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는 여전히 혼수 상태에 빠져 있었다. 구승훈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도 강하리가 깨어나면 어떤 태도일지 장담할 수 없었기에 결국 포기했다.하지만 강하리가 깨어난 뒤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도와줄 것이다.강하리가 날이 어두워져서야 깨어났다. 눈을 뜬 그녀는 아직 조금 멍한 상태였다.하지만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누군가 물었다.“깼어?”아주 익숙한 목소리지만 그녀의 마음에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못했다.“네.”강하리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내가 가서 의사 불러올게.”강하리는 손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자 방금까지 구승훈이 계속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의사가 와서 진찰한 뒤 말했다.“깨어나긴 했지만 폐의 감염과 몸의 타박상들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요. 아직 휴식이 필요합니다.”강하리가 대답했다.“네 선생님 감사합니다.”의사가 떠난 뒤 구승훈은 다시 그녀의 침대 옆에 앉았다. 그는 습관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강하리는 조용히 그의 손을 피했다.구승훈의 얼굴은 바로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도 그녀가 지금 화를 내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이해하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그저 다정히 물을 뿐이었다.“아직 많이 아파?”강하리는 눈을 감으며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킨 뒤 말했다.“괜찮아요.”사실 그녀는 온몸이 산산조각난 뒤 다시 붙는 것처럼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이 남자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아픔이나 괴로움은 이제 그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구승훈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정말 괜찮아? 그럼 누가 꿈속에서 계속 아프다고 하면서 내 손을 잡고 놔주지 않은 거지?”강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구승훈도 그녀의 냉담함을 느낄 수 있었다.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하리야, 미안해.”강하리는 구승훈의 미안하다는 한마
구승훈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 그는 빨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강하리 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넌 끝낼 수 없다고. 구승현은 내가 처리할 거니까 넌 몸부터 챙겨. 소란 피우지 말고.”구승훈의 말을 들은 강하리의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살짝만 건드려도 부서질 것 같은 인형처럼 침대에 기대어 있었다. 하지만 두 눈에는 단호함이 가득했다.“구승훈 씨, 난 이제 정말 당신 옆에 있고 싶지 않아요. 우리 엄마가 위독하셨을 때 당신은 나를 혼자 남겨뒀고 내 옆에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송유라를 찾으러 갔어요. 난 그 순간부터 당신과 그만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이번에 납치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난 당신을 떠날 생각이었어요.”강하리는 말을 마친 뒤 눈가가 살짝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구승훈은 눈앞에 있는 연약한 여자를 바라보자 마음이 아팠다.“네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나에게는 널 떠날 수 없게 만들 방법이 많다는 걸 너도 알잖아.”강하리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어 눈물이 가득 맺혀있는 두 눈으로 구승훈을 바라보았다.“네. 나도 알아요. 당신 앞에서 나 강하리는 영원히 하찮은 존재라는 걸. 영원히 반항할 여지도 없다는걸. 당신한테 날 다시 돌아오게 만들 방법이야 많겠지만 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해요. 어떤 방법으로 나에게 강요할 건데요? 위약금이요? 줄게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약금 줄게요. 그것도 아니면 또 우리 엄마로 날 협박하려고요? 만약 구승훈 씨가 더 이상 우리 엄마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거예요. 정말로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엄마를 포기해야겠죠.”그녀는 구승훈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이제 구승훈 씨는 어떤 방법을 날 막으려고요?”강하리는 말을 마친 후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종잇장보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는 침대에 기대었다.구승훈은 관자놀이가 갑자기 지끈거렸다.그는 강하리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예상했었다.
강하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연지는 케이크에 초를 꽂은 뒤 불을 붙여주었다.“자 이제 소원 빌어. 앞으로 건강할 거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강하리는 눈앞에서 일렁이는 촛불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앞으로는 자유로울 수 있기를 기도할게요.’그녀는 촛불은 껐지만 케이크를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손연지도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크림은 소화가 잘 안돼. 기다려. 내가 소화 잘되는 음식으로 사다 줄게.”강하리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며 말했다.“연지야, 나 핸드폰 좀 사다 줘. 집에 가서 계약서도 가져다줄래? 그리고 약도 좀 준비해 줘.”손연지는 미간을 찌푸렸다.“어떤 약?”“음식을 먹을 수 없게 만드는 약 있지? 음식을 먹기만 해도 바로 다 토해내는 약 말이야.”강하리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손연지는 경악했다.“너 미쳤어? 지금 네 몸이 얼마나 많은 영양소를 필요로 하는지 알아?”강하리는 씁쓸하게 웃었다.“이제 나한테 다른 선택은 없어.”만약 구승훈이 그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는다면 그녀는 떠날 방법이 없었다.그렇기에 그녀는 한 번 도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구승훈이 조금이라도 그녀를 신경 쓰길 바랄 뿐이었다.만약 며칠 동안의 고통으로 미래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그녀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손연지가 입을 열었다.“너 정말 결정했어?”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손연지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하리야 나 정말 속상해 죽겠어. 넌 왜 저런 놈을 좋아하는 거야.”강하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맞다. 그녀는 왜 저런 남자를 좋아했을까?손연지는 강하리의 옆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고 바로 떠났다.구승훈이 밥을 사 왔을 때 강하리는 침대에 기대어 옆 탁자에 놓여 있는 작은 케이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그는 눈썹을 추켜세웠다.“누가 사 온 거야?”강하리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연지가요.”구승훈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 친구는 네 입맛을 잘 알고 있네
송유라는 강하리의 말에 순간 숨이 막혔다.그녀는 강하리가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그러나 송유라의 표정은 이내 다시 어두워졌다.송유라는 강하리의 말이 끝내자 구승훈의 표정이 싸늘하다 못해 얼음처럼 굳어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구승훈은 강하리의 말에 기뻐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강하리와 헤어질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송유라, 너 먼저 돌아가.”그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자 송유라의 표정은 더 일그러졌다. 그녀는 구승훈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강 부장님 내 뜻은 그런 게 아니라 난...”“꺼지라고.”강하리는 더 이상 그녀의 가식적은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아 돌직구를 던졌다.“내가 경비원이라도 불러야 하는 건가요? 송유라 씨 공인이잖아요? 쫓겨나는 모습 보이면 안 될 텐데.”송유라는 강하리의 말에 멈칫하더니 바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승훈 오빠. 난 그저 강 부장님과 오빠가 싸울까 봐 걱정돼서 설명하러 온 건데 강 부장님은 이게 무슨 태도야?”구승훈의 표정은 정말 안 좋아 보였지만 강하리의 태도 때문이 아니었다. 강하리는 송유라를 항상 마음에 걸려 했다. 이런 상황에 송유라가 찾아온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밖에 더 되지 않았다. 강하리의 꺼지라는 한 마디는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구승훈은 방금 강하리가 한 말에 화가 났을 뿐이었다. 강하리는 화가 나니 아주 자연스럽게 그가 필요 없다는 말을 뱉어냈다. 이 여자가 감히 더 이상 그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다니.구승훈은 마음속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지만 어디에 풀 곳이 없었다.그의 차가운 눈빛이 송유라에게로 향했다.“내가 먼저 돌아가라고 한 말 못 들었어?”송유라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구승훈은 눈물을 흘리는 송유라의 모습에 그제야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먼저 돌아가. 여기에서 네가 더 설명할 건 없어.”송유라도 이쯤
손연지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오늘 너하고 함께 있으려고 VIP 병동 당직을 신청했거든. 근데 그 나쁜 년이 나한테 물을 가져다 달라 과일 깎아달라 아주 다 시키는 거야. 참다못해 내가 난 의사지 그쪽의 간병인이 아니라고 몇 마디 했더니 글쎄 컴플레인을 제기한 거 있지? 결국 과장님한테 불려 가서 혼났어. 진짜 화가 나 죽겠네.”“그리고 구승훈 그 개자식은 자기 때문에 네가 이렇게 힘든데 송유라 생일을 축하해줄 정신은 있나 보지. 정말 생일 케이크를 그놈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었어. 그 자식 네 생일은 챙겨줬니?"강하리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미안해. 나 때문에 너까지 힘들게 만들었네.”“뭐가 너 때문에 힘들다고 그래. 다 그 나쁜 놈들 때문이야. 난 구승훈이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어. 지난번 인터넷 폭로 때도 옳고 그름은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었잖아. 근데 이번에는 정말 역겨워. 빨리 송유라 그년이 구승훈 그 개자식을 뺏어가야 할 텐데. 두 사람 아주 잘 어울려. 다시는 널 괴롭히지 말아야 할 텐데. 너 구승훈하고 헤어지면 내가 좋은 남자 소개해 줄게.”손연지는 강하리에게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강하리는 웃으며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고 손연지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을 바라보았다.옷 몇 벌과 새 핸드폰 외에 강하리가 말한 계약서도 들려있었다.강하리는 핸드폰을 가져와 카톡을 로그인한 뒤 바로 심준호에게 문자를 보냈다.[심 대표님 혹시 제가 부탁을 좀 드려도 될까요?]문자를 보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준호에게서 전화가 왔다.“강하리 씨 나한테 부탁할 일이 있다고요?”강하리는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저한테 계약서가 하나 있는데 대표님이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계약을 해지하고 싶어서요.”“알겠어요. 나한테 보내줘요.”강하리는 계약서를 사진 찍어 심준호에게 보냈고 곧 심준호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이 계약을 끝내고 싶은 거예요?”강하리는 웃으며 말했다.“네.”심준호는 한참을 말이 없더니 입을 열었다.
강하리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구 대표님. 잠깐 자리 좀 피해줄래요? 심 변호사님과 단둘이 얘기를 나눠야 해서요.”구승훈은 비웃음을 터트렸다.“왜? 내가 여기 있으면 얘기를 못 나눠?’심준호는 손에 든 자료를 정리하며 말했다.“당연히 가능하지. 단지 우리 구 대표님이 좀 진정해 주길 바랄 뿐이야.”일 얘기가 시작되자 심준호의 부드러운 분위기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예리함과 프로패셔널함만이 남아 있었다.강하리는 잠시 말이 없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변호사님 저희 나가서 얘기 나눠요.”심준호는 구승훈을 한 번 쳐다보고서는 대답했다.“그래요.”구승훈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마침내 강하리가 몸을 일으키자 그가 일어서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얘기 나눠.”말을 마친 뒤 그는 병실을 떠났다.병실의 문이 다시 닫히자 강하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심준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아침 안 먹었어요?”강하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배가 고프지 않아서요.”심준호는 동의하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밥은 먹어야죠.”강하리는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일 얘기를 꺼냈다.“변호사님 이 계약을 해지하고 싶은데 위약금을 좀 깎아주실 수 있을까요?”심준호는 강하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건네주었다.“밥 먹고 싶지 않으면 몰래 간식을 먹으면 되죠. 정말로 굶지는 말고요.”강하리는 심준호가 건넨 초콜릿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받았다.“감사합니다 변호사님.”심준호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하리 씨가 보여준 계약서는 하리 씨에게 많이 불리해요. 하지만 하리 씨가 반드시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구승훈도 계약을 많이 어겼고요...”심준호는 강하리의 앞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목소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강하리에게 계약서 내용을 조목조목 분석해 주었다.어느덧 두 시간을 훌쩍 넘어버렸다.“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하리
”여기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고?”구승훈이 그를 바라보았다.“정말 도와줄 생각인가?”“당연한 거 아니야?”심준호가 눈썹을 올렸다가 내렸다.“미리 말해주는 거지만, 강하리는 그쪽 대리비를 감당하기 힘들 거야.”심준호가 맡는 사안들은 건당 억대 대리비용이 지급되는 명문가 경제적 갈등이나 이혼소송 건이었다.구승훈의 냉소에 심준호가 미소로 대답했다.“뭐, 가끔씩은 공짜로 재능기부 하기도 해.”그러자 구승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재능기부로 포장된 흑심이 아니라?”“너, 지금 아무나 막 물고 늘어지는 미친개 같은 거 알아?”심준호의 표정 역시 서늘해졌다.“그럴 시간 있으면, 왜 너를 떠났는지 잘 돌이켜보고 뉘우치는 게 어때?”구승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한참 뒤,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뭐 하든 내 자유고. 하지만 계약은 계약이니까.”“맞아. 그러니까 내가 도와주든 말든, 그것도 내 자유지. 나 알잖아. 일할 때는 공과 사 철저하게 구분하는 거.”구승훈이 고개를 숙여 담배 한 대를 붙였다.한 모금 빨고 다시 입을 열었다.“성질 부리는 것 뿐이야. 좀 지나면 괜찮아져.”“성질 부린다고? 애 잃고 자기 목숨까지 잃을 뻔한 게 고작 성질 부릴 일이라고?”심준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구승훈은 어두운 얼굴로 담배만 빨다가, 이윽고 한 마디 뱉었다.“아무튼 난 절대 안 놓아줄 거다.”그러고는 담배를 끄고 병실로 들어갔다.강하리가 여전히 침대맡에 몸을 걸치고 앉아있었다.옆에 놓인 음식들은 다치지도 않았다.구승훈은 점점 가슴이 더 답답해져 강하리를 바라만 보다가, 이윽고 픽 웃었다.“강하리, 3년이나 살 맞대고 지냈는데, 정말 아무 감정도 없어? 나한테?”강하리는 눈을 내리깐 채 대답이 없었다.하지만 눈 속에 복잡하고 씁쓸한 감정은 숨겨지지 않았다.참기 힘들었다. 막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겨우 웃음 한 줌을 짜냈다.“그냥 거래일 뿐이라고 한 건 그쪽 아닌가요?”그 말에 구승훈의 눈길에 고통스러움 한 결이 스쳤다가 사
힘없이 화장실 문 손잡이에 몸을 지탱하며 강하리가 쓴웃음을 지었다.“아니에요. 음식 때문이 아니라 제가 컨디션이 좀…….”저쪽에 얼굴이 시커매진 구승훈이 보였다.“강하리, 언제까지 이러는지 두고 보자.”낮은 웃음소리로 화답하는 강하리.그제야 아줌마는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의 불꽃이 튀고있단 걸 알아챘다.구승훈이 떠난 뒤, 아줌마가 강하리를 타이르기 시작했다.“아가씨. 이러시면 아가씨 몸만 망가지세요.”“다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그렇게 강하리는 사흘을 버텼다.구승훈의 강권에 저항하듯 단식 투쟁을 이어갔다.그동안 구승훈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고.그러면서도 갈 데까지 가보자는 듯 타협하지 않았다.총성 없는 사흘 간의 전쟁.“형, 강 부장은 요즘 좀 어때?”나흘째 되는 날, 얼굴색이 말이 아닌 형에게 구승재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꾸준히 고얀 짓 중이시다.”구승훈의 냉랭한 말투에 구승재가 멈칫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 뭐야. 형이 먼저 잘못했다고 수그려 보는 건 어때?”“안 한 줄 아냐?”정말이지, 여자한테 이렇게까지 굽실댄 건 처음이다.물론 어디까지나 구승훈의 기준에서.다른 의미로는, 강하리만큼 고집 센 여자가 구승훈에겐 처음이다.구승재가 속으로 욕을 뱉었다.형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어떤 식으로 수그렸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내 말은, 윽박지르지만 말고 차근차근 잘 좀 달래 보라고. 강압적 포스남 컨셉이 모든 여자한테 먹히는 건 아니니까.” 구승훈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그 고집불통이 좋은 말로 달랜다고 퍽이나 잘 듣겠다.”“그건 형 추측일 뿐이잖아.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승재의 말에 구승훈의 눈에 살짝 광채가 감돌았다.그날 퇴근 후.구승훈은 액세서리 매장에 와 있었다.어렴풋하게나마, 강하리가 귀걸이는 안 좋아한다던 기억이 떠올랐다.꼼꼼히 둘러보며 고르고 골라, 목걸이 하나를 정교하게 포장했다.지이잉-!휴대폰이 울렸다.“대표님! 어디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