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화

그러다 갑자기, 남편의 눈이 반짝이더니 언제나 무뚝뚝하기만 하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걸렸다.

그이의 눈빛을 따라 확인해 보니 한복을 입은 노파가 피팅룸 문 앞에 서 있었다. 은발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귀밑머리에 꽃을 단 채로.

그 사람은 앨범에서 봤던 다른 주인공이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르릉 꽝꽝-

시커먼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던 나는 처마 밑에 엉거주춤하게 서서 비를 피했다.

그때 점원 한 명이 사진관 표지판을 치우려고 나왔다가 나를 보더니 얼른 안으로 안내했다.

“어, 어르신, 비가 많이 오는데 안으로 들어와서 비 좀 피하세요. 감기 걸리겠어요.”

그와 동시에 영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편분 데려와서 저희 사진관에서 사진 좀 찍으세요. 저희 사진관에 매년마다 와서 웨딩 사진 찍는 노부부가 계신데, 젊을 때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고 지금 찍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얼마나 보기 좋아요...”

점원을 따라 뻣뻣하게 안으로 들어가던 내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머릿속에는 옛생각이 피어올랐다. 나와 남편은 중매쟁이를 통해 만난 사이다. 그때 남편은 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고, 나는 카운터 직원으로 일하고 있어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다. 때문에 결혼식은 간단한 술자리로 대체했고, 웨딩 사진 역시 나중에 돈이 생기면 찍자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몇십 년을 기다린 결과, 그이가 다른 사람과 웨딩 사진을 찍은 걸 보게 될 줄이야.

순간 스스로 웃음이 나면서 앞으로 이렇게 가망 없는 기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

점원에게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남편은 허리를 숙여 상대의 치맛자락을 정리해 주고 있었다.

그러자 상대가 얼굴을 붉히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나이도 있는 사람이 주접떨면 사람들 웃어.”

남편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뭔가 말을 하려다가 문 앞에 서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 버리더니 불쑥 한마디를 내뱉었다.

“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야?”

시선이 마주쳤을 때, 남편은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그 눈 속에는 놀라움과 짜증, 그리고 고뇌가 섞여 있었다.

‘내가 눈치 없이 본인의 데이트를 망쳤다고 짜증내는 건가?’

내가 조금만 더 젊었다면 아무 눈치 보지 않고 당장에 따져 물었을 거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나는 아픈 심장을 마비시키며 애써 체면을 지키려고 덤덤한 말투를 유지했다.

“당신 앨범을 보고 여기 있을 것 같아 확인하러 왔어.”

그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살짝 화를 냈다. 심지어 이 순간에도 맨 먼저 앨범을 걱정했다.

“내 물건 함부로 만졌어? 제자리에 놨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 쪽으로 몰렸다.

그제야 사람들 앞에서 창피당할까 봐 걱정됐는지, 남편은 표정을 굳힌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소란 피우지 마. 나랑 완선은 한때의 연인일 뿐이야. 나도 이제 따로 가정을 꾸렸으니, 고작 사진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래려는 것뿐이라고.”

주완선.

그제야 남편에게 주완선이라는 첫사랑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하면서 연애하다가 결혼까지 할 뻔했다. 나중에 여자 쪽 집안의 반대로 부득이하게 헤어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여자쪽 집안에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내 남편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거다.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 주완선은 난감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더니 낮은 소리로 내 남편을 불렀다.

“호섭 씨...”

남편은 하던 말을 멈추고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완선 씨가 몸이 안 좋아. 우선 집에 데려다주고 올 테니 당신은 여기서 나 기다려. 할 얘기 있으면 집에 가서 얘기해.”

그 말에 주완선은 살짝 득의만면한 눈빛을 했고, 나는 두 사람이 서로를 부축한 채 떠나는 걸 지켜봤다.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