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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남편은 택시를 잡더니 젠틀하게 주완선을 차에 앉히고 따라 들어갔다.

저런 자상함을 난 언제 느껴봤더라?

...

나는 바보처럼 가게에서 남편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남편이 없어도 충분했다.

나는 콜택시를 부르고 기사의 도움으로 우산을 쓴 채 차에 탔다. 더 젖지 않으려면 우산을 써야 했다.

나이가 들면 자칫하면 병이 나기 십상이니까, 내 스스로 자신을 아껴야 한다.

남편은 내가 집에 도착한 지 2시간이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굳은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우정희, 내가 가게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내가 당신 데리러 가려고 쫄딱 젖은 거 알아?”

나는 이제 막 따른 따뜻한 물을 내려놓고 되물었다.

“얼마나 멀길래 내가 당신을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해?”

남편은 순간 켕기는 게 있는지 더 이상 나에게 따지지 않았다.

“빨래 좀 하고 깨끗한 옷 좀 가져다줘.”

남편의 말에 그제야 그의 옷이 흠뻑 젖었고 머리도 젖어 얼굴에 찰싹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남편은 금방 벗은 옷을 내 발 밑에 던졌다.

지금껏 하인 다루듯 명령하는 말투에도 늘 고분고분 행동하던 나였다. 남편이 밖에서 고생하고 들어왔으니, 아내가 되어서 내조를 잘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남편의 명령에 따르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런 생활 방식이 싫어졌다.

나는 발 밑에 있는 더러운 옷을 신경 쓰지 않고 앨범을 꺼내 물었다.

“설명 좀 필요하지 않아?”

늘 만만하기만 하던 내가 끈질기게 앨범 일을 물고 늘어지자 남편은 눈살을 찌푸리며 노교수의 태도를 취했다. 마치 내가 나쁜 학생이라도 되는 듯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애초에 나랑 완선은 부득의하게 헤어졌어. 나중에 완선이 찾아왔는데, 이미 결혼도 하고 애도 있는 데다, 당신이 필요해서 이혼 안 한 거야. 벌써 수십 년도 지난 인연이야, 어릴 적 꿈 좀 이루는 게 뭐 어때서? 그동안 함께 산 세월이 얼마인데, 그런 것마저 따져야겠어?”

나는 눈을 내리깐 채 남편의 어이없는 ‘변명’을 들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처음으로 이 일방적인 혼인을 직시했다.

나랑 이혼하지 않은 게 내가 필요해서라니.

그렇겠지, 하루 세 끼, 매일 입는 옷, 집안 위생, 그리고 아이들 등하교까지 내가 책임졌으니...

집안의 잡다하고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하느라 나는 예쁜 처녀에서 점점 촌스러운 아줌마가 되어버렸고, 아줌마에서 점점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되었다.

한숨이 났다.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고, 남편과 입씨름할 힘도 사라졌다.

“당신 옷은 당신이 알아서 빨아. 난 피곤해서 먼저 쉴게.”

...

내 태도에 비를 맞은 남편은 더욱 화를 냈다. 이윽고 낮은 소리로 ‘어이가 없네’라고 중얼거리며 본인 옷을 들고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새로 바꾼 세탁기를 남편은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몸을 웅크리고 반나절 애써 봤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추위를 탔는지 재채기를 해댔다. 그러다가 결국은 터덜터덜 걸어와 나에게 작동 방법을 물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 흐르자 화장실에서 세탁기 작동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은 어두운 표정으로 화장실을 나오더니 옷장에서 옷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입던 하늘색 스웨터 어디 있어?”

그 말에 나는 아예 몸을 돌렸다. 눈에 보이는 게 없으면 마음이 오히려 편할 테니까.

방 안 분위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건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기 전의 고요함 같았다.

그러다 남편은 끝내 터졌는지 대충 옷 몇 벌을 잡아 침대에 던져 버렸다. 이윽고 갈라진 목소리로 억울한 듯 말했다.

“이미 설명도 했는데 대체 언제까지 심술부릴 건데? 이래서 계속 살 수 있겠어?”

단추가 달린 옷이 마침 아직 아물지 않은 내 이마 위의 상처에 부딪혀 너무 아팠다.

‘습’하고 숨을 들이마시자 남편이 흠칫 놀라더니 다급히 다가와 쩔쩔매며 물었다.

“언제 다쳤어? 당신이 다친 거 몰랐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온 신경이 그 앨범에 있었으니 내 상처를 봤을 리가 있나.

나는 남편을 한참 동안 빤히 바라봤다.

젊었을 때, 나는 남편의 이 껍데기에 속아 바보처럼 결혼했다.

하지만 우리의 결혼 생활이 어땠는지는 남이 마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슬픔이 밀려왔지만 아주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계속 같이 살기 힘들면 같이 안 살면 되지.”

그 말을 하고 나니 남편에 대한 모든 감정을 가볍게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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