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의 모든 챕터: 챕터 211 - 챕터 220

311 챕터

제211화

진소영은 단순한 동생이 아니었다. 진정우가 마치 딸처럼 키운 존재였다.그런 애틋한 마음이 있었기에, 강철 같은 그도 이렇게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이 되었겠지.소영이는 진정우와의 추억을 하나둘 들려주었다.이 작은 집은 진정우가 직접 벽돌 하나하나 쌓아 올려 지은 곳이라고 했다.집에 있을 때는 물고기를 잡아 구워주곤 했고 그의 요리는 모두 소영이를 위해 연습한 결과라고 했다.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진정우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책임감과 외로움 속에서 그의 특별함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아려왔다.소영이는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그 평온한 얼굴을 바라보며 문득 진정우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앞으로는 내가 당신을 더 아껴줄게. 혼자 감당하지 않게."하지만 그 충동은 잠깐 스쳤을 뿐,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그런 말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거니까.하지만 대신 안리영에게 전화를 걸었다.“너 어디야?”피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상태가 좋지 않은 듯했다.“너 왜 이래? 수술 끝난 거야? 피곤해 보여.”“아니, 아파서 그래.”그 말에 순간 놀랐다. 안리영이 아프다는 말은 좀처럼 듣기 힘들었으니까.“무슨 일이야? 약은 먹었어?”“응. 별일 아니야. 과로 때문이야.”안리영는 담담하게 대답했다.“근데 너 어디야? 무슨 일 생겨서 도망친 거 아니지?”그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아니, 넌 그런 사람 아니지.” 그녀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사실 부탁 하나 하려고.”나는 진소영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런데 그녀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왜? 네 쪽에 아는 사람 없어?”잠시 정적이 흐른 후에 안리영이 입을 열었다.“...있어. 네 말로 보면 가능할 것 같긴 해.”“정말? 고마워.”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묘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채 나는 고마움을 전했다.하지만 그녀는 곧 뜻밖의 말을 꺼냈다.“근데 그 사람한테 연락하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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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진소영은 내가 떠나는 게 아쉬운 듯,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 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도 외로웠으니까.나는 단 이틀의 휴가만 받았지만 그녀와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 허진호에게 연락해 이틀을 더 연장했다. 하지만 결국 떠나야 할 시간은 찾아왔다.소영이는 내가 떠나는 길에 마시라고 작은 병에 담은 이슬 꽃차를 건넸다.“언니, 이거 꼭 가져가세요.”게다가 꽃가루와 꽃잎으로 만든 음식을 정성껏 포장해 주며 마치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려는 것 같았다.그녀의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워 가슴 한편이 저렸다.“언니, 나중에 꼭 다시 와주세요.”소영이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했다.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 분명했다.나 역시 코끝이 찡해져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다.“응, 꼭 올게.”나는 짧게 대답하며 마음을 다잡았다.이별은 늘 아픈 법이다.나는 소영이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내 친구가 좋은 의사를 알아봐 주고 있어. 연락되면 네 오빠랑 같이 데리러 올게.”“정말요? 기다릴게요.”그녀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갈 때는 기차를 탔지만 돌아올 때는 비행기를 선택했다. 피곤했던 나는 비행기에서 깊이 잠들었다. 안리영에게 연락하니 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꿈속에서는 며칠 동안 소영이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함께 꽃을 다듬고 강물에서 빨래하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간들. 그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가득 채웠다.착륙 후 곧장 택시를 타고 수리센터로 향했다.가는 길에 휴대폰이 울려서 봤더니 발신인은 강유형이었다.그가 조나연과의 관계를 공개한 후 나를 거의 찾지 않았기에 이번 전화는 의외였다.“지원아, 우리 아버지가 정말 하룻밤 만에 머리가 하얗게 셌다는 게 사실이야?”그 말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며칠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기가 막혔고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조차 어이가 없었다.“직접 가서 보면 되잖아.”나는 냉정하게 말했다.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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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나는 강유형이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이어서 말했다.“우리 부모님은 지금 도저히 조나연을 받아들일 수 없어. 특히 엄마가 더 심하셔. 그래서 네가 엄마한테 좀 나연이 좋게 말해 줄 수 없을까?”나는 정말 기가 막혔다.나에게 조나연을 위해 좋은 말을 해 달라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니면 나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는 걸까?“강 대표님, 만약 저한테 그 부탁을 하실 거라면 미리 말씀드리지만 기대하지 마세요.”나는 굳이 착한 척할 필요가 없었다.“지원아...”“강유형! 내가 천사도 아니고 나랑 조나연은 아무 상관도 없는데 내가 왜 좋은 말을 해줘야 해?”나는 단호하게 되물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너 혹시... 질투하는 거야?”“질투?”나는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아, 날 질투심 많은 사람으로 몰아가고 싶었던 거야? 그렇다면 실망할 텐데. 나 질투 안 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네 본모습을 빨리 알게 됐으니까.”그는 한숨을 쉬었다.“지원아, 그냥 겉보기에 그럴 뿐이야. 내가 빚진 게 있어서 그래. 사실 우리 사이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나는 그의 말을 듣기도 싫어 차갑게 끊어버렸다.“그건 네 일이야. 나랑은 아무 상관 없잖아.”“하지만 너 말고는 내가 얘기할 사람이 없어.”그의 목소리는 낮고 답답해 보였다. 평소 당당하던 그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그러나 이제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성인이었고 각자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미안하지만 난 바빠.”나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수리점에 도착해 차를 찾은 뒤, 나는 바로 안리영을 만나러 갔다.이 며칠 동안 진정우는 연락이 없었다. 아마 내가 진소영과 함께 있다는 걸 알고 배려한 듯했다.이소희는 며칠 전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조명 조정 작업이 거의 끝났고 진정우는 밤을 새워 조명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했다.전에 여유를 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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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안리영은 늘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는 사람이었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고 결과를 단정 짓는 경우가 있었다.이 점에서 나와는 성격이 달랐다. 하지만 사람마다 성격과 생각이 다른 법이고 내가 그녀의 인생에 간섭할 수는 없었다.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각자의 선택은 존중해야 한다.나는 안리영의 집에서 하루를 묵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진정우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아래층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남자 친구랑 여행이라도 갔니? 며칠 동안 둘 다 안 보이더라.”그제야 진정우가 집에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이소희는 진정우가 바쁘다고 말하긴 했지만 나 때문에 여기에 거주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내가 집에 있으면 매일 돌아오고 내가 없으면 집에 올 이유를 찾지 못하는 거겠지.그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면 되는 일이었다.놀이공원에 도착하자 이소희가 나를 보며 달려왔다.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안더니, 내 어깨를 두 번 세게 툭툭 쳤다.“언니, 진짜 너무해요. 이렇게 오랜만에 오다니!”그녀의 ‘가벼운 터치’는 꽤 아팠다. 그리고 마치 내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굴었다.“그래서 지금이라도 왔잖아요.”나는 웃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지만 시선은 이미 진정우를 향해 있었다.진정우는 안전모를 쓰고 안전벨트에 매달린 채 높은 곳에서 점검 중이었다.그런데 그는 이미 나를 보고 있었다.나는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그는 옆의 버튼을 눌러 천천히 내려왔다.나는 웃으며 이소희에게 물었다.“왜 그래요? 또 정우 씨한테 또 혼났어요? 표정이 왜 그래요?”“아니에요. 요즘 저 사람 많이 좋아졌어요.”이소희는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언니, 진짜 변했어요. 예전 같지 않아요.”그 말에 나는 조금 놀라 물었다.“제가요? 어떻게요? 못생겨졌어요? 아니면 더 탔나요?”최근 며칠 동안 진소영과 지내면서 자연 속에서 마음껏 놀았다. 해를 쬐고 바람을 맞으며, 강물에서 첨벙거리다 보니 피부가 살짝 탔을지도 몰랐다.“아니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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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진소영은 분명 내가 다녀간 후 모든 걸 진정우에게 털어놨을 것이다.“그곳이 마음에 든다면 나중에...”진정우가 말을 멈췄다. 그러자 나는 미소를 띠며 물었다.“나중에 뭐요?”그의 목젖이 한 번 움직였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나중에... 그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도 있겠죠.”“저 혼자요?”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제가 같이 있을게요. 당신이 원한다면.”그는 여전히 솔직했다.그 순간, 나는 슬쩍 뒤로 물러섰다.‘나중’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특히 ‘여생’ 같은 먼 미래라면 더욱 그렇다.“소영이를 위해 전문의를 찾아봤어요. 그녀의 진단 기록을 제게 주세요.”나는 화제를 바꿔 말했다.어젯밤 안리영은 늘 현실을 회피한다고 속으로 비난했지만 사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나 또한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진정우를 붙잡아두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예전에 안리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사람은 원래 너무 쉽게 얻은 건 소중히 여기지 않아.”그 말이 떠오르자 괜히 마음이 복잡했다.진정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그의 침묵은 소영이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우선 소영이의 상태를 확인한 뒤 수술 위험성을 알아볼게요. 최종 선택은 정우 씨가 하세요.”결국 나는 선택의 권한을 그에게 넘겼다.“이미 알아봤어요. 그녀의 수술은 일반적인 심장 수술보다 훨씬 위험해요. 혈액형이 특이한 데다...”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용히 덧붙였다.“몸에 다른 문제도 있어요.”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다른 문제라뇨?”정확히 알아야 의료진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그는 옆으로 두 걸음 물러나더니 난간을 붙잡았다.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그의 무거운 표정을 보니 가슴이 저릿했다.“정우 씨... 무슨 문제죠?”“소영이는 선천적으로 뇌에 종양이 있어요.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의학 지식은 부족했지만 뇌에 종양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았다.“언제부터 그런 건가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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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216화

갑작스러운 내 포옹에 진정우의 몸이 굳었다. 잠시 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저를 불쌍히 여기시는 건가요?”“아니요. 안쓰럽게 여기는 거죠.”나는 그의 말을 바로잡았다.진정우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나를 안아주지도 않았고 그저 묵묵히 있었다.슬쩍 물러나려는 순간,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강유형이었다.그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이소희, 이 계집애는 왜 아무 말도 없지? 나를 알려줬을 법도 한데...나는 진정우의 손을 놓으려다 다시 꼭 잡았다.그가 손을 풀려고 하자 나는 더 단단히 쥐고 말했다.“가만히 있어요.”그는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나는 여전히 그를 안고 나지막이 물었다.“오늘도 야근해요?”진정우는 잠시 머뭇거리며 대답했다.“네?”나는 살짝 발끝을 들어 그의 귀 가까이 속삭였다.“정우 씨가 해준 밥 먹고 싶어요.”그 말이 끝나자 그의 목젖이 꿀꺽 움직이는 소리가 귀에 닿았다.그리고 짧고 굵게 대답했다.“알겠어요.”내 몸이 떨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나는 강유형 쪽을 힐끗 보았다.그는 주먹을 꽉 쥔 채 굳은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나는 진정우를 놓아주고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사실은...”그 순간 멀리서 이소희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강 대표님, 안녕하세요!”진정우도 고개를 돌려 강유형의 뒷모습을 보았다.그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그의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아까 내가 했던 행동이 분명 연극처럼 보였을 것이다.사실, 일부러 그런 것도 맞다.그래서 굳이 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그때 이소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팀장님! C구역 7-3조 조명이 장비 설치 중에 부딪혀 망가졌어요.”공사장에서 사고는 늘 피하고 싶지만 사고 없는 날이 더 드물다.진정우는 여전히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가서 확인해 봅시다.”그는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를 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그냥 있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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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이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터트렸다.“아닌데. 놀이공원 생각밖에 안 해요. 그리고 이 아름다운 조명들도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팔짱을 끼고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그리고 언니도요.”그녀의 애교 섞인 말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우리는 곧 문제가 생긴 구역으로 갔다. 진정우는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위로 올라가 손상된 조명을 점검했다. 그는 꼼꼼히 살피며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조명 두 세트가 손상됐습니다. 각 세트에 작은 조명이 22개씩 들어가 있었고 13가지 색상을 표현할 수 있었어요.”그는 작업을 멈추고 손상된 조명을 둘러본 뒤 작업 중이던 크레인 쪽을 바라봤다.그리고 이소희를 향해 말했다.“소희 씨, 강 실장님께 연락해 주세요.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와 손실 정리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이소희는 “네”라고 대답한 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혁이 도착했다.그는 나를 보더니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태연하게 물었다.“지원이도 왔네. 혹시 현장 점검 미리 하러 온 거야?”그의 말투는 가볍게 농담을 건네는 듯했지만 그 속에는 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정우 씨 만나러 왔어요.”내 대답에 강진혁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며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이더니 금세 평정심을 찾고 담담하게 말했다.“이번 사고에 대해 시공 업체에서 이미 보고받았습니다.”그의 말투에서 더 이상의 논의를 피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그러나 진정우는 단호했다.“업체가 책임을 인정한 만큼 손실 비용은 모두 그쪽에서 부담해야 합니다. 저는 새로운 조명 교체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비용 견적서는 강 실장님께 전달해 드릴게요.”진정우의 차가운 태도에 강진혁의 표정이 굳어졌다.“이번 일은 제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강진혁은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며 상황을 종결하려 했지만 진정우는 흔들리지 않았다.“그렇다면 손실 견적서는 강 실장님께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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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이때 진정우가 내 손을 잡았다.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따스했고 그는 강진혁을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곳이 공식적으로 인수인계되기 전까지, 저는 여기서 떠나지 않을 겁니다.”그의 확고한 태도에 잠시 숨을 멈췄다.진정우는 누군가 자신에게 떠나라고 하면 더욱 그 자리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이다. 내가 강진혁의 반응을 기다리는 동안, 진정우는 내 손을 더 꽉 잡으며 말했다.“이건 지원 씨와의 약속입니다.”나와의 약속 때문이라는 말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그러나 강유형과 강진혁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모두가 숨을 줌이고 있었으며 공기는 더 차갑고 어색해졌다.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강 대표님, 그리고 강 실장님, 제가 지금은 이곳의 책임자가 아니고 회사를 떠난 상태이지만 회사 규칙 중에 회사의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이 있었죠? 그 누구도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내 말은 강진혁에게 회사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은근히 상기시키는 의도였다.만약 누군가를 감싸고자 한다면 그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경고였다.나는 말을 마쳤고 강유형과 강진혁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그들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지만 논쟁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그러나 그 순간, 뜻밖의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조나연이었다.그녀는 서둘러 달려오더니 자신의 배를 신경 쓰는 것도 잊은 채 말했다.“이번 일은 제가 배치한 작업입니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강유형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고 관자놀이마저 불쑥 튀어나왔다. 화가 치밀어 오르기 직전이었다.그의 이런 반응을 보고 나는 곧 일촉즉발의 상황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조나연은 평범한 직원이 아니었다. 그녀는 강유형이 나와의 10년 관계를 끊고 가족과도 등을 돌리며 선택한 여자였다.하지만 강유형은 예상 밖의 말을 꺼냈다.“네가 책임지겠다 했으니 그럼 그래.”나는 그의 말을 듣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강유형이 그렇게 소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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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나는 진정우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의 아버지가 어릴 적 내가 "왕 아저씨"라고 불렀던 분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다 진정우가 나에게 다가온 이유가 단순한 호감 때문인지 궁금해졌다.“정우 씨, 이렇게 저를 흔드는 게 정말 저를 좋아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요? 장난 같아요?”그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되물었다.“그럼 혹시 뭔가 숨기고 있는 건 없어요? 예를 들면... 우리,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든가요?”그의 아버지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로 내내 머릿속을 떠돌던 질문이었다.그러자 그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어릴 때 제가 지원 씨를 업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지원씨가 저한테 뽀뽀했죠.”그의 예상치 못한 고백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내가 연애 경험이 없다면 그의 말에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았을 것이다.“네? 제가요? 어디에다 뽀뽀했는데요?”나는 의도적으로 대담하게 물었다.그는 한발 다가와 우리 사이를 좁혔다. 원래도 가까웠지만 이제는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었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진정우는 나를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지금 보여줄까요?”“...”내가 할 말을 잃은 채 멍해 있자, 그는 살짝 웃었다. 그는 분명 겉으론 진지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장난스러운 면모가 있는 사람임이 틀림없었다.나는 얼굴이 빨개졌고 진정우를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말했다.“장난치지 마세요.”그 말을 남기고 나는 도망쳤다.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낮은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그는 분명 나를 놀리려고 저랬던 거야.갑자기 예전에 꿨던 꿈이 떠올랐다. 그 꿈에서 나는 그의 등에 엎드려 장난을 치며 "오빠"라고 불렀었다.그게 혹시... 꿈이 아니었나?어릴 적 일이긴 하지만 이제 와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께 물어볼 수도 없으니 답을 알 길은 진정우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물어보는 건 부끄러워 도저히 할 수 없었다.나는 일부러 빨리 걸었지만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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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신지태는 나에게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나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나는 휴대폰을 쥐고 진정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몇 걸음 다가가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진정우가 먼저 말했다.“저, 모레 떠나요.”떠난다니?나는 순간 멍해졌다. “어디로요?”그는 앞을 보며 걸었다.“돌아가야죠.”돌아간다니, 청평으로?그는 분명 여기에 남겠다고 했고 집도 계약했었는데.‘집’이라는 말이 떠오르자 곧장 철거 얘기가 생각났다. 집주인 아주머니의 부탁도 아직 그에게 전하지 못했는데.나는 왜 갑자기 떠나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거리감 때문에 입술 끝에서 망설였다. 대신 나는 이렇게 말했다.“내일 밤에 조명 조정된 거 보러 오겠습니다.”진정우는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마치 ‘내가 시간이 있어도 자기는 없을 수도 있다’는 뜻 같았다.나는 그가 거절할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잠시 뚫어지게 보더니 입을 열었다.“좋아요.”그는 분명 억지로 그 말을 내뱉은 거였다.분명 화가 났을 텐데도, 나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참고 있었다.순간, 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그가 나를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을 이용해 내가 그를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었다.사람이라는 건 원래 그런가 보다. 상대가 다가올수록 밀어내게 되고 밀어내는 쪽은 늘 상처받기 마련이다.나도 예전에 강유형과의 관계에서 같은 일을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다.‘내가 싫은 건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지.’“정우 씨.” 나는 그를 불렀다.“오늘 밤에는 지태 오빠를 만나러 가야 해요. 제가 부탁한 일이 있어서 꼭 가야 하거든요.”그의 눈빛이 살짝 깊어지더니, 잠시 후 낮게 대답했다.“네.”“그 대신, 내일 밤에는 저한테 밥을 해 주시겠어요? 그리고 같이 조명 보러 가죠.” 나는 일부러 장난스러운 톤으로 그를 달랬다.그러자 그는 살짝 미소 지었다.“제가 애도 아니고 달래는 거 안 통해요.”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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