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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또 한 번의 거절: Chapter 381 - Chapter 390

488 Chapters

제381화

손보미는 율이를 데리고 배건후를 따라갔다.율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안 놀아줘요? 언니 때문이에요?”손보미는 몰래 율이의 가느다란 손목을 꽉 쥐었다. 그녀는 얼굴이 굳어지다 못해 일그러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율이는 이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도아린의 곁으로 달려갔다.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병실 문을 열었다.침대 위에는 작은 체구의 소녀가 앉아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얼굴을 절반이나 가리고 있었다.“지희야.”손보미는 조심스레 불렀다.지희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녀는 몇 걸음 더 다가갔다.“지희야, 보미 언니야. 기억나?”지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머리카락 사이로 손보미를 탁한 눈동자로 바라봤지만 알아보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지희는 입술을 움직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손보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미소를 지으며 병상 옆으로 다가갔다.“내가 떠날 때 너도 율이만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지 않았더라면 못 알아봤을 거야.”손보미는 다정하게 지희의 손을 잡았다.그러자 지희는 등을 곧게 펴더니 이내 온몸이 굳어갔다.약 5~6초간 경직되어 있더니 갑자기 손보미의 손을 뿌리치고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린 채 다시 침대에 누웠다.지희는 몸을 둥글게 말고 침대까지 흔들릴 정도로 덜덜 떨었다. “지희야, 무슨 일이야?”손보미는 일부러 당황한 척하며 배건후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지?”순간 율이는 병실로 뛰어 들어오더니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지희 언니! 나 율이야!”그러나 율이가 부를수록 지희는 더욱 심하게 떨었고 머리를 더 깊숙이 파묻었다.“우리가 지희를 찾았을 때 지희는 쇠사슬에 묶인 채 채소 저장고에 갇혀 있었어요.”육하경은 천천히 도아린에게 설명했다.“의사의 초기 소견으로는 심각한 공포를 겪은 상태라고 하더군요.”도아린은 병실로 들어가며 손보미에게 손짓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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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손보미는 병실 밖으로 끌려가면서도 소리를 질렀다.“건후야, 지희 안전 갖고 장난치지 마! 너 줄곧 그들의 소굴을 소탕하려고 했잖아!”“5분 줄게. 내가 나가면 시작해.”배건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율이야, 너도 나가.”“율이는 남겨요.”도아린은 병실 문을 닫고 침대 옆으로 다가가서는 율이를 달래며 다정하게 말했다.“이제 율이랑 둘만 있어. 아무도 해치지 않을 거야.”지희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지희 언니, 아린 언니는 착한 사람이야. 나 아플 때 도와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어. 겁내지 마.”율이는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도아린은 이불을 사이에 두고 지희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말했다.“천사 보육원이 폐쇄됐어. 대머리랑 빡빡이도 구속됐고.”“산중 농가에서 지희를 괴롭혔던 사람 중 한 명은 회사 자금을 유용해서 잡혔고 또 다른 한 명은 불법 도박장을 열어서 잡혔어. 보육원에 있던 유 선생님도 불법 모금으로 체포됐어.”지희의 떨림은 점점 줄어들었다.도아린은 그녀를 속이지 않았다.배건후가 신뢰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뒤로 그녀는 줄곧 일북에게 시켜 지희를 해친 자들을 조사했고 절대 가만두지 않기로 다짐했다.도아린은 몸을 숙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지희에게 속삭였다.“비록 체포되긴 했지만 지희랑 관련된 죄목은 없어. 만약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살고 싶다면 언니가 도와줄게. 아니면 지희가 복수를 원한대도 언니가 도와줄 수 있어. 다만 과거의 트라우마와 마주해야 할 거야. 지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율이는 도아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도아린이 지희를 위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율이는 이불 틈으로 손을 넣어 지희의 손을 잡았다.지희의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며 지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손보미는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초조한 기색으로 병실 밖에서 서성였다.병실은 매우 조용했고 그녀는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그녀는 자신이 가장 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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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도아린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가서 지희가 괜찮아졌다고 말해줘. 근데 아무도 들어오게 하면 안 돼.”율이는 달려가 문을 열고 도아린의 말을 배건후에게 전했다.손보미의 얼굴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녀는 다짜고짜 병실로 뛰어들려 했으나 육하경에게 금세 잡혔다.“아린 씨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손 놔요. 지희가 괜찮다고? 절대 믿을 수 없어!”배건후는 문 앞에 서서 도아린과 눈을 마주쳤다.지희는 고개를 숙인 채 도아린의 손을 잡고 조용하게 침대에 앉아 있었다.“일 있으면 먼저 가. 가기 싫으면 방 잡고 기다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도아린은 손보미를 의식하며 일부러 그녀를 한 번 쳐다봤다.손보미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그녀는 육하경의 손을 세게 뿌리쳤으나 병실로 뛰어들기도 전에 다시 배건후에게 어깨를 붙잡혔다.“건후 씨, 아린 씨 말을 믿지 마! 만약 아린 씨가 지희에게 진정제를 먹였으면? 직접 확인해야겠어. 지희가 정말로 괜찮은지.”배건후는 힘을 주어 그녀의 어깨를 더 세게 붙잡았다.“아래 회의실로 갈게.”그는 탁자 위에 놓인 꽃병을 한 번 보고는 병실 문을 닫았다.문 앞에는 일북과 일남이 남아 지키고 나머지는 아래 회의실로 내려갔다.도아린은 배건후의 암시를 눈치채고 시선을 돌려 꽃다발 속에 숨긴 감시 카메라를 발견했다.병실에 감시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이 간 회의실에 모니터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도아린은 지희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이제 다 갔어. 물 좀 마셔. 어떤 결정을 내리든 언니는 지희를 존중할 거고 최선을 다해 도와줄 거야.”아래 회의실에서 배건후는 모니터를 켜게 했다.그는 육하경과 함께 손보미의 옆에 앉아 같이 모니터에 집중했다.지희는 도아린의 손에서 물잔을 받아 들었다.병실은 너무 조용해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그해 제가 13살이었을 때 원장님이 우리를 입양하겠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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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제가 말을 못 하니 아마 신고 못 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지희는 도아린의 손을 꼭 잡고 흐느끼며 말을 이어갔다.“유 선생님이 저를 따로 불러서 용감하다고 칭찬까지 했어요. 제가 번 돈으로 장애가 있는 동생들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요...”배건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그는 도아린의 눈에서 피어오르는 분노를 보았고 그녀가 결코 타협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아차렸다.육하경은 고개를 돌려 손보미를 보며 말했다.“미안해요. 많이 놀라셨겠어요.”“...”손보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하마터면 입술을 깨물 뻔했다.그녀는 도아린에 대한 증오를 다른 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고 이를 악문 채 말을 내뱉었다.“이 짐승 같은 놈들!”육하경은 다시 도아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비쳤다.도아린은 지희를 진정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배건후는 영상을 복사하러 갔고 손보미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다.지희를 남겨둬서도 영상을 남겨둬서도 안 되지만 육하경이 계속 지켜보고 있어 삭제할 기회조차 없었다.결국 그녀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지희의 위치와 사태의 심각성을 외부에 알렸다.다들 지희의 안전을 위해 논의하기 시작했다.도아린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배건후가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했으나 도아린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육하경에게 물었다.“신고했어요?”“네, 했어요. 지희 병실에 전담 경호원도 배치했어요. 율이가 남아서 지희와 함께 있으면 조금이라도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거예요.”도아린은 뭔가 말하려다 손보미를 흘겨보고는 되레 삼켜버린 채 엘리베이터에 탔다.주차장으로 가던 길에 도아린은 갑자기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손보미는 갑자기 배건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오후에 중요한 회의가 있다면서? 얼른 가자.”“아는 사람이에요?”육하경은 도아린에게 물었다.그녀는 위아래 훑어보더니 일남에게 눈짓했다.“아가씨를 납치했던 사람입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그녀를 쫓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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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도아린은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자 눈을 떠보니 배건후가 무릎을 꿇은 채 그녀를 감싸안고 있었다.그는 쇠 파이프에 어깨를 맞았다. 순식간에 밀려오는 통증에 배건후는 미간을 찌푸렸다.손강해는 잠시 멈칫하더니 발을 들어 배건후를 걷어차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배건후는 번쩍 몸을 돌려 그의 발목을 힘껏 비틀었다.아무래도 손강해는 나이가 있는지라 배건후에 의해 몸이 공중에서 꺾였다. 아마 손강해는 사무실에만 앉아 있던 대표가 이렇게 힘이 강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손강해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어 배건후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우두둑!배건후는 눈빛이 금세 날카로워지더니 단숨에 손강해의 발목을 꺾어버렸다.“아악!”손강해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뒤늦게 달려온 손보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질렀다.손강해는 그녀를 보고 재빨리 눈짓을 보냈다.그녀는 그제야 반응하고 급히 바닥에 떨어진 쇠 파이프를 집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쇠파이프를 든 순간 바로 후회했다.배건후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만약 배건후에게 쇠 파이프를 넘기면 손강해는 더 크게 다칠 것이고 반면 손강해에게 주면 그녀의 정체를 들키게 된다.손강호와 배건후의 압박에 손보미는 쇠 파이프를 꽉 쥔 채 손강해를 향해 몸을 돌렸다.“아악! 아악! 아악!”그녀는 미친 듯이 손강해를 향해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아무래도 배우 출신이라 각도를 교묘하게 잡았기에 겉보기에는 힘껏 내려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녀는 쇠 파이프를 바닥에 내리쳤다.손강해는 딸이 자신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힘껏 손보미를 밀치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뛰어갔다.경찰이 도착했을 때 일북은 한 명을 밟고 있었고 손에는 또 다른 한 명을 붙잡고 있었다.일남도 하춘녀를 잡아서 경찰차에 모두 태웠다.“피! 건후 씨, 피가 너무 많이 나잖아!”손보미는 겁에 질린 얼굴로 배건후 쪽으로 달려갔다.도아린은 배건후를 일으켜 세우려고 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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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배건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도아린은 가슴이 조여 들었다.‘설마 또 일부러 다치고 불쌍한 척하는 건가?’그가 진실을 알고 난 뒤 얼음장마냥 차가운 눈빛은 연기 같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를 납치했던 여자가 나타난 건 너무 우연스러웠다.일부러 다친 게 아니면 혹시...도아린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소름이 끼쳐왔다. 그녀는 배건후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곧 병원에 도착해요. 조금만 참아요.”배건후는 그녀의 손을 밀쳐내며 엉뚱한 말을 던졌다.“너 나 좋아한 적 있어?”“...”‘좋아한 적... 있을까?’도아린은 대학 시절 배건후에게 첫눈에 반했다.비록 손보미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둘 사이에 끼어들 생각도 없었다.우연히 육민재 할머니를 도왔고 마침 육민재와 배건후가 절친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배건후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육민재를 자주 찾아가곤 했다.배건후는 겉보기에 냉담하고 고고했지만 친구들과 있을 땐 가끔 농담도 던지곤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별로 친절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육민재에게도 그녀와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했다.그 뒤로 도아린은 곤경에 처하며 더는 살길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해 겨울에 배건후를 만났다.배건후는 그녀의 히어로였다.도아린은 심지어 자신이 겪은 고난이 모두 배건후를 만나기 위한 시험이라고 여겼다.만약 손보미가 귀국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배건후가 그녀를 대놓고 편애하지 않았다면 도아린은 그를 향한 마음을 숨긴 채 살았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실망이 너무 쌓이다 보면 감정이 소모되기 마련이었다.“3년 전 그날, 누가 도와줬든 간에 전 그 사람과 결혼했을 거예요.”도아린은 오랜 침묵 끝에 대답했다.배건후의 창백한 얼굴은 핏기 하나 없었다.그는 얇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손등에는 푸른 혈관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그날 밤 방을 들어간 사람이 누구든 건후 씨는 보미 씨를 자극하려고 결혼했겠죠.”도아린이 한마디 덧붙였다.“아니야.” 배건후는 눈을 떴다.고통스러운 그의 눈빛은 몸에 난 상처 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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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육하경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장 맨 위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전남시의 오래된 헌책방에서 구한 책이었다.책갈피가 끼워진 페이지를 펼치자 도아린의 손수건에 있던 문양이 나타났다. 거의 90%나 흡사했다.이 책에는 고대 토템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복을 기원하는 것, 제사를 지내는 것, 그리고 저주를 위한 토템까지 있었다.육하경은 주머니에서 도아린이 준 향낭을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복을 기원하는 토템과 매우 비슷한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향낭을 잃어버린 뒤로 전봇대에 부딪히고 자동차 브레이크가 고장 나며 식사 중 식중독에 걸리는 등 여러 불행한 일을 겪었다.그는 다시 향낭을 찾아내 꿰매어 복구했더니 아버지가 퇴원한 뒤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늘 우연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보니 도아린은 뭔가 알 수 없는 능력을 갖고 있는 듯했다.그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갇혀 있는 사람들을 감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음 날 모두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그가 너무 예민했던 걸까?만약 도아린이 화가 나서 내린 저주가 이루어졌다고 치면 법이 과연 왜 필요할까?배건후가 병원에 입원한 지 3일째 되던 날, 그는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이미 병원을 예약하고 주현정을 데려와 치료받게 할 예정이었다.하지만 지금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상황이라 도아린에게 부탁하려고 했다.도아린이 주현정의 병실에 도착하자 배지유는 생활용품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는 도아린을 보자마자 눈에 띄는 혐오감을 드러냈다.“날 비웃으러 온 거야?”“그럴 생각 없어.”도아린은 주현정의 병상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어머니, 제가 공항까지 모셔다드릴게요.”주현정은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도아린의 말을 듣지도, 그녀가 찾아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눈치였다.“어머니? 어떻게 된 거야?”도아린이 떠날 때만 해도 주현정은 정신이 말짱했고 JS 픽처스의 업무까지 완벽하게 처리했었다.하지만 며칠 사이에 병이 심해진 모습에 그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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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아직 서류도 처리되지 않았는데 벌써 말을 바꿨다고?”배건후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도아린은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비웃듯 말했다.“지금 관심 포인트가 틀린 거 아니에요?”“물이 식었네요. 이제 마셔도 돼요...”손보미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배건후는 다친 손으로 통화하고 있었고 오른손은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손보미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려던 찰나 도아린이 먼저 말을 꺼냈다.“사모님을 만나보면 알게 될 거예요. 그럼 먼저 끊을게요.”“도아린...”뚜뚜뚜.손보미는 배건후의 찌푸린 미간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아린 씨가 아주머니를 모시고 돌아오는 거 아니야?”배건후는 그녀에게 컵을 한쪽으로 치우라고 한 뒤 우정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손보미는 요즘 눈치가 빨라졌다. 배건후가 업무를 처리할 때면 알아서 자리를 피해줬다.그래서 그녀가 가만히 나가 배지유에게 전화를 건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해남 병원.도아린은 주현정의 핸드폰을 열어보려고 시도했다.주현정의 병세가 갑작스럽게 악화되면서 마침 병상 아래에 숨겨진 핸드폰도 뭔가 수상하게 느껴졌다.하지만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였고 도아린은 그 기종의 충전기가 없었다.그녀는 카운터로 가서 보조 배터리를 빌려왔다.전원을 연결하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를 밀치며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쾅!배지유는 하이힐로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밟았다.“새언니, 오빠랑 이혼하고서도 왜 자꾸 내 흉을 보는 거야?”도아린은 깨진 핸드폰을 흘겨보더니 말했다.배지유는 주현정의 핸드폰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듯 힐로 몇 번 더 강하게 밟은 뒤 차버렸다.“주워.”도아린의 목소리는 더없이 싸늘했다.“싫어. 네가 오빠한테 이른 벌이야! 우리 배씨 가문을 떠나면 네 까짓 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배지유는 콧대를 높이며 당당하게 말했다.도아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같은 말 두 번 하고 싶지 않아.”“네가 200번을 말해도 싫어.”배지유는 팔짱을 낀 채 오만하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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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아가씨가 잘못했네. 아가씨 오빠가 결혼했으니 그 집은 이제 아가씨 오빠랑 올케의 집이지.”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서기 시작했다.“선 좀 지켜야죠.”“갖고 싶으면 올케랑 상의해야지, 어찌 허락도 없이 막 가져가? 올케가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아가씨가 얼마나 망신스러울지 생각해 봐.”배지유는 화가 치밀어오른 채 주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다들 꺼져! 아무것도 모르면서 훈수질하지 마! 내가 뭘 가져가든 우리 오빠도 뭐라 안 했는데 너희가 뭔데 참견이야!”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그중에는 도아린을 동정하는 이도 배지유를 철부지로 여기는 이도 있었다.사람들이 흩어진 뒤 배지유는 도아린을 노려보았다.“드레스는 절대 못 벗어. 대신 조건을 제기해.”“핸드폰 주워. 그리고 나한테 사과해.”“...”배지유는 이를 악물었다.도아린은 그녀의 신발을 가리키며 말했다.“지금 네가 신은 신발도 내 거고, 네 가방도 내 거야. 다 벗고 가든지 아니면 내가 말한 대로 하든지.”배지유는 아무리 옷장에 옷이 넘쳐나도 도아린의 것을 입고 싶었다.배건후가 준 옷들은 모두 한정판이었기 때문이다.옷장과 액세서리 선반은 한가득 채워져 있었기에 도아린이 알아채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제대로 걸려버렸다.배지유는 억울함을 감추지 못한 채 결국 쓰레기통 아래로 밀려들어 간 핸드폰을 주우려고 무릎을 꿇었다.어렵사리 핸드폰을 꺼내고 난 뒤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해. 됐어?”망가진 핸드폰을 도아린에게 건네면서도 배지유는 여전히 주현정의 핸드폰이라는 사실을 몰랐다.“어머니 잘 챙겨. 안 그러면 가만 안 둬.”“내 엄마야!”배지유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집안에서 엄마만 네 편을 들어줬는데, 이제 엄마의 병세가 심해졌으니 네가 우리 오빠와 겨룰 힘이 어디 있겠어? 그리고 쓸데없이 밀당 같은 거 하지 마. 이미 이혼했으니 우리 집에 다시는 발 들일 생각 하지 말고.”그녀는 독설을 퍼붓고 뒤돌아 떠났다.진씨 가문으로 돌아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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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도아린은 드레스 주문을 받았을 때부터 강재민에게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그녀는 노래를 잘하고 창의적이며 신체 사이즈까지... 왠지 익숙하다고 느꼈다.그리고 그녀가 뮤직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이 드레스를 입고 나가길 바란다고 했을 때 도아린은 그가 짝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임을 확신했다.강재민이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뒤로 그녀는 모습을 감췄다.“저 결혼했어요.”도아린은 사실대로 말했다.“지금 이혼했잖아요.”강재민은 아주 가볍게 말했다.“하늘도 내게 기회를 줬는데 아린 씨는 안 줄 거에요?”“당분간 연애할 생각 없어요.”도아린은 솔직히 대답했다.그녀는 겨우 호랑이 굴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늑대 굴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사랑은 인생에서 필수품이 아니었다.“아린 씨를 4년이나 기다렸어요. 또 4년을 기다린다고 해도 문제없죠.”강재민은 두 손을 펼쳤다.기다란 손가락과 깔끔하게 다듬어진 손톱이었다.“주말 전에 아린 씨 핸드폰을 고쳐준다면 우리 집 연회에 올 거예요?”도아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그 노인네가 아린 씨한테 미안해서 보상하려는 거니까 거절해도 돼요. 어차피 저한테도 늘 퇴짜 맞다 보니 익숙할 거예요.”강재민은 도아린의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갔다.“왜 저를 적대시하는 거죠?”도아린은 늘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스타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모두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들이었다.대부분 추천을 받은 선수가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경향이 있었다.도아린은 티파니 주얼리를 대표했지만 스승이 없었기에 다른 선수나 심사위원들에게 있어 낙하산 같은 존재였다.심사위원회가 그녀를 우승자로 선정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고의로 최저 점수를 준 건 너무했다.강재민의 눈빛은 조금 어두워지더니 입가에 번져있던 미소가 사라졌다.“배씨 가문 사람들에게 큰 신세를 졌어요.”도아린은 배씨 가문이 뒤에서 손을 썼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진짜일 줄은 몰랐다.“누나가 납치된 적이 있었어요.”강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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