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망치는 거야? 그냥 너만 붙잡는 거야. 계약이 만료되고 일 해결하면 북교 프로젝트는 마찬가지로 대양그룹에 돈을 벌어주겠지.”구승훈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는 지금까지도 정양철 부자가 강하리를 대양그룹에 계속 두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처음에는 그들이 강하리를 이용해 자신을 상대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런 것 같지만은 않았다.정말 강하리를 대양그룹에 남기고 싶은 게 강하리의 재능 때문일까?반면 강하리는 구승훈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그 내기 계약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구승훈의 목울대가 일렁거렸다.그는 알고 있었다.강하리가 북교 땅을 차지하기 위해 서둘렀을 때부터 사람을 시켜서 알아봤다.애초에 그녀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구승훈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하리야, 미안해.”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며 잠시 마음이 복잡해졌다.정양철과 계약서에 서명할 때만 해도 그녀는 구승훈에 의해 절망에 빠졌던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시선을 바닥으로 내리던 그녀가 말했다.“지금 이런 얘기 해 봤자 소용없어요. 일단 문제부터 해결해야죠.”구승훈은 마음 한구석에 씁쓸했다. 차라리 그녀가 화를 냈으면 좋았을걸.하지만 그녀는 가볍게 한 마디로 넘어갔다.“걱정하지 마, 이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될 테니까.”강하리는 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결국 연성으로 가는 티켓으로 바꿨고 이륙하기 전 강하리는 백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백아영은 일이 생겨 연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조금 안타까워했지만 앞으로 기회가 많이 있을 거라는 말만 남겼다.연성에 도착했을 때 구승재는 이미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달려와 반갑게 맞이했다.“송동혁이 맞아. 비계는 그가 매수한 사람들이 건드렸고 가족들도 뒤에서 선동한 건데 정양철과 상관이 있는지는 아직 단서가 없어. 자기는 깔끔하게 빠져나갔
구승훈의 사람들은 일 처리가 매우 빨랐고 그날 밤 온라인에는 해명 영상이 올라왔다.게다가 이 영상이 올라온 직후 주요 포털 사이트 계정에서 영상이 올라오며 댓글이 여러 개가 달렸다.일방적이었던 인터넷 여론은 순식간에 역전되었고 강하리는 구승훈이 송동혁까지 폭로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이 글의 주인공인 송동혁은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욕을 먹었고 곧바로 송동혁이 대양그룹 직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대양그룹 입찰을 빼돌렸다는 이야기도 폭로됐다.이어서 S제약의 내부 사정에 대한 재정 문제, 세금 문제 등이 연이어 터져 나오며 구승훈은 송동혁을 벼랑까지 내몰았다.송동혁은 온라인 폭로 글을 보며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오싹한 기운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다.왠지 이번엔 정말 끝장인 것 같은 느낌에 휴대전화를 들고 어디론가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송동혁은 너무 화가 나서 전화기를 소파에 내리쳤다.얼마 전 구치소에서 풀려난 장진영은 아직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다.“이번에도 강하리 그년 때문이야?”송동혁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걔가 아니면 구구겠어!”장진영의 화가 나서 눈이 뒤집혔다.“유라가 며칠 전에 건물에서 뛰어내려 다쳐서 앞으로 휠체어에 묶여 있을 거라고 들었는데 구승훈은 보러 가지도 않았어. 다 강하리 때문이야. 송동혁, 우리 가족이 강하리 그년한테 죽도록 당하게 됐다고!”이 말에 송동혁은 또다시 짜증을 냈다.“하지만 지금 구승훈이 걔를 그렇게 감싸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해. 이젠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장진영은 순식간에 눈물을 터뜨렸다.“송동혁, 어떻게든 회사가 문을 닫는 건 물론이고 유라가 이렇게 외국에 방치되는 걸 지켜볼 수는 없어!”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은 송동혁의 관자놀이가 펄떡거렸다.“그만 좀 울어!”장진영은 순간 굳어버렸다.“나한테 성질부리는 거야? 송동혁 이 개자식아, 나한테 화내는 것 말고 당신이 할 줄 아는 게 뭔데!”장진영이 말하며 송동혁의 얼굴을 할퀴려 하는
강하리의 입꼬리가 씰룩거렸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리가 정말 아팠다.지난 며칠 동안 구승훈은 그녀를 쉬게 해주지 않았다.“구승훈 씨, 나 어딘가 좀 불안해요.”강하리가 욕조에 기대어 속삭이자 구승훈은 눈썹을 치켜뜬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가 불안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거렸다.“궁지에 몰린 송동혁이 날뛸까 봐요.”구승훈의 눈빛이 번뜩였다.“네 옆에 사람 몇 명 더 붙일게.”강하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왠지 모를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그때 구승훈은 그녀가 넋을 잃은 빈틈을 파고들어 몸을 기울여 키스했다.강하리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구승훈 씨, 뭐 해요?”구승훈은 뻔뻔하게 말했다.“욕조에서 안 해본 지 오래됐잖아.”강하리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왜 시도 때도 없어요?”하지만 구승훈은 이미 안으로 파고들었고 욕조 안의 물은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끊임없는 움직임에 바닥으로 넘쳐흘렀다.“구승훈 씨...”“응, 나 여기 있어.”구승훈은 귓가에 낮게 깔리는 물소리와 함께 그녀를 품에 안으며 속삭였다“하리야, 여보라고 불러봐.”강하리는 죽기 살기로 입술을 깨물며 그 호칭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구승훈은 그녀의 쇄골을 살며시 깨물었다.“그럼 승훈 씨라고 불러.”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움직임은 그녀를 도망치지 못하게 옭아맬 뿐 그 어떤 쾌락도 주지 않았다.강하리의 눈가가 붉게 달아오르며 결국 그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하고 물기를 머금은 눈으로 불렀다.“승훈 씨.”구승훈은 그녀가 부르는 소리에 이성을 잃고 눈동자가 더욱 짙게 물들더니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맹렬한 공격을 시작했다.강하리는 그의 고문에 지칠 대로 지쳐서 그의 손에 이끌려 욕실 밖으로 나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구승훈은 여전히 욕망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만족감을 느꼈다.강하리가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아침이었다.멍한 상태로 눈을 뜬 그녀는 여기가 아파트라
강하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계속 남아 있었다.공사 현장에는 개장식 준비가 끝났고 강하리가 가서 향만 피우면 끝이었다.안에서 나와 보니 구승훈이 전화기를 들고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이자 그녀는 웃으며 그쪽으로 걸어갔다.그런데 그때 옆으로 지나가던 누군가 그녀와 부딪혔다.“죄송합니다.”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말하며 고개를 드는 순간 동공이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진용철!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그 사람은 이미 그녀를 스쳐 지나간 뒤였다.“구승훈 씨, 저 사람...”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남자가 뒤돌아보더니 손에 번뜩이는 무언가 들려 있었다.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남자가 손에 칼을 들고 구승훈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구승훈 씨!”강하리의 비명에 구승훈이 시선을 돌려 이쪽을 보았고 그가 몸을 돌리자 칼이 팔을 간신히 스쳤다.이를 본 진용철은 다시 한번 구승훈에게 달려들었고 구승훈의 움직임이 재빨랐지만 남자의 손에 칼이 들려 있었기에 여러 번 몸을 스쳤다.옆에서 지켜보던 강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행히 노진우가 옆에서 재빨리 달려들어 진용철은 순식간에 우위를 빼앗겼다.구승훈이 남자의 손목을 잡고 비틀며 손에 든 칼을 바닥으로 떨구자 강하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바로 그때 옆에 있던 사람들 속 한 남자가 구승훈의 뒤에서 이쪽으로 달려왔다.“구승훈 씨!”강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무의식적으로 달려와 구승훈의 앞을 막았다.뒤돌아본 구승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강하리를 품에 안으며 손으로 들이대는 칼을 잡았다.순식간에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정신을 차린 노진우가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대표님, 손...”“이 둘부터 처리해.” 구승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노진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서둘러 대답했다.강하리는 칼이 자신에게 향할 줄 알았는데 고개를 돌리니 구승훈의 피가 흥건한 손이 보였다.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뒤돌아 거즈를
강하리는 정주현을 바라보며 최대한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이쪽은 정주현 씨한테 맡길게요. 전 이 사람 데리고 병원 가야겠어요.”정주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강하리를 바라보았다.“하리 씨는요, 안 다쳤어요?”“안 다쳤어요.”그렇게 말한 뒤 강하리는 구승훈을 차 안으로 끌어당겼다.가는 내내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구승훈도 상처 부위를 계속 압박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사가 상처를 치료하고 근육이나 뼈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강하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손연지가 급히 달려왔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강하리는 입술이 하얗게 질린 채 한참 후에야 답했다.“이제 괜찮아.”노민우는 손연지를 따라가던 중 누구에게 들었는지 강하리에게 다가와 물었다.“승훈이 대신 칼 맞았어요?”손연지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구승훈 대신 칼 막아줬어?”강하리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손연지를 위로했다.“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 오히려 저 사람이 다쳤어.”구승훈의 휴대폰이 계속 울렸고 그는 손연지를 보며 말했다.“하리가 좀 놀라서 잠시만 같이 있어 주세요. 전 나가서 통화 좀 할게요.”손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구승훈이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대세 무슨 생각으로 구승훈 대신 칼을 막은 거야! 구승훈처럼 덩치 큰 남자를 네가 왜 막아?”강하리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하면 믿어줄 거야?”손연지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그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하리야, 너 아직도 그 사람 사랑하지?”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그를 위해 칼을 막아주겠나.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구승훈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가까이 다가오고 자신을 휘두르게 내버려두지도 않았을 테니까.“아마도.”강하리가 낮게 속삭이자 손연지는 조금 마음이 상했다.그녀는 사실 강하리가 구승훈과 화해하길 바라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빨리 화해하면
구승훈의 눈동자에 희망의 빛이 번쩍였다.강하리가 그를 보호하기 위해 달려온 순간 그녀가 다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제일 먼저 들었지만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두 사람이 헤어진 후부터 지금까지 그가 따라다니며 잡지 않았다면 강하리는 아마 절대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이제 강하리가 기꺼이 그의 접근을 받아주고 있긴 하지만 그게 자신이 따라다녀서 얻은 결과라는 걸 구승훈은 잘 알았다.그녀의 마음속에 아직 자신이 있는지 구승훈은 확실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그녀가 달려와 그의 앞을 가로막는 순간까지 말이다.구승훈은 정말 화가 나고 두려웠지만 그런 대답을 해준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아무 말도 없었지만 백 마디 말보다 더 가슴에 와닿았다.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거즈로 감싼 그의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부정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라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런 상황에서 단숨에 칼을 손으로 움켜쥐다니.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나서서 칼을 막아주려 한 건 그녀였지만 사실은 구승훈이 자신을 지켜주었다.시간이 흐른 뒤 강하리는 마침내 시선을 들어 남자의 뜨겁고 무거운 눈빛을 마주했다.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구승훈 씨, 계속 확고하게 날 선택할 거예요? 송유라나 구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도요.”구승훈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하리야, 내가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어?”강하리는 한참을 그를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구승훈 씨, 그 남자가 칼을 들고 당신에게 달려드는 걸 본 순간 정말 무서웠어요. 이대로 당신을 잃을까 봐, 아직 제대로 사랑도 해보지 못한 우리가 이렇게 영원히 헤어질까 봐.”그녀는 웃으며 말했지만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당신 앞에 다가가서 막았어요.”구승훈은 숨이 턱 막히며 그녀를 곧장 품으로 끌어당겼다.강하리는 그의 가슴에 이마를 기대었다.코끝이 시큰 해났다.그녀의 마음에는 여전히 갈피를 잡
그 말에 구승훈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사라졌다.“그놈 구승현 오른팔이야. 우리 집 영감탱이가 지난번에 구승현을 이용해서 날 몰아붙이려고 할 때 그놈을 내보냈어.”강하리는 가슴이 철렁했다.“이번엔 구승현이 짓이에요? 난 송동혁인 줄 알았는데.”구승현의 눈가에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구승현이 아닐 수도 있다. 그는 아직 침대에 누워있고 그동안 계속 구승훈 측 사람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이번엔 누군가 구승현의 손을 빌린 걸 수도 있다.다만 상대가 감히 자신에게 덤벼들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아직 확실하지 않아. 이미 경찰서로 보냈으니까 조사하면 나오겠지.”강하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구승훈이 갑자기 다시 입을 맞췄다.얼마 후 불순한 그의 손이 마구 헤집기 시작했고 그의 의도를 감지한 강하리는 곧바로 그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여긴 병원이에요!”구승훈은 웃으며 따라나섰다.“그럼 오늘 밤 나랑 같이 집에 갈래?”“아니요.” 돌아간다면 또다시 힘든 밤이 될 게 분명했고 말 그대로 침대에서 힘들어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구승훈은 순간 불만이 차올랐다.“하리야, 이제 막 연애하기로 했는데 달콤한 것 좀 해봐야 하지 않아?”강하리가 답했다.“그래서요?”“난 아직 배고픈데?”강하리는 걸음을 멈추었다.“관계 정의하기 전에는 뭐 안 했어요?”구승훈이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그럼 오늘 밤에 짐 싸서 내일 이사해, 응?”강하리가 그를 바라봤다. “구승훈 씨, 누가 보면 당신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는 줄 알겠어요!” 구승훈은 다치지 않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지분거리며 말했다.“그러게 누가 날 이렇게 오랫동안 굶기게 놔두래?”강하리는 그를 밀어내며 밖으로 나갔다. “공사장에서 다친 노동자 두 명도 이 병원에 있는데 가서 봐야겠어요.”구승훈은 굳어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같이 가.”강하리는 그에게 쉬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니 가만히 쉬지도 않을
강하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구승재 씨한테 와서 당신 돌봐주라고 연락할게요.”구승훈의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걔가 왜 날 돌봐?”강하리가 그를 흘겨보았다.“구승훈 씨, 내가 올라가면 나한테 손 안 대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요?”구승훈이 그녀를 안았다.“약속할게.”강하리는 웃으며 그를 차 밖으로 밀어냈다.“당신 약속은 이제 아무 소용이 없어요!”그러고는 곧장 차를 몰고 떠났다.그녀도 며칠은 쉬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정말 이 개자식 때문에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구승훈은 사라지는 차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피식 올리다가 얼마 후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사실 강하리가 오지 않는 것도 다행이었다. 마침 오늘 밤 처리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까.그는 휴대폰을 꺼내 구승재에게 전화를 걸었다.“데리러 와.”구승재가 구승훈을 데리러 왔고 두 사람은 구씨 가문 저택으로 갔다.가는 동안 구승재가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그 두 사람 추궁했더니 송동혁이 보냈다고 하더라. 송동혁 측에도 사람 보냈는데 송씨 가문에 갔을 때 마침 짐 싸서 도망갈 준비 하고 있었대. 그러면서 말로는 진용철이 거짓말을 했다고, 형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대.”구승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말을 꺼냈다.“송유라 쪽에는 송동혁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비밀로 해. 안 그러면 또 성가신 문제가 생겨.”구승재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참고 이렇게 물었다.“정말 송동혁 짓이야?”구승훈이 피식 웃었다.“송동혁이 미치지 않고서야 나한테 달려들지 않지.”구승재는 인상을 찌푸렸다.“송동혁이 아니라면 둘째 형이야?”구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맞는지 아닌지 때려보면 알겠지.어쨌든 그들은 구승현의 측근들과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구승현과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다.구씨 가문의 옛 저택에 도착한 구승훈은 곧장 구승현의 방으로 향했다.구승현은 흔들의자에 누워 예쁜 가정부가 먹여주는 포도를 입에 넣고 있었는데 누군가 방문을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냥 식사한 것뿐이야. 임 선생에게 분명히 말했어. 앞으로는 다시는 너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강하리는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지 않고 손가락으로 잔을 살짝 쓸며 말했다.“그게 당신이 말하는 임희주 씨를 처리하는 방법인가?”구승훈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자기야, 좀 더 시간을 줘.”“얼마나 더? 구승훈, 이제 3일 뒤면 우리 결혼식이야.”“3일 안에 처리할게. 응?”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강하리는 눈을 내리깔고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구승훈과 노민우 회사 인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마치 임희주 일을 잊은 것처럼.하지만 구승훈은 강하리가 속으로는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저녁 식사는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집으로 돌아온 구승훈은 바로 서재로 들어갔고 강하리는 연정이를 안고 침실로 돌아갔다.구승훈이 서재에서 나왔을 때, 강하리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구승훈은 한숨을 쉬며 준봉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희주 씨를 다른 데로 보내. 앞으로 보경시에 나타나지 못하게 해.]잠시 후, 준봉의 답장이 왔다.[대표님, 임 선생의 진료소가 폐쇄되었습니다. 불법 진료 행위로 신고가 들어왔고 의사 면허증도 압수당했다고 합니다.]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침대에 누워 있는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그러고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의 강 대표님은 정말이지 말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됐어. 신경 쓰지 마.]그가 임희주에게 직접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여초연이 눈치채고 임희주를 포기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강하리가 직접 나서면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구승훈은 휴대전화를 넣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워 강하리를 끌어안았다.다음 날, 강하리는 다시 바쁜 하루를 보냈다.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아 처리해야 할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특히 노민우 회사 인수 건이 중요했는데 강하리는 처음으로 인수합병을 진
강하리가 심씨 가문에 도착하자 심문석은 응접실에 앉아 오랜 벗과 바둑을 두고 계셨다.심문석은 강하리를 보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하리야, 이리 와 봐.”“할아버지!”강하리는 웃으며 심문석 옆으로 다가갔다.“장씨,봤지? 이 아이가 내 증손녀야. 어때? 예쁘지?”심문석은 강하리를 옆자리에 앉히며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마주 앉은 장씨 할아버지는 강하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정말 예쁘구나. 구씨 가문 그 녀석은 어쩜 이렇게 복이 많아?”그 말에 심문석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강하리가 두 할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심준호가 밖에서 들어왔다.“서재로 와.”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심준호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혹시 임 선생 문제에요?”심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문제가 좀 있긴 한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너 혹시 임희주와 구승훈의 관계를 의심하는 거야?”강하리는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삼촌. 전 그냥 구승훈이 걱정돼서.”심준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사한 자료를 강하리에게 건넸다.강하리는 천천히 자료를 넘기다가 뒷장의 사진을 보고는 손이 멈추었다.사진은 총 세 장이었다.첫 번째 사진은 임희주와 임명우가 함께 서서 무언가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는데 분명히 두 사람은 아는 사이 같았다.두 번째 사진은 임희주와 구승훈이 식당에 앉아 있는 매우 친밀해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사진 촬영 날짜는 오늘이었다.세 번째 사진은 임희주가 구승훈의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었다.사진을 쥔 강하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심준호는 강하리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임희주의 출신은 좀 의심스럽지만 구승훈의 심리 상담사니까 두 사람이 만나는 건 어쩔 수 없어. 두 장의 사진 때문에 화내지 말고 구승훈에게 직접 물어봐. 구승훈이 합리적인 설명을 해 줄 거야.”심준호가 자신 때문에 강하리와 구승훈와 싸우는 것을 걱정했다.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삼촌,
강하리는 아무 말 없이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안예서는 그녀를 따라갔고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강하리는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원래 하얀 피부였던 그녀의 손은 쉴 새 없이 씻겨졌다.안예서가 그녀를 위로하려는 순간, 강하리는 갑자기 수도꼭지를 잠그더니 표정이 평소처럼 돌아왔다.“괜찮아. 회의가 곧 시작될 것 같으니 준비하도록 해.”하지만 안예서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정말 괜찮아요? 구 대표님께 전화를 드려볼까요?”강하리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괜찮아.”안예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강하리는 세면대 앞에 서서 천천히 휴지로 손을 닦으며 복잡한 생각을 정리했다.만약 임명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구승훈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구승훈의 신중함을 생각해 볼 때, 아무런 조사 없이 그 약을 사용했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만약 조사를 했다면, 왜 그 약을 계속 사용했을까?강하리는 침묵 속에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삼촌, 사람 한 명 조사 좀 해줘요.”이후 회의에서 강하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고 침착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임명우는 평소에 자주 보이던 웃는 표정을 거두고 진지하게 회의에 임했다.협상은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회의가 끝나고 강하리는 무표정하게 짐을 챙겼다.임명우는 깔끔한 옷차림으로 회사 파트너들을 배웅한 후, 강하리 앞으로 다가왔다.“같이 식사하면서 출장 이야기 좀 나눌까요?”강하리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출장은 일주일 전에 통보해야죠, 그러니 이번에는 못 가요.”임명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말했다.“알았어요. 출장은 못 가도 그 일은 강 대표님께서 신중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하세요.”강하리는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가 바로 다시 걸어갔다.회사로 돌아온 강하리는 바로 임원들을 소집하여 노민우의 회사 인수 계획을 세
문을 잠그는 소리가 조용한 회의실에 울려 퍼지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서 있는 임명우를 바라보고는 잠겨진 문손잡이에 시선을 고정했다.“임 대표님, 무슨 뜻이세요?”임명우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강 대표님,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오늘 회의 내용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서요.”“그렇다고 문을 잠글 필요까지 있나요?”강하리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문을 잠그는 행동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그녀는 임명우와의 협력을 계속 거부해 왔는데 임명우의 의도적인 접근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그런 의도적인 접근은 마치 예전의 정양철처럼 대개 특정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는 임명우에게 항상 거부감을 느껴왔다.하지만 지금까지 임명우는 특별히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처럼 문을 잠근 것은 처음이었다.강하리는 임명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임명우는 웃으며 어딘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저는 강 대표님의 신뢰를 받을 자격이 없나요?”강하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임명우를 바라보았다.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임 대표님,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우리 모두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그렇죠?”임명우는 또 한 번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강하리의 표정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것을 보며 그는 어색한 미소를 거두었다.“제가 꼼수를 써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요? 강 대표님, 왜 저를 그렇게 싫어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어요. 임 대표님, 본론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강하리는 말을 마치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그녀가 문에 도착하기 전에, 임명우가 그녀를 가로막았다.“임명우 씨!”강하리는 임명우를 노려보며 소리쳤다.“대체 무슨 짓이에요?”“강하리 씨, 저와 거래를 하죠. 강하리 씨가 저를 다정하게 대해주면 제가 그 심리 상담사를 구승훈 옆에서 떼어내
강하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노민우 씨는 해야 할 일 해요. 손연지와 얘기 좀 할게요.”노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연지를 돌아보았다.“어제 진짜 아무것도 안 했어.”손연지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럼 내 몸에 있는 이 흔적들은 내가 스스로 만든 거야?”“그냥 키스만 했어.”“아까는 아무것도 안 했다더니, 이제는 키스만 했다고?”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강하리는 재빨리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병원 정원에서.강하리는 손연지의 화난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아직도 웃겨? 너 누구 편이야?”강하리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화내지 마. 노민우는 사실 괜찮은 사람이야.”손연지가 말하려던 순간, 강하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내 말 좀 들어봐.”강하리는 어제 노민우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손연지에게 대략적으로 전했다.손연지는 강하리를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미쳤어?”강하리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번졌다.“미쳤는지는 그 사람이 더 잘 알겠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미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렇지?”강하리는 손연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하지만 노민우 씨가 여씨 가문과 완전히 관계를 끊기 전까지는 더 깊은 관계는 맺지 마.”손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 후, 그녀가 강하리를 돌아보며 물었다.“왜 병원에 왔어? 혹시 아픈 거야?”“일이 좀 있어서.”손연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두 사람은 정원에 앉아 있다가 각자의 일을 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강하리는 약병을 약리 연구소에 가져다주고 인성 테크로 향했다.안예서는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강하리를 보자마자 달려왔다.“대표님, 방금 회의 일정이 추가되었어요. 오후에 출장을 가야 할 수도 있다고 하네요.”강하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안예서를 돌아보았다.“언제 통보받았어?”“방금이요.”강하리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안예서는 불안해졌다.안예서는 강하리가 원래 임명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 이렇게 온 것도 계약 때
구승훈은 자연스럽게 강하리 앞으로 다가갔다.그녀 손에 들린 작은 병을 빼앗아 들고 우유 컵을 그녀에게 건넸다.“노민준이 준 약이야. 손 찔리겠다.”강하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시선을 구승훈의 얼굴에 고정한 채 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하지만 구승훈이 너무 잘 감추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그의 얼굴에서 어떠한 이상한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괜찮다고 하지 않았어?”“응, 괜찮아.”구승훈은 대답하며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의자에 앉혔다.“노민준이 신경 써서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고 했어. 걱정하지 마, 괜찮아. 나중에 연성시에 돌아가서 심리 치료도 함께 받으면 금방 나을 거야.”강하리는 구승훈이 다시 쓰레기통에 버린 앰플 병을 내려다보다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구승훈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같이 야근할까?”“괜찮아. 가서 쉬어.”그러고는 일어나서 프린터 옆에 있는 자료를 가져왔다.구승훈은 떠날 생각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이메일을 확인했고 강하리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일을 계속했다.구승훈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임희주의 계획을 노민준에게 이메일로 보냈다.서재의 고요함은 새벽 2시까지 이어졌고 강하리가 일을 계속하고 있자 구승훈은 그녀의 손에서 자료를 빼앗았다.“자.”그러고는 강제로 강하리를 끌어안고 침실로 향했다.두 사람은 밤새도록 아무 말도 없었다. 그 앰플 병에 대한 일은 잊힌 듯했다.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바빴다.구승재는 미국에서 돌아왔고 구승훈은 오늘 회사에 가서 그를 만나야 했다.“회사에 데려다줄까?”구승훈은 강하리의 허리를 잡으며 물었고 강하리는 생각할 틈도 없이 거절했다.“직접 거래처에 갈 거야.”“그럼 내가 거래처까지 데려다줄게.”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지만 강하리는 여전히 거절했다.구승훈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 집을 나섰다.강하리는 연정이와 조용히 아침 식사를 했다.연정이
강하리는 침실 문을 흘끗 보고는 구승훈을 무시했다.하지만 곧 밖에서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강하리가 ‘꺼져!’라고 말하려던 순간, 가정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사모님이 술 드셨으니, 숙취 해소에 좋은 차를 끓여 드리라고 하셨습니다.”“구승훈은 지금 옆에 있어요?”가정부는 옆에 서 있는 구승훈을 힐끗 보며 대답했다.“아니요, 대표님은 방금 준봉 씨와 함께 서재로 가셨습니다.”가정부가 말을 마치자 강하리는 바로 문을 열었다.그러자 문 앞에는 숙취 해소차를 들고 있는 구승훈과 그의 뒤에 서서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정부가 있었다.“이제 가서 쉬세요.”구승훈은 가정부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러고는 숙취 해소차를 들고 침실로 들어왔다.강하리가 말할 틈도 없이 그는 숙취 해소차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강하리에게 입을 맞췄다.강하리는 구승훈에게 숙취 해소차를 넘겨받았지만 삼키기도 전에 구승훈은 다시 키스를 퍼부었다.강하리가 숨이 가쁠 때까지 구승훈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고 숙취 해소차는 누가 더 많이 마셨는지 알 수 없었다.“맛있어?”구승훈은 강하리의 입술을 핥으며 아쉬운 듯 물었다.강하리는 그를 밀어내며 침실 안쪽으로 걸어갔다.“나가서 자.”구승훈은 숙취 해소차를 옆에 내려놓고 강하리의 손을 잡았다.“아직 화났어? 내가 잘못했어. 임희주 씨 문제는 내가 잘 처리할게. 응?”강하리는 그를 무시하고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무릎에 앉히고 따뜻한 숨결을 그녀의 목덜미에 뿌리며 부드럽게 입술을 핥았다.“그럼 내가 잘못을 만회할게.”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오늘 밤, 강 대표님을 편안하게 모실게. 어때?”강하리는 임희주의 끈질긴 집착 때문에 짜증이 났을 뿐이지 진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이 남자의 뻔뻔한 모습을 보니 화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좀 염치가 있어야지.”“염치가 중요한 게 아니야.”구승훈은 콧방귀를 뀌며 손을 강하리의 잠옷
구승훈은 휴대전화 화면에 뜬 메시지를 보자마자 주저 없이 준봉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재로 와.”준봉은 곧 자료를 들고 서재로 왔다.“말해 봐.”준봉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보고했다.“임희주 씨의 과거는 조작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 조사했던 정보에 따르면 임희주 씨는 남쪽 작은 도시의 보육원 출신이고 여 사모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걸로 보입니다. 며칠 전에 대표님께서 여 사모님 쪽을 조사해 보라고 하셔서 관련된 사람들을 추적해 봤는데 여씨 가문의 오래된 집사가 몇 년 동안 연성시 외곽의 보육원을 후원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보육원을 조사해 보니 실제로 임희주 씨는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입양되었는데 입양한 사람이 그 집사의 고향 친구였답니다.”준봉은 말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구승훈의 표정을 살폈다.임희주의 출신을 보면 여초연이 얼마나 치밀하게 사람을 키워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만약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해치기 위해 이렇게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마음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준봉은 구승훈의 표정을 긴장하며 지켜보았지만 구승훈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었다.다만, 그 깊고 짙은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대표님, 괜찮으세요?”구승훈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별일 아니야.”준봉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대표님은 사모님과 아가씨가 계시잖아요. 두 분 다 잘 지내고 계시니까요.”구승훈은 대답하지 않고 잠시 후 다시 물었다.“아내가 화난 데다가 꼬맹이까지 울려버렸어. 어떻게 달래야 할까?”“네?”준봉은 잠시 억울한 표정을 짓다가 한참 만에 대답했다.“대표님, 저는 아직 솔로예요.”구승훈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나가 봐.”“그럼 임 선생은 어떻게 할까요?”구승훈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졌다.“계속 감시해. 조만간 여씨 가문 사모님과 연락할 거야.”준봉은
노민우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얼굴에 가득했던 득의만만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강하리의 화난 모습을 보니 솔직히 겁이 났다.“저기, 승훈이랑 싸웠어요?”“민우 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말해봐요, 무슨 일이에요? 손연지는 어디 있어요?”“손연지는 호텔에 있어요.”노민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강하리는 서두르지 않고 노민우를 가만히 지켜보았다.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노민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회사, 강하리 씨가 인수해 줬으면 좋겠어요.”강하리는 놀라서 노민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노씨 가문은 의학계의 명문가였고 대대로 의사 집안이었다.이번 세대에는 병원을 노민준에게 물려주었지만 노민우 또한 의료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그는 명인병원 지분 외에도 의약품과 의료기기 사업을 하는 회사를 직접 설립했고 꾸준히 잘 운영해 왔다.그런데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뭘까?“무슨 뜻이에요?”노민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솔직히 말해서, 전 어릴 때부터 엄마를 무서워했어요. 엄마는 항상 강압적이었고 제 결혼을 강요하면서 제가 거부하면 손연지에게 달려갈 거라고 협박했어요.”그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 말에 따라 결혼했는데도 엄마는 손연지를 찾아가는 바람에 손연지가 많이 억울하게 됐어요. 다 제가 잘못한 탓이죠.”강하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 없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노민우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손연지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노력해서 손연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사실 전 승훈이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손연지에게 달려갈 수 없어요.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손연지에게 가면, 오히려 우리 둘 다 더 힘들어질 거예요. 그래서 우리 회사를 먼저 정리하고 싶어요.”강하리는 이제야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하지만 굳이 저한테 부탁할 필요가 있을까요? 노민우 씨도 회사를 독립시킬 수 있잖아요. 아니면, 구승훈이 도와줄 수도 있고요.”노민우는 웃으며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