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331 - Chapter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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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1화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성유리는 바로 넋이 나간 채로 그의 옆에서 미친 듯이 싸우고 있는 두 여자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성유정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이미 상대방 여자에 의해 뺨을 맞았는지 볼은 시뻘겋게 부어있었다. 자세히 보면 두 여자는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유정이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 여자는 성유정을 정신없이 때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상위에 있던 술병으로 성유정의 머리를 내리치려고 했다. 조영준은 그제야 깜짝 놀랐는지 때리려는 여자를 말리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거 놔요. 지금도 이 여우 같은 년을 보호하겠다 이거예요? 조영준 씨, 누가 당신을 그 자리까지 올려줬는지 잊으셨어요? 제가 아니면 당신은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에 불과하다고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던 여자는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힘껏 던져버렸다. 입구에 서 있던 성유정은 술병이 날아오는 것을 발견하고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지만 그녀 뒤에 있던 사람은 더 빨리 반응을 했다. 누군가가 성유정의 앞을 가로막아 선 채로 손을 쭉 뻗어 그녀를 보호했고 술병은 남자의 팔목에 강하게 부딪힌 다음 쨍그랑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떨어졌다. 큰 소리와 함께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구경하던 사람들도 조용해졌고 박한빈과 눈이 마주친 조영준은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더니 안색이 굳어져 갔다. 성유리의 시선은 난리 통에서도 성유정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성유정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다가 박한빈과 성유리를 발견한 순간 온몸이 경직되었는지 작은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성유정은 상대방 여자에 의해 찢겨나간 옷가지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지도 못했다. 마침, 이때 식당의 직원이 도착했고 얼마 안 걸려 싸움을 벌인 사람들을 떨어뜨려 놓았다. 박한빈은 이 상황에 더 관여하기 싫은지 성유리의 손을 확 잡고는 식당 밖으로 나갔다. 성유리의 머릿속엔 온통 성유정이 자신을 보던 눈빛이 맴돌고 있어 박한빈이 자신을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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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2화

매 사람마다 주의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마치 늘 우울하고 힘이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장면을 목격해 우울함을 잊었다 해도 고작 그 몇 초뿐인 것처럼. 몇 초가 지나면 우울함은 또다시 찾아올 테니 박한빈과 성유리 사이 분위기는 다른 점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박세빈의 등장으로 두 사람은 잠시 적군에서 아군이 되었지만 사실 다른 일들은 평소와 똑같았다. 성유리의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렸고 박한빈은 그녀보다는 감정 기복이 덜했다. 박한빈은 한참을 말없이 운전만 하다 성유리에게서 핸드폰을 다시 가져다 차 안 아무 공간에나 놓았다. “나를 안 믿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성유리는 담담하게 계속 대답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박한빈 씨도 저를 속이실 이유가 없지 않나요?” 성유리의 대답을 들어도 박한빈은 전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유리가 자신을 안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에게 관심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성유정이 어떻게 되든 나랑은 상관없어. 앞으로도 나랑 개 사이를 엮으려 하지 마.” “네. 알겠어요.” 성유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건 워낙 예전부터 잘하셨으니까.” 박한빈은 그녀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라고?” “제 말이 틀렸나요?” 성유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 “늘 박한빈 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매정하게 버렸잖아요.” “전에 성유정에게 항상 인내심 있고 다정하게 대해주셨죠? 소위 말하는 우정 때문인가요? 아니면 걔를 이용해 제 마음을 아프게 한 다음 당신에 대한 제 사랑을 시험해 보고 싶었나요?” “근데 지금 성유정을 상관하지 않으시겠다고요? 하긴 걔는 이제 박한빈 씨에게 아무런 도움이 돼주지 못하니 이렇게 주저하지도 않으시고 내팽개치시겠죠. 아무리 늪에 빠져 허우적대도 동정도 안 해주시고 무시했잖아요. 이런 일 저도 당해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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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화

박한빈을 밀어내려던 성유리는 결국 포기한 듯 조용히 창밖만 쳐다보았다. 빛나는 가로등과 늘어진 건물들의 조명이 더해져 금성의 밤은 유달리 아름다웠다. 그러나 성유리의 눈에는 그 어떠한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박한빈과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고 돌아오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박한빈은 성유리와는 아예 생각이 달랐는지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지만 성유리는 그가 이제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렸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박한빈은 이제 성유리한테 무언가를 강박하거나 위협하지 못한다. ... 성유리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아침이었다. 방 안에는 여전히 혼자 있었지만 이런 일상에 익숙해진 성유리는 간단히 씻고 난 다음 바로 집을 나섰다. 오늘은 성시원이 퇴원하는 날이다. 성리 그룹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졌지만 총대표인 성시원에게는 아직 처리할 일들이 가득 남아있었다. 성유리가 성시원을 대신해 퇴원 절차를 마치고 난 뒤, 병실로 돌아와 보니 성유정이 성시원 곁을 지키고 있었다. 얼굴에 남은 상처를 가리기 위해 화장을 두껍게 한 성유정은 머리까지 풀어 헤쳐 평소의 모습과는 아예 달랐다. 성유정은 병실에서 성시원더러 다른 방면에 투자하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성리 그룹만 절차를 마치면 성씨 가문과는 관계가 없어지지만 성시원은 이런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성유정은 지금 열정적으로 그를 격려해 주며 솟아날 구멍을 찾자고 열변을 토해냈다. 성유리가 병실 안에 들어가자 성유정은 입을 꾹 닫아버리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언니, 제 말이 맞죠?” “지금 이 시대는 자원이 너무 빨리 바뀌잖아요. 그래서 무조건 자원이 들어오는 곳을 꽉 막아야 돼요. 이 프로젝트도 제가 확인했는데 진짜 엄청 괜찮아요. 무열 오빠도 지금 투자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아참! 무열이는?” 성유정의 말에 성시원이 무릎을 ‘탁’ 치며 물었다. “무열이 걔를 본 지도 한참이 지났구나. 내가 입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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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4화

도연제로 돌아간 성유리는 박한빈이 먼저 와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그의 옆에는 이미 열려있는 캐리어가 놓여있었고 조용히 자료들을 넘겨보던 박한빈은 성유리가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박한빈과 두 눈이 마주치자 성유리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그를 무시한 채 지나가려고 했다.그때, 박한빈이 먼저 적막을 깨뜨리며 성유리에게 말을 걸었다.“나 내일 출장 가.”“네.”“모풍국이야. 마지막 일주일이고.”“알겠어요.”성유리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박한빈은 마치 자신의 말에 대충대충 대답해 주는 것 같은 성유리를 발견했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조금 뒤, 박한빈은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나랑 같이 갈래?”그의 물음에 성유리는 당황하는 것도 잠시 바로 거절하려고 했다.박한빈은 성유리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더니 결정을 내렸다.“나랑 같이 가자.”“안 가요.”“너한테는 선택할 수 있는 권력이 없거든.”“왜죠? 설마 저를 납치해 비행기에 태우실 건가요?”“왜냐고? 너는 내 서류상 아내이자 가족이기 때문이야.”박한빈은 보고 있던 자료들을 캐리어에 넣어버리더니 성유리의 옷 몇 벌도 자기 캐리어에 넣기 시작했다.성유리는 박한빈이 무슨 짓을 하든 못 본 체하며 뒤돌아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러자 뒤에서 박한빈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내가 연정우 씨를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마. 요즘 그 사람 이민 준비하고 있더라? 솔직하게 말해줄게. 이미 다른 사람이 연정우 씨에 대해 조사하고 있어.”“마침 타이밍 좋게 이민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 사람들도 연정우 씨를 그렇게 쉽게 보내주지 않을 거야.”박한빈의 말에 성유리가 발걸음을 뚝 멈추더니 뒤돌아 그를 째려보며 물었다.“무슨 말이에요 그게? 전에 더 이상 그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했지 도와주겠다는 말은 안 했는데?”“게다가 난 합법적인 공민이잖아. 누가 나한테 물어보기라도 하면 내가 무슨 대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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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5화

성유리는 크기가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평소에 끼기 불편할 거라 생각해 그 대신 사용할 다른 반지를 준비하려 했다.그러나 성유리는 박한빈과 이혼할 때까지도 그 반지를 건넬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반지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그런데 놀랍게도 박한빈이 지금 성유리의 손가락에 끼워준 반지는 당시 성유리가 골랐던 것과 매우 닮아 있었다. 장밋빛 금색 테두리에는 국화 모양의 은은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성유리는 그 반지를 보며 잠시 멍해졌다.박한빈은 성유리가 다시 정신을 차릴 틈도 주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잡아 억지로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게 했다.“다이아몬드 반지는 내가 따로 샀으니까 결혼식 때 사용할 거야. 평소엔 이걸 끼면 돼.”박한빈은 반지에 대해 설명했다.“사실 혼인신고를 했던 날에 받았어야 했는데 맞춤 제작이라 시간이 좀 걸렸어.”성유리는 사실 이런 걸 물어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박한빈이 하나하나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성유리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 마지막에 짧게 대답했다.“그래요.”박한빈은 원래 성유리가 반지를 거부할까 봐 걱정했지만 그녀가 반지를 빼려는 기색이 없자 안도하며 입가에 미소까지 번졌다.그런데 그 순간, 성유리가 말을 꺼냈다.“아까 한 말 다 진짜에요?”“뭐가?”“연정우 씨에 대해 누군가 조사를 시작했다는 거 말이에요. 그러면 정우 씨는 어떻게 되는 거죠?”성유리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박한빈의 기분이 간신히 좋아지려고 할 때, 그 감정을 단숨에 망쳐놓는 능력이 있었다.허나 성유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숙여 밑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사실 저는 연정우 씨가 그런 일을 했다는 걸 믿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전 그 사람이 단순히 공범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정우 씨 외할아버지나 가족들이 강요했을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그 말을 끝으로 성유리는 조용해졌다.박한빈은 한참이 지나서야 성유리가 자신에게 묻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이내 코웃음을 치며 성유리의 말에 대답했다.“내가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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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6화

박한빈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가는 길 내내 성유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성유리는 이미 이런 그의 태도에 익숙했기 때문에 먼저 말을 붙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둘은 한마디 대화도 없이 모풍국에 도착했다. 장장 1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했지만 그곳은 여전히 낮이었다. 박한빈은 도착하자마자 업무 때문에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끌려 떠났고 성유리는 따로 온 사람의 안내를 받아 호텔로 향했다. 전에 결혼했을 때도 성유리가 박한빈의 출장에 동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보통은 공개적인 행사에 함께 참석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였다. 그때는 대개 국내에서 짧게 하루나 이틀 정도로 끝났으니 낮에는 호텔에서 그를 기다리고 저녁에 그와 함께 행사에 나갔던 기억이 났다. 그렇지만 시간이 훨씬 많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건 시간과 장소뿐이었다. 비행기에서 이미 잠을 잔 성유리는 크게 피곤하지 않았다. 현재 이곳은 모풍국의 유명한 관광 섬으로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보면 넓게 펼쳐진 해변과 바다가 보였다. 성유리는 얼굴에 스치는 바닷바람은 답답했던 기분마저 조금은 풀어주는 듯했다. 그녀는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아 긴 끈 원피스로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해변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녀는 혼자 바닷가를 한 바퀴 돌아 걸은 뒤,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앉아 고민하던 결국 연정우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참 울린 뒤에야 연정우가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유리야?” “지금... 금성에 있어?” 성유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요즘은 잘 지내?” “잘 지내고 있어.” 연정우의 목소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들렸지만 그 점이 성유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박한빈은 확신 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성유리는 잘 안다. 오늘 자신에게 말한 것도 아마 일부일 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실은 무엇일까? 이미 명확한 증거를 손에 넣은 건 아닐까? 그렇다면 연정우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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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7화

성유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밑에 있는 해변에 다녀왔어요.” 하지만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박한빈의 미간이 더욱더 찌푸려졌다. “여긴 국내가 아니야. 너 혼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는 거 몰라?” 성유리는 박한빈의 물음에 마음 같아서는 대꾸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왜 자신을 여기에 데려온 건지, 그리고 계속 방안에 바보처럼 갇혀만 있어야 한다는 말인지 묻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겠어요.”성유리의 반응에 잠시 멍해졌던 박한빈이 금세 정신을 차렸다. “방에 돌아온 이유가 뭐예요?” 성유리가 물었다. 그제야 박한빈은 그녀를 다시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해 줬다.“너랑 같이 누굴 좀 만나러 갈 거야.” “파티인가요?” “아니. 여기 있는 내 친구 만나러.” 박한빈이 말한 그 친구라는 사람이 혹시 그의 투자와 사업에 관련된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성유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얼마 전 그의 서재에서 증거를 찾으려고 했던 성유리에게 박한빈이 지금 자신의 협력자를 소개할 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아예 불가능한 일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유리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순순히 따르며 물었다.“드레스로 갈아입어야 하나요?” 성유리의 태도에 박한빈은 다소 놀란 듯했고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 “알겠어요. 그럼 화장이라도 하고 갈게요.” 그 말을 남기고 성유리는 곧장 화장실로 향하려고 뒤를 돌았다. 그런데 그 순간, 박한빈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보고는 멈칫했다. 성유리의 드레스 뒷부분은 상당히 드러나 있는 디자인이었고 그 때문에 그녀의 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짐을 쌀 때, 박한빈은 옷을 대충 챙겼던 터라 디자인까지 확인하지 않았었다. 그녀의 하얀 등이 그의 시야에 들어오자 박한빈이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잠깐만.” 성유리가 멈춰서 그를 돌아봤다. “드레스는 다른 걸로 갈아입어. 굳이 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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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8화

박한빈이 말한 약속 장소는 해변 주위에 위치한 개인 별장이었다. 두 사람이 탄 차가 정원 안으로 들어서자 성유리는 별장 앞에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경고판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박한빈은 분명히 “외부인”에 속하지 않는 듯했다. 긴 연미복을 입은 남자가 차가 들어서는 것을 보자마자 정중히 다가와 차 문을 직접 열어주었다. “이분은 로버트 씨야. 여기 별장의 집사야.” 박한빈이 성유리에게 남자를 소개하자 성유리는 고개를 살짝 숙여 로버트에게 인사했다. 남자도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성유리를 향해 인사를 건넨 뒤, 앞장서며 두 사람을 안내했다.“박 선생님, 에릭 선생님께서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박한빈은 로버트의 말에 짧은 대답을 했다.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성유리는 별장 내부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으로 꾸며진 공간은 높은 천장과 넓은 면적 덕분에 마치 서양식 궁전을 연상케 했다. 앞쪽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한 남자가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는 전형적인 유럽인의 외모였고 금발에 파란 눈과 흰 피부, 그리고 얇은 입술까지 더해져 한층 이국적으로 보였다. 남자의 손에는 와인 잔이 들려 있었는데 박한빈을 보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빠르게 다가왔다.“로얀, 드디어 왔군.” 박한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악수를 나누고 가볍게 포옹했다. 이후 박한빈은 성유리를 앞에 내세우며 에릭에게 소개했다. “내 아내 성유리야.” 처음에는 박한빈에게만 시선을 두었던 에릭이 그의 말을 듣고는 가볍게 성유리를 한 번 훑어본 뒤,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봐도 그가 성유리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남편의 친구니 예의상 성유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박한빈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마. 원래 사람들한테 좀 무뚝뚝한 편이라.” “네” 성유리가 박한빈의 말에 짧게 대답해 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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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9화

그러나 이어진 대화에서 박한빈의 답변이 들려왔다. “넌 우리와 다르잖아. 우리에겐 결혼과 가족에 대한 집착이 있어.” “그래. 이해 못 하겠네. 하지만 결혼은 감옥이라는 거에 우리 둘 다 이미 동의했던 거 아니야? 네가 결혼 때문에 놓친 재미가 얼마나 많은지 얘기했던 거 기억 안 나? 이제 겨우 자유를 찾았는데 왜 다시 그 감옥으로 돌아간 거야?” 박한빈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에릭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니면 네 아내에게 무슨 특별한 점이라도 있어서 그런 거야? 그런 감옥을 기꺼이 감수할 이유가 있는 거야?” “특별할 거 없어. 그냥 평범한 여자야. 아무것도 특별한 게 없어.” “그런데도 왜 굳이 그녀와 결혼했는데?” “네가 말했잖아. 결혼이 감옥이라면 누구와 해도 똑같아. 다른 사람에게 시간을 낭비하는 게 귀찮아서 아무나 골랐는데 하필 고른 사람이 아내였던 거지.” 그 말을 들은 성유리는 더 이상 들어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원래는 문을 열고 들어가 그를 찾으려 했지만 발걸음을 멈췄다. 뒤에서 도우미가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낀 성유리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무 일 없네요. 그냥 밖에서 기다릴게요.” 그렇게 말한 뒤 성유리는 다시 거실로 돌아와 홍차 한 잔을 더 마셨다. 얼마 후, 박한빈과 에릭이 거실에 돌아왔다. 에릭은 여전히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며 성유리를 힐끗 보았다. 성유리는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특별한 점을 찾으려는 것임을 알았지만 그것이 호기심 때문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에릭은 지금 박한빈이 왜 성유리와 결혼했는지 궁금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등을 곧게 펴고 당당히 그를 바라보았고 에릭은 그런 그녀를 계속 훑었다. 그때 박한빈이 대화를 시작했는데 출장의 협력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였고 두 사람은 곧바로 일 주제로 넘어갔다. 성유리는 그들이 사용하는 전문 용어를 이해할 수 없어서 결국 듣기를 포기했고 테이블 위의 음식을 조용히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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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0화

에릭이 부른 차가 두 사람을 호텔로 데려다주는 중이었다. 하지만 호텔 근처에 도착했을 때, 박한빈이 운전기사에게 차를 멈추라고 지시하더니 성유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잠깐 해변에서 산책할까?” 그는 오늘 밤 술을 꽤 마셨지만 여전히 눈빛은 또렷했다. 옆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본 성유리가 아니었다면 술을 마셨다는 사실조차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박한빈은 성유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의 손을 꽉 잡더니 차에서 내렸다. 밤이 되면서 해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낮에는 맑고 푸르렀던 바다는 지금은 칠흑 같은 하늘과 하나가 되어 끝없이 어두운 구멍처럼 보였고 발밑으로 밀려오는 파도마저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성유리는 이런 바닷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박한빈은 그녀와 달리 기분이 몹시 좋아 보였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계속 앞을 향해 걸어갔다. “내일은 좀 바쁠 것 같아. 내가 가이드 한 명을 붙여 줄게. 너 혼자 주변을 둘러보도록.” “괜찮아요.” 성유리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의 얼굴에 약간의 불쾌함이 스치더니 뚝 멈춰 서서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성유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호텔에서 기다릴게요.” 같은 뜻의 말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돌려 말하자 그의 표정이 금세 풀렸고 박한빈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박한빈은 갑자기 성유리의 손을 더욱 꽉 잡더니 그녀를 자신의 앞으로 확 끌어당겼다. 갑작스러운 거리감에 성유리는 당황하며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박한빈은 이를 눈치채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결국 두 사람은 거의 밀착한 상태가 되었고 성유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박한빈은 그윽한 눈빛으로 성유리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눈빛에 성유리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려 시선을 아래로 피했다. 하지만 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개의치 않고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네?” “마지막에 말했던 거.” “호텔에서 기다리겠다고 한 거요?” “그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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