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문 너머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문 가까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멈춰 섰다.서유는 상대방이 금방이라도 문을 열줄 알았지만, 예상외로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노크하려고 손을 올리던 찰나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재빠르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문밖에 있던 심이준은 그저 누군가의 손이 갑자기 서유를 홱 끌고 들어간 것밖에 보지 못했다. 그가 데리고 온 깡패들은 제 값어치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이대로 적진으로 보내버리고 말았다.심이준의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위로 올라갔다.그때 어디선가 경호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중 제일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큰소리로 외쳤다.“이놈들을 영업 방해도 싹 다 경찰서로 끌고 가!”깡패들은 경찰서라는 말에 어수선해지더니 무기를 버리고 헐레벌떡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버린 무기들은 하나둘 심이준 발 쪽에 떨어졌다. 심이준은 도망갈 겨를도 없이 발을 부여잡으며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다.숨을 제대로 고르기도 전에 경호원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형씨, 우리랑 같이 가줘야겠는데?”심이준은 네 명의 경호원 손에 몸이 들려진 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한편, 방안으로 끌려 들어간 서유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익숙한 향기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은은한 불빛과 활짝 열린 창문으로 쏟아진 햇빛 덕에 잘생긴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이승하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서유는 이승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동자에 어렸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대신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승하 씨, 왜 당신이...”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승하의 뒤로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렸다.서유가 뒤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얼굴에는 금색 가면이 씌워져 있었고 목에는 청룡 문신이 있었다.그녀는 김 씨로 추정되는 남자
“내가 바로 김 씨야.”이승하는 그녀의 하얀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다. 그의 눈에서는 그녀를 향한 애정과 미련이 뚝뚝 흘러내렸다.서유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김 씨가 이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했었지만 막상 그의 입으로 들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그녀는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에 들린 금색 가면을 그의 얼굴에 씌워주었다.이승하와 기억 속의 김 씨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 서유의 동공이 흔들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니 그의 목에는 청룡문신이 있었다.“이건 그린 거야.”이승하는 그녀의 의문을 읽은 듯 대답해주었다.그러면 옷을 입는 스타일과 흐트러진 머리, 조금 걸걸한 목소리 그리고 풍기던 분위기까지 전부 일부러 바꾼 것일까?서유는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듯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대체 왜... 가짜 신분까지 만들어서 나를 속이고 강제로 취하려고까지 했어요?”그녀의 추궁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찔렀다. 그는 죄책감을 느꼈고 또 무서웠다.그녀를 잃을까 봐 무서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와락 품에 끌어안았다.서유는 그의 품속에서 꼼짝할 수 없는 걸 느끼고는 그저 고개를 들어 이승하를 바라보았다.“내가 멍청하고 바보 같아서 일부러 데리고 논 거예요?”“아니야!”이승하는 그녀를 풀어주고 다급하게 해명하려고 했다.“그럼 뭔데요?”“그건...”“내가 만만하니까! 내가 당신 장난감처럼 보였어요?”마음속 깊은 곳에서 폭발한 분노에 서유는 지금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를 바라보는 눈에는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승하, 당신과 함께한 지 벌써 5년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나한테 상처만 주고 강제로 취하려고나 하고 또 속이고! 대체 날 뭐로 본 거예요?!”원망과 분노로 가득한 그녀의 눈에 눈물까지 고이자 이승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숨통이 조여진 것처럼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다.“서유야, 내 말 좀 들어 봐...”이승하가 그녀에게 한 발 더 다가가려고 하자
“말도 안 돼요.”서유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화가 가득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당신은 가짜 신분으로 내 몸을 탐했어요. 난 줄곧 낯선 사람에게 침범당한 줄 알았다고요!”“내가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웠는 줄 알아요?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는지 아냐고요!”“그런데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일부러 날 속여요? 내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거예요?”서유의 말은 이승하의 귓가에 떨어져 은침처럼 그의 고막을 뚫고 남자의 이성을 무너지게 했다.“서유야,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 네가 돌아온 후에 우리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었어.”“어떻게 내 잘못을 만회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김씨 신분은 완전히 뒷전으로 놓고 있었어.”그는 말을 마치고 서유를 다시 품에 와락 껴안았다.“미안해. 모두 내 잘못이야. 너무 이기적이라서 네 기분을 고려하지 못했어.”서유는 그를 밀어내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의 힘에 못 이겨 작은 몸은 떨리고 있었다.이승하는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서유야, 이것도 내가 당시 저지른 잘못이야. 날 욕하고 원망해도 상관없는데 네 몸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화내지 마. 응?”그는 부드럽게 여자를 달랬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당신이 날 놓아주는 게 진짜 날 위하는 거예요.”이승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긴 목소리에는 슬픔이 깃들었다.“그건 절대 안 돼, 서유야. 애초에 널 놓을 수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지도 않았겠지.”그 말을 들은 서유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자신을 꼭 껴안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렇게 고통스러우면서 왜 또 날 찾아온 거예요?”영원히 만나지 않으면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만들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를 괴롭힐 필요가 있을까?이승하는 몸이 뻣뻣해지고 피곤한 눈 밑에 온통 핏줄이 뒤덮였고 마음은 텅 빈 것 같았다.“서유야, 나에 대한 마음이 조금도 없는 거야?”여전히 분노에 휩싸
서유는 고개를 약간 젖히고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일단 병원부터 가요.”이승하는 워싱턴에 있을 때도 머리가 아프다고 했었다. 이번에는 서유가 그녀를 밀쳤을 뿐인데 땅바닥에 쓰러졌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당황스러웠다.“너보다 중요한 건 없어.”이승하는 서유를 번쩍 들어 올려 자신의 다리에 앉힌 다음 머리를 소파에 살짝 기대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서유가 위에, 이승하가 아래에 있어 자세가 매우 이상야릇했다. 서유는 그의 다리에서 내려오려고 몸부림쳤지만 이승하가 그녀의 허리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서유야, 움직이지 마.”서유는 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를 지켜봤다.남자는 그녀의 허리를 누르고 몸 안에서 꿈틀대는 욕망을 애써 참으며 입을 열었다.“사실 김씨는 가짜 신분이 아니라 나의 또 다른 신분이야.”“내가 일곱 살 되던 해에 강 선생님은 나를 위해 S 조직을 만들었어.”“이 조직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고 내가 그 리더야.”서유는 김씨라는 이름이 이승하가 그냥 지은 이름인 줄 알았는데 그의 또 다른 신분일 줄은 몰랐다.어쩐지 그가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고 그 안에 있던 직원들이 전부 그를 깍듯하게 대하더라니.알고 보니 그는 3대 가문의 권력자일 뿐만 아니라 이렇게 강대하고 범접할 수 없는 신분을 갖고 있을 줄이야.불가사의하던 서유의 표정은 점차 열등감으로 번졌고 그녀는 눈을 늘어뜨렸다.그녀가 겁에 질린 것으로 착각한 이승하는 서둘러 서유의 턱을 들어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한 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조직은 사회에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야. 단지 재계와 명문세가와 관련이 있을 뿐이니 두려워하지 마.”서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고 이승하는 그제서야 말을 이었다.“내가 조직을 이끌고 수많은 비즈니스계의 우환을 해결했어. 그러면서 많은 사람에게 미움을 샀고. 만약 내 신분이 폭로된다면 추살당할 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원들이 피해를 입을 거야
여기까지 말한 이승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며칠 동안 눈을 붙이지 못한 그의 눈은 다시 서유를 바라볼 때 붉게 물들었다.“서유야, 그 프렌치 레스토랑은 커플 레스토랑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레스토랑이야.”“그리고 식당 유리는 LOW-E유리라서 밤이 되면 밖이 전혀 안 보여.”멍해 있던 서유는 이 두 마디를 듣자 저도 모르게 눈초리가 떨렸다.이승하의 손가락은 시종일관 부드럽고 섬세하게 안정감이 없는 그녀를 달래는 듯 그녀의 눈썹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세은이 신분은 영국 왕실과 관련되어 있어 좀 특수해. 움직이려면 반드시 알리바이를 위조해야 해.”“나에게 커플인 척 연기해달라고 부탁했고, 난 거절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그때 마침 네가 날 찾아왔던 거야.”그는 말을 마친 뒤 작은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았고, 짙은 눈썹 아래의 눈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그때 널 보지 못했어. 만약 알았다면 꼭 널 만나러 나갔을 거야.”서유는 눈썹을 찡그리며 눈앞의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레스토랑에서 나와 헤드셋을 끼고 조직과 연락하느라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듣지 못했어.”“정말 미안해. 네가 그렇게 많은 비를 맞으면서 호텔 밖에 앉아서 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내가 세은이와 잔 줄 오해하게 했어.”“사실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야. 호텔에 들어간 것도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함이었고 들어간 후 바로 뒷문으로 나갔어.”서유는 듣고 나서 멍해졌던 정신을 차렸다. 참을 수 없는 의심에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그건 어떻게 알았어요...”“CCTV 영상.”이승하는 CCTV 영상 속의 서유를 보고 절망했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서유를 찾았다.만약 그날 밤 이승하가 호텔 정문으로 나왔다면 서유는 비를 맞지 않아도 되고, 슬프고 절망적으로 떠나지 않아도 된다.“성이나가 보낸 문자, 침대 사진은 전부 가짜야.”“나 이승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 하나뿐이었고, 다른 여자는 건드리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제발 믿어줘. 너한테 부끄러
그의 키스는 가벼웠다. 가볍게 입맞춤한 후 곧 떼었다.하얀 손끝이 머리카락을 따라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촉감은 한없이 차가웠다.서유는 시종일관 눈썹을 그리고 있는 그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고개를 약간 기울여 그의 손길을 피했다.이 사소한 행동은 마치 뭉게구름처럼 남자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고 순간 답답하고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쌍꺼풀 아래의 복숭아 눈은 어느새 상처로 가득 번졌고 금세 촉촉해졌다.“이제... 싫어?”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물었다.“네.”서유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복잡한 눈동자가 조금씩 맑아졌다.그녀의 대답은 남자가 잡고 있던 마지막 지푸라기를 무너뜨렸고 이승하는 마치 삶의 끝에 다다른 듯 무기력해졌다.“왜...”그녀에게 잘 설명해주었는데 왜 서유는 여전히 자신의 옆에 있고 싶지 않을까?최선을 다해 그녀를 잡으려고 해도 왜 잡을 수 없을까?이승하가 평생 원한 것은 그녀 하나뿐이었는데 왜 얻지를 못할까?서유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맑은 눈동자를 들어 말했다.“8년 전에 내가 어땠는지 알아요?”8년 전의 과거는 송사월의 것이어서 이승하는 전혀 알지 못했다.두 사람의 과거에 대해 알고 싶지 않지만 서유 앞에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어요. 근데...”서유의 눈은 과거의 어둠에 휩싸인 것처럼 어두워졌다.“사월이 앞에서 무릎 꿇고 나 버리지 말라고 사정했어요. 절대 나 잊지 말라고 울부짖었지만 돌아온 건 절망뿐이었어요.”“5년 후에 사월이가 기억을 되찾고 그 모든 게 오해라고 설명했지만 난 그래도 상처를 받은 거잖아요.”“그 상처 때문에 성격이 예민해져 감히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그럴 용기도 없었어요.”여기까지 말한 서유는 8년 동안 자신을 괴롭힌 이승하의 얼굴을 쳐다보며 다시 봉인된 기억 속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었다.“그때 나는 당신이 분명 나와 결혼하지 않을 거고, 날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승하는 떨리는 손끝을 들어 여자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한번 또 한번 닦았다.안타까운 마음에 남자도 덩달아 눈시울을 붉혔다.서유가 이승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울며 그에 대한 실망을 토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야 이승하는 서유가 자신을 매우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이미 서유를 다치게 했고, 강한 신뢰감도 주지 못해서 서유를 이토록 예민하게 만들었다.이승하는 서유를 늘 원했지만 그녀가 속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그 내면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그의 손가락은 서유의 머리카락을 지나 그녀의 뒤통수를 감쌌다. 걷잡을 수 없이 울고 있는 그녀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서유야, 약속할게. 앞으로 내 곁에는 너 말고 그 어떤 여자도 없을 거야.”그는 마치 선서라도 하는 듯, 눈에는 확고한 신념이 솟아올랐고 그녀의 일생에 대한 약속 같기도 했다.이승하의 어깨에 기댄 서유는 힘껏 그를 껴안고 실컷 울다가 손을 들어 눈가의 눈물을 조금씩 닦아냈다.과거의 감정에서 천천히 벗어난 서유는 몸을 곧게 펴고 앉아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이승하 씨, 우리가 맞지 않는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에요.”소파 위의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여자 얼굴의 눈물 자국을 닦아 주었다.서유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는데 이승하가 차가운 손으로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서유야, 네 눈은 절대 크게 울면 안 돼. 앞으로 절대 울지 마.”이승하는 어떤 부분이 맞지 않는지에 대해 전혀 듣고 싶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존재한다면 그건 오직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서유는 그의 손길을 살짝 밀어내고, 옅은 색 눈동자 속에서 과거에 대한 슬픔을 날려버린 후 이성적으로 말했다.“이승하 씨, 당신 듣고 싶지 않은 거 잘 아는데, 나에게 물은 이상 난 분명하게 말해야겠어요.”남자는 턱을 살짝 치켜든 채 벌겋고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이승하는 서유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서유야, 난 한 번도 네 신분을 신경 쓴 적이 없어. 내가 사랑하는 건 오직 너야. 네가 어떤 신분이든, 어떤 식견을 가졌든, 너면 충분해.”그래서 이승하는 이 문제들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서유의 깊은 내면에 이런 자가 존재하는 줄 몰랐다. 이 긴 자가 줄곧 두 사람의 차이를 측정해 왔지만 이승하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그는 기다란 손가락을 들어 서유의 뺨을 애틋하게 만지며 말했다.“내 모든 건 곧 네 거야. 너만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내가 가진 모든 걸 줄 수 있어.”서유는 그 말을 듣고 웃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승하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지만 정신적인 재부는 줄 수 없었다.식견에 관한 재부는 오직 스스로가 노력해서 얻어야 했으니 이승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남자는 서유의 입가에 웃음이 있는 것을 보고 그녀를 번쩍 안아 소파에 눕혔다.“앞으로는 충분한 신뢰감을 줄게. 너의 든든한 백이 되어 줄 테니 그런 것들은 전혀 우리 사이 걸림돌이 되지 않아.”서유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짓누르는 집요하고 고집스러운 남자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아이는요?”이승하는 몸이 굳어지더니 굳은 눈빛에 갑자기 공포가 일었다.“너...”서유의 시선이 자신의 평평한 아랫배로 향했다.“당신이 그날 병원에서 나에게 한 말, 나 모두 들었어요.”“내가 피임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의사가 임신이 힘들다고 했잖아요.”원래 하얗게 질렸던 이승하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고 핏기라곤 없었다.그는 서유를 풀고 몸을 곧게 펴고 앉아 몹시 피곤한 듯 소파 위에 쓰러졌다.,늘 도도하고 당당하던 남자가 오만함을 벗고 천장을 쳐다볼 때, 서유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당신은 가문의 수장이니 당연히 아이를 낳아 대를 이어야죠. 하지만 난 아이를 낳을 수 없잖아요.”이승하는 그녀가 자신을 탓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말에 당황하여 다시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