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Chapter 111 - Chapter 120

307 Chapters

제111화

강유형은 나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말했다.“이미 얘기했잖아. 그날은 술에 취해서 실수였다고. 정신이 좀 혼란스러웠어.”“한 번 실수한 사람은 또 실수할 수 있어. 난 그런 실수를 절대 용납 못 해.”나는 단호하게 말했다.그러자 강유형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잘난 척하지 마.”그의 이런 태도에 나는 더 실망했다. 예전에 왜 그를 좋아했는지 이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정신이 나갔던 걸까?“너 그냥 나 떠나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다른 남자 만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그는 여전히 자기합리화에 빠져 있었다. 더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말했다.“그래, 네 생각대로 해. 자존심 강한 네가 배신을 용납 못 하겠지. 그럼 나 같은 사람은 그냥 놔주는 게 낫잖아. 우리 서로 멀리 떨어지는 게 좋잖아.”나는 이렇게라도 끝내고 싶었지만, 내 말이 오히려 그의 화를 돋운 듯했다. 강유형은 갑자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억지로 키스하려 했다.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피했고, 그가 조나연과 키스했던 게 떠올라서 화가 나고 역겨웠다.하지만 내가 피할수록 강유형은 더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책상 위로 밀어붙이고 손을 거칠게 내 옷 속으로 넣었다.“나랑 키스하기 싫다 이거지? 그럼 누구랑 하고 싶은데? 정우? 너 그 자식이랑 잤어?”그의 저속한 말과 행동에 모욕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의 손이 내 허리까지 올라오자,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그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강유형의 동작이 멈췄다. 그는 충격을 받은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에서 무언가 흘러내리는 걸 보고서야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붉은 피 한 방울이 내 눈가에 떨어지자 나는 얼른 눈을 감았다.그건 강유형의 뜨거운 피였다. 그 피가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나는 떨리는 손을 멈추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러자 강유형은 내 뒷머리를 단단히 잡고 차갑게 속삭였다.“지원아, 잘 들어둬. 넌 내 거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4
Read more

제112화

“차라리 머리를 제대로 때렸어야지! 그놈을 아예 끝장내버리게! 네가 마음을 줄 땐 받지도 않더니 지금 와서 이런 미친 짓을 하다니!”안리영은 강유형에 대해 욕을 퍼부으며, 평소의 냉정한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그 인간은 그냥 자존심이 상한 거야. 내가 떠나지 못할 거라 믿었는데, 진짜로 그만두니까 화가 난 거지.”내가 그렇게 설명하자 안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그래. 이제 와서야 네가 소중한 줄 안 거야. 네가 다른 남자랑 엮이는 건 절대 용납 못 하는 거지.”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와 진정우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온갖 방해 공작을 벌였던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강진혁을 보내더니 이제는 조나연까지 들이밀다니. 덕분에 놀이공원 마무리 작업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그래도 진정우가 도와준 덕에 마무리는 잘될 거라 믿고 있다.“지원아, 앞으로 강유형이 또 이상한 짓 하면 똑같이 맞서. 또 그런 짓 하면 한 번 더 혼내줘야 알아. 겁을 줘야 못 건드리지.”안리영이 진지하게 말했다.“알았어.”나는 짧게 대답했다.그때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는지, 전화를 끊기 전 안리영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덧붙였다.“잠시 후에 병원 들러서 그 자식 상태 좀 볼게. 피 많이 흘렸나 확인하고.”그녀의 농담에 나도 피식 웃었다. 하지만 웃음 끝에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감돌았다.차 안에 잠시 앉아 있다가 천천히 내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니 이웃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고 인사했다.“어머, 오늘은 혼자 들어오네? 남자 친구는?”지난번 아주머니들이 진정우에게 했던 얘기가 떠올라 웃으며 말했다.“그러게 말이에요. 복도 청소를 시켜야 하는데.”내 말에 아주머니들이 웃었다.“아니야, 아니야. 그 청년 참 괜찮던데? 잘생기고 성실하고, 잘 잡아둬.”“네.”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 계단을 올랐다.그런데 복도에 들어서자 순간 걸음을 멈췄다. 바로 옆집 문이 열려 있었고, 누군가가 안에서 짐을 옮기며 쿵쿵 소리를 내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4
Read more

제113화

“네 사직서는 무효야.”강진혁은 마치 모든 걸 결정할 권리가 있는 사람처럼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물론 그가 이럴 권리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강유형이 내 퇴사를 허락했다 해도, 강진혁은 아버지를 통해 내 사직을 무효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도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퉁명스럽게 말했다.“오빠, 대표님이 이미 동의하셨어요.”지금 강유형이 KS 그룹의 실질적인 대표니까, 강진혁이 아직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잠시 침묵이 흘렀고, 몇 초 뒤 강진혁이 물었다.“지금 어디에 있어?”이곳으로 이사 온 걸 아는 사람은 이소희와 진정우뿐이지만, 강진혁이라면 그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 꾸준히 관심을 두고 지켜봐 온 사람이니, 내 번호도 기억하고 사는 곳 정도는 금방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오빠, 놀이공원은 제가 2년 동안 애정을 쏟아온 프로젝트예요. 이제 남은 일은 오빠가 맡아주세요.”“지원아...”“더는 할 말 없어요.”나는 그의 말을 끊고 전화를 끊었다. 죽에서 은은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재료가 많지 않아 간단히 끓인 죽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노트북을 꺼내 죽을 먹으면서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KS 그룹에서 쌓은 몇 년의 경력이라면 충분히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이력서를 모두 제출하고 죽도 다 먹었지만, 옆집은 여전히 짐 정리를 끝내지 않은 듯했다.식사를 하고 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소파에 몸을 기대어 눈을 감고 방해받지 않도록 휴대폰은 무음으로 설정해 두었다.얼마나 잤을까? 깨어나 보니 주변이 너무나 조용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고요함이 낯설게 느껴졌다.휴대폰을 보니 벌써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바쁘게 지내던 평소와 달리 이렇게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게 어색했다.부재중 전화가 몇 통 와 있었다. 이소희, 강유형 어머니, 그리고 모르는 번호에서 세 번이나 걸려 와 있었다.진정우에게서 온 전화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4
Read more

제114화

결국 나는 놀이공원에 결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아버지의 꿈이 담긴 이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이번에 내 역할은 정식 참여자가 아닌 무료로 조언하는 비공식 자문이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놀이공원이 잘 마무리되기만 하면 충분했다.어차피 지금 할 일도 없으니 차라리 일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나았다.저녁 무렵 호텔에 도착했다. 집을 나서기 전, 옆집 문이 잠겨 있는 걸 확인했다. 이곳에 한 남자가 이사 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집주인 아주머니께 옆집을 내가 대신 임대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집주인 아주머니의 번호를 보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내 제안을 듣자 아주머니는 난감해하며 말했다.“글쎄... 이미 계약금을 받았는데, 이제 와서 취소하면 곤란하지 않을까?”“그럼 계약금 두 배로 돌려드릴게요. 비용은 제가 부담할게요. 그리고 그분이 내는 임대료보다 더 드릴 수도 있어요.”마음 편히 살 수 있다면 돈이 좀 더 드는 건 상관없었다.‘돈이 주는 자신감’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돈이 있으면 안정감과 여유를 살 수 있고 돈 앞에서는 어떤 원칙도 흔들릴 수 있으니까.아주머니는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더는 망설이지 않고 상대방과 협의해 보고 다시 연락 주겠다고 했다.전화를 끊고 차를 몰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 로비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로비 한쪽에 앉아 있는 조나연이 보였다.조나연이 호텔에 있는 게 이상할 건 없지만 왜인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발소리에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자리에서 나를 불렀다.“지원 씨.”여기까지 와서 나를 기다렸다는 건 오늘은 정말 할 얘기가 있었던 모양이다.“업무 얘기하러 오신 거면 잘못 찾으셨어요. 저 이제 퇴사했거든요.”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내가 먼저 못을 박았다. 내가 회사에 사직서를 낸 데에 그녀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4
Read more

제115화

예전에 강유형을 ‘미친개’라고 부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결국 강유형에게 찍혀 이 바닥에서 쫓겨났다.강유형은 정말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 다행히 큰 권력은 없는 편이라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에게 찍힌 사람은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성격이라면 예전 같았으면 황제 옆에서 간신 노릇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조나연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내가 강유형을 비꼬면서 동시에 그녀까지 조롱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지원 씨, 어떻게 그 사람을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그 사람은 그래도 한때 지원 씨가 사랑했던 남자잖아요. 헤어졌다 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나요?”그래, 완전히 그를 감싸는 말투였다.“예의요?” 나는 가볍게 웃었다.“예의는 예의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한테 쓰는 거죠. 나연 씨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남편 친구와 눈 맞았고, 남편 아이까지 가졌으면서 남의 약혼남에게까지 마음을 품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저한테 예의를 기대하는 건 좀 웃기지 않나요?”조나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제가 지어낸 게 아니에요. 나연 씨가 직접 제 앞에서 한 말이니까요.”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그날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말했잖아요.”조나연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치 숨이 막힌 듯 굳어 있었다. 그러다 겨우 입을 열었을 땐 목소리가 떨리고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 사람이 날 먼저 유혹한 거예요. 내가 아니라...”“정말 그래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죠.”나는 그녀에게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조나연은 참 끈질긴 여자였다. 한 번에 끝내지 않으면 두고두고 귀찮게 할 사람이란 걸 알았다. 이제는 확실히 끝을 내야 할 때였다.조나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그 사람이 나를 망쳤어요.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난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거예요. 이건 다 그 사람이 책임져야 해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4
Read more

제116화

조나연은 내가 한 말에 굳어버린 채 서 있었다. 참으로 난처해 보였지만 이 모든 건 본인이 자초한 일이었다.“나연 씨, 더 볼 일 없으면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지금 임신 중이잖아요.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요.”내 말은 조롱이 아니라 진심 어린 충고였다. 그녀가 이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면, 지금보다 더 조심해야 할 테니까. 특히 이런 위험한 장소는 피하는 게 맞았다. 혹시 아이를 원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며 마음이 묘해졌다.더 할 말도 없었고, 내내 쌓였던 불만도 털어냈으니 이제 돌아설 참이었다.그때 뒤에서 조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지원 씨, 정말 강유형을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이제 그 사람과 함께할 마음이 정말 없나요?”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신한테 넘길게요.”넘겨준다고 해도 그녀가 그를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요즘 강유형이 보이는 유치하고 과격한 행동들을 보면 그는 아직 나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않은 게 분명했다. 나와 끝난 뒤로 오히려 더 나의 관심을 끌려고 이런저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이런 걸 보면 조나연에 대한 그의 감정은 진짜 사랑이라기보다는 그저 순간적인 충동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나는 그를 다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만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내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것도, 다른 여자가 내 남자를 넘보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그럼 앞으로는 유형 씨와 다시는 엮이지 말아 주세요. 얼굴도 마주치지 않는 게 좋겠어요.”조나연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정말 강유형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책임져 줄 남자를 잃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나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러려면 20억 원 정도 줄래요? 그럼 나도 산속에 들어가서 편히 살게요. 그럼 당신이 바라는 대로 될 테니.”내 말에 조나연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며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예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4
Read more

제117화

진정우는 평소 나에게 친절했고, 성실하고 듬직한 성격이라 이소희를 차별하거나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그의 말을 기다렸다가 약속한 20분 뒤 그의 방으로 갔다. 아마 나를 10분 정도 기다리게 한 건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으려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예상대로, 문을 열어 준 그는 머리카락이 아직 젖어 있었고 편안한 옷차림에 호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들어오세요.”방 안에 들어서자 그의 노트북이 켜져 있는 게 보였다.“무슨 문제 생긴 건가요?”“테이블 위에 있는 파일이에요. 열어보세요.”그가 말을 마치자 물이 끓기 시작했다.나는 그의 책상에 놓인 노트북 앞에 앉아 파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바탕화면이 깔끔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문서 파일이 가득해서 놀랐다.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순간 멍해졌다.“파일이 너무 많아서 어떤 건지 모르겠는데요.”“‘YLC’라고 되어 있는 거예요.”그의 말을 따라 찾으려 했지만, 드라마를 너무 오래 본 탓인지 눈이 피로해서인지 그 파일이 보이지 않았다.“없는데요, 정우 씨.”나는 돌아서서 그를 바라봤다.그는 마침 국화차를 우려내고 있었고, 향긋한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제가 찾을게요.”그가 다가오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잠시만 기다려요”라고 말하며 전화를 받았다.그가 통화하는 동안 나는 다시 파일을 찾으려 했지만, 여전히 찾기 어려웠다.“이미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조건 변경은 없습니다. 보상도 필요 없어요... 네, 협상 여지는 없어요.”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쳤다. 너무 빨리 통화를 끝내서 나는 미처 파일을 찾지도 못한 채였다. 그의 모든 파일 이름이 알파벳 약자로 되어 있어서 찾기가 유난히 어려웠다.전화를 끊고 돌아온 그는 우려낸 차를 내 옆에 조용히 놓았다.“여기요.”“감사합니다.”나는 차를 건네받으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의 팔이 내 뒤로 넘어와 반쯤 나를 감싸는 듯한 자세로 화면을 가리켰다.“여기 있네요.”그의 낮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4
Read more

제118화

내가 너무 솔직했나 싶어 순간 민망해졌다. 진정우도 당황했을 것 같았다.그런데 그는 바로 거리를 두는 대신 반쯤 기대어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아, 그래요.”‘그래요?’이렇게 태연하게 나올 줄이야.나는 그를 올려다봤고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파일을 못 찾으신다길래 도와드린 것뿐이에요. 시력이 안 좋아서... 제가 도와주지 않으면 못 찾을 것 같았어요.”그럴듯한 말에 내가 괜히 혼자 오해한 건가 싶어 살짝 머쓱해졌다.진정우는 내 옆 소파에 앉아 태블릿을 들고 뭔가를 작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슬쩍 쳐다보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일에 집중하려 했다.그가 체크해 둔 파일에는 몇 가지 사소한 문제들이 있었지만, 충분히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사실 이렇게 늦은 밤에 부를 정도는 아닌 것 같아, 혹시 일부러 핑계를 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다시 그를 슬쩍 보았지만, 진정우는 태블릿에만 집중한 채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한 걸지도 몰라, 그가 표시해 둔 문제들을 하나씩 처리하고 고개를 들었다.그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진정우는 소파에 반쯤 누운 채 태블릿을 품에 안고 잠들어 있었다.그가 늘 든든하게 일하는 사람이라 잠도 별로 안 자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깊이 잠든 걸 보니 안쓰러웠다. 다 같은 사람인데 얼마나 피곤했을까.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잠든 그의 얼굴은 눈매가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었고 피부는 비록 하얗진 않지만 건강한 피부색이어서 더 남자답게 느껴졌다.높고 오뚝한 콧날은 위에서 비치는 조명에 비쳐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빛나 보였다.오늘 이소희가 지쳐 힘들어하던 걸 떠올리니 진정우는 그보다 훨씬 더 고생했을 게 분명했다. 요 며칠 나와 여기저기 현장을 뛰어다니며 온 힘을 다해 애쓴 걸 옆에서 지켜봐 온 터라, 이렇게 잠들어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쓰였다.그때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불어와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 진정우가 반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4
Read more

제119화

진정우는 내 손을 더 꽉 잡았고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린 뒤 힘을 빼며 내 손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나는 손을 살짝 문지르며 서둘러 옆으로 물러섰다.“정우 씨가 표시해 둔 부분은 다 수정했어요. 지금 확인해 보시겠어요?”하지만 진정우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괜찮아요. 가서 쉬세요.”“아... 그럼 좋은 밤 되세요.”나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바로 그때 진정우가 내 이름을 불렀다.“지원아.”순간 깜짝 놀랐다. 방금 뭐라고 했지? 지원아...나를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부모님뿐이었고 친구인 안리영조차도 이런 식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진정우가 나를 지원아라고 부른 것이다.놀라서 뒤돌아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방금 뭐라고 하셨어요?”“아무것도 아니에요,”그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문 좀 닫아 주시겠어요?”나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진정우의 방에서 나오자마자 숨을 고르며 복도 벽에 잠시 기대었다.시간이 지나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자꾸만 방금 진정우와의 눈 맞춤과 그가 내 손을 잡고 파일을 열어주던 순간이 떠올라서 마음이 복잡해졌다.결국 나는 스스로 머리를 가볍게 치며 정신을 차리고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눕고도 잡생각을 지우려고 휴대폰을 켜 보니 읽지 않은 메시지가 몇 개 와 있었다.먼저 안리영에게서 온 메시지가 보였다.[그 자식은 아직 무사해. 피를 꽤 많이 흘렸어.]그 말에 웃음이 나서 답장을 보냈다.[다음엔 더 세게 때려야지.]안리영은 답이 없었다. 아마 이미 잠들었거나 관리를 받고 있는 중일 것이다.그녀와의 대화창을 닫고 이번엔 신지태에게서 온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전부 강유형과 관련된 얘기였다.메시지 1: [전 남친 머리통을 가격하다니. 멋있는데?]메시지 2: [몰래 말하는 건데, 잘했어.]메시지 3: [예전에 이 정도 배짱이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겠지.]메시지 4: [유형이는 맞아야 정신 차릴 사람이지. 뭔가 충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4
Read more

제120화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여전히 그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진정우가 내 꿈에 두 번째로 등장했다는 사실에 나는 문득 그와 예전에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지난번 꿈에서 나를 업어준 남자 뒷모습에 점이 있었는데, 그 점이 진정우에게도 있었다.그리고 어제, 그가 나를 ‘지원아’라고 불렀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이소희의 말 한마디가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언니, 왜 다시 자러 들어왔어요?”잠이 유난히 많은 이소희가 알람 없이 일어난 거였다.나는 그녀의 의도를 짐작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다시 자러 들어왔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히히.” 이소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언니, 혹시 정우 씨랑...”“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왜 그런 생각만 해요?”“성인 남녀가 다 미혼인데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게 뭐가 이상하죠?”이소희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반박했다.“그렇다고 남자와 여자가 쉽게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잖아요.”이소희는 침대에서 내 쪽으로 이불을 끌어당기며 내게 다가왔다.“언니, 듬직한 정우 씨가 유혹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네?” “그냥, 그렇게 점잖은 남자가 당당하고 멋지게 여자와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요.” 이소희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직접 경험해 보면 되죠.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걸 소희 씨는 볼 수 없잖아요.” 나는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이소희도 나와 함께 일어나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럼 언니가 겪어보고 저한테 이야기해 주세요.”나는 그녀를 다시 한번 흘끗 보며 말했다.“영상이라도 찍어서 보내줄까요?”“좋아요! 좋아요!” 이소희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나는 이소희에게 이불을 던졌고 그녀는 재빠르게 받아서 턱에 대며 말했다.“언니, 어제 정우 씨랑 무슨 일이 있었어요?”그녀가 이렇게 묻자 갑자기 진정우가 내게 다가와서 문서를 찾아주던 장면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4
Read more
PREV
1
...
1011121314
...
31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