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61 - Chapter 170

303 Chapters

제161화

박현빈은 차에 올라타며 성유정에게 대답했다. “기다려. 곧 갈게.” “우리 지금 술집 거리 부근에 있어요. 언니가 너무 취해서 안 되겠어요. 언니를 호텔에 데려다줘야겠어요.” “그 자리에 그대로 가만히 있어. 주소 보내주고. 빨리 갈게.” 말을 마친 박한빈은 기사에게 얼른 시동을 걸어 출발하라는 눈치를 줬다. 하지만 성유정은 박한빈의 말을 채 듣지 못했는지 주소 하나만 보내주고는 말이 없었다. 그녀가 보내온 주소를 확인한 박한빈은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자기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미화로로 가서 성유리의 행방을 알아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성유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신호만 걸릴 뿐 받는 사람이 없었다. 박한빈이 성유정이 보내준 주소에 따라 호텔 앞에 도착하자 마침 비서에게서도 문자 한 통이 왔다. [성유리 씨 지금 미화로에 없습니다.] 박한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호텔 안으로 발을 들였다. 1608호 방. 박한빈이 벨을 누른 지 얼마 안 되어 성유정이 문을 열어줬다. 방 안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어 성유정은 검은색의 나시 치마만 입고 있었다. 게다가 성유정의 몸에서는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가 풍기고 있었고 문을 열어주려고 나올 때도 비틀거렸다. 박한빈의 얼굴을 확인한 성유정은 그의 몸에 쓰러지다시피 넘어졌고 당황한 박한빈은 몸이 꼿꼿하게 굳어져버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둘러보았는데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이불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박한빈은 망설임도 없이 성유정을 밀어내고는 침대 쪽으로 다가가 이불을 확 거뒀다. “한빈 오빠.” 성유정이 말릴 틈도 없이 박한빈은 이불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약 아직까지도 박한빈이 성유정이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바보가 틀림없었다. 그래도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유정을 쳐다보며 물었다. “성유리는?” “저... 언니는 이미 다른 분이 오셔서 데리고 갔어요.” 성유정의 대답에 박한빈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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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성유정은 말을 하는 한편 손을 뻗어 자신의 어깨끈을 살짝 내렸다. 어두운 조명 아래 보이는 것은 하얀 여자의 속살뿐. 그러나 박한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힐끔 쳐다만 보고는 입을 열었다. “저번에 본가에서 너한테 아주 명확하게 말했던 것 같은데.” 차가운 그의 목소리에 성유정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박한빈의 말에 그때 박씨 본가 앞에서 그에게 거부당했던 그 입맞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성유정은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다시 박한빈을 꽉 끌어안았다. “한빈 오빠, 저 진짜 오빠를 많이 좋아해요. 아무런 명분이 없어도 좋으니 딱 이번 한 번만 하고 싶어요.” “전... 소중한 제 첫 몸을 제가 제일 사랑하는 남자에게 주고 싶어요. 한빈 오빠, 그러니까 제발 딱 한 번 만요.” 성유정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애원했다. 예쁜 얼굴을 하고 눈물까지 흘리며 말하는 성유정의 모습을 그 어떤 남자도 매정하게 뿌리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박한빈은 달랐고 그는 울먹이는 성유정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난 너를 그냥 여동생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럴 리가 없어요! 전에 저한테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만약 성유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미 결혼했을 거라고요!” “만약 저를 좋아하지 않으셨다면 왜 저한테 그렇게 비싼 선물을 해준 거예요? 저를 좋아하지 않으셨다면 왜 저를 안아주셨어요? 한빈 오빠, 이제 더는 저를 속이지 말아요. 오빠의 진실 된 감정을 더는 모른척 하지 마시라고요.” “정말 성유리 씨가 없었다고 해도 난 너랑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박한빈은 성유정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을 했다. “뭐라고요?” 성유정이 박한빈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나는 너한테서 아무런 욕망이 느껴지지 않아.” 박한빈은 자신이 하려던 말을 담담하게 이어 나갔다. “그래서 우리는 부부가 될 수 없어.” 망신.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성유정은 지금 자신의 처지가 한 벌의 옷가지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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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송효주 씨를 만난 거라면 왜 내가 건 전화는 안 받은 거야?” “핸드폰 진동모드로 설정해 둬서 전화 오는 줄도 몰랐어요.” 성유리의 대답을 들은 박한빈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키도 크고 몸도 좋은 박한빈이 좁은 현관 앞으로 가까이 오자 성유리는 말도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두려움 때문인지 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지만 등에 문이 닿자 이젠 물러날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성유리는 조용히 박한빈을 쳐다보았는데 그녀의 눈빛엔 의아함만이 가득 차 있었다. 박한빈도 마찬가지로 전혀 당황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 성유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박한빈이 그제야 천천히 입을 뗐다. “오늘 성유정이 나한테 전화 왔었어. 너랑 같이 술을 먹고 있다고 하면서.” “제가 걔랑요?” 성유리는 황당해하며 물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설마?” “응. 나도 처음엔 안 믿었지. 근데 네가 취했다고 하기에 바로 달려갔어.” “왜냐하면 그때까지 성유리 너는 미화로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내 전화도 안 받았기 때문이야.” 박한빈은 성유리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성유리는 그의 말에 대답을 해주려고 입을 뻥긋거렸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성유정이 호텔 주소 하나를 보내주더니 나보고 오라고 하더라. 우리 둘이 호텔 안에서 뭐 했는지 맞혀봐.” 박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성유리에게 계속 말했다. 그의 말에 성유리는 잠시 멍해 있더니 이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야 모르죠.” “그러니까 맞춰보라고 하는 거잖아.” “저는 맞추기 싫은데요?” 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그제야 그녀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러더니 재밌어 죽겠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실망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우리 둘은 아무 일도 없었어.” “전에도 없었거니와 앞으로도 있을 리 없어.” “하지만 성유리, 나는 오늘 너한테 크게 실망했다.” “나를 시험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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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성유정과 원유진은 화장실에서 딱 마주쳤다. 진무열과 성유정이 약혼을 한 뒤로 두 사람의 왕래는 점점 더 잦아졌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이가 나빠진 것은 아니기에 오다가다 서로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었다. “진무열 씨 다쳤다면서요? 요즘은 어때요?” 원유진은 거울 앞에서 화장을 보충하는 성유정을 힐끔 보더니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이미 퇴원도 마친 상태라.” 성유정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며 대답을 했지만 원유진은 그녀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옛날이랑은 뭐가 좀 달라졌는데?’ 원유진이 더 말을 걸기도 전, 성유정은 이미 화장실에서 나가버렸다. 그 시각, 방 안의 분위기는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성유정이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와 너나 할 것 없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갑작스러운 인파에 성유정은 피할 틈도 없었고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지만 뒤에서 오던 원유진이 그녀를 붙잡아줬다. “다들 테라스로 나가려는 모양이에요.” 원유진이 많이 놀란 성유정을 달래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새해맞이 카운트가 시작되잖아요. 그래서 금성에 오늘 밤 폭죽 쇼가 열린대요.” “네.” 정신을 차린 성유정은 그제야 원유진에게 짧은 대답을 해줬다. “가요. 같이 올라가서 구경이나 하자고요.” 원유진은 성유정의 손을 덥석 잡더니 앞장서서 테라스로 향하기 시작했다. 성유정은 원유진의 뒤에 서서 그녀에게 잡혀있는 것이 싫은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밀어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테라스로 도착했을 무렵,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사람들이 다 입구에 서서 움직이지 않은 채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성유정의 시선은 사람들에 의해 가로막혀있었지만 원유진은 뒤꿈치까지 들어가며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쪽을 쳐다보았다. “박한빈 씨? 저분이 왜 이곳에 있는 거예요?” 원유진은 이내 사람들이 보고 있는 방향에 박한빈이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말에 성유정은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근데 옆에 있는 여성분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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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미친! 진짜 성유리 맞는데?” “성유정 씨, 언니분이랑 박 대표님 언제부터 다시 만난 거예요?” “아니 도대체 박한빈 씨는 성유리 씨 어디가 마음에 든 거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끊기지 않았고 그 바람에 성유정은 머릿속에서 뭔가가 터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성유정은 아무 말도, 행동도 심지어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때, 테라스에 있던 박한빈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예상치 못한 인파에 당황해 미간을 찌푸리던 박한빈은 이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성유리를 품에 꼭 안아 그녀를 가려줬다. “박 대표님, 여기서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네요.” 사람들은 일제히 박한빈에게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새로운 여자 친구이신가 봐요? 저희는 왜 몰랐지?” 오늘 밤 이곳에서 파티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젊은이들이었기에 박한빈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넘지 말아야 하는 선도 모르는 것 같았다. 처음에 성유리는 등을 돌린 상태로 있었고 지금은 박한빈에 의해 품에 안겨버렸으니 사람들은 다 누구인지 몰라 헷갈려했다. 하지만 원유진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여자가 성유리일 줄은 몰랐다면서 뜨겁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오늘 사람들이 다 이곳에 모여 있는데 저희한테 여자 친구분을 소개해 줄 생각은 없나요?”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박한빈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박한빈은 몰려있는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더니 성유리를 놓아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성유리 씨입니다. 아마 다들 아실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아무런 기복이 없었는데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눈썹으로 사람들은 다 박한빈이 지금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성유정은 박한빈의 입술에 묻어있는 붉은 무언가의 자국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마침 그의 옆에 있는 성유리의 립스틱과 똑같은 색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당하게 성유리와의 만남을 공개해 버린 박한빈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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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박한빈과 성유리는 그곳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폭죽이 터지는 것을 얼마간 지켜보다가 박한빈은 성유리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성유리는 그때까지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하지만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고 바로 박한빈의 손을 뿌리치려고 애를 썼다. 박한빈은 질 세라 더 세게 힘을 주어 성유리의 손을 잡았고 그로 인해 성유리는 팔이 부러질 듯 아팠다. “아! 저 진짜 확 물어버리는 수가 있어요?” 성유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박한빈을 째려보며 말했다. “어디를 물 건데?” 그의 대답에 성유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입을 꾹 닫았다. 박한빈은 그런 성유리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집에 갈래요.” 성유리가 이빨을 꽉 깨물며 말했다. “응. 같이 가자.” 박한빈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좁아터진 제 집에서 지내는 게 박 대표님은 불편하지도 않으세요?” “그럼 네가 나랑 같이 시월파크가서 살래? 아니면 도연제?” “안 가요.” 성유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다. 박한빈은 성유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묵묵히 차에 올라탔다. 성유리는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휙 돌려 창밖만 주시했고 박한빈은 운전석에서 그런 그녀를 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회 말이야.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돼.” “저는 박 대표님이 하도 카리스마 있는 분이셔서 저를 끌고 갈 줄 알았는데.” 성유리는 박한빈을 비꼬듯 대답했다. “오호라, 이런 방법도 있었단 말이지.” “한번 해보시던가요.” 성유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매운탕 먹으러 갈래?” 박한빈은 이내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안 가요.” “직접 가서 먹고 싶지 않다면 집으로 배달시키자.” “그럼 온 집안에 다 냄새 나잖아요. 그리고 또 그 집이 누구 집인데.” 박한빈은 또다시 실실 웃음을 지었고 성유리는 전에는 못 보던 그의 웃음에 잠시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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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두 사람의 영혼은 마치 한데 엉겨 붙은 듯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춰주었다. 옆집 사람은 이미 이사를 간 상태지만 성유리는 큰 소리를 차마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참을 수가 없을 때는 박한빈의 목을 세게 물었다. 박한빈은 아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성유리에 의해 물리고는 그녀의 턱을 살짝 움켜쥐더니 미친 듯이 키스를 했다. 집안은 조명 하나도 켜지지 않아 어두웠고 창밖에서는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가끔 들려왔다. 그때, 누군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성유리도 그 소리를 듣고는 바로 박한빈을 밀어냈지만 박한빈은 멈추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전화를 거는 사람은 끈질기게 계속 걸었고 성유리가 박한빈을 몇 번이나 불러서야 그는 짜증 나 하며 전화를 받으러 갔다. “여보세요?” 박한빈의 잠긴 목소리에는 화가 서려 있었다. 수화기 너머 발신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박한빈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물었다. “그래서요? 지금 무슨 상황입니까?” 얼마 뒤, 박한빈은 잔뜩 굳은 표정을 하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그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며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바라봤다. “왜 그래요?” 성유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집에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그렇다고 봐야지. 구체적인 상황은 가서 직접 알아봐야 할 것 같아. 아니면 나랑 같이 갈래?”“아니요. 안 가요.” 성유리는 고민하지도 않고 거절했다. 그녀의 단호한 모습에 박한빈은 웃음을 터뜨리며 땅에 떨어뜨린 옷가지들을 주우며 말했다. “먼저 가볼게. 아마 다시 못 돌아올 거야. 문단속 잘하고.” “네.” “갈게.” 박한빈은 얼른 밖으로 나설 채비를 했고 성유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던 박한빈은 갑자기 무언가를 느꼈는지 고개를 휙 돌렸다. 성유리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시 몸이 굳어갔고 박한빈은 씩 미소를 짓더니 문을 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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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그 시각, 박씨 저택 안. 김난희의 생활 루틴은 늘 똑같기에 원래대로라면 그녀는 지금 시간에 자고 있었야 했다. 그리고 박씨 가문 사람들은 다 김난희의 루틴을 알기에 그녀를 도와주고 시간이 되면 알려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늘, 새벽 1시가 거의 다 되는 시간이지만 박씨 저택에는 환한 불빛이 켜져 있었다. 집사는 이미 오랫동안 밖에서 박한빈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의 차가 저택 안에 들어서자 다급하게 달려오며 말했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박한빈은 집사를 흘깃 쳐다보고는 물었다. “지금 안에 상황은 어떻습니까?” “어르신께서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그리고 사모님도 돌아오셨고요. 두 사람이 서로 말이 잘 안 통하시는 것 같은데... 도련님께서 들어가셔서 잘 좀 해결해 보십시오.” 집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한빈은 얼른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사가 말한 대로 집 안의 분위기는 살벌했고 차가운 공기만이 맴돌고 있었다. 김난희는 한껏 진지하고 엄숙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는데 두 손은 소파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맞은편에는 김서영이 가만히 서 있었다. 비록 머리는 숙이고 있었지만 등은 곧게 펴고 있어 잘못을 반성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어 보였다. 김난희는 박한빈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을 발견하고는 얼른 그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그래! 한빈이 마침 잘 왔다.” “너! 아까는 말만 잘하지 않았니? 이제 네 아들 앞에서 한번 똑같이 말해 보거라.” 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김서영을 쳐다보았다. 김서영은 김난희의 말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듯 입을 더욱 굳게 다물었다. 김난희는 그녀의 태도에 불같이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보아하니 이제야 창피한 줄 아는 모양이구나! 네 스스로 말하기가 부끄러우면 내가 대신 말해주마!” “한빈아, 네 엄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니? 우리 박씨 가문의 밥을 먹고 우리 가문의 자원을 써가며 다른 남자랑 한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 정말 박씨 가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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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김난희가 던진 무거운 찻잔은 그대로 박한빈의 뒤통수에 날아가 버렸다. 무방비 상태로 머리를 맞은 박한빈은 아픈 내색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피는 머리카락을 따라 줄 줄 흘러 내려왔다. 찻잔을 던진 김난희가 놀라 멍해 있을 때, 집사가 급히 박한빈에게 달려가 물었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이거...” 집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은 그의 손을 치워버리더니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는 김서영을 뚫어져라 주시하며 그녀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 사람 이름이 뭡니까?” 냉랭한 그의 목소리에 김서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박한빈을 바라보았다. 김서영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박한빈이 지금 마치 진실 된 대답을 원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박한빈은 김서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내 다른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김서영이 어찌 친아들인 박한빈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박한빈이 핸드폰을 꺼내는 순간 김서영은 그의 목적을 알아차렸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박한빈을 막았다. “지금 뭘 하려는 거야?”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알아봐야죠.” 김서영의 물음에 박한빈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알아내면? 그 다음엔?” 김서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계속 말했다. “이건 내 일이야!” “그렇습니까?” 박한빈은 피식 웃더니 대답을 이어갔다. “박씨 가문에 사모님이라는 분이 지금 다른 남자랑 연애를 하고 있다니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제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고 할머니도 연세가 있으신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으십니까? 할머니를 속상하게 해서 좋으십니까?” 박한빈은 마치 김난희를 매우 신경 쓰고 있고 사랑하는 것처럼 따져 물었다. 그러나 김서영의 눈에 박한빈은 김난희의 기분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손에 있는 지분들을 탐내는 것 같아 보였다. 김서영이 김난희의 기분을 망쳤다면 자연스럽게 박한빈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 분명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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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그날 밤 내내 성유리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계속 뒤척거렸지만 깊은 잠에 빠지지 못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너무 피곤해 스르르 잠에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성유리는 자신의 옆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다. 아직 제대로 정신이 들지 않아 눈을 열심히 뜨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잘 안됐다. 다시 눈을 감았다가 번쩍 떴을 때 성유리는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악!” 깜짝 놀란 성유리가 비명을 지르자 이윽고 박한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힘없는 그의 목소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보였다. 성유리는 박한빈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서서히 정신이 들었고 다리를 들어 그에게 발차기를 날리려 했다. 어쩌다 깊은 잠에 빠져 자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깨버렸으니 사람이라면 다 화가 날 만한 상황 아닌가! 성유리가 다리를 치켜들자 박한빈은 곧바로 그녀의 다리를 손으로 꽉 잡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밑에 누워있던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다리를 잡히는 순간, 너무 추워졌다. “이거 놔요! 손이 너무 차잖아요.” 성유리가 박한빈에게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며 말했다. 하지만 박한빈은 아무 말도 없이 다리를 더 꽉 잡더니 바로 성유리에게 쓰러지듯 안겨버렸다. “저기...” 성유리가 뭐라 하려고 입을 떼려고 하니 박한빈은 머리를 한껏 숙인 채로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성유리는 자신의 이불을 잡고는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강한 박한빈의 힘에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을 뻗어 박한빈의 머리를 잡으려는 그때, 성유리는 어딘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왜 이렇게 축축하지?’ 창문을 통해 은은하게 들어오는 불빛으로 박한빈의 머리를 자세히 본 성유리는 빨간색 피를 발견했다. 너무도 놀라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성유리는 박한빈을 마구 흔들며 물었다. “다쳤어요? 머리에 왜 피가 나는 거예요? 박한빈 씨, 일어나 봐요!” 성유리의 목소리는 점점 더 조급해졌고 박한빈의 손을 꼭 잡았다. 아무런 대답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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