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341 - Chapter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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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1화

술이 깬 박한빈이 성유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게 바로 네가 오늘 내 말에 순순히 따른 원인이야?” “...” 성유리는 대답을 못 했다. ‘왜 오늘 이렇게 착해졌나 했다.’ 박한빈은 성유리의 태도에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밥을 같이 먹자고 하면 먹어주고 옷을 갈아입으라 하면 갈아입고 심지어는 따뜻하게 안아주기까지 한 성유리는 결국 연정우를 위해서 박한빈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박한빈은 오늘 있은 모든 일에 기뻐했던 자신이 한심하고 웃겼다. 그는 이빨을 꽉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했던 노력들을 성유리가 드디어 봐줬다고 착각했고 둘 사이에 있던 커다란 “벽”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결과는? 성유리는 오직 연정우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 박한빈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들끓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감정들은 질투와 분노, 그리고 고통이었다. 감정들은 마치 혈관 속을 파고드는 것 같이 빠르게 박한빈의 몸을 지배했고 그는 저도 모르게 화가 나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박한빈은 순간 머릿속에서 연정우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연정우만 없으면 성유리가 자신을 봐줄 것 같았고 성유리의 세상에 연정우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박한빈은 냉큼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덜덜 떨리는 손과 하얘진 머릿속으로 한참을 연락처를 뒤졌지만 원하던 번호를 찾아내지 못했다. 성유리는 박한빈의 이상행동에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놔.” 그때, 박한빈이 차디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성유리가 묻는 말에 박한빈은 더더욱 화가 났다. 박한빈은 성유리가 역시 자신을 잘 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연정우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그녀가 미웠다. 분노는 불길처럼 빠르게 번져 박한빈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지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성유리에게 되물었다. “네 생각에는?” 성유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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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박한빈은 이미 전화를 걸고 있었고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하지만 정작, 전화를 먼저 건 그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박 대표님?” 상대방이 계속 말을 걸어왔지만 박한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쳐다만 봤다. 그녀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박한빈을 보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박한빈이 물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연정우를 죽인다면 나도 죽을 거예요.” 성유리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자 박한빈은 뭐가 웃긴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박한빈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웃으며 박수까지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점점 붉어졌고 혀끝에서는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박한빈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고 성유리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연정우 하나를 위해 네가 죽겠다고?” “네. 맞아요.” “그럼 성리 그룹은? 넌 그게 안중에도 없니? 그리고 병원에 누워 있는...” “박한빈 씨는 사람을 협박할 수 있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죠?” 성유리는 그의 말을 뚝 끊으며 말했다. “난 이미 당신의 뜻대로 당신과 결혼했어요. 그런데도 그걸로는 부족한 건가요? 왜 다른 사람까지 철저히 망가뜨려야 하죠?” “내가 철저히 망가뜨린다고? 연정우가 자신이 한 잘못 때문에 조사받는 게 내 탓이라는 말이야?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네가 죽겠다는 거야? 대체 왜 내가 그 사람을 도와야 하냐고!” “지금 당신이 단지 돕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성유리가 되물었다.“아까 그를 죽이겠다고 말한 건 박한빈 씨가 아니었나요?” 박한빈은 그녀의 말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렸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성유리도 그와 다투기를 포기했다.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고 바닷물은 계속 밀려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하여 잔잔한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하지만 그들 사이의 공기가 얼마나 변했든 이 세상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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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그래서 무슨 방법이든 동원해서라도 그를 도와주겠다는 거야? 심지어 내 심장에 칼을 꽂는 일이라도?” “성유리, 너 정말 독하다.” 박한빈은 말을 끝내더니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친 파도는 여전히 밀려왔다가 나갔지만 넓은 해변 위에는 이제 성유리 혼자만 남아 있었다.그날 밤, 성유리와 박한빈은 서로 등을 돌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는 침대 한쪽에 누군가 더 있는 게 익숙해졌지만 그전에는 둘이 같은 베개를 쓸 때면 잠들기 전 꼭 뭔가를 하거나 아니면 박한빈이 그녀를 품에 안고 잠들 곤 했다. 그러나 그날 밤 기분이 상한 박한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등을 돌린 박한빈의 모습은 마치 그들 사이에 깊은 골이 생긴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성유리 역시 등을 휙 돌렸고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가 버렸다. 아침이 밝았을 때, 성유리가 눈을 떴지만 박한빈은 이미 없었다. 그가 일을 하러 갔는지 아니면 에릭이 말한 파티에 갔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주변 풍경도, 해변도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고 다른 곳도 딱히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하루 종일 호텔에 머물며 영화만 봤다. 방을 나가지도 않고 식사는 모두 호텔 레스토랑에서 방으로 배달시켰다. 어느덧 어둑어둑한 밤이 되었지만 박한빈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성유리는 그들이 말한 파티가 얼마나 순수하지 않을지 대충 예상은 했다. 아마 지금쯤 박한빈의 곁에는 다른 여자가 있을 것이다. 여긴 금성은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탑에 서 있는 남자였으니까. 꿀을 발라놓은 케이크에 화려한 나비들이 몰려들 듯이 박한빈에게 여자들은 끊임없이 달라붙었다. 성유리는 그런 박한빈을 기다리기 포기했고 그냥 휴대폰을 꺼두고 혼자 잠잘 준비를 했다. 혼자서 큰 침대를 차지하는 건 역시 편했고 성유리는 곧 깊은 잠이 들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무언가에 눌리는 듯 답답했고, 몸 아래로 차갑고 간지러운 느낌이 스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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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고통과 분노, 그리고 굴욕과 공포의 감정이 한순간에 몰려왔다. 성유리는 그 충격으로 몸부림조차 할 수 없어 잠시 멈췄지만 몇 초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더욱 거칠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여전히 그녀의 입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지만 성유리는 입을 크게 벌려 그의 손등을 있는 힘껏 물었다. 온몸의 힘을 다해 문 성유리기에 남자의 살이 거의 뜯길 정도였다. 그제야 그 남자는 참지 못하고 고통에 하던 행동을 멈추더니 신음을 냈다. 그 틈을 타 성유리는 무릎으로 그의 복부를 강하게 찼지만 이번에는 남자가 먼저 대비를 하고 있었다.남자는 성유리의 다리를 붙잡아 아래로 눌러 제압한 뒤, 그녀의 입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성유리는 곧바로 크게 비명을 질렀다. “이거 놔요! 살려주세요!” 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이미 풀고 있던 넥타이를 그녀의 입에 밀어 넣었다. 그 남자의 몸에서는 진한 술 냄새가 났지만 그보다 더 익숙한 냄새가 성유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성유리는 그 순간 치가 떨렸고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려 남자를 쳐다봤다.  방 안에 불은 꺼져 있었기에 어둠 속에서 남자의 얼굴을 성유리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넥타이를 성유리의 입에 밀어 넣은 뒤, 다시 그것으로 그녀의 두 눈을 가렸다. 성유리는 더 이상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시야마저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불길한 추측이 자리 잡았고 성유리는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남자의 일방적인 분풀이였다. 그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는 그녀에게 고통을 주었고 그제야 성유리는 깨달았다. 이전까지 그가 그녀를 다루던 방식은 그나마 부드러운 편이었다는 것을. 이제 남자는 그녀를 만족시키려는 마음을 완전히 버렸는지 성유리는 오로지 고통만 느낄 뿐이었다. 일 초는 일 년같이 느껴졌고 결국 성유리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렸다. 얼마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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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성유리는 이미 모든 걸 알게 되었지만 박한빈은 오히려 이렇게 된 것이 잘됐다고 생각했다. 다른 모든 사람은 그의 부드럽고 완벽한 모습만을 보았지만 성유리는 박한빈의 또 다른 면모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아무리 사이가 나쁘다 해도 결국 성유리는 박한빈의 아내이자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와 끝까지 함께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박한빈이 자신의 진짜 “얼굴”을 성유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박한빈은 이런 방식과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알게 될 줄은 몰랐다. 거의 광기에 서려 이성을 잃었던 하룻밤이 지나고 박한빈은 잠에서 깨어났다. 겨우 두 시간밖에 자지 않았지만 정신은 매우 맑았다. 옆에 누워 있는 성유리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눈꺼풀은 퉁퉁 부어있었고 목 아래에는 온통 빨간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어깨에는 박한빈의 치아 자국까지 선명하게 남아있었지만 그는 언제 그렇게 물었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딱히 상관도 없었다. 옷을 입으면서 그는 호텔 프런트에 약을 주문했고 직접 잠 들어있는 성유리에게 발라주려고 했다. 당연히 이 과정이 순조로울 리 없었고 성유리는 약이 몸에 닿자 바로 깨어났고 박한빈이 자기 위에 있는 걸 발견하자 깜짝 놀라 그를 발로 차려고 했다. 그러나 곧 박한빈이 단지 약을 발라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비록 투덜거리며 불만을 표했지만 결국 가만히 있었다. 약을 다 바른 후, 박한빈은 호텔에서 주문한 아침 식사를 성유리의 옆에 놓고는 방을 떠났고 나가기 전 문을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유리의 여권을 박한빈이 이미 가져간 상황이지만 그녀가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젯밤의 일을 겪고 나서 박한빈은 더 이상 예전처럼 조건만으로 그녀를 위협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새로운 협상 카드가 필요해.’ 그리고 그 새로운 카드는 사실 어렵지 않게 준비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준비되어 오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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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박한빈은 옷을 입으면서 이미 알아차렸지만 처음엔 신경 쓰지 않았다. 예전 성유리가 그의 뺨을 자주 때릴 때도 그는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그대로 하고 회사에 나가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에릭의 시선이 닿자 박한빈은 이상하게도 어딘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들은 게 있는데 너희 쪽 여성들은 대개 현모양처에 부드럽고 사랑스럽다며? 그런데 보니까 네 아내는 그런 타입은 아닌 것 같아.” 에릭이 박한빈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너는 왜 성유리 씨와 결혼했어?” 에릭은 마치 성유리에 점점 더 흥미가 생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한빈은 셔츠 깃을 살짝 당기며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SK 쪽 협상은 어떻게 돼 가고 있어?” “상황이 별로 좋지만은 않아.” 박한빈의 딱딱한 말투에도 에릭은 신경 쓰지 않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데이비드 그 노인이 도무지 입을 열지 않으려고 해. 네가 직접 가야 할 것 같아.” 박한빈이 씩 미소를 지었다. “네가 가는 게 더 적합하지 않나? 어차피 그 사람 딸을 너에게 시집보내고 싶어 하잖아.” “내가 미쳤다고 찾아가서 만나겠냐?” “괜찮지 않나? 들으니 그 딸 명의로 된 석유 광산 몇 개가 있다던데 그 여자랑 결혼하면 너도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 아냐.” 에릭은 옅은 미소를 짓더니 박한빈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그 여자 너한테도 관심이 적진 않던데?” “나는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잖아.” 박한빈은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 쪽은 결혼하면 상대만 보는 일편단심이야. 그러니 네가 가는 게 더 적합하지. 그걸 핑계 삼아 그 노인의 입을 막을 수 있잖아.” 에릭의 말에 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에릭에게 고정했다. 하지만 에릭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너도 알잖아. 올해 우리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이번 일에 달렸다는 거. 너는 이쪽으로 이주할 생각도 없으니 데이비드가 고집을 꺾지 않으면 내가 여기서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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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성유리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생활에 꼭 필요한 물과 각종 음식을 발견했다. 그 음식들은 대부분 하루 종일 보관할 수 있는 빵 종류였다.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성유리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문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문은 예상대로 밖에서 잠겨 있었고 성유리는 화가 나서 문을 세게 두드리며 소리쳤다. “당장 문 열어!”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씩씩거리던 성유리는 다시 박한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호텔 프런트에도 전화를 걸어봤지만 프런트에서는 자신들도 문을 열어줄 권한이 없다고 할 뿐이었다. 성유리가 여러 차례 불만을 제기하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그녀에게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성유리는 하루 종일 방에 갇혀 있어야 할 거라 생각했지만 해질 무렵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박한빈이 돌아온 줄 안 성유리는 그를 마냥 반길 마음은 없었기에 손에 재떨이를 들고 그에게 던질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박한빈이 아니었다. 문 앞에는 로버트가 아주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그를 바라보던 성유리는 들고 있던 재떨이를 내려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인가요?” “에릭 선생님의 지시로 부인을 저녁 식사에 모시러 왔습니다.” “박한빈 씨는 어디 있나요?” 성유리는 로버트에게 따지듯 물었다.그러나 로버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성유리는 그가 에릭과 함께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지금은 저녁 식사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고민도 없이 거절하려던 성유리에게 로버트가 말했다. “사모님, 빨리 가시죠. 에릭 선생님께서도 바쁘십니다.” 성유리는 눈을 꼭 감았다 뜨더니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 날씨를 고려해 박한빈이 챙겨준 옷은 대부분 슬립 드레스였는데 지금 그녀의 몸에 남은 흔적들은 슬립 드레스로는 도저히 가릴 수 없었다. 그래서 성유리는 얇은 흰색 시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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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에릭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평온했는데 마치 성유리와 날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성유리는 잠시 그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에릭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웃는 모습을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사실 성유리는 에릭을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었다. 그때 에릭은 좋은 교양과 박한빈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성유리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의 눈빛에는 뚜렷한 오만함과 성유리에 대한 무시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둘이 있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에릭은 이런 태도가 지금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억지로 온화한 표정을 지어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고 에릭의 웃음은 도리어 일그러져있어 어딘가 섬뜩해 보였다. 에릭은 성유리에게 더 많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이 그림 마음에 드는 겁니까? 그럼 제가 성유리 씨에게 선물해 주죠.” “괜찮아요.” 성유리는 에릭의 말에 재빨리 거절하며 대답했다. “저는 잘 모르거든요.” “그러십니까? 근데 여기 이렇게 많은 것들 중에 성유리 씨는 유독 이걸 골랐잖아요. 그래도 보는 눈은 있는 것 같습니다.” 에릭의 말은 칭찬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성유리는 어딘가 불쾌한 느낌만 들었다. 박한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성유리는 더 이상 에릭과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박한빈 씨도 있을 때 같이 밥이나 먹죠.” 말을 끝낸 성유리는 곧장 뒤돌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에릭은 성유리를 굳이 막으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성유리가 입구에 다다르자 문 앞에 서 있던 정장 차림의 체구가 큰 남자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당황한 성유리가 다시 에릭을 향해 돌아서며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그야 당신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려는 거죠.” 에릭은 담담히 대답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저는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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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에릭은 불쾌한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지만 성유리는 결국 자신이 초대한 손님이니 꾹 참고 계속 말했다. “잘 이해가 안 되시나본데 지금 저는 남자대 여자로 이성적인 호감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하하.” 성유리는 에릭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뭐지?’ 그녀의 웃음에 에릭의 미간은 더더욱 찌푸려졌다. “에릭 씨는 저를 좋아하지 않으시잖아요.” “지금 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짜증이 나시는 걸 꾹참고 계시는 거 다 알아요. 그러니까 굳이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성유리는 에릭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쯧. 숨기려 했는데 결국 들켜버렸네요.” “네. 그러니까 원하시는 게 뭔지 저한테 바로 말씀하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에릭은 도도하게 구는 성유리를 오랫동안 말없이 쳐다보더니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역시 로얀이 선택한 여자 아니랄까 봐 재미있네요.” 그는 성유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말 참 잘 꺼냈어요. 저도 바쁜 사람이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죠. 전 성유리 씨와 자고 싶거든요.” 만약 성유리가 입안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면 그대로 뿜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아무것도 없었고 그녀는 에릭의 말에 충격을 받아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시각, 에릭의 시선은 이미 성유리를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결국 성유리가 걸친 얇은 시스루 셔츠 위에 멈췄다. “로얀과 어젯밤 꽤 재미있게 놀았나 보군요. 오늘 아침 그의 몸에 남아있는 자국을 봤어요.” “하지만 전 그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여자란 침대에서 얌전해야 하거든요. 그러니 부탁인데 잠시 후엔 제 몸에 어떤 자국도 남기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아시겠죠?” ‘미친놈인가?’ 성유리는 차마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지 못해 속으로 에릭에게 고함을 질렀다. ‘역시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어.’ 박한빈과 에릭이 저녁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이미 두 사람은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것과 똑같이 미친 사람들이라는 걸 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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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한편 박한빈은 아주 순조롭게 담판을 마쳤다. 그렇지만 데이비드는 아니나 다를까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는 박한빈에게 저녁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며 자신의 딸을 소개해 줬다. 박한빈이 몇 번이나 자신은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라고 말했지만 데이비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딸이 아주 말을 잘 듣는 편이니 이곳에 남아 딸을 아무 때나 보러 와도 괜찮다고까지 했다. 박한빈은 끝까지 데이비드의 말을 믿지도, 듣지도 않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티격태격” 다퉜다. 그가 비행기에 오른 시간은 이미 12시가 지나버린 뒤였기에 박한빈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호텔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두 통의 전화를 걸었지만 박한빈은 회의를 하고 있거나 비행기에 타 있어 미처 받지 못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성유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아주지 않았다. ‘화가 났나?’ 성유리 혼자 호텔에 가둬두고 온 것이 마음이 걸려 박한빈은 그녀가 지금 자신에게 화가 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참 고민하던 박한빈은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케이크 하나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비록 성유리가 지금 화나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약간의 성의는 보여야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한빈은 방 카드로 문을 열었지만 왜인지 방안은 어두컴컴했다. 그러나 이 또한 박한빈이 예상했던 일이었으니 그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케이크를 든 채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밤 날씨는 생각보다 너무 좋아 창문을 통해 달빛이 환하게 비췄다. 그래서 방 안 구조는 한눈에 잘 보였고 박한빈은 순식간에 몸이 얼어붙었는지 움직이지 못했다. 성유리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든 줄 알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박한빈은 행여나 자신이 피곤한 탓에 성유리를 발견하지 못한 줄 알아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성유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성유리가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자 박한빈은 머릿속이 새하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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