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챙겨 먹긴 했는데...”“나 임신이 안 될 것 같아요.”서유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많은 약을 챙겨 먹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이번 생은 아이와 인연이 없는 것 같았다.“그럼 시험관 시술이라도 한번 해볼래요?”그 말에 서유는 고개를 돌려 차 안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승하 씨가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시험관 시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이를 낳은 게 얼마나 아픈 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서유의 몸이 걱정되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이승하의 뜻을 알아차린 주서희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약 처방을 조금 바꿀 테니까 일단 먹어봐요.”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서희가 그녀를 차 안으로 밀어 넣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내일 약 보내줄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차 문을 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는 서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집에 도착하면 연락해요.”“서희 씨도 얼른 쉬어요.”서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운전기사는 차에 시동을 걸고 블루리도로 향했다.고급 차들이 줄지어 별장을 떠난 뒤, 주서희는 윤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주원 씨도 얼른 돌아가.”소준섭의 강요로 잠자리를 하게 된 후부터 그녀는 윤주원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윤주원이 이곳에 있는 게 불편했다. “뒷정리하고 돌아갈게요.”며칠 동안 기분이 가라앉은 그녀를 보며 윤주원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늘 조심스러웠다. “그래.”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힘없이 방 안으로 걸어갔다.뒤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말을 꺼내고 싶었던 그는 결국 말을 하지 못하였다. 묵묵히 설거지를 마치고 식탁과 주방 청소를 마무리한 뒤에야 소매를 내리고 그녀의 앞으로 걸어갔다. “정리 다 됐어요. 이만 돌아갈게요.”한편,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고 있던 그녀는 그의 뜻을 알아듣고는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조심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이미 결정 끝난 일이야...”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미안해...”소준섭에게 복수한 뒤 윤주원과 행복하게 지내려고 했었다. 근데 평온하고 누구한테 사랑받으면 사는 삶은 그녀한테 사치였다. “서희 씨가 아무리 거절해도 난 끝까지 당신 기다릴 거예요.”그녀를 침범한 소준섭에 대해서도 꼭 그 원수를 갚아줄 것이다.“주원 씨, 바보 같은 짓 하지 마.”윤주원을 밀어내는 것은 오히려 그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소준섭 그 미친놈은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니까.“내가 바보인 줄 알면 나한테 이러지 마요.” 그 말을 내팽개치고 별장을 빠져나가는 그의 단호한 뒷모습에서 그녀는 맥없이 계단에 주저앉았다.블루리도로 향하는 차 안.“이모부...”인형을 안고 있던 연이가 서유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는 이승하를 불렀다.“목소리 낮춰. 이모 깨우지 말고.”그가 짙은 눈썹을 들어 아이를 힐끗 쳐다보았다.분명 낮은 목소리였는데...아이는 뾰로통한 얼굴을 한 채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그에게 건넸다.“이 인형. 가질 거예요? 말 거예요?”손때가 많이 묻은 꼬질꼬질한 인형을 그는 보기도 싫었다.“싫어.”너무 더러워서 그걸 받으면 반년 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아이는 그에게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쳇. 엄마가 이 인형을 내가 가장 믿는 사람한테 주라고 했었어요. 이모부한테 안 줄 거예요.”그제야 그는 서유에게서 시선을 떼고 아이의 손에 있는 인형을 쳐다보았다.“이 인형을 김초희가 너한테 준 거야?”아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거예요. 어때요? 멋있지 않아요?”인형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손가락을 뻗어 소수빈의 등을 두드렸다.“장갑 좀 줘봐.” 조수석에 앉아 잠이 들었던 소수빈은 이승하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이내 서랍을 열어 장갑 한 켤레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남자는 장갑을 낀 뒤 아이가
서유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떠보니 소수빈은 한창 인형 속에 솜을 쑤셔 넣고 있었고 연이는 인형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고 있었다.“왜 그래?”그녀는 휴지를 잡아당겨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아저씨... 거짓말쟁이에요...”훌쩍거리던 아이는 이모가 깨어난 걸 보고 인형 머리까지 내팽개치고는 서유의 팔을 껴안고 울먹였다. “엄마가 남겨준 인형을 아저씨가 뜯어버렸어요. 다시 제대로 꿰매지 못하고...”이게 뭔 마른하늘에 날벼락인지...소수빈은 옆에 앉아 있는 이승하를 힐끗 쳐다보았다. 마침 이승하도 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 일은 네가 책임지라고 하는 눈치였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대표님한테서 별장까지 선물 받았는데 이 정도는 내가 책임져야지. “사모님, 인형 안에 칩이 들어있었습니다.”그는 이승하의 손에 있는 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한테 누가 진짜 주범인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눈짓까지 했다. 칩에 시선이 뺏긴 서유는 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이게 왜 여기 들어있어요?”이승하가 손에 든 칩을 만지작거렸다.“언니가 아이한테 물려준 것일 수도 있고 당신한테 물려준 것일 수도 있어.”칩을 건네받은 그녀는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그를 향해 물었다.“이거 보안 처리해야 열어볼 수 있는 거 아니에요?”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이승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울고 있는 연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네 엄마가 인형 속에 물건을 남겨두었어. 그걸 꺼내려면 인형을 뜯을 수밖에 없었어. 이 도리는 너도 잘 알지?”아이는 소매로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알아요. 근데 너무 슬퍼요. 이건 엄마가 나한테 남겨준 건데. 인형이 없으면 엄마도 사라지는 거잖아요.”마음이 아픈 서유는 이내 아이를 끌어안았다.“연이야, 걱정하지 마. 이모가 인형 다시 꿰매어줄 테니까. 인형은 계속 우리 연이랑 같이 있을 거야.”그제야 아이는 그녀의 품에 기대어 조금은 진정된 듯했다.“고마워요. 이모
차가 블루리도에 멈춘 뒤, 서유는 연이를 안고 1층 거실에 향했고 아이가 곤히 자고 있어 깨우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들어가니 칩을 처리하느라고 집중하고 있는 그의 빛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문에 기대어 스탠드 조명 아래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가사 도우미한테 우유를 데워 오라고 부탁했다. “어떻게 됐어요?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아요?”전기 회로를 통합한 남자가 짙은 눈썹을 드리우며 입을 열었다.“아마 하룻밤 정도는 걸릴 것 같아.”하룻밤?뭐든 다 잘하는 사람 아니었나?칩을 처리하는 데 하룻밤이나 걸린다고?“내 옆에 있어 줘.”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가 맑은 눈망울로 그녀를 쳐다보며 소파에 앉으라고 눈짓했다. 남편이 칩을 처리하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그녀는 책상을 지나쳐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가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자 컴퓨터 화면에는 그녀가 알아볼 수 없는 코드들이 빠르게 나타났다.간단할 줄 알았는데 비밀번호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의 잘생긴 얼굴이 점점 찡그러졌다.“당신 언니 말이야.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하지 않았어?”“네? 무슨 뜻이에요?”못 하는 게 없는 남편이 이번에는 적수를 제대로 만난 듯했다. “해커를 부르는 게 어때요?”“다시 해볼게.”새벽 5시, 서유는 하품을 하면서 이승하를 타일렀다.“여보, 제발. 그냥 해커 불러서 해요.”그제야 그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핸드폰을 꺼내 이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겨우 잠이 든 이연석은 둘째 형의 전화를 보고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형...”“지금 당장 불루리도로 와.”말도 채 끝나기 전에 전화기 너머로 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전화가 끊어졌다.형이 넷이나 되니까 둘째 형은 안 보고 지내도 상관없겠지?마음을 가라앉힌 그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차를 몰고 블루리도로 향했다. 도착한 뒤, 서유는 상
자리에 앉은 후, 코드를 한번 보고는 그가 키보드를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이승하보다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남자들은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할 때만이 가장 진지한 모습인 것 같다. 밤새 잠을 못 잤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이승하는 그녀에게 암호를 풀면 부를 테니까 가서 쉬라고 했다. 그녀는 가사도우미에게 아침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한 뒤, 연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안고 잠시 눈을 붙였다.컴퓨터의 고수이긴 하지만 이 칩을 처리하는 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두 시간쯤 지나서야 그가 컴퓨터에서 손을 뗐다. “김초희라는 여자 대단한 분인 것 같아요. 암호가 겹겹이 쌓여있었어요. 하나를 풀면 하나가 또 나타나고 이 안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지...”팔짱을 낀 채 그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화면에 나타나는 코드를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 풀었어?”“그럼요. 이 세상에 내가 풀지 못하는 코드는 없어요.”형제들 사이에서 컴퓨터에 관해서는 제일 자신 있었다. 그는 다소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코드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다 풀었으면 이제 그만 나가.”그 뜻은 이 안의 내용을 나한테 보여주기 싫다는 건가? “형, 이 안에 있는 건 동영상이에요. 하나하나 조각들을 맞춰야 하는데 보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봐야 한다고요.”이승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서유의 출생에 관한 것이라면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이따가 뭘 보든 다 못 본 걸로 해.”이연석은 고개를 들고 아침 햇살을 등지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혹시 이 안에 놀라운 비밀이라도 있는 거예요?”“뭔 말이 그렇게 많아?” 형의 차가운 눈빛을 보자마자 그는 바로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정말 재수가 없네. 이 엄청난 비밀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제일 먼저 나부터 죽이려 하는 건 아니겠지? 그 생각에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형, 앞으로 컴퓨터 좀 더 배워요. 이런
이연석은 동영상의 퍼즐을 맞추고 형식을 변환한 후 스페이스바를 눌렀다. 스페이스바를 클릭하자 어두운 화면에 밝고 선명한 색이 서서히 떠올랐다. 영상 속 배경은 바닷가였고 그 옆은 전부 다 어촌 마을이었으며 환경이 아름답고 조용해 보였다. 주변 환경을 훑던 카메라는 모래사장을 비추며 천천히 좁혀갔고 작은 그림자가 허리를 굽혀 조개껍데기를 줍고 있었다.“초희야, 조심해. 바닷가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마.”영상 속에서 갑자기 부드럽고 단아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어린 김초희가 고개를 돌렸다. 연이와 아주 많이 닮은 모습이었다.“걱정하지 말아요. 엄마.”엄마?서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영상을 찍은 사람이 그녀와 김초희의 어머니란 말인가?그녀는 다리에 얹은 손가락을 살짝 웅크린 채 기대와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린 김초희가 조개를 줍고 달려오자 카메라는 유모차에 누워 있는 아기를 향했다. “엄마, 동생이 한 살이 되면 이 조개껍데기로 팔찌를 만들어 생일 선물로 줄 거예요.”“그래.”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가녀린 손이 아기의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우리 초아, 내일 엄마랑 같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한테 가자.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분명 엄마한테 돈을 줄 거야. 엄마가 우리 초아 심장 꼭 고쳐줄 거니까 반드시 이겨내야 해.”그 말에 이승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김영주가 도움을 청하러 김씨 가문으로 가지 전에 찍은 영상인 걸까?“우리 동생, 꼭 이겨내야 해.”김초희도 가까이 다가와서 빨갛게 달아오른 아기의 작은 볼에 뽀뽀했다.이어 카메라가 몇 번 흔들리더니 가느다란 실루엣이 화면에 나타났다.낯설지만 부드럽고 선한 기운이 감도는 얼굴을 보자 서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이 사람은... 성형을 한 엄마일까? “초희야, 초아야. 엄마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몰라서 이렇게 영상을 남기게 되었어. 너희들한테 진실을 말해줘야 할 것 같구나.” “엄마의 본명은 김영주. Y국 4대 가문 김
영상 속에서 김영주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엄마가 어렸을 때, 내 부모님은 날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어. 할아버지께서 날 불쌍히 여기시고는 곁에 두고 직접 날 가르치셨지.”“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나만 옆에서 효도를 해서인지 할아버지께서 나한테 유산을 물려주셨어.”“사실 난 이 유산이 꼭 필요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탐욕스러운 우리 부모님은 유산 때문에 나에게 많은 상처를 주셨어.”“내가 고집이 센 편이라 그분들이 원하는 걸 쿨하게 내어주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우리 사이가 점점 더 틀어지게 된 거야.” “그때의 난 약혼자인 육우성과 사귀고 있었고 우리 두 사람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었어. 그 사람과 결혼까지 하게 될 줄 알았는데...”“하지만...”얼굴을 만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눈동자에는 쓸쓸함과 절망으로 가득 차올랐다. “심혜진은 나한테 가장 친한 친구였어. 그녀도 육우성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어.” “질투가 심했던 건지 함께 과학실험을 하던 중 심혜진이 화학약품을 가져와 내 얼굴을 망가뜨렸어.”“얼굴이 망가진 뒤에야 진심이란 게 다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육우성은 나를 버렸고 김씨 가문과의 정략결혼 때문에 우리 큰언니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내가 병상에 누워 그 엄청난 고통을 견디고 있을 때 육우성은 우리 큰언니와 신혼 첫날밤을 보냈어.”“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할아버지의 유산을 내놓으라고 날 강요하셨지. 내가 거절하자 날 김씨 가문에서 쫓아냈어.”“피범벅이 된 얼굴을 한 채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모두가 나를 두려워했고 한 사람만 내게 손을 내밀었어.”“얼굴이 망가진 사람이라고 싫어하지도 않고 내게 먹을 것도 주고 숙소까지 마련해 줬어...”“그 사람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난 내 신분에 대해서도 내가 어떻게 생겼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어.”“그 사람은 한 번도 날 다그쳐본 적이 없었고 날 격려해 주고 나한테 힘을 줬어. 그 사람의 도움으로 난 다시 희망을 되찾을 수 있었어.” “한동안 Y국에 있다가 그
김영주는 말을 하면서 주변의 환경을 가리켰다.“이곳은 마음씨 착한 어민들이 우리를 구해 데려온 곳이야.”“난 너희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한동안 지냈었어. 초아가 물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선천성 심장병이 재발했고 난 너희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어.”“엄마의 일생은 이게 전부야. 그다지 잘 지내지 못했어. 너희들은 나보다 더 잘 살기를 바란다...”“그리고 너희들의 친아빠가 누구인지 알려주려고 해.”“그 사람의 이름은 연중서. 동아 그룹의 이사장이야.”“언젠가 너희들이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난 그 사람이 너희들을 알아보지 못하길 바란다.”“그리고 너희들이 그 사람한테 복수하기를 바라지도 않아. 난 그저 내 아이가 평안하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어.”“날 다치게 하고 괴롭혔던 놈들은 영원히 기억 속에서 잊어버리거라.”화면이 멈추고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이승하가 그 틈을 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서유를 쳐다보았다. 주먹을 불끈 쥔 채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모니터를 바라보는 그녀를 보며 마음이 아팠던 그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연중서 이사장이 내 아버지라니...”어쩐지 연중서한테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었다. 그래서 조지가 예전에 김초희의 원래 이름은 연초희라고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연중서의 딸일 줄은 몰랐다. 서유의 눈매가 연지유와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이복자매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족에게 상처를 입었고 친한 친구 때문에 얼굴이 망가졌고 약혼자에게도 버림받았었다.착한 사람을 만난 줄 알았는데 그 결혼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김초희는 거짓 결혼 생활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세상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와 김초희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고달픈 것인지? 김영주는 자식들의 인생이 자신보다 조금은 더 나아지길 바랐지만...김초희는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언니의 심장이 아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