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맞은편 방안으로 이승하를 데리고 들어간 택이는 가장 먼저 방안 곳곳을 한번 훑어보았다.다행히 투숙객은 현재 자리를 비웠고 이에 택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이승하를 바라보며 방 키를 내보이더니 씩 하고 웃었다.“대표님, 저 때문에 위기를 넘기셨네요.”이승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피식 웃다가 뭔가 떠오른 듯 다시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나한테 사람을 붙였어?”그의 손에 갑자기 힘이 들어가더니 택이의 어깨가 무겁게 짓눌렸다.택이는 몸이 굳어버리고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강세은 씨가 대표님께서 정체를 드러내실까 봐 저한테 꼭 따라다니라고...”이승하의 입꼬리가 무섭게 위로 올라더니 싸늘한 한마디를 던졌다.“네가 지금 누구와 일하는지 까먹지 마.”그 말에 택이는 뜨끔하며 이내 예의를 갖춰 얘기했다.“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목숨은 대표님께서 주신 거라 저는 당연히 대표님 말만 들어야죠. 다만 정체가 드러나게 되면 가장 먼저 대표님께서 위험해지실 것 같아 이번만큼은 강세은 씨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믿어주세요. 저는 오로지 대표님께만 충성합니다!”이승하는 택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더 질책하지 않고 그의 어깨에 올린 손을 거두어들였다.그러고는 소파에 앉아 서유가 왜 경찰을 대동해 그를 잡으려고 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바로 그때 그의 개인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서유가 보내온 메시지를 보고 잠깐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한참을 고민한 뒤 답장을 보냈다.[오늘 저녁은 안 될 것 같네요. 내일 아침 8시, 나이트 레일에서 다시 만나는 거로 하죠.]그러고는 택이에게 지시를 내렸다.“심이준이 김 씨와 서유 사이의 일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한번 알아봐.”그가 김 씨 신분으로 서유와 만난 건 단 2번으로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오직 둘만 알고 있을 뿐 제삼자가 알 리가 없었다.줄곧 옆에 있던 택이와 소수빈조차 그가 김 씨 신분으로 서유를 만나러 간 줄 몰랐으니까.게다가 그 2번 모두 3년 전 일로
서유의 시선이 다시 한번 맞은편 방으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승하는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났다.게다가 지독한 결벽증인 그가 집을 놔두고 굳이 호텔에 투숙한다는 것 또한 이상했다.그때 심이준이 그녀의 휴대폰을 힐끗 바라보고 큰소리로 외쳤다.“뭐야, 오늘 안 온대요?!”다시 비상계단으로 가 진을 칠 예정이던 경찰들은 그 소리에 우뚝 멈춰 섰다.“그게 무슨 말입니까?”서유는 정신이 번쩍 들어 다급하게 설명했다.“정말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 남자가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챈 것 같아요. 방금 시간과 장소를 바꾸자고 연락이 왔네요.”그녀는 연신 사과하며 허리를 숙였다.“정말 죄송합니다. 시간만 뺏었네요.”경찰들은 허탕에 조금 허무했지만, 신고자를 탓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연락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서유와 심이준은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호텔 앞까지 배웅해준 뒤 두 사람도 지하 주차장에 세워진 차에 올라탔다.심이준은 시동을 걸면서 서유에게 물었다.“그 김 씨라는 남자 생각보다 더 교활한 놈인 것 같은데 내일 그 장소로 갈 거예요?”경찰들까지 대동해도 잡지 못한 상대에 서유도 자신감이 떨어졌다.“나이트 레일은 그 인간 영역이라 아마 가게 되면 이번에는 정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요.”심이준은 차를 몰며 힐끗 조수석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오늘은 경찰들을 허탕 치게 했으니 내일 또다시 부르는 것도 좀 그렇겠네요. 하지만 서유 씨가 정말 잡고 싶은 거면 내일 내가 깡패 몇 명 불러서 같이 가줄게요.”서유는 그의 마음에 감동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심이준은 핸들을 꽉 잡은 오른손을 풀고 그녀를 향해 검지를 흔들었다.“오해하지 말아요. 난 그냥 범인을 내 손으로 잡는 것에 흥미가 생겼을 뿐이니까.”“...”‘그럼 그렇지. 감동은 무슨.’한편, 이승하는 복도에서 진을 치던 사람들이 다 떠났다는 보고를 받은 뒤 서둘러 방에서 나왔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서유를 찾아가려고 할 때 택이가
폐공장 입구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택이가 그에게 가면을 건넸다.“대표님, 저 안에 있는 사칭범은 김 씨라는 존재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지시로 김 씨 모습을 하고 서유 씨를 다치게 한 것 같아요.”상대가 김 씨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S 조직에 관한 것도 아직 모를 것이고 그러면 이승하는 아직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이승하는 가면을 쓰고 택이가 목 근처에 청룡 문신을 다 붙여주길 기다린 다음 검은색 장갑을 꼈다. 장갑을 끼는 건 오른손에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인들을 처단하는 것에 큰 지장은 없었다.이승하는 김 씨로 변장한 다음 어느새 뒤로 다가온 한 무리의 가면을 쓴 사람들과 폐공장 안으로 들어갔다.기둥에 묶여있던 남자가 인기척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에는 한 무리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오고 있었다.그중 제일 중심에 있는 남자는 190은 넘어 보였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고 있어 서 있는 것 만으로도 위압감이 들었다.쭉 뻗은 기럭지에 머리카락 한 올도 용납하지 않고 전부 위로 올린 남자는 무척이나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건 오로지 살기밖에 없었다.기둥에 묶여 있던 남자는 금색 가면을 보는 순간 그가 누군지 알아보고 몸을 덜덜 떨었다.그의 옷은 이미 전부 벗겨진 상태로 입안에는 천까지 있어 빌고 싶어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이승하는 이쪽으로 다가와 마치 죽은 사람 보듯 남자를 바라보았다. 얼굴 생김새는 완전히 달랐지만 체격은 확실히 비슷해 언뜻 보면 김 씨 같기도 했다.하지만 이 세상에서 김 씨는 오직 한 사람뿐이다.이승하는 뒤를 향해 손짓하며 남자의 입에 있는 천을 꺼내주라고 지시했다.“살려주세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는 그저 돈을 받고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남자는 입이 자유로워지자마자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외쳤다.“돈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쪽에서 저한테 옷과 가면 그리고 칼을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선금을 보내주고 일을 잘
뺨을 한 대 맞은 남자는 고통을 꾹 참고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그러고는 눈치를 보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얘기했다.“저는 그냥... 그 여자 옷을 찢고 두 손과 두 발을 잡은 뒤에... 몸 위에도 올라탔어요... 하지만 절대 손은 대지 않았어요. 어디 만지거나 이런 적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사실 전 노모와 아이들까지 있고...”진부한 대사에 택이가 또다시 뺨을 내리쳤다.“시끄러우니까 목소리 낮춰.”택이는 이토록 시끄러운 범죄자는 또 처음이었다. 이승하가 곁에 없었다면 진작에 입을 틀어막아 숨소리도 내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이승하는 수중의 칼을 천천히 아래로 이동했다.“그 여자 어디를 찔렀지?”남자는 무서움에 벌벌 떨며 빠르게 실토했다.“팔이요. 그런데 그냥 칼로 살짝 스쳤을 뿐이에요.”그가 받은 지시는 여자를 겁간하는 것이지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큰 상처는 내지 않았다.남자는 겁간에 성공도 못 했고 돈도 받았으며 지금은 복수까지 당하고 있다. 이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찾아올 줄 알았다면 그딴 돈 안 받아도 되니 진작에 무시했을 것이다.이승하는 원하는 대답을 얻은 뒤 칼을 서서히 남자의 몸에서 치웠다.남자가 이대로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려던 찰나 이승하가 칼을 고쳐 잡더니 남자의 어깨를 향해 힘껏 찔렀다.그 칼은 무척이나 작았지만 그 어떤 칼보다 더 날카로웠고 마치 도축할 때 쓰는 칼처럼 살을 한 번에 파고들었다.남자는 칼이 살을 뚫고 뼈에까지 닿자 아파서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방금 가면을 쓴 남자들의 고문이 10에서 8 정도였다면 이 일격은 거의 10을 채울 정도였다.이승하는 이대로 남자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그는 남자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방금 그 칼로 한 번 또 한 번 연속으로 내리 찔렀다.그리고 빠르고 정확하게 다른 쪽 팔도 찔렀다. 어느 한번은 칼이 반대편 살을 뚫고 나올 정도였다.“아악!!”남자는 비명을 몇 번 지르더니 이내 눈이 뒤집히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택
택이는 2시간도 채 안 돼 자료를 한가득 안아 들고 나이트 레일 제일 위층 로열 스위트룸으로 들어왔다.이승하는 창문 앞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택이는 그의 앞 탁자에 자료를 내려놓으며 말했다.“대표님, 그 남자에게 지시한 사람은 연씨 집안 아가씨 연지유 씨입니다.”이승하는 핏줄이 가득한 눈을 뜨더니 자료를 힐끗 보고는 다시 택이를 바라보았다.“3년 전, 대표님 분부대로 달마다 사람을 보내 곤란하게 만들었더니 그 일로 앙심을 품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 씨 신분으로 서유 씨에게 복수한 것 같고요.”이승하는 눈썹을 찌푸렸다.“내 정체는 어떻게 알고?”“대표님께서 김 씨라는 건 모르는 것 같습니다.”이승하가 계속 얘기해보라며 눈짓했다.“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2년 전 서유 씨 기일 날 대표님께서 술에 취해 저희를 데리고 연지유 씨에게 복수하러 가셨잖습니까. 그때 가면 쓴 대표님을 보고 저희 보스라는 걸 단번에 파악한 것 같습니다. 그 뒤로 김 씨 특징에 맞춰 체격이 비슷한 사람을 데려와 서유 씨를 해친 것 같고요. 목적은 아마 두 가지일 겁니다. 하나는 김 씨를 사칭해 서유 씨를 해치게 하면 대표님은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고 둘째는 사실을 알게 된 대표님께서 김 씨를 찾아 죽이려고 할 테니 연지유 씨는 손대지 않고 코 푼 격이겠죠. 계획은 언뜻 완벽해 보이지만 유일한 실책이 바로 김 씨가 대표님인 걸 몰랐다는 거죠.”택이의 말이 끝나자 나른하게 앉아 있던 이승하의 얼굴에 살기가 피어올랐다.연지유를 여태껏 살려둔 건 죽은 형님이 좋아했던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작 그딴 여자의 편의를 봐주려고 하마터면 사랑하는 여자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줄 뻔했다!“지금 당장 연지유 찾아서 가둬놔.”8시까지 이제 고작 1시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승하는 일단 연지유를 가둬놓고 서유에게 모든 걸 다 해명한 뒤에 다시 처리할 예정이다.“네, 알겠습니다.”그 시각, 심이준은 서유와 함께 깡패들을 데리고 나이트 레일에 도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문 가까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멈춰 섰다.서유는 상대방이 금방이라도 문을 열줄 알았지만, 예상외로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노크하려고 손을 올리던 찰나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재빠르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문밖에 있던 심이준은 그저 누군가의 손이 갑자기 서유를 홱 끌고 들어간 것밖에 보지 못했다. 그가 데리고 온 깡패들은 제 값어치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이대로 적진으로 보내버리고 말았다.심이준의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위로 올라갔다.그때 어디선가 경호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중 제일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큰소리로 외쳤다.“이놈들을 영업 방해도 싹 다 경찰서로 끌고 가!”깡패들은 경찰서라는 말에 어수선해지더니 무기를 버리고 헐레벌떡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버린 무기들은 하나둘 심이준 발 쪽에 떨어졌다. 심이준은 도망갈 겨를도 없이 발을 부여잡으며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다.숨을 제대로 고르기도 전에 경호원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형씨, 우리랑 같이 가줘야겠는데?”심이준은 네 명의 경호원 손에 몸이 들려진 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한편, 방안으로 끌려 들어간 서유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익숙한 향기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은은한 불빛과 활짝 열린 창문으로 쏟아진 햇빛 덕에 잘생긴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이승하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서유는 이승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동자에 어렸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대신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승하 씨, 왜 당신이...”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승하의 뒤로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렸다.서유가 뒤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얼굴에는 금색 가면이 씌워져 있었고 목에는 청룡 문신이 있었다.그녀는 김 씨로 추정되는 남자
“내가 바로 김 씨야.”이승하는 그녀의 하얀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다. 그의 눈에서는 그녀를 향한 애정과 미련이 뚝뚝 흘러내렸다.서유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김 씨가 이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했었지만 막상 그의 입으로 들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그녀는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에 들린 금색 가면을 그의 얼굴에 씌워주었다.이승하와 기억 속의 김 씨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 서유의 동공이 흔들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니 그의 목에는 청룡문신이 있었다.“이건 그린 거야.”이승하는 그녀의 의문을 읽은 듯 대답해주었다.그러면 옷을 입는 스타일과 흐트러진 머리, 조금 걸걸한 목소리 그리고 풍기던 분위기까지 전부 일부러 바꾼 것일까?서유는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듯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대체 왜... 가짜 신분까지 만들어서 나를 속이고 강제로 취하려고까지 했어요?”그녀의 추궁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찔렀다. 그는 죄책감을 느꼈고 또 무서웠다.그녀를 잃을까 봐 무서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와락 품에 끌어안았다.서유는 그의 품속에서 꼼짝할 수 없는 걸 느끼고는 그저 고개를 들어 이승하를 바라보았다.“내가 멍청하고 바보 같아서 일부러 데리고 논 거예요?”“아니야!”이승하는 그녀를 풀어주고 다급하게 해명하려고 했다.“그럼 뭔데요?”“그건...”“내가 만만하니까! 내가 당신 장난감처럼 보였어요?”마음속 깊은 곳에서 폭발한 분노에 서유는 지금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를 바라보는 눈에는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승하, 당신과 함께한 지 벌써 5년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나한테 상처만 주고 강제로 취하려고나 하고 또 속이고! 대체 날 뭐로 본 거예요?!”원망과 분노로 가득한 그녀의 눈에 눈물까지 고이자 이승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숨통이 조여진 것처럼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다.“서유야, 내 말 좀 들어 봐...”이승하가 그녀에게 한 발 더 다가가려고 하자
“말도 안 돼요.”서유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화가 가득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당신은 가짜 신분으로 내 몸을 탐했어요. 난 줄곧 낯선 사람에게 침범당한 줄 알았다고요!”“내가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웠는 줄 알아요?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는지 아냐고요!”“그런데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일부러 날 속여요? 내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거예요?”서유의 말은 이승하의 귓가에 떨어져 은침처럼 그의 고막을 뚫고 남자의 이성을 무너지게 했다.“서유야,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 네가 돌아온 후에 우리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었어.”“어떻게 내 잘못을 만회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김씨 신분은 완전히 뒷전으로 놓고 있었어.”그는 말을 마치고 서유를 다시 품에 와락 껴안았다.“미안해. 모두 내 잘못이야. 너무 이기적이라서 네 기분을 고려하지 못했어.”서유는 그를 밀어내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의 힘에 못 이겨 작은 몸은 떨리고 있었다.이승하는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서유야, 이것도 내가 당시 저지른 잘못이야. 날 욕하고 원망해도 상관없는데 네 몸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화내지 마. 응?”그는 부드럽게 여자를 달랬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당신이 날 놓아주는 게 진짜 날 위하는 거예요.”이승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긴 목소리에는 슬픔이 깃들었다.“그건 절대 안 돼, 서유야. 애초에 널 놓을 수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지도 않았겠지.”그 말을 들은 서유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자신을 꼭 껴안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렇게 고통스러우면서 왜 또 날 찾아온 거예요?”영원히 만나지 않으면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만들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를 괴롭힐 필요가 있을까?이승하는 몸이 뻣뻣해지고 피곤한 눈 밑에 온통 핏줄이 뒤덮였고 마음은 텅 빈 것 같았다.“서유야, 나에 대한 마음이 조금도 없는 거야?”여전히 분노에 휩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