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351 - Chapter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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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1화

그 순간, 에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호원들과 다투던 박한빈은 에릭의 목소리에 재빨리 뒤를 돌았다. 하지만 허리띠도 풀려있고 편한 잠옷 차림으로 나온 에릭을 보는 순간, 박한빈의 안색은 아까보다 더 굳었고 떨리는 목소리로 에릭에게 물었다. “성유리는?” “뭐?” “성유리 어디 있냐고 묻잖아!” 박한빈은 화를 못 이겨 에릭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꽉 잡으며 고함을 질렀다. “왜 이렇게 흥분해?” 에릭은 늘 그렇듯 담담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네 아내 잘 있어. 방금 잠 들었는데?” 웃어 보이기까지 하는 에릭을 보자 박한빈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 같았지만 아무 말 없이 별장 위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때, 성유리는 아래에서 들리는 큰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방에서 나왔다. 박한빈은 아무 일 없이 아직 멀쩡한 모습으로 자기 앞에 서 있는 성유리를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성유리에게 다가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다행이네. 유리한테 아무 일도 없어서.’ 성유리가 괜찮다는 확신이 들자 박한빈은 점점 더 이성을 되찾았고 그제야 자신에게 성유리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여기까지 오는 길 내내 박한빈은 이것저것 많은 가능성들을 생각했었다. 만약 에릭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필경 박한빈을 질투하고 라이벌로 삼는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 사람들은 입에도 못 담을 짓들을 숨 쉬듯이 하기에 박한빈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잡생각들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심한 공포와 걱정이 밀려오자 박한빈은 오직 성유리만 안전하면 된다고 빌고 또 빌었고 부디 그녀에게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 시각, 성유리는 박한빈의 품에 꼭 안겨있었기에 그의 체온과 심장박동이 잘 느껴졌다. 저녁 내내 미친 듯이 뛰던 심장과 오르내리던 감정 기복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다. 에릭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어때? 이제는 내가 이긴 판이 확실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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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2화

박한빈은 잔뜩 긴장한 탓에 온몸이 굳어 있었다.결국 성유리가 젖 먹던 힘을 다해 그를 억지로 끌고 나와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박한빈은 에릭을 당장이라도 죽일 듯 때렸을 것이다.물론 성유리는 박한빈의 싸움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에릭 옆에는 수많은 경호원들이 있었기에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무리 지금 박한빈이 밉다 해도 이렇게 황당한 상황에서 그가 목숨을 잃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마침내, 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성유리는 오늘 자신이 방 안에 갇혔던 일을 떠올렸다. 그래서 박한빈의 손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하지만, 순간 박한빈은 성유리의 손목을 꼭 잡더니 욕실로 데리고 갔다. 처음엔 영문을 몰랐던 성유리는 박한빈이 서두르듯 자신의 옷을 벗기려는 행동을 보고서야 상황을 깨달았다. 박한빈의 동작은 평소보다 더 거칠었고 그녀는 문득 에릭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성유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지금 와서 확인한다고요? 너무 늦은 거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박한빈의 손이 잠시 멈췄다. “저 그 사람이랑 잤어요.” 성유리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잤다고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녀의 말에 박한빈은 하던 행동을 갑자기 멈추었다. 그때는 이미 성유리가 입고 있던 치마가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성유리의 말은 박한빈의 모든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다. 오랜 침묵 끝에 박한빈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아팠어?”예상치 못한 박한빈의 질문은 성유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박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미안해.” “여길 데려오지 말아야 했어. 그리고 에릭을 만나게 하지도 말아야 했고 호텔에 혼자 두는 일은 더더욱 아니었어.” 박한빈은 해변에서 있었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그녀에게 고개를 숙일 일은 없으리라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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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화

“내가 말했잖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박한빈은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버렸다. 이번엔 성유리도 아무런 말 없이 조용하게 박한빈의 말을 들어주었다. “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마찬가지야.” 박한빈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어갔다. “걱정 마. 널 괴롭혔던 사람들 내가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거니까.” “그러세요? 근데 에릭 씨는 박한빈 씨 파트너 아닌가요? 그 사람이랑 틀어지면 당신 입장이 곤란해질 텐데요?” 성유리의 말이 끝나자 박한빈은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녀는 드디어 박한빈이 지금 상황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항상 이익이 제1순위였으니까.’ 그렇게 확신한 성유리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한마디 더 하려던 찰나, 박한빈이 입을 열었다. “걔는 이제 내 파트너가 아니야. 예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야.” “그래도 두 사람 서로 이익을 공유하고 있잖아요. 에릭 씨를 적으로 돌리면...” 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여긴 모풍국이야. 금성이 아니라고.” “지화 그룹의 기반은 금성에 있어. 여기의 모든 건... 다 버려도 상관없고.” 성유리는 할 말을 잃었다. 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지금 나를 걱정해 주는 거야?” 성유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 모습만으로도 박한빈은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챈 듯했다. 박한빈은 순간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성유리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오늘 밤 많은 일을 겪은 두 사람이라 박한빈은 지금 기뻐하기엔 어딘가 모순적이라고 생각해 자기 감정을 억눌렀다. “걱정하지 마. 에릭 그 새끼 내가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여기서는 에릭의 영향력이 크니까 네 안전을 위해 내가 사람을 붙여서 먼저 너를 돌려보낼게. 그리고...” “필요 없어요.” 성유리가 그의 말을 뚝 끊었다.박한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뭔가 더 말하려는 순간, 성유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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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성유리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박한빈은 아직도 베란다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말하는 속도가 빨라 성유리는 박한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물론 성유리는 굳이 알아들으려 애쓰기도 싫었다. 그녀는 바로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지고 두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는 오늘 있었던 일들이 필름처럼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에릭이 흥미를 느낀 것은 자신이 아니라 박한빈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이라는 것을 성유리는 잘 알고 있었다. 에릭은 박한빈이 자신과 비슷한 부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건 에릭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박한빈의 선택에 흥미를 느낀 것이었다. 그런 생각은 분명 비정상적이었으나 더 비정상적인 것은 성유리가 그 논리와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사실이 성유리에게 가장 두려운 부분이었다.‘역시... 미친 사람과 오래 지내다 보니 나도 점점 이상해지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박한빈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성유리가 잠에 들었을까 봐 조심조심 움직였다.성유리는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었다. 박한빈이 침대에 올라와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약간 불쾌해진 성유리가 그를 밀어내려는 순간, 박한빈이 갑자기 말했다.“연정우 씨의 일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보라고 지시했어.” 그 말에 성유리는 곧바로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뭘 하려는 거죠?” 그녀의 경계심 어린 태도에 박한빈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무심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그랬잖아. 연정우 씨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그래서 확인해 보라고 한 거야. 그 사람이 정말 억울하다면... 도와줄 수도 있지.” 갑작스러운 박한빈의 태도 변화에 성유리는 오히려 더 의심스러워졌다. 성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박한빈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박한빈은 이미 체념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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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화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한빈은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이대로 끝났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때, 성유리가 갑자기 먼저 말을 꺼냈다. “고마워요.” ‘뭐가 고맙다는 걸까? 연정우를 대신해 고마워하는 걸까?’ 비록 박한빈의 처음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지만 성유리의 입에서 직접 이 말을 들었을 때, 그의 가슴은 묵직한 무언가로 눌리는 듯했다. 박한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성유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다야? 그냥 이렇게 끝낼 거야?” 성유리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박한빈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촉촉했고 달빛이 더욱 밝아지며 성유리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지금 박한빈의 눈에 성유리는 그 어떤 여자보다 더 예뻐 보였다. 박한빈은 말없이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만 보다 천천히 손을 뻗어 성유리의 뺨을 쓰다듬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랑들을 나눴지만 이 단순하고 부드러운 동작 하나에 마치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박한빈의 손끝에서 성유리의 피부로, 그리고 다시 그녀의 피부에서 박한빈의 마음속으로 흐르는 듯했다. 그는 손가락을 살짝 움츠렸고 성유리 역시 어색함을 느끼며 박한빈의 손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움직이기도 전에 박한빈은 고개를 숙여 성유리와 입을 맞췄다. 평소와 달리 박한빈의 키스는 부드러웠다. 입술을 살며시 물고 어루만지듯 말이다. 마치 성유리를 달래듯 그녀의 입술을 탐냈고 손은 여전히 그녀의 뺨에 머물러있었다. 손끝이 무심코 그녀의 귓불을 스치자, 성유리의 팔에 소름이 돋고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그 틈을 타 박한빈의 혀가 성유리의 입술 사이로 쑥 들어갔다. 박한빈은 부드럽게, 그리고 또 천천히 성유리의 허리를 감싸며 키스했다. 그것은 욕망이나 다른 의도가 담긴 키스가 아니었고 그저 사랑으로 충만한 감정에 이끌린 키스였다. 마치 두 사람이 깊은 사랑을 하는 연인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이어진 행위일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박한빈은 천천히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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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6화

그 시각, 박한빈은 에릭과 마주 앉아 있었다. 어제 박한빈에게 주먹을 한 대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에릭은 아무렇지도 않게 박한빈을 보고 웃으며 자신이 들고 있던 시가를 건넸다. “이거 피고 나랑 화해할래?” 박한빈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정말 나랑 연 끊으려고?” 에릭은 여전히 밝게 웃으며 물었다. 박한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에릭에게 대답했다. “내가 담배를 끊어서.” “왜? 너희 와이프 때문인가?” 에릭은 놀란 척하며 계속 물었지만 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에릭은 혀를 끌끌 차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너 참 재미없다. 네가 원래 얼마나 자유롭고 멋있었는지 기억 안 나? 지금은 말 그대로 결혼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여자를 위해 들어간 꼴 아니야?” 에릭은 박한빈을 쳐다보며 비웃듯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봐. 네 와이프가 그렇게 특별한 사람인가? 뭐가 그리 대단해서 너를 이렇게 바보로 만드는 건데?” 그의 눈으로 보기에 성유리는 그저 평범한 미모를 가진 여자일 뿐이었다. 특별히 똑똑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석지도 않았으니 그저 “평범”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정말 바보였다면 차라리 특별한 점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그녀를 더욱 흔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박한빈은 에릭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냐?” “뭔데?” 에릭은 약간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신이 아담을 창조한 뒤 그가 너무 외로워 보였는지 그의 갈비뼈를 하나 떼어내 이브를 만들었지. 그리고 둘은 에덴동산에서 함께 살게 되었어.” 에릭은 박한빈이 왜 이런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꺼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듣고만 있던 에릭의 인내심이 점점 바닥나기 시작했고 말을 끊기 전에 박한빈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성유리는 나의 갈비뼈와 같은 존재지.” 박한빈은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내 몸의 일부고 이 세상에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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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7화

“그래서 말인데 난 너희 쪽 문화가 제일 싫더라.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에 효도니, 예의니 신경 쓸 게 너무 많잖아.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다고.” “그러니까 내가 늘 말했잖아. 여기가 너한테 딱 맞는 곳이라고. 자유롭고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잖아.” 에릭의 말에 박한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 “고맙다. 네 조언은 잘 들었어.” 그 말과 함께 박한빈은 바로 자리를 떠났다. 에릭은 그런 박한빈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 “만약 네 아내가 널 배신하게 되면 언제든 돌아와!” 하지만 박한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걸음을 멈추지도, 에릭의 말을 받아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에릭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성유리 씨, 좋은 소식 기대할게요.] ... 그날 바로 박한빈과 성유리는 예정보다 빨리 비행기를 타고 금성으로 돌아갔다. 박한빈은 원래 일정을 반달 정도 잡아두었지만 계획을 급히 바꿔 귀국했다. 그는 서두르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성유리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러나 국내에 돌아오고 나서야 성유리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김난희는 자신이 보유한 5%의 지분을 박세빈에게 넘겼으며 그가 앞으로 회사에 합류해 박한빈과 함께 지화 그룹을 운영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그들의 업계는 들썩였다. 지화는 업계의 선두 주자로 그룹 내의 사소한 변화도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특히 5%라는 막대한 원시 지분이 걸린 문제라면 더더욱. 박세빈이 박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 지분이 외부인에게 넘어갔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을 것이다. “박세빈이랬나? 이 사람 대단하네. 박성훈 씨가 죽은 지도 꽤 됐는데 이제야 나타나서 이런 판을 벌이는 걸 보니.” “지금까지 참았던 것도 대단하지만 노인을 설득해서 원시 지분까지 넘겨받았다니... 이거 박한빈과 맞붙겠다는 뜻 아니야?” “하지만 지금 와서 싸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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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박한빈은 원래 성유리를 먼저 도연제로 데려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성유리를 회사로 데려갔다. 성유리가 지화 그룹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박한빈이 손을 잡고 당당하게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박한빈의 이런 행동 때문에 회사 안 곳곳에서 직원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박한빈의 권위 때문에 대놓고 보지는 못하고 대부분 은근슬쩍 성유리를 훔쳐보는 정도였다. 성유리는 이런 시선이 불편해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박한빈은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더 세게 손을 잡았다. 대중 앞에서 그와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일 수 없어 결국 성유리는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그의 뒤를 따라 박한빈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박한빈이 김서영에게 시간이 없다고 말한 건 핑계가 아니었다. 며칠간의 출장으로 밀린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끝없는 회의가 이어졌다. 성유리는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피곤한지 사무실 소파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게다가 박한빈이 성유리를 회사까지 억지로 데려온 상황이니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소파에 누웠고 바로로 잠이 들었다. 사실 성유리는 예전에도 회사에서 바쁜 날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붙이곤 했다. 하지만 박한빈의 사무실 소파는 훨씬 편안했고 눈을 감자마자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낯선 공간이 보이자 성유리는 잠깐 어리둥절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여기가 박한빈의 사무실이라는 걸 떠올렸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옆에는 스탠드 조명 하나가 켜져 있었다. 성유리의 몸 위에는 누군가 덮어준 담요가 있었는데 박한빈이 돌아왔다가 다시 나간 것인지,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담요를 덮어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긴 시간 동안 자고 일어나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던 성유리는 소파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먹을 것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이미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각이었지만, 비서실에는 여전히 불이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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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9화

박세빈의 얼굴은 박한빈과 거의 똑같을 정도로 많이 닮아 있었다. 체구는 물론 이목구비마저도. 오늘 그가 입은 흰 셔츠는 깔끔하면서도 단정해 보이는 디자인이었는데 넥타이는 없었고 소매는 팔꿈치까지 접혀 있었으며 손목에는 다소 오래됐는지 가죽 밴드가 다 닳아 있는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박세빈은 언제나처럼 다정다감한 말투로 성유리에게 계속 말했다. “아까 슬쩍 지나가면서 봤는데 확신이 안 서서 인사를 못 드렸네요. 어떻게 혼자 여기 계십니까?” “그냥... 산책 중이에요.” 박세빈과 성유리는 오늘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성유리는 지난번 박한빈의 본가에서 있었던 어색했던 상황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박세빈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성유리의 대답을 듣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저녁은 드셨습니까? 형님은 회사에 돌아간 뒤로 계속 회의 중이라서 형수님을 챙길 시간이 없으셨을 것 같은데요?” 성유리는 저녁을 먼저 먹었다는 거짓말을 하려고 했다. 허나 입을 떼기도 전에, 배에서 먼저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박세빈은 성유리 배에서 나는 그 소리를 들었고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에 성유리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 웃던 박세빈은 금세 정신을 다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저녁을 사 드릴까요? 마침 이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성유리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냥 제가 알아서 간단히 먹으면 돼요.” 말을 마친 성유리는 곧바로 뒤를 돌아 걸음을 옮겼다. 박세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성유리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성유리는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박세빈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에게 머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불편함에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그러나 잠시 후, 성유리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휙 돌아보았을 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성유리는 방금 전 느꼈던 누군가의 시선이 단순한 자신의 착각이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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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0화

박세빈의 반응은 아주 재빨랐다. 박한빈이 다가오는 순간, 그는 성유리를 부축하고 있던 손을 빠르게 떼버렸다. 성유리는 방금 전까지 몸의 무게를 박세빈의 팔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손을 떼자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러나 박한빈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거칠게 성유리의 팔을 붙잡고 단숨에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형, 그런 게 아니라...” 박세빈이 서둘러 박한빈에게 말했다. “방금 전 형수님이 분수 때문에 놀라서 가만히 있기에 옷이 젖을까 봐 제가 잠깐 잡아드린 것뿐이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성유리를 쳐다만 보았다. 박한빈의 표정은 성유리가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험악했다. 심지어 과거 연정우를 마주했을 때조차 이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었다. 성유리는 곧 이 상황의 다른 면을 깨달았다. 눈앞의 사람이 바로 그의 이복동생이자 얼마 전 김난희에게서 5%의 지분을 받아 지화 그룹에 정식으로 합류한 박세빈이라는 사실 말이다. 지금 박한빈이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박한빈은 박세빈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저 한 번 그를 흘겨본 뒤, 성유리를 감싸안고 빠르게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한빈의 걸음은 어찌나 빠른지 성유리는 몇 번이나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분명 그들 주변에는 회사 직원들과 비서들이 함께 있었지만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춘 뒤로는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자, 성유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박한빈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박한빈은 손에 힘을 더 세게 주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성유리에게 물었다. “너 방금 전에 걔랑 무슨 얘기 했어?” 성유리는 박한빈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제가 뭘 얘기했겠어요?”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그렇게 서로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한 거야?” 박한빈은 또다시 떠오른 기억 때문인지 화가 다시 치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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