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무음으로 해놨어요.” 요즘 회의가 많아서 강하리의 휴대폰은 며칠 동안 거의 무음으로 설정되어 있었다.주해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너편 바에 있으니까 준비하고 와.”강하리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닫았다.문을 닫는 순간 그녀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반면 문 앞에 서 있던 주해찬은 눈가에 담긴 씁쓸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강하리는 너무 급하게 나온 탓인지 목에 새겨진 키스 마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그는 피식 웃고는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방으로 돌아온 강하리는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구승훈 씨, 당신... 앗!”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구승훈이 다시 그녀를 끌어당겼고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남자의 힘에 의해 세면대 쪽으로 밀려났다.“나 회식 있어요, 그만해요.”하지만 구승훈은 못 들은 척 그녀의 옷을 들치며 등에 키스를 퍼부었다.“일단 한번하고, 응?”강하리의 몸이 경직되는 동시에 구승훈이 안으로 파고들었다.거친 숨소리와 살결이 부딪히는 소리가 욕실에 울려 퍼졌다.강하리는 입가에 흘러나오는 소리를 억누르며 다리마저 달달 떨렸다.하지만 구승훈은 굶주린 사나운 짐승처럼 거세게 몰아붙이더니 갑자기 그녀의 목 뒤쪽을 세게 물었다.“또 주해찬이야, 짜증 나는 자식!”강하리는 그의 멈추지 않는 움직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낮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외칠 뿐이었다.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가자 밖에는 이미 환한 불빛이 켜졌다.강하리는 물에서 금방 건져 올린 듯 온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구승훈은 그런 그녀를 안고 씻는 것을 도왔다.강하리는 문득 그가 이번에 콘돔을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물어보고 싶었지만 입가에 차오른 말을 도로 삼켰다.원래도 임신이 쉽지 않은 데다 지난번 일을 겪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녀 같은 몸이면 콘돔을 쓰든 안 쓰든 어차피 똑같았다.순간 그녀의 가슴에 상실감이 밀려왔다.그녀는 일어나서 수건을 꺼내 몸을 감쌌다.“가서 얼굴 좀 비춰야겠어요.”
구승훈의 목울대가 살짝 움찔하다가 잠깐의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공항에서 봤어.”말을 마친 그가 강하리의 몸을 돌리며 설명했다.“하리야, 나랑 걔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어. 내 말 믿어줘. 난 오늘 널 보러 온 거고 걔가 어떻게 공항에 나타났는지 몰라.”강하리는 꽉 막힌 마음을 억누르며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물었다.“그 여자가 당신 Y국에 온 건 어떻게 알아요?”구승훈의 표정이 굳어졌다.“아직 몰라. 알아낼 테니까 화내지 마, 응?”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말을 이어갔다.“걔가 오늘 나를 안았는데 내가 바로 밀어냈어. 하리야, 못 믿겠으면 공항 카메라 돌려봐도 돼.”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구승훈을 바라봤다.그를 믿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마음속에 무언가 꽉 막힌 듯 답답했다.송유라는 그녀의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매듭이었다.그 죽일 놈의 첫사랑이 자신과 구승훈 사이를 떼어놓는 장애물이었다.그걸 뛰어넘으려 애썼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넘어섰다고 생각할 때마다 장애물은 다시 나타났다.“사람 보내서 걔 감시하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할게, 응?”강하리는 그를 힐끗 보았다.“정말 그 여자를 통제할 수 있어요? 그 여자가 죽으면 상관 안 해도 되잖아요.”구승훈은 강하리의 허리를 붙잡았다.“나 그렇게 못 믿어?”강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외교부 사람들이 계속 그녀를 재촉했다.그녀는 감정을 추스르고 뒤돌아 밖으로 향했다.구승훈은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그녀를 뒤따랐다.두 사람이 술집에 도착했을 때 술집 안은 시끌벅적했다.강하리가 들어오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소리를 질렀다.“강하리! 늦었으니까 벌주 세잔 마셔야지!”“맞아, 후래자 삼배.”강하리는 웃으며 그쪽으로 다가갔고 주해찬이 강하리를 보고 물었다.“뭐 마실래? 내가 주문할게. 저 사람들은 무시해. 마실 필요 없어.” 강하리가 말하기도 전에 주위에서 흥을 돋우기 시작했다.“주해찬 씨 행동 너무 뻔히 보이는
“나 오늘 당직이야. 너 기분 안 좋을까 봐 그러지. 계속 전화를 안 받길래 걱정했어.” “정말 괜찮아.” 강하리는 손연지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고 손연지는 그녀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구승훈이 옆으로 끌어당겼다. “그냥 친구?” 강하리가 힐끗 돌아보았다.“아니면 뭔데요?”구승훈은 너무 화가 나서 그녀의 허리를 확 낚아챘다. “하리야, 아직 내 물건이 네 몸 안에 있잖아!” 강하리의 몸이 움찔하더니 홱 고개를 들어 뻔뻔한 개자식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구승훈은 웃기만 했다.“넌 친구랑 그런 짓을 해?”강하리가 피식 웃었다.“전에는 우리 직장 동료였어요. 동료끼리는 해도 되는데 친구는 안 돼요?” 구승훈은 순식간에 말문이 막혔다.쓴웃음을 짓던 그는 마음속으로 이 모든 것을 자초한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과거에 저질렀던 죗값을 이런 식으로 돌려받고 있다.그는 강하리가 여전히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송유라의 문제를 쉽게 흘려보내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침대에 올라갔다.강하리는 그를 무시한 채 돌아와서는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한 잔을 주문해 혼자서 마셨다. 문연진은 옆에 앉아 두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분명 싸웠다. 설마 송유라 때문인가?쓰레기 송유라가 아직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강하리와 주해찬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 미소가 번뜩였다.“강하리 씨, 저랑 건배해요. 이번 일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며칠 전에 주해찬 씨랑 두 분 방해해서 죄송해요.” 그 말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예비 남자 친구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 않나?하지만 문연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물었다.“왜 그래요, 왜 다들 절 보세요?”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강하리는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손에 들고 홀짝일 뿐 문연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문연진도 흥미를 잃은
그 질문에 사람들은 굳어버렸다.문연진이 대체 왜 이러는 걸까.당사자의 예비 남자 친구가 자리에 있는데도 계속해서 주해찬을 끌어들였다.주해찬은 피식 웃었다.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뻔한 질문이었다.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이미 강하리와 구승훈이 이 정도 사이로 발전했기에 그가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그는 술잔을 들고 연달아 세 번 마셨고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당황했다.주해찬은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다들 재밌게 노세요. 저는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말을 마친 그가 뒤돌아 밖으로 나가자 미간을 찌푸린 채 주해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하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랐다.구승훈이 옆에서 비웃었다.“속상해?”강하리는 시선을 내린 채 술을 들이켰다.속상한 게 아니라 화가 날 뿐이다.오늘 밤 문연진의 도발은 너무 뻔했다.그녀는 이 관계에 아무 상관도 없는 주해찬을 굳이 끌어들였다.강하리는 구승훈을 무시하고 문연진을 돌아보며 말했다.“문연진 씨,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가서 스피치 연습이나 하세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허튼짓하지 마시고. 나중에 미션 나갈 때 창피하지 않게요!”말을 마친 강하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하자 구승훈도 서둘러 뒤를 따랐다.문연진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강하리, 지금 내 실력이 부족하다고 비꼬는 거야?자기가 무슨 자격으로?그저 업무상 능력이 조금 뛰어날 뿐이잖아.주변 사람들은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문연진을 바라봤다.그 사람 중에는 문연진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전에 봤던 그녀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그런데 오늘 밤엔 어딘가 미쳐있는 사람 같았다.그러니 강하리처럼 성격 좋은 사람도 그녀 때문에 저렇게 화를 내지.밖으로 나온 강하리는 구승훈의 목을 끌어당겨 그대로 그의 턱을 콱 물었다.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온 힘을 다해.구승훈은 고통에 낮게 신음하며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품에 안았다
오히려 그녀의 시선이 여전히 주해찬에게 머물러 있었고 그가 씁쓸하게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강하리는 그의 품에 기대어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마 취한 것 같았다.잔뜩 취해서 어떻게든 이 남자를 곁에 두고 싶었다.송유라고, 구씨 가문이고 다 신경 쓰지 않은 채.하지만 아직 술에 덜 취했는지 이성이 남아있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구승훈은 그녀를 안고 호텔로 돌아왔다.방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그녀를 문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하리야, 난 네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너도 나만 봐, 알았지?”강하리가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구승훈 씨, 난 항상 당신을 바라봤어요, 항상. 가 버린 것도, 잊은 것도, 날 버린 것도 다 당신이잖아요...”구승훈은 그녀의 눈물을 보며 가슴이 저릿했다.“난 널 버린 적 없어. 하리야, 너만 날 원하면 언제든 난 여기 있어.”강하리는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날 버리고, 우리 아이도 버렸잖아요.”구승훈은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끼며 그녀를 안고 침대로 향했다.“원해. 전에는 내가 못난 놈이었어. 지금은 원해, 하리야, 우리 아이 갖자, 응?”강하리의 머릿속이 느리게 굴러갔다. 또 가질 수 있을까?구승훈이 그녀를 덮치는 순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말했다.“구승훈 씨, 콘돔 써요. 나 유산하는 거 싫어요, 아픈 거 싫다고요.”그녀의 입술을 깨무는 구승훈의 마음에 씁쓸함이 밀려왔다.“겁내지 마, 다신 안 그럴 거야. 하리야, 가능하다면 우리 아이 갖자, 알았지?”강하리가 또 임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그는 줄곧 아이를 원하지 않았고 갖고 싶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원했다. 아이가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 적어도 그녀가 다시는 떠나지 않을 테니까.구승훈은 언젠가 자신이 아이를 이용해 여자를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하지만 지금은 정말 그녀를 임
구승훈의 눈동자에 싸늘한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감정이 극에 달했지만 차마 터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언제 안 거야?”“두 시간쯤 저쪽에서 전화가 와서 사라졌다고 하더라고, 연락도 안 돼.”두 시간 전이면 그와 강하리는 막 술집을 나섰을 때였다.구승훈의 눈빛은 깊고 차가웠다.아무런 예고도 없이 공항에 나타나더니 이번엔 사라졌다.송유라 혼자 할 수 있는 일인가?그는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켰다.“영감탱이 부하들 반 죽여서 돌려보내!”“그럼 송유라는...”구승훈은 침묵하며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일단 찾아보고 안 되면 경찰 불러.”구승재는 대답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송유라, 며칠 얌전하더니 또 시작이다.찾는 건 둘째 치고 또 무슨 짓을 할까 봐 걱정이다.형이 이제 막 강하리와 만났는데 송유라가 또 방해할까 봐.구승재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사람들에게 지시했다.씻고 나온 강하리는 아직 머리가 어지러웠다.그녀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안쪽에서 걸어 나오자 창가에 서 있는 구승훈이 보였다.주위에 우중충한 기운이 잔뜩 드리워진 그는 한눈에 봐도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심지어 그는 그녀가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무슨 일 있어요?” 강하리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정신을 차린 구승훈의 얼굴에 서늘함이 사라졌다.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능글맞게 되물었다. “왜 그렇게 빨리 씻었어, 나 기다리지도 않고.”강하리는 불순한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수건을 가져와 머리를 문지르며 말을 이어갔다.“구승훈 씨, 가서 약 좀 사 와요.”걸음을 멈칫한 구승훈은 그녀가 말하는 약이 어떤 약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녀는 임신을 원치 않았다.구승훈은 쓴웃음을 지었다.전에 그가 원하지 않을 땐 그토록 갈망하더니, 이제 그가 원하니 그녀가 싫단다.그는 강하리에게 다가가 안아주었다.“아이 좋다고 하지 않았어?”강하리의 손가락이 살짝 안으로 말렸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
강하리가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는데 바로 그때 구승재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전화를 받고 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구승재의 목소리가 들렸다.“형, 송유라 찾았어. 요양원 꼭대기 옥상에 있어. 지금 건물에서 뛰어내리려고 난리야.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고 형만 찾고 있어. 이미 아래층에 사람들 보내서 조치했고 위에도 올려보냈는데...”강하리는 구승재의 말을 듣고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말을 꺼냈다.“구승재 씨, 저 강하리에요. 그쪽 형 샤워 중인데, 제가 휴대폰 넘겨줄게요.”당황한 구승재가 멈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해명했다.“하리 씨, 오해하지 마세요...”하지만 강하리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나한테 설명할 필요도 없고, 설명해야 할 사람도 당신이 아니잖아요.”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승훈의 완벽하고 섹시한 몸매가 눈에 들어왔다.강하리는 그를 2초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건넸다.“구승재 씨 전화 왔어요. 그쪽 유라가 뛰어내린대요.”구승훈은 샤워기를 끄고 물이 흘러내리는 머리를 뒤로 넘긴 뒤 전화기를 건네받아 뚝 끊었다.강하리가 그에게 휴대폰을 건네고 문밖으로 나가려고 돌아서는데 구승훈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뒤로 끌어당겼다.“화났어?”강하리는 마음이 씁쓸했다.고개를 돌려 구승훈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가슴 속 둔탁한 통증을 참으며 말했다.“구승훈 씨, 송유라한테 갈 기회를 줄게요. 하지만 이대로 가면 다시는 나 찾아오지 마요. 난 다른 여자랑 남자 공유할 생각 없으니까.”말을 마친 그녀는 구승훈의 손을 뿌리치고 화장실에서 나왔다.밖으로 나오자 눈가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분명 마음속으로 그를 믿어야 한다고 되뇌었지만 그래도 괴로운 건 어쩔 수 없었다.화장실에서 구승훈은 이미 끊긴 휴대전화를 차가운 얼굴로 바라보았다.그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긴 뒤 타월을 꺼내 무심하게
구승재의 눈가가 싸늘해지며 소름 돋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은?”구승재의 목소리도 살짝 가라앉았다.“밑에 구명 매트를 깔고 가운데 가림막까지 있어서 충격을 덜었어. 의사 말로는 죽지는 않아도 일어서기는 힘들 것 같대.”구승훈은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고 한참을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사람을 보내서 지켜보고 주변 사람들 한번 살펴봐.” 말을 마친 뒤 전화를 끊고 뒤돌아보니 강하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안 죽었어요?” 구승훈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졌다. 아마 지금 무슨 말을 하든 그녀의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강하리는 그를 등지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명이 참 기네.”구승훈은 저도 모르게 낮은 웃음을 내뱉으며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이러면서 질투 안 한다고?”강하리는 그를 등지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말했다.“구승훈 씨, 언젠가 당신이 송유라를 선택한다면 난 미련 없이 돌아설 거예요.” 구승훈은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걱정하지 마, 그런 기회는 주지 않을 테니까.”강하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승훈은 송유라에게 가지 않았지만 송유라의 문제는 언제나 그의 책임이었다. 말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신경 쓰고 있었다.강하리는 속이 상했지만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 얌전히 구승훈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잠은 오지 않았다.이때 다른 방에서 문연진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문연진은 저쪽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쓰레기는 쓰레기야. 건물에서 뛰어내려도 사람 하나 부르지 못하네. 그렇게 애썼는데 다 소용없게 됐어.”그녀는 몰래 이를 갈았다. 보아하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 유물 회수 작업과 사업가 구출 작전이 모두 완료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유물 인계식이었다. 인계식은 상대방이 지정한 연회장에서 진행되었다. 강하리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주해찬이 강하리 옆으로 걸어왔다. “어젯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