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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Aвтор: 온유
“민재야...”

나영옥이 목이 메어 육민재의 이름을 불렀지만 육민재는 시선을 돌리며 단호하게 차에 올라탔다.

“할머니, 우리는 오지 말아야 했어요.”

“하지만 육씨 가문은 이렇게 끝날 수 없어!”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땅을 쳤다.

“그때 내가 막지 않았으면 넌 도아린이랑 결혼했을 거고 우리 육씨 가문도 절대로 오늘의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거야.”

육민재는 한숨을 쉬며 비와 눈물로 젖은 얼굴을 손으로 훔쳤다.

나영옥은 평생 강하게 살아왔고 그는 그런 할머니의 손에 키워졌기에 도저히 할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만약 그때 내가 용기 있게 싸웠더라면, 아마도...’

그는 핸들을 꽉 쥔 채 방향을 돌려 차를 떠나갔다.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던 배건후는 도아린의 차 옆에 다가갔다. 문을 열기도 전에 도아린이 먼저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살기를 띤 배건후의 얼굴이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그의 이마에서 머리카락이 늘어져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도아린은 초라한 그의 몰골을 무시하고 차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녀는 그의 뜨거운 시선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문에 다다랐을 때,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그를 돌아봤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감기 조심해요.”

남자의 눈이 순식간에 생기가 돌았고 고통스러워 보였던 얼굴도 미세하게 변했다.

“그럴게.”

대문이 열리고 일북이 몸을 옆으로 비켜주었다. 문을 닫을 때, 그는 배건후를 한 번 더 노려봤다.

“아가씨, 저건 다 쇼하는 거라고요. 그러니 마음 약해지면 안 돼요.”

도아린은 따뜻한 물로 샤워한 뒤 머리를 말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누운 후, 그녀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일정을 확인했다. 휴대폰 화면에는 배건후가 보낸 다양한 친구 요청 알림이 떠 있었다.

[집에 도착했어.]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감기약도 먹었어.]

[당신도 일찍 자. 육씨 가문 일은 내가 처리할게. 더 이상 당신을 찾아가지 않을 거야.]

[아직 안 자?]

[자기 전 따뜻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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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석준은 점점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내 선택을 존중한다는 건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도아린을 위해서라면 내 생사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거야?’한참이 지나서야 숨을 고른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그가 전화를 건 사람은 주현정이었다. 그는 주현정이 자신과 같은 생각일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전화가 연결되기도 전에 전에 휠체어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배석준이 급히 뒤를 돌아보자 김지민이 서 있는 것이었다.“너 왜 여기 있어?”그녀는 배석준과 함께 산 고급 브랜드 옷을 입고 있었다.김지민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석준 씨가 제 남편이잖아요. 석준 씨가 어디 있으면 저도 옆에 있어야죠.”“이거 놔!”배석준은 뒤로 돌아보려 했지만 김지민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난 이미 소송을 제기했어. 우리 이제 곧 부부가 아니야!”김지민은 휠체어를 밀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재판 날 석준 씨가 참석하지 않으면 법원에서도 판결 안 날 거예요.”“뭐라고?”배석준은 화가 났다.“또 나를 감금하려고 그래?”김지민은 몸을 굽혀 그의 옷을 정리해 주고는 웃으면서 말했다.“부부니까 싸울 때도 있고 그렇죠. 석준 씨도 결혼 중에 한 번 불륜을 저질렀으니까 이제 서로 미안할 것 없네요. 앞으로 잘살아 봐요.”배석준은 깜짝 놀라며 휠체어에서 일어섰다.그동안의 재활 덕분에 그는 조금씩 걸을 수 있었다. 좀 더 편하게 움직이기 위해 휠체어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배석준은 변함없는 김지민의 태도에 진절머리가 나서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여보! 여보!”김지민은 휠체어를 잠그고 그를 쫓아갔다.“천천히 가요! 넘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래요?”배석준은 그녀의 가식적인 모습에 신경 쓰지 않고, 힘껏 앞을 향해 걸어갔다.순간, 어떤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할아버지는 배석준이 자기를 양보해 줄 거라 생각했고 행동거지가 불편한 배석준은 할아버지가 양보해

  • 또 한 번의 거절   제898화

    소리를 따라 화장실로 찾아간 우정윤은 창백한 얼굴로 구역질을 하고 있는 배건후를 보았다.“대표님, 의사 선생님께서 위에 자극을 주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많이 마시면 안 된다니까요?”먹었던 와인을 전부 토해낸 배건후는 현기증 때문에 비틀거렸다. 위가 뒤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그는 입을 헹구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침대 끝 쪽에 있는 인형을 끌어안았다.진수혁은 그보다 더 취해 있었는데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변슬기가 돌아왔을 때, 송 비서가 따뜻한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대표님,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술 깨는 약 좀 사 올게요.”“제가 사 왔어요!”변슬기는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서 진수혁에게 건넸다.진수혁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변슬기의 품에 쓰러졌다.집으로 돌아온 도아린은 변슬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일북이한테 슬기 씨 데리러 가라고 하려는데 괜찮으면 답장 줘요.]하지만 변슬기는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잠시 생각에 잠긴 도아린은 송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결되었고 송 비서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지만 목소리엔 약간의 불안함이 섞여 있었다.“도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혹시 슬기 씨 아직 거기에 있나요?”“네. 대표님이 너무 취하시는 바람에 술 깨는 약 사러 갔어요.”비록 도아린은 변슬기에게 잘해주었고 변슬기를 데려오라고 제안한 것도 그녀였지만 도아린이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송 비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그럼 송 비서님이 슬기 씨를 잘 챙겨주세요.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 주시고요.”“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송 비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호텔 프런트에 자신의 신분증을 건넸다.“방 하나 주세요.”다음 날.이번 회의에 참석한 건 도시 정비국의 새 책임자였다. 그는 공손한 태도로 진수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증거는 없었지만 누구든 다 알고 있었다. 진우석이 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는지 말이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897화

    하지만 이젠 길가에서 어묵을 먹으면서 옷이 더러워져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이때 명문 가문 아가씨가 지나갔다면 자기가 헛것을 봤다며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뜨끈한 꼬치를 먹어서 그런지 공복에 술을 마신 탓에 조금씩 아파져 오던 위가 좀 나아지는 듯했다. 오늘 먹은 어묵이 그동안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인 것 같았다. 물론 도아린이 사준 거라서 더욱 그랬다.등에서 그녀의 손길이 간간이 느껴졌다. 그 부드러운 손길은 그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차단 풀어주면 안 돼?”배건후는 마지막 한 꼬치를 먹으며 물었다.도아린은 물티슈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말했다.“건후 씨,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요. 건후 씨라면 더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잖아요. 전...”“내가 원하는 건 너뿐이야. 너도 알잖아...”배건후는 그녀의 말을 끊고 빠른 걸음으로 그녀 앞에 섰다.그는 자기를 올려다보는 도아린을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순 없을까?”도아린은 고개를 떨구었다. 외투 호주머니에 넣은 손가락 사이에는 이미 땀이 배어 있었다.배건후는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마음속에서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저번 결혼 생활이 그녀로 하여금 기대를 내려놓게 했다.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도아린이 입을 열었다.“건후 씨,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요. 건후 씨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저도 알아요. 건후 씨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저를 사랑해 주는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요. 온전히 제 능력으로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어요.”“난 전처럼 돌아가려는 게 아니야.”배건후는 단호했다.“네가 사업을 하고 싶다면 나도 온 힘을 다해서 도울 거야. 네가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면 나도 네 가족이 되면 되잖아...”“도아린, 난 네가 예전에 보여줬던 따뜻한 모습을 바라는 게 아니야.

  • 또 한 번의 거절   제896화

    “대표님, 내일도 스케줄이 있으시잖아요. 이만...”변슬기는 시험 삼아 말을 꺼냈지만 진수혁의 눈빛에 제지당했다.그녀는 당황한 눈빛으로 도아린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려줄 수 있길 바랐다. 도아린이 시선을 진수혁에게 돌렸다. 그러자 그는 그녀에게 안심해도 된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와 동시에 배건후도 그녀의 다리를 가볍게 스치면서 자기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도아린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자 또 하나의 와인병이 금세 비었다. 배건후는 초점이 흐려진 듯했고 진수혁은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취해 있었다. 도아린이 눈치를 주자 송 비서가 나서서 진수혁을 침실로 데려갔다.그녀는 배건후를 바라보며 물었다.“괜찮은 거 맞아요?”“응.”배건후는 힘껏 고개를 끄덕얐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도아린은 변슬기와 함께 테이블을 정리하고 배건후를 데리고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 변슬기가 갑자기 말했다.“두고 온 게 있는 것 같아요. 먼저 가세요. 전 나중에 택시 타고 가면 돼요.”말을 그렇게 했지만 도아린은 그녀가 진수혁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제가 집에 도착하면 일북이한테 슬기 씨 데리러 가라고 할게요.”변슬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아린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위로 올라갔다.앞으로 걸어가던 도아린은 배건후가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마치 먹이를 주면 자꾸 따라오는 강아지처럼 말이다.“대리기사 불러줄까요?”그녀가 멈춰 서자 배건후도 제자리에 섰다. 그에게서 우드 향과 술 냄새가 섞인 향이 났다.밤바람이 차가웠기에 배건후는 손을 들어 도아린의 옷깃을 여몄다.그는 아무 말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배건후의 깊은 눈동자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다.도아린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떨려와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그러자 배건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묵 먹고 싶은데 같이 먹을래?”도아린은 오늘 밤 배건후

  • 또 한 번의 거절   제895화

    그는 모든 잘못을 배건후 탓으로 돌렸다.계획이 실패하자 고성만은 성형수술을 받았고 손보미와 손잡고 배씨 가문의 자산을 빼앗으려 했다.하지만 육하경과는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가 육하경에게 장기 밀매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는지, 아니면 육하경에게 원래 그런 계획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 건지... 자세한 건 아직 조사하는 중이었다.송 비서는 요리를 잘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났다.배건후는 도아린이 손에 쥐고 있는 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가 마지못해 물었다.“먹을래요?”“응.”배건후는 손을 뻗어 그 귤을 받았다.급하게 먹은 것 때문인지 그는 기침을 세게 해댔다.배건후는 사실 신 것도 잘 못 먹는 편이었다. 하지만 도아린이 좋아하는 과일이었기에 그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도아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저를 가지러 갔다.그러자 배건후도 그녀 뒤를 졸졸 따라갔다가 식탁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변슬기가 도아린에게 수상한 행동을 하는 배건후의 의도를 물었다. 그러자 도아린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고는 와인 한 병을 꺼냈다.“오늘은 다들 푹 쉬세요. 내일 일을 끝내면 제가 사람을 보내서 연성을 구경시켜 줄게요.”“도 선생님, 주말에는 뭐 하세요? 저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변슬기는 진수혁을 힐끗 쳐다보고 도아린에게 물었다.진수혁은 송 비서와 내일 스캐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기에 그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도아린은 주방에서 작은 그릇을 들고나오는 배건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주말은 저도 쉬는 날이에요. 오랜만이니까 저도 같이 가죠.”배건후는 작은 그릇을 도아린 앞에 놓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너 주려고 만들었어.”진수혁은 도아린 앞에 놓은 작은 그릇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그릇 안에 담긴 양념을 보고는 다시 테이블에 있는 음식을 둘러보았다.송 비서는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하지 않았기에 오늘 저녁 메뉴는 살짝 싱거운 것들이었다. 도아린은 매운 음식을 좋아했기에 테이블 위에 있는

  • 또 한 번의 거절   제894화

    변슬기가 돌아올 때, 배건후도 함께였다.그녀는 도아린에게 배건후를 쫓아낼지 말지 묻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도아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그녀가 들고 있던 물건을 받아 함께 주방으로 갔다.“저녁에는 우리 집으로 가요.”변슬기는 시선을 진수혁에게로 돌렸다. 그녀는 그의 뜻은 어떤지 물으려 했지만 도아린의 말에 깜짝 놀라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남자 친구 생겼어요?”“아, 아니요.”변슬기는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봉투 속 재료를 꺼내 냉장고에 넣었다.도아린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녀 손목에 있는 팔찌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티파니 주얼리에서 올해 밸런타인데이에 많이 팔았던 시리즈거든요.”그녀의 말에 변슬기는 귀가 빨개져서 눈을 피했다.“도 선생님, 오해하셨어요. 전 그냥 예뻐서 산 거예요.”“아, 그렇군요.”그녀 실망한 척하며 말했다.“남자 친구 생겼나 해서 기뻐했는데...”도아린은 변슬기를 도와 가방 속 물건을 꺼냈고 변슬기는 그것을 냉장고에 넣었다.도아린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이제 곧 인턴 기간이 끝나는 거 아니에요? 회사에 남을 건지, 아니면 대학원으로 진학할 건지 생각해 봤어요? 회사는 어때요? 사내 연애 금지라든가 그런 규칙은 없어요?”변슬기는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아직 고민 중이에요. 아빠는 저한테 패스트푸드 집을 물려주고 싶어 하거든요.”도아린은 변슬기의 속마음을 눈치챘지만 모른 척했다.배건후는 진수혁을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우리 여동생이랑 다시 사귀고 싶으세요?”진수혁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네.”배건후가 대답했다.“사실 건후 씨가 지금까지 한 행동만 보면 사실 저는 반대하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제 동생의 결정을 존중하거든요.”진수혁은 차 한 잔을 배건후 앞에 놓으며 무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건후 씨가 알아둬야 할 게 있어요. 건후 씨가 아린이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우리 가족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배건후는 차를 들려고 했던 손을 다시 내려 무릎 위에 놓았다.그

  • 또 한 번의 거절   제893화

    그래서 도아린은 진서윤이 했던 더러운 말들이 녹음되고 그녀가 대중 앞에서 사과하는 건 모두 배건후의 수작이었다.도아린은 알고 있었다. 배건후가 이대로 그들을 놔둘 리 없다는 걸 말이다.“네 표정을 보니까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진수혁이 묻자 도아린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몰랐어요. 하지만 건후 씨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건후 씨는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야. 서윤 씨의 도발이 없었더라도 프로젝트에 진 국장님처럼 직권을 남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그럼 아파트 밖에서 두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 것도 이상할 거 없다고?”“누가요?”도아린이 뒤를 돌아봤다.진수혁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맞은편 아파트 단지 입구에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요즘 연성의 온도는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에 직장인들은 두툼한 외투를 꺼내 입었다.지나가는 젊은이들은 저마다 포장마차에 들렀다.한 커플도 포장마차로 다가갔고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너도 먹을래?”남자는 손을 내저었고 여자는 자기 먹고 싶은 걸로 골랐다.그들이 종이컵을 들고 떠나려 할 때, 남자는 갑자기 그녀가 손에 쥔 어묵을 한입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그러자 그녀는 즉시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까 물어봤을 때는 안 먹는다고 하더니 왜 이제 와서 또 먹겠다는 거야?”여자가 살짝 짜증을 내자 남자는 웃으며 그녀를 꼭 안으면서 달래주었다.아파트 입구에 서 있던 남자는 그 장면을 지켜보며 전에 도아린이 자기에게 어묵을 사줬던 때를 떠올렸다.‘그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사 먹지 않는 게 좋다고 그랬었지. 아린이한테도 먹지 말라고 했었나?’사실 배건후가 도아린에게 그런 식으로 안 좋게 말한 건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성대호가 보낸 사진 속에서 다른 남자랑 어묵을 나눠 먹고 있는 도아린을 보고 속이 뒤집혀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었다.배건후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자 커플은 서둘러서 자리를 떴다.그의 시선이 서서히 올라가더니 마침

  • 또 한 번의 거절   제892화

    “배석준 씨가 배건후 씨에게 연락을 해다고 합니다. 회사를 다시 가져갈 방법도 있다고 말이죠.”모건 그룹이 도아린에게 그냥 넘어가는 걸 배석준이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되찾을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었다.도아린은 배건후의 태도를 묻지 않았다.배석준은 그의 친아버지였기에 배건후가 아버지한테 효도하는 건 그의 권리이자 의무였다.하지만 그녀도 모건 그룹은 절대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신경 쓸 필요 없어. 그냥 그가 어머님을 괴롭히지 않게 감시만 하면 돼.”다음 날, 진수혁이 연성에 도착했다.도아린은 그들을 아파트로 데려가 임시로 머물게 했고 변슬기와 송 비서는 주방에서 필요한 식재료를 정리하고 있었다.그러던 중 진수혁이 도아린을 테라스로 불렀다.“너한테 숨긴 게 하나 있어.”그는 난간에 두 손을 올린 채 좌우를 둘러본 후 말했다.“이 아파트는 강재민이 네게 준 거야. 네가 안 받을까 봐 내가 샀다고 하라던데...”도아린은 미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표정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이 차가워진 건 사실이었다.“오빠...”진수혁은 그녀에게 일단 끝까지 들어달라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계속 말했다.“너희 헤어졌다는 거 알고 내가 강재민한테서 사들였어. 강재민이 손해 본 건 없어.”그제야 도아린은 안도한 듯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이 집은 네 소유야.”진수혁은 말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도아린은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그녀가 결혼하든 안 하든, 누구와 결혼하든 간에 이 아파트는 그녀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그녀만의 공간이라는 의미였다.“고마워요, 오빠.”진수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도아린은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오빠가 웃었다고? 늘 무뚝뚝하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오빠가 이렇게 부드럽게 웃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고? 혹시 빙의라도 된 건가? 무슨 충격을 받은 거지?’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방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이 아파트에는 방이 두 개뿐이에요. 오빠랑 송 비서님이 여기서 주무시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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