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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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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얼마 지나지 않아, 유건은 고상훈의 퇴원 수속을 다 마쳤다. 그날 저녁 유건과 시연도 바로 고씨 가문의 본가로 이사했다. 유건은 차를 주차하고 거실로 들어갔다. 고상훈은 몸이 허약하고 기력이 없어서 집에 오자마자 바로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 거실에서는 시연이 집사인 이호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집사님, 할아버지 식사랑 약은 대강 이 정도예요. 제 연락처를 저장해두시고요. 잠시 후에 제가 환자를 돌보는 데에 필요한 정보가 담긴 문서를 보내 드릴 테니까 가끔 잊어버리시면 한 번씩 확인하시면 돼요.” “그거 좋네요.” 이호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엌 쪽을 가리키며 “왕 아주머니가 지금 국을 끓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관없었지만, 사모님이 한 번 봐주시겠어요? 문제가 없는지?” “그럴게요.” 두 사람은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유건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감탄하며 자연스레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지금 여기 지시연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집안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혼란스러워질 줄 알았는데, 지시연이 와서 모든 걸 잘 정리해 주니 나도 마음이 놓이네.’ 유건은 먼저 고상훈의 상태를 확인한 후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서자, 방 한가운데에 그다지 크지 않은 캐리어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안에 짐이 얼마 들어있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방문이 열고 들어온 시연은 방 안에 미리 와있던 유건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미안해요, 문 두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유건은 별다른 반응 없이 캐리어를 가리켰다. “이게 전부야?” “이 정도면 많은 거죠.” 시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한 계절 옷하고 책 몇 권 정도...” ‘한 계절?’ 유건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옷을 한 계절 입을 것만 가져왔어?” “네.” 시연은 눈을 깜빡이며, 그가 왜 묻는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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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우주가 식중독에 걸렸대요...” 시연의 눈가가 붉어졌고, 유건은 동생 우주를 모를 테니 설명하듯 덧붙였다. “우주는 제 남동생이에요!” 유건은 순간 놀라서 몸이 굳어졌다. 시연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원래 지시연에게도 가족이 있었구나.’ “내가 같이 갈게!”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시연이 거절하려던 순간, 유건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서 차를 잡는 건 불가능해! 같이 가!” 유건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너 동생이 걱정되지 않아?” “아, 네!” 다급한 상황에서 결국 시연은 유건을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차에 탔다. “정말 죄송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귀찮게 해서요.” 유건은 그녀를 흘깃 보며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나한테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데, 이럴 때 내가 널 안 도우면 나는 사람도 아니게?” “감사해요.” 시연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 우주는 요양병원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시연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응급실은 사람이 많아 혼잡한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 제가 지우주 환자 보호자예요!” 의사는 시연을 보며 말했다. “드디어 오셨네요! 빨리 위세척해야 하는데 환자가 자폐증이 있어서 소통이 어려워 협조하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 마취 후 삽관할 수밖에 없습니다! 빨리 서명하세요!” 시연은 그 말을 듣고 다리가 풀려버렸다. 비록 그녀도 의사였지만, 막상 우주의 일에 있어서는 전문가로서의 냉정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지시연!” 유건이 재빨리 그녀를 부축하며 넘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부축했다. 그는 시연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고, 그녀를 반쯤 안은 채 의자에 앉혔다. “여기서 기다려.” 시연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유건은 이미 의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에 서명하면 되죠?” 의사는 유건을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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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입술 위의 부드러운 감촉에 두 사람 모두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유건은 서둘러 시연에게서 떨어졌다. ‘내가 이 여자를 볼 때마다 자꾸 키스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게 이번이 몇 번째지? 아이고, 모르겠다!!’ “흠.” 그는 가볍게 헛기침하며 어색함을 감추려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네가 안 피곤해도, 네 배 속에 있는 아이는 피곤하지 않겠어?” “네...” 시연은 고개를 숙이며 유건의 시선을 피했다. 유건은 그녀를 소파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돌아서며 말했다. “그럼 자라.” “그래요.” 하지만 시연은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두 번째였어! 고유건이 나에게 키스한 게!!’ ‘지난번엔 술에 취해서 한 실수였다지만, 이번에는 왜?!’ 시연은 손으로 입술을 만지며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장소미의 남자 친구에게 키스를 받을 수 있지?!’ ‘고유건의 입술이 얼마나 많이 장소미와 닿았을지 모를 일인데!!’ 결국 시연에게는 잠들 수 없는 밤이 이어졌다. ... 다음 날 아침, 유건은 시연을 강울대학교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 차에서 내리며 그는 시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잠깐만, 근처 식당에서 아침 먹고 가.” 시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저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장소미였다. 소미는 눈가가 붉게 충혈된 채로 유건과 시연 두 사람을 원망과 슬픔이 뒤섞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소미의 원망은 시연을 향했고, 슬픔은 유건을 향한 것이었다. “유건 씨... 지 선생님과 둘이서...?” 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유건의 손을 뿌리쳤다. “저 먼저 갈게요.” 시연이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 유건이 시연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소미는 참지 못하고 감정을 시연에게 폭발시켰다. 시연을 붙잡으며 외쳤다. “지 선생님! 뭐라고 말이라도 하고 가요! 설명도 없이 어디로 가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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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헤어지자고?’유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나는 장소미와 제대로 된 연애를 한 적도 없는데...’하지만 자신이 한때 소미에게 결혼을 약속했던 만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순간, 소미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안 돼요!! 유건 씨, 저는 헤어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소미 씨, 대답할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유건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그녀를 덮었다. “사실은, 소미 씨가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는 거야.”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은 지치기 마련이다. 유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미의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을 보며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을 충분히 하고 대답해. 만약 우리가 헤어져도, 내가 약속했던 지원은 변하지 않을 거야.” 그는 결국 소미에게 죄책감을 느꼈고, 일종의 보상이라도 하기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유건은 자리를 떠났다. 소미는 흐르던 눈물을 닦고, 갑자기 손을 들어 탁자를 뒤엎었다. 방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녀는 이를 갈며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외쳤다. “지시연! 내가 이렇게 호락호락 물러날 것 같아?!!” ... 유건은 회의를 마친 뒤, 사무실로 돌아와 서류 두 개에 서명하고 그것을 주지한에게 건넸다. “지한아, Four Hours에 연락 좀 해줘.” 지한은 잠시 멈칫했다가, 유건이 미소 지으며 설명을 덧붙이자 고개를 끄덕였다. “지시연에게 줄 거야.” 유건과 시연이 고씨 가문의 본가로 이사한 일은 지한도 알고 있었다. Four Hours는 고급 맞춤 의류를 제작하는 곳으로, 유건이 입는 모든 옷은 이곳에서 제작하고 있었다. 이제 시연의 옷도 함께 맞추려는 것이었다. 지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결국 시연 씨에게 느끼는 형님의 감정이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것 같네.’ “알겠어요, 형님.” ... 병원에서 시연은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무엇을 하든 자꾸만 유건과 나눴던 그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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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유건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고상훈은 깊은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손자를 응시했다. “입을 함부로 놀리면 안 되지. 아내에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야.” 유건은 순간 멈칫하며 눈을 깜빡였다. “제가 뭐라고 했다고 그러세요? 별 말한 것도 없잖아요.”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 그럼 할아버지의 손주며느리가 어디 갔는지 아세요?” “나한테 묻냐?” 고상훈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아내가 어디 갔는지 네가 몰라? 그럼 너 스스로 반성해야지.” “저더러 반성하라고요?” 유건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제가 모를 리가 없죠. 할아버지의 손주며느리가 저한테 전화하긴 했는데, 제가 그때 바빠서 못 받았을 뿐이거든요.” 고상훈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유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유건은 왠지 불편해졌다. “할아버지,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고상훈은 단호하게 말했다. “널 보면 딱 한 가지 생각만 나. 말만 앞서는 녀석.” 유건은 그 순간 고상훈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고상훈에게 완전히 말로 당한 유건은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핸드폰을 들고 시연에게 전화를 걸며 중얼거렸다. “전화 안 받으면 두고 보자.” 그러나 이번에는 시연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유건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디야?” [할아버지가 말씀 안 하셨나요?]시연은 의아한 듯 물었다. [집에 들렀을 때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는데요.]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나는 너에게 물어봤는데 왜 자꾸 대답은 안 하고 나한테 다시 물어봐?” 그는 약간 화가 난 듯했다. 평소 기분 변화가 심한 남자였다. 시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창우면에 있어요.] “창우면? 그게 어디야?” 유건은 기억을 더듬었지만, 창우면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는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거기서 뭐 하러 가 있냐?” [일하러요.] 시연은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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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창우면.이 시각, 영광병원은 이미 한바탕 혼란 속에 휩싸였다. 겉으로 보기엔 혼잡해 보이지만, 모두가 산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구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의료봉사는 원래 병원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연은 산사태가 일어난 그 산속에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시연은 산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 속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임진아와 김현진도 함께였다.“시연아, 준비 다 했어? 얼른 차에 타!”“응, 다 했어!”시연은 약상자를 메고, 양팔에는 산화에틸렌 소독 팩을 안은 채 마당으로 뛰어나갔다.“시연아, 그거 내가 들어줄게.”진아가 시연의 짐을 받아 들고, 현진과 함께 시연을 트럭에 올려주었다.차는 산 입구까지 달려가서 멈췄다.“여기부터는 걸어가야 해.”남자인 현진은 가장 무겁고 많은 짐을 들고 있었다.진아는 조용히 시연에게 속삭였다. “현진이 진짜 괜찮지 않아? 한 번 사귀어 볼 생각이 전혀 없는 거야?”“일이나 하자.”시연 그 질문에 대답할 마음이 없었다. ‘생각할 게 뭐가 있어? 내 배 속에 있는 아기조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이제 곧 3개월이 다 되어간다!’‘아기를 지울 거라면, 빨리 결정을 내려야지, 더 늦어지면 내 몸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데...’산사태 현장에는 소방대가 이미 도착해 있었고, 의료팀을 위해 텐트를 쳐서 비워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시연과 팀원들은 도착하자마자 즉시 구조 작업에 투입되었다.오후 두 시가 다 되어 모두 교대로 급하게 도시락을 몇 입씩 먹었다.“시연아!”시연이 힘겹게 밥을 넘기고 있을 때, 뒤에서 이번 팀의 리더인 장성산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교수님.”시연 서둘러 일어났다. 양석현 때문에 장성산은 늘 시연을 좋게 보지 않았다.역시나, 이번에도 장성산은 입을 열면 시연에게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짐 챙겨. 곧 산사태 현장으로 들어가서 응급처치해!”“알겠습니다, 교수님.”이미 그쪽에서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시연은 절반만 먹은 도시락을 내려놓고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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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고, 고...” 진아는 놀라서 더듬거렸다. 하지만 유건은 이런 상황에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묻잖아, 누가 지시연에게 어떻게 했다고?” “그게 말이죠...” 눈앞의 남자는 평범하지 않아 보였다. 현진은 서둘러 상황을 설명했고, 좀 더 덧붙였다. “지금 시연이와 연락이 안 돼요.” 이야기를 다 들은 유건의 얇은 입술은 일직선으로 굳어졌고, 그의 깊은 눈동자는 마치 짙은 먹물을 뿌린 듯 어둡고 무서웠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목숨이 아깝지 않다는 건가.” 그리고 이어서 그도 지시를 내렸다. “지한아, 민환, 기환, 나랑 같이 가자!” “네, 형님.” 유건 일행은 산사태 지역으로 들어갔다. 현진의 말대로 아무도 시연이를 본 적이 없었다. 지한과 민환 형제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유건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다. 유건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고, 그의 이마에서는 미세하게 뛰고 있는 혈관이 보였다. 그는 무겁게 말했다. “지한아, 헬기를 준비해. 더 깊이 들어간다. 산 전체를 뒤엎어서라도 지시연을 찾아내야 해.” “네, 형님!” 지한의 목소리마저 긴장에 차 있었다.... 밤은 점점 짙어갔다. 산 위로 헬기의 굉음이 들려왔고, 하늘에서 강한 빛줄기가 아래로 내려와 산을 훑었다. ... 이때 시연은 여덟, 아홉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 그 남자아이는 무너진 동굴에서 시연이 간신히 구해낸 아이였다. 그래서 그녀의 두 손은 상처투성이에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손톱도 두 개나 부러져 있었다. 남자아이는 다리가 부러져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었고, 시연은 아이를 업고 길을 나섰다. 그녀는 이 산길에 익숙하지 않아 길을 잃었고, 아직 산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엉엉...” 등 위에서 남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누나, 너무 아파요.” 시연은 그 소리를 듣고, 자신의 동생인 우주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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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심장은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좋아해?” 유건은 손가락으로 시연의 입술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다시 물었다. “내가 너에게 키스하는 거, 좋아하냐고?” 시연은 충격에 말을 잃었다. 오직 유건의 심장 고동 소리만, 쉴 새 없이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유건은 다시 고개를 숙여 시연의 입술을 붙잡았다. 시연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상큼한 향기, 마치 신선한 귤처럼 코끝을 감싸며 그를 매료시켰다. “고 대표님!” 갑작스러운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이 로맨틱한 순간을 깨뜨렸다. 시연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유건을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품이 비어 있자, 유건은 굳어진 얼굴로 남자를 향해 싸늘한 눈길을 보냈다. “뭐야?” “그게, 말이죠...” 남자는 그들과 함께 온 현지 주민으로,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저희 마을 사람들이 아직 실종된 분들이 있어서, 혹시 헬기를 잠깐 빌릴 수 있을까 해서요.” 유건은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써도 돼.” “정말 감사합니다!” 남자가 물러나자, 유건은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사이 시연은 이미 멀리 가서 남자아이 곁에 있었고, 아이를 들것에 옮기는 것을 돕고 있었다. 귀환하는 헬기 안에서, 유건과 시연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유건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지만, 시연은 눈을 감고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우리... 또... 키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헬기 안에서, 침묵이 이어졌다....병원에 도착하자, 현진과 진아가 서둘러 달려왔다. “시연아, 괜찮아?” “정말 깜짝 놀랐잖아!” “괜찮아.” 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진아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럼 화장실 가서 거울 좀 보고 와.” “어? 아, 그래.” 시연은 왜 그런지 몰랐지만, 순순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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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그게 말이죠...” 진아는 유건의 연속되는 질문 공격에 잠시 멍해졌다. 시연의 사생활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유건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무의식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 대표님이 이렇게 묻는 걸 보니... 네. 있었어요.” 그 말을 듣자, 유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남자가 바로 시연의 아이의 아버지겠군.’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누굽니까? 이름이 뭐죠?” 진아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고 대표님은 잘 모르실지도 모르겠네요. 노은범이요, 노씨 가문의 막내아들인데, 들어보셨나요?” ‘노, 은, 범.’ ‘바로 그 사람이구나.’ 유건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되었고, 손은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 속에서는 찌르는 듯한 고통이 퍼졌다. 그는 침착하게 물었다. “왜 헤어졌죠?” 진아는 입술을 앙다물고 답했다. “은범이 어머니가 반대해서요. 결국 헤어지게 됐어요.” “그렇군.” 유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지시연이에게 내가 이걸 물어본 사실은 비밀로 해주세요.” 진아는 그의 빈틈없는 잘생긴 얼굴을 보며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진아가 돌아서자, 유건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얼굴은 순식간에 험악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노은범이라니!’ ‘노은범이 나와 두 번 마주쳤을 때, 내가 느꼈던 그 설명할 수 없었던 적대감...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네... 후...’ ‘그놈은 어떻게 지시연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미 지시연을 버린 사람 아니었나?’ 유건은 남자였기에, 은범이 아직도 시연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특히나, 유건 자신도 지금 시연에게 끌리고 있었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 지한 일행이 유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한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유건은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장성산 처리해.” 지한은 잠시 당황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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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강울대학교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시연은 차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 “시연아.” 유건의 잘생긴 얼굴에 약간의 불안함이 비쳤다. “나, 할 말이 있어.” “지시연!” 앞쪽에서 이미 누군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시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결심한 듯 말했다. “지금은 일하러 가야 하니까, 일 끝나면 그때 얘기 들어줄게요.” 잠시 멈추고 나서 덧붙였다. “그리고, 나도 고유건 씨에게 할 말이 있어요.” 유건의 깊은 눈빛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좋아.”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시연은 차에서 내려 동료들과 함께 부상자의 등록과 이송을 돕기 시작했다. 그녀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유건은 미소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시연이도 나와 같은 말을 하려는 걸까?’ ... 모든 부상자들의 입원 절차가 끝난 후, 시연은 비로소 잠시 쉴 수 있었다. “지 선생님, 어서 가서 식사하세요! 오늘 도시락이 정말 맛있어요!” ‘정말?’ 시연은 웃으며 도시락을 받으러 갔고, 확인해 보니 정말 맛있어 보였다. ‘가을’에서 만든 도시락이었다. ‘G시에서 가장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인 가을에서 만든 도시락을 외부로 배달하다니, 오늘 병원에서 엄청난 투자를 한 모양이네.’ 밥, 반찬, 그리고 국까지, 모두 개별 포장되어 있었으며 과일도 함께 제공되었으며,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시연은 도시락을 먹으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에헴!” 첫 번째로 보인 것은 유건이 보낸 메시지였다. [도시락 맛있어?] ‘뭐?’시연은 곧바로 이해했다. 이 도시락은 모두 유건이 시연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그렇지, 병원이 이렇게까지 신경 썼을 리가 없지.’ ‘하지만 고 대표님은 돈이 많으니 어렵지 않겠지.’ [왜 답장 안 해? 아직도 못 쉬고 있나? 바쁜 거야?] [지시연, 네 몸을 항상 먼저 생각해. 너무 무리하지 마!] ‘이 남자는 이미 살짝 화가 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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