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도연제. 박한빈은 꽤 늦은 시각이었지만 돌아오지 않았기에 성유리는 그를 상관하지 않고 혼자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얼굴에 선명하게 남은 붉은 자국을 계단으로 비비자 점점 옅게 변했다. 성유리는 원래 박한빈이 집에 돌아와 자신의 얼굴을 보면 뭐라 할 것 같아 내심 걱정했지만 그럴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한 성유리는 오늘 박한빈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해진 성유리는 아무렇지 않았다. 똑같은 넓은 집에 똑같이 홀로 남아 남편을 기다리는 것 말이다. 그러나 성유리가 지금 누운 곳은 작은 방이 아닌 큰방이었다. 아마 이런 큰 변화 때문일까, 성유리는 누운 지 한참이 지났지만 잠에 들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차라리 작은 방에 누워있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작은 방은 성유리가 익숙해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곳은 익숙한 냄새였지만 성유리와 박한빈에 관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었고 전과는 사뭇 달랐다. 익숙하고도 낯선 장소는 마치 천천히 자신을 베는 날카로운 칼처럼 느껴졌고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심한 고통이었다. 성유리는 침대에서 한 시간을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려고 할 무렵, 아래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으려 눈을 더욱 질끈 감았지만 이내 누군가 벨을 누르는 소리를 들었고 성유리는 못 들은 척 무시했다.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은 포기하지도 않고 한번, 또 한 번 눌러댔고 성유리는 그제야 집안에 다른 도우미가 없기에 그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결국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준 성유리는 문 앞에 서 있는 서훈과 박한빈을 발견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주무시는 데 방해했네요.” 서훈은 잔뜩 움츠러들며 말을 이어갔다. “박 대표님께서 너무 취하시는 바람에 모시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유리는 박한빈과 서훈을 번갈아 보다 문 앞에서 비켜주며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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