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361 - Chapter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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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1화

폐쇄된 공간인 엘리베이터에서 성유리의 목소리는 고스란히 박한빈의 귀에 들렸다. 그는 성유리의 말에 입을 꾹 닫아버렸고 그녀는 그 틈을 타 박한빈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박한빈과 한 걸음 떨어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는 아무것도 잡혀있지 않는 자신의 손을 쳐다보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야.” 단순하고 짧은 박한빈의 대답에 성유리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성유리는 당연히 박한빈의 대답을 믿지 않았다. 필경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야말로 진심일 테니까. 박한빈의 눈에 자기는 그저 낚시감일 뿐이라는 사실을 성유리는 잊지 않았다. 이런 일은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니까. 심지어 박한빈은 전에 지석민과 있었던 일들도 꺼내 자신을 모욕한 사람이니 성유리는 이제 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띵! 이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박한빈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뗐다. “먼저 나랑 같이 나가자.” “됐어요. 저 그냥 갈래요.” 성유리는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으며 대답을 이어갔다. “여기 있어도 심심해요. 이럴 바에는 집에 가서 자는 게 더 좋잖아요.” “아직 일이 좀 남아서 그래. 다 하면 같이 가자.” “싫어요. 저...” 성유리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은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바로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박한빈 씨! 당장 저 내려놓으세요.”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층은 지화 그룹의 제일 위층이었다. 박한빈의 사무실을 제외한 총비서실이 있는 층이기도 하다. 박한빈이 성유리를 들쳐 업은 채로 내리자 비서실에 있던 사람들은 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성유리는 그들이 보내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고 순간 저항할 힘도 생기지 않아 그대로 박한빈과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사무실 문이 닫히자 박한빈은 성유리를 소파에 강제적으로 앉히더니 그녀를 자기 몸으로 깔았다. 금방 밥을 먹은 성유리는 위가 무거운 박한빈의 몸에 깔리자 담방이라도 토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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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박한빈은 성유리를 멍해서 쳐다보다가 그녀가 구토를 다 하자 물 한 잔을 따라 건네주었다. 성유리는 물을 건네받으면서도 박한빈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병원 데려다줄까?” 박한빈은 갑자기 구토하는 성유리를 보고 놀랐는지 잔뜩 긴장하며 물었다. 성유리는 물로 입을 헹구고는 평온한 말투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근데...” 성유리는 고개를 들어 박한빈을 째려보며 되물었다. “아까 저를 들쳐 업지 않으셨다면 제가 토할 일도 없었을 거예요. 안 그래요?” 박한빈은 성유리와 같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녀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는 박한빈에게 성유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업무 더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박한빈은 성유리를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말을 마친 성유리가 몸을 일으켜 떠날 채비를 하자 박한빈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오래 안 걸릴 거야.” 성유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은 이미 사무실 책상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녀는 지금 무슨 말을 하더라도 박한빈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려고 마음먹었다. 박한빈은 이메일 두건과 몇 개의 계획안을 검토하고는 사인을 했다. 그중 하나의 서류에 문제가 생겼는지 박한빈은 당장 사람을 불러냈다. 성유리가 아직 기다리고 있기에 마음이 급한 박한빈은 잘못을 낸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잔뜩 화를 냈고 상대는 머리를 숙인 채 고개만 끄덕였다. 박한빈은 계획안을 상대에게 휙 던져버리며 소리를 질렀다. “다시 검토하고 올려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다시 검사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서류를 건네받고 사무실을 빠르게 떠났고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호되게 혼나던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상대는 지화 그룹 프로젝트 부의 총대표이자 인주 프로젝트를 할 때 성유리와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사람이다. 그는 성유리 앞에서 늘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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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박한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디저트 가게 앞을 지나던 중, 갑자기 차를 멈췄다. 성유리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했지만 처음에는 말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케이크를 건네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뗐다. “저 안 먹어요.” “조금만 먹어봐.” “게다가 이거 정말 맛있어 보이지 않아?” 박한빈은 성유리를 어린아이 달래듯 먹어보라고 연신 권했다. 성유리는 정교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케이크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박한빈 씨가 드시면 저도 먹을게요.” 박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성유리는 그런 박한빈을 보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에 대해 아는 것 중 몇 가지는 틀릴 수도 있지만, 입맛만큼은 확신이 잘 알고 있었다. 박한빈이 디저트를 가장 싫어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가 평소에는 심지어 우유조차 잘 마시지 않는 것 또한 성유리는 잘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먹어보라고 말을 했고 그가 절대 먹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케이크를 다시 밀어내려던 찰나, 박한빈이 느닷없이 말했다. “좋아. 네가 먹여주면 나도 먹을게.” 그의 대답에 성유리는 순간 당황했다. 그 틈을 타 박한빈은 케이크를 그녀 손에 쥐여주고는 차에 시동을 걸며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운전 중이라 먹기 불편해서.” 성유리는 그를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 방금 그들의 대화가 초등학생처럼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묘한 복수심이 마음속에서 꿈틀댔다. “좋아요.” 그녀는 박한빈에게 먹여주기로 마음을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박한빈이 산 케이크는 망고 맛의 두 층짜리 케이크로 두툼한 생크림이 얹어져 있었다. 성유리는 포장을 뜯고 식기를 꺼내 큰 한 숟갈을 떠서 신호가 빨간불로 바뀐 틈에 박한빈의 입 앞으로 마구 들이밀었다. “자, 드세요.” 박한빈은 케이크를 내려다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나 질식시키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 살해 시도인가?” “보기에만 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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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성유리가 방금 전의 놀라움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박한빈이 갑자기 키스를 해왔고 순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살짝 열린 입술은 박한빈에게 기회를 주었는지 그의 입안에는 아직 케이크의 달콤한 향이 남아 있었다. 진한 망고 향이 성유리의 입안을 가득 채우자 그 달콤함 때문인지 그녀는 그를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아 가만히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한참 후에야 박한빈이 몸을 돌리고 그녀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왜 가만히 있어?” 박한빈은 아주 가까이에서 성유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깊고 선명한 눈동자 안에 성유리의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성유리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대답했다. “케이크 떨어질까 봐요.” 그녀의 대답에 박한빈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성유리의 손에 여전히 케이크가 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박한빈은 분명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맛은 어때?” 박한빈이 물었다. 성유리는 박한빈의 물음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되물었다. “저 망고 알레르기 있는 거 몰라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한빈의 안색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은 불과 2초 정도였고 박한빈은 곧 다시 정신을 다잡으며 말했다.“거짓말이지?” “뭐라고요?”“너한테 망고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내가 모를 리 없잖아.”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그를 속인 것이 맞았다. 원래는 박한빈의 놀란 얼굴과 미안해하는 모습을 볼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자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이번에는 박한빈이 오히려 성유리의 표정을 쳐다보는 쪽이 되었다. 박한빈은 성유리를 잠시 쳐다보다 웃으며 말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무슨 말이 듣고 싶으신 거죠?” 성유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손으로 그를 밀어냈다. “됐으니까 빨리 운전이나 해요. 저 집에 가서 더 잘 거예요.” 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얼굴만 바라봤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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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허나 지금의 박한빈은 혼자 자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심지어 성유리를 꼭 끌어안고 있어야만 잠들 수 있었다. 때때로 그녀가 한밤중에 박한빈의 팔을 밀쳐내고 침대 반대편으로 이동하면 박한빈은 곧바로 놀라 깨어났고 다시 성유리를 꼭 품에 안아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그날 밤, 박한빈은 한 번도 깨지 않고 단숨에 아침까지 쭉 잤다. 6시간 동안의 숙면은 그에게 충분했고 성유리 역시 여전히 그의 품 안에 있었다. 성유리의 잠든 얼굴은 순진하고 평온해 보였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내려앉고 입술은 꼭 다물고 있었으며 얼굴엔 잔머리 몇 가닥이 붙어 있었다. 박한빈은 손을 들어 다정다감하게 붙어있는 잔머리를 치워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어서 그의 입술은 점점 아래로 향했다. 성유리가 눈을 뜰 때쯤에는 이미 상황을 돌이킬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박한빈의 손은 성유리의 종아리를 잡고 있었고 그녀가 깨어난 것을 알아차린 박한빈은 살짝 웃으며 몸을 숙여 그녀에게 키스하려 했다. 그러나 성유리는 고개를 돌려 피했다. 박한빈은 그녀가 무엇을 꺼리는지 알고 있었기에 가볍게 웃기만 할 뿐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그녀의 귓불에 입을 맞췄다. 두 사람 사이 분위기가 더 무르익는 순간, 갑자기 아래층에서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저택 안의 다른 사람들은 이미 박한빈이 돌려보냈기에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이 있다면 직접 내려가 열어야 했다. 그 말인즉 박한빈 혹은 성유리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초인종은 계속 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한빈의 안색이 즉시 어두워졌지만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못한 듯 성유라를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자 성유리가 못 참고 박한빈을 먼저 밀치며 말했다. “안 일어나요?” 박한빈은 잠시 성유리를 쳐다보다가 마치 재촉하듯 계속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결국 체념한 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가운을 주워 입은 그는 곧바로 문 앞으로 걸어갔다. “누구세요?”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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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박한빈은 본가에서 준비해 준 차에 타기 싫었는지 직접 운전해 본가로 향했다. 물론 성유리도 함께였다. 가는 길 내내 박한빈은 평소보다 기분이 더 좋아 보였고 한 손으로 운전대를, 다른 한 손으로 성유리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성유리는 이미 그런 박한빈을 뿌리칠 힘도 남아있지 않아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차는 달리고 달려 어느덧 본가에 도착했고 그제야 성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박세빈 씨는 이미 지화 그룹에 들어온 상황인가요? 그럼... 박한빈 씨에게 영향 되는 일은 없을까요?” 성유리가 갑자기 이런 물음을 물어볼 줄은 몰랐는지 박한빈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영향이 없다고 말하면 믿을 거야?”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시선을 돌리며 계속 말했다. “할머니께서 소유하고 있는 주식을 개한테 줬다고 해도 아직 걔는 실질적인 권력을 손에 얻지 못했어. 그러니까 지화에 합류했다고 하더라도 큰 파장은 일으키지 못할 거야.” “그렇지만 할머님은...” “응. 만약 정말로 박세빈을 높은 자리에 앉게 한다면 확실히 일이 번거롭게 될 거야. 근데 손주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진즉에 집으로 들이지 않았을까?” 박한빈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결국 할머니 눈에 박세빈도 그저 그런 도구로 보일 뿐이지.” “도구라니요?” 박한빈은 조금 생각하다 대답했다. “나를 고통스럽게 벌을 주기 위한 도구랄까?” 말은 쉽게 내뱉고 있는 박한빈이지만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김난희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섞여 있었다. 박한빈은 박세빈을 눈엣가시나 라이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투명 인간 취급을 하고 있다. 성유리는 어젯밤 그렇게 날뛰던 박한빈이 정말로 박세빈의 외모 때문에 그런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본가에 도착한 박한빈이 먼저 차에서 내렸고 성유리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지금 박세빈은 이미 본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밥상에 앉아 있었고 성유리를 보는 순간 옅은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성유리가 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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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김서영의 말이 끝나자 박한빈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옆에 있는 성유리는 박한빈이 화가 나 이빨을 가는 소리와 선명하게 튀어나온 핏줄들을 다 보고 있었다. 성유리는 박한빈이 두려워하는 것이 박세빈과의 경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박세빈을 돕는 사람이 김서영이라는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유리는 문득 박한빈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손가락만 움직이던 그녀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박한빈은 이내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더니 입을 뗐다. “이미 결정을 내리셨는데 이제 와서 저한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래도 너한테 말은 해야지. 네가 대표잖아.” 김서영의 덤덤한 말투에 박한빈은 또다시 웃었다. “그래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답을 마친 박한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계속 말했다. “말씀 다 끝나셨나요? 이제 저희 가도 됩니까?” “바쁘면 너 먼저 가. 나는 유리한테 할 말이 있어서.” “유리한테 무슨 할 말이 있으십니까?” “우리 둘 사이 일이야. 그냥 몇 마디 간단하게 할 거고. 왜? 걱정되니?” 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없이 입술을 꾹 닫은 채로 성유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성유리도 김서영의 말에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어 보였기에 박한빈은 순간 지기가 너무 무력하다는 생각과 서운하다는 감정이 마구 터졌다. 박한빈은 원래 자신과 맞서려는 사람이 오직 박세빈일 줄 알았지만 김난희는 지금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히고 있었다. 게다가 김서영마저 지금 박세빈 주위를 맴돌려 했기에 박한빈은 성유리마저 그럴까봐 무서웠다. “밖에서 기다릴게.” 결국 박한빈은 잠긴 목소리로 성유리에게 말하고는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서영은 그런 박한빈에게 신경 쓰지도 않으며 고개를 돌려 박세빈을 쳐다보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마디로 하지 않던 박세빈은 어쩔 줄은 몰라 했다. “너도 먼저 회사로 가봐.” 김서영이 박세빈에게 계속 말했다. “전 대표 쪽은 내가 이미 다 말해뒀어. 그분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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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성유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가더니 김서영에게 되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냥 말 그대로지. 설마 한빈이를 떠날 생각이 없어진 거니?” 성유리는 김서영을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이건 저와 그 사람 사이 일이잖아요. 게다가 어머님은 한빈 씨 친모인데 뭐가 어찌 됐든 박한빈 씨 쪽에 서야 하는 거 아닌가요?” 김서영은 그녀의 말에 정곡이 찔렸는지 침묵했다. 성유리는 김서영이 자신의 말을 귀담아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순간, 김서영이 씩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한빈이가 안쓰럽다는 거야?” 성유리는 그녀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함을 느껴 무슨 대답을 하려 했지만 김서영이 먼저 말했다. “유리야, 지금 개한테 흔들리는 거지?” 가벼운 한마디일 뿐이지만 김서영의 말은 마치 총알처럼 정확히 성유리의 심장을 겨눴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서영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팔짱을 낀 채로 창밖의 정원을 바라보다 다시 말했다. “하지만 괜찮아. 이건 너희 둘 일이니 결국 유리 네 선택이지. 만약 지금처럼 같이 생활하고 싶다면 나도 끼어들 생각은 없단다.” “유리야, 한빈이한테 마음이 흔들리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한번 잘 생각해 봐.” “맞다! 그리고 뭐 하나 모르는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건데 말이야. 너 혹시 피임약 자주 먹니?” 그제야 성유리가 김서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달 전, 한빈이가 전에 연락하던 의사한테 물어봤다고 하더라. 피임약이랑 비슷하게 생긴 약 뭐 있냐고. 사람 몸에 무해한 성분인 약이었으면 더 좋겠다는 말도 했어. 그래서 난 생각했지. 과연 유리 네가 지금 먹는 피임약이 진짜 약일까?” 김서영의 의미심장한 말에 성유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한빈이가 너를 위해 그랬다고 생각하지는 마. 걔는 그냥 아이가 갖고 싶었을지도 모르니까.” 김서영은 아주 평온한 말투로 계속 말했다. “왜 그랬냐 묻는다면 아마 아이를 이용해 너를 곁에 남겨두기 위해서였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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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박한빈이 약방에 들어설 때, 마침 성유리가 이 말을 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약방 직원은 박한빈이 들어서자 친절하게 웃으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뭐가 필요하세요?” 박한빈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고 직원은 성유리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아!’ 직원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무언가를 눈치 차린 듯 얼른 임신 테스트기 두 개를 꺼내 성유리에게 건네주었다. 물건을 사는 동안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시선 한번 돌리지 않았고 결제를 하고 나서 박한빈이 다가가 물건을 챙기려 하자 성유리가 그의 손등을 세게 내리쳤다. 짝! 가게를 울리는 큰 소리에 직원들도 깜짝 놀랐는데 성유리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물건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박한빈은 그녀 뒤를 빠르게 따라나섰고 자신의 차에 올라타는 성유리를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시간 동안 박한빈은 속으로 어떻게 말할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몸 상할까 봐 그랬다고 할까? 그렇다면 나는 왜 피임 도구를 안 쓴 거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까? 아니야. 다 알고 있을 거야.’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 때문에 박한빈은 도대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두 사람은 도연제로 가는 길 내내 침묵했고 도착하자마자 성유리는 발 빠르게 차에서 내려버렸다. 박한빈은 성유리와 같이 들어가고 싶었지만 성유리에 의해 밖에 문밖에 갇혔다. 아침까지만 해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가득 밀려있어 독촉 전화가 많이 걸려 왔지만 지금 그는 업무를 해결할 마음 따위 없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일 초가 일 년같이 느껴졌고 박한빈은 자신이 밖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언제 또 이렇게 힘들게 기다렸더라?’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박한빈은 체감상 일 년을 밖에서 기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이때, 화장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결과를 물어보기도 전, 성유리가 그에게 임신 테스트기 하나를 던지듯 건넸다. “계속 피임약 먹었는데 임신했어요. 박 대표님, 왜 이런지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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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성유리의 말을 박한빈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비록 성유리도 지금 자신이 말을 너무 심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뭐가 어떻든 싸울 때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은 제일 잔인한 일이니까. 아무리 지금 원망과 혐오의 감정이 넘쳐난다 해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은가! 게다가 아침에 친모한테 “배신”을 당해 기분이 상한 박한빈에게는 더더욱 그러면 안 됐다. 하지만 성유리는 결국 이성을 잃고 입 밖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었다. “역시. 너한테 그런 말을 했구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박한빈이 말을 했음에도 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박한빈은 갑자기 크게 웃더니 계속 말했다. “그래. 사실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야. 필경 어머니 눈에 나는 그저 괴물일 뿐이니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머니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거야. 과거로 돌아가서 갓 태어난 나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싶을 거고.” “내가 아니었다면 어머니도 박씨 가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 묶여있지 않아도 됐고 자기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아 있을 수 있으니까.” 박한빈의 목소리는 점점 더 무서울 정도로 차가워졌고 김서영에 대한 조롱의 의도 또한 더 강해졌다. 자기 말에도 입술을 오므리기만 할 뿐 대답해 주지 않는 성유리를 보고 박한빈은 이제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 박한빈은 더는 성유리 앞에서 불쌍한 척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사실 박한빈도 일부러 성유리에게 신세 한탄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박한빈은 이내 자기감정을 추스르고는 말을 이어갔다. “네 말이 맞아. 내가 네 약을 바꿨어. 아이를 이용해 너를 내 옆에 묶어두려고.” “네가 걱정하는 문제는 다 불필요한 거야. 우리가 앞으로도 서로 잘 지내면 아이도 모를 거잖아.” 성유리는 박한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아이가 모른다 해서 저도 모르는 건 아니잖아요?” “너도 아이를 가지고 싶은 거 아니었어? 넌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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