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301 - Chapter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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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1화

그 말인즉슨 그들이 담판을 짓기 전부터 사실 박한빈은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번 기회를 빌어 성리그룹의 모든 것을 다 삼켜버리고만 싶었다. 모든 일은 성유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박한빈은 성유리가 자신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성유리는 그런 박한빈의 결정에 아주 침착하고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필경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박한빈은 항상 이런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유리는 가끔 박한빈이 자신의 앞에서 온순한 양이 되어 항상 져주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서 성유리는 전에 자기 마음대로 박한빈을 대하고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성유리는 이제 서야 박한빈의 모든 “가면”을 벗겨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괴이했고 이상했지만 웃기게도 성유리는 아직 박한빈의 이런 태도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다. 허나 고통을 호소할 정도로의 아픔은 아니었고 그저 피부가 살짝 날카로운 칼에 긁힌 것 같은 정도였다. 깊은 상처는 아니지만 갓 치유가 된 상처 부위를 또다시 긁혔기에 이런 고통은 새로 생긴 상처보다 더 아프고 쓰렸다. 상처가 깊지 않은 탓에 피는 곧 멈췄기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도 의미가 없다. “정말 그렇다고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요.” 성유리가 입을 뗐다. “지금 성리 그룹의 상황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어요. 남들처럼 파산신청이나 할 수 있어도 정말 불행 중 다행이고요.” 평온한 말투로 말을 하는 성유리는 본인조차도 자기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성시원은 성유리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는 성유리의 말에 평소처럼 화를 내지도 못했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천장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몸 잘 챙기세요.” 성유리는 조용히 그를 쳐다보다 짧은 인사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성시원이 갑자기 성유리에게 말했다. “사실 방법이 하나 더 남아있어.” 앞으로 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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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성유리는 자기가 어떻게 병원을 빠져나왔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이미 금성은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무더운 한 여름이었지만 성유리는 전혀 덥지도 않았고 따뜻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밖에 한참을 서 있던 성유리는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 이빨을 꽉 깨물고 버텼다. 택시는 빠른 속도도 달려 도연제에 도착했다. 눈앞에 있는 익숙하고도 낯선 곳에 성유리는 방금 전 성시원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유일한 기회이자 방법이야.] 성시원은 박한빈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방법과 증거를 찾고 싶었고 그 증거로 박한빈을 끌어내리려 했다. 하지만 성유리의 생각은 성시원과 달랐다. 박한빈이라는 사람을 잘 아는 성유리는 그가 행여 다른 사람들에 의해 끌려 내려오더라도 언젠간 꼭 다시 올라와 두 배로 갚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유리는 박한빈과 비슷한 사람을 대할 때면 꼭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고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초원에서 만난 두 마리의 맹렬한 맹수는 싸울 때 서로 할퀴고 뜯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서로한테 제일 치명적인 상을 입혀야 승리를 거머쥐는 잔인한 현실에 성유리는 정신을 다잡았다. 차에서 내린 성유리는 이곳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기에 아주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성유리는 이내 박한빈의 서재를 찾았고 아침에 그가 했던 말들 떠올렸다. [오늘 바빠서 못 돌아갈 거야.] 비록 자신이 찾는 서류가 서재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성유리에게 있어서 지금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성유리는 굳게 잠긴 문에 몇 번이나 비밀번호를 입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박한빈의 생일이나 그의 핸드폰 비밀번호, 게다가 성유리 본인의 생일까지 입력해 봤지만 여전히 틀린 비밀번호였다. 성유리는 머릿속 깊은 곳에 있던 기억까지 끄집어내 절대 불가능할 것 같던 숫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띠릭! 그 순간,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성유리가 마지막에 입력한 숫자들은 바로 박한빈과 성유리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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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인지 불안한 성유리는 박한빈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 박한빈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던 성유리가 입을 떼기 전, 박한빈은 시원하게 비밀번호와 인증코드를 알려주었다. 그는 성유리기에 컴퓨터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도 묻지도 않았다. 성유리는 예상치 못한 박한빈의 태도에 알겠다는 짧은 대답을 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는 빠르게 박한빈이 알려준 비밀번호를 입력했고 컴퓨터 화면이 열리자 배경 화면이 두 사람의 결혼식 사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당황한 성유리는 멍해졌다가 이내 박한빈과 고명도 사이의 일을 알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이제 와서 이러는 박한빈이 한심하고 웃겼다. 그래서 성유리는 증거들을 찾기 전에 먼저 박한빈의 컴퓨터 배경 화면을 바꿔버렸다. 제일 간단하고 기본 설정인 배경 화면으로 바꾸자 성유리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지만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그 문제는 바로 박한빈이 하나하나 잠가버린 모든 자료와 파일들이었다. 컴퓨터를 쓰겠다고 말했지만 파일들 비밀번호까지 알려달라면 들켜버릴 것이 뻔했다. 성유리는 혼자서 이것저것 입력해 봤지만 다 틀리자 아예 포기해 버렸다. 사무실 책상에서 발견하지 못했으니 뒤에 있는 책장에는 있을 리가 없었다. 성유리는 서재를 다 찾았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어 결국 포기하려고 마음먹었다. 그 시각,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박한빈은 여전히 도연제에 돌아오지 않았고 성유리는 입맛이 없어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서재에서 나온 성유리는 자연스럽게 복도 끝자락에 있는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이 굳게 잠겨있긴 하지만 성유리는 방안 구조와 인테리어를 다 훤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성유리는 결국 그 방안으로 발을 들이지 않았고 문 앞에서 서성이다 아래로 내려갔다. 소파에 누워 눈을 감은 성유리는 박한빈이 언제 들어왔는지도 몰랐다. 서서히 감았던 눈을 뜨자 성유리는 제일 먼저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꼈고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정신을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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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집안에는 적막만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박한빈은 성유리를 보지도 않으며 누군가에게 저녁을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고개를 휙 돌려 성유리를 바라보며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뭐 먹고 싶어?” 성유리는 묻는 박한빈의 말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거나 다 돼요. 될 수록이면 간이 덜 된 음식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말없이 앉아 있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성유리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어딘가로 향하려 했고 박한빈은 뒤돌아있는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뭐 찾으려는 물건이라도 있으면 직접 나한테 말해. 내가 알려줄 테니까.”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성유리는 박한빈이 아까 CCTV 얘기를 꺼낼 때부터 마음속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단도직입적인 박한빈의 말에 당황했는지 그녀는 발걸음을 뚝 멈추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에 너무 힘을 준 탓에 손톱은 손바닥에 박혀버린 듯 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성유리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한 뒤, 뒤를 돌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박한빈 씨와 고명도 씨 사이에 있던 타협이나 거래에 대한 증거겠죠?” 그녀의 당당한 대답에 박한빈은 또 너털웃음을 짓더니 물었다. “응? 그건 왜 찾는 거야?” “박한빈 씨 생각에는 왜 찾는 거 같은데요?” 성유리의 되묻는 말에 박한빈은 입을 꾹 닫아버렸고 미소 또한 천천히 사라졌다. 고개를 숙인 박한빈의 팔에는 핏줄들이 선명하게 나타났고 성유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만 봤다. 그러다가 박한빈은 갑자기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기침을 연신 해댔고 성유리는 그가 한참 동안 말이 없자 대화를 나눌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성유리는 주저하지도 않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고 샤워를 했다. 그녀가 욕실에서 나올 때, 박한빈이 저녁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마침 집에 도착했었다. 입맛이 없던 성유리는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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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네.” “근데 네가 나를 믿지 않는다 해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어. 그 증거들은 네가 스스로 찾을 수가 없을 테니까.” “그렇죠.” 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그래도 박한빈 씨가 편하게 살지는 못하게 할 것 같아요.” 말을 마친 성유리는 입을 닦은 휴지를 상위에 내려놓더니 옆에 있던 물 한 잔을 그의 얼굴에 뿌렸다. 물방울들은 박한빈의 얼굴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고 속눈썹마저 젖어버렸다. 박한빈은 물을 맞고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고 환한 조명 아래에 있는 탓인지 안색은 창백해 보였다. 그러나 성유리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던 말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갔다. 순간, 박한빈은 성유리의 팔을 확 낚아채더니 그녀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혀버렸다. “이렇게?” 박한빈은 성유리를 보며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게 네가 말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인가? 이건 너무 소아과 수준 아니야?” 성유리는 가만히 박한빈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그녀의 얼굴을 꽉 잡더니 바로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유리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박한빈의 어깨에 손까지 올렸다. 평소와 다른 성유리의 행동에 당황한 박한빈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자신을 조롱하고 있는 성유리의 눈빛을 발견했다. 성유리의 눈빛은 마치 박한빈에게 네가 하는 행동도 유치하다는 말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허나 이런 방법이 아니라면 박한빈에게 또 무슨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가까이 붙어있는 두 사람이지만 박한빈은 마음속이 공허할 따름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쿡쿡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상처가 난 부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박한빈은 그저 끝없이 성유리에게 키스를 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야만 공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원이야,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보지 마.” 박한빈은 애원하듯 성유리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더니 그의 어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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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성유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박한빈은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어디에 있던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성유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욕실로 향했다. 이제 더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성유리는 이제야 박한빈이 예전부터 다른 투자자들과 다 얘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성유리가 손에 쥐고 있던 작디작은 지분까지 뺏겼지만 그녀는 저항할 자격도 없었다. 허나 성시원에게는 성유리보다 많은 발언권이 있다. 박한빈이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을 막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시간은 끌 수 있었다. 만약 그 시간들을 충분히 이용해 박한빈과 고명도 사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면 두 사람에게는 솟아날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성유리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다 세우며 병원으로 향했지만 뜻밖의 인물과 마주쳐버렸다. ‘박한빈 씨?’ 그녀를 발견한 박한빈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먼저 건네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성 대표님도 계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오셨군요. 그럼 저희 이 자리에서 바로 얘기 나눕시다.” 박한빈은 냉정하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게 바로 성리 그룹의 현재 금전 흐름 상황입니다. 오늘 아침까지 통계한 결과 이미...” 어젯밤 침대에서의 화면들이 떠오른 성유리는 지금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성리 그룹의 미래 계획을 말하고 있는 박한빈이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아주 냉철하고 침착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박한빈의 모습에 성유리는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성유리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성시원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동의하신 거예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성시원이지만 성유리는 그의 창백한 안색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사실 성유리도 지금 성리 그룹의 상황으로 놓고 말하면 누군가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 않다면 회사의 재무 상황이 공개될 것이니 회사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게 뻔했다. 법원까지 가 회사를 매매로 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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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성유리는 능청맞게 말하는 박한빈을 보기도 싫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박한빈은 그런 성유리를 보고 옅은 미소를 짓더니 바로 병실 밖을 나갔다. “저게 무슨 말이냐? 지금 두 사람 같이 살고 있어?” 성시원은 박한빈이 나가자마자 성유리를 보며 따지듯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정우랑은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성유리는 성시원의 물음에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래 오늘 저는  성리 그룹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이미 그럴 필요 없겠네요. 저는 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잠깐만! 아까 내가 한 물음에 대답부터 해줘야지. 정말 같이 사는 거야? 그래서 이 모든 게 다 둘이 짜고 한 판이다 이거야? 어쩐지 시간을 넉넉하게 주겠다고 한 사람이 왜 갑자기 이렇게 빠르게 찾아와서 결판을 짓는지 궁금했는데... 다 네가 한 짓이었구나.” “됐어요.” 성유리는 피로에 잔뜩 찌든 목소리에 입을 열었다. “뭐라고?” “이미 다 알고 계세요. 박 대표님은.” 성유리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갔다. “애초에 처음부터 끝까지 저희는 그냥 그 사람의 손아귀에 잡힌 사냥감일 뿐이었다고요.” “아예 다른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평 공정하게 싸울 수 있겠어요?” 성유리의 평온한 목소리는 마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사람 같았다. 성시원은 성유리의 말에 입만 뻥끗거리다 결국 연정우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럼 연정우는? 이미 무산된 결혼 아니냐? 그 사람 일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런 정 없고 매정한 인간은 우리 성씨 가문과 절대 어떠한 관련도 없어!” 성유리는 화를 내며 말하는 성시원의 앞에서 효녀가 되고 싶지 않아 아무 말 없이 뒤돌아 떠났다. “성유리!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데 어디가? 당장 돌아와!” 뒤에서 들리는 성시원의 고함에도 성유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걷는 와중에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병원 앞에 몰려있던 기자들은 이미 다 떠났는지 조용했기에 성유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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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박한빈의 말을 끝으로 차 안에는 적막만 흘렀다. 성유리는 그가 내민 서류를 손에 꼭 쥐고 있었는데 너무 힘을 쓴 탓에 손가락에 피가 안 통해 혈색이 없었다. 박한빈은 그런 성유리의 옆에 가만히 앉아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만약 성유리가 전처럼 화를 못 이겨 자신을 힘껏 깨문다 해도 박한빈은 아마 속으로 좋아할 것이다. 오랜 시간 함께 한 두 사람이라 그런지 성유리도 박한빈의 속내를 알아차렸고 이미 미쳐버린 사람과 상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박한빈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성유리는 애를 써서 자기감정을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만약 거절한다면요?” “음, 그럼 할 수 없지. 성리 그룹이 점점 더 망가져 가는 꼴을 두고 봐야 하는 방법밖에는 없을 거야. 연정우 씨에 관한 일도 나는 더 이상 모른 척하지 않을 거고.” 평온하게 대답하는 박한빈이었지만 마음이 급한 탓인지 말은 점점 더 빨라졌다. 성유리는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커다란 회사를 거머쥐고 있는 대단한 대표가 아니라 그냥 날강도 같아 보였다. ‘정말 뻔뻔한 사람! 어쩜 사람이 이래?’ 비록 성유리가 입 밖으로 박한빈을 욕하는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는 무언가 눈치 차린 듯 먼저 말을 이어갔다. “지금 속으로 나를 욕하고 있는 거 알아. 그래도 아무런 소용은 없어. 어차피 넌 이제 연정우 그 사람이랑 다시 만나지는 못할 테니까. 툭 털어놓고 말할게, 잘 들어. 앞으로 네가 어떤 남자를 만나든 나는 절대 그 남자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평생 너는 어차피 나랑 얽히게 될 거야.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나랑 결혼하지 그래?” 박한빈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성유리에게 말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그녀는 지금 자기 옆에 물 한 잔도 없다는 사실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만약 물이 있다면 당장 박한빈의 얼굴에 뿌려버렸을 성유리지만 물이 없으니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란 성유리는 이런 일을 종종 봐왔었지만 결국 본인이라는 “턱”을 넘지 못해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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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담담하게 사인을 하던 성유리는 마지막에 화를 못 이기고 종이를 연필로 찢었다. 허나 그녀는 찢어진 종이를 신경도 안 쓰고 서류를 박한빈에게 던지듯 건넸다. 그리고는 박한빈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옆으로 몸을 돌리더니 차에서 내리려 했다. “어디로 갈 건데? 데려다줄게.” 순간, 박한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맞다! 이미 계약서에 사인까지 마쳤으니까 내일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자. 아침에 데리러 가도 되지?” 성유리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거절하지 않았고 그대로 차 문을 닫아버렸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차 안에는 또다시 적막이 찾아왔고 박한빈은 운전대를 잡은 채로 성유리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 그녀가 던진 서류를 손에 쥐었다. 일부로 두 개의 서류를 준비한 박한빈은 성유리가 두 장 다 사인을 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잊은 탓인지 아니면 보기도 싫어 두고 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유리가 가져가야 하는 서류는 박한빈의 손에 들려있었다. 박한빈은 뭐가 어떻게 됐든 성유리가 사인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서류를 잘 넣어두고 박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고 시간도 너무 늦지 않았기에 김난희와 김서영도 깨어있었다. 저번 일이 발생한 뒤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얼음 빙판을 걷는 듯 차가웠고 김나희는 김서영이 박씨 가문의 체면을 다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서영은 이미 김난희의 생각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고 두 사람은 같은 집 안에 있지만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레 집에 돌아온 박한빈을 발견한 두 사람은 깜짝 놀랐고 김난희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밥상 위에 툭 내려놓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집에 돌아올 줄은 아나 보지? 내가 너한테 전화를 몇 통이나 걸었는지 알아?” “죄송합니다. 요즘 너무 바빠서 새벽밖에 시간이 없었습니다. 혹시 새벽에 다시 전화를 걸면 할머니 주무시는데 방해될까 봐 하지 않았고요.”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박한빈을 보던 김난희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지만 혼자 뭐라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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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김난희는 너무 화가 나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박한빈은 감정이 없어 보일 정도로 덤덤했고 차까지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 “할머니, 저도 이젠 다 큰 어른입니다. 제 평생 삶이 걸린 문제는 이제 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네 일? 네 놈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경고하는데 네 성이 박 씨인 이상 내 손자고 내 말에 따라야 해!” “잊었나 본데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건 다 내가 너한테 준 거야. 허튼수작 부리면 내가 다...” 김난희는 노발대발 화를 내며 말하다 문득 멈췄다. 박한빈은 그런 김난희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다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물었다. “다 뭐요? 밖에 있는 그 애들 말씀이십니까? 숨기실 필요 없습니다. 전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그의 말에 김난희는 김서영을 매섭게 노려보았고 김서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박한빈은 두 사람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상관하지 않았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할머니, 걱정 마십시오. 사실 저도 그냥 한 명의 존재만 알 뿐입니다.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이름이 뭔지 모르거니와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지금 공개된 박씨 가문 유일한 상속자는 저 하나잖습니까. 만약 할머니께서도 그 사람을 손자라고 생각한다면 잘 숨어 있으라고 전해주십시오. 정말 내 앞에 나타난다면 그 사람이 박씨 가문의 모든 것에 적응하지 못해 가문의 멸망을 초래할 것 같은데... 할머니 마음이 아프시지 않겠습니까?” 박한빈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짙은 어둠 속에서 이빨을 숨기고 있는 맹수처럼 보였고 김난희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화를 내던 김난희는 천천히 진정하다 떨리는 손으로 박한빈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박한빈! 너 지금 누구 앞에서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 김난희는 김서영에게 시선을 돌리며 그녀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역시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너 같은 애한테서 무슨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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