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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작가: 온유
도아린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서 지희가 괜찮아졌다고 말해줘. 근데 아무도 들어오게 하면 안 돼.”

율이는 달려가 문을 열고 도아린의 말을 배건후에게 전했다.

손보미의 얼굴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녀는 다짜고짜 병실로 뛰어들려 했으나 육하경에게 금세 잡혔다.

“아린 씨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

“손 놔요. 지희가 괜찮다고? 절대 믿을 수 없어!”

배건후는 문 앞에 서서 도아린과 눈을 마주쳤다.

지희는 고개를 숙인 채 도아린의 손을 잡고 조용하게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일 있으면 먼저 가. 가기 싫으면 방 잡고 기다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도아린은 손보미를 의식하며 일부러 그녀를 한 번 쳐다봤다.

손보미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육하경의 손을 세게 뿌리쳤으나 병실로 뛰어들기도 전에 다시 배건후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건후 씨, 아린 씨 말을 믿지 마! 만약 아린 씨가 지희에게 진정제를 먹였으면? 직접 확인해야겠어. 지희가 정말로 괜찮은지.”

배건후는 힘을 주어 그녀의 어깨를 더 세게 붙잡았다.

“아래 회의실로 갈게.”

그는 탁자 위에 놓인 꽃병을 한 번 보고는 병실 문을 닫았다.

문 앞에는 일북과 일남이 남아 지키고 나머지는 아래 회의실로 내려갔다.

도아린은 배건후의 암시를 눈치채고 시선을 돌려 꽃다발 속에 숨긴 감시 카메라를 발견했다.

병실에 감시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이 간 회의실에 모니터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도아린은 지희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이제 다 갔어. 물 좀 마셔. 어떤 결정을 내리든 언니는 지희를 존중할 거고 최선을 다해 도와줄 거야.”

아래 회의실에서 배건후는 모니터를 켜게 했다.

그는 육하경과 함께 손보미의 옆에 앉아 같이 모니터에 집중했다.

지희는 도아린의 손에서 물잔을 받아 들었다.

병실은 너무 조용해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해 제가 13살이었을 때 원장님이 우리를 입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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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제 휴대폰 어디갔는지 알아요?”“너 휴대폰 고장 났더라고. 내일 새로 바꿔 줄게.”진수혁은 다시 소파로 돌아가 업무를 이어갔다.도아린은 심심해서 소파 옆에 놓인 가방을 뒤적였다. 그 안에는 세탁된 옷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진수혁은 도아린의 병실에 머물며 그녀 곁만 지키고 있었다.“오빠, 저 이제 괜찮으니까 돌아가서 쉬어요.”도아린이 말했다.“이제 와서 그 사람들이 다시 저를 건드리진 않을 거니까요.”“그럴 가능성이 작긴 해도 전혀 없는 건 아니야.”진수혁의 시선은 여전히 노트북 화면에 고정되었는데 손가락은 능숙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네가 해야 할 일은 휴식뿐이야. 몸을 회복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사흘 후, 도아린은 바닥에 발을 딛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오빠, 저 건후 씨 보러 가고 싶어요. 과거 일은 제쳐둔다고 해도 이번에는 건후 씨가 절 구해준 거잖아요.”“건후 씨는 이 병원에 없어.”진수혁은 도시락을 열고는 그녀에게 숟가락을 건넸다.도아린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제 기억엔 건후 씨도 손과 다리가 골절됐고 이마에도 상처가 있었던 걸로 알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기로 교통 사고는 겉으로 보면 얼마 안 다친 것 같지만 심하게 다친 경우가 많다고 하잖아요.”진수혁은 부주의로 숟가락을 바닥에 떨구고 몸을 숙여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이거 씻고 올게.”병실 안에도 세면대가 있었지만 진수혁은 굳이 숟가락을 들고 방을 나가버렸다.도아린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설마, 내 말이 맞았던 걸까? 나보다 더 심하게 다친 걸까?’그녀는 당시 배건후의 상태를 떠올려 보려 애썼지만 사고 이후의 기억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어 알 수 없었다.‘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면 혹시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건가?’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윤명희와 진범준이 들어왔다.“퇴원 준비 끝냈어. 밥을 다 먹으면 바로 퇴원하자.”윤명희는 남편을 힐끗 본 후 도아린에게 말했다.“아린

  • 또 한 번의 거절   제718화

    “너 쉬어야 해.”역시 진수혁은 도아린이 다른 사람과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지금은 잠이 오지 않아요.”도아린은 변슬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전에 말한 건 어떻게 됐어요?”그러자 변슬기의 귀가 순식간에 빨개졌다.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빠, 슬기 씨랑 여자끼리 할 얘기가 좀 있어요.”진수혁은 변슬기의 수줍은 얼굴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그를 힐끗 쳐다봤다.“도 선생님을 오래 방해하지는 않을게요.”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오래 방해하지 않는다’는 말은 도아린에게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그녀는 아무 말 없이 진수혁의 반응을 살폈다.“그럼 잠깐만 허락해줄게.”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병실을 나갔다.“도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다 저 때문에 다친 거잖아요.”변슬기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도아린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그녀는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꿈을 꿀 때마다 자신이 더러운 수술대에 눕혀져 있는 장면이 떠올랐고 깨어 있는 상태인데도 장기를 이식하겠다고 날카로운 수술칼을 들이대는 장면도 아주 소름 끼쳤다.그런 꿈을 꿀 때마다 도아린이 하늘에서 내려와 천사처럼 그녀를 구해 주었다.‘빨리 도망쳐요! 뒤돌아보지 말고요!’그렇게 매번 변슬기는 도아린의 도움으로 도망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면 정작 도아린은 도망치지 못하고 그들에게 잡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변슬기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혹시라도 그 꿈이 현실로 될까 봐 그녀는 너무 무서웠다.자기를 구해준 대가로 도아린이 나쁜 놈들에게 희생될까 봐 말이다.“울지 마요.”도아린이 천천히 손을 뻗어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변슬기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울먹였다.“도 선생님, 제가 너무 멍청했어요. 안민아의 꼬임에 넘어가지만 않았다면 도 선생님을 이런 일에 끌어들이지도 않았을 텐데...”“피해자를 탓할 필요는 없어요. 안민아가

  • 또 한 번의 거절   제717화

    진수혁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수술 때문에 다 잘라 버렸어. 금방 자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아니면 비서한테 가발이라도 사 오라고 할까?”‘그래서 지금 내가 대머리라고?’손을 들어 가까스로 머리를 만져보자 얇은 망 같은 게 씌워져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혼수상태였던 걸 보면 부상이 꽤 심했던 게 분명했다.후유증만 남지 않는다면 머리카락 정도야 대수롭지 않았다.“건후 씨는... 괜찮아요?”그녀는 배건후가 차에서 굴러떨어지고도 절뚝이며 달려오던 모습으로부터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 한가운데에 차를 세워 도움을 요청하던 것까지, 그리고 구급차 안에서 했던 말마저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병원에 도착한 후로부터는 의식이 흐릿했지만 눈을 뜰 때마다 그가 곁에 있는 걸 볼 수 있었다.배건후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버텨야 한다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진수혁은 그녀의 질문을 못 들은 척하며 휴대폰을 들고 병실을 나갔다.“일 끝나면 가발 하나 사 와.”그는 병실 문을 닫고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다.누군가 벽에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한 번만 보고 바로 나갈게!”강재민이 진수혁의 제지를 뿌리치고 병실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도아린이 깨어나 있는 걸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아린 씨, 깨어났어요?”그를 막지 못한 진수혁이 한 마디 덧붙였다.“아린이는 휴식이 필요해. 그러니까 용건만 말해.”“나도 알아.”강재민은 성큼성큼 다가와서 몸을 숙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도아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절... 알아볼 수 있겠어요?”강재민은 순간 긴장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누구냐고 묻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다.“당연히 알죠.”도아린이 담담하게 말했다.강재민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병실 문가에 서 있는 진수혁을 바라보았다.“나 아린 씨랑 단둘이 몇 마디만 하면 안 돼?”“안 돼.”진수혁이 단호하게 거절했다.“방금 깨

  • 또 한 번의 거절   제716화

    “건후야...”주현정은 깜짝 놀라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는 무심코 배건후의 상처를 눌러버리자 그는 숨을 들이마시며 얼굴을 찌푸렸다.주현정은 급히 손을 놓고 배건후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건후야, 엄마가 의사를 부를 테니까 치료 좀 받아.”배건후는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곁에 있던 진씨 가문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직이 중얼거렸다.“여기가 어디죠?”“건후야, 엄마 놀라게 하지 마!”주현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윤명희가 다가와서 그에게 치료를 권하려 했지만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먼저 물었다.“왜 제가 병원에 있는 거죠?”“아린이랑 교통사고를 당했잖아. 너...”진경수는 혹시나 일부러 기억을 잃은 척하는 건 아닌가 해서 그의 눈을 주시했다.그러나 배건후의 눈빛은 완전히 흐려져 있었고 병원에 있는 이유뿐만 아니라 사람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피를 토하고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진경수가 급히 그를 붙잡았다.“배건후!”“의사 선생님, 제발 제 아들 좀 살려 주세요!”...눈을 떴을 때, 도아린은 침대 옆 소파에서 서류 작업을 하고 있는 진수혁을 보았다.“오빠...”그녀는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도아린이 깨어난 걸 본 진수혁은 노트북을 내려놓고 그녀에게로 다가왔다.“움직이지 마. 내가 물 가져올게.”그는 침대 각도를 살짝 올리고는 그녀에게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는 뒤통수를 조심스럽게 받쳐 주었다.목이 바짝 말랐던 도아린은 단숨에 물 반 컵을 마셨고 그제야 목 상태가 조금 나아진 듯했다.“그 사람들 말이야...”비록 증거는 없었지만 그녀는 트럭 운전사를 매수한 주범이 장기 매매 조직과 관련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그녀는 뭐라 더 말하려 했지만 진수혁이 말을 끊어 버렸다.“이미 잡았어.”그의 평소 같이 차분한 눈빛에는 왠지 모를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변슬기를 구출한 다음 날, 그는 사람을 시켜 목장 근처의 CCTV 영상을 분석하게 했다. 그리고 도주할 가능성이

  • 또 한 번의 거절   제715화

    의사가 급히 다가와 도아린을 확인하더니 주사를 한 대 더 놓았다. 그리고는 운전기사에게 속도를 빨리라고 재촉했다.“환자의 상태가 매우 위급합니다. 빨리 가주세요!”“도아린, 너 절대 죽으면 안 돼! 나랑 이혼할 때는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이렇게 죽으면 안 되지. 그렇게 자존심이 강하다며? 그럼 지금이 네 대단한 자존심을 보여 줄 때야!”배건후는 점점 더 초조해져서 말을 가리지 않고 마구 내뱉었다. 눈물은 통제할 수 없이 흘러내려 도아린의 이마 위로 떨어졌다.눈물이 상처에 닿자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중상 환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 쪽에서는 미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구급차가 도착하자마자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도아린을 들것에 올리고는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환자분도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한 의사가 배건후를 붙잡았다.“저는 괜찮습니다.”배건후는 의사의 팔을 뿌리치고는 다리를 절뚝이며 따라붙었다.“아내가 괜찮은지 먼저 확인해야 해요!”하지만 그 의사는 끝까지 배건후를 따라가면서 그의 상태를 관찰했다. 그는 팔과 다리에 골절 가능성이 있었고 귀에서 출혈이 있는 걸 봐서 뇌 손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사가 뭐라 하든 배건후는 듣지 않았고 오직 도아린 곁을 지키려 했다.진경수를 비롯한 진씨 가문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도아린의 사고 소식을 접한 윤명희도 서둘러 병원으로 왔다.“배건후, 이 개자식아!”진경수는 배건후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 했으나 경찰이 막아서며 상황을 설명했다.“건후 씨의 빠른 판단이 없었으면 아린 씨는 더 큰 부상을 입었을 겁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사망했을 수도 있고요. 건후 씨가 트럭의 충격을 막아줘서 그나마 다행입니다.”“아린아, 조금만 버텨. 가족들도 다 너 보러 왔어. 아무 일도 없을 거고 무사할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윤명희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도아린에게 손을 뻗으려 했지만 혹여 그녀를 아프게 할까 봐 조심스러웠다.“건후야, 너도 치료

  • 또 한 번의 거절   제714화

    어떤 사람은 차 문을 열자는 생각에 찬성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힘을 써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배건후의 간절함에 영향을 받았는지 다들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썼다. 모두가 차 안에 있던 도구를 꺼내 들고 힘을 합쳐 문을 열려고 했다.“하나, 둘, 셋! 하나, 둘, 셋!”“조금만 더 힘내요. 움직이기 시작했어요!”누군가가 이렇게 외치자 다들 이를 악물었고 어떤 이는 손에 들고 있던 도구를 부러뜨릴 정도로 힘을 썼다. 마침내 ‘쾅’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렸다.“도아린!”문이 열리자마자 배건후는 앞으로 달려가서 안전벨트를 풀어주고 그녀의 몸을 일으켜주었다. 배건후는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레 감싸고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어디 다쳤어? 어디가 아픈지 말해줘.”힘겹게 눈을 뜬 도아린은 배건후의 부어오른 눈, 갈라진 입술과 멍든 뺨을 바라보았다. 우아하고 단정했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배건후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다리가 끼이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그때, 도아린은 그의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며 그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배건후는 즉시 고개를 번쩍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있으니까 걱정 마! 곧 구급차가 올 거고 아무 일도 없을 거야.”배건후는 이렇게 말하며 직접 도아린을 안아 올렸다. 그러나 좌석에서 벗어나자마자 두 사람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이 다가와서 그들을 도왔다.어떤 이는 차량 뒤쪽에 경고 표지를 설치했고 어떤 이는 경찰에 신고를 했으며 또 어떤 이는 휴지를 찾아서 출혈을 막아주었다.구급차는 경찰차보다 먼저 도착했다.의사는 부상자가 두 명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구급차를 한 대 더 부르려 했다.“전 괜찮습니다! 제 아내부터 봐주세요. 부탁드립니다!”의사는 배건후가 걸을 수 있고 말도 조리 있게 할 수 있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을 함께 태웠다.도아린은 산소마스크를 쓴 채로 몽롱하게 잠에 빠지려 했다.그녀를 살펴본 의사는 표정이 심각

  • 또 한 번의 거절   제713화

    급커브를 빠져나가면 피할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급하게 액셀을 밟았다.차량 속도가 너무 빨랐기에 커브를 돌 때 브레이크를 여러 번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칫하면 차가 옆으로 넘어갈 뻔했다.도아린이 막 안도의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맞은편에서 트럭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뒤쪽 트럭도 경적을 울렸고 맞은편의 트럭도 그에 응답하듯 경적을 울렸다.맞은편에서 오는 트럭이 도아린의 차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 왔다. 그녀는 순식간에 온몸의 혈액이 머리로 쏠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계획된 살인이었다.그녀는 필사적으로 침착하려고 했지만 몸은 이미 마비된 상태였다.옆에서는 또 다른 트럭이 밀어붙여서 도망칠 공간이 없었다. 브레이크를 밟거나 정면충돌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그렇다고 속도를 줄이면 뒤에 있는 검은색 밴에 부딪힐까 봐 걱정이었다.‘돌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여자는 정말 남자보다 판단력이 약한 것일까?’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인 듯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검은색 밴이 도아린의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검은색 밴은 급브레이크를 밟더니 도아린의 차와 트럭 사이를 가로막았다.맞은편 트럭 운전사는 이런 변수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반사적으로 핸들을 꺾어 버렸고 도아린 옆에서 나란히 달리던 트럭과 충돌해 버렸다.두 대의 트럭은 세게 부딪히고 나서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 트럭에 있는 트레일러가 검은색 밴을 세게 들이받았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도아린도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밴에 부딪혀 버렸다. 그 충격에 검은색 밴은 완전히 납작하게 눌려 버렸다.에어백이 터지면서 그녀는 온몸이 쑤셨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시야도 흐릿해졌다.그때, 부서진 검은색 밴의 문이 힘겹게 밀려 열리더니 한 남자가 굴러떨어졌다.배건후였다. 그의 팔은 피투성이였고 새하얀 셔츠도 온통 핏자국으로 물들어 있었다.그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힘겹게 도아린의 차 앞으로 걸어왔다.“도아린,

  • 또 한 번의 거절   제712화

    배건후는 도아린을 따라 아래층 정원까지 내려왔다.“도아린...”그제서야 입을 열었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말을 끊어버렸다.“지금 소송 문제로 바쁘시잖아요. 더 이상 건후 씨 시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도아린, 우리 제대로 이야기 좀 해.”“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배건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 앞을 막았다.“넌 그놈들의 이익을 건드렸어. 다들 널 가만두려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경찰에게 내가 제공한 정보라고 말해. 그러면 나를 찾아올 거니까.”도아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싸늘했다.어젯밤 그녀가 변슬기를 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경찰뿐이었다. 경찰 측에서는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도아린과 진수혁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았다.주현정 역시 변슬기가 납치되었다는 사실만 듣고 그녀와 함께 병문안을 온 것이었다.하지만 배건후는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유민 씨가 말해줬어요?”배건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부정하지도 않았고 결코 인정하지도 않았다.그는 왠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배건후는 손을 뻗어 도아린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시선을 보고는 허공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손을 거두었다.“도아린, 넌 지금 보호가 필요해.”“보호가 필요하다고 해도 배 대표님의 보호는 필요 없어요.”도아린은 그가 건드리지도 않은 어깨를 툭 털어내고는 싸늘하게 말했다.“저희는 감정적으로 얽힌 사이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더더욱 아무 관계 없는 사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 제 앞에 나타나지 말아 주세요.”“그럼 법정에는 왜 간 거야?”그녀가 법정에 온 걸 보고 배건후는 몇 날 며칠 동안 설레발을 쳤다. 하지만 그의 설레는 감정은 결국 바닥에 내팽개쳐져 처참히 짓밟히고 말았다.“법정에 간 건 저희 할머니 소송 때문이에요.”도아린은 그를 지나치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배건후가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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