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없어요.”민여진은 바로 거절했다.“채연 씨, 제가 뭘 더 해야 저를 용서해줄 수 있을까요? 얘기해주세요.”하인이 와사비와 고춧가루로만 만들어진 비빔밥을 들고 오자 문채연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굳이 다른 걸 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이것만 다 먹으면 용서해줄게요.”민여진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정말 그거면 돼요?”“네, 간단하죠.”먼 곳에서부터 와사비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그저 눈 꼭 감고 먹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는 생각에 민여진은 마음을 다잡았다.“네, 주세요.”민여진이 손을 뻗어 그릇을 받으려던 그때, 하인은 그녀의 손이 아닌 바닥에 그릇을 내려놓았다.문채연은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여진 씨, 여기엔 여진 씨 자리도 없고 식기도 없거든요. 바닥에 엎드려서 입으로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죠?”‘뭐라고?’문채연의 말에 민여진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문채연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바닥에 엎드려 입으로 먹으라니. 개처럼 먹으라는 뜻이었다.굴욕적이기 그지없었다. 수치심이 순식간에 민여진의 온몸을 감쌌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주먹을 꽉 쥔 그녀의 몸이 잘게 떨렸다.문채연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왜 그래요? 설마 싫어요? 여진 씨, 여진 씨가 여기에 왜 왔는지 잊으면 안 되죠. 나도 진성 씨가 여진 씨를 왜 갑자기 나한테 보낸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 약점이 잡힌 거겠죠? 그러니까 세 시간 동안 빨래를 했을 거 아냐? 이젠 그냥 바닥에 엎드려서 밥만 먹으면 다 끝난다는데, 여기서 그만둘 거예요?”‘그러게, 정말 여기서 그만둘 건가? 바닥에 엎드려서 밥만 먹으면 다 끝나는데. 그럼 서원 씨도 안전할 수 있을 거야.’민여진의 자존심 따위는 무의미해진 지 오래였다.모욕이라면 박진성에게서 항상 받아왔다. 민여진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박진성의 입에서 ‘말 안 듣는 개새끼’라는 말을 들어왔다.가슴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다시 뜬 민여진의 공허한 눈에는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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