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의 모든 챕터: 챕터 221 - 챕터 230

311 챕터

제221화

어쩔 수 없이 침착한 척 태연하게 굴며 조나연이 내 앞으로 다가오는 걸 지켜봤다. 그녀가 멈춰 서며 내 이름을 부르더니,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지원 씨.”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잠시 감정을 추스르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지원 씨, 유형 씨에게서 좀 떨어져 줄 수 없나요?”갑작스러운 말에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뭐라고요?”“이미 헤어졌잖아요. 지금 그는 저와 함께 있어요. 과거는 과거로 두고 제발 그의 앞에 나타나지 말아 주세요. 자꾸 당신이 보이면 그가 흔들려요.”그녀의 목소리는 애처로웠지만 그 속에 얄미운 뉘앙스를 감출 수 없었다.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대꾸했다.“설마 보상금이 부담돼서 저보고 나눠서 내자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죠?”조나연의 얼굴이 금세 하얗게 질렸다.그녀가 예전에 나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털어놓았던 기억이 떠오른 듯했다.하지만 내가 비웃은 건 그녀의 돈 문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다.“예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달라요.”그녀가 강유형과 함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단호하게 말했다.그 말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아, 깜빡했네요. 이제는 그 ‘임석진 씨의 인정받지 못한 미망인’이 아니시죠?”임석진의 이름이 나오자 그녀의 몸이 굳었다. 그리고 금세 눈물이 쏟아졌다.“지원 씨, 굳이 그 사람 이름을 들먹이며 저를 공격할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단지 당신이 유형 씨 곁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게 저를 위한 게 아니에요. 당신을 위한 거예요.”나는 비웃으며 물었다.“저를 위한 거라니요? 대체 어떤 이유에서요?”조나연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유형 씨가 지금 당신을 많이 원망하고 있어요. 당신이 너무 빨리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거든요. 심지어 지난 10년 동안 당신이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강유형이 직접 그렇게 말했나요?”“아니요."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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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2화

신지태의 말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그는 늘 나를 동생처럼 아끼며 가끔 장난을 치긴 했지만 오늘은 좀 선을 넘은 느낌이었다.허진호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했다.신지태는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허진호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말했다.“들어가자.”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신지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떠날 때, 허진호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망설이는 듯 손을 내밀었다가 멈추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문득 생각이 정리되자 나는 신지태에게 물었다.“오빠, 아까 그런 말 한 거, 혹시 내 주변 사람 정리하려는 거야?”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딱 봐도 별로야. 그 사람은 아니야.”그의 단호한 평가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가 나를 흘낏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잖아. 그러니까 앞으로 저런 사람 멀리해.”“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러자 그는 한 번 더 강조했다.“진심이야. 농담 아니야.”“나도 농담 아니야. 저런 사람한테 관심 없어.”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그럼,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나는 진정우의 모습이 떠올랐다.“겉은 도도해 보이는데 속은 따뜻한 사람... 그리고...”진정우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요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요리도 잘하는 사람.”강유형과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서, 그는 라면 한 번 끓여준 적이 없었다.그에게 주어진 환경상 그럴 수도 있지만 결국 나를 위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만약 조금이라도 진심이었다면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겠지.신지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조건은 참 현실적이네.”나는 고개를 숙여 조용히 말했다.“사람이 살아가면서 결국 하루 세 끼를 먹는 게 가장 기본 아니야?”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말도 맞아.”우리는 엘리베이터에 도착했고 그가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엘리베이터 안 벽에 비친 내 얼굴과 신지태의 시선이 겹쳤다.“그럼, 그런 사람 찾았어?” 나는 잠시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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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3화

문이 열리자 안에서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방 한가운데 앉아 있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그 남자... 낯이 익었다.신지태가 먼저 소개했다."같이 당구치는 준호야."나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다가 이름이 떠올랐다. 용준호, 바로 용진표의 아들이자 현재 용진 그룹의 대표였다.한 번 그의 정보를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는 스누커를 좋아해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이력이 있다. 하지만 신지태와 이런 친분이 있을 줄은, 게다가 이렇게 가까운 사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분이 그 유명한 지원 씨?" 용준호가 웃으며 말했다.그의 부드러운 말투와 친근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등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의 기사가 아무리 깨끗하다 해도, 그의 아버지가 했던 일을 생각하면 그 역시 완전히 결백할 수만은 없을 것 같았다.이래서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법이다."지원아, 앞으로 준호 오빠라고 부르면 돼. 혹시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하고."신지태가 내 옆에 있는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나는 의자에 앉으려 했지만 용준호가 갑자기 나섰다."지태야, 네가 이쪽으로 앉고 지원 씨를 우리 사이에 앉히자. 그래야 좀 더 친해질 수 있지 않겠어?"그 말에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편이었다. 하물며 그 상대가 용준호라면 더더욱 그랬다.나는 자연스레 신지태를 바라봤다.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내 앞에 식기를 정성스럽게 세팅하며 말했다."이 자리에서도 충분히 얘기할 수 있어."그의 말에 안도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지태 오빠,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네.이때 용준호는 웃으며 말했다."지태야, 네가 이렇게 누군가를 챙기는 건 처음 보네."신지태는 내 앞에 정돈한 식기를 내려놓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지원이는 내 동생이야. 보통 사람과는 다르지."그의 말에는 분명한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말에 살짝 감동했다.신지태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용준호도 알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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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4화

용준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어딘가 의미심장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혹시 부담스러우시면 그냥 없던 걸로 하죠.”나는 담담히 말을 꺼냈다.“허허.”그는 건조하게 웃음을 터뜨렸다.“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부탁이 한 가지라니, 나를 달라고 해도 흔쾌히 드릴 텐데.”그의 지나친 농담에 어색한 기운이 돌았다.그러자 옆에 있던 신지태가 가볍게 기침을 두 번 하며 분위기를 정리했다.“하하!”용준호는 일부러 더 큰 소리로 웃으며 내게 손짓했다.“그럼, 지원 씨 먼저 시작해.”그와 주고받는 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괜히 시간을 끌고 싶지도 않았다.“그럼 시작할게요.”나는 큐를 들고 빠르게 샷을 날렸다. 상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깔끔하게 공을 모두 처리했다.용준호는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박수를 치며 말했다.“역시 지태가 아끼는 동생답네. 실력이 대단한걸?”그는 공을 다시 세팅하면서 말했다.“이건 인정. 하지만 나도 오빠답게 한 번 멋지게 보여줘야지.”그리고는 능숙하게 공을 쳐 나갔다. 역시나 그는 스누커 대회 우승자답게 모든 공을 빠르게 처리하며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나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역시 대표님이 더 뛰어나시네요.”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그런데 규칙대로라면 내가 졌네. 이제 말해봐. 원하는 게 뭐야?”나는 한숨을 고르고 천천히 말했다.“용진표 회장님을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요.”용준호는 내가 왜 그런 부탁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나는 바로 이유를 덧붙였다.“제가 가진 물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받고 싶어서요.”그제야 그의 얼굴에 살짝 긴장이 풀렸다.“무슨 보물 같은 건가?”“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나는 단호히 부인했지만 자세한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그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했다.“좋아. 데리고 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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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5화

“아니요, 용 대표님이 더 뛰어나신 거죠. 보시다시피 저는 그냥 취미로 하는 수준이에요.”나는 겸손하게 말했다.“취미로 하는 것도 누군가의 가르침이 있었을 텐데 네 스타일은 지태한테 배운 건 아닌 것 같은데? 누가 가르쳐줬어?”용준호가 뜬금없이 물었다.내 스누커 실력은 사실 강유형과 놀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다. 그가 정식으로 가르쳐준 적은 없었다.그가 공을 칠 때 옆에서 보다가, 나중에 심심할 때 혼자 따라 하곤 했다.그러다 어느 날 내가 꽤 잘 치는 걸 알게 된 강유형이 종종 나를 불러 함께 게임을 하자고 했다.“야, 준호야. 언제부터 이렇게 쓸데없는 거나 캐물었냐? 당구 치러 온 거 아니야? 말이 왜 이렇게 많아?”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뒤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강유형이었다.오늘따라 정말 복잡한 하루다 싶었다.강유형이 내 옆으로 다가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용준호는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하, 어쩐지. 당구 치는 스타일이 너랑 비슷하다 했더니만...”용준호가 말을 멈추고 나와 강유형을 번갈아 보았다.그러고는 무슨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지원이가 설마 네 어릴 적 약혼녀라는 그 사람 아니야?”그 말은 나에게도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어렸을 때 내가 강유형과 약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학교 친구들은 나를 그의 '어린 신부'라며 놀리곤 했다.그러나 그런 말을 하던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학을 갔고 그 후로는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그만 떠들고 당구나 치자. 오늘은 내가 같이 놀아줄게.”강유형은 그렇게 말하며 외투를 벗어 내게 던졌다.모든 행동이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자연스러웠다.그의 행동이 너무 빨라서 나는 그가 외투를 던지기 전에 거절할 틈도 없었다.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그의 옷을 들고 마치 하녀처럼 서 있지는 않을 생각이었다.나는 곧장 신지태 쪽으로 걸어가 그의 옆에 옷을 내려놓고 그를 밖으로 불러냈다.문밖으로 나가자마자 신지태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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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6화

“네?”진정우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비쳤다.나는 그의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정말 가까운 거리였다.그가 샤워 후 풍기는 비누 향기가 은은히 퍼졌다. 기분 좋은 향이었다.옛날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우리 집에서는 항상 비누를 사용했다. 손을 씻거나 목욕할 때도 비누를 썼다.요즘은 대부분 손 세정제나 샤워젤을 쓰니, 비누 향기를 맡을 일이 거의 없다.“혹시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거 아니에요?”나는 조심스럽게 떠보았다. 진정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시력이 나빠졌나요?”나는 한 잔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그가 벌써 알아차린 모양이었다.그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는 그의 셔츠를 가볍게 잡아당기며 말했다.“정우 씨, 모른 척하지 마세요. 혹시 엄청 부자인데 일부러 숨기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회사를 뒤에서 조종하는 최종 보스 뭐 그런...”그는 턱을 굳게 다물며 말했다.“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그러면서 그는 몸을 살짝 뒤로 하며 거리를 두려고 했다.“진짜 모르는 건가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가요? 아니면 연기 중인가요?”나는 다시 한 걸음 다가가며 그를 약간 몰아붙였다.우리는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둡고 희미한 계단 조명 아래에서 서로의 시선이 얽히고 팽팽히 맞섰다.그러다 문득 진소영이 머물렀던 작은 집과 그녀의 병약했던 모습이 떠올랐다.처음 만났던 진정우의 모습도 함께 스쳐 갔다. 결국 내가 먼저 시선을 거두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그렇게 가난한 걸 보면, 아닐 것 같네요.”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셔츠를 놓고 뒤돌아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진정우가 내 앞을 막아섰다.“운전했어요?”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대리 불렀어요.”그리고 장난스럽게 덧붙였다.“저 제 목숨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사회에도 피해 주기 싫고요.”그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지더니 손을 들어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잘했네요.”그의 행동은 마치 아이를 달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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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7화

나는 계약서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정우 씨 아버지의 죽음은 제 아버지가 연루된 사건 때문일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 이건 제가 직접 조사해야 진실을 알 수 있어요.”진정우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무슨 단서라도 찾았어요?”나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되물었다.“그럼 정우 씨는요? 왜 용진표를 찾으려는 거예요? 대체 어떤 이유로 그를 의심하는 건가요?”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그의 넓고 듬직한 뒷모습은 마치 무슨 일이 생겨도 다 막아줄 것 같은 믿음을 주었다.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컵을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갔다.“정우 씨, 당신도 이 사건에 대해 뭔가 알고 있죠? 위험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그래서 저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알겠어요. 하지만 이건 제 부모님과 관련된 일이에요. 제가 이걸 외면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나는 창밖의 달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요. 저 자신을 지킬 수 있어요. 그리고... 정우 씨가 제 곁에 있잖아요.”그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릴 때의 고집이 여전하네요.”그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제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죠? 그리고 저를 가까이한 것도 사실은 아버지 사건을 조사하려던 이유 때문 아니었나요?”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고 말을 멈추더니 천천히 대답했다.“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네.”그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약간의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제 매력은 그렇게 가치가 없는 건가요?”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네?”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참... 너무 무심하시네요.”그 말만 남긴 채 그는 창가를 떠나 방으로 들어갔다.문을 닫기 직전, 그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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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8화

'이 사람이 나를 친구 추가하다니, 그것도 한밤중에...'여자의 직감은 참 정확하다. 이건 분명히 이상했다.신지태가 “내 체면을 봐서 용준호가 함부로 하진 않을 거야”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나는 조심해야 했다.게다가 여자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의 친구 추가 요청을 받아들이는 건 가벼워 보일 수 있었다.나는 그냥 못 본 척하며 안리영과의 대화를 이어갔다.“그 선배가 성공한 그 수술도 그 여자 동료랑 같이한 거더라.”안리영의 목소리에 묘한 쓸쓸함이 묻어났다.나는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서 안다. 사랑에서 '같이 발맞춰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물론 지금의 안리영도 매우 훌륭한 사람이지만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선배와 비교하면 여전히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운명은 참 공평하지 않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나는 이 주제를 더 깊게 들어가지 않기로 하고 다른 이야기들로 대화를 돌렸다. 그러다 전화를 끊고 다시 용준호의 친구 추가 요청을 생각했다.이 사람, 뭔가 위험하다.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그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나는 심호흡을 하고 휴대폰 화면을 닫으려는 찰나, 또 다른 메시지가 왔다. 이번엔 강유형이었다.[용준호 멀리 해!]그 어투는 마치 진정우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그가 나를 걱정해 주는 건 알지만 이제 그의 걱정은 더 이상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나는 그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휴대폰을 잠그고 잠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어젯밤 먹은 소주 한 잔이 생각보다 후폭풍이 강했다. 진정우가 타준 꿀물도 효과가 없었는지, 피곤함에 샤워도 하지 않은 채 뻗었었다.그런데도 아침에는 꽤 일찍 깨어났다. 가볍게 요가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그제야 용준호의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이 시간엔 아직 그가 깨어있지 않을 테니 바로 메시지가 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회사에 도착했을 때, 허진호는 이미 자리에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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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9화

허진호의 말에 바로 진정우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리고 어제 신지태가 말했던 허진호에게 거액을 투자한 성이 진 씨인 그 남자가 마침 생각났다.나는 허진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대표님이 말씀하신 강한 남자,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에요? 아니면 그런 친구가 있으세요?”허진호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가볍게 헛기침했다.“그게... 뭐랄까, 말로 설명하기는 좀 애매한데 그러니까... 좀 더 단단하고 남자답고 반듯하고...”그는 말하며 식당 벽에 걸린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에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국기 게양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군복을 입고 우뚝 선 병사들의 모습. 활기차고 반듯한 자세가 딱 ‘강한 남자’를 상징하는 듯했다.그 모습을 보자 진정우의 얼굴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리고 허진호의 말투에서 뭔가 숨겨진 의도가 느껴졌다.‘성이 진 ]씨? 강한 남자? 군인 출신?’이 모든 단어가 진정우와 정확히 들어맞았다.나는 허진호를 살펴보며 느닷없이 물었다.“혹시 그 친구 이름이 진정우인가요?”“네? 뭐라고요?”허진호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대표님 친구 중에 진정우라는 분이 있나요?”나는 한 번 더 물었다.“진정우?”그는 고개를 젓더니 능청스럽게 웃었다.“그런 사람 없어요. 그게 누군데요?”하지만 그의 눈빛은 나를 피하려고 애쓰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강한 남자일 텐데요.”“하하.”그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가요? 그런데 현실에도 그런 사람이 있긴 있나요? 그 사람하고는 어떤 관계세요? 친하세요?”나는 그의 표정에서 엿보이는 약간의 호기심을 읽고 장난스럽게 대꾸했다.“제 친구에 대해 꽤 관심 있으신가 봐요. 그럼 한 번 소개해 드릴까요?”“정말요? 하지만... 괜찮을까요?”허진호는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로 대답했다.“괜찮지 않나요?”나는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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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0화

나는 허진호에게 일부러 난처한 질문을 던졌다.그의 대답을 통해 숨겨진 ‘대표님’의 정체를 알아내고 싶었다.물론 진정우가 그 대표님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너무 가난해 보였고 부유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하지만 모든 정보가 자꾸만 그를 떠올리게 했다.오후에 별다른 일이 없었다. 회의를 마치고 휴대폰을 열어보니 새로 추가된 친구 목록에 용준호의 이름이 있었다.메시지 창에는 단순히 "친구가 되었습니다"라는 알림만 떠 있었고 그 외의 연락은 없었다.용준호는 내가 친구 요청을 수락한 것을 알았을 텐데 일부러 무시한 듯했다.아마 어젯밤 내가 그의 요청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무언의 응수였을 것이다.그는 쉽게 건드릴 사람이 아니었다. 사소한 일도 기억하며 되갚아주는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이래서 진정우와 강유형이 그와 거리를 두라고 경고했는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이미 얽힌 상황에서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그가 먼저 다음 수를 두기 전까지 나는 침착하게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저녁 5시쯤, 나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동네 주민들은 아직 저녁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과 놀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어머, 지원아! 퇴근했네?”1층에 있다 유씨 아줌마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네. 그런데 아직 집에 안 들어가세요?”나는 가볍게 물으며 미소를 지었다.이런 별것 아닌 대화가 사람 사이를 더 친밀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다.“장 봐오긴 했는데 아직 요리는 못했어. 하, 난 너처럼 복도 없어서 요리 잘하는 남자 친구가 없네.”그녀는 고개를 들어 위층을 가리켰다.진정우가 이미 집에 와 있었다.나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안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참으로 낮고 따뜻했다.“문 열려 있어요.”문을 살짝 열자마자 맛있는 요리 냄새가 코를 찔렀다.아침에 대충 먹었기에 지금 너무 배가 고팠다. 부엌의 후드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나는 문가에 서서 말했다.“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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