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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작가: 송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06:45
박한빈과 성유리는 그곳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폭죽이 터지는 것을 얼마간 지켜보다가 박한빈은 성유리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성유리는 그때까지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하지만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고 바로 박한빈의 손을 뿌리치려고 애를 썼다.

박한빈은 질 세라 더 세게 힘을 주어 성유리의 손을 잡았고 그로 인해 성유리는 팔이 부러질 듯 아팠다.

“아! 저 진짜 확 물어버리는 수가 있어요?”

성유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박한빈을 째려보며 말했다.

“어디를 물 건데?”

그의 대답에 성유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입을 꾹 닫았다.

박한빈은 그런 성유리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집에 갈래요.”

성유리가 이빨을 꽉 깨물며 말했다.

“응. 같이 가자.”

박한빈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좁아터진 제 집에서 지내는 게 박 대표님은 불편하지도 않으세요?”

“그럼 네가 나랑 같이 시월파크가서 살래? 아니면 도연제?”

“안 가요.”

성유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다.

박한빈은 성유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묵묵히 차에 올라탔다.

성유리는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휙 돌려 창밖만 주시했고 박한빈은 운전석에서 그런 그녀를 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회 말이야.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돼.”

“저는 박 대표님이 하도 카리스마 있는 분이셔서 저를 끌고 갈 줄 알았는데.”

성유리는 박한빈을 비꼬듯 대답했다.

“오호라, 이런 방법도 있었단 말이지.”

“한번 해보시던가요.”

성유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매운탕 먹으러 갈래?”

박한빈은 이내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안 가요.”

“직접 가서 먹고 싶지 않다면 집으로 배달시키자.”

“그럼 온 집안에 다 냄새 나잖아요. 그리고 또 그 집이 누구 집인데.”

박한빈은 또다시 실실 웃음을 지었고 성유리는 전에는 못 보던 그의 웃음에 잠시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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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는 아무 말 없던 하늘이가 병원을 나서자마자 폴짝폴짝 뛰며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뭐가 그리 신나는지 뛰어다니면서도 성유리의 손을 놓지 않았고 가끔 뒤를 돌아보며 밝게 웃기까지 했다. 성유리는 그런 하늘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오늘 뭐 먹고 싶어?” “엄마가 간장 베이스로 만든 닭 날개 먹고 싶어요.” “그래. 그럼 엄마랑 같이 마트 가서 재료 사자. 어때?” 하늘이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마트 가서 카트도 탈래요.” 성유리는 흔쾌히 허락했다.최근 하늘이가 살이 많이 빠져서 그런지 쇼핑카트에 앉아 있어도 성유리에게는 전혀 무리 되지 않았다. 마트의 밝은 조명 아래 하늘이의 얼굴에도 혈색이 돌아 성유리는 마음이 놓였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하늘이었다. “엄마! 저거 사고 싶어!” 하늘이는 오랜만에 이렇게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에 나와서인지 잔뜩 흥분했고 작은 다리를 흔들며 쇼핑카트를 이리저리 움직이려 했다. 성유리는 조미료의 제조 일자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쇼핑카트가 그녀 손에서 벗어나 앞으로 미끄러져 갔다. 아이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자 성유리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잡으려 했지만 이미 카트는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나갔다. “꺅!” 그때, 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마트 안을 울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성유리는 급히 쇼핑카트를 잡아당기며 연신 사과했다. “제가 아이를 잘 보지 못했네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신가요?” 여성은 화가 난 듯했지만 사람들이 많은 장소라서인지 억지로 화를 삭이며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아이 데리고 나왔으면 조심해야죠!” “맞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성유리는 허리를 공손하게 숙이며 사과했다. 하늘이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달았는지 여자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옷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78화

    성유리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사하나는 그녀의 다리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하늘이 앞이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먼저 말을 걸었다. “하늘이 방금 깨어났는데 언니가 안 보이니까 너무 투정을 부려서 제가 언니한테 전화했어요.” “봤어. 근데 그때는 내가 좀 바빠서 전화를 못 받았네.” 성유리는 사하나의 말에 대답해 주며 하늘이의 침대맡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왜 그래? 우리 하늘이 엄마가 보고 싶었어?” 하늘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유리의 손을 바라봤다. “내 사자 인형은?” 방금까지 울었던 건지 하늘이의 눈은 조금 붉어져 있었고 목소리는 쉰 상태였다. 성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꽉 깨물며 대답해 줬다. “미안해. 하늘아, 엄마가 사자 인형을 못 찾았어. 대신 엄마가 새로 하나 사 줄게. 그래도 괜찮을까?” “새로 산 게 예전 거랑 똑같아요?” 하늘이의 질문에 성유리는 순간 멍해졌다. 그녀의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하늘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근데 저는 예전 그 사자 인형이 좋은데.” “알아. 엄마도... 다 알아.” 성유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다시 가서 꼭 찾아볼게. 괜찮지? 걱정하지 마. 사자 인형은 그냥 숨바꼭질하는 거야. 엄마가 꼭 찾아줄게. 알았지?” 하늘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난 엄마 믿어.” 성유리는 그제야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제 밥 먹을 준비하자. 하늘이는 뭐 먹고 싶어? 엄마가 사다 줄게.” “엄마가 만든 만둣국 먹고 싶어요.” “알겠어. 지금 사 올게. 여기서 기다려줘. 대신 이모랑 같이 잘 놀고 있을래?”하늘이는 고분고분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성유리는 안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사하나가 갑자기 그녀의 손을 붙잡았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다리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별일 아니야. 그냥 어디에 좀 부딪혀서 조금 아픈 것뿐이지.” 성유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77화

    자신을 쫓아내려는 말에 박한빈은 살짝 당황한 듯 표정이 굳어졌고 안색마저 어두워졌다. 바로 그때, 성유리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인형을 찾던 동작을 멈춘 성유리는 손을 쭉 뻗어 휴대폰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때, 박한빈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 성유리의 휴대폰은 그의 힘에 밀려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떨어진 휴대폰 화면에는 발신자 이름이 또렷하게 보였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사하나였다. 박한빈의 입가에는 또다시 조롱 섞인 미소가 드리워지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는 사하나 씨랑 꽤 친해졌나 보네?” “내 생각이 맞다면 지금 네가 사는 이 집도 사하나 씨가 마련해 준 거겠지? 지금 네가 이렇게 초라하게 살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난 네가 날 떠난 뒤 더 좋은 남자를 만나 멋지게 살 줄 알았어.” 그는 성유리를 비웃으며 계속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엔 연예인이랑 엮였었다며? 그런데 네가 팬들에게 둘러싸여 모욕당할 때는 그 연예인이 아무 말도 안 했더라? 참 안됐다.” 박한빈의 조롱은 끝이 없었고 그의 눈빛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성유리는 그의 말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조금의 슬픈 감정도 없었다. 박한빈은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무슨 감정이라도 읽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성유리는 그저 조용히 서 있다가 그가 말을 마치기를 기다리더니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말씀 끝나셨어요? 다 끝났으면 제 손 좀 놔줘요.” 그녀의 냉정한 반응에 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을 쥔 힘은 더욱 강해졌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성유리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제 대답에서 뭘 얻고 싶은 거죠? 제가 울면서 잘못했다고 당신을 떠난 걸 후회한다고 말하길 원하세요?” “그렇게 해서 박한빈 씨가 얻고 싶은 게 뭔데요?” “박한빈 씨, 당신은 지금 충분히 성공했잖아요. 모두가 알고 인정하는 사실 아닌가요? 그런데 왜 이런 감정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76화

    사하나가 마련해 준 집은 병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집들은 대부분 오래된 탓에 성유리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발에 묻은 피는 이미 닦아냈지만 피가 사라진 자리에 드러난 길고 깊은 상처는 마치 다른 감정 없이 벌어진 입처럼 보였다.  성유리는 어처구니없게도 빨간 상처 자국이 마치 웃고 있는 입 같아서 섬뜩했다. 겨우겨우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했다. 집 안으로 들어온 성유리는 상처를 간단히 소독한 뒤 하늘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긴 치마로 갈아입었다. 그러나 걸음걸이는 숨길 수 없었다. 특히 하늘이가 찾고 싶어 하던 작은 사자 인형을 찾으려고 몇 번이고 방을 오가며 헤매는 모습은 더더욱 다친 사람인 것이 티가 났다. 세 번째로 상자를 열었을 때도 인형이 보이지 않자 성유리는 점점 불안해졌고 찾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좌절하기도 했다. 결국 쇼핑 앱을 열어 같은 인형을 새로 사려고 했지만 화면을 본 순간 멍해졌다. 그 인형은 이미 단종되어 더 이상 구매할 수 없었던 것이다.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성유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건가?”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박한빈이 서 있었다. 사하나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하늘이의 생사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를 따라온 이유는 대체 뭘까?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성유리는 박한빈의 눈빛 속에 담긴 조롱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박한빈은 어지러운 집 안 풍경을 보며 미간을 약간 찌푸리기까지 했다. 그의 기억 속 성유리는 어떤 집에서 살더라도 항상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있는 공간은 항상 정돈된 테이블과 소파가 있었지만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건 정리되지 못한 수많은 상자들뿐이었다. 심지어 일부 상자는 그녀가 찾던 물건을 꺼내려다 열어 둔 상태라 더욱 어수선해 보였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75화

    “당신은...” “아까 경찰 부르셨다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거죠? 제가 대신 한 번 전화를 걸어볼까요? CCTV 자료도 요청해 볼 겸.” “아니요! 됐습니다. 오늘 제 재수가 없는 거로 치죠.” 남자는 말을 끝내자마자 몸을 휙 돌려 떠나가 버렸다. 서훈은 떠나가는 운전자를 굳이 막지 않고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남자의 차량 번호판을 찍었다. 그 후, 그는 성유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성유리 씨, 괜찮으세요? 병원에 모셔다드릴까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성유리는 간단히 대답하고는 곧바로 앞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종아리의 통증은 여전히 느껴졌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절뚝거리며 사람들의 시야에서 애써 벗어났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도착하자 약국에 들러 간단히 상처를 처치할 물품을 샀다. “이거 뭐에 긁히셨길래 그러신 거예요? 파상풍 주사 맞아야 할 수도 있는데요.” 약사는 피가 줄줄 흐르는 그녀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 “상처가 꽤 심한데요.” “괜찮아요. 우선 소독약하고 거즈만 주세요. 나중에 병원 가서 주사 맞을게요.” 성유리가 연신 괜찮다고 말하자 약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필요한 물품을 빠르게 계산해 주었다. 약을 받은 성유리가 약국을 나서려는 순간, 약사는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마치 성유리가 그곳을 더럽혔을까 봐 걱정하는 듯한 눈치였다. 성유리는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재촉했고 문을 열고 나가는 그때, 성유리는 저 멀리 보이는 누군가의 모습에 발걸음을 뚝 멈췄다. 멀지 않은 곳에는 박한빈이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차에 기댄 채로 있었고 저무는 햇살이 가로수 사이로 비쳐 그의 얼굴을 환하게 비췄다. 빛은 그의 뚜렷하고 강인한 이목구비를 더 뚜렷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여전히 뛰어난 외모였다. 지금의 그는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 같아 보였고 성유리는 자세히 보지 않아도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과거 박한빈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74화

    사하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 침묵만으로도 성유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성유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음, 잘됐네.” “뭐가요?” 사하나는 이미 나있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드러내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성유리가 박한빈에 관한 주제로 더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성유리가 이렇게 애써 담담한 척하는 모습을 보니 사하나는 참을 수 없었다. “내가 그 사람을 어디서 만났는지 알아요? 그 사람이 맞선을 보려고 했다고요! 그리고는 나한테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말했어요. 언니가 생각해 봐도 너무 냉정하지 않나요?” 사하나는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이보다 적합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성유리는 사하나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괜찮아요.” 사하나는 시무룩해 보이는 성유리를 보고는 금세 손까지 내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생각해요. 걱정 마세요. 저희는 앞으로 더 좋은 남자를 만날 거니까.” 성유리는 살짝 웃어 보이며 하늘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하늘이가 평범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거야. 그 외의 모든 건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사하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녀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뗐다. “그래요. 언니 말이 맞아요. 반드시 그렇게 될 거고요.” ... 사하나의 말 덕분에 성유리는 이제 박한빈에게 전화를 걸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디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의 태도를 사하나를 통해 들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녀가 직접 박한빈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면 지금처럼 담담하게 있을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된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성유리는 이제 박한빈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를 다시 만날 이유도 다시 얽힐 필요도 없어졌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73화

    병실 안에는 성유리의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유리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하늘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한편 하늘이는 그림책을 집중해서 읽고 있었다. 최근에 살이 빠진 탓에 커다란 눈이 더 두드러졌고 창백한 피부 때문에 마치 인형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성유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인기척을 들은 하늘이는 고개를 들어 입구를 쓱 쳐다보았다. 병실 안으로 들어서는 사하나를 보자마자 하늘이는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모!” 평소 같았으면 사하나는 활기차게 반응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박한빈의 차가운 반응이 그녀를 너무나도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의 일, 그리고 성유리가 자신에게 털어놓았던 자세한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때 성유리가 박한빈을 떠난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그녀가 “가라앉는 배”인 그를 서둘러 떠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박한빈이 성유리를 원망하는 것도 어쩌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늘이는 그의 친딸 아닌가? 사하나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까지 냉정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그러던 그녀는 곧 하늘이와 성유리가 겪어온 일들과 성유리가 출산과 산후조리 때 겪었던 고통들이 떠올랐다. 만약 그때 자신이 옆에 없었다면 성유리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 모든 걸 박한빈은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아예 관심조차 없었던 걸까? 이제 와서 친딸인 하늘이가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에 빠졌는데도 박한빈은 여전히 무관심한 걸까? 수많은 의문들과 이해가지 않는 박한빈의 행동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모!” 하늘이의 밝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그제야 사하나는 정신을 차리고 하늘이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이상하게 여긴 하늘이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성유리 또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사하나를 보고 있었다. 성유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사하나는 서둘러 미소를 지으며 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72화

    하룻밤이 지나가자 사하나는 한결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녀는 이번 일이 박한빈의 계략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설령 진짜 결혼을 생각한다 해도 금성에 이렇게 많은 명문가 출신의 아가씨들 중 왜 하필 자신을 선택했을까?그는 분명히 자신과 성유리의 관계를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혹시 일부러 그런 건 아닐까?’ 일부러 자신과 맞선을 보고 이 사실을 성유리에게 알리려는 의도, 그녀를 질투하게 하고 괴롭게 만들려는 계산일 수도 있다. 사하나는 생각할수록 박한빈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느껴졌다.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녀의 분노는 어느새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사하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세심하게 단장한 후 약속 장소인 카페로 향했다.그러나 카페에서 박한빈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자신이 그를 과대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한빈은 그녀를 보더니 많이 놀란 듯해 보였다. 분명 박한빈은 여기서 그녀를 만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마 자신과 맞선을 볼 사람이 사하나라는 것을 아예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렇게 사하나가 전날 밤 머릿속에서 그렸던 모든 시나리오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사하나의 계획과는 달리 박한빈은 진짜로 결혼을 하려는 거였다.  그녀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박한빈을 뚫여져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사하나는 이미 수백 번 박한빈을 찔렀을 것이다. “사하나 씨.” 박한빈은 매우 태연하게 그녀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 만나는 사람이 당신일 줄은 몰랐습니다.” “오? 그럼 누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사하나는 박한빈을 비웃듯 물었다. 그러나 박한빈은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근데 사하나 씨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군요. 그렇죠?”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요?” 그녀의 대답에 박한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말했다. “당신은 성유리의 친구죠. 그러니까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그럼 이만.” 그는 말을 마치자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71화

    “아니야!” 류수미는 쏘아붙이는 사하나의 말에 너무 급한 나머지 손을 쭉 뻗어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는 자신의 말을 끝까지 이어가려 했다. “이번에 소개받은 사람은 바로 지화그룹의 박 대표야!” 사하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행동을 멈췄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류수미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이 내려간 뒤에서야 사하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누구라고요? 지화그룹에는 두 명이 있잖아요. 둘 중 어떤 박 대표 말씀이세요?” “지금 지화그룹에 박한빈 대표 빼고 대표가 또 있긴 해?”  류수미는 좀처럼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은 사하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알려줬다. “박세빈 그 사람을 몇 년 전에 박한빈이 해외로 보냈잖아. 경험을 쌓으라고 보내긴 했지만 사실상 포기나 다름없었지.” “그래서 말인데 그 사람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어쩜 친형제한테도 그럴 수 있어? 네 아버지가 그 사람을...” “잠깐만요.”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려 하자 사하나는 서둘러 류수미의 말을 뚝 끊었다. “아까 그 얘기로 돌아가요. 박한빈 씨가 저랑 맞선을 본다고요?” “맞아. 그 사람 조건 어때?” “미치셨어요?” 사하나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면 박세빈 씨가 미쳤나요? 저랑 유리 언니가 어떤 사이인지 모르는 건가요?” “그러니까 내가 이 얘길 빨리하는 거지. 네가 보기엔 이거 심각한 문제 아니야?” 류수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사하나에게 되물었고 그 말에 사하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해졌다. “그래서 넌 갈 거야 안 갈 거야?” 류수미가 다시 물었다. “당연히...” 사하나는 단호히 거절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가 맞선을 본다는 건 분명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거 아닌가요?” “누가 알겠어? 어쩌면 네가 첫 번째일지도 모르지.” “네? 그러니까 지금 박한빈 씨가 맞선을 보면서 새로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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