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또 한 번의 거절: Bab 911 - Bab 920

924 Bab

제911화

도아린은 진심으로 기뻤다.처음 대기업 대표 자리에 앉았을 때 그녀는 뚜렷한 목표도 없이 그저 기존 계획을 무난히 이어가기에도 벅찼다.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사업 기회를 읽고 판단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성장의 곁에는 늘 배건후가 있었다.그의 빠르고 날카로운 사업 감각은 언제나 도아린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차가 멈췄을 때도 도아린은 여전히 기분 좋은 여운에 젖어 있었다.배건후가 조심스럽게 안전벨트를 풀어주고 도아린을 이끌어 차에서 내려 조용한 샤부샤부 가게로 향했다.배건후는 아무 말 없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로 주문했다.도아린은 익숙한 손길로 주문서를 다시 확인하며 그의 입맛에 맞는 메뉴도 꼼꼼히 포함시켰다.“오늘은 신 대표의 송별회였잖아요. 전화 한 통쯤은 해야겠어요.”도아린이 핸드폰을 꺼내려는 순간 배건후가 슬쩍 그것을 가로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굳이 안 해도 돼. 알아서 챙길 테니까.”“...혹시 신 대표랑 짜고 날 불러낸 거예요?”도아린이 피식 웃었다.그녀는 이미 눈치챘다.그가 건넨 봉투 안엔 이미 준비 완료된 서류가 가득했고 내용상 급한 것도 아니었다.‘굳이 지금 불러낸 이유는 아마 강재민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배건후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번 일, 마음에 들었다면... 나 보상 하나 받아도 돼?”도아린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휴대폰을 들어 톡톡 두드렸다.“이미 친구 수락했어요.”그는 그렇게 많은 친구 요청을 보내놓고도 정작 친구로 추가되자마자 딱 한 문장만 보냈다.‘잘 자.’그게 정말 단순한 인사였는지 아니면 그녀를 낚기 위한 계산된 한 수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도아린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배건후가 조용히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크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가락을 단단하게 감쌌다.음식이 나왔지만 그는 좀처럼 손을 놓지 않았다.그러다 도아린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그제야 아쉬운 듯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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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2화

“...누가 그래요?”강재민이 고개를 들었다.눈은 약간 충혈돼 있었지만 그 안엔 또렷한 이성이 빛나고 있었다.그는 말없이 와인 병을 따 다시 잔을 채웠다.자기 잔에 먼저, 그리고 신지훈의 잔에도 조용히 와인을 따랐다.“신 대표님의 사업장은 전부 항성에 있는 걸로 아는데요.”그가 비릿하게 웃었다.“그런 분이 굳이 연성까지 와서 배건후 뒷수습을 한다? 이렇게 자꾸 밖으로 나돌면 사모님이 딴 남자랑 바람이라도 피우면 어쩌시려고요?”신지훈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말은 없었지만 눈빛만으로도 경멸이 가득했다.“듣자 하니, 사모님한테 붙어 다니던 소꿉친구가 있다던데요?”강재민은 잔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지난달 동창회에서 우연히 재회했다더군요. 요즘은 매일 붙어 다닌다던데... 그거 알고는 계셨어요?”신지훈이 들고 있던 잔이 허공에 멈췄다.그의 표정이 서서히 식어가며 냉기 어린 침묵이 테이블 위로 내려앉았다.“강재민 씨.”신지훈이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배건후에게 쓰던 방식 나한테는 안 통해요. 난 내 아내와 모든 걸 공유하고 있거든요.”“그래요?”강재민이 비웃듯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사진 한 장을 꺼내 화면을 신지훈 쪽으로 내밀었다.그 사진 속엔 신지훈의 아내가 그 소꿉친구의 팔에 팔짱을 끼고 웃고 있었다.그리고 쇼케이스 너머 사파이어 커프스단추가 눈에 띄게 전시돼 있었다.“이 커프스단추...”강재민이 화면을 확대하며 말했다.“신 대표님은 받아보셨나요?”신지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탕!잔이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와인잔 바닥이 깨졌다.하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냅킨을 들고 천천히 입가를 닦았다.“아린 씨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전부 조사하는 게 내 원칙이에요.”강재민은 무심하게 말했다.“누가, 어떤 꿍꿍이로 다가오는지 모르니까. 게다가...”그가 시선을 치켜들었다.“신 대표가 굳이 항성의 가족과 사업 다 제쳐두고 연성까지 와서 배건후를 돕는 이유가 순수한 우정이라는 말, 난 죽어도 못 믿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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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3화

“배건후는 오직 도아린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서였지 무슨 개똥 같은 임무 따위는 핑계에 불과했다고! 고상한 척 좀 그만해!”강재민은 주먹을 쥔 채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결국 마감 시간이 다가오자 웨이터가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건네고 나서야,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계산이 이미 끝나 있었고 신지훈이 다녀간 자리엔 냅킨 하나만 남아 있었다.그 시각, 도아린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만 기분만큼은 상쾌했다.샤부샤부로 달궈진 체온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고 배건후가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줄 때까지도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차가 멈췄지만,도아린은 곧장 내리지 않았다.“건후 씨. 연남 신도시 프로젝트에 육원 그룹 인수, 그리고 이제 요양센터 일까지...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요? 고유리 씨에게 맡기고 같이 진행하게 하면...”“괜찮아. 나 혼자서도 충분해.”배건후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손을 들어 그녀의 단발머리를 조심스레 넘겼다.그리고는 장난스럽게 그녀의 귓불을 가볍게 잡았다.“당신은 진주 귀걸이 했을 때가 더 예쁜 것 같아.”도아린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조수석의 선바이저를 내려 거울을 열었다.“블루 사파이어 귀걸이도 꽤 괜찮은데요?”사실 그녀는 화이트 계열의 보석을 더 좋아했지만 이 귀걸이는 윤명희가 직접 선물해 준 것이기에 쉽게 바꾸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배건후가 조용히 팔걸이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건넸다.상자 안에는 진주 귀걸이가 들어 있었다.그것은 바로‘인어의 눈물’, 도아린이 과거에 끝끝내 손보미에게 넘기지 않으려 했던 그 귀걸이였다.“이 진주는... 어떻게 건후 씨가 가지고 있어요?”그녀가 놀라서 묻자 배건후는 대답 대신 미소만 지으며 말했다.도아린은 그가 갖은 방법을 써서 서대은한테서 이 귀걸이를 빼앗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도아린은 당시에 손보미에게 귀걸이를 내어줄 생각이 없었고 배건후도 이미 그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이 귀걸이 한 거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그녀는 거절하지 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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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4화

술에 취한 강재민은 도아린의 집 앞에서 휘청거리다 차 안에서 서로를 다정하게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목격했다.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그 순간 폭발했다.체면 따윈 중요하지 않았고 그는 그대로 달려가 차창을 세게 두드렸다.그가 도아린과 사귀던 시절에도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와 교감한 적은 없었다.하물며 그녀를 배신했던 전 남편 배건후에게 그런 자격이 있을 리 없었다.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도아린은 급히 배건후의 가슴을 밀쳐냈다.배건후는 고개를 들어 강재민을 확인하고는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그는 조용히 도아린의 어깨를 다독이고 곧장 차에서 내렸다.강재민은 차 문을 세차게 잡아당겼지만 잠긴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창문을 두드렸다.“아린 씨... 나, 후회돼요. 한 번만 기회를 줘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퍽!순식간에, 배건후의 주먹이 강재민의 얼굴에 날아들었다.그가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는지 그 한 방에 담겨 있었다.구출 작전의 성공을 위해 지금껏 인내해 왔지만 더는 그럴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비틀거리던 강재민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일어나기도 전에, 배건후는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도아린을 이용해서 너희 집안 이미지 회복하려던 수작, 내가 모를 줄 알았냐? 현무 자리를 내준 것도 도아린이 널 붙잡고 라윤주 자리를 양보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지!”그리고는 다시 주먹을 날렸다.퍽!강재민은 몇 걸음 뒤로 비틀거리다 결국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술기운이 어느 정도 빠진 그의 얼굴에 분노가 어렸다.피범벅 된 입가를 닦으며 강재민이 낮게 말했다.“당신이 나보다 나은 게 뭐야? 당신도 아린 씨가 널 용서하지 않을까 봐 일부러 죽은 척하고 죄책감 느끼게 만들었잖아. 그걸 노린 거 아니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어?!”배건후는 조소 섞인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봤다.그의 표정에서 한기마저 느껴졌고 그 차가운 기운에 강재민의 눈에는 처음으로 두려움이 스쳤다.겨우 일어난 강재민에게 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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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5화

그때의 강재민은 믿고 있었다.자신이 LY에서 고위직에 오르면 도아린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그렇게 되면 아버지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도아린이 바로 LY의 최고 권력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는 뼛속 깊이 깨달았다.자격이 없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그리고 배건후가 굳이 말하지 않은 게 하나 더 있었다.도아린이 배건후가 한경 그룹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걸 눈감아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강재민은 이미 두 사람 사이가 다시 가까워질까 봐 두려웠다.그 두려움이 그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 자신을 무너뜨리고 말았다.도아린은 강재민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그리고 그녀는 이제, 답을 알고 있었다.“강재민 씨. 그래도 내 동생을 도와줘서 고마웠어요.”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단호했다.“앞으로 도지현이랑 친구로 지내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우리 둘 사이는 여기까지예요.”“아린 씨...”강재민이 다가서려 하자 배건후가 조용히 도아린을 자신의 뒤로 감쌌다.강인한 어깨, 결연한 얼굴.그는 마치 어떤 위협에도 무너지지 않을 거대한 산처럼 도아린 앞을 지켰다.더는 마음을 숨길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이제 그는 당당히 그녀를 지킬 수 있는 남자였다.배건후의 묵직한 시선에 강재민은 끝내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평소 매력적이라던 외모는 초라하게 일그러져 있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입안에 고였던 피를 뱉었다.그리고 옷깃을 다듬은 뒤, 조용히 말했다.“미안해요.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앞으로 공적인 일 외에는 더는 방해하지 않을게요.”그는 마지막으로 도아린을 바라보더니, 이번엔 배건후를 향해 낮은 경고를 던졌다.“비록 내가 아린 씨와 이어지진 못했지만 당신이 또다시 그녀를 배신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아린 씨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해서, 방심하지 마. 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두고 보자고.”그 말을 끝으로 강재민은 길가로 나가 택시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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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6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집에 도착하자 일남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놨다.“갈비뼈가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전에 유치장에 있을 때 남궁유민 차가 폭발했잖아요? 그때 도아린 씨를 안고 같이 넘어지면서 또 다쳤거든요. 아까 강재민이랑 싸울 때 그 부위를 건드렸을 수도 있어요...”도아린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고개만 살짝 끄덕이면서 담담하게 대답했다.“응, 알겠어.”일남은 일북을 힐끔 바라봤고 일북은 눈빛으로 먼저 올라가라는 신호를 보냈다.“아가씨, 일부러 숨기려고 한 건 아닙니다.”“알아. 나 안 화났어.”도아린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사실 아까 대충 눈치챘거든.”야밤에 신지훈이 간호사 유선미를 데리고 배건후에게 수액을 놓으러 간 걸 봤다. 그 사람 몸에는 분명히 예전부터 앓고 있던 상처가 남아 있었다.배건후는 약한 척해서 동정을 사려 하지 않았고 도아린 역시 그가 얼마나 진심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주말이 되자 모두 함께 공왕부로 향했다.입구에 도착하고 나서야 도아린은 진범준 부부가 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부모님은?”“주 대표님이랑 장비 사러 가셨어.”진수혁은 편안한 캐주얼 차림으로 변슬기 손에서 자연스럽게 배낭을 받아 메며 말했다.“출발할 때 들었는데 부모님이 주 대표님이랑 같이 자가 여행 떠나신다고 하더라고.”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고 있는 눈치였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도아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배건후는 배석준 회장님 장례 치르러 갔어.”김지민은 아직도 운전기사에게서 보상금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려고 버티고 있었고 끝까지 합의서에는 사인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하지만 배건후는 김지민 동생의 약점을 찾아냈고 오늘 반드시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동생을 감옥에 보낼 거라고 통보했다. 김지민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그 집안의 욕심을 생각하면 그들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분명히 배건후에게 또 뭘 요구하려고 들 것이다.하지만 배건후는 배석준처럼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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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7화

진수혁은 변슬기의 얼굴이 붉어진 걸 못 봤거나 봤더라도 모른 척했는지 담담히 말했다.“우린 여기서 기다릴게.”도아린은 변슬기 머리 위에 달린 풍선을 가리켰다.“이렇게 눈에 띄는 표시도 있으니까 제가 금방 찾으러 갈게요. 오늘 관광객 많으니까 지금 덜 붐빌 때 구석구석 잘 봐요.”“길 잃으면 전화해.”진수혁은 풍선 끈을 가볍게 당기며 변슬기를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일북은 도아린 뒤를 바짝 따라가며 주변을 날카롭게 살폈다. 혹시나 누가 해코지할까 혹은 누가 몰래 물건을 훔쳐 갈까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반면 일남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관광에 진심이었다.관광 가이드 옆에 붙어 설명을 듣고는 돌아와서 일북에게 흥분한 얼굴로 그대로 전달했다.“아까 가이드가 그러는데 양평산 대군이 남자인데 얼굴이 여자처럼 생겨서 어떤 후궁이랑 닮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황제가 유독 아껴줬대.”일북은 그런 일남의 말에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을 뿐 시선은 한시도 도아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둘이 가서 마음껏 구경하고 와.”“아가씨...”도아린은 손목에 찬 긴급 호출 시계를 들어 보이면서 웃었다.“무슨 일 생기면 연락할게. 오늘은 놀러 나온 거니까, 일은 잠시 내려놔.”도아린의 반복된 설득에 일북도 결국 잠깐 자유시간을 허락받았다.일남은 일북을 끌고 다니며 계속 얘기했고 도아린은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려던 참이었다.그때 갑자기 머리 위로 그늘이 드리웠다.오늘 날씨는 참 좋은데 운동복만 입어도 괜찮지만 햇살은 은근히 따가워서 그늘 아래는 금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도아린은 마침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그녀는 잠깐 고개를 들어 양산을 쳐다보고는 옆쪽에 서 있는 송 비서를 바라보았다‘아 맞다! 얘도 있었지. 애매하게 끼어 있는 애 하나 더.’그렇게 해서 도아린은 송 비서와 함께 느긋하게 궁 안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가끔 변슬기를 마주치면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지나쳤다.공왕부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곳이라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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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8화

“아!”변슬기는 병아리마냥 진수혁 차로 옮겨졌다.도아린은 웃으며 문을 닫고 조수석에 올라탔다.그녀는 휴대전화로 사진 하나를 골라 일남에게 전송했다.일남은 안전벨트를 하려던 참 알림 소리에 바로 폰을 꺼내 들었다.사진을 본 그는 입꼬리를 실룩이며 말했다.“아가씨 사진 실력이 정도면 필터도 울고 갈 수준인데요.”“정말? 나도 볼래!”송 비서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었다.“앉아. 운전해야 해”일남은 그의 머리를 눌러 다시 자리로 돌려보냈다.“시내에선 뒷좌석 안전벨트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연성은 관리가 그렇게 심해? ”송 비서는 투덜대며 안전벨트를 잡아당겼다.일남은 일북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너도 보지 마. 그냥 안 본 셈 쳐.”그 사진은 일남이 일북을 힐끔 바라보는 순간을 캡처한 것이었다.일북은 정면만 똑바로 응시하는 완전 군인 양식이었고 일남은 몰래 보는 범인 양식이었다.하지만 일북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시동을 걸어 배건후 차량을 따라갔다.“왜 웃어?”배건후는 도아린이 조수석에서 혼자 피식거리는 걸 보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아무것도 아냐. 그냥 재밌는 사진 하나 건졌어.”도아린은 휴대폰을 집어넣고 밀크티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김지민네 진짜 끝도 없네. 혹시 배 회장님 유골 넘기면서 돈 요구한 거 아냐?”진옥경 고모 장례 때도 남편이 돈부터 요구했었다.다행히 진가에서 능력 있는 변호사를 구해서 사망 후에도 부부 재산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배석준 역시 김지민 가족한테는 그냥 은행 통장 같은 존재였고 이제 더는 못 빨아먹으니까 마지막으로 크게 한몫 뜯어내려고 하는 거였다.“2억.”배건후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티슈를 꺼내 도아린에게 건넸다.도아린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방금 마신 밀크티를 뿜을 뻔했고, 그 티슈로 입까지 닦았다.“진짜 줬어?”“아니.”배건후는 새 티슈를 또 건네며 그녀의 티슈 재활용에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눈빛엔 오히려 다정함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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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9화

“지금 두 분은 어느 정도까지 간 거예요?”집에 도착하자마자 도아린은 본론부터 꺼냈다.그녀는 오빠와 변슬기 사이가 눈에 띄게 가까워진 걸 단번에 눈치챘다.“아...아니에요!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변슬기는 난간에 양손을 올린 채 눈을 피하며 말끝을 흐렸다.“시작은 안 했어도 뭔가 있었네요?”“크흐흑!”그 말에 변슬기는 자신이 삼킨 침에 갑자기 사레가 들려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고 얼굴은 벌게졌다.변명하려 할수록 기침은 더 거세졌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도아린은 웃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이고 물 한 잔을 건넸다.“너무 걱정 마요. 변슬기 씨 덕분에 우리 집에 큰 도움 됐잖아요. 우리 가족의 은인이에요!”“진짜 아니에요...”변슬기는 눈물까지 닦으며 손을 저었고 표정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그날 밤 나랑 같이 집에 안 갔잖아요. 여기서 잤던 거 아니에요?”“그랬었죠. 그런데요...”그녀는 작아진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아무 일도 없었어요.”도아린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설마 우리 오빠가 그쪽에 문제 있어요?”‘설마 그럴 리가... 아빠는 나이 들었어도 정력이 넘치시던데 오빠도 피는 못 속일 텐데?’변슬기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그날 서로 안기도 했고 키스도 했지만 마지막 순간 진수혁이 스스로 멈췄고 그는 침실을 양보하고 자신은 거실 소파에서 잤다.다음 날 술이 깬 듯한 표정으로 전날 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겼고 변슬기도 굳이 꺼낼 수 없었다.그 후로도 그들의 사이는 은근하게 가까워졌지만 딱히 확실한 정의는 내려지지 않았다.“나중에 내가 오빠한테 물어볼게요.”“안 돼요!”변슬기는 도아린의 팔을 움켜잡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빛으로 말했다.“도 선생님...제 신분이 황태자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거 잘 알아요. 남자들은 술 먹으면 착각할 수도 있고...다행히 선을 넘지는 않았으니 그냥 없던 일로 해주세요.”도아린은 그녀의 손을 다독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하지만 우리 진씨 가문은 책임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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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0화

변슬기는 재빨리 진수혁의 등 뒤로 숨었다.진수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상황을 파악하고 조용히 말했다.“이것 좀 부엌에 가져다줘.”“네!”변슬기는 배건후가 문 앞에 두고 간 봉투를 잽싸게 집어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부엌으로 사라졌다.도아린의 셔츠 단추 하나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배건후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며 조심스럽게 게스트룸으로 이끌었다.“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차에 여벌로 둔 옷 있어.”도아린은 황급히 배건후의 손을 붙잡고 재킷을 벗어 돌려주었다.“일북이 근처에 있을 거야. 전화해. 밖에 추우니까 이거 입고 나가.”그녀가 팔을 들자 셔츠는 더 크게 벌어졌고 새하얗고 부드러운 피부가 다시 배건후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눈동자에 번쩍이는 불꽃이 튀었고 그 불씨는 작지만 매섭고 뜨거웠다.도아린은 급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 팔로 가슴을 가렸다. “어서 가.”배건후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도아린은 반사적으로 거부하려 했지만 그는 단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몇 번을 고요히 숨쉬더니 결국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발소리는 집 밖이 아니라 욕실로 향했다.변슬기는 부엌에서 머리를 내밀며 확인하려다 진수혁에게 팔을 붙잡혀 다시 안으로 끌려들어갔다.“생각해봤어? 회사에 남을 거야 아니면 돌아가서 가게를 이을 거야?”변슬기는 고개를 숙이고 포도를 씻었다.자신의 집은 해남에 있는 작은 분식집이었다. 일반 가정에게는 소중한 생계 수단일지 몰라도 재벌가인 진씨 가문 한테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존재였다.부모님은 외동딸인 변슬기가 곁에 있기를 바라며 나중에는 사위를 맞이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진수혁은 진성 그룹의 황태자다. 그에겐 집안도 학벌도 모두 어울리는 배우자가 필요했고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떠나는 순간 진수혁과는 더 이상 인연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계속 머무르면 감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 뻔했다.한참 후 변슬기는 낮은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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