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원도 심형진처럼 예의를 갖추었지만, 이승하를 대할 때는 조금도 비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자신의 상사로 존경하는 태도를 보였다.“괜찮습니다.”이승하는 냉정한 목소리로 두 글자를 말한 뒤, 상대가 너무 곤란해할까 봐 한마디를 덧붙였다.“위가 좋지 않아 많이 먹지 않는 편입니다.”“그렇군요.”윤주원은 그의 위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따뜻한 보양국을 좀 가져다드릴게요.”이승하는 말리려 했지만 윤주원은 이미 주방으로 향했다.막 자리에 돌아온 서유는 그 광경을 보고 이승하에게 웃으며 물었다.“서희 씨 남편, 꽤 괜찮죠?”서유는 아직 주서희와 윤주원이 혼인 신고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들이 이미 부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승하는 이미 윤주원의 인품과 그가 아주 좋은 의사임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응, 괜찮네.”“그럼 심 선생님은요?”그가 드물게 누군가를 인정하는 것을 본 서유는 참지 못하고 한 번 더 물었다. 이승하는 식탁에 엎드려 잠에 빠진 심형진을 힐끗 보고는 대답 대신 물음으로 답했다.“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이 반문은 이미 그의 견해를 충분히 드러냈고 주가혜는 그 말을 듣고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죄송해요, 난감하게 만들었네요.”이승하는 주가혜가 듣고 있는 것을 보고도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게 고개를 저었다.“이연석이 와서 주가혜 씨를 곤란하게 만든 것이니 집에 돌아가면 혼내줄 겁니다.”심형진이 신사답지 못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몇 잔 더 마시게 하도록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연석을 봐주겠다는 뜻은 아니었다.주가혜는 겉으로는 차갑게 보이는 이승하가 사실은 공정하게 행동하며, 누구 편도 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약간 감탄했다. 서유가 이승하와 결혼한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이렇게 차분하고 냉정하며 감정이 안정적인 남편은 평생 의지할 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주가혜는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이 매부를 인정하며 이승하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심형진을 부축했다.“선배
주가혜는 차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아 창문을 조금 내리고 틈으로 바깥에 있는 이연석을 바라보았다.“당신이... 여기에 왜 있어요?”“신경 쓰지 말고 문 열어요!”“당신이 뭘 하려는지 말하지 않으면, 문 안 열 거예요...”그가 심형진에게 복수하러 온 것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함부로 문을 열어줄 수 있을까? 이연석은 분노를 참으며 고개를 숙이고 틈 사이로 주가혜와 눈을 마주쳤다.“술꾼을 데려다주려고요!”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사람을 죽여서 화를 풀 수도 없고 손을 쓸 수도 없으니 그냥 바보처럼 따라와서 도울 수 있는지 보는 것밖에 없었다!“선배를 데려다준다고요?”주가혜는 이연석이 이렇게 착하게 굴 줄은 몰라서 약간 놀랐다.“주가혜 씨,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이연석이 다시 화를 낼 것 같아 보이자 주가혜는 몇 초간 망설이다가 결국 문을 열었다. 이연석은 곧바로 뒷좌석으로 돌아가 차 문을 열고 심형진의 손을 잡아 그를 차 밖으로 끌어냈다.“이봐요, 그렇게 거칠게 하지 마요, 머리가 부딪쳤잖아요!”“자업자득이에요!”“...”주가혜는 차를 주차할 틈도 없이 황급히 따라갔다.“이연석 씨, 좀 조심해요, 머리가 몇 번이나 부딪혔어요!”“이봐요, 안전통로로 끌고 가지 마요, 계단에 머리가 부딪칠 거예요...”“아——”심형진은 계단에 부딪혀 깨었지만 비명을 한 번 지르고는 다시 통증 때문에 기절해 버렸다.뒤따라오던 주가혜는 무서워서 급히 달려가 ‘복수’하는 이연석을 막았다.“몇 살이에요, 왜 그렇게 유치해요?”유치함의 화신인 이연석은 실제로 그를 끌고 가려 했지만 주가혜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그를 업었다.그는 심형진을 문 앞까지 업고 가서 그의 손을 잡고 지문을 인식시켜 문을 열고 그대로 심형진을 던져버렸다.쾅! 큰 소리가 났다!주가혜는 놀라서 급히 심형진의 숨이 붙어있는지 확인했다.다행히 호흡은 여전히 안정적이었다.주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힘들게 심형진을 소파로 옮겼다.그 후 욕실로 가서 물을
이연석이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심형진이 싫어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연석에게 심형진을 위층까지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심형진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심형진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너무한 것 같아서 그녀는 서둘러 이연석을 밀어내며 그와 거리를 뒀다.“밤에는 쌀쌀하니까 이불 덮어줘야겠어요.”그는 소파에 있던 담요를 잡아당겨 심형진에게 덮어줬다. 무심하게 툭 던지는데 담요가 심형진의 얼굴까지 전부 가렸다. 그 모습에 눈을 부릅뜨던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담요를 정리해 준 뒤 창문을 두 개 더 열어놓고 자리를 떴다. 자리를 뜨려는 그녀를 보며 계속 어두워져 있던 이연석의 얼굴이 점차 환해졌다. 앞뒤로 서서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는데 어두운 가로등 아래 그들의 뒷모습은 점점 더 길게 드리워졌다. 앞서가던 이연석은 코너를 돌 때마다 발걸음을 늦추고 그녀의 그림자가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 입구로 나와서는 각자 운전하고 헤어져야 하는데 그녀가 차에 타는 순간 그가 창문을 두드렸다.“나 술 마셔서 운전 못 해요.”그 말에 그녀는 눈을 흘겼다.“그럼 아까는 어떻게 왔어요?”“아까는 음주단속 하는 경찰이 없더라고요.”“돌아가는 길에도 없을 거니까 그냥 가요.”그를 무시한 채 안전벨트를 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손이 차창 밖에서 비집고 들어와 잠금 해제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그녀가 고개를 들기도 전에 뒷좌석 문이 열렸고 몸집이 큰 그가 좁은 차 안으로 빠르게 비집고 들어왔다.그녀의 차량은 BMW 미니 쿠퍼로 공간이 넑직한 편이 아니라 건장한 남자가 앉아 있으면 꽤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내가 차 사줬잖아요. 왜 이런 차를 타고 다녀요? 답답해 죽겠네.”허리를 숙인 채 그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답답하면 연석 씨 차 운전해서 돌아가요.”그의 스포츠카도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녀의 미니 쿠퍼 차량보다도 더 못했다. 그녀의
그녀의 안색이 굳어지자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빤히 노려보았다. 정가혜는 그를 무시한 채 화를 참으며 액셀을 세게 밟았다. 두 사람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그가 발을 들어 그녀의 의자를 걷어찼다.“난 여자한테 준 건 절대 돌려받지 않아요. 내일 우리 집에 가서 물건들 다시 가져가요.”“어쩌죠. 나도 돌려준 물건은 다시 찾아오는 법이 없는데.”그녀가 핸들을 돌리며 대답했다.“꼭 나한테 이렇게 화풀이를 해야겠어요?”그 말에 그녀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동안 돈 때문에 당신 만난 게 아니에요. 그래서 다 돌려준 거예요. 헤어졌으니까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잠깐 망설이던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자꾸 나 이렇게 찾아오는 거 선배가 많이 싫어해요.”그 말에 화가 치밀어올랐다.“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싫은 게 아니고?”그녀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당신도 들었다시피 조만간 선배 부모님 뵈러 갈 거예요. 그럼 자연히 결혼 얘기도 오가겠죠.”“선배랑 결혼할 사이인데 자꾸만 이렇게 당신 만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만나게 되면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요.”가슴이 무너져 내린 그는 저도 모르게 무릎에 올려놓은 손을 불끈 쥐었다. “오늘 밤은 심형진 씨가 먼저 날 도발하고 날 비꼰 거예요. 지난번 나한테 얻어맞은 일 때문에 앙심을 품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거라는 걸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정직한 의사이기는 하지만 단점이 없는 남자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이 여자는 사람을 볼 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그렇다고 밥 한 끼 같이 먹고 사람을 부정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심형진이 그를 먼저 도발했다는 걸 그녀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자꾸만 그녀를 찾아와 귀찮게 했기 때문에 심형진이 그런 것이
정가혜가 떠난 후 윤주원은 대담하게 이승한테 국 한 그릇을 비우게 하고 나서야 비로소 저녁 식사가 끝이 났다. 이연석과 심형진의 힘겨루기로 인해 서유를 주서희를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서희 씨,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연이의 손을 잡고 사람들을 배웅하던 주서희가 발걸음을 멈추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서유를 돌아보았다.“아니에요. 감기 기운이 좀 있는 것 같아요.”“아니에요. 얼마 전에 이상한 아저씨가 서희 이모를 데려갔기 때문이에요.”연이의 말에 서유는 그 사람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렸고 이내 주서희를 잡아당기며 위아래로 그녀를 샅샅이 훑어보았다.“소준섭 씨가 또 찾아온 거예요? 서희 씨를 괴롭힌 거예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주서희는 그 물음에 이내 대답하지 않고 화난 척하며 연이를 노려보았다.“이모한테 말하지 않기로 나랑 약속했었잖아.”아이는 꼬질꼬질한 인형을 안고 입을 삐죽거렸다.“어른들은 왜 자꾸 거짓말을 해요?”아이들의 세상은 매우 단순하다. 연이를 탓할 수 없었던 주서희는 서유를 향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찾아왔었어요. 이젠 괜찮아졌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소준섭이 그녀를 침범했던 사실을 연이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사실을 숨긴 채 가볍게 한마디 했다.“정말 괜찮은 거예요?”마치 큰 병에라도 걸린 듯 그녀의 안색은 너무 보기 안 좋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정말 무슨 일이 있었다면 오늘 이렇게 많은 음식을 대접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소준섭이 그녀에게 강요했던 일에 대해서는 꼭 복수할 것이다. 그러나 서유가 자신 때문에 이승하한테 부탁이라도 할까 봐 그게 걱정되어 그녀는 서유에게 알리지 않았다. 지금껏 이승하의 밑에서 일하면서 한 번도 그에게 폐를 끼친 적이 없었고 늘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것이 그녀만의 규칙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소준섭 사이의 일은 이승하가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서유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챙겨 먹긴 했는데...”“나 임신이 안 될 것 같아요.”서유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많은 약을 챙겨 먹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이번 생은 아이와 인연이 없는 것 같았다.“그럼 시험관 시술이라도 한번 해볼래요?”그 말에 서유는 고개를 돌려 차 안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승하 씨가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시험관 시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이를 낳은 게 얼마나 아픈 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서유의 몸이 걱정되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이승하의 뜻을 알아차린 주서희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약 처방을 조금 바꿀 테니까 일단 먹어봐요.”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서희가 그녀를 차 안으로 밀어 넣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내일 약 보내줄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차 문을 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는 서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집에 도착하면 연락해요.”“서희 씨도 얼른 쉬어요.”서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운전기사는 차에 시동을 걸고 블루리도로 향했다.고급 차들이 줄지어 별장을 떠난 뒤, 주서희는 윤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주원 씨도 얼른 돌아가.”소준섭의 강요로 잠자리를 하게 된 후부터 그녀는 윤주원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윤주원이 이곳에 있는 게 불편했다. “뒷정리하고 돌아갈게요.”며칠 동안 기분이 가라앉은 그녀를 보며 윤주원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늘 조심스러웠다. “그래.”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힘없이 방 안으로 걸어갔다.뒤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말을 꺼내고 싶었던 그는 결국 말을 하지 못하였다. 묵묵히 설거지를 마치고 식탁과 주방 청소를 마무리한 뒤에야 소매를 내리고 그녀의 앞으로 걸어갔다. “정리 다 됐어요. 이만 돌아갈게요.”한편,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고 있던 그녀는 그의 뜻을 알아듣고는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조심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이미 결정 끝난 일이야...”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미안해...”소준섭에게 복수한 뒤 윤주원과 행복하게 지내려고 했었다. 근데 평온하고 누구한테 사랑받으면 사는 삶은 그녀한테 사치였다. “서희 씨가 아무리 거절해도 난 끝까지 당신 기다릴 거예요.”그녀를 침범한 소준섭에 대해서도 꼭 그 원수를 갚아줄 것이다.“주원 씨, 바보 같은 짓 하지 마.”윤주원을 밀어내는 것은 오히려 그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소준섭 그 미친놈은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니까.“내가 바보인 줄 알면 나한테 이러지 마요.” 그 말을 내팽개치고 별장을 빠져나가는 그의 단호한 뒷모습에서 그녀는 맥없이 계단에 주저앉았다.블루리도로 향하는 차 안.“이모부...”인형을 안고 있던 연이가 서유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는 이승하를 불렀다.“목소리 낮춰. 이모 깨우지 말고.”그가 짙은 눈썹을 들어 아이를 힐끗 쳐다보았다.분명 낮은 목소리였는데...아이는 뾰로통한 얼굴을 한 채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그에게 건넸다.“이 인형. 가질 거예요? 말 거예요?”손때가 많이 묻은 꼬질꼬질한 인형을 그는 보기도 싫었다.“싫어.”너무 더러워서 그걸 받으면 반년 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아이는 그에게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쳇. 엄마가 이 인형을 내가 가장 믿는 사람한테 주라고 했었어요. 이모부한테 안 줄 거예요.”그제야 그는 서유에게서 시선을 떼고 아이의 손에 있는 인형을 쳐다보았다.“이 인형을 김초희가 너한테 준 거야?”아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거예요. 어때요? 멋있지 않아요?”인형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손가락을 뻗어 소수빈의 등을 두드렸다.“장갑 좀 줘봐.” 조수석에 앉아 잠이 들었던 소수빈은 이승하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이내 서랍을 열어 장갑 한 켤레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남자는 장갑을 낀 뒤 아이가
서유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떠보니 소수빈은 한창 인형 속에 솜을 쑤셔 넣고 있었고 연이는 인형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고 있었다.“왜 그래?”그녀는 휴지를 잡아당겨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아저씨... 거짓말쟁이에요...”훌쩍거리던 아이는 이모가 깨어난 걸 보고 인형 머리까지 내팽개치고는 서유의 팔을 껴안고 울먹였다. “엄마가 남겨준 인형을 아저씨가 뜯어버렸어요. 다시 제대로 꿰매지 못하고...”이게 뭔 마른하늘에 날벼락인지...소수빈은 옆에 앉아 있는 이승하를 힐끗 쳐다보았다. 마침 이승하도 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 일은 네가 책임지라고 하는 눈치였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대표님한테서 별장까지 선물 받았는데 이 정도는 내가 책임져야지. “사모님, 인형 안에 칩이 들어있었습니다.”그는 이승하의 손에 있는 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한테 누가 진짜 주범인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눈짓까지 했다. 칩에 시선이 뺏긴 서유는 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이게 왜 여기 들어있어요?”이승하가 손에 든 칩을 만지작거렸다.“언니가 아이한테 물려준 것일 수도 있고 당신한테 물려준 것일 수도 있어.”칩을 건네받은 그녀는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그를 향해 물었다.“이거 보안 처리해야 열어볼 수 있는 거 아니에요?”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이승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울고 있는 연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네 엄마가 인형 속에 물건을 남겨두었어. 그걸 꺼내려면 인형을 뜯을 수밖에 없었어. 이 도리는 너도 잘 알지?”아이는 소매로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알아요. 근데 너무 슬퍼요. 이건 엄마가 나한테 남겨준 건데. 인형이 없으면 엄마도 사라지는 거잖아요.”마음이 아픈 서유는 이내 아이를 끌어안았다.“연이야, 걱정하지 마. 이모가 인형 다시 꿰매어줄 테니까. 인형은 계속 우리 연이랑 같이 있을 거야.”그제야 아이는 그녀의 품에 기대어 조금은 진정된 듯했다.“고마워요. 이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