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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2화

이연석이 들어온 다음부터 정가혜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전 남자 친구가 맞은편에 앉아 있고 현 남자 친구가 옆에 앉아 있는 상황보다 더 난감한 일은 없었다.

원래는 어색함을 참고 이 식사만 끝내고 가려고 했지만 심형진이 이런 상황에서 부모님을 만나자는 말을 꺼내면서 더 난처해졌다.

정가혜는 접시 속 음식을 몇 초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며 심형진에게 물었다.

“선배 부모님께서 이렇게 빨리 아셨어요?”

“응, 부모님한테 너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해서 말했어.”

심형진은 말하고 나서 정가혜의 얼굴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그녀가 가고 싶지 않아 한다고 생각해 얼른 덧붙였다.

“가혜야, 네가 원하지 않으면 안 가도 돼. 내가 거절할게.”

심형진의 부모님이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정가혜가 심형진에게 거절하라고 하면 그녀가 예의 없고 눈치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결혼을 전제로 만난 사이였기 때문에 부모님을 만나지 않는다면 정가혜는 비난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정가혜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비록 한 달밖에 사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나 부모님을 만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동의했다.

“괜찮아요. 만날게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예의 바르게 흘러가는 대화였지만 이연석은 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정가혜를 쏘아보며 말했다.

“정가혜 씨와 심 선생님은 꽤 빠르네요. 이렇게 빨리 부모님을 만나고 결혼까지 하려고 하는 건가요?”

이런 빈정거리는 말에 정가혜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심형진은 고개를 들어 이연석을 바라보며 웃었다.

“결혼을 전제로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거죠. 이 도련님은 여자 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해 본 적 없나요?”

“전...”

이연석이 반박하려 했지만 심형진이 말로 끊어버렸다.

“거의 잊을 뻔했네요. 이 도련님은 연애를 그저 재미로 하는 거니까 부모님께 소개할 필요가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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