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저 찾으셨어요?”노크 소리와 함께 선재가 들어왔다. 다행히 이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었던 모양이다.“선재 씨 스웨덴어 할 줄 알죠?”“네? 스웨덴어요? 아뇨. 전 영어랑 중국어만.”“그럼 누구 스웨덴어 할 줄 아는 사람 없어요?”“스웨덴어요……? 없을 것 같은데.”선재는 당황한 듯했지만, 곧 정호에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더니,“이거 별거 아니고, 그냥 없는 번호라는 안내 메시지 같은데요?”가볍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야속했다. 선재가 나가자마자 정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그대로 있던 정호는 벌떡 일어나 제 가방을 뒤졌다. 석현이 준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천천히 다시 읽었다.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받다가 아무렇지 않게 멀어져 그저 알던 사람 중의 한 명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부디 내 욕심을 이해해주길. 이게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에요. 끝까지 비겁해서 미안해요.정호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결코 짧지 않은 편지는 담백한 사랑 고백임과 동시에 담담하게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그러니까, 이 바닥에서 일을 못하게 만들겠다,이런 말씀이신 거네요.못 하게 되기 전에,안 하겠습니다, 일.저도 이런 썩어빠지고 좁아터진 한국 통역판,더이상 못 참겠습니다.한국을 떠나오기 전, 악에 받쳐 낮은 목소리로 뱉었던 그 말을, 다시 내뱉는 꿈을 꾸었다. 몇 번이고 반복된다, 이 장면은. 제가 한국을, 버리고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던 순간.난방을 켜지 않은 거실의 공기가 싸늘했다. 석현은 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떨며 부스스 담요를 둘렀다. 힘없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해가 뜨지 않아 어둡고 고요한 겨울 아침, 담배 끝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석현은 허망한 얼굴로 흰 연기를 내뱉었다.‘겨울, 그래. 다시 겨울이구나.’석현은 이 계절이 오는 게 죽을 만큼 두려웠다.일 년 정도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석현은 그 언젠가 '배우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