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찾아왔다고 짜증부터 낼 줄 알았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말일 줄 예상하지 못했다.정가혜는 원래 멋지게 연석 씨, 우리 헤어져요. 라고 말한 뒤 다시 돌아설 예정이었으나 뜻밖의 상황에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이연석은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별장 안으로 걸어갔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저를 찾았어요? 오랜만에 하고 싶은 거예요?”정가혜는 약간 감동하는 듯싶었으나 이연석의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그게 아니라, 저는...”정가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연석은 갑자기 돌아서더니 그녀의 턱을 잡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슬픔에 잠긴 깊은 키스에 질식할 뻔했던 정가혜는 그의 허리를 힘껏 꼬집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겨우 한숨을 돌리자 이연석은 또 갑자기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는 침실로 걸어갔다.이연석은 그녀를 침대로 내던진 뒤 넥타이를 풀고 셔츠 깃을 풀며 그대로 눌러버렸다.모든 과정이 끝나고 정가혜는 습관적으로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담배를 피웠지만, 이연석은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요...”정가혜는 그의 품에 안겨 목선이 뚜렷한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다시는 안 필게요.”그녀만의 서유가 다시 돌아왔으니 이제 술과 담배로 마음의 고통을 완화할 필요도 없었고 단지 중독되어 끊는 데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이연석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의 반들반들한 이마에 입술을 포갰다.“그래요. 이래야 착하지.”이연석의 응석 부리는 말투는 정가혜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만, 이연석이 어떤 여자를 대하든 줄곧 부드럽게 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으니 애써 마음속의 잔잔한 물결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다.정가혜는 이연석을 밀어내고 일어나 옷을 잘 차려입은 후 침대 옆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이연석 씨, 우리 헤어져요...”그러자 이연석은 멍해져서 깊은 눈을 들어 정가혜를 바라보았고 제때 대답하지 못한 채 말없이 그녀를 훑어보기만 했다.정가혜는 항
클럽의 장사가 잘되기 때문에 팔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매니저에게 경영을 맡기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에 정가혜는 클럽 매니저에게 지분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매달 꼬박꼬박 재무 표를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말한 뒤 그녀는 클럽을 떠났다.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짐 정리를 한 후 서유에게 일 처리를 다 마쳤으니 이젠 출발해도 된다고 문자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유는 답장을 보내왔다. 서유는 비행기가 지현우의 개인 비행기라서 먼저 노선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녀한테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오래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돈 많은 지현우는 곧 이 일을 해결했다.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서면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살았던 그 별장을 둘러보았다. 원래는 팔 생각이었지만 나중에 서유가 지현우에게서 벗어나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 그녀는 시선을 거두고는 가사도우미한테 집을 잘 봐달라고 당부한 뒤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먼 곳에 세워져 있는 롤스로이스 팬텀에서 한 남자가 먼 길을 떠나려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어딜 가는 겁니까?”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가혜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지나가는 길이었습니다.”그녀를 쳐다보며 담담하게 대답하던 그의 시선이 캐리어에 떨어졌다. “여행 가는 겁니까?”그녀는 고개를 저었다.“Y국으로 가요.”그녀의 말에 이연석은 이내 눈치를 챘다.“서유 씨와 함께 Y국으로 가서 살기로 한 거예요?”정가혜는 흠칫했다. 서유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그가 알고 있을 줄은 몰랐고 자신이 서유와 함께 Y국으로 가서 살려고 했다는 걸 그가 짐작할 줄도 몰랐다. 서유의 당부가 생각난 그녀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서유는 이미 죽었어요. 근데 어떻게 서유랑 함께 Y국으로 가서 살겠어요?”이연석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둘째 형은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숨길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던 정가혜는 손사래를 쳤다. 다만 그녀가 신경 쓰이는 부분은 이승하가 서유를 찾아왔다는 것이다.정가혜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왜 널 찾아온 거야?”이성을 잃은 이승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서유는 가슴이 답답해졌다.“8년 동안 날 사랑했었대. 나한테 한 번만 기회를 더 달라고 했어.”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가혜야, 참 웃기는 일 아니니?”그동안 그렇게 모질게 대해놓고 이제 와서 사랑한다니? 뒤늦은 사랑이 그게 진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한편, 깜짝 놀라던 정가혜는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이 돌아왔고 그녀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서유야, 한 가지 너한테 말 못 한 일이 있는데... 사실 네가 죽고 나서 이승하 씨가 널 찾아왔었어.”“그 당시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모양이야.”“하지만 난 그 사람이 널 죽였다는 분노에 휩싸여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어.”“근데 지금 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어쩌면 이승하 씨가 널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하지만 서유를 사랑한다는 이승하가 왜 서유를 버렸는지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유를 버린 것도 모자라 두 계집애 때문에 그는 서유한테 손찌검까지 했었다.이연석과 함께 있는 동안 정가혜는 복수를 하기 위해 그한테 이승하에 관해 물어보기도 했었다. 다만 이연석은 그녀가 자신을 유혹한 목적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둘째 형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여 그녀는 지금까지도 이승하가 왜 서유한테 그렇게 대했는지 알지 못하였다.서유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승하가 자신의 죽음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어했다니?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지만 그녀는 그저 정가혜가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미안해서 그랬던 거겠지.”그가 때린 뺨으로 인해 서유는 예정보다 일찍 숨을 거두었다. 아무리 냉혹하고 무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의 목숨 앞에서는 조금이나마
공항 VIP룸 옆의 화장실 안.서유는 손을 씻은 후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쳤다.현재 그녀의 피부는 예전처럼 창백하지 않았고 생기가 돌았다. 파운데이션을 살짝 바르고 립스틱을 바르면 더 생기 있어 보였다.그녀가 화장을 고치고 VIP룸으로 돌아가려 할 때, 우뚝 솟은 그림자가 갑자기 그 안으로 들어왔다.검은 수트 차림에 차가운 기운이 한껏 감도는 남자의 얼굴은 칼로 깎은 듯 날카롭기만 했다. 싸늘한 그의 눈빛은 점점 그녀를 향해 무섭게 파고들었고 당장이라도 그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가 터벅터벅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입술을 꽉 다문 채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충격에서 벗어난 서유가 있는 힘껏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그는 그녀를 단단히 가둔 채 도망갈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이승하 씨.”충분히 그에게 얘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꾸 자신을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다.이승하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그녀를 끌고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서유가 문을 꽉 잡은 채 한사코 따라가지 않으려 했다.그는 눈을 감으며 마음의 화를 가라앉히더니 이내 문밖에 있는 소수빈을 향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아무도 들이지 마.”말을 마친 그가 돌아서서 서유를 벽에 가두고는 그녀의 턱을 잡고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서유가 귀국한 뒤 이승하는 그녀를 세 번 찾아왔었다. 매번 그녀를 찾아와서는 늘 이런 식으로 그녀를 강요했다.분노가 극에 달한 서유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 그녀의 머리 위로 올렸다. 우뚝 솟은 그의 몸은 그녀를 꼼짝도 하지 못하게 가두었고 그가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킬 듯이 미친 듯이 탐하고 있었다.숨 막히는 키스가 쏟아지자 그녀는 당해낼 힘이 없었다.그녀는 차라리 몸부림을 포기하고 눈을 뜬 채 담담하게 미친 남자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입술, 그녀의 뺨과 목덜미에 키스를 퍼부었다.품 안의 여인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가
그의 말에 서유도 차갑게 웃었다.“아직까지 당신한테 맞는 섹스 파트너를 찾지 못해서겠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날 쫓아다니는 거 아닌가요?” 순식간에 이승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바로 음험하고 차갑게 변하였다. 그의 두 눈은 더욱 붉어졌고 눈 밑의 감정을 감추었다. 화가 극에 달한 그는 그녀의 뺨을 움켜쥐고는 그녀를 자신의 눈앞까지 끌어당겼다.그가 손바닥만 한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당신 말이 맞아. 아직은 당신처럼 잘하는 파트너를 찾지 못해서 말이야. 그래서 당신을 놓아줄 수가 없어.”그녀는 가슴이 찢어졌고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에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이내 그 감정을 꾹꾹 눌러 가라앉혔다. 서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를 향해 피식 웃었다.“난 이미 누군가의 아내가 된 사람이에요. 더 이상 거래 따위는 하지 않을 거라고요. 그러니까 이승하 씨, 다시는 나 찾아오지 말아요.”그녀의 말에 이승하는 숨이 멎을 듯한 고통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서유가 빨갛게 부어오른 입술을 벌렸다.“이승하 씨, 남편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비켜주세요.”“그 남자가 당신 남편이면 그럼 난 뭔데?”“한때 스폰서였던 사람이요.”눈을 붉히며 묻는 그의 물음에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한때 스폰서였던 사람이라? 하아...’이승하는 입술을 깨물며 뼈에 사무치는 아픔을 억누르고는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았다.“서유, 당신 진짜 지독한 여자군.”‘내가 지독하다고? 이승하 당신한테 비하면 난 독한 사람도 아니지.’더 이상 그와 엮일 마음이 없었던 그녀는 자신을 잡고 있는 손을 차갑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이거 놔요.”안색이 굳어진 이승하는 손을 놓기는커녕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당신이 그 인간 따라가는 거 나 절대 용납 못해.”지현우는 그가 서유를 찾지 못하도록 별장의 하인들과 공항 직원들에게 거짓말을 시켰다. 그걸 믿지 않은 그가 항공사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현우의 일정을 확인하라고 하였길래 망정이지 그렇지
그녀를 꼭 껴안고 있지만 그녀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텅 빈 느낌에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이때, 그녀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싫어요? 싫으면 그냥 나 보내줘요.”숨을 쉴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을 만큼 가슴이 찢어진 이승하는 그녀의 머리를 가슴에 가져다 댔다. 가슴이 찢어지는 소리를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그녀는 그가 얼마나 아픈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서유는 있는 힘껏 그를 밀어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는 그저 그녀를 꼭 껴안은 채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난감해진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날 놓아줄 거예요?”“날 사랑해 봐.”이승하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그 말을 들은 서유는 마음이 살짝 떨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품에 안긴 여인은 시종일관 침묵했고 이승하는 그녀의 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그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붉히며 물었다.“서유야, 날 한 번만 사랑해 주면 안 돼?”단 한 번만이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그녀가 날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그도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그의 옷깃을 잡고 있던 서유가 마음이 흔들린 건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꽉 주며 옷깃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이 남자를 사랑했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서 그녀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바로 잡았다. “이승하 씨, 우리는 계약 관계였었어요. 근데 지금 와서 사랑이라니요?”그녀의 목소리는 사람을 떨리게 할 정도 차분했고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이 그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어 그의 온몸을 아프게 만들었다.“김초희.”문밖에서 지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그를 누군가 막아서는 바람에 지현우는 그녀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부르고 있었다.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서유는 고개를 들어 이승하를 쳐다보았다.“이거 놔요. 이제 그만 해요.”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꼭 껴안은
서유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사월이... 아직 살아있는 거예요?”이승하는 주먹을 불끈 쥔 채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억누르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아직 살아있어.”깜깜하고 빛이 없던 그녀의 눈이 송사월이라는 세글자에 이내 빛을 발하였다.역시 송사월만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반면 이승하가 무슨 짓을 해도 그녀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이승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자신을 비웃었다. 그의 입에서 긍정적인 답이 나오자 서유는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사월이는...”뉴스에 의하면 송사월은 자살했다고 했고 정가혜도 그가 죽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어떻게...이승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내가 살렸어.”눈물을 글썽이던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승하 씨가 사월이를 구했다고?’그녀는 조금 놀랐고 의심스러웠지만 결국은 짧게 고맙다는 인사만 했다.“고마워요.”그 고맙다는 말이 두 사람 사이를 완전히 멀어지게 만든 것 같아 이승하는 몹시 불쾌했다. 그가 차갑게 웃으며 서유에게 따져 물었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고맙다고 하는 거야? 지현우의 와이프로 아니면 송사월의 와이프로?”그 말에 서유는 죄책감이 사라지기는커녕 한없이 커져 버렸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고 하도 손에 힘을 꽉 주고 있어 손톱이 손바닥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승하는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을 풀어주며 그녀에게 말했다.“나랑 같이 송사월 씨 만나러 가자.”그의 큰 손이 작은 그녀의 손을 감싸고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조금 더 파고들어 그녀와 깍지를 끼었다.그는 그녀를 끌고 문밖으로 나갔다.한편, 소수빈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문밖에서 지현우를 막고 있었다. 지현우는 한 손을 양복 주머니에 넣은 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수빈을 향해 호통쳤다.“기다려, 지금 당장 사람 불러올 테니까.”소수빈은 지씨 가문의 도련님 지현우가 그의 앞에서 전화를
이승하는 서유를 데리고 공항을 빠져나가 고급 차에 올라탔다.뒷좌석에 앉은 서유가 안전벨트를 매려고 할 때, 이승하의 큰 손이 다가가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잠시 후,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서유를 쳐다보았다.평온한 얼굴로 몸을 곧게 펴고 앉은 그녀를 보고 이승하는 소수빈한테 차를 출발하라고 명했다. 차가 출발하자 서유는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도 없이 창밖을 쳐다보았다.이승하 역시 고개를 돌리고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묵묵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두 사람은 같은 뒷좌석에 앉아있지만 낯선 사람들처럼 사이가 멀어 보였다. 얼마 후, 이승하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녀는 문에 기대어 앉아있었고 반쯤 열린 차창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풍성한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순한 모습은 예전에 그와 함께 했던 그 시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승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고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차 세워.”소수빈은 바로 속도를 줄이고 옆으로 차를 세운 뒤, 눈치껏 차를 빠져나왔다. 그 모습에 서유는 고개를 돌리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사월이한테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이승하는 초조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만나러 갈 거야. 하지만...”잠깐 머뭇거리던 그가 서유를 향해 다가갔다.“그 사람을 만나러 가지 전에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그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뭐라고요?”이승하는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그녀의 이목구비를 어루만졌다.“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한 번만 내 여자가 되어줘.”그녀는 그가 자신의 몸을 원하는 줄 알고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럴 수는 없어요.”그가 손길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 사람 만나러 가기 전까지 그냥 예전처럼 지내면 안 될까?”문뜩 서유의 머릿속에는 이승하가 그녀를 안고 거실에서 물도 먹여주고 음식도 먹여주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