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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1화

도아린이 육민재에게 다시 전화를 걸자, 육민재는 전화기 너머에서 친구와 호텔에서 프로젝트를 논의할 예정이라며 도아린도 관심이 있다면 만나러 오라고 말했다.도아린은 바로 얼굴을 씻고 육민재가 알려준 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밀크티 한 잔을 사서 울렁거리는 속을 달랬다.그렇게 그날, 도아린은 우연히 배건후의 방으로 잘못 찾아갔었다.“감기 걸릴라.”배건후가 티슈를 건넸다. 도아린은 창밖으로 내밀었던 손을 천천히 거두며 티슈를 받았다.“건후 씨.”도아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날 내가 방에 잘못 들어갔을 때... 건후 씨는 그 호텔에 왜 간 거예요?”‘육민재가 말한 투자자가 건후 씨였을까?’배건후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대시보드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담배 한 개를 입에 물고 담뱃갑을 다시 던져놓고 라이터를 찾으려 하자 도아린이 그의 입에서 담배를 빼앗았다.배건후는 잠시 멈칫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그날, 나는 육민재와 프로젝트를 논의하러 간 거였어.”육민재는 그가 가진 프로젝트 중 하나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배건후는 그가 도아린을 자신의 앞에 불러오기만 한다면 육민재에게도 한몫 챙겨주겠다고 했다.그런데 뜻밖에도 배지유가 그곳에 따라가서 배건후의 술에 약을 타 그와 손보미를 이어주려 했던 것이다.배건후는 술을 마신 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미리 방으로 돌아가 찬물로 샤워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그리고 마침 그때 도아린이 그의 방에 들어온 것이었다.그는 약 때문에 이미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고 도아린이 들어오자마자 육민재의 이름을 부르자 질투심에 결국 제어하지 못한 채 폭발했다.그 이후로 배건후는 자신의 시선에서 벗어난 술이나 음료를 절대 마시지 않았고 도아린이 밀크티를 마시는 것조차 막았다.그의 설명을 듣고 도아린은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댔다.‘오해는 이렇게 시작된 걸까?’그 오해의 시작은 결국 서로가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만약 육민재가 그녀에게 투자자가 배건후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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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도아린은 뒤를 돌아보며 배건후에게 뭐 하냐는 눈빛을 보냈다.“혹시 내가 마음이 약해져서 노인네에게 여지를 남겨줄까 그래요?”하지만 지금의 도아린은 그렇게 마음이 약한 여자가 아니었다.예전에 육씨 가문이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을 때도 도아린은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고 도아린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나영옥이 본인의 생일잔치에 도아린을 초대했던 이유는 정말로 자신을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배건후의 태도를 시험하려 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고단수의 노인네는 손보미가 만찬에서 도아린에게 했던 짓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또한 육민재가 그렇게 우연히 다음 날 바로 그녀의 억울함을 증명할 수 있는 영상을 찾은 것도 너무 뻔한 일이었다.도아린은 그나마 있던 옛정으로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녀에게 진흙탕에서 끌어내 주기를 바라는 건 헛된 망상이었다.나영옥은 육민재의 손에 이끌려 차에 오르려다 다시 손을 뿌리치고 도아린의 집으로 다가갔다.“내가 처리할게.”배건후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여전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비를 맞은 탓에 본래 병색이 짙은 그의 얼굴은 더 초췌해 보였다.하지만 그 깊고 날카로운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어르신.”배건후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비 내리는 밤거리에 울려 퍼졌다.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노인의 발이 미끄러져 거의 넘어질 뻔했고 육민재가 급히 부축했다.배건후의 얼굴을 확인한 육민재와 나영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방금까지 손자를 꾸짖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그저 귀신을 본 게 아닌가 애써 눈을 크게 떴다.육민재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지만 아무리 다시 봐도 눈앞의 남자는 배건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건후야. 너... 죽은 거 아니었어?”분명 육청아는 배건후가 죽었다고 말했었다.그래서 주현정은 배건후의 회복을 핑계로 회사의 고위층들이 병문안을 가지 못하게 하고 도아린이 배건후의 대리인 역할을 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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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노인이 불안한 듯 육민재의 팔을 꽉 붙잡았다.그날 약을 탄 일은 가정부만이 알고 있었고 만약 육하경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도아린은 별생각 없이 그 전복죽을 먹었을 것이다.그러면 나영옥의 계획대로 도아린은 꼼짝없이 육씨 가문에 이용당했을 것이고 육씨 가문은 오늘날의 어려움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었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영옥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고 육민재의 팔이 서서히 멍이 들었다.하지만 아픔을 잊은 채 육민재의 머릿속에는 온통 배건후를 설득해 도아린의 집에 들어갈 생각만이 가득했다.“건후야, 3년 전 그 일이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서 너희 둘이 계속 얽히게 된 거야. 너도 도아린 씨와 다시 잘해보고 싶어서 여기 온 거잖아. 내가 들어가서 다 설명할 수 있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아린 씨와 결혼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너희를 이어주고 싶지 않은 욕심에 그랬어. 지금 같이 가서 내가 그때의 일들을 전부 말할게!”자세한 상황을 모르고 있던 나영옥의 얼굴이 굳어졌다.“너 이놈, 아린이를 만나면 잘 사과해! 만약 아린이가 너를 용서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집에 들어설 생각도 하지 마!”“할머니, 제가 잘못했어요.”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배건후는 입가에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배건후는 더 이상 도아린을 향한 마음을 숨길 생각이 없었고 결과가 어떻든, 그는 도아린에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할 생각이었다.“그만 돌아가.”배건후가 두 사람을 쫓아내듯 말했다.“너희가 한 짓을 생각해 봐. 도아린이 복수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육씨 가문의 체면을 지켜준 거야. 나도 옛정을 생각해서 더는 추궁하지 않을게. 그런데도 계속 아린이를 괴롭히면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옛정? 진짜 친구로서 옛정이 있었다면 죽지 않았다는 것도 나한테는 얘기했겠지.’육민재는 씁쓸하게 웃었다.그의 우산은 노인의 머리 위로 가져가고 자신은 거의 다 비를 맞고 있었다.“건후야, 사실 너는 이미 육하경이 바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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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민재야...”나영옥이 목이 메어 육민재의 이름을 불렀지만 육민재는 시선을 돌리며 단호하게 차에 올라탔다.“할머니, 우리는 오지 말아야 했어요.”“하지만 육씨 가문은 이렇게 끝날 수 없어!”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땅을 쳤다.“그때 내가 막지 않았으면 넌 도아린이랑 결혼했을 거고 우리 육씨 가문도 절대로 오늘의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거야.”육민재는 한숨을 쉬며 비와 눈물로 젖은 얼굴을 손으로 훔쳤다.나영옥은 평생 강하게 살아왔고 그는 그런 할머니의 손에 키워졌기에 도저히 할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만약 그때 내가 용기 있게 싸웠더라면, 아마도...’그는 핸들을 꽉 쥔 채 방향을 돌려 차를 떠나갔다.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던 배건후는 도아린의 차 옆에 다가갔다. 문을 열기도 전에 도아린이 먼저 차 문을 열고 나왔다.살기를 띤 배건후의 얼굴이 한없이 부드러워졌다.그의 이마에서 머리카락이 늘어져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도아린은 초라한 그의 몰골을 무시하고 차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뒤돌아보지 않아도 그녀는 그의 뜨거운 시선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대문에 다다랐을 때,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그를 돌아봤다.“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감기 조심해요.”남자의 눈이 순식간에 생기가 돌았고 고통스러워 보였던 얼굴도 미세하게 변했다.“그럴게.”대문이 열리고 일북이 몸을 옆으로 비켜주었다. 문을 닫을 때, 그는 배건후를 한 번 더 노려봤다.“아가씨, 저건 다 쇼하는 거라고요. 그러니 마음 약해지면 안 돼요.”도아린은 따뜻한 물로 샤워한 뒤 머리를 말리고 잠자리에 들었다.침대에 누운 후, 그녀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일정을 확인했다. 휴대폰 화면에는 배건후가 보낸 다양한 친구 요청 알림이 떠 있었다.[집에 도착했어.][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감기약도 먹었어.][당신도 일찍 자. 육씨 가문 일은 내가 처리할게. 더 이상 당신을 찾아가지 않을 거야.][아직 안 자?][자기 전 따뜻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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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육하경의 시신은 인양되자마자 화장되었고 유골은 바다에 뿌려졌었다.게다가 그의 양부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가 육민재의 이복형제였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육민재와 나영옥뿐이었다.그래서 육민재는 바다에서 건진 시신은 절대 육하경일 리 없다고 더욱 확신했다.“아가씨.”일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만약 육하경이 미리 아가씨의 그림 스타일을 모방할 수 있는 사람을 준비해 둔 거라면요?”도아린은 잠시 침묵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내 스타일을 따라 할 수 있는 화가라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아.”하지만 곧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내가 문신을 새길 때, 원래 이빨 자국 모양을 새기려던 걸 즉흥적으로 입술 모양으로 바꿨어.”도아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설령 하경 씨가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해도... 그건 진짜 내가 직접 새긴 문신이에요.”그 사진이 조작이 아니라면 사진에 있는 문신은 분명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이었다.“자상훈을 조사해 봐.”도아린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그 사람은 하경 씨의 오른팔이었으니 하경 씨가 정말 살아 있다면... 분명 자상훈이 뭔가 알고 있을 거야.”“알겠습니다.”일북은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그 시각, 도심 속 한 고급 호텔의 VIP룸.고유리는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곧 직원이 도착할 거예요. 잠깐 실례하겠습니다.”그녀가 문을 열고 나가다 마침 계단을 오르던 배건후와 마주쳤다.깔끔한 정장 차림에 단정한 머리와 여유로운 분위기는 누가 봐도 막 수습을 시작한 신입 사원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건후 씨!”고유리가 인사하려는 찰나,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 빠르게 걸어왔다.“건후 씨! 걱정 마세요. 우리 아버지랑 저는 건후 씨 편이에요! 도아린 그 여자한테 기죽지 않게 도와드릴게요!”고유리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이제야 알겠네. 왜 그 자리에 꼭 배건후여야 한다고 했는지.’배건후는 가까이 다가온 여자의 손길을 매몰차게 피하며 냉정한 눈빛을 보냈다.“진서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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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6화

배건후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그날 대형 선박에서 그뿐만 아니라 다른 세 가족도 장기 이식이 필요했었다.‘그 사람들도 육하경이 특별히 도아린한테만 더 신경 쓴다는 걸 봤을 거야. 이식 수술이 중단된 마당에 경찰한테 화풀이할 수는 없으니까 도아린을 타깃으로 삼은 거지. 루머를 퍼뜨리면서 말이야.’그에게서 싸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진서윤의 심장이 조여왔다.그녀는 배건후가 도아린 때문에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말했다.“도아린 씨가 무슨 자격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거죠? 전 도아린 씨가 처음부터 육하경 씨와 짜고 친 거라고 봐요. 그러니까...”“진서윤 씨.”배건후가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말조심하세요.”진서윤은 말문이 막혔다.고유리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배건후가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들어가시죠.”고유리는 사람들을 룸으로 안내했다.이번 프로젝트는 고위직 사람들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이전에 문제가 발생했던 만큼 이번엔 감독 기관까지 추가되었던 것이다.배건후가 들어오는 걸 보자 감독 기관과 도시 정비국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배 대표님!”“배 대표님, 오셨군요.”전에는 배건후를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으니 말이다.지금 실권이 없다고는 하지만 기획서도 그가 작성한 것이었고 한경 그룹에서 어떤 권력을 갖고 있는지 확실치 않으니 당장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하지만 오직 진우석만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딸이 배건후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배건후가 다시 일어서려면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말이다.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해서든 아니든 배건후는 결국 진서윤과 사귀게 될 것이고 만약 두 사람이 만약 결혼이라도 한다면 진우석은 두 사람이 이혼하는 꼴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배 대표님, 앉으시죠.”진우석은 장인어른인 같은 태도로 맞은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배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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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그들은 일 때문에 온 것이지, 두 사람의 연애사가 궁금해서 온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진우석의 체면을 차려주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진서윤이 한경 그룹의 대표를 모욕한 이상 앞으로의 협력 과정에서 충돌이 생길 게 뻔했다.이 프로젝트는 이미 오랫동안 끌어왔기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되었다. 개인적인 감정 문제로 또다시 문제가 생긴다면 진우석은 고위층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감독 기관 사람들은 프로젝트 진행 속도가 걱정되기 시작했고 진우석은 자신의 국장 자리가 위태로울까 봐 마음을 졸였다.그는 도아린이 수작을 부려 모건 그룹을 손에 넣은 것에 대해서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그런 말은 사적으로만 해야 했다. 배건후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는 건 미친 짓이었다.“서윤아?”진우석이 딸을 바라보며 사과하라는 눈치를 주었다.진서윤은 억울한 듯 입술을 깨물더니 배건후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앞으로 안 그럴게요.”“앞으로요? 오늘 일은 어떻게 할 건데요?”“배건후 씨, 사과도 했잖아요. 도대체 뭘 더 바라는데요?”진서윤이 화를 냈다.배건후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서윤 씨는 저희 그룹 대표님을 모욕하셨어요. 그저 사과하는 걸로 넘어갈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죠?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으셨잖아요.”“제가 언제 모욕했는데요? 전 사실만 말했어요!”진서윤의 눈가가 붉어졌다.‘그 여자가 다른 남자들과 얽혀 있다는 소문이 돈 것도 사실인데 건후 씨는 왜 여전히 그 여자를 감싸고 도는 거야?’배건후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들며 말했다.“방금 서윤 씨가 한 말은 전부 녹음됐어요. 모욕인지 아닌지는 판사님께서 판단하겠죠.”그는 진우석을 흘끗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따님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진 국장님이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배건후의 말은 처음엔 경고였지만 이제는 노골적인 협박이었다.진서윤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녹음을 공개하겠다는 뜻이었다.현재 여론은 진우석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데 그는 국장이라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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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진서윤은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서윤아!”진우석이 재빨리 일어나 딸을 안았다.“서윤이는 심장병이 있어요. 이미 잘못을 인정했는데도 꼭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야 했나요?”고유리가 배건후를 바라봤다.진서윤은 불리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 같았다.진우석이 이를 알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계속 몰아붙이면 그들이 옳더라도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었다.하지만 배건후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진서윤을 차갑게 바라봤다.“서윤 씨가 심장병 환자라면 먼저 약부터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진우석이 멈칫했다.감독 기관 사람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맞는 말이었다. 심장병이 있다면 응급약을 항상 소지하고 있어야 했고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복용해야 했다.하지만 진우석은 그녀를 부축하기만 할 뿐, 약을 먹이지도, 물을 건네지도 않았다.진서윤은 숨이 가쁘다고 했지만 얼굴빛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건후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창백해졌다.“약을 먹지 않아도 나아지는 걸 보니 심각한 병은 아닌가 보군요.”배건후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웠다.“우리 도 대표님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계십니다. 진서윤 씨의 모욕적인 언행으로 우울증이 악화된다면 한경 그룹의 손실을 진 국장님께서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진우석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푸르스름해졌다. 그는 진서윤의 팔을 세게 움켜쥐었다.“사과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배건후가 신고라도 해서 그의 비리를 폭로하면 그는 직장을 잃을 것이고 가족 모두가 불행해질 터였다.진서윤은 이번엔 정말 울컥해서 숨을 헐떡이며 울음을 터뜨렸다.“우리 대표님을 모욕해 놓고 정작 본인이 울고 있으면 어떡하자는 겁니까?”고유리가 담담하게 말했다.진서윤이 고개를 들어보니 고유리가 휴대전화를 들고 촬영하고 있었다.‘내가 우는 모습까지 전부 녹화된 거잖아?’진서윤은 어쩔 수 없이 카메라 앞에서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앞으로 헛소문을 믿거나 퍼뜨리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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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화

“알겠습니다.”고유리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시간이 되자 도아린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려고 했다.그때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들어오세요.”도아린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윤가인 일 거라 생각한 그녀는 무심코 말했다.“윤 비서님, 점심 뭐 드실 건가요?”“닭볶음탕이랑 계란찜.”도아린은 순간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앞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배건후가 도시락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도시락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어 도아린 앞에 내밀었다.“먹어봐.”도아린은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꼭 쥐었다.“건후 씨가 만든 거예요?”“응.”배건후가 고개를 끄덕였다.“너 매운 거 좋아하잖아. 일부러 좀 맵게 했어.”“운영팀 일도 바쁠 텐데 일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나요? 굳이 이런 걸로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요.”도아린은 도시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요리를 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오전에 고유리와 함께 감독 기관과 도시 정비국 사람들을 만나러 갔으니 이 음식들은 분명 아침에 준비한 것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요리한 게 분명했다.배건후의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에게 혼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다.그는 도시락을 쥔 손을 거두지 않고 고집스럽게 말했다.“한 입만 먹어봐.”도아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들다 검은 무언가를 집었다.“고기가 탔잖아요. 불이 너무 세서 겉은 탔는데 속은 덜 익었어요. 그리고 이런요리는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는 거예요. 이렇게 도시락에 넣어두면 눅눅해지잖아요.”배건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한숨을 쉬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왜 아침부터 이런 걸 준비했어요? 소중한 시간까지 낭비해 가면서...”‘건후 씨 시간뿐이 아니라 내 시간도 낭비한 셈이지. 배달을 시켰으면 벌써 도착했을 텐데...’배건후의 눈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예전에 에이트 맨션에 살았을 때는 아침 몇 시에 일어나든 항상 따뜻하고 맛있는 아침밥이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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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대표님...”윤가인이 말을 하다 말고 배건후 손에 들린 도시락을 보았다.그녀는 재빨리 포장 봉투를 뒤로 숨기면서 말했다.“배달 음식을 시켰는데... 대표님은 굳이 가져다드릴 필요 없겠네요.”도아린은 사실 그녀가 든 음식을 두고 나가라고 하고 싶었다. 배건후가 만든 음식은 보기만 해도 영 별로였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윤가인은 이미 문을 닫고 도망쳤다.“배달 음식 먹고 싶어?”배건후가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다시 가져오라고 할게.”“됐어요.”도아린은 젓가락을 들고 닭고기를 집었다.“이거나 먹죠.”‘정말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정도면 식당에 가면 되니까.’배건후는 미소를 지으며 재빠르게 도시락을 열었고 둘은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비주얼은 별로였지만 의외로 맛은 괜찮았다. 맵고 자극적인 맛이 도아린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그녀가 식사를 하는 사이에 배건후는 그녀에게 따뜻한 꿀물을 한 잔 타주었다.배건후가 지금의 절반만큼이라도 도아린을 배려했더라면 이혼까지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배건후는 매운 음식을 못 먹는 편이었다. 그래서 닭고기 하나만 먹고도 매워서 기침을 했고 얼굴이 새빨개졌다.“억지로 먹지 않아도 돼요.”도아린이 닭고기를 자기 쪽으로 모두 옮기자 배건후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예전엔 네가 항상 맞춰줬잖아. 이제 나도 네 입맛에 익숙해져야지.”말을 마친 그는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화제를 돌렸다.도아린이 프로젝트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하자 배건후는 매우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현실적이지는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몇몇 포인트는 꽤 괜찮았다.그는 전혀 비웃거나 깎아내리려는 의도 없이 중립적인 태도로 그녀의 아이디어에 대해 평가했다. 오히려 격려와 긍정적인 피드백, 조언을 해줬다.오후가 되자 다시 업무가 바빠지기 시작했다.도아린은 자신이 맡은 일을 마무리한 후, 브레인팀을 불러 작은 회의를 했다.그녀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배건후의 조언을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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