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만이 남은 그녀의 얼굴을 보니 주서희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숙여 꼭 안아주었다.“서유 씨, 고마워요.”주서희의 부드러운 포옹이 서유를 사색에서 끌어냈다. 그녀는 힘겹게 손을 들어 주서희의 등을 토닥거렸다.“오히려 저를 살려주셔서 제가 고마운걸요. 주 선생님 아니었으면 언니와 작별 인사할 기회도 없었어요.”정가혜가 달려 나가자마자 간호사가 들어와 그녀의 상태를 체크하며 그녀에게 주서희가 그녀를 구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주서희가 왜 그녀를 살리려고 달려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른 걸 더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 은혜만으로 충분했다.“사실은 이...”사실은 이승하가 알려줘서 간 거라고 서유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유가 잘라버렸다.“주 선생님, 우리 언니, 그러니까 가혜는 어디 갔어요?”이미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는데 정가혜가 돌아오지 않자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걱정되었다.주서희는 모든 신경이 서유에게 쏠려 있었기에 정가혜가 병실을 비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주서희는 병실을 빙 둘러보더니 서유에게 말했다.“찾아보라고 할까요?”서유는 감사를 전하며 다시 침대맡에 놓인 쇼핑백을 쳐다봤다.“주 선생님, 향수 가져가요.”주서희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서유가 목숨으로 바꾼 정성을 생각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향수를 받은 주서희는 서유에게 일찍 쉬라고 당부하고는 병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몇몇 경비를 불러 CCTV를 돌려보라고 했다.병원에서 나온 정가혜는 병원에서 달려 나가다 실수로 이연석과 부딪혔고 둘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하지만 별다른 큰 충돌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그저 몇 마디 주고받더니 정가혜는 다시 어디론가 달려갔고 그 뒤로는 찍힌 영상이 없었다.주서희는 시CCTV에 찍힌 정가혜를 가리키며 경비들에게 말했다.“사람 보내서 저 여자 좀 찾아와요.”경비는 바로 사람을 찾으러 갔다. 일 처리를 마친 주서희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서유는 이미 잠에 든 상태였다. 간호사
정가혜는 병실로 돌아왔지만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문 앞에 서 있었다.서유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서유가 곧 영원히 떠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정가혜의 몸이 벽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지더니 두 팔로 다리를 부둥켜안은 채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마치 세상에 버려진 사람처럼 가엽기 그지없었다.주서희는 의사들을 거닐고 진찰을 돌다가 그런 정가혜를 발견하고는 의사들을 먼저 보내고 그쪽으로 걸어가 정가혜를 일으켜 세웠다.“정가혜 씨, 괜찮아요?”정가혜는 멍해서 고개만 저었다.주서희는 퉁퉁 부어오른 그녀의 눈을 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정가혜 씨, 인명은 재천이라고 가혜 씨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서유 씨 곁을 지키는 거예요. 그래야 후회가 안 돼요.”이 말에 정가혜는 끝내 정신을 차렸다. 어두웠던 동공에 한 줄기 빛이 생겼다.“서유... 얼마나 더 살 수 있어요?”한참 침묵하던 정가혜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주서희는 사실 그대로 말했다.“한주 정도 남았어요...”정가혜는 비틀거리더니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주서희가 그녀를 잡으며 타일렀다.“이럴 때일수록 가혜 씨가 잘 버텨줘야 해요. 절대 무너지면 안 돼요. 가혜 씨가 무너지면 서유 씨는 어떡해요.”정가혜는 반쯤 나간 정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내가 잘 버텨야 해요. 서유 걱정시켜서는 안 되지...”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병실로 들어갔다.그러더니 서유의 침대맡으로 걸어가 서유의 볼을 쓰다듬었다. 주서희는 이 모습을 창문으로 지켜봤다.따스한 햇살이 기구한 운명의 두 사람을 비춰주었다. 마치 온기로 그들을 녹여주려는 것 같았다.주서희는 그제야 서유가 왜 아껴서 모은 돈을 정가혜에게 모두 남겨주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서로 생명을 의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주서희는 몇 년간 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싸워온 자신을 떠올리며 살짝 서글퍼졌다.그녀는 시선을 늘어트리며 몸을 돌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온전히
정가혜는 꼬박 2시간을 울었다. 남은 눈물을 모두 쏟아낸 후에야 울음을 그쳤다.서유가 입꼬리를 올리며 그런 정가혜를 비웃었다.“내가 기억하는 우리 가혜 언니는 늘 굳센 모습이었는데, 울음보 기질도 있구먼.”정가혜는 서유와 디스전을 펼칠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서유에게 물었다.“너 눈 안 보이는 거 주 선생님은 알아?”서유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몰라.”그러더니 한마디 덧붙였다.“인제 그만 신세 져야지.”이를 들은 정가혜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서유도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눈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정가혜는 빛을 잃은 서유의 눈동자를 보며 무너져오는 멘탈을 단단히 부여잡고는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서유야, 심부전은 언제부터 시작된 거야?”정가혜가 알아본 데 의하면 심부전은 말기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바로 이런 상태까지 악화하는 케이스는 없었다.서유는 이씨 집안 사람에게 당하기 전부터 이미 심부전을 앓고 있었다. 또 중간에 무슨 일을 겪으면서 말기로 악화한 게 틀림없었다.서유는 이제 정가혜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아니면 정가혜는 그녀가 어쩌다 죽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된다.서유는 겨우 정신을 붙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5년 전에 김시후의 형 김준혁에게 발에 두 번 걷어차였던 거 기억나?”정가혜는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그 발길질에 심부전에 걸린 거야?”서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의사 선생님이 심부전이 올 수도 있다고 하셨거든. 잘 보호하면 몇 년 더 버틸지도 모른다고. 근데 잘 보호하지는 못했나 봐. 심부전이 점점 악화하더라고.”서유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정가혜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서유는 정가혜가 진정할 수 있게 손등을 토닥이더니 말을 이어갔다.“부산에서 한동안 치료 받았어. 부산에서 돌아와서 다 말해주려 했는데 그때는 네가 송사월을 죽이겠
서유가 송사월을 탓하지 말라던 말이 떠올라 정가혜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지나치고는 물 뜨러 갔다.김시후는 문 앞에 선 채 침대에 누운 작고 가녀린 서유를 바라보며 눈물이 차올랐다.그는 최대한 몸을 떨지 않으려고 주먹을 불끈 쥐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침대맡으로 다가갔다.앞이 보이지 않는 서유는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자 가혜가 돌아온 줄 알고 손을 내밀어 옷깃을 잡으려 했다.“가혜야...”옷깃을 잡기도 전에 크고 기다란 손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그녀의 손을 꼭 잡은 그 손은 살짝 떨고 있었다. 김시후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어떻게 말할지 몰라 그저 그녀의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서유는 그 손이 남자의 손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머릿속에 이승하의 차갑지만 잘생긴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서유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불렀다.“사월아...”김시후는 그녀가 아직 자신을 알아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알아보고 나서도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무너졌던 멘탈에 죄책감까지 더해졌다.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더니 침대맡에 앉았다.그는 아무 말 없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서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위부터 아래로 그녀의 얼굴을 열심히 그렸다.서유는 그런 김시후를 밀쳐내지 않고 만지작거리게 내버려두었다. 마음은 호수처럼 고요하기만 했다.한참 지나서야 김시후는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서유야...”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것처럼 처절하면서도 미련이 가득했다.“응.”서유가 대답하더니 되물었다.“왜 돌아온 거야?”김시후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냥 마음이 답답해서, 너 보러 온 거야...”그는 요 며칠 마음이 너무 어수선했다. 무슨 일이라도 날것처럼 심장이 벌렁거렸고 그녀를 찾아오고 싶은 충동을 잘 억제할 수가 없었다.아파트로 찾아가 밤새워 기다렸지만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서유와 정가혜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기에 주서희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김시후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전에 왜 그렇게 모질게 말했는지 말이다.그녀의 죽은 뒤 모습을 보고 그가 슬퍼하고 자책할까 봐 그를 쫓아낸 것이었다.사실 서유는 늘 그대로 변한 적이 없었다. 죽을 때까지 그를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이승하를 사랑해서 자신을 그렇게 못되게 대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깊은 죄책감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녀의 손을 잡은 손이 자기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렸다.서유는 그의 무력함을 느끼고 다시 손을 내밀어 그의 손바닥을 꼬집었다.“사월아, 이제 가면 안 돼?”김시후는 손을 내밀어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서유야, 이번엔 네가 뭐라 해도 안 가. 끝까지 네 옆에 있을 거야. 영원히 네 옆을 지킬 거라고...”영원이라는 말은 그녀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말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상처 주기 싫었다.그녀는 가슴이 답답한 듯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그에게 말했다.“사월아, 나 더 이상 말할 힘이 없어. 눈 좀 붙일게.”김시후는 그런 그녀가 너무 마음이 아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일단 좀 자. 내가 옆에 있을게.”그는 혹시나 그녀가 자신을 내쫓을까 봐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유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눈을 감았다.김시후는 참대맡에 앉아 가만히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그녀가 깊은 잠이 들고 나서야 그는 핸드폰을 꺼내 소준섭에게 전화를 걸었다.원장실에서 주서희를 귀찮게 하던 소준섭은 김시후가 걸어온 전화를 보고는 멈칫했다.저번에 김시후에게 문자를 보내 설명했지만 김시후는 답장이 없었다. 그런 김시후가 먼저 찾아왔으니 소준섭은 조금 기뻤다.그는 주서희를 놓아주더니 전화를 받았다.“시후야, 어쩌다 전화를 다 하고?”김시후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심부전, 고칠 수 있어?”소준섭은 김시후의 질문을 듣고 바로 그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아챘다.“적합한 심장은 찾았고?”김시후는 무력감이 몰려와 꼭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아니...”
요 며칠 서유는 자는 시간이 깨어있는 시간보다 많았다.깨어났다 해도 몇 마디 못 하고 바로 다시 스르르 깊은 잠에 빠졌다.김시후는 침대맡에 앉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핼쑥한 얼굴엔 수염이 자랐고 그 모습이 매우 수척해 보였다.서유가 깨어나 음식을 먹고 싶어 할까 봐 정가혜는 나가서 좀 사 오려고 했다. 서유가 별로 먹지 못해도 말이다.정가혜는 김시후에게 나가서 흰죽 좀 사 오겠다고 하고는 병실을 나섰다.그녀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유가 잠에서 깼다. 온몸이 부어올라 움직일 수가 없었다.어쩌면 얼굴도 부었을 것이다. 그 모습이 얼마나 흉할지 서유는 예상이 갔다.서유는 김시후가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이에 마음이 살짝 차분해졌다.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사월아... 혹시 해 떴어?”김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게 떠올라 얼른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응, 떴어...”그는 붉어진 눈시울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해가 뜰 리가 없었다.하지만 요 며칠 서유는 잠에서 깨자마자 늘 해가 떴는지를 제일 먼저 확인했다.해가 보고 싶은데 눈이 보이지 않으니 그저 해가 떴는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서유는 해가 떴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눈은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지만 유리창으로 햇살 한줄기가 들어오는 게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따듯해졌다.“사월아, 나 주워 온 날도 이런 날씨 아니었어?”“맞아. 하늘은 파랗고 구름이 예쁜 날이었어. 햇살도 엄청 따듯하고. 네가 잔디밭에 누워 있는 걸 단번에 봤지 뭐야.”송사월이 5살 되는 해 복지원 밖에서 연을 날리다가 풀숲에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복지원에 데려갔다.그가 그녀를 안아 올린 그때부터 그녀를 위해 모든 걸 바칠 운명이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서유는 김시훈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꿈에서 어떤 여자가 그녀를 향해 손
서유가 그런 자신을 비웃다가 갑자기 숨통이 조여오는 느낌에 미친 듯이 기침했다. 순간 입에서 피가 거품처럼 뽀글뽀글 나오더니 산소마스크를 꽉 채웠다.“서유야!”김시후는 하얗게 질리더니 얼른 벨을 눌러 의사를 불렀다. 그러면서 한쪽 무릎을 꿇고 티슈를 꺼내 산소마스크를 벗기고는 기침으로 나온 피가 섞인 가래를 받았다.피가 티슈를 타고 뼈마디가 선명한 그의 손에 떨어진 순간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는 다른 손을 내밀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려 했지만 닦을수록 피는 점점 많아졌다.빨간 피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옷과 베개를 적셨다.군데군데 묻어 있는 피에 김시후는 심장이 아파졌고 자기도 모르게 온몸을 떨고 있었다.간호사는 비상벨을 듣고 얼른 주치의와 원장을 모셔 왔다.주서희는 심하게 기침하는 서유를 보고는 바로 의사들에게 응급실로 베드를 옮기라고 했다.사람들은 부랴부랴 병실로 달려왔다가 허둥지둥 다시 빠져나갔다. 김시훈만 그 자세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온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김시훈은 그렇게 손에 피를 가득 묻힌 채 굳어버렸다.크고 웅장한 몸은 지금 이 순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깊은 바다에라도 빠진 것처럼 허우적댈 힘도 없었다.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껴온 사람이 정말 떠난다는 걸 지금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그를 떠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무엇인지 모를 무언가가 자꾸만 손등에 툭툭 떨어졌고 이미 말라붙은 피를 적셨다.정가혜는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그런 김시후를 마주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에 대한 원망도 천천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그가 서유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옆에서 보아온 터라 잘 알고 있었다. 비껴간 5년만 아니었으면 둘은 무사히 평생을 함께했을 것이다.하지만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법, 하느님은 그들을 엇갈리게 한 것도 모자라 지금 서유의 목숨마저 앗아가려 하고 있다.이런 생각에
김시후는 벽을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응급실로 들어갔다.수술대에는 작고 마른 체구의 한 사람이 생기 없는 모습으로 누워있었다.기다란 눈초리 아래에 있는 예쁜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미 죽은 사람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얼굴에 묻어있던 핏자국이 깨끗이 닦여지고 병적으로 창백해 보이는 그녀의 작은 얼굴이 드러났다.그녀는 마치 샘가 옆에 핀 피안화처럼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띠고 있었다.하지만 애석하게도 피안화는 이 세상의 소유가 아니다. 그녀는 가장 아름다울 때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갈 운명이었다.“서유야...”김시후는 수술대 앞에 한쪽 무릎을 꿇더니 몸을 숙여 목소리를 낮춘 후,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그러자 부드러운 울림이 곧 사라질 듯한 서유의 의식을 되살렸다.그녀는 지친 눈을 느릿느릿 뜨고 마지막으로 송사월을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사... 월...”서유는 간신히 이 두 글자를 내뱉었다. 의식은 분명하지 않았고 목소리도 희미하여 무슨 말을 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그녀의 입술 가까이 귀를 갖다 대고서야 김시후는 서유가 부르는 것이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나 여기 있어.”그는 힘을 건네주기라도 하는 듯 서유의 손을 꼭 잡았다.서유는 생명을 연장해 주는 마지막 산소를 들이마시며 떠듬떠듬 당부의 말을 전했다.“가... 혜... 잘... 부탁... 해.”떠나면서 더 바랄 것은 없었다. 단지 그녀를 친동생처럼 여기는 정가혜가 평생 무사하고 건강하기를 바랄 뿐.김시후는 고개를 숙여 서유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알겠어.”그러자 서유는 입을 다물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사월아... 다음 생에는... 나 다시 잊어버리지 마.”김시후는 순간 심장이 찌릿 아팠다. 질식할 것만 같은 통증이 사지를 꽉 조여 그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프게 했다.원래 어떤 아쉬움은 감당하기 어려운 법이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칼에 마음을 관통당한 듯 지금의 김시후가 그러했다.말로 표현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