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문득 그녀가 전에 서재에 가서 그림 도구를 찾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서유는 이미 잃어버린 물건들을 발견한 것은 아닌지? 그저 못 본 척한 건 아닌지? 그와 정말로 함께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닌지...그가 또다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서유가 잃어버린 물건들을 빌미로 그와의 관계를 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고 장난이라는 그녀의 말에 화가 나서 이성을 잃고 그녀를 강요하고 가둬두고 앞뒤 가리지 않고 그녀와 아이를 낳으려고 했다. 가뜩이나 상처가 깊은 서유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실망스러웠으면 그와 말한마디조차 하고 싶어 하지 않았겠는가?정말 어리석었다. 그녀와 관련된 일이라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감정도 이성도 제대로 통제가 안 됐다. 이승하는 손을 떨며 태블릿을 버린 뒤,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미친 듯이 후회했다. 그와 그녀 사이의 문제는 단순히 오해뿐만이 아니었다. 서유의 마음은 한 번 또 한 번 상처를 받게 되었고 다시 회복되기가 어려웠다. 한편, 옆에 있던 강세은은 그런 그의 모습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이 대표님, 제가 귀국해서 서유 씨한테 잘 설명할게요. 다만 조직이나 신분에 대해 밝힐 수가 없어서 설득력이 부족할 거예요. 하지만 최대한 확실히 설명할게요.”비록 사랑에 목숨 거는 이승하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이니 그녀는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때, 바닥에 쓰러져있던 성이나는 강세은이 계속 조직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이내 그들이 숨기고 있는 신분에 대해 눈치챘다. 두 사람의 약점이라도 잡은 듯 그녀가 찢어진 손가락을 들어 두 사람을 가리키며 그들을 위협했다. “아버지한테서 들었던 적이 있어. 국제적으로 ‘S’라는 조직이 있는데 그 배후에 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이젠 내가 모든 걸 알게 되었으니 두 사람 이제 두고 봐. 반드시 두 사람의 가면을 벗겨 패가망신 당하게 할 거야.”그녀의 떠들썩한
이승하의 뜻은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나서지 말라는 뜻이었다.차라리 이러는 것이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남녀 사이의 문제는 당사자들이 직접 해결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도 줄어들거니와 진정성이 더 돋보일 테니까.하지만 강세은은 여전히 걱정됐다. 이승하가 행여나 해명을 위해 조직 일을 말하고 정체를 드러낼까 봐...몇 초간 고민하던 강세은은 이승하에게 당부했다.“대표님, 대표님께서 정체를 드러내시면 S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해명해주세요.”이승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았다.“난 서유를 믿어.”이승하는 서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얘기해 줄 생각이다. 그래야만 앞으로의 조직 활동에도 제약이 없게 되고 서유도 불필요한 오해를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강세은은 그에게 지독한 팔불출이라고 한마디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하지만 결국은 아무 말 하지 않고 택이에게 슬쩍 눈치를 주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병실을 나갔다.택이는 그녀의 눈짓을 받고 기절한 성이나 쪽을 한번 보더니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는 일단 성이나 씨를 데리고 나가겠습니다.”소파에 앉은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이에 택이는 두 명의 경호원에게 성이나를 끌고 나갈 것을 명하고 자신은 그 틈을 타 코너를 돌아 병실 밖으로 나왔다.나와보니 강세은이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 그가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대표님께서 정체를 드러낼 일 없게 옆에서 잘 지켜봐 주세요.”택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몰론 그렇게 할 겁니다만 제 말을 들으실지는 보장 못 하겠네요.”강세은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택이를 향해 손을 저었다.“이만 가보세요.”당부할 건 이미 다 했다. 이승하가 기어코 정체를 드러내겠다고 하면 이제는 서유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강세은은 변가람이 성이나 일을 처리한 걸 확인한 뒤 캐리어를 끌고 병원을 떠나 비행기 장으로 향했다.병실 안, 이승하는 소파에 앉아 한 손으로 이마를 주무르며
그 시각 한창 연구에 매진하던 이윤재는 전화벨 소리에 장갑을 벗더니 작업복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그러고는 발신자가 이승하라는 걸 보자마자 서둘러 밖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형, 이제야 연락이 되면 어떡해요. 이연석 그놈이 지금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요. 내가 진짜 그놈 때문에 요즘 아주 미치겠...”이윤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승하가 입을 열었다.“너 지금 당장 워싱턴으로 와야겠다. 나 대신 이쪽 업무를 맡아.”이윤재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심각해진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원래 NASA 쪽 적임자로 이윤재가 가장 먼저 거론되었지만 결국은 이승하가 맡았다. 그런데 지금 또 그 업무를 자신한테 준다고 하니 이건 큰일이 난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혹시 이연석 그놈이 JS 그룹을 팔아버리기라도 한 건가?잔뜩 진지한 얼굴로 설명을 기다리는 데 들려오는 건 간단한 명령이었다.“지금 당장 이쪽으로 와.”이승하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더니 택이를 바라보았다.“지금 바로 전용기 준비해.”그는 지금 한시라도 빨리 서유를 만나고 싶었다.택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우미에게 짐을 싸라고 명령한 다음 NASA 쪽에도 연락을 넣었다.업무 휴대폰에는 지속해서 메시지가 날아들었고 이승하는 이에 눈썹을 찌푸리더니 아무 휴대폰이나 들어 쭉 훑었다.그러다 4개월 전 주서희가 보내온 메시지를 보더니 눈빛이 흔들렸다.서유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니? 그때 분명 송사월이 있는 걸 보고 이곳으로 온 건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송사월이 돌봐주지 않았다는 건가?이승하는 의문을 품고 주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주서희의 휴대폰이 울리기 몇 분 전.주서희는 꽃다발을 손에 든 채 눈앞에 있는 잘생긴 의사를 보며 예쁘게 웃었다.“윤 선생, 꽃다발 고마워. 이번 생일은 잊지 못할 거야.”윤주원은 그녀의 미소에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그럼... 다음에 데이트 신청해도 돼요?”그 말에 주서희의 손이 멈칫했다
사실 윤주원은 주서희와 의대 세미나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첫눈에 반해버린 상태였다. 그 뒤로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최근 의계에서 좋은 성적을 내 드디어 고백하게 된 것이었다.하지만 매번 그는 거절을 당했고 그 거절의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자궁을 들어낼 정도면 큰 사건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게 단순 사고가 아닌 남자와 얽혀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 모든 게 윤준원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가 좋아하는 건 주서희라는 여자일 뿐이니까.그러니 그녀가 어떤 과거를 가졌던지 그걸 포용하고 받아드릴 생각이다.주서희가 다시 한번 거절하려고 입을 연 그때, 갑자기 기다란 손이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윤 선생, 평소 아무거나 다 주워 먹는 스타일인가 봐? 내가 가지고 놀던 여자도 다 좋다 하고.”주서희는 그의 상스러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분노를 담아 소준섭을 밀쳤다.뒤로 밀쳐진 그의 얼굴에 잠깐 어둠이 드리워졌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손으로 주서희의 턱을 들었다.“왜, 윤 선생 앞에서 우리가 침대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얘기할까 봐 두려워?”주서희는 주먹을 꽉 쥔 채 경멸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지금 질투해요?”“하?”소준섭은 이에 코웃음을 쳤다.“먹다 버린 음식에 미련 두는 사람도 있나?”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윤주원이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그래도 한때는 의계에서 유명한 분이라 존경도 했었는데 이렇게 더러운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그 주먹이 어찌나 셌던지 소준섭의 얼굴은 옆으로 돌아갔고 입에서는 피까지 흘렀다.소준섭은 혀로 상처를 짓누른 후 바로 곧바로 윤주원의 멱살을 잡고 벽까지 끌고 가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그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그렇게 몇 번을 윤주원의 잘생긴 얼굴에 주먹을 내다 꽂았다.이건 한 대 맞아서가 아니라 윤주원이 그의 여자를 건드렸기 때문이었다.주서희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윤주원을 보더니 화가 머리끝까지
주서희는 머지않아 곧 느끼게 될 승리의 희열을 거두어들이고 그를 향해 기대의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 기다릴게요.”소준섭은 그녀의 눈에 담긴 실망이 기대로 변하자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그는 주서희를 놓아주고 바닥에 있는 그녀를 안아 들더니 그 어느 때보다 더 힘껏 껴안았다.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품 안에 있는 여자가 언젠가 자신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것만 같았다.소준섭은 만약 그런 때가 오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상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지금 품속에 있는 여자를 꼭 끌어안을 뿐...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맞아댄 윤주원은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주먹을 꽉 쥐었다.소준섭은 주서희를 안은 채 원장실로 데려와 그녀를 거칠게 벽으로 내몰더니 키스도 없이 몸을 가지려고 들었다.소준섭의 어깨에 매달려 그저 가만히 그의 것을 받아낼 뿐인 주서희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두 사람이 한창 서로를 탐하고 있을 때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주서희가 받으려고 하자 소준섭은 그러지 못하게 힘으로 밀어붙였고 몇 번을 더 만족하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는 두 다리에 힘이 풀린 주서희를 안아 들고 의자에 앉혀준 다음 옆에 있는 티슈를 뽑아 자신의 손을 닦았다.주서희는 떨리는 몸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어 발신자가 이승하라는 것을 보더니 황급하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이제 막 전용기에 오른 이승하는 그녀의 콜 백에 통화버튼을 눌렀다.“대표님, 왜 이제야 연락이 되는 거예요!”전화기 너머의 앙칼진 목소리에 이승하는 미간을 찌푸렸다.“메시지 뭐야.”주서희는 휴대폰을 꽉 쥐면서 다급하게 말했다.“4개월 전, 대표님께서 병실을 나가자마자 송사월 씨가 서유 씨에게 이혼합의서를 내밀었어요. 그래서 대표님께 이 사실을 알리려고 연락을 드렸는데 휴대폰을 꺼놓으셨잖아요.”이승하의 몸이 몇 초간 굳었다가 힘겹게 되물었다.“두 사람이 이혼을... 했다고?”“네. 진작에 이혼했어
서울에 도착한 후, 이승하는 링거를 뽑아 던지고 황급히 비행기에서 내렸다.그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억지로 몸을 지탱하며 비틀거렸다.택이는 그런 그에게 달려가 황급히 부축해주며 공항에서 나왔다.이승하가 귀국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소수빈은 이미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승하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얼른 다가갔다.“대표님.”이승하는 옆에 있는 택이를 향해 말했다.“넌 이만 가.”택이는 김씨가 움직일 때만 나타나는 사람인지라 예의를 갖춰 알겠다고 대답한 후 자리를 벗어났다.소수빈은 창백한 얼굴로 야윈 모습의 이승하를 보고는 그가 안쓰러워졌다.불과 4개월 전에만 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봐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늘 고고하고 차가운 남자를 이렇게 만든 건 서유라는 여자밖에 없을 것이다.‘워싱턴에서 마주치고 또 갈등이 생겨 지금 이런 상태가 되셨겠지.’소수빈은 이미 모든 걸 파악하고 있었다.그는 별다른 말 없이 이승하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대표님, 일단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서희한테는 지금 당장 오라고 할게요.”이승하는 핏줄 가득한 눈으로 소수빈을 바라보았다.“정가혜 씨 별장으로 가.”소수빈은 일단 휴식부터 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승하의 눈에 어린 조급함을 보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동을 걸었다.그들의 차가 움직이자 뒤이어 세워진 십몇대의 차 또한 시동을 걸고 줄줄이 따라나섰다.마당에 자란 잡초를 정리하던 정가혜는 고급 차들이 줄지어 별장 앞에 멈춰서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다 차에서 내린 남자의 얼굴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이승하는 몇 걸음 정도 걷다가 이내 힘이 다 빠진 듯 결국 소수빈의 부축으로 문 앞까지 도달했다.그리고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별장 문이 갑자기 열리고 정가혜가 걸어 나왔다.그녀는 이승하의 혈색에 잠깐 흠칫하다가 이내 표정을 바꾸고 물었다.“서유 보러 오셨나요?”이승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안에 있습니까? 만나고 싶은데.”그는
이승하는 주먹을 꽉 쥐더니 이내 고고한 머리를 숙이고 정가혜에게 애원했다.“서유한테 해야 할 말이 있어서 그럽니다. 제발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정가혜는 그 이승하가 머리까지 숙이고 애원하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저는 정말 몰라요. 하지만 며칠 지나면 돌아온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아니면 서유가 돌아오면 제가 다시 연락 드릴 테니까 일단 먼저 돌아가시는 게...”하지만 이승하는 단 1초라도 더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서유한테 지금 연락해 주시겠어요?”이곳으로 오는 길 이미 몇십 번은 더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그의 번호는 전부 차단한 것 같고 낯선 번호로 걸면 전화를 받지 않으니 지금은 정가혜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정가혜는 간절한 얼굴의 이승하에 결국 휴대폰을 꺼내 서유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새 번호와 옛 번호에 전부 걸어봐도 여전히 연락되지 않았다.이에 포기하려는데 이승하가 계속 걸어봐 달라고 하는 바람에 결국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전화를 걸었다.서유는 지금 가흥시 개발 지역 공사장에서 안전모자를 쓴 채 허리를 숙이고 수치를 측정하고 있어 휴대폰 진동 소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모든 수치를 다 기록하고 나서야 안전지대로 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응, 가혜야, 왜 전화했어?”정가혜가 답을 하기도 전에 이승하가 휴대폰을 뺏어갔다.“나야, 너 지금 어디야?”낮게 깔린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자 서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그와 말도 섞기 싫다는 듯 휴대폰을 꺼버렸다.조급해진 이승하가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건 기계음뿐이었다.그는 숨통이 조여오는 걸 느끼며 휴대폰을 쥐던 손에 힘을 주었다.“아무래도 서유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만 돌아가는 게 어때요...?”이승하는 손아귀 힘을 풀고 그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며 감사 인사를 하더니 도로 차에 올라탔다.소수빈은 그 뒤를 따라 황급히 운전석에 앉았다. 그렇게 시동을 막
이씨 저택.주서희는 진찰을 마친 후 미간을 찌푸리며 당부했다.“대표님은 이미 여러 번 위에 피가 났고 지금은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 피로까지 누적돼 몸 상태가 최악이 됐어요. 이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납니다!”이승하는 그녀의 말을 그저 한 귀로 흘려보내고는 서재의 소파에 앉아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반짝거리고 에너지 넘치던 그의 눈은 지금 공허하기 그지없었고 마치 빛바랜 진주 같았다.주서희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그에게 링거를 놔준 후 다시 한번 얘기했다.“대표님, 서유 씨를 되찾아 오려면 일단 대표님부터 건강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제발 몸 좀 소중히 여기세요.”그녀는 이승하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자 속으로 혀를 끌끌 차더니 의료 상자를 들고 서재에서 나갔다.이승하는 그녀가 떠난 후 금고로 시선을 돌려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그는 링거를 꽂은 채 금고 앞으로 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에 든 개인 휴대폰을 꺼냈다.몇 분간 충전한 뒤 전원을 켜보자 서유가 보낸 메시지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내가 살아있는 걸 이미 다 아는 것 같으니까 한번 만나는 게 어때요?][이봐요, 전에는 빨리 회신하면서 지금은 왜 아무것도 보내지 않는 거죠? 뭔가 찔리는 거라도 있어요?][나한테 메시지 보낼 배짱은 있으면서 만나러 올 배짱은 없나 봐요?][전화도 안 받고 대체 뭐 하자는 거죠?][한번 만나죠.]그 뒤로 몇 개의 메시지 모두 만나자는 내용이었다.이승하는 그 메시지들을 보며 그저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메시지가 보내진 시간을 보자 그건 모두 한 달 전 것들이었다.서유는 김초희라는 신분으로 귀국한 뒤 한 번도 김 씨에게 메시지를 보낸 적이 없고 차단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왜 갑자기 차단을 풀고 만나자고까지 하는 거지?이승하는 그녀의 목적을 알아내려 다시 한번 메시지를 읽어봤지만, 여전히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하지만 그게 무슨 이유에서든지 적어도 서유는 김 씨를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