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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또 한 번의 거절: Chapter 861 - Chapter 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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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1화

사진도 초등학교가 설립된 후 1기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거기에는 상세한 장부 기록, 기부금의 사용처, 고용된 교사들의 자격,증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이건...”도아린이 배건후를 올려다보았다.배건후는 그녀의 손에서 사진 한 장을 빼앗았다. 그 사진에는 모든 교사와 학생의 이름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은 날짜까지 적혀 있었다.“우리가 결혼하고 나서 내가 처음으로 기부한 초등학교야.”도아린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이 더 크게 떠졌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건후 씨가 기부한 학교라고? 하경 씨가 한 게 아니라?’배건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고 그 말은 도아린을 더욱 충격에 빠뜨렸다.“우리가 결혼한 3년 동안 난 매번 결혼기념일마다 두 곳의 학교를 기부를 했어. 모든 돈의 출처도 기록되다 있거든. 믿기지 않으면 직접 가서 확인해 봐.”영수증을 쥐고 있는 도아린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하지만 하경 씨가...”“하경이는 워낙 오랫동안 남쪽 변방 지역을 돌아다녀서 교육 자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이 초등학교도 하경이가 도움을 줘서 설립된 거야.”배건후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한 손으로 화장대를 짚고 다른 손으로 학교의 영수증을 꼭 쥐었다.한 장은 원본 영수증 다른 한 장은 복사본이었다.아래쪽에는 그의 사인이 적혀 있었는데 ‘배건후’라는 세 글자는 아주 세련되고 힘 있는 필체로 쓰여 있었다.도아린은 급히 다른 영수증들을 찾아 시간 순서대로 나열했다. 확인한 결과, 배건후가 말한 대로 매년 기부한 날짜는 모두 그들의 결혼기념일이었다.그들의 결혼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그들이 언제 혼인신고를 했는지 몰랐다.배건후는 도아린에게서 영수증을 빼앗아 다시 꺼내 놓고 비교했다.육하경이 초등학교에 기부한 날짜는 지난번 경매 행사 때였다. 그가 직접 나서서 기부한 것이 아니라서 사인도 없었다.전국에 있는 7개의 아린 초등학교가 있었다. 두 사람이 결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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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2화

도아린이 배건후의 손을 밀어냈다.“하경 씨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해도 제가 건후 씨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예요. 영안실에 있는 건 분명 육하경이에요. 그 문신, 반은 제가 제 손으로 새긴 거니까요.”시간이 촉박해서 조작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어쩌면 육하경이 정말 미리 계획을 세우고 죽은 척 사라지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육하경을 돕던 사람이 그를 배신하고 그 계획을 이용해 육하경을 완전히 보내버렸을지도 모른다.배건후는 도아린의 눈에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냈다.“육하경이 죽었는지 아닌지는 경찰이 조사할 거야. 나는 단지 네가 남의 잘못을 스스로 짊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야. 네 선택은 언제나 옳았어.”도아린은 순간 코끝이 찡했다.율이의 죽음은 그녀에게 놓고 말해서 평생 짐으로 될만한 일이었다.‘그때 율이의 아버지와 양육권을 두고 다퉜더라면 괜찮았을까? 비록 이길 가능성은 적다고 해도 시도라도 해봤다면 율이가 죽는 걸 막을 수 있었을까? 그때 경찰서에서 율이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육하경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었을까?’하지만 아무리 가설을 한다고 해도 이미 일어난 일이었기에 달라지는 건 없었다.도아린은 갑자기 피로감이 밀려오는 듯했다. 요즘 모건 그룹과 JS 픽처스의 업무로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제대로 된 잠을 잔 적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외로움과 털어놓을 곳 없는 이 막막함은 늪과 같이 그녀를 점점 깊은 곳으로 끌어당겼다. 밤이 깊어질수록 이런 복잡한 감정의 응어리들은 그녀를 괴롭히기만 했다.도아린은 이제 배건후를 완전히 놓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해준 위로는 그 어떤 말보다도 효과가 있었다. 약간 서러워질 정도로 말이다.배건후는 그녀의 감정이 조금 누그러진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다독이려 했다.“아가씨!”한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일북이 아래층에서 소리쳤다.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도아린은 재빨리 배건후의 손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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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3화

“그럴 필요 없어요.”배건후는 몸을 돌려 차 키를 집어 들고는 빠르게 차에 시동을 걸었다.유태희는 도아린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저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 좀 무서워서...”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다시 진통이 시작되었고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았다.도아린은 아무 말도 없이 뒷좌석에 올랐다.일북이 그녀의 지시를 기다리자 도아린은 서류 가방을 그에게 넘기며 뒤따라오라고 했다. 혹시라도 무언가 들어올려야 할 일이 생기면 사람이 많을수록 편하니까 말이다.민호준은 원래 아내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녀가 도아린에게 더 의지하는 것 같았기에 조수석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배 대표님, 이 은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오늘 일은 제가 꼭 기억하고 있을게요!”“별일 아닙니다.”배건후는 핸들을 꽉 잡으며 병원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민호준은 병원에 전화를 걸어 미리 조치를 취했다. 그들이 예약한 병원에서는 산후조리까지 포함된 서비스를 제공했기에 연락을 받은 후, 수술실과 조리원 모두 즉시 준비 태세를 갖췄다.유태희가 너무 긴장하지 않도록 도아린은 그녀의 허리를 마사지해 주며 가벼운 대화를 이어갔다.민호준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아내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고 두 눈엔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다.배건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도아린은 제일 긴장하고 있는 건 배건후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차가 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의료진이 숙련된 손길로 유태희를 눕히고 수술실로 향했다.한 시간 정도 지나자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오더니 말했다.“제왕절개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민호준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사인을 하는 손마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그는 마치 뜨거운 불가마 위 개미처럼 제자리에서 맴돌았다.주차를 하러 간 배건후가 올라오지 않자 도아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문 너머로 한쪽에 기대어 서 있는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도아린은 조심스레 문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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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4화

배건후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그의 초점이 도아린의 얼굴에 맞춰졌다가 이내 흐려졌다.복도에서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배건후의 눈빛이 점차 맑아졌다.도아린은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가볍게 그의 등을 두드렸다.“다 지나갔어요. 재희 씨가 겪은 일은 그저 예기치 못한 사고였을 뿐이에요.”배건후는 뭐라 말하려 했지만 도아린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가요. 태희 씨 아이 보러.”배건후는 맞잡은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를 감싸고 있던 어둠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도아린이 살짝 힘을 줘서 그를 안으로 이끌었다.민호준은 그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머금고 다가와 말했다.“감사합니다, 배 대표님. 아린 씨도 감사해요. 제 아내와 딸 모두 무사하대요! 전...”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얼굴을 감싸 쥐고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태희 씨는 아주 강한 분이세요.”도아린이 위로를 건넸다.“태희 씨가 먹을 수 있는 거라도 준비해 놓읍시다.”“네.”민호준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이미 산후조리원에 연락해 두었어요. 준비가 다 되면 곧 데리러 올 거예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산후조리원에서 유태희를 데려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도아린과 배건후는 자리를 떠났다.“운전할 수 있겠어요? 제가 일북을 시켜서 데려다주라고 할까요?”눈치가 빠른 일북이 일남을 꼬집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일남은 아마 반대 의견을 냈을 것이었다.배건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일북과 일남의 표정을 살펴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건후 씨 좀 데려다주고 올게. 물어볼 게 좀 있어서 말이야.”배건후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차 열쇠를 도아린에게 건네며 조수석에 앉았다.할 말이 있다고 했지만 도아린은 차 안에서 내내 침묵을 유지했다.거의 도착했을 때, 배건후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으며왠지 모를 쓰라린 감정을 담고 있었다.“내가 재희 씨를 찾았을 때 말이야. 재희 씨는 창고에 있었어.”그는 두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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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5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태아는 이미 숨이 끊어진 채로 끌려 나왔다.간단하게 처리하고 나서 고성만이 강재희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마을 사람들은 개를 풀어서 그들을 추격했고 고성만은 배건후에게 강재희를 데리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는 온몸이 강재희의 피로 흠뻑 젖어 있었기에 이를 이용해 마을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유인하며 시간을 벌어주려 했다.도아린은 에이트 맨션 앞에 차를 앞에 세웠다. 배건후가 얘기를 끝낸 후에도 그녀의 가슴속에 엉켜있는 감정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그 마을 사람들은 단지 가문의 대를 잇겠다는 이유로 여자를 사들였고 그녀의 생사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무지하고 잔인하며 폭력적인 사람들이었다.배건후는 손을 꽉 쥐었다. 그는 시선을 내리깔고 조용히 말했다.“나는 네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도아린은 배건후의 생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그 작전에 대해 말할 수 없었고 강재희의 사생활도 지켜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심리적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배건후가 얻은 결론은 바로 도아린과 관계를 가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가 임신을 하지 않으면 강재희처럼 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도아린은 그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생각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뒤통수를 맞자 배건후는 순간 멍해졌다. 그는 당황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바보 아니에요? 임신이 걱정되면 피임을 하면 되잖아요! 약을 먹을 수도 있고 수술을 해도 되고... 그런데 왜!”‘그런 얘기를 할 수 없었다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었잖아!’하지만 배건후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강아지가 주인에게 혼나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도아린은 비웃듯이 말했다.“건후 씨, 그럼 예전에 제가 먼저 유혹했을 때 말이에요. 절 모질게 대하면서 거절했잖아요. 게다가 막말까지 했고요. 사실 속으론 엄청 기뻤죠?”배건후의 귀가 붉어졌다. 그는 도아린의 시선을 피해 창밖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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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6화

“아가씨!”일남은 눈치를 주던 일북을 무시하고는 불만스럽게 말했다.“배 대표님 말이에요. 예전에 아가씨를 모욕하고 괴롭혔잖아요. 왜 아직도 저 사람을 신경 쓰는 거예요?”“교통사고 때도 안 죽었으면서 괜히 죽은 척해서 아가씨가 죄책감을 느꼈었잖아요. 아까도 그냥 내버려뒀어야죠. 저렇게 혼이 나간 모습이면 분명 운전하다 사고가 날 거예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죠.”“일남아, 입 다물어!”“아가씨를 모시고 다닌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줘야 해!”도아린이 두 사람을 나무라며 말했다.“일남이 말도 맞고 일북이 한 일도 틀리지 않았어. 잘못한 건 나야. 그러니까 그만 싸워.”일남은 살짝 찔린 듯 코를 문지르며 말했다.“아가씨, 제가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헛소리한 거예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말을 마친 그는 슬쩍 일북의 얼굴색을 살폈다.일북은 두 손으로 핸들을 움켜쥐고 앞을 응시하며 운전을 했다.“건후 씨가 잘못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건후 씨에게도 사정이 있었어.”일남은 그녀가 배건후를 변호하려는 줄 알고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일북이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그는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일남이한테 무섭게 굴지 마.”도아린이 일북의 좌석을 툭 치며 말을 이었다.“건후 씨에게 사정이 있다고 해서 용서한다고 한 적은 없어.”“그럼...”일남이 일북을 한번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배 대표님을 받아들이실 건가요?”“뭐라고?”“배 대표님은 아가씨를 붙잡으려고 하잖아요. 앞이 보이는 사람이라면 다 눈치챌 수 있을걸요? 배 대표님은 후회하고 있고 아가씨와 다시 결혼하고 싶어 해요. 하지만 어떤 사정이 있다고 한들, 아가씨한테 못된 짓을 했다면 배 대표님은 좋은 남편이 아니에요. 배 대표님보다는 차라리 강 대표님을 선택하는 게 낫죠!”“일남아, 선 넘었어.”일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변 공기가 가라앉았다.“아가씨의 일에 네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일남은 일북이 무서웠기에 불만을 억누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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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7화

“강 대표님이 정말 아가씨를 좋아한다면 남자로서 정정당당하게 쟁취했어야 해.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게 아니라! 배 대표님을 함정에 빠뜨린 이상 나중에는 아가씨까지 노릴 수도 있어! 안민아 씨랑 도유준의 일 말이야. 진짜 강 대표님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일남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강재민이 도아린을 얻기 위해 수많은 더러운 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전까지 그의 입장은 변함없었다. 일남은 배건후가 누구에게 잘해 주든 상관없었다. 도아린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그건 그의 잘못이었다. 반대로 강재민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짓밟더라도 도아린에게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용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북의 분석을 들으니 그는 자신의 생각이 너무 순진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강재민은 도아린을 손에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아가씨한테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해도 계속 그럴까? 만약 아가씨를 손에 넣고 나니 기대했던 것처럼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움직였다면?’ 그때면 도아린이 상처를 받을 것이었다. 일북이 문을 열면서 말했다. “돌아가서 반성해.” 일남은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방을 나가려다 말고 다시 돌아왔다. “다른 방은 강 대표님 방이잖아. 난 거실에서 안 자. 네 방에서 잘래.” 말을 미친 그는 욕실로 들다 갔다. “나 잠버릇 없어. 얌전히 있을게.” 일북은 미간을 찌푸렸다.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그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도아린의 방으로 가서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님, 주무시는 중이세요?” 도아린이 문을 열었다. 그녀 손에는 갈색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들어와.” 일북은 잠시 머뭇거리다 방에 들어갔다. 탁자 위에는 여러 장의 사진과 서류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대충 훑다 본 후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남은 마음이 급하고 직설적이지만 악의는 없습니다. 그러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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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8화

“사실은 말입니다. 손보미 씨가 이미 세 번이나 신청했거든요. 도아린 씨가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앞으로 다시는 방해하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죠.”경찰이 말했다.도아린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온갖 수를 써서 날 찾은 건 분명 그에 따르는 목적이 있을 거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손보미를 만나러 갈 필요는 없었기에 그녀는 회사로 향했다.회사에 도착하자 윤가인이 이름 후보를 몇 개 가져왔다. 도아린은 ‘레브’라는 이름을 선택했다.도아린은 윤가인에게 최대한 빨리 변경 절차를 밟으라고 했다.“그리고 이 프로젝트 말인데요. 배... 배건후 씨가 맡아서 진행했다고 하더군요.”윤가인이 또 다른 서류를 건네면서 말했다.서류를 펼쳐 본 도아린은 비웃음을 흘렸다.신지훈이 정말이지 온 힘을 다해 배건후를 띄워주고 있었다.도아린이 전에 신지훈더러 조사하라고 했던 강재민이 중단시킨 프로젝트의 건축 자재에 대한 서류였다. 아마도 신지훈이 조사하고 나서 공을 세울 기회를 배건후에게 준 것이었다.“배건후 씨가 맡게 놔두세요.”도아린은 거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 다른 어려움이 없다면 그녀라도 장애물을 놓아야 했다.도아린은 퇴근 직전까지 바쁘게 일했다. 그리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급한 일이 생겨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하루 종일 기다린 손보미는 욕설을 퍼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다음 날도 그녀는 계속해서 기다렸지만 도아린은 오지 않았다.사흘이 지나자 손보미는 도아린이 자신을 가지고 노는 거라고 확신했다. 애초부터 만날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라고 말이다.그때, 경찰이 와서 그녀에게 면회 소식을 알렸다.면회실에 들어선 손보미는 도아린을 보자마자 살기를 뿜어냈다.예전의 화사하고 아름다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원래 단정하던 긴 머리는 싹둑 잘라버려서 그런지 오늘따라 건조하고 푸석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시술을 받을 수 없어서인지 얼굴은 점점 변형되었고 콧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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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9화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손보미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성형 수술을 한 남궁유민 변호사님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과연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까? 설령 얼굴을 또 바꿨다 해도 DNA까지 바꿀 순 없잖아. 경찰이 수색하고 있으니 곧 잡힐 거야!”“아니야, 아니라고!”손보미는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경찰이 감정을 가라앉히라고 호통쳤지만 손보미는 온몸을 떨며 안절부절못했다.“설마 남궁유민 변호사가 내 약점을 잡고 경찰들을 협박하면 경찰이 널 풀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네 딸 율이 말이야... 살 희망이 있었는데도 남궁유민 변호사가 장기 기증 동의서에 서명해서 죽었어!”“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손보미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그녀는 도아린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경찰이 재빠르게 그녀를 제압했다.“손보미 씨, 진정하세요!”“율이는 무사할 거야! 절대 무사할 거야... 잘 보살필 거라고 나한테 약속했었다니까? 우리 세 명이서 함께할 거라고 약속했단 말이야! 도아린, 거짓말이지? 맞지?”손보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경찰에게 눌려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볼을 타고 눈물이 쏟아졌다.그녀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율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녀는 율이를 곁에 두기로 했다.처음엔 율이를 인질로 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함께 지내면서 율이의 착하고 속 깊은 모습에 점점 정이 들었다.남궁유민이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두를 때, 율이는 따뜻한 물을 받아 그녀더러 목욕을 하라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율이는 조심스럽게 연고를 발라 주면서 물었다.“언니를 안 좋아해서 때리는 거예요?”남궁유민이 율이를 떠나보내자고 했을 때, 손보미는 막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병약한 딸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부녀 사이라는 건 변함없었다.생활이 조금 힘들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율이는 보육원에서도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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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0화

제복을 입었을 때는 늠름했는데 지금은 치마를 입고 가발까지 써서 그런지 고민성은 유독 우아하게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도아린으로 분장한 고민성은 손을 들어 배건후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했고 두 사람 사이의 눈빛은 아주 끈적했다.“나 엄청 기다렸다니까. 이제 빨리 가자.”배건후는 그의 손을 단숨에 쳐내고 도아린의 손에서 차 키를 가져갔다.도아린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골반을 흔들면서 걷는 고민성을 보고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경찰이 다가오더니 도아린에게 휴게실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휴게실에 막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고 경찰은 차를 따라주겠다며 자리를 비웠다.도아린은 창가 쪽으로 갔다. 그녀는 바깥 상황을 볼 수 있으면서도 공격당하지 않을 만한 위치를 찾아서 전화를 받았다.“말하세요.”“육씨 가문에서 육하경 씨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육하경 씨가 그들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걸 몰랐죠. 육하경 씨는 죽었지만 그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어요.”강재민의 목소리는 경멸스러움과 조소로 가득했다.“그리고 또 하나 신기한 소식이 있어요. 육청아 씨는 애초에 육씨 가문의 먼 친척이 아니라는 거예요. 육청아 씨는 나영옥 어르신이 며느리로 삼으려고 데려온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계속 육청아 씨를 통제할 생각이었는데 육청아 씨가 되려 육하경이 육씨 가문을 반격하는 수단으로 되어버린 거죠.”도아린이 미간을 좁혔다.그녀가 있는 곳에서는 유치장 앞 도로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경찰이 남궁유민을 어떻게 체포했는지 알 수 없었다.창문을 열려고 하던 찰나, ‘쿵’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곧이어 유리창에 불길이 일렁이며 비쳤다.“어디예요?”강재민이 다급하게 물었다.도아린은 그의 질문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화를 끊고 밖으로 뛰어나갔다.차를 가져다주려던 경찰도 소리를 들었는지 손에 든 종이컵을 꽉 쥐어 구겼고, 뜨거운 물이 손등에 쏟아졌다. 그는 곧장 밖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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