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의 모든 챕터: 챕터 121 - 챕터 130

307 챕터

제121화

“정우 씨가 언니 월급을 주겠죠? 맞죠?”이소희가 진정우를 보며 물었다.나는 진정우가 그녀의 말에 단호하게 거절할 줄 알았는데 그는 예상외로 대답했다.“소희 씨가 괜찮다면, 뭐...”나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이소희가 내 팔을 살짝 꼬집으며 눈을 깜박였다. 분명히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것 같았다.진정우, 오늘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 이소희의 장난을 이렇게 받아준다고?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난 돈 걱정 없어요. 안 갈 거예요.”“언니...”그때 진정우가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아침을 먹고 있을 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집주인 아주머니의 번호가 떴다. 나는 그녀가 해결책을 찾았을 거라 생각하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네, 아주머니.”“지원아, 이렇게 일찍 전화해서 미안해.”아주머니는 예의 바르게 말했다.“괜찮아요. 말씀하세요.”나는 두유를 마시며 대답했다.“그 임대 문제 말이야. 상대방과 얘기해 봤는데 동의하지 않았고 보상도 싫대. 그래서 이 일은...”집주인 아주머니의 말에서 뭔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걱정하지 마. 그 임대인에 대해 내가 다 알아봤어. 범죄 전과도 없고 나쁜 취미도 없고 외모도 괜찮고, 그리고 예전에...”그때, 진정우가 나를 불렀다.“팀장님, 그 계란후라이 한 조각 나한테 줄 수 있어요?”진정우가 내 접시에 있는 계란후라이를 가리키며 말했다.나는 순간 당황해서 집주인 아주머니가 하는 말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결국 “네”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고 진정우를 바라보았다.“만약 싫으면 뭐...”진정우는 말없이 계속 삶은 계란을 까고 있었다.“정우 씨, 제 계란후라이 드세요.”이소희가 자기 계란후라이를 건네며 말했다.“괜찮아요. 지금은 먹고 싶지 않아요.”진정우는 차갑게 거절했고 나는 말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진정우가 삶은 계란을 한입에 넣는 모습을 보니 나는 갑자기 목이 메는 듯했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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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어색함은 정말 컸지만 진정우가 알게 된 것도 괜찮았다.진정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자리를 떠났다. 이소희는 속으로 망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나는 사실 그와 더 이상 발전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화를 내든 오해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우리는 단지 우연히 만난 사이였고 나는 다시 사랑을 할 생각이 없었다. 상처를 한 번 받았다고 해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아침을 먹은 후 나는 이소희를 일터로 데려다주고 면접을 보러 가기로 했다.어제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오늘 아침 면접 초대가 왔다. 이렇게 빠른 반응이 오히려 더 놀라웠지만 어쨌든 일은 빨리 시작하는 게 좋으니 다행이었다.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강진혁의 차를 봤다. 그는 차를 멈추고 내리더니 뒷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차에서 내렸다.그들이 나를 찾으러 온 거였다.“안녕하세요, 아줌마.”나는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지원아...” 아줌마는 내 손을 잡고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때 강진혁이 종이 티슈를 건네며 말했다.“엄마, 이렇게 우시면 지원이가 더 놀라잖아요. 얘기할 거면 울지 말고 하세요.”그러자 아줌마는 티슈를 받고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지원아,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나는 강진혁을 쳐다봤다.“네가 전화도 안 받았고 문자도 안 받으니까 엄마가 걱정돼서 잠도 못 자고 아침 일찍 나를 깨워서 오자고 했어. 유형이가 한 일은 이미 엄마가 다 알고 계셔.”나는 아줌마가 이 일로 나를 찾아올 거라는 걸 직감했다.“아줌마, 근처 카페나 식당에서 이야기 좀 하죠. 아줌마도 아침 못 드셨을 거예요.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해요.”그러자 아줌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밥맛이 없어.”“그럼 이야기만 해요.”내 설득에 아줌마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강진혁을 보며 말했다.“그럼 오빠는 소희 씨랑 현장에 가 있어요. 저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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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지만 나는 계속 내가 할 말을 이어갔다.“아줌마, 저는 이미 퇴사했어요. 그리고 다른 곳에도 지원해서 오늘 면접을 봤어요.”“뭐? 그렇게 빨리?”아줌마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사실, 유형이와 혼인 신고를 하려던 그날부터 저는 퇴사를 고려하고 있었어요.”나는 그녀를 똑바로 보며 전혀 죄책감 없이 말했다.“유형이와 같은 회사에서 계속 일하는 건 서로 불편할 것 같았어요. 그가 제 퇴사를 원하지 않아도 저는 놀이공원 프로젝트가 끝난 후 회사를 떠날 생각이었어요.”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자 강진혁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잖아. 너희가 불편하다면 다른 부서로 가거나 지사에서 일하면 될 거 아니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니?”“제가 다른 곳으로 가면 고생하거나 힘들까 봐 그러시는 거 다 알아요. 하지만 이제는 정말 떠나고 싶어요. 다른 일고 해보고 싶고요.”내가 솔직히 대답하자 아줌마는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어떻게 이렇게까지... 네가 내 아들과 결혼 안 한다고 해도 괜찮은데 회사를 떠나는 건 너무 하잖아? 지원아, 정말 우리를 완전히 떠날 거니?”그녀의 슬픈 표정에 나는 마음이 약간 무거워졌다. 십 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인데 가슴이 아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자주 찾아뵐 거예요.”그러자 아줌마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남자 친구가 생겨서 그래? 너와 유형의 과거 때문에 불편해할까 봐 이러는 거야?”그 말을 듣자 나는 피식 웃었다. 사실 나와 강유형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아니에요. 남자 친구가 없어요. 혹시 제가 연애를 한다고 해도 강유형은 제 일에 관여할 자격이 없어요.”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그렇다면, 제발 회사에 남아줘.”그녀는 애원하며 말했다.“적어도 아줌마가 너를 보고 싶을 때 전화를 걸면 언제든지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어.”그 말에 나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흔히 느껴지는 그런 감정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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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내가 이 말을 하자 아줌마는 더 이상 다른 말을 꺼낼 수 없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셨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지원아, 아줌마한테 너는 내 친딸 같아.”만약 진심으로 나를 딸처럼 생각한다면 강진혁과 나를 엮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강진혁이 먼저 제안한 일일 수도 있다. 그가 나에게 마음을 전한 후 그런 뜻을 내비쳤을 수도 있었다.“그럼 진혁 오빠와 유형이가 시간이 맞으면 아줌마와 삼촌께 인사드리면서 정식으로 수양딸로 받아주세요.”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분명 그녀는 아직 내가 딸이 되는 것에 대해 망설이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가 지난 10년 동안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셨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의심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가 싫었다.“그래, 알겠어.”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답했다.나는 아줌마를 집까지 모셔다드린 뒤 강유형과 마주쳤다. 그때 강유형은 야구 모자를 쓰고 야구복을 입고 있었다. 평소의 차가운 대표 이미지와는 달리 이제는 젊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 시절의 강유형이 떠올랐다.고등학교 시절, 강유형은 자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그때는 내가 너무 불안해서 가슴이 떨릴 정도로 걱정이 많았다. 그 시절의 강유형은 정말 멋있고 반항심으로 가득했던 비행소년이었다.어느 날 강유형이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한 바퀴 돌았을 때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의 몸에 꼭 붙어서 손을 놓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처음 강유형과 스킨십을 했던 날이었다. 그때 강유형은 나를 보고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무서운 척 하면서 나를 만지려는 거야?”그 이후로 강유형은 더 이상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고 그의 옷도 점점 더 비즈니스 스타일로 바뀌었었다. 이제는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대표의 모습이다.그런데 지금 그가 예전처럼 모자를 쓰고 야구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더 이상 예전의 강유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옷을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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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나는 강유형을 바라보며 말했다.“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나한테 배상이라도 하라고? 아니면 고의 상해로 고소하겠다는 거야?”“나를 뭘로 보는 거지?”강유형의 목소리가 낮아지며 다시 차가운 대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사과하려고 온 거야. 어제는 내가 충동적이고 경솔했어. 네가 나를 때린 건 잘한 일이야.”그의 이 말은 정말 의외였다. 모자 아래로 살짝 보이는 붕대를 보며 나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네가 잘못을 알면 됐어.”강유형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 요즘 변했더라.”내가 어떻게 변했다는 거지?하지만 나는 묻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네가 잘못한 건 사실이잖아.”“그래, 어제는 내 잘못이었어. 조나연이랑 너무 가까이 지낸 것도, 네 감정을 무시한 것도 내 잘못이야. 네가 쓰게 할 집에 그녀를 들인 건 더 말도 안 됐고, 게다가 내 카드를 그녀에게 준 것도...”강유형은 한참 동안 자책했다. 그는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있었다.“사과할게. 이 모든 게 내 잘못이야.”“됐어. 이제는 다 의미 없어.”나는 돌아서려 했지만 그는 나를 막아섰다.“내 말 아직 안 끝났어.”나는 그의 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계속 말해봐.”“사과도 했고, 잘못도 인정했어. 그리고 나연이랑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도 말했잖아. 네가 말한 그 키스는 장난으로 일어난 사고였어. 만약 네가 그게 그렇게 걸린다면 너도 다른 남자랑 한 번 키스해. 그러면 우리, 없던 일로 하자.”그 말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걸 본 강유형은 잠깐 몸을 피하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때려도 좋아. 근데 어제 다친 곳은 피해서 때려줘. 다른 데로.”푸흡!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강유형이 이렇게 웃긴 사람이었나? 아니면 이런 식으로 용서를 구하려는 걸까?“지원아.”그는 손을 뻗어 나를 붙잡았다.“우리 다시 시작하자. 아니면 내가 다시 너를 쫓아도 될까?”“보아하니 내가 때린 게 꽤 아팠나 보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데.”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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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오전 11시에 면접 볼 회사에 도착했는데 약간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CBD 중심지역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교외에 있었다. 이 회사는 조명 개발을 하는 회사로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놀이공원 조명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했으나 최종 선정되진 않았던 회사였다. 심지어 놀이공원의 조명이 고장 났을 때 이 회사를 찾아가서 조정을 요청할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두 번이나 이런 일이 있었기에 이 회사가 눈에 띄었다. 마침 이 회사에서 새로운 채용 공고를 냈고 모집 직책도 딱 맞아떨어지는 마케팅 홍보 담당이었다. 이 회사에 가장 먼저 지원서를 냈고 당연히 이곳에서 가장 먼저 합격 통보를 받았다. 회사는 임대 사무실에 입주해 있었고 KS 그룹의 자사 소유의 제국 빌딩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회사의 규모가 작진 않았고 건물의 세 층을 임대하고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 층으로 올라가 HR 사무실을 찾았다.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누군가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면접 보러 오신 윤 아가씨 맞으시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쪽에 앉으세요!” 상대방은 서른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인상이 수수하고 딱히 잘생기지도 그렇다고 못생기지도 않은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웃는 얼굴이 꽤나 친근했다. 이 친근함 덕에 인상이 깊어졌다. 세상에서 미소가 가장 큰 친절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오늘 윤 아가씨 한 분만 면접을 보기로 했습니다.” 상대방의 말에 의문이 풀렸다. 내가 오자마자 나를 알아봤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살짝 놀라더니 웃으며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눴다. “저는 허진호입니다. 윤 아가씨의 이력서를 봤는데 아주 훌륭하고 저희가 찾고 있는 직책에도 아주 적합하시더군요. 윤 아가씨의 요구사항을 듣고 싶습니다.” 허진호는 매우 전문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와 악수할 때 보니 그의 가슴에 HR 매니저 겸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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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윤 부장님, 저희와 함께하게 된 걸 환영합니다.” 이번에는 허진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곧바로 안내를 받아 입사 절차를 밟았다. 채 반 시간도 되지 않아 무사히 입사가 완료되었다. 그제야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강유형 쪽에서 아직 승인 연락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안 되면 강유형 아버지를 찾아가면 된다. 그는 틀림없이 허락해 주실 테니 말이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여러 번 울렸지만 허진호와 얘기 중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안리영이었다. “어디야? 나 오늘 쉬는 날인데 만날래?” 그녀가 휴일이라니, 드문 일이다! 요즘 출산 성수기라 그녀는 계속해서 일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왜? 드디어 출산 비수기에 들어간 거야?” 내가 농담을 던졌다. “응. 애 낳을 사람들은 다 몰려서 한꺼번에 낳다가 이제 낳을 사람도 없지 뭐야.” 안리영이 투덜거렸다. 이미 여러 번 해온 투정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아주 영리해서 과학적인 출산 계획을 세우고 태어날 시기, 생년월일까지 따지며 신경을 쓴다. 그런 시기에 태어나야 애들이 크게 성공한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전부 용이 되고 봉황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나중에는 평범한 아이가 더 귀해질지도 모른다. “집에 있어? 내가 네 집으로 갈게.” 그녀가 어렵게 얻은 휴일이라 편하게 쉬게 해주고 싶었다. “응. 와!” “그럼 낮에 한잔할까?” 내가 웃으며 물었다. “좋지. 내가 음식 준비할게. 너는 술을 가져와.” 안리영이 흔쾌히 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다른 낯선 번호로부터의 부재중 전화들을 확인해 봤다. 아마 다른 채용 회사에서 걸어온 전화일 것이다. 굳이 다시 걸지 않았다. 진짜 나를 채용하고 싶다면 다시 전화할 것이다. 나는 술을 샀을 뿐만 아니라 과일과 전기포트까지 샀다. 안리영과 차를 끓여 마시기 위해서였다. 안리영은 문을 열어주고 내가 들고 간 물건들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전기포트를 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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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누가 나를 놀리는 건가 의심하던 나는 연이어 반지 주문과 결혼식장 관련 전화까지 받았다. 이쯤 되니 단순한 장난이 아니란 걸 깨달았고 전화를 걸어온 이들에게 물어본 끝에야 모든 것이 강유형의 짓임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게 그의 짓이었다. 그가 단순히 장난삼아 나를 괴롭히려고 이런 짓을 한 것은 아닐 터였다.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르자 나는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유형, 도대체 무슨 짓이야? 우리 이미 헤어졌잖아. 그런데 왜 웨딩드레스며 반지 주문을 하는 거야? 누구 기분 상하게 하려고?” “날 그렇게 유치하고 한심하게 보지 마. 네가 내가 널 소홀히 여긴다고 생각하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거 같은데 우리가 결혼하면 믿겠어? 내가 널 아내로 맞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겠냐고?” 그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실망했다. “강유형, 넌 사랑이 웨딩드레스와 반지로 된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아직도 모르는 거야?” 나는 화가 나서 그에게 따졌다. 강유형은 잠시 말을 멈추고 몇 초 후에야 대답했다. “조나연 때문 아니야?” “맞아!” 나는 인정했다. “그럼 그 사람, 제일 큰 장애물인 그 사람을 어떻게 할 건데?” 순간 강유형은 말문이 막힌 듯 조용해졌다가 잠시 후에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조나연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거야. 그리고 회사에서도 물러나게 할 거야. 그 정도면 됐어?” 그가 얼마나 내키지 않게 말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그리고 나중에 조나연을 몰래 숨겨 놓기라도 하려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감추어두려는 거야?” 나는 비꼬듯 물었다. 순간 강유형이 버럭 화를 냈다. “윤지원, 그만 좀 해! 어떻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지? 조나연은 지금 혼자서 아이까지 임신한 불쌍한 처지야. 너는 왜 동정심이란 게 조금이라도 없어?”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소리치는 수준이었다. 나는 귀가 멀까 봐 핸드폰을 조금 멀리 뗐다. 하지만 그랬어도 그의 말은 똑똑히 들렸다. “윤지원, 너도 여자인데 만약 네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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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안리영은 차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강유형 저 인간 진짜 가면이 벗겨지고 나니까 이렇게 비참할 줄이야.” 나는 차를 두 모금 마셨다. “알고 보니 강유형은 그냥 나를 불쌍히 여긴 거였어.” 비록 강유형과 헤어졌지만 그와 함께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의 말이 그 모든 아름다운 외피를 완전히 찢어버렸다. 속에 감춰진 위선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안리영은 내 어깨를 감싸며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지금이라도 그 사람의 본모습을 알게 된 게 다행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안리영이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강유형에게 한 방 먹일 생각은 없어?” “뭐라고?” 내 감정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강유형의 말이 내 마음속 깊은 상처를 다시 드러내 내 인생에서 가장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가 맞는 말을 하나 하긴 했다. 예전에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차갑게 누워 계시던 영안실에서 나 홀로 남았을 때 세상에 혼자라는 절망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그때 나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도 없었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면 부모님과 함께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때 강유형의 부모님이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안아주며 앞으로 함께 살자고 자신들이 부모가 되어주겠다고 했을 때 나는 비로소 두려움을 덜 수 있었다. 그때 그들은 내게 진짜 구세주 같았고 나는 무엇도 가리지 않고 그들을 붙잡았다. 마치 전 세계가 여전히 나를 사랑해 준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는지 강유형이 처음 내게 웃어주었던 미소를 사랑의 신호로 오해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친절이 아니라 어쩌면 비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미소를 한 줄기 생명의 빛처럼 여겼다. “당장 남자 만나서 연애를 시작하든 결혼을 해. 그러면 강유형도 네가 정말 진심이란 걸 깨달을 거야. 네가 강유형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네가 결코 그 사람에게만 의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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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술 드셨어요?” 진정우는 몇 초간 침묵하다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해줄 거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어디 계세요?” 진정우 역시 답하지 않고 반문했다. “됐어요. 대답은 알겠네요.” 나는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진정우가 나를 불렀다. “지원 씨, 지금 어디예요? 집이에요 아니면 밖이에요?”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내 마음속 억눌려 있던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했다. “정우 씨가 뭔데요? 뭔데 저를 신경 써요? 내가 어디에 있든 내 마음이에요 나...” 갑자기 안리영이 다가와 내 폰을 빼앗듯이 받았다. “진정우 씨, 안심하세요. 지금 지원이 저희 집에 있어요. 저는 지원이의 절친이에요.” 안리영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부탁할 땐 얌전히 말해야지.” 나는 안리영을 밀며 그녀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때 진정우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내일 술이 깨면 다시 얘기합시다.” 그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멍하니 안리영을 바라봤다. “정우 씨는 내가 취한 줄 아네.” 안리영은 웃음을 터뜨렸다. “진정우는 네가 지금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서 내일이면 말을 번복할까 봐 그런 거야.” 나는 술에 취했지만 그렇게까지 취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가 거절하는 또 다른 방식인 듯했다.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직접 말했던 기억이 있을 테니 이제는 내가 장난을 치거나 그에게 복수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 술자리가 이어진 후 나는 다음 날 아침 안리영이 언제 출근했는지도 몰랐고 시끄러운 휴대폰 소리에 간신히 눈을 떴다. “여보세요?” 나는 번호를 확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윤 팀장님, 지금 놀이공원으로 좀 와줄 수 있나요?” 고준석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고 비서님, 저 퇴사한 거 모르세요? 일이 있으면 강진혁 씨나 강 대표님께 연락하세요.” “윤 팀장님, 저는 꼭 윤 팀장님을 찾아야겠어요.” 고준석의 고집에 웃음이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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