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과 작별한 후, 이연석은 단이수의 요청에 따라 재판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모아 자리를 마련했다. 단, 정가혜는 제외했다.재판장에서 이연석과 정가혜는 꽤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법정을 떠날 때도 실수로 서로 부딪혔지만, 두 사람은 예의 바르게 미안하다고 말한 후 각자의 길을 갔다.현재 두 사람의 이런 상황을 모두가 이해했기에, 이연석이 정가혜를 초대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이수는 이연석의 마음이 여전히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술잔을 들고 이연석의 잔과 부딪치며 말했다. “정말 이렇게 포기할 거야?”묵묵히 술을 마시던 이연석은 감정 없이 대답했다. “난 최선을 다했어. 이제 지쳤어.”그는 지쳤고, 더 이상 정가혜를 붙잡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다.단이수가 다시 권하려고 했지만, 문밖에서 들어오는 이지민을 보고는 멈췄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점점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는 심형진을 보자마자, 그 생기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이연석도 그의 시선을 따라 문 쪽을 보았고, 상영훈을 발견하자 즉시 미간을 찌푸렸다. “왜 데려왔어?”분명 이지민에게 단이수 변호사를 감사하는 자리니까 다른 사람은 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녀는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는 걸까.이지민은 상연훈을 데리고 이승하 앞으로 다가갔다. “오빠, 한 사람 더 오는 거 괜찮지?”이승하는 개의치 않았지만, 서유는...그는 고개를 돌렸지만 서유가 보이지 않자 약간 놀랐다. 반면, 옆에 있던 심이준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상연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연훈 씨, 날 기억하시나요?”상씨 집안은 김초희가 맡은 마지막 프로젝트의 주인이었고, 현장 조사에 가고 싶어 했던 심이준은 당연히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상연훈은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서 심이준을 알아보고는 예의 바르게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김초희 씨 회사의 수석 디자이너시군요.”그의 아버
연이는 손에 들고 있던 대하를 내려놓고,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손으로 앞에 있던 주스를 잡아 큰 테이블 너머로 쭉 내밀었다. “저는 다 마셨으니까 편하게 해요.”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연이의 이 대담한 행동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조지가 연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연이는 테이블 위에 놓인 아이패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영화에서 배웠어요. 어때요, 조지 할아버지? 저 연기 재능 있는 것 같지 않아요?”조지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쳐다봤다. “분명히 말했지, 나는 아직 마흔 살밖에 안 됐다고. 할아버지라니, 삼촌이라고 불러.”연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근데 할아버지처럼 칠십 살로 보이는데요.”이연석은 드물게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쳤다. “확실히 그래 보여.”조지: ...그는 곧바로 심이준에게 물었다. “정말 그렇게 보여?”심이준은 쌀쌀맞게 대답했다. “거울 대신 물이라도 떠다 비춰줄까요?”말을 꺼낸 게 잘못이었다. 완전히 자업자득이었다.상연훈은 테이블 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상황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상연훈의 시선은 방 안 화장실로 향했다. ‘사모님께서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안 나오는 걸까?’화장실 안에서 답답해하던 서유는 핸드폰을 꺼내 이승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다. [여보, 상연훈을 빨리 어떻게든 내보내 줘요.]어떻게 심형진을 돌려보낼까 고민하던 이승하는 이 문자를 보고는 애정 어린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내가 들어가서 같이 있어 줄까?]서유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당신이라면 방법이 있겠죠?]”[1분만 기다려.]핸드폰을 내려놓은 이승하는 고개를 들고 상연훈을 보며 말했다. “상연훈 씨,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위층으로 잠시 올라가도 괜찮을까요?”그들이 모인 곳은 ‘나이트 레일’ 이라는 장소로, 건물 전체가 이승하의 소유였다. 1층은 정식 레스토랑이었고, 나머지 층은 모두 오락 시설이었다.이
단이수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몇 번 목격한 후, 이지민은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둬버렸다. 밤낮 없이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그렇게 지냈다. 그때, 그녀는 단이수가 와서 자신을 찾아줄 것을 기대했다. 재결합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위로의 말이라도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그 이후로, 이지민은 다시는 단이수를 만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 단이수가 갑자기 찾아와 이제 다시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도, 그녀는 그를 무시했다.오빠 이연석은 단이수가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고 말했지만, 이지민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음에도 이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마치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언덕 아래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단이수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살며시 미소 지었다.“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그녀는 이미 그를 놓아주었다. 굳이 말해봐야 그녀와 그녀의 부모 사이에 골만 깊어질 뿐이다. 무엇 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냥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두자.이런 생각에 잠긴 단이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그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렸다.“오늘 밤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거야.”“말해도, 날 용서해 줄 거야?”“아니.”단이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그럼, 하지 말자.”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그의 야윈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지민은 처음 그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그때 단이수는 ‘나이트 레일’이라는 룸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른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어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조명 아래, 그는 주변의 시끄러운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고독으로 가득 찬 존재처럼 보였다.얌전한 성격의 이지민은 이런 남자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그녀의 친구들이 그에게 빠지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녀는 이미 첫눈에 반해버렸고, 친구들의 충고는 너무 늦었다고
그때 이지민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헤어질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그를 끊임없이 찾아가고, 그를 몰아붙이며 물었다. “아직도 나를 사랑해?”단이수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지민은 믿지 않았다. 그녀는 또다시 손목을 그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울지도 않았고, 그녀를 구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짐을 챙겨 떠나버렸다.단이수는 그들이 함께 살았던 집을 떠나 외딴곳으로 이사했다. 이지민은 그를 찾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그런데도 이지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바보처럼 거실에 앉아 그들이 끝나기를 기다린 후, 방을 치워주곤 했다. 그녀는 침대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옷을 주우며 스스로를 달랬다. 방을 깨끗이 치우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이수 오빠는 다른 여자들과 지내다 질리면, 내 좋은 점을 다시 떠올리고 내게 돌아올 거야.”이지민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여러 번 그런 상황을 견뎌냈다.마지막으로, 단이수가 그녀에게 소리쳤다. “이제 그만 그렇게 비참하게 굴지 마!”그제야 이지민은 다른 여자의 옷을 품에 안고, 천천히 침대 옆에 웅크렸다.그녀는 그 순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물었다. “정말 사랑하지 않아?”그녀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을 때,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이후 그녀는 스스로를 방에 가둬놓고, 한편으로는 마음을 놓으려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자신을 찾아와주길 바랐다. 결국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그녀는 점차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그럼 그녀는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냈을까? 환상에 의지하고, 스스로를 구원하며, 부모님의 곁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다.그 길은 너무나도 길고 고통스러웠다. 이지민은 그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무겁게 아팠다. 그녀는 다시는 그런 고통을 겪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다행히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고통이 서서히 사
단이수의 버림, 상처, 배신이 이지민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면, 그녀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아무도 모르게 그녀를 깊숙이 상처입힌 사람들이었다.이지민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단이수의 옷깃을 놓고, 얼굴을 감싸며 천천히 주저앉았다.단이수도 그녀의 옆에 무릎을 꿇으며 위로했다. “바보야, 널 되돌리고 싶어서 일부러 거짓말한 거야. 네가 그걸 믿다니.”이지민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오빠 외할머니가 우리 가족 때문에 간접적으로 돌아가셨던 거잖아……”그녀가 그렇게 울자, 단이수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니야, 그런 일 없었어. 내가 거짓말한 거잖아. 넌 내가 하는 말 중에 진실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잖아. 그러니까 울지 마.”이지민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그 여자들은...?”단이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지만, 그녀는 그 손을 피했다.그녀의 피하는 모습을 보며, 단이수는 사랑하는 그녀, 그가 죽을 만큼 사랑했던 이지민이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그는 손을 거두고 이지민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다 잤어.”거짓말이었다. 사실 그는 그 여자들과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를 떠나게 하기 위해 한 거짓말이었을 뿐이다.단이수의 눈가가 붉어졌고, 그는 눈물을 억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뒤돌아섰다.땅에 웅크린 채로 단이수의 넓은 등을 올려다보던 이지민은 뭔가를 깨달은 듯 일어나, 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오랜 시간이 지나, 이지민이 그를 먼저 안았다. 단이수의 고통으로 떨리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다.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손등을 부드럽게 만지다가, 힘을 줘 그녀의 팔을 떼어내고 몸을 돌려 이지민을 단단히 껴안았다. “이지민, 그동안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너무나도,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단이수의 품에 안긴 이지민은 차가운 눈물이 목덜미로 떨어져 피부에 닿는 것을 느끼며, 그도 함께 울기 시작했다.“이수 오빠, 미안해. 이제
차창 너머로 아래층에서 뒤돌아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상연훈은 손에 든 술잔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결국은 헤어졌네요.”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보던 이승하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지민이는 늘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고 원하지 않는 건 물건이든 감정이든 과감하게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술잔을 들고 있던 상연훈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이걸 저한테 보여준 의도가 뭡니까?”현재 이지민과 서로 혼담이 오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한테 여동생의 과거를 숨겨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당신을 속일 수 없을 테니까요. 남들의 입을 통해 이 사실을 아는 것보다는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말을 하면서 이승하는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타는 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이 사실을 알고 나서도 지민이와 계속 결혼할지 말지는 당신 스스로 결정해요.”상연훈의 입가에 웃음이 더 깊어졌다. “제 결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대표님의 여동생에게 달렸지요.”말을 마치고 그가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승하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대표님의 성격이 꽤 마음에 듭니다. 아쉽게도 대표님은 남자라서...”이승하가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혐오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가 크게 웃음을 지었다. “농담입니다. 저 성적 취향은 정상이에요.”차가운 얼굴의 이승하가 손에 든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대답했다.“성적 취향이 정상이라고 했던 누군가가 내 아내를 좋아하게 됐습니다.”“네?”상연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다리를 내려놓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누구예요? 감히 겁도 없이 대표님의 여자를...”소파에 등을 기댄 남자는 그를 차갑게 쳐다보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상연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아내분이 너무 아름다워서 숨겨두신 건가 봐요. 저한테는 소개도 안 해주시고.”그의
한편, 이지민의 어머니 유나희와 아버지 이진철은 식사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유나희는 미용사를 집으로 불러 피부 관리를 받고 있었고 이진철은 고개를 숙인 채 경제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으리으리한 저택 안에는 하인들이 제 몫을 다하느라 분주하게 돌아쳤다. 밤에 비가 조금 온 바람에 처마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한 저택에 생기를 더했다. 빗소리와 함께 들려온 문 두드리는 소리에 식탁을 닦고 있던 하인은 서둘러 걸레를 내려놓고 커튼을 걷었다. 커튼이 걷히자 비에 흠뻑 젖은 이지민이 문밖에 서서 새빨간 두 눈으로 유나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식들이 커서 독립한 후, 저택에는 유나희와 이진철만 살고 있었고 가끔 밥 먹으러 본가에 들릴 때면 미리 연락을 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이렇게 낭패한 모습으로 문밖에 나타나자 유나희와 이진철은 깜짝 놀랐고 얼른 문을 열라고 했다.“지민아, 왜 그래?”유나희와 이진철은 급히 다가가 이지민의 손을 잡았다. 온몸을 떨고 있는 딸의 모습에 두 사람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야?”유나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흠칫하던 유나희는 바로 눈치를 챘고 눈물이 고인 딸의 눈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지민은 두 사람의 손을 뿌리치고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새빨간 눈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왜 그랬어요? 왜 저한테 그런 거예요? 왜 이수 오빠한테 그랬어요?”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시절 꽃 같은 나이에 그녀가 그렇게 힘든 일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녀를 애지중지 키워온 부모가 그녀를 나락으로 빠뜨려버렸고 죽을 만큼 힘들게 했다. 단이수가 그렇게 매정하게 떠난 이유가 자신의 부모님 때문이라는 걸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착하고 사리가 밝은 부모님이셨는데...“그거 알아요? 이수 오빠의 외할머니, 그 일 때문에 자살하셨어요...”주먹을 불끈 쥔 그녀
이진철과 유나희는 단이수의 과거를 뒤늦게 안듯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지으며 이지민을 바라보았다.“우린... 몰랐어.”“그래요. 두 분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한테 묻지도 않고 저 대신 결정을 하신 거예요.”“두 분 때문에 전 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었어요.”눈물범벅이 된 딸의 모습에 유나희는 가슴이 아팠다.“지민아, 미안해. 다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미안하다...”그녀는 떨고 있는 이지민의 차가운 손을 붙잡고는 손을 비비며 변명했다. “엄마가 단이수를 오해했어. 너희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해서든 두 사람을 갈라놓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몇 번 만나보니 괜찮은 사람이더라. 그래서 어쩌면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더 이상 크게 관여하지 않았던 거고. 근데...”“그러면 이수 오빠랑 제가 다시 잘 될 줄 알았어요? 우리 두 사람이 다시 사귀면 엄마가 한 일은 다 없던 일이 되는 건가요?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았어요?”점점 몰아붙이는 이지민을 향해 유나희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봐요. 이수 오빠가 변호사로 성공한 걸 보고 이젠 저랑 어울릴 것 같아서 허락하신 거예요? 아니면 오빠의 외할머니가 자살한 소식을 듣고 마음이 바뀌신 거예요?”첫 번째 이유라면 유나희는 가문과 배경을 너무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만약 두 번째 이유라면 유나희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녀가 보여준 것처럼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지민, 네가 어떻게 너희 엄마를 의심할 수 있어?”이때, 이진철이 또다시 아내의 편을 들었다. “그 당시 너와 단이수를 반대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단이수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어.”이지민은 이진철의 말을 무시한 채 새빨간 두 눈으로 유나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집안에서 서열 1순위는 이진철이 아니라 유나희였으니까. 이태석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진철은 형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