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321 - Chapter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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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화

그녀의 말에 연정우는 피식 웃었고 성유리는 그가 왜 웃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내가 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려고 했는데 네가 이런 말 하면 어떡해. 만약 그때 그런 복병들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손을 놓지 않았을 거야.” “근데 세상에는 만일이라는 경우가 존재하지 않잖아. 이렇게 서로 미안해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 없어.” 연정우의 말에 성유리도 표정이 풀렸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아무 의미도 없지.”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성유리는 연정우와의 지난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에는 수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맞은편에 서로 마주 앉아보고 있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짐작이 안 갔다. 성유리뿐만 아니라 연정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성유리는 커피를 다 마셨지만 더 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럼 나 먼저 가볼게. 몸 잘 챙겨.”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던 성유리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연정우는 담담히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 성유리는 그렇게 카페를 나와 버렸고 택시를 잡으려는 순간, 핸드폰이 한번 울렸다.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해 발신자를 확인하니 연정우였다. [뭐 하나 물어볼 게 있었는데 얼굴 보고 할 용기가 없네. 전화 걸 용기도 없고.] 성유리는 조용히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며 그의 다음 문자 메시지를 기다렸다. 몇 분 뒤, 한참을 고민하던 연정우가 메시지를 전송했다. [만약 우리가 진짜 결혼을 했다면 네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했을까?] 짧은 한마디에 연정우는 모든 정력을 쏟아부은 것 같았고 성유리는 카페에 앉아 자신의 답장을 기다릴 연정우를 떠올렸다. 성유리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 [응. 그랬을 거야.] 연정우는 별다른 답장을 보내지 않았기에 성유리는 핸드폰을 꺼버리고는 지나가는 택시 한 대를 잡았다. 차에 올라탄 성유리는 도연제가 아닌 어느 한 백화점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과 약속한 시간이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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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날은 빠르게 어두워졌고 박한빈은 도연제에서 하루 종일 머물렀다. 박한빈은 성유리가 그렇게 일찍 나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보낸 문자에 답장조차 하지 않는 성유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오늘 밖에서 자고 올 건가?’ 오늘이 신혼 두 번째 밤인지라 박한빈은 불만이 더 많았고 전화를 걸어 따지려 했지만 집착이 강한 남편처럼 보일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서 박한빈은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 시간만 쳐다보고 있었다. 깊은 새벽이 오기 전, 성유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인기척 소리를 들은 박한빈이 몸을 일으켜 그녀를 맞이하려고 했지만 가만히 있기를 선택했다. 박한빈은 서재의 문을 닫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성유리는 서재 앞을 그냥 지나쳐버렸다. 작은 방 앞에 도착한 성유리는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뒤돌아 큰방으로 향했다. 두 번이나 박한빈이 있는 서재를 지나쳤지만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시선 한번 돌리지 않았다. 그러자 박한빈은 더는 가만히 못 있겠는지 먼저 성유리에게 말을 걸었다. “유리야.” 박한빈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던 성유리는 발걸음을 멈췄고 박한빈은 성유리에게서 어딘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술 마셨어?” “무슨 일 있으세요?” 성유리는 무서울 정도로 평온하게 되물었고 박한빈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다시 입을 뗐다. “연정우 씨랑 술 마시러 갔었어?” “무슨 일 있으시냐고요.” 성유리는 박한빈이 대답이 없자 뒤돌아 가던 길을 가려 했다. 그 순간, 박한빈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뒤에서 성유리를 꽉 끌어안았다. 깜짝 놀란 성유리가 박한빈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술을 마신 탓에 평소보다 맥이 빠져 당해낼 수가 없었다. 결국 또다시 모든 것을 포기한 성유리를 박한빈이 욕실로 데리고 갔다. 성유리가 제자리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와중에 그녀에게 차가운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비록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너무 찬 물줄기에 성유리는 순식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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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욕실 안에서 성유리는 반항할 힘조차 없어졌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려는 성유리의 귀에 박한빈이 살짝 뽀뽀하며 입을 열었다. “연정우 씨랑은 잤었어?” 성유리는 몸을 덜덜 떨며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박한빈은 그녀의 대답 따위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됐어.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박한빈은 성유리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지금 너는 내 사람이잖아.” “이미 결혼했으니 유리 너는 내 아내고 네 마음속에는 나 하나만 있어야 돼. 나만 좋아해야 되는 건 기본이고. 알겠어?” 성유리는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박한빈은 밑으로 허리를 더 숙이는 그녀가 자신에게 순종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입을 가리고 있던 박한빈도 서서히 손을 뗐고 그 순간, 성유리가 박한빈의 손을 힘껏 깨물었다. ... 다친 박한빈과 마찬가지로 성유리의 상태도 좋지만은 않았다. 이미 자기 앞에서 본색을 다 드러낸 박한빈을 본 성유리는 그가 정말 자신을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성유리가 목이 너무 아파 힘들어 할때 박한빈은 아주 다정하게 그녀에게 물을 따라주며 살뜰하게 챙겨줬다. 만약 예전 같았다면 이런 박한빈에게 순응하고 따랐겠지만 성유리는 지금 절대 그러기가 싫었다. 박한빈이 아무리 다양한 “미끼”를 던진다 해도 성유리는 물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한테 상처를 주는 사이가 되었다. 누가 이기는 싸움인지 성유리는 몰랐지만 다시 깨어나 보니 방 안에 혼자 남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유리가 힘든 몸을 이끌고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지만 덜덜 떨리는 다리와 무릎에 난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어젯밤 약을 먹은 성유리는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고 찾기도 귀찮은 성유리는 새 약을 꺼내 바로 삼켜버렸다. 그때, 성유리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는데 박씨 본가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잠시 멈칫하던 성유리는 결국 전화를 받았고 수화기 너머 집사는 오늘 집으로 와 밥을 먹으라는 말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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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성유리는 박세빈이 건네는 인사에도 한동안 멍만 때렸다. 그녀는 “형수님”이라는 호칭에 당황했는지 아니면 박세빈이라는 이름에 당황했는지 자신도 몰랐다. 박세빈, 그는 박한빈의 아버지가 밖에서 낳은 말 그대로 사생아였다. 성유리는 왜 오늘 갑자기 박세빈이 본가에 나타났는지 알 길이 없었고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집 안에서 집사가 빠르게 나오더니 박세빈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둘째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본가에는 왜...” 성유리는 집사의 말에 머리가 더 혼란스러워졌고 왜 이 시간 본가에 박세빈이 모습을 드러냈는지 궁금했다. ‘지화 그룹 내부 상황이 바뀐 건가?’ 성유리가 멍하니 서 있을 때, 집사는 박세빈과 함께 자리를 떠났고 박세빈은 뒤돌아 성유리를 보더니 씩 웃어 보였다. 박세빈의 미소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 사실도 까맣게 잊었다. 한참을 서 있던 성유리는 정신을 다잡아 박한빈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성유리는 박한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박한빈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저 지금 박한빈 씨 본가에 있어요.” 성유리는 자기 말에 박한빈이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릴 줄 알았다. 그래서 성유리는 그가 먼저 통화를 끝내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어르신께서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해서 왔어요. 별일 없으시면 오세요.” “그리고 여기 손님 한 분이 더 오셨네요. 마음 단단히 먹고 오시는 게 좋을 거예요.” 박한빈은 성유리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고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오늘따라 그녀의 말투가 아주 다정하다고 느꼈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성유리의 모습을 보지 못한 박한빈은 하루 종일 예민했던 신경이 차분해졌고 연정우에 대한 생각도 사라졌다. 박한빈은 성유리가 말한 손님의 정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결국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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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박한빈이 거실을 다 둘러봤지만 성유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난희의 뒤에 있는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린 박한빈도 성유리와 마찬가지로 당황했는지 동공이 흔들렸다. 하얀 셔츠에 높은 콧대, 그리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 그 남자의 모습에 넋이 나가 있던 박한빈은 옆에 있는 가사도우미에게 물었다. “유리는요?”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다 묻는 박한빈에게 쏠렸지만 그는 못 본 척했고 심지어는 김난희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아마 화장실 가셨을 겁니다. 곧...” 가사도우미의 말에 채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은 화장실 쪽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성유리도 볼 일을 다 보고 밖으로 나왔고 박한빈과 거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번갈아 보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박한빈은 그런 성유리의 손을 확 잡더니 그녀를 강제적으로 끌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이런 행동에 가족들은 황당해했지만 박한빈은 이미 본가 대문 앞까지 걸어간 상태였다. “박한빈! 너 거기 서.” 뒤에서 들리는 고함에 박한빈은 그제야 발걸음을 뚝 멈췄고 서서히 뒤를 돌아봤다.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두 분 다 계셨군요.” “너 그게 무슨 뜻이냐? 우리는 아까부터 여기 있었어. 한빈이 네가 눈뜬장님이야?” 김난희는 누군가에게 철저히 무시당한 적이 없었기에 박한빈의 행동에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박한빈은 화를 내는 김난희의 말에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뗐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아까 못 볼 것을 보는 바람에 눈이 멀어 미처 보지 못했나 봅니다.” 박한빈이 말한 못 볼 것이라는 물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김난희의 안색은 박한빈의 말 때문에 점점 더 어두워져갔지만 박세빈은 그의 말을 듣지도 못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박세빈은 가만히 있는 박한빈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형.” 해맑게 인사를 건네는 박세빈의 말에도 박한빈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조용히 쳐다만 봤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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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신분이요? 무슨 신분 말씀입니까?” 박한빈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묻자 김난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한빈이 네 생각에는 무슨 신분일 것 같은데?” “음, 박성훈 씨의 사생아 신분 말씀입니까?” 박한빈은 자기 친아버지의 이름을 주저도 없이 입 밖으로 뱉어버렸고 김난희는 화가 치밀어 올라 담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박한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굴며 계속 말했다. “금성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제 부모님들 금슬이 아주 좋다고 생각할 겁니다. 근데 만약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박씨 가문에게는 해가 될까요? 아니면 이득이 될까요?” “하하, 금슬이 좋아? 작년에 있었던 일을 다 잊은 모양이구나.” 김난희는 김서영을 흘깃 째려보며 말했다. 마치 다 김서영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다는 것처럼. 박한빈은 매우 덤덤해 보였고 심지어는 미소까지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두 일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 않습니까? 제 어머니가 작년에 무슨 일을 벌였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결혼생활에서는 스스로의 역할을 잘했었습니다. 근데 박성훈 씨도 이미 세상은 떠난 지 몇 년이 흘렀는데 갑자기 이런 돌덩이가 굴러들어 오면 죽은 사람 얼굴에 먹칠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럼 세빈이는 한평생 저렇게 숨어서 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쟤 엄마처럼 파렴치하고 뻔뻔한 여자가 저지른 일이니 평생 빛을 보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박한빈은 길거리에 흔히 보이는 동물들을 대하듯 평온하고 무감정한 말투로 말했다. 쿵! 김난희가 화를 못 이겨 결국 밥상을 힘껏 내리치더니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박한빈! 세빈이도 결국 네 형제나 마찬가지다. 너한테 형이라고까지 부른 애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 박씨 가문에서 너를 지금까지 그렇게 교육시켰어? 피가 섞인 형제를 함부로 모욕하고 무시하라고 가르쳤냐는 말이다!” 박한빈은 화를 내는 김난희도 두렵지 않은 듯 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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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아까부터 언짢았던 김난희는 성유리의 웃음소리를 듣고는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너는 왜 웃는 거지?” “아니요. 그냥 할머님 대신 제가 다 기뻐서 그랬어요.” 성유리는 말하며 박한빈을 힐끔 쳐다봤는데 그는 마치 성유리가 다른 이유라도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박한빈은 성유리의 대답을 듣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는데 방금 전과는 달리 아주 자연스럽고 솔직한 웃음이었다. 자신의 말에 웃는 박한빈을 성유리는 보는 체도 안 하고 김난희와 계속 말했다. “그래도 이 넓은 집에서 홀로 지내시느라 외롭고 심심하셨을 텐데 이렇게 착한 손주가 들어오면 정말 좋으실 것 같네요.” 성유리의 말이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래도 외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었기에 김난희는 끓어오르던 분노를 꾹 삼켰다. 박한빈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박세빈을 쳐다보다가 문득 그에게 말했다. “뭘 잘 모르나 본데 너는 나한테서 다른 물건을 뺏어갈 자격도 없어.”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놓고 보면 박한빈과 성유리가 지금 함께 박세빈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다. 박세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굳은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김난희는 목소리를 잔뜩 내리깔고는 박한빈의 이름을 불렀다. “박한빈.” “할머니의 뜻은 저도 잘 알겠습니다. 할머니께서 결정한 일이라면 저도 뭐라 할 자격이 없으니까요. 뭘 하시고 싶든지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아무 의견이 없으니까.” 박한빈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저한테서 형 노릇을 하기를 바라지는 마십시오. 쟤를 챙기거나 뭘 가르치라는 말도 하지 마시고요.” “제가 예전에 말했던 거 잊으셨습니까? 쟤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평생 쥐 죽은 듯 조용히 살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 앞에 나타난 이상 제가 무슨 짓을 하던 제 탓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박한빈은 김난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성유리의 손을 잡고는 자리를 떠났다. 밥을 먹던 주방에서 벗어난 두 사람의 뒤로 뭐가 깨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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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성유리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박한빈에게 먼저 말을 건 것을 후회했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도 아닌데 또 나한테 화풀이하네.’ 박한빈의 말에 성유리는 짜증이 나 아예 입을 꾹 닫아버렸다. 그러나 성유리의 태도에 박한빈은 불만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지 그녀에게 따지듯 계속 물었다. “왜 말이 없어?” “어차피 박한빈 씨 집에 있는 일이니까 사실 저랑은 별 상관이 없잖아요.” 이미 박한빈의 본가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까지 와있었지만 박한빈은 성유리의 말에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성유리는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지만 갑자기 멈춘 박한빈의 차 때문에 온몸이 앞으로 쏠렸다. 다행히 좌석 시트는 진짜 가죽으로 만든 푹신한 시트였기에 머리가 부딪쳐도 많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박한빈을 째려보았다. 박한빈도 마침 성유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가 계속 물었다. “우리 집 일이라고? 너는 내 와이프 아니야?” “오.” “오?” 박한빈은 성유리의 짧은 대답에 화가 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밥상에서 자신을 대신해 박세빈을 조롱하고 전화를 걸 때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라는 경고를 해준 성유리가 떠올라 분노를 꾹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 대신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 뭣 같은 놈이 돌아왔으니 지금 엄청 기뻐할 거야.” 박한빈의 말에 성유리는 당황했지만 그는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있는 길은 박씨 본가에 편하게 가기 위해 시내에서부터 만든 길이었기에 박씨 가문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용이었다. 그래서 사실 평일에는 지나다니는 차가 몇 대 없는 데다가 지금 시간도 늦었기에 드넓은 도로에는 박한빈과 성유리가 타 있는 차만 우두커니 멈춰있었다. 박한빈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성유리에게 계속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머니는 계속 본가에 머물러있었어. 할머니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지 몰랐을 리가 없다고.” “어머니는 그런 할머니를 말리지도 않았고 나한테 슬그머니 알려주지도 않았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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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싫어요.” 성유리는 주저도 없이 대답했다. “제가 왜 박한빈 씨 말에 동의해야 하는 거죠?” “봐. 너도 지금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 “만약 정말 자신 있으면 왜 나랑 내기를 못 하겠어? 이길 자신만 있으면 이참에 나한테 요구도 하나 제시할 수 있는데 너한테는 좋은 일 아니야?” 성유리는 다시 한번 거절하려고 했지만 박한빈의 눈을 마주한 순간부터 고민이 됐다. 아마 오늘 밤 본 박한빈의 모습이 예전의 자신과 똑같다고 생각한 탓인지 성유리는 갑자기 김서영이 박한빈에 대한 감정을 알고 싶어졌다. 친 아들이지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박한빈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지만 착하고 순진해 보이는 박세빈 중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궁금했다. 성유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고민하다 박한빈에게 물었다. “만약 박한빈 씨가 이기면 저한테 무슨 요구를 제시하고 싶으신데요?” 박한빈은 성유리의 말에 피식 웃더니 되물었다. “너 자신을 너무 못 믿는 거 아니야?” “됐어요.” 성유리는 또다시 후회했고 시선을 다른 곳에 올리며 계속 말했다. “저는 알고 싶지도 않고 당신과 내기할 생각도 없어요.” 박한빈은 성유리의 대답을 못 들은 사람처럼 핸드폰을 꺼내더니 김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유리는 박한빈의 행동에 자기는 아직 허락하지 않았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박한빈은 그럴 틈도 주지 않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 김서영의 목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저예요.” “응.” “오늘 밤 있었던 일은 서로 상의를 하신 건가요?” 박한빈은 운전대를 잡고 있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 스르르 힘을 풀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지 다시 운전대를 잡더니 입을 열었다. “저한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면 제가 절대 오지 않을 걸 알고 계셨으니 성유리를 이용해 저한테 통보를 한 건가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김서영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리가 혼자 왔었어. 그래서 나도 너희 부부 사이에 연락 한 통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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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박한빈의 전화가 끝나자 차 안에는 순간적인 정적이 흘렀다. 그의 예상대로 이 내기의 승자는 바로 박한빈이었다. 그러나 박한빈은 이 순간, 전혀 기쁘지도 신나지도 않았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그의 예상대로였기 때문일까? 박한빈은 처음 박세빈을 보았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김서영이 이 일을 주도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그녀는 그저 냉담하게 방관하기를 선택했을 뿐이라는 것을. 마치 어릴 적, 박한빈이 다른 아이들과 싸울 때도 김서영은 언제나 저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그들이 헤어지면 그제야 다가와 박한빈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었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물 한 병을 그의 머리 위에 쏟아부으며 묻곤 했다. “이제 좀 진정됐니?” 김서영은 늘 박한빈에게 이렇게 말했다. “싸움은 최악의 방법이야. 가장 무능한 사람만이 그런 거친 방법을 쓴단다.”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말은 박한빈의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이 해주는 것이 맞을지 몰라도 친어머니가 해줄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박한빈은 어릴 때부터 책과 뉴스를 많이 읽었다. 책 속에서 그려진 어머니의 모습은 언제나 온화하고 헌신적이었으니까. 책 속 어머니는 늘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위험이 닥치면 주저 없이 아이 앞을 막아주고 따스하게 곁을 지켜주는 그런 존재였다. 밤에 읽어주는 책 한 권이든 아니면 따뜻하게 끓여준 죽 한 그릇이든 박한빈은 그런 것들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김서영은 오직 박한빈의 성장을 재촉하며 그를 유능한 지화 그룹의 후계자로 키우는 데만 집중했다. 심지어 오늘 박한빈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집으로 들이는 일조차도 그를 위해서라고 말한 김서영이지 않은가? 아까 그녀가 한 말을 박한빈은 아마 평생 기억할 것이다.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함이라던 말. 마치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김서영이 박한빈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줄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김서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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