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이 가고 나서도 서유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이승하가 송사월을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구해 보살피게 도와줬다니,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서유가 멍해 있자 송사월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손에 든 수저를 내려놓으며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서유야, 3년간 이승하 씨가 나를 살아가게 하려고 많은 일을 해줬어...”“이런 방법으로 속죄하려는 것 같아.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몰라도 너를 참 많이 사랑하는 건 알겠더라.”마지막 한마디로 송사월은 그때 서유에게 진실대로 말하지 못한 아쉬움을 완전히 씻어냈다.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몰래 그녀를 지켜봤다.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승하를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말이다.서유는 시선을 아래로 늘어트리며 눈동자에 깃든 감정을 숨기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근데 너는 분명 살아 있는데 왜 뉴스에서는 네가 죽었다고 그러는 거야?”서유가 송사월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피했다는 건 아직 마음속에 이승하를 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미 내려놓았다는 걸까...송사월은 더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돌아온 답안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 봐 티 나지 않게 대답했다.“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가짜 뉴스를 뿌린 거야.”서유가 죽은 지 7일이 지나고 송사월도 서유를 따라서 죽으려고 하다가 실패하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 나와 그를 향해 총을 쏘아댔다.하지만 한발 빨랐던 이승하가 단숨에 그를 밀어내고 지켜내면서 그를 해치려는 사람과 싸웠다.이승하가 데려온 사람이 총소리를 듣고 달려와 합세하지 않았으면 이승하도 묘지에서 목숨을 달리했을 수도 있다.송사월은 그때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서유에게 알려주고는 말했다.“이승하 씨도 그때 나 구하느라 많이 다쳤어...”그는 살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승하가 그의 목숨을 구해줬다.서유가 이 별장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승하가 보냈을 것이다.하여 더는 서유에게 이 사실을 감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
젓가락을 쥔 송사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유를 바라봤다.서유는 지현우의 전화를 끊어버리고 설명했다.“사월아, 나 깨어나고 네가 죽었다는 소식에 너무 믿을 수가 없어서 하루라도 빨리 귀국해서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어. 근데 현우 씨는 내가 언니 심장을 가지고 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봐 귀국을 막았고. 그래서 일단은 김초희의 이름으로 현우 씨와 결혼한 거야. 난 이 사람한테 아무 감정 없어.”이를 들은 송사월의 눈빛이 경악에서 동정으로 바뀌었다.“서유야, 미안해. 내 잘못된 선택 때문에 이런 사람에게 협박이나 당하게 하고.”서유는 고개를 저으며 마치 모든 걸 꿰뚫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해도 언니 심장 때문에 꽉 잡고 있을 거야.”송사월의 미간이 점점 구겨졌다.“서유야, 지현우 좋은 사람 아니야. 그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너도 상처받게 될 거야.”이 점은 서유도 잘 알고 있었다.“좋은 사람 아닌 거 알아. 나도 그 사람이 나를 놓아줄 수 있게 방법을 생각해 볼 거야.”송사월은 서유가 다른 남자에게 빌어야 한다는 생각에 표정이 어두워졌다.만약 그가 아직 화진 그룹의 대표였다면 지현우와 대적해 서유를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빼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지금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저 휠체어에 앉아있는 병신이라 서유를 돕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서유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그런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이승하가 떠올랐다.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이승하가 나선다면 무조건 서유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서유야, 이승하 씨 지금 이씨 가문과 박씨 가문의 수장이기도 하고 화진 그룹의 주주거든. 지씨 집안은 절대 상대가 안 돼. 이승하 씨가 나서준다면...”서유는 멈칫하더니 그의 말을 끊었다.“사월아, 나더러 이승하를 찾아가라는 거야?”송사월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그 사람만이 지현우와 대
주서희는 서유가 고맙다고 하자 점점 죄책감이 들었다. 그때 있었던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김시후 앞이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일단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주서희는 서유와 잠깐 얘기를 나누고는 바로 김시후의 다리를 검사했다. 주요하게는 위축 상황에 대한 확인이었다.다리 신경이 이미 괴사했기에 다시 일어나기는 어렵지만 다리가 너무 위축되지 않게 유지해 줘야 했다.검사가 끝나고 서유가 다급하게 물었다.“주 선생님, 상황은 어떤가요? 언제면 일어나서 걸을 수 있어요?”사실대로 말하려는데 휠체어에 앉아있던 김시후가 한쪽 주먹을 쥐고는 헛기침하며 주서희에게 말하지 말라고 눈치를 주었다.주서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김시후가 왜 서유에게 숨기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잠깐 망설이더니 서유에게 말했다.“직접 물어봐요.”주서희는 더는 누군가의 병세를 숨겨주는 일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은 환자가 직접 마주하게 할 생각이었다.서유는 고개를 돌려 송사월을 힐끔 쳐다봤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자 서유는 전에 그가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알아챘다.하지만 딱히 까밝히지는 않았다. 그저 주서희에게 이렇게 말했다.“주 선생님, 완치 가능성 있나요?”주서희는 김시훈을 힐끔 쳐다봤다. 그가 고개를 끄덕여서야 주서희는 사실을 말했다.“없습니다.”너무 잔혹한 현실에 서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책감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송사월은 그런 서유를 얼른 다독였다.“서유야, 걱정하지 마. 휠체어에 이미 적응했고 이래도 좋아.”이를 들은 서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결심이라도 한 듯 약속했다.“사월아, 네가 휠체어에 얼마나 오래 앉아있든 상관없어. 난 영원히 네 곁을 지키면서 보살펴줄 테니까.”김민정은 이 약속을 듣더니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만약 서유가 송사월을 평생 보살핀다면 이승하는 어떡하지?송사월이 멈칫하더니 복잡한 표정을 지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그도 사실 잘 알고 있었다. 서유가 그를 보살피려고 하는 건 다
주서희가 멈칫하더니 이내 둘이 이미 만났다는 걸 알아챘다.하긴 이승하가 직접 데려오지 않고서는 이 별장을 쉽게 드나들 수 없었다.하지만 서로 만나고도 서유가 이렇게 거부감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설마 아직 오해가 풀리지 않은 걸까?주서희는 잠깐 망설이더니 다시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서유 씨, 대표님 사실 서유 씨 많이 사랑합니다. 서유 씨 죽고 나서도...”“주서희 씨.”서유가 갑자기 주서희의 이름을 불렀고 이에 주서희는 그대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귀국하고 4번째로 듣는 말이에요. 그 사람이 나를 많이 사랑한다고 말이에요.”지현우, 정가혜, 송사월, 주서희, 하나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마치 이승하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만 알면 그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승하 곁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듯 말이다.하지만 그들은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그녀가 이승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서유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눈시울이 붉어졌다.“서희 씨,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헤어지고 내게 무릎 꿇고 술을 따르라고 윽박지르겠어요?”“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천억짜리 수표를 내 얼굴에 던지면서 5년간 서비스한 비용이라고 하겠어요?”“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내게 더럽혀진 노리개라고 하겠어요?”“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약혼녀의 허리를 감싸고 내게 너 따위가 뭐냐고 물었겠어요?”“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내가 심장병이 있는 걸 뻔히 알면서 그렇게 모질게 내 따귀를 때렸겠어요?”“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내 전화번호도 없겠어요?”“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내가 죽기 전 연지유와 같이 잠자리에 들었겠어요?”서유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단숨에 이렇게 쏟아내더니 주서희에게 물었다.“서희 씨, 말해봐요. 도대체 뭐가 사랑인지.”서유의 물음에 주서희는 멍해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승하의 편을 들자 해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몰랐다.서유가 말한 일 중에 뒤에 3건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다른 건 주서희도 도대체
이승하는 예쁜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는데 눈빛은 몽롱했지만 정신은 말짱했다.그는 온 사람이 주서희임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말릴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와인만 마셨다.주서희는 와인잔을 앗아가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대표님, 계속 이러면 위세척을 해도 죽을 수 있어요.”이승하는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만사가 귀찮아 보였고 긴 손가락을 뻗어 다른 술잔을 가져오려 했다.주서희는 고집스러운 그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대표님, 서유 씨 아직 살아 있잖아요. 얼른 힘내서 다시 만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예전처럼 계속 술이나 마시고 있으면 어떡해요? 제가 아는 대표님은 이런 분이 아니었어요.”예전의 그는 하늘에 사는 신이라도 되는 듯 도도하고 고귀했다.하지만 지금 그는 삶의 의미를 완전히 잃었고 까마득한 눈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주서희는 다시금 그의 손에 들린 와인잔을 앗아가며 말했다.“대표님, 대표님이 서유 씨 때문에 점점 시들어가도 서유 씨는 몰라요. 지금은 그저 전에 변덕스럽게 정신적 폭력을 가한 거랑 죽기 전에 연지유 씨와 밤을 보냈다는 거, 그렇게만 알고 있어요.”이승하가 멈칫하더니 충혈된 눈으로 주서희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연지유와 잔 적 없어.”이승하에게 이번 생에 여자란 서유뿐이었고 다른 여자는 건드리기도 역겨워했는데 잠자리를 가졌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주서희는 난감한 듯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저는 알죠. 근데 서유 씨는 몰라요. 아직 오해가 깊어요. 대표님이 설명하지 않는데 서유 씨가 어떻게 알겠어요. 용서는 어떻게 하고요.”이승하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콧방귀를 꼈다.“신경 쓰지도 않을걸...”이는 이승하가 이미 설명했는데도 서유가 여전히 용서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하지만 아까 서유가 캐묻는 뉘앙스로 봐서는 아직 오해가 완전히 풀린 게 아닌 것 같았다.주서희는 그의 성격에 말을 제대로 잘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이내 한숨을 푹 내
이승하의 충혈된 눈동자가 흔들렸다. 잠깐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다시 덤덤해졌다.그는 한 손으로 와인잔을 움켜쥐고 아무것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주서희에게 말했다.“찾아가지도 말고, 귀찮게 하지도 마.”그는 서유와 송사월을 이어주기로 했으면 그녀가 힘들지 않게 깔끔하게 놓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주서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대표님, 설마 이대로 포기하는 거예요?”주서희는 이 나이 먹도록 한 여자를 이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를 본 적이 없다.이승하가 처음이었다. 서유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마다하지 않고 모든 걸 바치려 했다.이런 이승하가 서유를 포기하겠다니.이승하는 주서희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고 그저 와인만 들이부었다.너무 급하게 마쳤는지 아니면 어디가 불편한지 조각 같은 얼굴이 점점 핼쑥해지기 시작했다.그는 손에 든 와인잔을 내려놓더니 테이블을 짚고 허리를 숙여 아래에 놓인 쓰레기통에 피를 한 모금 토했다.새빨간 피가 입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바닥에 뚝뚝 떨어졌고 이내 쓰레기통과 바닥을 빨갛게 물들였다.주서희는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며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대표님, 위출혈인가 봅니다! 누구 없어요!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아요!”하지만 이승하는 대수롭지 않은 듯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더니 달려오는 도우미에게 말했다.“됐어.”도우미들은 그 말에 놀라 감히 다가갈 엄두를 못 냈다. 이승하는 그제야 차가운 시선을 거두고 다시 와인을 들이부었다.주서희는 화를 이기지 못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고 바로 핸드폰을 꺼내 소수빈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이승하를 끌고 병원 응급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근처에 있던 소수빈은 바로 도착했다. 테이블에 놓인 수많은 빈 병과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고는 이내 주서희처럼 얼굴이 굳어졌다.소수빈은 얼른 앞으로 다가가 이승하를 부축하며 타일렀다.“대표님, 인제 그만 마셔요. 병원 가서 일단 치료부터...”이승하는 그런 소수빈을 밀쳐내며 한 손으로 찢어질 듯 아픈 위쪽을 부여잡았지만
별장으로 돌아온 서유는 거실이 엉망진창으로 깨져있는 걸 발견했다.메이드들은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며 한쪽에 선 채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지현우는 소파에 앉아 과일칼을 만지작거렸다.서유는 그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조금 무서웠지만 용기 내어 그쪽으로 걸어갔다.“나... 왔어요...”지현우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칠흑 같은 눈동자로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그는 곧 포획할 사냥감을 보듯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서유는 그런 눈빛에 가슴이 떨렸고 움켜쥔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그녀는 진정하려고 애쓰며 고개를 들어 지현우를 쳐다봤다.“현우 씨, 우리 잠깐 얘기 좀 해요.”“그래요.”지현우는 소파에 앉아 옆자리를 툭툭 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조금 전 그 눈빛에 이 웃음까지 섞이자 서유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서유는 그의 옆이 아닌 맞은편 일인용 소파에 앉는 걸 선택했다.“현우 씨, 당신과 함께 Y국으로 돌아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그래요.”지현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녀의 결정을 진작부터 알아챈 것처럼 말이다.서유는 이 세글자 뒤에 무조건 다른 조건이 따를 거라는 걸 알고 급하게 대꾸하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을 대치하고 있는데 지현우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전에 약속한 대로에요. Y국으로 가면 김초희로 살지 않아도 되지만 여기 남으면 김초희로 살아야 해요. 마음 굳힌 거예요?”서유가 잠깐 고민하더니 용기 내어 물었다.“싫다면요?”사실 서유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김초희로 살건 아니건 지현우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말이다.지현우에게 서유는 그냥 김초희였고 어떻게 컨트롤할지는 생각하기 나름이었다.전에 이런 조건을 내건 것도 서유를 협박해 Y국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였다.지금 이런 상황에 서유는 그와 함께 Y국으로 갈 수 없었고 그러면 김초희로 살아야 했다.서유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로 살기 싫었지만 어떤 약점으로 지현
서유는 침묵을 지키며 대답하지 않았다. 덤덤한 눈동자에서 지현우가 읽어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뭐 대답하기 싫으면 계속 내 곁에서 김초희로 살아요...”서유는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여전히 대답은 하지 않고 되물었다.“지현우 씨, 우리 이혼하면 안 돼요?”이를 들은 지현우는 그녀가 여전히 이승하를 사랑하는 줄 알고 웃음을 터트렸다.“성격은 언니랑 하나도 안 닮았네요. 당신 언니는 상처받은 한 다시 돌아보지 않을 텐데 말이죠. 그 사람이 입에 발린 소리 좀 했다고 벌써 가서 안기고 싶은 거예요?”서유는 그저 그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갔다.“맞아요. 난 언니와 아예 다르죠. 이건 현우 씨도 잘 알잖아요. 근데도 억지로 나를 언니로...”지현우는 이내 표정이 굳었고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유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지현우 씨, 사실 나도 다 알아요. 나를 언니로 생각하는 게 이 심장뿐만이 아니라 언니를 향한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걸요.”이를 들은 지현우가 갑자기 차갑게 콧방귀를 꼈다.“내가 왜 죄책감이 들어야 하죠?”“그런가요?”서유가 이렇게 되묻더니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언니는 당신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끊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는 건 당신이 언니에게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줬다는 의미죠. 나를 언니로 생각하는 것도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한 보상일 뿐. 근데 지현우 씨, 당신이 지금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언니는 돌아오지 않아요. 왜 계속 환상 속에 살면서 자기를 속이려 드는 거예요?”이를 들은 지현우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분위기도 점점 험악해졌다.서유는 그런 지현우를 보며 방금 한 말이 그의 정곡을 찔렀다는 걸 알아챘다.지현우가 이성을 잃고 폭주할까 봐 두렵긴 했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원하는 방향으로 그를 인도했다.“지현우 씨, 언니가 죽기 전에 바란 건 나를 살리는 것이지 내가 언니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만약 진짜 언니에게 보상하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