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58화

작가: 송진
박한빈은 원래 성유리를 먼저 도연제로 데려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성유리를 회사로 데려갔다.

성유리가 지화 그룹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박한빈이 손을 잡고 당당하게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박한빈의 이런 행동 때문에 회사 안 곳곳에서 직원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박한빈의 권위 때문에 대놓고 보지는 못하고 대부분 은근슬쩍 성유리를 훔쳐보는 정도였다.

성유리는 이런 시선이 불편해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박한빈은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더 세게 손을 잡았다.

대중 앞에서 그와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일 수 없어 결국 성유리는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그의 뒤를 따라 박한빈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박한빈이 김서영에게 시간이 없다고 말한 건 핑계가 아니었다.

며칠간의 출장으로 밀린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끝없는 회의가 이어졌다.

성유리는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피곤한지 사무실 소파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게다가 박한빈이 성유리를 회사까지 억지로 데려온 상황이니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소파에 누웠고 바로로 잠이 들었다.

사실 성유리는 예전에도 회사에서 바쁜 날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붙이곤 했다.

하지만 박한빈의 사무실 소파는 훨씬 편안했고 눈을 감자마자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낯선 공간이 보이자 성유리는 잠깐 어리둥절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여기가 박한빈의 사무실이라는 걸 떠올렸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옆에는 스탠드 조명 하나가 켜져 있었다.

성유리의 몸 위에는 누군가 덮어준 담요가 있었는데 박한빈이 돌아왔다가 다시 나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담요를 덮어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긴 시간 동안 자고 일어나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던 성유리는 소파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먹을 것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이미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각이었지만, 비서실에는 여전히 불이 환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59화

    박세빈의 얼굴은 박한빈과 거의 똑같을 정도로 많이 닮아 있었다. 체구는 물론 이목구비마저도. 오늘 그가 입은 흰 셔츠는 깔끔하면서도 단정해 보이는 디자인이었는데 넥타이는 없었고 소매는 팔꿈치까지 접혀 있었으며 손목에는 다소 오래됐는지 가죽 밴드가 다 닳아 있는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박세빈은 언제나처럼 다정다감한 말투로 성유리에게 계속 말했다. “아까 슬쩍 지나가면서 봤는데 확신이 안 서서 인사를 못 드렸네요. 어떻게 혼자 여기 계십니까?” “그냥... 산책 중이에요.” 박세빈과 성유리는 오늘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성유리는 지난번 박한빈의 본가에서 있었던 어색했던 상황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박세빈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성유리의 대답을 듣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저녁은 드셨습니까? 형님은 회사에 돌아간 뒤로 계속 회의 중이라서 형수님을 챙길 시간이 없으셨을 것 같은데요?” 성유리는 저녁을 먼저 먹었다는 거짓말을 하려고 했다. 허나 입을 떼기도 전에, 배에서 먼저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박세빈은 성유리 배에서 나는 그 소리를 들었고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에 성유리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 웃던 박세빈은 금세 정신을 다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저녁을 사 드릴까요? 마침 이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성유리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냥 제가 알아서 간단히 먹으면 돼요.” 말을 마친 성유리는 곧바로 뒤를 돌아 걸음을 옮겼다. 박세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성유리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성유리는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박세빈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에게 머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불편함에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그러나 잠시 후, 성유리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휙 돌아보았을 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성유리는 방금 전 느꼈던 누군가의 시선이 단순한 자신의 착각이었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60화

    박세빈의 반응은 아주 재빨랐다. 박한빈이 다가오는 순간, 그는 성유리를 부축하고 있던 손을 빠르게 떼버렸다. 성유리는 방금 전까지 몸의 무게를 박세빈의 팔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손을 떼자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러나 박한빈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거칠게 성유리의 팔을 붙잡고 단숨에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형, 그런 게 아니라...” 박세빈이 서둘러 박한빈에게 말했다. “방금 전 형수님이 분수 때문에 놀라서 가만히 있기에 옷이 젖을까 봐 제가 잠깐 잡아드린 것뿐이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성유리를 쳐다만 보았다. 박한빈의 표정은 성유리가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험악했다. 심지어 과거 연정우를 마주했을 때조차 이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었다. 성유리는 곧 이 상황의 다른 면을 깨달았다. 눈앞의 사람이 바로 그의 이복동생이자 얼마 전 김난희에게서 5%의 지분을 받아 지화 그룹에 정식으로 합류한 박세빈이라는 사실 말이다. 지금 박한빈이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박한빈은 박세빈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저 한 번 그를 흘겨본 뒤, 성유리를 감싸안고 빠르게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한빈의 걸음은 어찌나 빠른지 성유리는 몇 번이나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분명 그들 주변에는 회사 직원들과 비서들이 함께 있었지만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춘 뒤로는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자, 성유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박한빈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박한빈은 손에 힘을 더 세게 주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성유리에게 물었다. “너 방금 전에 걔랑 무슨 얘기 했어?” 성유리는 박한빈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제가 뭘 얘기했겠어요?”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그렇게 서로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한 거야?” 박한빈은 또다시 떠오른 기억 때문인지 화가 다시 치밀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61화

    폐쇄된 공간인 엘리베이터에서 성유리의 목소리는 고스란히 박한빈의 귀에 들렸다. 그는 성유리의 말에 입을 꾹 닫아버렸고 그녀는 그 틈을 타 박한빈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박한빈과 한 걸음 떨어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는 아무것도 잡혀있지 않는 자신의 손을 쳐다보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야.” 단순하고 짧은 박한빈의 대답에 성유리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성유리는 당연히 박한빈의 대답을 믿지 않았다. 필경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야말로 진심일 테니까. 박한빈의 눈에 자기는 그저 낚시감일 뿐이라는 사실을 성유리는 잊지 않았다. 이런 일은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니까. 심지어 박한빈은 전에 지석민과 있었던 일들도 꺼내 자신을 모욕한 사람이니 성유리는 이제 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띵! 이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박한빈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뗐다. “먼저 나랑 같이 나가자.” “됐어요. 저 그냥 갈래요.” 성유리는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으며 대답을 이어갔다. “여기 있어도 심심해요. 이럴 바에는 집에 가서 자는 게 더 좋잖아요.” “아직 일이 좀 남아서 그래. 다 하면 같이 가자.” “싫어요. 저...” 성유리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은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바로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박한빈 씨! 당장 저 내려놓으세요.”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층은 지화 그룹의 제일 위층이었다. 박한빈의 사무실을 제외한 총비서실이 있는 층이기도 하다. 박한빈이 성유리를 들쳐 업은 채로 내리자 비서실에 있던 사람들은 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성유리는 그들이 보내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고 순간 저항할 힘도 생기지 않아 그대로 박한빈과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사무실 문이 닫히자 박한빈은 성유리를 소파에 강제적으로 앉히더니 그녀를 자기 몸으로 깔았다. 금방 밥을 먹은 성유리는 위가 무거운 박한빈의 몸에 깔리자 담방이라도 토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62화

    박한빈은 성유리를 멍해서 쳐다보다가 그녀가 구토를 다 하자 물 한 잔을 따라 건네주었다. 성유리는 물을 건네받으면서도 박한빈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병원 데려다줄까?” 박한빈은 갑자기 구토하는 성유리를 보고 놀랐는지 잔뜩 긴장하며 물었다. 성유리는 물로 입을 헹구고는 평온한 말투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근데...” 성유리는 고개를 들어 박한빈을 째려보며 되물었다. “아까 저를 들쳐 업지 않으셨다면 제가 토할 일도 없었을 거예요. 안 그래요?” 박한빈은 성유리와 같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녀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는 박한빈에게 성유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업무 더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박한빈은 성유리를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말을 마친 성유리가 몸을 일으켜 떠날 채비를 하자 박한빈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오래 안 걸릴 거야.” 성유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은 이미 사무실 책상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녀는 지금 무슨 말을 하더라도 박한빈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려고 마음먹었다. 박한빈은 이메일 두건과 몇 개의 계획안을 검토하고는 사인을 했다. 그중 하나의 서류에 문제가 생겼는지 박한빈은 당장 사람을 불러냈다. 성유리가 아직 기다리고 있기에 마음이 급한 박한빈은 잘못을 낸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잔뜩 화를 냈고 상대는 머리를 숙인 채 고개만 끄덕였다. 박한빈은 계획안을 상대에게 휙 던져버리며 소리를 질렀다. “다시 검토하고 올려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다시 검사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서류를 건네받고 사무실을 빠르게 떠났고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호되게 혼나던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상대는 지화 그룹 프로젝트 부의 총대표이자 인주 프로젝트를 할 때 성유리와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사람이다. 그는 성유리 앞에서 늘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기에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63화

    박한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디저트 가게 앞을 지나던 중, 갑자기 차를 멈췄다. 성유리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했지만 처음에는 말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케이크를 건네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뗐다. “저 안 먹어요.” “조금만 먹어봐.” “게다가 이거 정말 맛있어 보이지 않아?” 박한빈은 성유리를 어린아이 달래듯 먹어보라고 연신 권했다. 성유리는 정교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케이크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박한빈 씨가 드시면 저도 먹을게요.” 박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성유리는 그런 박한빈을 보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에 대해 아는 것 중 몇 가지는 틀릴 수도 있지만, 입맛만큼은 확신이 잘 알고 있었다. 박한빈이 디저트를 가장 싫어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가 평소에는 심지어 우유조차 잘 마시지 않는 것 또한 성유리는 잘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먹어보라고 말을 했고 그가 절대 먹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케이크를 다시 밀어내려던 찰나, 박한빈이 느닷없이 말했다. “좋아. 네가 먹여주면 나도 먹을게.” 그의 대답에 성유리는 순간 당황했다. 그 틈을 타 박한빈은 케이크를 그녀 손에 쥐여주고는 차에 시동을 걸며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운전 중이라 먹기 불편해서.” 성유리는 그를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 방금 그들의 대화가 초등학생처럼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묘한 복수심이 마음속에서 꿈틀댔다. “좋아요.” 그녀는 박한빈에게 먹여주기로 마음을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박한빈이 산 케이크는 망고 맛의 두 층짜리 케이크로 두툼한 생크림이 얹어져 있었다. 성유리는 포장을 뜯고 식기를 꺼내 큰 한 숟갈을 떠서 신호가 빨간불로 바뀐 틈에 박한빈의 입 앞으로 마구 들이밀었다. “자, 드세요.” 박한빈은 케이크를 내려다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나 질식시키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 살해 시도인가?” “보기에만 커 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64화

    성유리가 방금 전의 놀라움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박한빈이 갑자기 키스를 해왔고 순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살짝 열린 입술은 박한빈에게 기회를 주었는지 그의 입안에는 아직 케이크의 달콤한 향이 남아 있었다. 진한 망고 향이 성유리의 입안을 가득 채우자 그 달콤함 때문인지 그녀는 그를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아 가만히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한참 후에야 박한빈이 몸을 돌리고 그녀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왜 가만히 있어?” 박한빈은 아주 가까이에서 성유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깊고 선명한 눈동자 안에 성유리의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성유리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대답했다. “케이크 떨어질까 봐요.” 그녀의 대답에 박한빈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성유리의 손에 여전히 케이크가 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박한빈은 분명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맛은 어때?” 박한빈이 물었다. 성유리는 박한빈의 물음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되물었다. “저 망고 알레르기 있는 거 몰라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한빈의 안색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은 불과 2초 정도였고 박한빈은 곧 다시 정신을 다잡으며 말했다.“거짓말이지?” “뭐라고요?”“너한테 망고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내가 모를 리 없잖아.”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그를 속인 것이 맞았다. 원래는 박한빈의 놀란 얼굴과 미안해하는 모습을 볼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자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이번에는 박한빈이 오히려 성유리의 표정을 쳐다보는 쪽이 되었다. 박한빈은 성유리를 잠시 쳐다보다 웃으며 말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무슨 말이 듣고 싶으신 거죠?” 성유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손으로 그를 밀어냈다. “됐으니까 빨리 운전이나 해요. 저 집에 가서 더 잘 거예요.” 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얼굴만 바라봤다. 그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65화

    허나 지금의 박한빈은 혼자 자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심지어 성유리를 꼭 끌어안고 있어야만 잠들 수 있었다. 때때로 그녀가 한밤중에 박한빈의 팔을 밀쳐내고 침대 반대편으로 이동하면 박한빈은 곧바로 놀라 깨어났고 다시 성유리를 꼭 품에 안아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그날 밤, 박한빈은 한 번도 깨지 않고 단숨에 아침까지 쭉 잤다. 6시간 동안의 숙면은 그에게 충분했고 성유리 역시 여전히 그의 품 안에 있었다. 성유리의 잠든 얼굴은 순진하고 평온해 보였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내려앉고 입술은 꼭 다물고 있었으며 얼굴엔 잔머리 몇 가닥이 붙어 있었다. 박한빈은 손을 들어 다정다감하게 붙어있는 잔머리를 치워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어서 그의 입술은 점점 아래로 향했다. 성유리가 눈을 뜰 때쯤에는 이미 상황을 돌이킬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박한빈의 손은 성유리의 종아리를 잡고 있었고 그녀가 깨어난 것을 알아차린 박한빈은 살짝 웃으며 몸을 숙여 그녀에게 키스하려 했다. 그러나 성유리는 고개를 돌려 피했다. 박한빈은 그녀가 무엇을 꺼리는지 알고 있었기에 가볍게 웃기만 할 뿐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그녀의 귓불에 입을 맞췄다. 두 사람 사이 분위기가 더 무르익는 순간, 갑자기 아래층에서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저택 안의 다른 사람들은 이미 박한빈이 돌려보냈기에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이 있다면 직접 내려가 열어야 했다. 그 말인즉 박한빈 혹은 성유리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초인종은 계속 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한빈의 안색이 즉시 어두워졌지만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못한 듯 성유라를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자 성유리가 못 참고 박한빈을 먼저 밀치며 말했다. “안 일어나요?” 박한빈은 잠시 성유리를 쳐다보다가 마치 재촉하듯 계속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결국 체념한 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가운을 주워 입은 그는 곧바로 문 앞으로 걸어갔다. “누구세요?”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낮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66화

    박한빈은 본가에서 준비해 준 차에 타기 싫었는지 직접 운전해 본가로 향했다. 물론 성유리도 함께였다. 가는 길 내내 박한빈은 평소보다 기분이 더 좋아 보였고 한 손으로 운전대를, 다른 한 손으로 성유리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성유리는 이미 그런 박한빈을 뿌리칠 힘도 남아있지 않아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차는 달리고 달려 어느덧 본가에 도착했고 그제야 성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박세빈 씨는 이미 지화 그룹에 들어온 상황인가요? 그럼... 박한빈 씨에게 영향 되는 일은 없을까요?” 성유리가 갑자기 이런 물음을 물어볼 줄은 몰랐는지 박한빈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영향이 없다고 말하면 믿을 거야?”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시선을 돌리며 계속 말했다. “할머니께서 소유하고 있는 주식을 개한테 줬다고 해도 아직 걔는 실질적인 권력을 손에 얻지 못했어. 그러니까 지화에 합류했다고 하더라도 큰 파장은 일으키지 못할 거야.” “그렇지만 할머님은...” “응. 만약 정말로 박세빈을 높은 자리에 앉게 한다면 확실히 일이 번거롭게 될 거야. 근데 손주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진즉에 집으로 들이지 않았을까?” 박한빈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결국 할머니 눈에 박세빈도 그저 그런 도구로 보일 뿐이지.” “도구라니요?” 박한빈은 조금 생각하다 대답했다. “나를 고통스럽게 벌을 주기 위한 도구랄까?” 말은 쉽게 내뱉고 있는 박한빈이지만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김난희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섞여 있었다. 박한빈은 박세빈을 눈엣가시나 라이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투명 인간 취급을 하고 있다. 성유리는 어젯밤 그렇게 날뛰던 박한빈이 정말로 박세빈의 외모 때문에 그런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본가에 도착한 박한빈이 먼저 차에서 내렸고 성유리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지금 박세빈은 이미 본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밥상에 앉아 있었고 성유리를 보는 순간 옅은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성유리가 미처

최신 챕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83화

    성유리는 사람들의 예상보다 도도하지 않았다. 적어도 대화에 있어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던 하나하나 다 성의 있게 대답했다.누군가 다음번에 함께 전시회를 보러 가자거나 음악회를 들으러 가자고 제안하면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며 흔쾌히 응했다.그러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불편해하고 침묵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홍지은이었다.결국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진 그녀는 간단히 양해를 구한 뒤,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세면대 앞에 선 홍지은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에 들고 있던 상자 안의 물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그제야 비로소,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깨닫고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성유리가 왜 자신을 도와 거짓을 꾸며줬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원하는 걸 손에 넣었다.얼마 전까지 신영지와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상대는 여전히 그녀와 성유리의 관계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그래서 남편 측과의 협력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성유리가 어떤 의도로 이 일을 했든 간에 자신이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이제 남은 건, 성유리를 얼마만큼 이용할 수 있는가 뿐이었다.홍지은이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이 아닌 성유리였다.둘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성유리는 약간 놀란 듯했지만 이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그녀의 웃음은 여전히 온화하고 따뜻했다.그러나 홍지은은 순간적으로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리고는 곧바로 물었다.“뭐 하려는 거야?”그 질문에 성유리는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뭐 하려는 거냐고요?”“왜 나를 도와서 저 사람들에게 잘 보이게 해준 거냐고.”“전 도와준 적 없어요.”성유리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그저 지난번 경매장에서... 너무 죄송해서 그랬던 것뿐이에요.”“네가 나한테 미안하다고?”홍지은은 성유리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계속 물었다.“네가 뭐가 미안한데? 지금 박한빈 씨가 온 신경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82화

    “사모님!”누군가의 열정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홍지은은 순간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상대가 점점 가까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상대는 이미 홍지은의 손을 잡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오셨네요! 다들 기다리고 있었어요!”“저를... 왜?”홍지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경직됨이 묻어 있었다.솔직히, 이런 상황이 낯설지는 않았다.예전 학창 시절에도 이런 일을 수없이 봐왔다.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로 ‘친절하게’ 누군가를 특정한 장소로 데려간 뒤, 마음껏 ‘즐기는’ 광경.단지 그때는 자신이 기다리는 입장이었을 뿐 지금처럼 직접 끌려가는 입장은 아니었다.막상 위치가 바뀌니 마음속에 스며드는 건 불안감뿐이었다.사실, 오늘 초대를 받았을 때부터 이미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경매장에서 자신과 성유리에 대한 거짓말이 탄로 난 이후, 며칠 새 단체 채팅방에서도 강제로 쫓겨난 상태였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이건 명백히 수상한 일이었다.하지만 결국 홍지은은 오기로 결정했다.어쨌든 상대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고 자신은 임산부였다. 아무리 그래도 신체적인 위해를 가할 리는 없지 않을까?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홍지은은 이미 룸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 있었다.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자 홍지은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홍지은 씨 오셨어요?”성유리는 이미 소파에 앉아 있었다.몸에는 맞춤 제작된 드레스를 걸치고 있었고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다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성유리는 말하는 내내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홍지은은 한동안 반응하지 못했다.“왜 가만히 서 계세요?”그 모습을 본 성유리는 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리 와서 앉으세요.”그 말을 듣고서야 홍지은은 마침내 정신을 차린 듯 천천히 다가갔다.이미 누군가 그녀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 두었는데 그 자리는 바로 성유리의 옆자리였다.“지난번 경매장에서는 죄송했어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81화

    성유리는 박한빈의 말투와 표정을 보고 문득 이런 느낌이 들었다.마치 지금 자신이 그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시켜도 그는 망설임 없이 실행할 것만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저 홍지은 씨 싫어해요.”성유리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박한빈이 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좋아, 그럼...”“하지만 박한빈 씨가 손대는 건 원하지 않아요.”성유리가 이런 말을 덧붙이자 박한빈은 의아해졌지만 그녀가 이내 말을 이어갔다.“제가 직접 하고 싶어요.”그 말에 박한빈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멍해졌다. 그러자 성유리가 물었다.“안 돼요?”“아니. 그게 아니라... 너 화 안 난 거야?”솔직히 말해, 홍지은이 어떻게 되든 박한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오직 성유리의 감정뿐이었다.방금 전까지는 이 일을 잊고 있던 듯한 성유리였는데 다시 언급되자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그제야 뭔가를 눈치챈 박한빈은 방금 했던 말을 얼른 넘기려고 했지만 성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까 이미 홍지은 씨한테 대답했어요. 그리고... 어차피 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처음부터.”“그리고 다른 일들은 박한빈 씨가 방금 다 설명했잖아요. 게다가 물기까지 했고.”성유리의 말이 끝났지만 박한빈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래서?”“그러니까... 과거의 일들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떠날 생각은 없다는 거죠.”성유리의 명확한 대답이 떨어지자 박한빈은 비로소 한숨을 푹 내쉬었다.꽉 조여 있던 감정이 풀리면서도 성유리를 감싸고 있던 팔에는 오히려 더 힘을 줬다.“숨 막혀요. 좀 놔줘요.”성유리가 숨이 막힌 듯 박한빈을 손으로 밀어냈지만 그는 대답 없이 살짝 힘을 뺄 뿐 여전히 그녀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한참을 더 버둥거리다가 결국 포기한 성유리가 화제를 돌리며 박한빈에게 물었다.“아까 제 말에 아직 대답 안 했잖아요.”“무슨 말?”“홍지은 씨에 관한 일이요. 제가 직접 해결하고 싶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80화

    성유리는 고개를 숙여 박한빈의 손을 쓱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놔요.”박한빈은 그녀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아파요.”그러자 성유리가 다시 말했다.그제야 박한빈의 손아귀 힘이 조금 느슨해졌지만 여전히 성유리를 꼭 붙잡고 있었다.그 순간, 성유리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박한빈은 그 웃음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성유리가 그의 손을 끌어올렸다.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의 팔뚝을 세게 깨물었다.꽤 강한 힘으로 팔뚝을 물고 있는 성유리지만 박한빈은 단 한 번도 아프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오히려 성유리가 좀 더 제대로 물 수 있도록 스스로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그러나 이내 성유리는 박한빈의 팔뚝을 놓아주었다.박한빈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자신의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뚝을 드러냈다.“계속 물어. 네 화가 풀릴 때까지.”그의 말에 성유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물었다.“박한빈 씨는 제가 고작 한번 물었다고 화가 풀릴 것 같아요?”성유리의 대답에 박한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대체 언제 성유정이 한 짓을 알게 됐어요?”“우리가 첫 번째 이혼을 한 다음에.”박한빈이 대답에 성유리는 또다시 피식 웃었다.“그럼 그전까지는... 그때 유산된 게 정말 사고였다고 믿고 있었던 거네요?”박한빈은 침묵했고 성유리도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대신 그의 손을 밀어내려 했지만 오히려 박한빈이 힘을 주어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성유리는 몸을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박한빈은 그럴수록 더욱 힘을 주었다.“그래. 나도 인정해. 난 한심한 놈이었어.”박한빈이 성유리의 귓가에서 낮은 소리로 말을 꺼냈다.“그러니까 네가 날 때리든 욕하든 뭐든 다 받아들일게.”“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내 곁에 있어. 그것만 해준다면... 나머지는 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그의 가슴 위에 얹고 최대한 밀어내려 할 뿐이었다.“그리고 아까 그 사람에 대해서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79화

    성유리의 대답은 홍지은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자신이 기대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기에 그녀는 한순간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하지만 성유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말을 마친 뒤, 곧바로 돌아서서 걸어갔고 박한빈이 곧장 성유리의 뒤를 따라갔다.떠나기 전, 그는 단 한 번도 홍지은을 쳐다보지 않았다.하지만 홍지은은 알았다.그동안 애써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이제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그러나 생각보다 더 아무렇지도 않았다.어차피 시궁창뿐인 인생이 여기서 훨씬 나빠진다고 한들 얼마나 더 나빠질까?그렇다고 혼자만 괴로울 수는 없었다.그러니 죽더라도 반드시 한 사람은 끌어내릴 것이다.성유리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지 홍지은은 아직 모른다.세상 그 누가 행복하게 지낸다 해도 괜찮다.‘성유리는 절대 안 돼.’...성유리는 다시 경매장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곧장 복도 끝까지 걸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그리고 뒤따라오던 박한빈도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지만 옆에 조용히 서서 성유리만 쳐다봤다.엘리베이터의 거울 속에 두 사람의 모습은 또렷이 비치고 있었다.하지만 성유리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아무 말도, 반응도 없었다.박한빈은 그런 그녀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그는 발신자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울리는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그러나 상대는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왔다.연달아 몇 번을 끊었음에도 전화는 계속해서 울렸다.그렇게 주차장까지 도착했을 때, 성유리가 먼저 떠날까 봐 조바심이 난 박한빈은 그녀의 팔을 붙잡고서야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입니까?”날카로운 그의 목소리에 상대방이 순간 움찔하는 기색이었지만 잠시 후 조심스럽게 묻기 시작했다.“박 대표님, 저예요. 왜 말도 없이 먼저 가셨습니까? 저...”박한빈은 상대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행여 핸드폰이 또다시 울릴까 봐 박한빈은 이번에 아예 전원을 꺼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78화

    홍지은의 말에도 박한빈은 여전히 침묵했고 아까보다 더 얼굴을 찌푸렸다.눈빛에 그득히 담겨있는 혐오와 무시의 감정은 선명히 드러났지만 박한빈은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바로 맞은편에 서 있던 홍지은도 당연히 그의 감정을 알아차렸지만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진짜예요. 박 대표님,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 제 남편은...”“꺼져.”단 두 글자뿐인 박한빈의 대답에 홍지은은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사실... 신경 쓰이는 건 박한빈의 대답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이었다.홍지은은 알고 있었다. 만약 지금 자기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처지가 더 난감해진다는 사실을.그러나 박한빈은 홍지은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자리를 떠버렸다.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홍지은은 박한빈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박한빈 씨, 계속 이러신다면... 제가 유리한테 그 일들을 다 알려줘도 제 탓은 하지 마세요.”그녀의 말에 박한빈의 발걸음이 뚝 멈췄고 이내 고개를 돌려 홍지은을 쳐다봤다.그러자 홍지은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제가 아예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나 본데... 그때 유정 씨가 임신했던 아이 말이에요. 박 대표님 아이 맞죠?”그녀의 말에 박한빈은 다시 고개를 휙 돌렸다. 홍지은을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고 냉랭했다.그의 눈빛에 홍지은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내 허리를 꼿꼿하게 펴며 말했다.“지금 유정 씨가 잡혀있긴 하지만 그 일들이 다 끝이 난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때 유리가 잃었던 아이도... 사실 박한빈 씨는 다 알고 있었잖아요. 유정 씨가 그랬다는 걸.”홍지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한빈의 뒤에서 물건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쿵!그 소리에 박한빈이 뒤돌아보자 성유리가 머지않은 곳에 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성유리는 박한빈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은 채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웠다.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그녀의 표정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77화

    그리고 이내 홍지은은 자신의 자리에서 성유리와 박한빈이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금성에서 제일가는 큰 인물은 박한빈은 당연하게도 가장 앞에 있는 좌석에 앉아 있었지만 무대 위에 전시되는 물건엔 흥미가 없어 보였다.홍지은이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을 때, 박한빈도 마침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잠시 멈칫하던 그는 다정하게 성유리 귓가에 얽혀있는 머리카락을 정리해 줬다.그저 연인 사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행동이지만 박한빈은 헝클어진 머리카락들을 일일이 다 풀어줬다.만약 홍지은이 직접 본 게 아니라면 그녀는 꿈에서도 박한빈이 이런 일을 한다고는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너무 놀란 홍지은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박한빈 좀 보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성유리는 퉁명스럽게 그의 손을 밀쳐냈다.그리고는 박한빈을 슬쩍 째려봤지만 그는 화를 내기도 커녕 오히려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귓속말을 했다.꽤 거리가 있던 홍지은과 두 사람이기에 그녀는 박한빈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옆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저기 좀 봐요. 두 사람 사이 너무 좋아 보이지 않아요? 유리가 평소에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게 혹시 박 대표님께서 쟤를 숨겨두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니까요.”홍지은의 옆에 있는 사람은 그녀와 비슷한 나이대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금성에서 거주하는 현지 사람이 아니었고 결혼한 남자도 업계에서 중하층에 속하는 위치였다.전에 그녀는 홍지은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 막상 말을 거니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그렇게 홍지은의 미소와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정 사모님?”상대는 여전히 침묵했지만 이내 정연화는 다른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홍지은은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듣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선명히 들려오는 웃음소리들은 ‘화살’이 되어 홍지은의 가슴 깊숙한 곳을 찌르고 있었고 흐르는 ‘피’조차 그녀에게는 차갑게 느껴졌다.입술을 뻥긋거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76화

    홍지은은 마치 성유리와 떨어질 래야 떨어질 수 없는 절친이라는 듯 능글맞게 대꾸했다.그리고 앞에 서 있던 사람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는 발 빠르게 성유리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한빈은 경매에 참석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성유리는 미소를 지은 채 그의 곁을 지켰다.사실 그녀는 웃고는 있었지만 이미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는 상태였고 상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그래서 홍지은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처음엔 미처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난 네가 안 올 줄 알았어. 예전에는 이런 장소에 오는 거 별로라고 했잖아.”홍지은은 아주 자연스럽게 성유리의 손을 잡으며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잡힌 손을 빼냈다.성유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홍지은은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보며 계속 말했다.“어머? 박 대표님도 오셨어요? 오랜만이네요.”만약 이런 장소에서 다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었다면 아무리 싫어도 박한빈은 몇 마디 대답은 해줬었다.그렇지만 유독 오늘따라 그는 대답하기가 내키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자면 말을 건 상대가 홍지은이라서 싫었다.필경 홍지은을 볼 때면 성유리가 지나간 과거의 일을 다시 떠올리니까 말이다.그게 두려워서일까, 아니면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일까, 박한빈은 성유리가 홍지은을 마주치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그저 오다가다 마주친다고 하더라도.그래서 박한빈은 성유리를 자기 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겼고 홍지은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그녀와 함께 떠나버렸다.박한빈은 홍지은이 자신의 대답을 들을 자격도, 자기가 대답해 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대답을 하지 않은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제자리에 서 있던 홍지은의 반응과 표정이 어떻게 변해가던 박한빈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박 대표님!”이내 다른 사람이 박한빈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자 그는 미소 지으며 상대에게 성유리를 소개해 줬다.“여기는 제 아내 되는 사람입니다. 성유리라고 하고요.”“안녕하세요. 사모님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75화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홍지은은 늘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성유리는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여러 번 말해봤지만 걔는 원래 이런 곳에 나오길 싫어해서요.”오늘도 그녀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괜찮아요. 그래도 한번 얼굴을 비추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마침 경매회도 곧 시작하는데 저도 박 대표 부인의 취향이 궁금하네요.”“그러게 말이에요. 어차피 나는 경쟁 상대가 될 수도 없으니까 미리 유리 씨가 뭘 원하는지 알아두고 포기하는 게 낫겠어요.”홍지은도 사람들을 따라 웃으며 말했다.“유리는 오지 않을 거예요. 전에도 물어봤는데 딱히 관심 가는 물건이 없다고 했거든요.”그녀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 현실은 완전히 뒤집혔다.왜냐하면 그날 경매장에 성유리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올해 금성에서 열리는 첫 대형 경매 행사였다.특히 경매 목록에 포함된 한 세트의 보석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도시 내에서 일정한 신분을 가진 인사들은 전부 참석했다.사실 성유리는 처음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그런데 전날 밤, 박한빈과 게임 내기를 했다가 패배하는 바람에 박한빈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기로 했다.그 조건이 바로 경매장에 함께 가달라는 것이었다.다만, 박한빈도 굳이 오래 있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그냥 얼굴만 비추고 가면 돼. 너 피곤해지면 바로 나가자.”그 말을 듣고 나서야 성유리는 마지못해 동행을 허락했다.성유리가 입장하는 순간, 그녀의 시선은 홍지은에게로 향했다.그녀는 칵테일 잔을 들고 주변 사람들과 해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비록 남편은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자리에서만큼은 홍지은에게 자유를 허용했다.어차피 그의 사업 자원 중 상당수가 홍지은의 인맥과 네트워크 덕분에 얻어진 것이었으니까.오늘 그녀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생기가 넘쳤다.완벽한 메이크업 덕분인지 얼굴에도 빛이 나는 것 같았고 평소보다 더 예뻐 보였다.그런데 이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