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연은 구혜은의 초청을 받아 초연 전시회 기획에 참가하기로 했다.그녀는 전문적인 면에서는 구혜은보다 훨씬 못했지만 주요 목적은 기획과 마케팅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틈만 나면 전시관으로 달려갔고 문제가 생기면 연정훈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책 향기가 가득한 서재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질문을 했고 연정훈은 빈틈없이 대답해 주었다. 그 책상에 그녀의 글씨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밤을 보내면서 남겼던 그녀와 연정훈의 흔적도 새겨져 있었다.“침대 위에서든 밖에서든 연 교수님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잘하시나 봐요.”정이슬이 그녀를 조롱했다.전시관의 텅 빈 곳에서 휴대전화로 정이슬과 문자를 주고받던 안시연은 정이슬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정이슬은 계속해서 그녀를 놀리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녀는 또 오전에 있었던 일을 끄집어냈다.“초연 예술관은 아직 개관도 안 했는데 너랑 연정훈 씨 이야기는 이미 인터넷에 퍼졌어.”이게 바로 안시연으로 하여금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한 달 동안 그녀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따라 전시회를 기획해 왔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다.그런데 엊그제부터 어디선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연정훈이 30억에 가까운 돈을 들인 초연 예술관은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만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특히 그 ‘N’자 로고는 그 여자의 이름에 들어가는 알파벳이라고 할 정도로 다들 수많은 해석을 하고 있었다.“네 이름에 마지막 알파벳이잖아. 예술관 이름에 연 자가 들어간 것도 그렇고.”정이슬이 계속해서 말했다.“초연에 들어가는 알파벳이겠지.”“어쨌든 달달해서 좋아. 나는 네 이름에 있는 알파벳이라고 생각할 거야. 초연에 있는 알파벳이고 뭐고 난 몰라!”안시연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사실 그녀도 좀 기대를 했다.엊그제 연정훈 사무실에 가서 밥을 먹었을 때도 비서님께서 은근히 그녀를 놀렸던 것이었다. 이 알파벳이 그녀의 이름과 꼭 맞다고 말이다.연정훈이 의도한
여자들에게는 정말 타고난 촉이 있는 것 같았다.양민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안시연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연정훈을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다.비서의 말을 들은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기다릴게요.”“네.”비서가 막 가려고 하는데 안시연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무슨 일 이시죠?”“초연 예술원 아세요?”안시연이 물었다.“좀 알긴 합니다만...”“그럼 동쪽 A 전시관에 누가 전시를 할 예정인지는 아시나요?”비서는 알고 있었다.“대표님께서 양 아가씨에게 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 아가씨는 그곳에서 마지막 천문 전시회를 열 거라고 들었고요.”안시연은 잠자코 있다가 곧 빙긋 웃었다.“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비서는 물러갔다.창가에 앉아 있는 안시연은 마음이 복잡했다.구혜은은 고의로 그녀에게 이런 시련을 안겨준 것이 분명했다. 전시관을 위해서 그녀를 찾은 것뿐이 아니라 양민아의 천문 전시회와 비슷한 간에 개막을 하기로 결정했다. 두 집안의 대결인 셈이었다. 장 교수님이 업계에서 영향력이 좀 있다고 해도 양씨 가문의 세력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었다.그러면 손님 수는 양민아보다 눈에 띄게 적을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장 교수님을 뵐 면목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안시연을 끌어들여 연정훈을 이용해 양민아와 겨뤄 보려는 작전이었다.이런 속임수를 그녀는 처음에 알아채지 못했다.하지만 연정훈은?그도 눈치채지 못한 걸까?그런 스캔들이 있는데 개의치 않는 건가?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참에 사무실 문이 열렸다.그녀는 사무실에서 나오는 연정훈과 시선을 마주쳤다.“끝났어요?”그녀가 일어서며 물었다.연정훈은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아직. 저녁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안시연은 그의 겉옷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골라줘요, 겉옷?”“응.”연정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옆으로 지나갔다.“좀 점잖은 색으로 골라줘.”안시연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며칠 동안 그의 이런 일들은 항상 그녀가 하고
안시연은 할 말을 잃었다.양민아는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계속 말했다.“양씨 가문과 연씨 가문은 오래전부터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였어. 저랑 정훈이의 조상 부터 모두 절친이었어. 우리 쪽에 와서 어떻게 이런 보잘것없는 일로 서로 얼굴을 붉힐 수 있겠어? 폐막식의 장소를 예술관으로 정한 것도 정훈이를 돕기 위해서야.”‘보잘것없다고?’알고 보니 이 전시회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안시연의 마음은 가루약이라도 씹은 듯 씁쓸했다.양민아는 그녀를 한 눈 쳐다보고 말했다.“인터넷에 올라온 글들 다 봤지?”안시연은 애써 침착한 척했다.“조금만 봤어요.”“신경 쓰지 마. 홍보를 위해서라면 홍보팀에선 어떤 원고든 쓸 수 있어.”“그렇죠.”그녀는 말끝을 흐리더니 또 입을 열었다.“정훈이가 너에 대한 감정도 분명 진심이일 거야.”그녀는 조금도 사심이 없는 것처럼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안시연은 그녀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다른 뜻을 못 알아들을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의 진정한 목적은 안시연에게 연정훈이 그녀를 위해 한 일들은 전부 경인 예술관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잔인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었다.그녀는 속으로 심호흡하며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알고 있어요.”양민아는 미소를 지었다.마침, 차가 도심 한복판을 지나가고 있었다.거대한 모니터에는 예술관 홍보가 한창이었고 왼쪽 상단에 있는 ‘N’ 자가 시선을 끌었다.양민아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난 처음 이 ‘N’ 자를 봤을 때부터 Nancy를 생각했어.”안시연은 그녀가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로 농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이으려고 할 때 양민아는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한때 걔는 나를 사랑의 라이벌로 여기고 날 찾아와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어.”안시연이 문득 깨달았다.‘양민아 씨가 말한 사람이 소현주...?’안시연이 계속 말이 없자 양민아는 이제 막 실수를 깨달은 듯 웃으며 덮었다.“미안, 혹시 소현주 몰라?”안시연은 짐짓
안시연은 침착하게 맞섰다.“선배, 저희 전시관은 홀 동쪽에 있잖아요. 연 대표님이 이쪽으로 오시려면 길을 돌아야 한답니다.”구혜은은 웃으며 말했다.“후배가 여기 있는데 조금 먼 길을 돌아올 가치도 없겠어요?”안시연도 똑같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는 비즈니스인 이니 사소한 일 대신 전체적인 형세를 돌봐야 하죠. 선배, 우리 일이나 잘하는 게 어떨까요?”“시연 씨의 말이 맞네요.”구혜은은 화를 내지 않았다.인간관계를 정세에 따라 교활하게 처리하는 것은 그녀만의 스킬이었다.예전에는 안시연을 험담하느라 바빴지만 지금은 이익을 위해 안시연의 비위를 맞춰 줄 수도 있었다.안시연은 몸을 돌려 떠났다.그녀는 창가에 서서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연정훈이 먼저 어디로 가는지는 상관이 없었고, 대신 그가 그들의 일을 가지고 떠벌리고 있는지 신경 쓰였다.그녀는 이익 극대화에 대해 동의하는 편이었지만 그들의 관계는 특별했고 네트워크의 힘은 어마어마했으므로 만약 그녀의 정보가 유출된다면 그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없었다.조용히 생각하던 차에 갑자기 전시홀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구혜은이 제일 먼저 나서서 팀원들을 모두 불러 루틴에 따라 일 처리를 진행했다.안시연은 서둘러 마스크를 착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에 과연 많은 미디어 기자가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두 팀의 경호원이 앞장서서 길을 내주자 연정훈과 몇몇 상사들이 비로소 전시홀로 향했다.안시연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았고 이런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을 그녀는 장 교수와 그의 팀에게 남겨주었다.연정훈은 검은색 수트를 입고 있었는데 신사처럼 고급스러우면서도 우아했고, 잘 다려진 바짓가랑이는 그가 걸어 다닐 때 그의 훤칠한 다리를 더 꼿꼿하게 부각해 주었고, 배가 불룩 나온 기름진 중년 상사들 사이에서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안시연은 그렇게 빛나는 그를 보며 마음속에서 맴돌던 의문은 잠시나마 풀려졌다.그녀는 그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여유 있게 연설하는 모습을
매체 기자들 앞에서 연정훈과 양민아는 매우 여유로웠다.그 이야기에 대하여 그들은 회피하고 더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나란히 무대 위에 서서 화제의 중심을 모두 예술관으로 이끌었다.하지만 여전히 포기할 줄 모르고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기자가 있었다.양민아는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연정훈을 한 눈 보고 말했다.“여러분, 연 대표님은 항상 공사 구분이 확실하신 분이에요. 예술관의 준공은 아무 개인적인 이유 없이 오직 경인시의 관광을 돕고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입니다.”그러면서 카메라는 연정훈으로 향했다.연정훈의 답변은 양민아가 한 말과 별다르지 않았다.안시연은 무대 아래쪽에 서서 카메라의 규칙적인 작동 소리를 무심코 들으며 침묵을 지켰다.옆 사람은커녕 그녀 자신도 연정훈과 양민아가 매우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의 사고방식 또한 완전히 일치했다.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그들은 이미 장내의 흐름을 손에 넣었다.이런 능력은 그녀에게 아마 한 평생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진행자가 주의를 주기 전까지 그녀는 생각에 빠져 무대 위의 말들이 하나도 안 들렸다.“다음 순서로 연 대표님과 여러 상사분께서 함께 이번 전시회 제막식 기념 테이프 커팅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장 교수는 안시연을 불러내고 구혜은과 같이 팀을 대표하여 무대에 오르게 했다.단지 연정훈의 체면을 봐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안시연은 알고 있었다.그녀는 평온하게 웃더니, 자신보다 더 무대에 설 자격을 갖춘 선배를 추천하고 자신은 인파 속으로 조용히 숨어버렸다.무대 위, 연정훈과 장 교수가 중앙에 서 있고 그들 옆에는 양민아가 서 있었다.기념 테이프가 잘린 동시에 ‘찰칵’, 완벽한 단체 사진이 완성되었다.귓가에선 박수 소리와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안시연은 마치 진정한 스태프처럼 자질구레한 일을 차분하게 처리하며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바쁘게 움직였다.도중에 연정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한 통 걸었다.서로 한 층만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그는 VIP
“당신을 때린다고요? 내가 때리는 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이런 곳에 누구 마음대로 오는 건데요.”양지원은 드센 태도로 소현정의 따귀를 두 번 때리고는 화가 나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나한테 초대장이 있는데 왜 오면 안 되죠?”“초대장? 저기 마침 전시회 책임자가 계시네요.”양지원이 비웃고는 고개를 돌려 안시연을 보며 말했다.안시연은 두피가 당기는 듯했다. “양 대표님, 필요한 거라도 있으신가요?”양지원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소현정의 초대장을 가져다가 땅에 던졌다.“이분은 다른 사람의 초대장을 남용했으니 당장 내보내 주시길 바래요.”소현정은 얼굴을 감싸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쳐다봤다.안시연이 그 초대장을 들어 위에 있는 이름을 보니 오성호였다.이 이름은 아무 이름이 아닌 재벌 랭킹에서도 유명한 양지원의 남편이었다.양지원이 이 여성에 대한 태도를 보니 안시연은 금세 이해가 되었다.정실과 첩이 부딪쳤는데 첩이 양지원의 남편의 초대장을 가지고 있은 것이다.VIP 관람 구역에는 실명이어야 하고 오는 사람마다 다 귀빈이기에 혼인이 오지 못하여 대신 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람을 내쫓는다면 밖에 있는 기자들에게 화젯거리를 만들어주게 된다.안시연이 생각하는 동안 양지원은 계속 부담을 주고 있었다.“이 여자는 성이 소씨 라고요.”소현정은 이 말을 듣고 말했다.“이건 내 남편 초대장이에요. 남편 대신 와도 괜찮죠?”안시연은 심장이 덜컹하는 듯했다.양지원은 이 말을 듣고 낯빛이 어두워졌다.소현정은 양지원의 모습을 보고는 득의양양해하며 안시연에게 말했다.“우리 남편한테 연락이라도 해드릴까요?”양지원은 눈을 감고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게 하세요.”안시연은 더 이 여자를 내보내지 않으면 큰 일이 생길 것을 알고 있다.안시연은 초대장을 거두고는 소현정에게 말했다.“3층에 디저트가 있는데 올라가셔서 차라도 마시는 게 어떤가요.”양지원은 안시연을 한눈 쳐다봤다.소현정은 자신을 말을 돌려서 내보내는
소현정은 수도 없이 진실이 밝혀지는 날을 환상해 보았다. 양지원이 친딸을 봤을 때 딸이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 장면이 얼마나 통쾌할지.그러니 안시연이 연정훈의 뒤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안시연의 얼굴을 보고 또 이름을 듣고 난 후, 이 여자애가 바로 양지원의 딸인 것을 확정할 수 있었다.소현정은 먼저 놀라고 그러고는 당황해했다. 필경 모녀는 마음이 이어져있다고 하니 이렇게 마주 향해 보면 양지원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라도 할까 봐 걱정했다.그러고는 질투와 분노가 가득했다.천한 년.경인시 하인 굴에 처박에 넣었는데 연정훈의 다리를 잡았더니.소현정이 혼란스러울 때 연정훈은 이미 사람을 불러 강제로 3층에 데리고 가서 차를 마시게 했다.누군가 자신을 끌고 가서야 소현정은 정신을 차렸다.김세연과 양민아는 양지원더러 화를 풀라고 다독였다.연정훈은 안시연을 보호했다.화면이 머릿속에 박혀 소현정은 급히 달아났다.안시연이 연정훈을 잡은 건 그렇다고 쳐도 연씨 가문과 양씨 가문이 이렇게 가까운 사이인데 계속 연락을 하게 내버려둔다면 종이로는 불을 감싸지 못하게 된다.어떡하지.“사람이 이미 떠났고 나도 괜찮아요. 아가씨가 처리를 잘했어요. 내 조건도 만족을 시켰고 기자들이 일을 만드는 것도 피했으니 말이에요.”양지원이 안시연을 보며 말했다.안시연이 웃으며 말했다.“만족하시면 다행이에요.”말을 하고는 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했다.연정훈이 안시연의 손을 잡았다.맞은 편에 있는 김세연과 양지원 모녀는 이 모습을 똑똑히 봤다.김세연은 미쳐 돌아버릴 것 같았다.김세연은 연재혁에게 당신 아들이 하는 꼴 좀 보라고 하고 싶었다.연정훈은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한 듯 말했다.“지원 이모, 전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양지원은 차분했다.“그래.”연정훈은 손을 잡고 나갔다.김세연은 어색해서 미칠 것 같았다. 미래 사돈에게 웃고는 양민아를 바라봤다.양민아는 얼굴색이 변하지 않았다.“이모, 제 전시관에 가보실래요?”김세연
양민아의 전시회에서 돌아온 김세연은 먼발치에서 연정훈이 안시연의 손을 잡고 글쎄 문화국의 국장 양민혁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 광경에 김세연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까무러칠 뻔했다.그러자 양지원은 그녀 곁에 서서 농담조로 입을 열었다.“사돈댁이 엄청나네요. 저라면 겁 나서 결혼 못 시키겠어요.”김세연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오늘이 어떤 자리인데 연정훈은 아직도 안시연과의 관계를 숨기지도 않고 다 드러내고 다닌단 말인가. 정말 혈압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기분이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혈압약을 뒤적이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멀지 않아 양 국장이 자리를 뜨고 안시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자 연정훈이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렇게 기뻐?”안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기분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기에 입을 앙다물고 중얼거렸다.“어머니께서 엄청 혼내실 거예요.”그녀의 말에 연정훈이 멀지 않은 곳을 슬쩍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침 그를 죽어라 노려보고 있는 김세연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그러나 그는 담담하게 시선을 거두며 안시연의 얼굴을 꼬집었다.“어쩔 수 없지. 그래도 네가 마음속으로 날 욕하는 것보다 낫지.” 이에 당황한 안시연이 입술을 오므리며 조금 미안한 듯 말을 더듬었다.“누가 욕을 했다고...”연정훈은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그녀를 달래주는 것 또한 달가웠다.밤에는 함께 잠을 청하지만 낮에는 낯선 사람 행세를 해야 한다니, 하물며 오늘 같은 날에는 그녀가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욕하면 욕했지 뭐. 넌 욕해도 돼.”그 말에 안시연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윽고 그녀는 눈을 들어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연정훈은 그러한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그런데 그때, 그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안시연은 이미 마음이 절반 이상 가라앉은 터라 그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주었다.그리고 전화를 받은 연정훈이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서재의 소파 옆에는 옷들이 흐트러져 있었다.양시연은 연정훈의 품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이마에 맺힌 땀이 흘러내렸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입가에 가볍게 달라붙었다.방금 침대에서 벗어났는데 어느새 다시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머릿속이 터질 듯 복잡해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책상 위 전화가 계속 울렸지만 연정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양시연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다듬는 데만 열중했다.양시연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전화 좀 받아요. 계속 울리잖아요.”연정훈은 심드렁하게 고개를 들더니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시간 없어.”“뭐예요.”양시연은 연정훈의 어깨를 툭 치며 투덜거렸다.“할 일도 없잖아요...”게으름을 피우는 게 뻔했지만 연정훈은 태연하게 말했다.“좀 쉴래. 하던 거 마저 하자.”양시연은 당황했다!‘연정훈 씨 정말 이렇게까지 목말라 있었단 말이야?’그녀가 믿기지 않는 듯 그를 바라보자 연정훈은 장난스레 웃으며 그녀의 코를 살짝 찔렀다.“힘들어?”양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고 더 이상 그를 노려보는 것도 지쳤다.여전히 전화벨은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녀는 결국 연정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전화선 좀 뽑아줄래요? 너무 시끄러워요.”연정훈도 괜찮다고 생각한 듯연정훈은 가볍게 양시연의 허리를 두드리더니 일어나서 전화선을 뽑아버렸다.양시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당연히 전화를 받을 줄 알았는데 돌아온 연정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다시 안았다.“혹시 급한 일일지도 몰라요.”“급한 일이어도 상관없어.”“하지만...”“지금은 네 옆에만 있고 싶어.”양시연의 심장 박동이 조금씩 느려지며 진정되었고 그녀의 입가에는 작게 미소가 번졌다. 무의식적으로 연정훈의 목을 감싸 안았다.사실 그녀도 원하고 있었다.어젯밤 이후 모든 것이 그녀가 예상했던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버렸으며 상황이 고요해지자 양시연의 머릿속
대낮의 키스 장면에 놀란 가정부들은 하나둘 도망쳤고 양시연은 이 상황이 너무 창피해 얼굴이 화끈거렸다.서재로 들어와 문이 닫히자마자 연정훈이 그녀를 문에 밀어붙였고 양시연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둘 사이를 막았다.“정훈 씨, 진짜 좀 자제할 수 없어요?!”연정훈은 양시연의 붉어진 얼굴과 화난 눈빛을 보며 태도를 살짝 고쳐 잡았다. 그는 그녀에게서 물러나며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아무것도 안 했어.”“아무것도 안 했다고요?”양시연은 연정훈을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가정부들이 놀라서 도망갔잖아요.”연정훈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그건 가정부들이 멘탈이 약한 거겠지.”양시연은 기막혀 쏘아붙였다.“그건 당신이 너무 뻔뻔해서 그렇거든요!”“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대낮에...대낮엔 집에서 와이프랑 키스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양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기가 막힌 웃음이 터진 양시연은 연정훈을 밀어내며 두 손을 얼른 뒤로 감추고 문에 기대섰다.“헛소리하지 말아요. 나 아직 당신이랑 따질 게 남았거든요.”연정훈은 그녀의 손길에 두 발짝 뒤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입꼬리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양시연은 손을 빼려 했지만 이미 연정훈에게 끌려 그의 책상 앞으로 갔고 이내 의자에 눌러 앉혔다.그녀는 곧바로 일어서려 했지만 연정훈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양시연의 앞을 막았다. 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둘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양시연은 그를 노려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눈빛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양시연은 손가락으로 연정훈을 가리키며 이를 악물고 물었다.“어젯밤 규칙 어긴 거 맞죠?”연정훈은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어겼지.”양시연은 뭐라고 더 말하려 했으나 이미 할 말을 잃은 채 입만 벙긋거렸다.그는 그녀의 이마에 흩어진 앞머리를 슬며시 넘기며 부드럽게 물었다.“그래서 날 어떻게 벌
양시연은 연정훈이 계속 쳐다보는 게 불편해서 눈을 흘기며 잠시 후 거울을 조금 돌렸다.뒤에서 연정훈은 작은 소리로 살짝 웃었다.양시연은 어이없었다.“...”‘웃어? 뭐가 웃긴 거지?’양시연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손길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끝에 머리를 조금 남긴 채 묶고는 일어섰다.“나 먼저 내려갈게요.”양시연이 연정훈에게 통보하자 연정훈이 말했다.“아주머니에게 잔치국수 한 그릇 만들어 달라고 해줘.”양시연은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누가 정훈 씨 말을 전해주겠다고 했나요? 게으른 사람은 배고프면 참아야죠.”연정훈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래.”양시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먼저 내려갔다.주방은 한창 바쁠 때였다. 양시연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은 간식을 몇 가지 주문한 후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이렇게 말했다.“잔치국수를 야채 많이 넣고 하나 만들어 주세요.”“알겠습니다.”양시연은 주방에서 나왔고 거실에는 햇살이 적당하게 들어와 있었다.그녀는 기분이 좋았고 잠시 나비를 보러 돌아다녔다. 그 후 식탁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으며 연정훈은 곧바로 내려왔다.두 사람은 마주 앉아서 연정훈은 면을 먹고 양시연은 그녀가 주문한 디저트를 먹었다.처음에는 서로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양시연은 어젯밤의 일을 계속 생각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일부러 연정훈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중간에 연정훈은 연속해서 그녀의 음식을 세 번이나 집어 갔고 양시연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연정훈을 째려봤다.연정훈은 얼굴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그녀의 그릇에서 음식을 집어 갔다.양시연은 참지 못하고 식탁 아래에서 연정훈의 다리를 발로 찼다.그는 다리를 앞으로 내밀어 그녀가 쉽게 차도록 만들었다.양시연은 어이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연정훈의 진지한 얼굴을 마주쳤고 낮은 목소리로 디스했다.“정훈 씨, 진짜 유치하네요.”연정훈은 그제야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너만큼 유
새벽 침실에서 양시연은 이불 속에 엎드려 온몸을 파묻고 있었다.입안엔 가글 후 남은 민트 향이 맴돌았지만 여전히 연정훈의 느낌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얼굴은 계속 화끈거렸고 내내 식지 않았다.‘연정훈, 이 뻔뻔한 인간’연정훈은 그녀의 등 뒤에서 이불이 들추어지더니 뒤에서 양시연을 안았다.양시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싫다는 듯 앞으로 몸을 조금 더 움직여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그러나 연정훈은 팔에 살짝 힘을 주어 양시연을 단단히 끌어안았고 양시연은 한숨을 내쉬며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정훈 씨는 안 더워요? 나 잘 거예요!”‘귀찮아 죽겠네’“안고 자고 싶어.”“싫어요. 나 혼자 잘래요.”“알았어.”연정훈은 순순히 대답하면서도 그녀의 몸을 돌려 자신과 마주 보게 한 뒤 손으로 머리를 가슴 쪽으로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양시연은 당황했다.???양시연은 불만스럽게 이불 속에서 몸을 불편하게 꿈틀댔다.그러자 연정훈은 몸을 돌려 익숙하게 그녀를 제어했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얼굴을 잡더니 그대로 입술을 덮쳤다.“음...”양시연의 어깨가 긴장한 듯 움츠러들었다. 입술은 연정훈의 키스에 마비되는 듯했고 머릿속에는 조금 전의 기억들이 또다시 떠올랐다. 연정훈을 밀어내려 했지만 손은 어느새 그의 손에 잡혀 그의 가슴 위에 올려졌다.연정훈의 심장 박동이 손바닥에 느껴지자 양시연의 마음도 미세하게 흔들렸고 자연스레 힘이 빠져 손이 그의 가슴 위에 고정됐다.그와 몇 번이나 키스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고 연정훈에게서 떨어졌을 땐 양시연은 이미 숨이 가빠 있었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그를 발로 툭툭 찼다.연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의 얼굴을 살짝 만졌다.“잘래. 안 잘래?”양시연은 어이없었다.“...”양시연이 싫다고 하면 또 괴롭힐 게 분명했다.“조금만 풀어줘요...”양시연의 말투는 다소 부드러워졌다.연정훈은 기분이 좋아진 듯 양시연을 품에 안고 다시 누웠다. 양시연이 등을 돌리든 말든 상관없이 꼭 끌어안고 한 팔은 그녀의
욕실에서 물소리가 부드럽게 퍼지고 있었다. 양시연은 큰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고 연정훈은 조금 떨어진 그곳에서 샤워하고 있었다.조명이 은은하게 빛나 욕실은 아늑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양시연은 물줄기를 마사지 모드로 바꾸고 물의 부드러운 압력에 몸이 노곤해지며 마치 물속에 녹아드는 듯했다.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샤워 소리가 멈췄다.타일 위에 맨발이 닿는 소리가 하나씩 울릴 때마다 양시연의 심장도 덩달아 쿵쿵 뛰었다.얼마 후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연정훈은 이미 가운을 걸치고 축축한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며 서 있었다.그는 양시연을 보며 부드럽게 물었다.“뭐 마실래?”“...물 주세요.”“알겠어.”연정훈이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자 양시연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잠시 뒤 욕조 끝에 몸을 기대고 있던 양시연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른한 눈길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연정훈은 물 한 잔을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양시연이 손을 내밀어 받으려 했지만 그는 물을 건네지 않고 욕조 옆의 검은색 모던 의자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며 앉았다.그 의자는 욕조와 가까운 곳에 있어 팔을 살짝 뻗으면 욕조 가장자리에 닿을 거리였다. 연정훈은 물잔을 들어 양시연의 입가에 가져다 댔고 컵 안에는 빨대가 꽂혀 있었다.몇 시간 전 병원에서 자신이 연정훈을 이렇게 챙겼던 기억이 스쳤다. 그땐 오히려 양시연이 연정훈을 쥐락펴락하며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터였다.‘쯧.’그녀는 불만스러운 마음에 눈을 감고 빨대를 꽉 물었다. 예상치 못하게 컵 안에는 달고 시원한 꿀물이 담겨 있었다.양시연은 반쯤 마시고 빨대를 빼낸 뒤 욕조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었다.연정훈은 컵을 거두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 양시연을 바라보며 떠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딱 그 순간 양시연은 연정훈의 눈빛에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아차렸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참다 못한 그녀는 손으로 물을 퍼 올려 그의 얼굴에 튀겼다.연정훈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더니 여전히
“안돼...”방안에는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곧 뜨거운 숨소리가 들려왔다.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에 두 사람은 온몸이 바짝 긴장되었다.이젠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 양시연은 연정훈의 어깨를 살짝 깨무는 것으로 반항을 포기했다.너무 오랫동안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보니 처음 관계를 가진 그날만큼이나 긴장이 되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저 눈을 뜨면 눈 앞의 전등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키스는 쉴 새 없이 몰려왔고 숨이 벅찬 양시연이 밀어내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연정훈 이 나쁜 자식! 풀에 죽은 강아지 모습을 연기한 늑대가 따로 없어! 이러다가 정말 복상사라도 나면 어떡해!’몇 년 동안 닿지 못해 급한 연정훈의 마음을 알겠으나 양시연은 정말 이러다가 죽지 않을 까 걱정이 되었다.과거 연정훈과 처음 만났던 시절에도 이렇게 급했던 적은 없었다. 양시연은 초반에만 반항이라는 걸 시도했고 그 뒤로는 연정훈의 페이스에 겨우 맞춰갈 뿐이었다.그리고 현재, 두 손목은 연정훈의 목에 감겨 있었고 입술을 잡혀 먹힐 것처럼 키스를 하고 있었다.양시연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이제 몸도 제 것이 아닌 것 같고 마치 연정훈과 한 몸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다시 눈을 뜨자 두 사람은 자세를 바꿔 양시연이 연정훈의 위로 올라갔다.연정훈의 호흡 소리에 맞춰 양시연도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그러다가 연정훈이 한 손으로 양시연의 머리를 감싸쥐고 또 다른 한 손으로 턱을 쥔 채로 키스를 이어갔다. 그렇게 둘은 또 한 몸이 되었다.겨우 끝나가나 싶었는데 다시 불씨가 보이자 양시연은 연정훈의 가슴팍을 꼬집었다.갑작스러운 고통에 연정훈이 앓는 소리를 냈다.그리고 그 틈을 타 양시연은 빠르게 연정훈의 품에서 떨어졌다.그렇게 허둥지둥 도망을 가다가 방의 전등이 꺼졌다.하지만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연정훈은 정확하게 양시연을 찾아 다시 품에 꽉 껴안았다.양시연은 살짝 인상을 구긴 채로 머리를 굴려 가볍게 연정훈을 밀어냈다.이미 한바탕 체력을 써버린 터라
주변 공기는 3초 동안 얼어붙었다.양시연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도망가려 몸을 움직였다.그러나 연정훈의 품안에서 도망갈 구멍은 없었고 어느새 두 손이 잡히고 다리까지 포획된 채로 키스가 이어졌다.“읍!”도망은커녕 호흡까지 뺏겨버렸다.병원에서의 키스는 감히 키스라고 불리울 수도 없었다.강렬한 키스는 양시연을 삼켜버릴 것 같았다. 양시연이 고개를 돌리려 하면 연정훈이 손을 뻗어 턱을 잡고 입을 벌리게 했다. 입술을 할짝이고 깊게 감아오는 바람에 양시연은 온 몸에 짜릿짜릿 전율이 울렸다. 양시연은 어느새 이성을 잃고 힘이 스르르 풀려버렸다.양시연이 반항할 의지가 없어 보이자 연정훈은 잡았던 손을 놓고 겁없이 이불 안으로 들어왔다.그 사이 양시연의 입술에서 잠시 멀어져 이마 위로 거친 숨소리를 늘어놨다. 그리고 콧등, 볼, 귀, 쇄골까지 키스를 이어갔다.양시연은 연정훈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콩닥콩닥거렸다.연정훈은 절대 틈을 보이지 않고 양시연을 점점 더 옭아맸다. 그래서 양시연은 연정훈이 오늘을 위해 오랫동안 계획을 세웠던 건 아닌 지 의심이 갔다.양시연은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쳐든 채로 키스를 순순히 받아드렸다.“정훈 씨...”그 소리에 연정훈도 두 눈을 감고 지금 이 순간을 몸으로 느꼈다.“왜?”양시연은 침을 꿀꺽 삼키고 양 손을 연정훈의 어깨 위로 올렸다. 그리고 살짝 밀어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나랑 약속했잖아요... 음...”말이 끝나기도 전에 쇄골에서 짧은 고통이 찾아왔다.연정훈은 고개를 들어 다시 양시연의 콧등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며칠 동안 날 애달게 한 거로 아직 부족해?”양시연은 온 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고 나른한 얼굴로 연정훈을 노려보며 말했다.“누가 애달게 했다고... 그래요?”“널 건드리게도 하지 못하게 했잖아.”“그건...”“안된다는 말은 하지마.”연정훈은 양시연의 입술에 입을 맞췄고 양시연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리고 연정훈은 양시연의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
병원에서 나오자 벌써 저녁 11시가 넘었다.그러나 연정훈은 전혀 졸린 기색 없이 되려 활력이 넘쳤다.그건 양시연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도착한 양시연은 여 아주머니에게 연정훈의 상태를 알려주고 또 나비를 찾았다.드디어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샤워를 마치고 나니 안방 공기에 달콤한 바디 워시 향이 맴돌았다.양시연은 이불을 쭉 당겼고 이불에서 상대의 체온이 느껴졌다.양시연이 고개를 돌려 연정훈에게 물었다.“아직도 불편해요?”어둠 속에서 연정훈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고 조금 뒤척이다가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이상을 눈치 챈 양시연이 물었다.“어디 아파요?”연정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위가 조금 아프네.”양시연은 큰일이라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연정훈의 옆으로 다가갔다.“팥빙수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덥고 차고 반복하니까 위가 아픈거죠.”그리고 빠르게 연정훈 주변의 무드등을 켰다.어두운 불빛이 연정훈의 얼굴을 비췄고 연정훈의 안색이 평소보다 창백한게 보였다. 게다가 눈만 꿈뻑거리는 모습에 공격력은 제로로 보였다.“약 챙겨 올 게요.”양시연은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려 했다.그러나 이불 속에서 연정훈이 손을 뻗어 양시연을 잡았다.연정훈의 손바닥은 아직도 비정상적으로 뜨거웠고 그 온도에 양시연은 심장이 철렁했다.“왜 그래요?”양시연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연정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약 먹을 필요 없어. 그냥 위가 조금 쓰릴 뿐이야.”양시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소화가 안돼서 그래요. 소화제 가지고 올 게요.”그러나 연정훈은 대답 대신 양시연을 침대에 도로 눕게 했다.“약 바로 저기 있는데...”양시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정훈은 이불을 덮어주고 양 팔로 양시연을 품에 가두었다.“...”양시연은 두 눈을 감고 이를 꽉 깨물었다.‘정말...’그리고 고개를 돌려 연정훈을 힐끗 노려봤다.“또 힘이 솟아나는 거죠?”“그래.”연정훈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양시연은 어이가 없어
연정훈은 가만히 양시연을 바라만 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양시연도 다급해하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로 연정훈과 시선을 마주했다.연정훈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양시연의 페이스에 말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그래서 먼저 입을 열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양시연은 여전히 말없이 연정훈을 향해 손을 젓고 있었다.“...”그렇게 한참 실랑이가 이어지고 연정훈은 양시연의 옆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양시연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서로의 호흡이 섞이고 닿을락 말락 가까이 붙었다.양시연의 시선은 연정훈의 입술로 고정되고 그 시선은 심히 도발적이었다.연정훈은 침을 꿀꺽 넘기고 숨까지 멎은 채로 이어질 양시연의 행동을 기다렸다.양시연의 시선은 입술에서 코까지,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눈으로 향했다.양시연은 자세를 바로 하고 턱을 살짝 치켜들어 당장이라도 연정훈에게 키스할 것처럼 굴었다.그러자 연정훈은 온몸이 굳어버렸다.양시연의 호흡이 점점 더 가깝게 느껴졌으나 곧 허공에 멈춰 섰다.연정훈은 멈칫했고 웃음기 섞인 양시연을 발견했다.“...”그제야 당한 걸 알아차린 연정훈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두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휙 돌렸다.양시연은 웃음이 터졌고 연정훈이 고개를 돌리는 찰나 머리를 잡고 입술에 키스했다.쪽.선명한 소리에 연정훈은 이게 꿈이 아닌지 의심이 갔다.방금까지 털을 바짝 세우고 있던 고양이가 순식간에 장화 신은 고양이로 변해버렸다.양시연은 속으로 웃고 있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링거를 톡톡 두드렸다.“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연정훈은 양시연의 몸에 위치추적기라도 단 듯 시선으로 졸졸 따라갔다.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한참 뒤 연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소리만 크고 실속은 없네...”양시연은 뒷짐을 진 채로 말했다.“계속 그러면 뽀뽀도 없어요.”“...”연정훈은 방금 사이에 코피를 얼마나 흘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