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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작가: 송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23 19:01:02
“네.”

“근데 네가 나를 믿지 않는다 해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어. 그 증거들은 네가 스스로 찾을 수가 없을 테니까.”

“그렇죠.”

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그래도 박한빈 씨가 편하게 살지는 못하게 할 것 같아요.”

말을 마친 성유리는 입을 닦은 휴지를 상위에 내려놓더니 옆에 있던 물 한 잔을 그의 얼굴에 뿌렸다.

물방울들은 박한빈의 얼굴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고 속눈썹마저 젖어버렸다.

박한빈은 물을 맞고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고 환한 조명 아래에 있는 탓인지 안색은 창백해 보였다.

그러나 성유리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던 말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갔다.

순간, 박한빈은 성유리의 팔을 확 낚아채더니 그녀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혀버렸다.

“이렇게?”

박한빈은 성유리를 보며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게 네가 말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인가? 이건 너무 소아과 수준 아니야?”

성유리는 가만히 박한빈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그녀의 얼굴을 꽉 잡더니 바로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유리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박한빈의 어깨에 손까지 올렸다.

평소와 다른 성유리의 행동에 당황한 박한빈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자신을 조롱하고 있는 성유리의 눈빛을 발견했다.

성유리의 눈빛은 마치 박한빈에게 네가 하는 행동도 유치하다는 말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허나 이런 방법이 아니라면 박한빈에게 또 무슨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가까이 붙어있는 두 사람이지만 박한빈은 마음속이 공허할 따름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쿡쿡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상처가 난 부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박한빈은 그저 끝없이 성유리에게 키스를 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야만 공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원이야,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보지 마.”

박한빈은 애원하듯 성유리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더니 그의 어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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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유리는 자신이 어떻게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건지도 기억을 못 했다. 몇 시간 동안 깊은 잠에 빠진 성유리는 비몽사몽인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의 몸에 닿는 느낌을 받았다. 서서히 눈을 뜬 성유리는 자기 옆에 누워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깨어난 것을 발견한 박한빈은 바로 성유리의 종아리를 잡더니 힘껏 그녀를 깔았다. 성유리는 화가 나 손을 뻗어 박한빈의 얼굴이라도 할퀴고 싶었지만 그는 어느새 그녀의 두 손을 다 잡아 자신의 가슴팍에 올려놓았다. 박한빈의 힘을 당할 수 없었던 성유리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했고 그는 순순히 따르는 그녀에 더 흥분했다. 가만히 있는 자신을 잡고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며 사랑을 나누고 있던 박한빈이 방심하는 틈을 타 성유리는 그의 배를 강하게 차버렸다. “저 숨 좀 쉬게 놔두면 안 돼요?” 진심이 담긴 자신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박한빈을 본 성유리는 그가 정말 정신병자라고 생각했다. 성유리는 옆으로 돌아 박한빈을 애써 무시하며 자려고 했지만 박한빈은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가 저항하면 할수록 더욱 강하게 안던 박한빈은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 할게.” “근데 네가 이렇게 계속 움직이면 난 안 한다는 보장은 못 해.” 박한빈의 말이 성유리에게 먹혔는지 그녀는 가만히 누워 눈을 감았다. 시간이 오래 흐르도록 잠에 들지 못한 박한빈은 지금 자기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사람은 아주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어나면 또 나를 그런 눈으로 보겠지.’ 박한빈이 아무리 애를 쓰며 관심을 받고 싶어 해도 성유리는 눈길 한번 돌려주지 않았고 분노와 원망의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또 좋아지겠지.’ 박한빈의 강압 아래 다시 혼인을 한 두 사람이니 그는 성유리가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고 품에 있는 그녀를 더욱 꽉 안았다. 성유리는 잠에 들었지만 매우 불편한지 미간을 찌푸렸고 박한빈은 서서히 힘을 풀었다. 박한빈은 잠이 든 성유리의 뒤에서 낮은 목소리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17화

    성유리는 물이 마시고 싶은 것도 꾹 참고 뒤척거리며 잠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목이 너무 말라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혼자만의 싸움을 벌이던 성유리는 결국 아래 주방으로 내려가 물을 마시기를 선택했다. 조명이 다 꺼진 집은 어두컴컴했고 성유리는 복도 등만 켠 채로 주방에서 물을 따랐다. 물컵에 물이 가득 채워지는 순간, 성유리의 뒤에서 누군가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한 잔만 따라줘.”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성유리는 컵을 떨어뜨렸고 놀란 박한빈은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 보호했다. 하지만 성유리는 그의 손을 뿌리쳤고 박한빈은 멋쩍은 듯 주방으로 걸어가더니 다시 물을 따라 성유리에게 먼저 건넸다. 성유리는 그가 내민 물컵을 무시하고는 다시 혼자 따랐고 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묵묵히 쳐다만 보다가 표정이 굳어갔다. 갈증을 해소한 성유리가 다시 방으로 돌아가 자려고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 순간, 박한빈이 그녀의 팔을 확 낚아채듯 잡았다. 성유리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박한빈은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른 쪽 손까지 잡더니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녀는 강한 박한빈의 힘에 못 이겨 벽에 딱 붙은 채로 화를 내며 물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뭐 하려는 것 같은데?” 박한빈은 씩 웃으며 되물었다. “유리야, 오늘 우리 신혼 첫날밤인데?” ‘첫날밤?’ 성유리가 생각에 잠기는 찰나, 박한빈은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했다.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돌아온 박한빈의 입에서는 아직 강한 술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는 마치 맹렬한 짐승처럼 성유리의 입술을 탐했다. 성유리는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박한빈을 밀어내려 했지만 그는 더욱 강하게, 더욱 진하게 키스했다. 그녀의 두 손은 여전히 박한빈에 의해 꽉 잡혀있었기에 저항조차 할 수 없었고 박한빈은 성유리의 잠옷 안으로 천천히 손을 넣었다. 성유리가 입고 있던 잠옷은 박한빈이 방 안에 준비해 둔 실크 잠옷이었다. 단추를 하나하나 다 잠근 성유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16화

    늦은 밤, 도연제. 박한빈은 꽤 늦은 시각이었지만 돌아오지 않았기에 성유리는 그를 상관하지 않고 혼자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얼굴에 선명하게 남은 붉은 자국을 계단으로 비비자 점점 옅게 변했다. 성유리는 원래 박한빈이 집에 돌아와 자신의 얼굴을 보면 뭐라 할 것 같아 내심 걱정했지만 그럴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한 성유리는 오늘 박한빈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해진 성유리는 아무렇지 않았다. 똑같은 넓은 집에 똑같이 홀로 남아 남편을 기다리는 것 말이다. 그러나 성유리가 지금 누운 곳은 작은 방이 아닌 큰방이었다. 아마 이런 큰 변화 때문일까, 성유리는 누운 지 한참이 지났지만 잠에 들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차라리 작은 방에 누워있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작은 방은 성유리가 익숙해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곳은 익숙한 냄새였지만 성유리와 박한빈에 관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었고 전과는 사뭇 달랐다. 익숙하고도 낯선 장소는 마치 천천히 자신을 베는 날카로운 칼처럼 느껴졌고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심한 고통이었다. 성유리는 침대에서 한 시간을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려고 할 무렵, 아래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으려 눈을 더욱 질끈 감았지만 이내 누군가 벨을 누르는 소리를 들었고 성유리는 못 들은 척 무시했다.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은 포기하지도 않고 한번, 또 한 번 눌러댔고 성유리는 그제야 집안에 다른 도우미가 없기에 그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결국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준 성유리는 문 앞에 서 있는 서훈과 박한빈을 발견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주무시는 데 방해했네요.” 서훈은 잔뜩 움츠러들며 말을 이어갔다. “박 대표님께서 너무 취하시는 바람에 모시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유리는 박한빈과 서훈을 번갈아 보다 문 앞에서 비켜주며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15화

    “그거랑은 다르죠.” “뭐가 다른데?” 성유리도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쳐다보며 계속 물었다. “다 알면서 왜 계속 묻는 거죠?” 박한빈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젓가락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점점 더 실렸다. 성유리는 그와 달리 아주 평온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저희는 초혼이 아니라 재혼이잖아요. 굳이 결혼식을 해야겠어요?” 박한빈이 대답하기도 전에 김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생각도 유리랑 같아. 그리고 혼인 신고서도 이미 손에 넣지 않았니? 결혼식은 그저 형식일 뿐이야. 중요하지 않잖니?” “하지만 결혼 사실은 알려야 할 거야. 그러니까 결혼식보다는 연회 같은 거 준비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니?” 김서영의 말에 성유리는 더는 반박하지 않았지만 박한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요. 저는 꼭 결혼식을 치를 겁니다. 이미 다 말해놔서 번복 못 합니다.” 그는 자신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는 김서영에게 시선 한번 돌리지 않고 성유리만 쳐다봤다. 성유리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박한빈은 지금 자기가 마치 바람 빠진 풍선 같았다.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툭 터져버려 공중에서 사라지는 그런 우스운 풍선 말이다. 풍선이 아니라면 떼를 쓰는 어린아이나 관심받고 싶어서 애를 쓰는 철없는 어른이라고 형용할 수 있다. 하지만 옆에서 별의별 일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어떠한 반응도 해주지 않는 성유리가 미웠고 자기 자신이 우스웠다. 박한빈은 성유리에게서 시선을 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저는 또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디 가게?” 김서영이 물었다. “회사요.” “그럼 유리는?” 성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박한빈을 보고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마 김서영의 시선을 의식한 건지 성유리는 그제야 박한빈을 쳐다보았다. 박한빈은 속으로 내심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랐지만 성유리는 그러지 않았다. 뒤돌아 빠른 속도로 앞으로 걸어 나가는 박한빈은 사실 별일이 없었지만 빨리 이곳에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14화

    김서영의 말에 성유리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에 김서영은 불쾌함을 느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성유리가 천천히 입을 뗐다. “역시 사모님은 여전히 그 사람을 많이 사랑하고 계시네요.” 가볍게 던진 성유리의 한 마디에 김서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저는 사모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그렇다 해서 박한빈 씨를 용서할 생각은 없고요.” 성유리는 찻잔을 상에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박한빈 씨가 업계 상의 위치를 이용해 그렇고 그런 수단과 방법으로 강압하고 위협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됐을 거예요.” “만약 사모님이시라면 이런 상황에서 다시 그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나요?” 김서영은 성유리의 말에 뭐라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만약 성유리가 자신의 말에 강하게 반박하고 따졌다면 김서영은 아직 그녀가 박한빈에게 감정이 남아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성유리는 전혀 흥분하지 않았고 오히려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나도 알아.” 몇 분 뒤, 김서영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이름이 연정우라고 했나? 근데 유리 너도 그 남자를 좋아했어?” “네.” 평온한 말투로 제일 듣기 버거운 말을 내뱉는 성유리의 대답에 계단 앞에 서 있던 박한빈은 몸이 굳어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성유리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연정우와는 그저 평범한 비즈니스 사이라고 성유리가 직접 인정했었다. 왜 결혼을 하냐고 물었을 때도 성유리는 직접 박한빈에게 연정우의 외할아버지가 건강이 악화돼서 서두른다고 알려줬다. ‘어떻게 유리가...’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박한빈의 뒤에 서 있던 집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신데요?” 집사의 목소리에 박한빈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김서영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동공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옆에 있던 성유리는 평온하기만 했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13화

    김서영은 성유리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비록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네가 우리 한빈이랑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니까 주는 거야. 이건 내가 결혼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건데 오늘 유리 너한테 넘겨줄게. 처음 만나는 사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히 받아.” “이건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괜찮아. 어차피 한빈이는 평생 유리 너랑 살겠다고 마음먹었잖아. 결국 이건 네 손에 들려야 할 거야.” 옅은 미소를 띠며 말하는 김서영을 성유리는 조용히 쳐다만 보았다. 눈앞에 있는 김서영은 여전히 성유리가 알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사람이었고 전과는 다를 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성유리는 이러한 김서영도 박씨 가문이라는 큰 “철창”에서 벗어나려고 목숨까지 바친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김서영이 사랑했던 남자는 이미 세상을 떴고 두 사람의 일은 세상에서 점점 잊혀갔다. 그리고 김서영마저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굴었다. 그러나 성유리는 달랐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김서영을 대해야 하는지 몰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박한빈은 그런 성유리 대신 김서영이 건넨 물건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김서영은 그런 박한빈에게 시선을 휙 돌리더니 입을 뗐다. “할머님 편찮으시다. 올라가서 얼굴이나 뵙고 가. 유리는 여기 놔두고. 내가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유리도 같이 올라가고 싶습니다.” 박한빈은 성유리의 손을 꽉 잡으며 김서영의 말에 거부 의사를 비쳤다. “이미 혼인 신고까지 마쳤는데 내가 설마 유리를 어떻게 하겠니?” 김서영의 말에 박한빈은 성유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뒤돌아 위층으로 뚜벅뚜벅 올라갔다. “앉아.” 멀뚱멀뚱 서 있는 성유리에게 김서영이 다정하게 말했다. “일부러 네가 좋아하는 홍차로 끓였어. 이거 좋아하는 거 맞지?” 성유리는 앞에 놓인 찻잔과 김서영을 번갈아 보다 물었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세요?” 김서영은 말없이 성유리를 쳐다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를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12화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자신이 머무르는 호텔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금성에서는 아마 박한빈이 모르는 곳이 없을 테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찾아낼 수 있다. 다음 날, 성유리가 깨어나자마자 초인 종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앞에는 박한빈이 서 있었고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자. 혼인 신고하러 구청에.” 오늘 다른 정장 외투 없이 깔끔한 하얀 셔츠만 입은 박한빈은 앞머리까지 내려 평소와는 약간 다른 모습이었다. 그의 모습에 성유리는 마치 수년 전, 자신이 몰래 훔쳐보던 박한빈이 떠올라 멍해졌다. 성유리는 이제야 그때 박한빈의 모습 또한 가짜였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 눈앞에 있는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람이 진짜 박한빈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옷은 이미 내가 다 준비했어. 혼인 신고하는 데 필요한 물건은 잘 챙겼지?” 성유리는 아직 찾지 못했다는 핑계로 시간을 끌려 했지만 박한빈은 그녀의 속내를 다 아는지 웃으며 계속 말했다. “계약서에 사인까지 마쳤는데 이제 와서 미처 못 챙겼다는 말로 시간 끄려는 건 아니지?”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인데? 아니야?” 성유리는 두 주먹을 꽉 쥐었지만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걱정마세요. 다 챙겼으니까.” 박한빈은 성유리의 대답에 만족한 듯 더 환하게 웃더니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을 건네주며 재촉했다. “가서 이 옷으로 갈아입고 와. 빨리 가자.” 두 사람은 이내 빠르게 구청에 도착했고 성유리는 이번에 3번째 방문이라 딱히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3번이나 같은 남자와 구청에 온 본인이 한심했고 올 때마다 성유리의 마음은 더 차가워져 있었다. 어차피 처음 하는 결혼이 아닌 두 사람인지라 혼인 신고를 하는 모든 과정을 아주 익숙하고 신속하게 처리했다.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장이 꾹 찍힌 혼인 신고서는 그들의 손에 쥐어졌다. 성유리는 혼인 신고서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가방 안에 던지듯 넣어버리고는 택시를 타려고 뒤를 돌았다. 하지만 뒤에 있던 박한빈이 재빨리 성유리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11화

    그러나 그런 감정도 시간이 지나자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졌고 김서영이 깨어난 날, 박한빈은 기쁘다는 감정보다는 성유리에게 어떻게 말을 꺼낼지부터 고민했다. 성유리의 죄책감을 끌어낸다는 잔인한 계획은 박한빈도 보통 사람이라면 세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냉철하고 매정한 교육을 받아온 박한빈은 가능했다. 김서영은 어린 박한빈에게 어떻게 해야만 좋은 상인이 되는지, 어떻게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하나하나 알려줬었다. 그녀는 결국 박한빈을 자신이 원하던 상인으로 만들어 냈지만 좋은 아들로 키우지 못했다. 그래서 박한빈은 만약 보통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도 마찬가지다. 김서영은 박한빈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따지듯 묻기 시작했다. “유리한테 무슨 짓을 했니?” 박한빈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쳐다보자 김서영이 이빨을 꽉 깨물며 다시 물었다. “유리를 협박이라도 한 거야? 요즘 유리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 어떻게 그래? 이게 바로 너의 수단이야?” “네.” 간단하기만 한 박한빈의 대답에 김서영은 안색이 잔뜩 어두워져갔다. “너는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요?” 박한빈은 화를 내는 김서영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애초에 처음부터 어머니가 시킨 결혼 아니었습니까? 성유리가 내 아내가 될 사람이라고 소개해 준 사람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원하던 대로 됐는데 도대체 왜 화를 내시는지 저는 이해가 잘 안가네요.” 김서영은 화를 꾹꾹 참으며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난 네가 내 말을 이렇게 잘 듣는 사람인 줄 몰랐어.” 아무 말이 없는 박한빈을 보던 김서영은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는지 차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한빈아, 전에는 엄마가 잘못했어. 유리는 너랑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이미 이혼하지 않았니? 지나는 길은 지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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