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희는 머지않아 곧 느끼게 될 승리의 희열을 거두어들이고 그를 향해 기대의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 기다릴게요.”소준섭은 그녀의 눈에 담긴 실망이 기대로 변하자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그는 주서희를 놓아주고 바닥에 있는 그녀를 안아 들더니 그 어느 때보다 더 힘껏 껴안았다.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품 안에 있는 여자가 언젠가 자신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것만 같았다.소준섭은 만약 그런 때가 오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상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지금 품속에 있는 여자를 꼭 끌어안을 뿐...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맞아댄 윤주원은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주먹을 꽉 쥐었다.소준섭은 주서희를 안은 채 원장실로 데려와 그녀를 거칠게 벽으로 내몰더니 키스도 없이 몸을 가지려고 들었다.소준섭의 어깨에 매달려 그저 가만히 그의 것을 받아낼 뿐인 주서희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두 사람이 한창 서로를 탐하고 있을 때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주서희가 받으려고 하자 소준섭은 그러지 못하게 힘으로 밀어붙였고 몇 번을 더 만족하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는 두 다리에 힘이 풀린 주서희를 안아 들고 의자에 앉혀준 다음 옆에 있는 티슈를 뽑아 자신의 손을 닦았다.주서희는 떨리는 몸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어 발신자가 이승하라는 것을 보더니 황급하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이제 막 전용기에 오른 이승하는 그녀의 콜 백에 통화버튼을 눌렀다.“대표님, 왜 이제야 연락이 되는 거예요!”전화기 너머의 앙칼진 목소리에 이승하는 미간을 찌푸렸다.“메시지 뭐야.”주서희는 휴대폰을 꽉 쥐면서 다급하게 말했다.“4개월 전, 대표님께서 병실을 나가자마자 송사월 씨가 서유 씨에게 이혼합의서를 내밀었어요. 그래서 대표님께 이 사실을 알리려고 연락을 드렸는데 휴대폰을 꺼놓으셨잖아요.”이승하의 몸이 몇 초간 굳었다가 힘겹게 되물었다.“두 사람이 이혼을... 했다고?”“네. 진작에 이혼했어
서울에 도착한 후, 이승하는 링거를 뽑아 던지고 황급히 비행기에서 내렸다.그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억지로 몸을 지탱하며 비틀거렸다.택이는 그런 그에게 달려가 황급히 부축해주며 공항에서 나왔다.이승하가 귀국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소수빈은 이미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승하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얼른 다가갔다.“대표님.”이승하는 옆에 있는 택이를 향해 말했다.“넌 이만 가.”택이는 김씨가 움직일 때만 나타나는 사람인지라 예의를 갖춰 알겠다고 대답한 후 자리를 벗어났다.소수빈은 창백한 얼굴로 야윈 모습의 이승하를 보고는 그가 안쓰러워졌다.불과 4개월 전에만 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봐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늘 고고하고 차가운 남자를 이렇게 만든 건 서유라는 여자밖에 없을 것이다.‘워싱턴에서 마주치고 또 갈등이 생겨 지금 이런 상태가 되셨겠지.’소수빈은 이미 모든 걸 파악하고 있었다.그는 별다른 말 없이 이승하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대표님, 일단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서희한테는 지금 당장 오라고 할게요.”이승하는 핏줄 가득한 눈으로 소수빈을 바라보았다.“정가혜 씨 별장으로 가.”소수빈은 일단 휴식부터 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승하의 눈에 어린 조급함을 보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동을 걸었다.그들의 차가 움직이자 뒤이어 세워진 십몇대의 차 또한 시동을 걸고 줄줄이 따라나섰다.마당에 자란 잡초를 정리하던 정가혜는 고급 차들이 줄지어 별장 앞에 멈춰서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다 차에서 내린 남자의 얼굴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이승하는 몇 걸음 정도 걷다가 이내 힘이 다 빠진 듯 결국 소수빈의 부축으로 문 앞까지 도달했다.그리고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별장 문이 갑자기 열리고 정가혜가 걸어 나왔다.그녀는 이승하의 혈색에 잠깐 흠칫하다가 이내 표정을 바꾸고 물었다.“서유 보러 오셨나요?”이승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안에 있습니까? 만나고 싶은데.”그는
이승하는 주먹을 꽉 쥐더니 이내 고고한 머리를 숙이고 정가혜에게 애원했다.“서유한테 해야 할 말이 있어서 그럽니다. 제발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정가혜는 그 이승하가 머리까지 숙이고 애원하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저는 정말 몰라요. 하지만 며칠 지나면 돌아온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아니면 서유가 돌아오면 제가 다시 연락 드릴 테니까 일단 먼저 돌아가시는 게...”하지만 이승하는 단 1초라도 더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서유한테 지금 연락해 주시겠어요?”이곳으로 오는 길 이미 몇십 번은 더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그의 번호는 전부 차단한 것 같고 낯선 번호로 걸면 전화를 받지 않으니 지금은 정가혜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정가혜는 간절한 얼굴의 이승하에 결국 휴대폰을 꺼내 서유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새 번호와 옛 번호에 전부 걸어봐도 여전히 연락되지 않았다.이에 포기하려는데 이승하가 계속 걸어봐 달라고 하는 바람에 결국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전화를 걸었다.서유는 지금 가흥시 개발 지역 공사장에서 안전모자를 쓴 채 허리를 숙이고 수치를 측정하고 있어 휴대폰 진동 소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모든 수치를 다 기록하고 나서야 안전지대로 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응, 가혜야, 왜 전화했어?”정가혜가 답을 하기도 전에 이승하가 휴대폰을 뺏어갔다.“나야, 너 지금 어디야?”낮게 깔린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자 서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그와 말도 섞기 싫다는 듯 휴대폰을 꺼버렸다.조급해진 이승하가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건 기계음뿐이었다.그는 숨통이 조여오는 걸 느끼며 휴대폰을 쥐던 손에 힘을 주었다.“아무래도 서유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만 돌아가는 게 어때요...?”이승하는 손아귀 힘을 풀고 그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며 감사 인사를 하더니 도로 차에 올라탔다.소수빈은 그 뒤를 따라 황급히 운전석에 앉았다. 그렇게 시동을 막
이씨 저택.주서희는 진찰을 마친 후 미간을 찌푸리며 당부했다.“대표님은 이미 여러 번 위에 피가 났고 지금은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 피로까지 누적돼 몸 상태가 최악이 됐어요. 이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납니다!”이승하는 그녀의 말을 그저 한 귀로 흘려보내고는 서재의 소파에 앉아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반짝거리고 에너지 넘치던 그의 눈은 지금 공허하기 그지없었고 마치 빛바랜 진주 같았다.주서희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그에게 링거를 놔준 후 다시 한번 얘기했다.“대표님, 서유 씨를 되찾아 오려면 일단 대표님부터 건강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제발 몸 좀 소중히 여기세요.”그녀는 이승하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자 속으로 혀를 끌끌 차더니 의료 상자를 들고 서재에서 나갔다.이승하는 그녀가 떠난 후 금고로 시선을 돌려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그는 링거를 꽂은 채 금고 앞으로 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에 든 개인 휴대폰을 꺼냈다.몇 분간 충전한 뒤 전원을 켜보자 서유가 보낸 메시지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내가 살아있는 걸 이미 다 아는 것 같으니까 한번 만나는 게 어때요?][이봐요, 전에는 빨리 회신하면서 지금은 왜 아무것도 보내지 않는 거죠? 뭔가 찔리는 거라도 있어요?][나한테 메시지 보낼 배짱은 있으면서 만나러 올 배짱은 없나 봐요?][전화도 안 받고 대체 뭐 하자는 거죠?][한번 만나죠.]그 뒤로 몇 개의 메시지 모두 만나자는 내용이었다.이승하는 그 메시지들을 보며 그저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메시지가 보내진 시간을 보자 그건 모두 한 달 전 것들이었다.서유는 김초희라는 신분으로 귀국한 뒤 한 번도 김 씨에게 메시지를 보낸 적이 없고 차단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왜 갑자기 차단을 풀고 만나자고까지 하는 거지?이승하는 그녀의 목적을 알아내려 다시 한번 메시지를 읽어봤지만, 여전히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하지만 그게 무슨 이유에서든지 적어도 서유는 김 씨를 만나
이승하는 김 씨의 메시지에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이미 몇 개월이나 그녀의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않았던 그였던 터라 이대로 연락이 끊긴 줄로만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오늘 메시지가 도착했다.서유는 조금 긴장한 듯 심이준을 향해 말했다.“김 씨 기억나요? 그 사람이 나한테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내왔어요.”심이준은 그 메시지를 보더니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얘기했다.“만나요. 내가 대신 죽여줄 테니까!”서유는 지난번 병원 지하 주차장에서 심이준에게 밀리던 그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또다시 심이준을 바라보았다.“언제가 좋을까요? 장소는요? 불러내오면 어떻게 잡을 건데요?”계획도 없이 어설프게 상대를 불러냈다가는 오히려 이쪽이 당할 수도 있었다.심지우는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아 들고 자신이 직접 메시지를 적었다.[내일 밤 10시, 해운 호텔 2203로 오세요.]서유는 그 메시지를 보더니 순식간에 미간을 찌푸렸다.“왜 호텔로 불러요?!”“그 놈의 목적은 당신을 어떻게 해보려는 거잖아요. 그럼 호텔로 부르는 게 가장 효과적이죠.”서유는 곰곰이 생각했다. 확실히 김 씨와는 3번 정도 만났지만, 매번 그는 그녀와 잠자리를 갖고 싶어 했다. 게다가 한 달 전에는 그녀와 한번 자보려고 그녀의 팔에 칼까지 들이밀었다.서유는 그 생각에 또다시 분노로 몸이 떨렸고 주먹을 꽉 쥐었다.“이번에는 반드시 잡을 거예요!”심이준은 그녀와 달리 꽤 평온한 표정이었다.“어떻게 답장하나 한번 보죠.”이승하는 서유가 정말 답장을 보내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게다가 더 놀랐던 건 그녀가 호텔에서 만나자는 내용을 보내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제대로 본 것이 맞나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서유가 왜 굳이 장소를 호텔로 정했지?의문을 품은 그였지만 그럼에도 손은 멋대로 [그러죠.]라고 답장을 보냈다.지금은 서유를 만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심이준은 이승하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피식 웃었다.“봤죠? 호텔에서 만나자
이승하는 그녀의 질문에 입술을 달싹였다.이대로 진실을 얘기해버리고 싶었지만, 경찰들과 직원들이 가득 있는 이 상황에서 정체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심이준은 상대가 이승하인 것을 보고는 서유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 대표님, 혹시나 해서 묻는 겁니다만 혹시 정체를 숨기고 여자를 겁간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으신 건 아니죠?”그 말에 이승하의 싸늘한 눈빛이 그에게로 향했다.이에 심이준은 몸을 움찔 떨더니 자기도 모르게 손을 덜덜 떨었다.이승하는 그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천천히 서유에게로 돌렸다. 그녀의 올곧은 시선이 마주해오자 그는 심장이 답답해 나는 느낌이었다.지금이라도 당장 그녀에게 모든 걸 밝히고 싶었지만 문득 전에 김 씨의 모습으로 그녀를 어떻게 대했는지 떠올라버렸다.만약 자신이 바로 김 씨라는 걸 그녀가 알아버린다면 아마 더욱더 원망하고 분노할 것이다.그녀의 눈에 김 씨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일 뿐일 테니까...이승하는 그 자리에서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담담한 목소리로 반문했다.“김 씨라니?”서유는 그 말에 놀라운 기색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방금 이승하가 2203방 문 앞에 멈춰 섰을 때는 정말 그가 김 씨가 아닌가 의심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 달 전 이승하는 줄곧 NASA에 있었기에 그녀를 해친 김 씨일 수가 없었다.하지만 한 가지 의문인 게 이승하는 왜 갑자기 이 호텔에 나타나 그것도 2203방 문을 두드린 걸까?그녀의 의문이 점점 더 커질 때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택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마에 땀이 가득 맺힌 것 치고는 담담한 얼굴로 이승하에게 다가왔다.“대표님, 제가 예약한 방은 그쪽이 아니라 이쪽입니다.”택이는 방 키를 꺼내 들며 반대편 방을 가리켰다.강세은의 당부로 이승하에게 사람을 붙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쯤 조직의 비밀이 새어나갈 뻔했다.택이의 목소리에 이승하는 서유에게 향했던 시선을 애써 돌리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주위 사람들을 한번 훑었다.그를 에워싼 경찰과 직원들은 그
한편, 맞은편 방안으로 이승하를 데리고 들어간 택이는 가장 먼저 방안 곳곳을 한번 훑어보았다.다행히 투숙객은 현재 자리를 비웠고 이에 택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이승하를 바라보며 방 키를 내보이더니 씩 하고 웃었다.“대표님, 저 때문에 위기를 넘기셨네요.”이승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피식 웃다가 뭔가 떠오른 듯 다시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나한테 사람을 붙였어?”그의 손에 갑자기 힘이 들어가더니 택이의 어깨가 무겁게 짓눌렸다.택이는 몸이 굳어버리고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강세은 씨가 대표님께서 정체를 드러내실까 봐 저한테 꼭 따라다니라고...”이승하의 입꼬리가 무섭게 위로 올라더니 싸늘한 한마디를 던졌다.“네가 지금 누구와 일하는지 까먹지 마.”그 말에 택이는 뜨끔하며 이내 예의를 갖춰 얘기했다.“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목숨은 대표님께서 주신 거라 저는 당연히 대표님 말만 들어야죠. 다만 정체가 드러나게 되면 가장 먼저 대표님께서 위험해지실 것 같아 이번만큼은 강세은 씨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믿어주세요. 저는 오로지 대표님께만 충성합니다!”이승하는 택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더 질책하지 않고 그의 어깨에 올린 손을 거두어들였다.그러고는 소파에 앉아 서유가 왜 경찰을 대동해 그를 잡으려고 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바로 그때 그의 개인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서유가 보내온 메시지를 보고 잠깐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한참을 고민한 뒤 답장을 보냈다.[오늘 저녁은 안 될 것 같네요. 내일 아침 8시, 나이트 레일에서 다시 만나는 거로 하죠.]그러고는 택이에게 지시를 내렸다.“심이준이 김 씨와 서유 사이의 일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한번 알아봐.”그가 김 씨 신분으로 서유와 만난 건 단 2번으로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오직 둘만 알고 있을 뿐 제삼자가 알 리가 없었다.줄곧 옆에 있던 택이와 소수빈조차 그가 김 씨 신분으로 서유를 만나러 간 줄 몰랐으니까.게다가 그 2번 모두 3년 전 일로
서유의 시선이 다시 한번 맞은편 방으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승하는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났다.게다가 지독한 결벽증인 그가 집을 놔두고 굳이 호텔에 투숙한다는 것 또한 이상했다.그때 심이준이 그녀의 휴대폰을 힐끗 바라보고 큰소리로 외쳤다.“뭐야, 오늘 안 온대요?!”다시 비상계단으로 가 진을 칠 예정이던 경찰들은 그 소리에 우뚝 멈춰 섰다.“그게 무슨 말입니까?”서유는 정신이 번쩍 들어 다급하게 설명했다.“정말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 남자가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챈 것 같아요. 방금 시간과 장소를 바꾸자고 연락이 왔네요.”그녀는 연신 사과하며 허리를 숙였다.“정말 죄송합니다. 시간만 뺏었네요.”경찰들은 허탕에 조금 허무했지만, 신고자를 탓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연락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서유와 심이준은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호텔 앞까지 배웅해준 뒤 두 사람도 지하 주차장에 세워진 차에 올라탔다.심이준은 시동을 걸면서 서유에게 물었다.“그 김 씨라는 남자 생각보다 더 교활한 놈인 것 같은데 내일 그 장소로 갈 거예요?”경찰들까지 대동해도 잡지 못한 상대에 서유도 자신감이 떨어졌다.“나이트 레일은 그 인간 영역이라 아마 가게 되면 이번에는 정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요.”심이준은 차를 몰며 힐끗 조수석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오늘은 경찰들을 허탕 치게 했으니 내일 또다시 부르는 것도 좀 그렇겠네요. 하지만 서유 씨가 정말 잡고 싶은 거면 내일 내가 깡패 몇 명 불러서 같이 가줄게요.”서유는 그의 마음에 감동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심이준은 핸들을 꽉 잡은 오른손을 풀고 그녀를 향해 검지를 흔들었다.“오해하지 말아요. 난 그냥 범인을 내 손으로 잡는 것에 흥미가 생겼을 뿐이니까.”“...”‘그럼 그렇지. 감동은 무슨.’한편, 이승하는 복도에서 진을 치던 사람들이 다 떠났다는 보고를 받은 뒤 서둘러 방에서 나왔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서유를 찾아가려고 할 때 택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