.양지원은 이 말을 듣고 낯빛이 어두워졌다.소현정은 양지원의 모습을 보고는 득의양양해하며 안시연에게 말했다.“우리 남편한테 연락이라도 해드릴까요?”양지원은 눈을 감고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게 하세요.”안시연은 더 이 여자를 내보내지 않으면 큰 일이 생길 것을 알고 있다.안시연은 초대장을 거두고는 소현정에게 말했다.“3층에 디저트가 있는데 올라가셔서 차라도 마시는 게 어떤가요.”양지원은 안시연을 한눈 쳐다봤다.소현정은 자신을 말을 돌려서 내보내는
소현정은 수도 없이 진실이 밝혀지는 날을 환상해 보았다. 양지원이 친딸을 봤을 때 딸이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 장면이 얼마나 통쾌할지.그러니 안시연이 연정훈의 뒤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안시연의 얼굴을 보고 또 이름을 듣고 난 후, 이 여자애가 바로 양지원의 딸인 것을 확정할 수 있었다.소현정은 먼저 놀라고 그러고는 당황해했다. 필경 모녀는 마음이 이어져있다고 하니 이렇게 마주 향해 보면 양지원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라도 할까 봐 걱정했다.그러고는 질투와 분노가 가득했다.천한 년.경인시 하인 굴에 처박에 넣었는데 연정훈의 다리를 잡았더니.소현정이 혼란스러울 때 연정훈은 이미 사람을 불러 강제로 3층에 데리고 가서 차를 마시게 했다.누군가 자신을 끌고 가서야 소현정은 정신을 차렸다.김세연과 양민아는 양지원더러 화를 풀라고 다독였다.연정훈은 안시연을 보호했다.화면이 머릿속에 박혀 소현정은 급히 달아났다.안시연이 연정훈을 잡은 건 그렇다고 쳐도 연씨 가문과 양씨 가문이 이렇게 가까운 사이인데 계속 연락을 하게 내버려둔다면 종이로는 불을 감싸지 못하게 된다.어떡하지.“사람이 이미 떠났고 나도 괜찮아요. 아가씨가 처리를 잘했어요. 내 조건도 만족을 시켰고 기자들이 일을 만드는 것도 피했으니 말이에요.”양지원이 안시연을 보며 말했다.안시연이 웃으며 말했다.“만족하시면 다행이에요.”말을 하고는 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했다.연정훈이 안시연의 손을 잡았다.맞은 편에 있는 김세연과 양지원 모녀는 이 모습을 똑똑히 봤다.김세연은 미쳐 돌아버릴 것 같았다.김세연은 연재혁에게 당신 아들이 하는 꼴 좀 보라고 하고 싶었다.연정훈은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한 듯 말했다.“지원 이모, 전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양지원은 차분했다.“그래.”연정훈은 손을 잡고 나갔다.김세연은 어색해서 미칠 것 같았다. 미래 사돈에게 웃고는 양민아를 바라봤다.양민아는 얼굴색이 변하지 않았다.“이모, 제 전시관에 가보실래요?”김세연
연정훈은 가만히 양시연을 바라만 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양시연도 다급해하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로 연정훈과 시선을 마주했다.연정훈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양시연의 페이스에 말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그래서 먼저 입을 열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양시연은 여전히 말없이 연정훈을 향해 손을 젓고 있었다.“...”그렇게 한참 실랑이가 이어지고 연정훈은 양시연의 옆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양시연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서로의 호흡이 섞이고 닿을락 말락 가까이 붙었다.양시연의 시선은 연정훈의 입술로 고정되고 그 시선은 심히 도발적이었다.연정훈은 침을 꿀꺽 넘기고 숨까지 멎은 채로 이어질 양시연의 행동을 기다렸다.양시연의 시선은 입술에서 코까지,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눈으로 향했다.양시연은 자세를 바로 하고 턱을 살짝 치켜들어 당장이라도 연정훈에게 키스할 것처럼 굴었다.그러자 연정훈은 온몸이 굳어버렸다.양시연의 호흡이 점점 더 가깝게 느껴졌으나 곧 허공에 멈춰 섰다.연정훈은 멈칫했고 웃음기 섞인 양시연을 발견했다.“...”그제야 당한 걸 알아차린 연정훈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두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휙 돌렸다.양시연은 웃음이 터졌고 연정훈이 고개를 돌리는 찰나 머리를 잡고 입술에 키스했다.쪽.선명한 소리에 연정훈은 이게 꿈이 아닌지 의심이 갔다.방금까지 털을 바짝 세우고 있던 고양이가 순식간에 장화 신은 고양이로 변해버렸다.양시연은 속으로 웃고 있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링거를 톡톡 두드렸다.“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연정훈은 양시연의 몸에 위치추적기라도 단 듯 시선으로 졸졸 따라갔다.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한참 뒤 연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소리만 크고 실속은 없네...”양시연은 뒷짐을 진 채로 말했다.“계속 그러면 뽀뽀도 없어요.”“...”연정훈은 방금 사이에 코피를 얼마나 흘린
양시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연정훈은 양시연의 편애가 필요했고 이런 자신을 달래주기를 원했다.그래서 냉전을 시작한 걸 누구보다 후회했다. 게다가 양시연은 연정훈이 그러든 말든 평소와 다름없이 먹고 자고 했으니 연정훈은 후회막심했다.“내일 양혁수 보러 가도 돼.”연정훈이 꽤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양시연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이젠 질투 안 해요?”“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넌 양혁수 보러 갈 거잖아.”그 말을 들은 양시연은 연정훈이 평소에 쌓인 게 많다는 게 느껴졌다.“내일 정훈 씨 건강하게 회복되면 혁수 보러 갈게요.”“그럴 필요 없어. 바로 비행기 티켓 끊어.”“정훈 씨가 나으면...”“난 그렇게 빨리 괜찮아지지 않을 거야.”“왜요?”“네가 날 피해 다닐수록 난 예민해질 테고, 또 양혁수에 질투하게 될 거야.”연정훈은 갑자기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그러자 양시연이 다급해졌다.“내가 언제 정훈 씨 피해 다녔다고 그래요?”“이불 덮고 잠만 자는 게 그 뜻이지 뭐.”“...”양시연은 그제야 연정훈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우린 법상 부부가 되었는데도 그렇게 불안해요?”연정훈은 대꾸하지 않았다.그러자 양시연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톡 쐈다.“링거까지 꽂고 꼭 그렇게 불순한 생각을 해야겠어요?”서론을 길게 늘여놓은 건 결국 양시연과 잠자리를 가지고 싶다는 뜻이었다.“난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야.”양시연이 힐끗 노려봤다.“이미 연정훈 씨 아내인데 내가 어딜 도망가겠어요?”양시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쳇.’연정훈은 침을 꿀꺽 넘겼다. 양시연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는데 마치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었는데 말이다.그래서 다시 침을 꿀꺽 넘기며 애써 침착하게 행동했다.“누가 알아? 네가 정인 그룹만 손에 쥐고 튈지?”“내가 왜 그러겠어요. 이렇게 좋은 남편을 어디 가서 또 찾는다고.”연정훈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양시연은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연정훈
양시연의 시선은 또 연정훈의 목울대로 향했고 숟가락에 묻은 팥빙수를 슬쩍 핥는 것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그러자 숟가락을 입에 대니 가만히 올려다보던 연정훈의 시선이 자연스레 떠올랐다.‘음... 뭐랄까?’마치 비에 폭삭 젖어버린 큰 강아지가 문밖으로 쫓겨나 풀이 죽은 모습 같았다.양시연은 연정훈의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금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그러자 잠금 화면이 풀리고 거실에 앉아 책을 보는 본인을 찍은 사진이 보였다. 아마도 2층 계단에서 몰래 찍은 것 같았다.‘이건 언제 찍은 거지?’양시연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슬쩍 올렸고 고개를 드니 팥빙수를 먹던 연정훈은 뭐에 걸린 듯 캑캑 대고 있었다.“줘요.”양시연의 말에 연정훈은 고분고분 팥빙수를 넘겼다. 그리고 양시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힘에 부친 듯 크게 호흡을 들이마셨다.연정훈이 더 이상 팥빙수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양시연은 휴지로 연정훈의 입가를 닦아주고 일어서서 과일을 챙겨왔다.연정훈은 이런 양시연을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뭘 봐요? 다음에도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면 정말 국물도 없어요.”연정훈은 기분이 퍽 좋아졌다.지금 보니 오늘도 크게 손해를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다음번에는 적정량만 조절하면 되었다.“돌아가면 여 아주머니와 제대로 얘기를 해야겠어.”연정훈이 덤덤하게 말했다.“무슨 얘기요?”“다음에도 보약을 챙겨줄 거면 적정량을 제대로 체크해보라고 언질을 줘야지.”양시연은 어이가 없었다.그래서 어처구니없다는 듯 손가락으로 연정훈의 이마를 쭉 밀었다.“그런 바보 같은 소리 마요.”“건강으로 장난할 생각하지 마요. 적당량을 딱 마셔 병원에 올 정도는 아니었어도 몸은 어딘가 불편했을 거예요. 난 그 탕약에 위험한 신고가 딱 느껴지던데 어떻게 그걸 먹어요?”연정훈은 되려 당당하게 말했다.“그걸 재고 따지면 우리 사이엔 진전이 없을걸.”“...”양시연은 연정훈을 말없이 째려보았다.“알고 보니 정훈 씨도 변태였나 보네요.”“나도 그런 사람이
연정훈이 멈칫하자 양시연은 숟가락으로 연정훈의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입 벌리고 빨리 먹어요.”“...”연정훈은 배가 고픈 건 아니었으나 목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그리고 양시연이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보이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러자 양시연은 냉큼 숟가락을 돌려 제 입에 넣었다.“음! 너무 맛있네!”“...”‘그럼 그렇지.’연정훈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그러다가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그럴 리가요.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고 했어요.”“...”연정훈은 다시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치사하게.”그러자 양시연이 웃음을 터뜨렸다.팥빙수를 맛있게 먹다가 이상할 정도로 얼굴이 붉어진 연정훈 얼굴을 보며 양시연이 말했다.“정훈 씨에게도 이런 날이 다 오네요.”‘다시 냉전하기만 해 봐. 흥.’내킬 만큼 괴롭힌 양시연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막 도착한 팥빙수는 이가 시릴 만큼 차가웠지만 이젠 조금 녹아 먹기 딱 좋았다.팥빙수의 상태를 체크한 양시연은 숟가락으로 크게 퍼 연정훈에게 건넸다.“먹어봐요. 팥이 많은 게 좋으면 팥만 골라서 줄게요.”그리고 고개를 숙여 직접 입가까지 가져다주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연정훈이 양시연을 못 본 척 무시했다.티가 나게 삐진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은 웃음이 나왔다.그래서 말라 터진 연정훈의 입술을 노크하듯 숟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자자. 방금까진 장난이었어요. 지금 조금 녹아서 딱 먹기 좋아요.”연정훈은 다정한 양시연의 말투에 마음이 녹았다. 그러나 여전히 입을 굳게 닫은 채로 이어질 양시연의 행동을 기다렸다.그때, 양시연은 연정훈의 두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시선을 마주한 연정훈의 두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의 두 볼을 만지작거리다가 좌우로 흔들기까지 했다.“계속 입 벌리지 않으면 내가 정말 다 먹어버릴지도 몰라요.”‘내가 어린애인 줄 아나? 겨우 이런 말로 겁먹게?’연정훈은 속으로 꿍얼거렸으나 양시연의 미소를
속셈이 들통나자 연정훈은 자세를 고쳐 누우며 이렇게 말했다.“빨리 휴지나 챙겨서 갈아줘. 코피가 아직도 멈추지 않은 것 같아.”양시연이 쯧하고 혀를 찼다.“말하지 마요. 코피를 그렇게 흘렸는데 아직도 힘이 남아 있어요?”“...”“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이렇게 치졸한 방법을 써야겠어요?”양시연이 재차 속을 긁자 연정훈은 다시 눈을 감았다.“뭐예요? 눈만 감으면 장땡이라는 건가?”“...”‘체면을 이렇게 구기다니!’다시 등을 돌린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드디어 의사가 병실을 찾았다.그리고 그 뒤로 여 아주머니도 함께였는데 양시연과 달리 여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요즘 들어 여 아주머니는 연정훈이 꽤 마음에 들었는데 오늘 연정훈을 다치게 만든 게 본인이다 보니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여 아주머니는 자책하며 마른 입술의 연정훈을 향해 물었다.“차가운 음료수라도 가지고 올까요?”연정훈은 생각보다 덤덤했고 방금 양시연이 팥빙수 얘기를 꺼낸 걸 떠올리며 가볍게 부탁했다. 왠지 자꾸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네네. 바로 만들어 올게요.”여 아주머니는 드디어 안심이라는 듯 말했다.연정훈이 입꼬리를 올렸다.“1인분만 만드시면 돼요. 수고스럽게 많이 만드실 필요 없으세요.”여 아주머니는 양시연을 힐끗 바라봤고 연정훈이 바로 말을 이었다.“시연이는 안 먹을 거예요. 저 놀리느라 먹을 시간이 없거든요.”여 아주머니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이었다.연정훈의 말에 양시연은 연정훈을 힐끗 노려보았다.하지만 여 아주머니는 아픈 아이를 달래듯 연정훈을 달래며 양시연더러 옆을 잘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했다.“알겠어요.”양시연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여 아주머니가 병실을 나섰다.그렇게 병실에는 양시연과 연정훈만 남겨지고, 양시연은 고개를 돌려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연정훈을 바라봤다.연정훈은 아예 이불을 쭉 당겨 얼굴까지 가렸다.눈 감고 자는 척하는 연정훈의 속셈을 눈치챈 양시연은 혀를 쯧쯧
조금의 과장을 보탠다면 연정훈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양시연이 빠르게 몸을 돌리지 않았다면 새로 산 파자마에 피가 튀었을지도 모른다!“왜 그래요?”그러나 연정훈은 그 질문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코 위로 덮은 휴지가 또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깜짝 놀란 양시연이 다급하게 사람을 불렀다.여 아주머니는 이어질 상황을 숨죽여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인기척이 들려오자 몰래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양시연이 피로 물든 연정훈을 밖으로 끌어내는 게 보였다.“세상에!”“빨리, 빨리 의사 불러요!”양시연은 여 아주머니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의사 부르지 말고 당장 병원으로 가요.”그리고 여 아주머니가 기사와 경호원을 찾기도 전에 연정훈을 이끌고 주차장으로 향했다.연정훈은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냅킨으로 얼굴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양시연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졌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코피를 흘리다니 정말 몸에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두 사람이 병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 아주머니도 병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여 아주머니는 한 움큼의 약재와 함께 나타났다...의사는 연정훈에게 정밀 검사를 시키려다가 여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침묵에 빠졌다.그건 양시연도 마찬가지였다.양시연은 눈앞이 아찔해 머리를 잡고 천장만 바라봤다.‘정말 어이가 없어서!’“바보예요? 아니면 코가 잘못된 거예요?”링거를 맞기 전 양시연이 낮은 목소리로 연정훈에게 말했다.연정훈은 머리가 어지럽고 온몸의 피가 빠진 듯 많이 허약해졌다. 그리고 안경 너머로 양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아주머니가 알아서 적정량으로 주셨을 거로 생각했어.”양시연은 눈을 희번덕희번덕했다.“여 아주머니는 정훈 씨가 탕약을 전부 마실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대요!”양시연은 빠르게 연정훈의 안경을 끌어내렸다.그러자 연정훈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두 눈을 꼭 감았다.“이제 안경도 끼지 마요. 사람이 반듯하게 생겨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이건 그냥 평범한 보약이에요. 부족한 혈기를 보충해 주는 약이라고요!”여 아주머니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양시연은 입을 삐죽이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이불을 펄럭이며 자리에 누웠다.“아이참, 말 좀 들어요. 빨리 마셔요.”“난 아주 건강하니까 그런 보약은 마실 필요가 없어요.”“그게 아니라...”“오늘 밤 꼭 정훈 씨랑 같이 지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요.”양시연은 패드를 꺼냈다.하지만 여 아주머니는 포기도 하지 않고 구구절절 말을 이어갔다.양시연은 아예 노래를 틀었다.여 아주머니는 화가 나 양시연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쭉 밀었다.그러자 양시연은 웃음이 터졌고 멀어지는 여 아주머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아주머니, 이 약은 꼭 버려주세요. 그리고 다시 사 오지 마세요. 아주머니도 이런 약 사러 갈 때 안 쑥스러웠어요?”“...”‘이 녀석이!’여 아주머니는 방 밖으로 나가면서 양시연의 말을 곱씹었다.‘그래.’‘내가 얼마나 힘들게 구해온 약인데 절대 낭비하면 안 되지!’그래서 고민하다가 탕약을 한 그릇에 담아 서재로 향했다.연정훈은 민수희의 전화에 시달리다가 귀찮은 듯 전화를 끊고 이만 방으로 돌아가 양시연을 보살피려 했다.혹시 상처가 있으면 연고를 발라주고...상처가 없으면...그래도 꼼꼼히 살필 것이다.두 사람의 사이가 많이 풀어졌기에 오늘 밤엔 꼭 껴안고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똑똑똑.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연정훈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의 여 아주머니와 시선을 마주했다.“...”연정훈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그래서 안경을 자연스레 위로 올리며 예의를 차려 물었다.“무슨 일이시죠?”“별일은 아니고 보약을 새로 달여왔는데 따뜻하게 데워 왔어요. 빨리 마시고 얼른 쉬세요!”숨을 크게 들이쉬니 연정훈은 왠지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이게 보약이라고?’여 아주머니는 아직도 미소를 지은 채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자, 빨리 마셔요.”“...”연정훈은 잠시 뜸을 들이다
연정훈의 말에 민병식과 방미선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연정훈을 다시 설득해 보려고 했으나 기회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 방금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두 녀석을 혼내려 했다!강남 시티로 돌아오자 여 아주머니가 물에 푹 젖은 양시연과 나비를 보고 깜짝 놀라 했다.전체 상황을 전해 들은 여 아주머니는 제 일인 듯 불같이 화를 냈다.양시연은 곧 연정훈의 대처 방식을 말해주었고 여 아주머니의 표정이 확연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양시연을 연정훈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이렇게 소곤거렸다.“오늘 밤엔 정훈 씨에게 잘해줘요. 시연 씨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봐봐요.”여 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양시연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알겠어요.”그리고 샤워를 하러 간 양시연은 나비를 연정훈에게 맡겼다.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나비는 따뜻한 카펫 위로 자리를 잡았다. 영준이 나비의 옆을 꼭 지키고 있었는데 모자 사이가 오늘따라 더 가까워 보였다.연정훈은 맞은편 소파에 앉아 면봉으로 나비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줬다.나비는 계속 끙끙 소리를 냈지만 그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이 광경을 몰래 지켜보던 양시연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비에게도 이렇게 지극정성인데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에게 얼마나 사랑을 쏟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그러나 바로 생각을 멈추고 마른기침했다.연정훈은 진지한 얼굴로 양시연에게 물었다.“다친 곳은 없어?”“없어요.”양시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머리가 좀 뽑혔을 뿐이에요.”“머리카락을 잡아당겼어?”연정훈의 표정이 굳었다.“그 남자아이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주먹질하는 걸 개울가에 집어 던졌어요.”연정훈은 점점 화가 났다.7살 먹은 남자아이가 멋모르고 주먹질했을 게 뻔했다.양시연을 찬찬히 살피던 연정훈이 물었다.“따끔거리는 곳은?”양시연이 고개를 젓자 연정훈은 직접 한곳 한곳 살피려 했다.그러자 양시연은 소파에 자리를 찾아 앉으며 농담 섞인 말투로 말했다.“뭐예요? 직접 확인이라도 해야 안심이 되겠어
하나도 잘못이 없는 듯 당당하게 말하던 민지연은 연정훈의 차가운 시선에 점점 목소리가 낮아졌다.민지욱은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울고 있었지만 연정훈을 힐끗 보다가 점점 울음소리를 낮췄다.그러자 뒤뜰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졌다.민태용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 불만이라는 듯 양시연을 노려보았다.“그만하거라. 어린아이끼리 장난에 지금 뭐 하는 짓이냐!”그리고 이번 일을 가볍게 무마시키고 사람을 시켜 아이들의 옷을 갈아입히게 했다.그때 연정훈이 말했다.“서로의 얘기가 다르다면 누구의 말이 맞는지 제대로 확인을 해봐야죠.”연정훈이 끝까지 파고들 줄 몰랐던 사람들은 조금 당황해했다. 두 가문의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이런 일로 서로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었다.민태용이 연정훈을 말렸다.“정훈아, 너무 파고들지 말거라. 이건 사소한 일이지 않으냐?”“사소한 일이요?”연정훈이 말을 자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키우던 알파카가 물에 빠진 일이 사소하다는 건가요? 아니면 민지연과 민지욱이 거짓말을 하는 게 사소한 일이란 말씀인가요?”“난 거짓말한 적 없어요!”민지욱이 빠르게 반박했다.민지연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정훈 오빠, 그렇게 무턱대고 언니 말만 듣지 마요. 언니가 나와 지욱이를 물에 빠뜨리는 걸 직접 두 눈으로 봤잖아요!”민병식도 고민에 빠졌다.“그래 정훈아, 이미 벌어진 일이고 네 아내 말만 믿고 막무가내로 굴지 말 거라. 네 아내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제 아내는 거짓말하지 않아요.”연정훈은 아주 덤덤하고 냉철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양시연은 연정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점점 화가 가셨고 차츰 이성이 돌아오고 있었다.그래서 연정훈의 옆에 서서 물었다.“할아버님, 혹시 집에 감시 카메라가 있을까요?”민병식은 침묵했다.그러자 사람들은 생각에 잠겼다. 민씨 가문 뒤뜰에 감시 카메라가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양시연이 거짓말을 한다면 먼저 카메라를 확인해 보자고 말할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