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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1화

“에이, 그건 네 착각이고. 다른 여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 조수민은 감정이 없는 여자야.”동건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쯧쯧, 넌 왜 자꾸 웃어?” 수민은 입을 삐죽거렸다.“그럼 울라고?”“그래, 내가 휴지 줄게.”동건은 말없이 라이터를 꺼냈다.수민이 손을 흔들자, 그는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건네주었다. ‘이야, 이 여자가 드디어 눈치 있게 불을 붙여주려는 건가?’하지만 이것 역시 동건의 착각이었다.탁.수민은 동건의 손을 세게 내리쳤다.“담배 달라고! 왜 엉뚱하게 라이터를 주는 거야? 넌 눈치도 더럽게 없네...”동건은 어이가 없었다. 먼저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이번에 수민이 말할 필요도 없이 얌전하게 라이터로 그녀를 위해 불을 붙였다.불빛은 여자의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수민은 고개를 숙였다. 하얀 이빨로 담배꽁초를 문 다음 붉은 입술을 가볍게 오므리자, 담배꽁초에 선명한 립스틱 자국이 나타났다.동건은 뜻밖에도 그 모습이 넋을 잃었다.“야, 불 꺼.”“어? 아!”동건은 라이터를 다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두 사람은 클럽에서 두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누었다. 와인 한 병을 마시고 나왔을 때, 이미 새벽이 되었다.둘 다 술을 마셨기에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수민은 대리를 부르려고 했지만,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야,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여기 전부 클럽이잖아. 한밤중이라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해.”“그럼 직접 택시 하나 잡으면 되겠다. 내일 시간 내서 다시 내 차 몰고 가야지.”그러나 그 결과, 택시를 타려면 3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수민은 말문이 막혔다. 이때 그녀는 눈알을 굴리더니 동건에게 물었다.“넌 어떻게 돌아갈 거야?”“난 어디도 안 가.”“그게 무슨 뜻이야?”“맞은편 호텔 봤어?”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어, 그런데?”“내 거야.”“그래서?”“직접 호텔에서 자면 되잖아. 귀찮게 왜 집에 가? 너 바보 아니야?”수민은 그제야 깨달았다.“역시 너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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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이 말을 듣고 동건은 미간을 찌푸렸다.‘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닌데.’“필요 없어, 그냥 데리고 가.”지배인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지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치 있게 물러났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지연이 물었다.“도련님께서 호텔에 오시면 꼭 여자를 찾으셨다면서요? 왜 오늘은...”“전에는 줄곧 그랬지만, 가끔 예외도 있는 법이야. 도련님께서 여자 때문에 호텔에 오신 줄 알아?”“그런데 저는...”지연은 어렵게 이번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지배인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도련님의 생각에 달렸으니까. 탓하고 싶으면 너 자신을 탓해. 어쩜 이렇게 운도 없는 거야? 도련님께서 오늘 지치셨기 때문에 쉬고 싶으신 거겠지. 넌 얼른 가서 일이나 해. 주제넘은 생각하지 말고...”여자가 이를 갈았다.다른 한편, 수민은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그녀는 동건인 줄 알았다.“밤늦게 무슨 일... 어?”동건이 아닌 한 젊은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수민을 보자,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미안해요, 내가 문을 잘못 두드린 것 같아요.”“괜찮아.” 말을 마치자마자 수민은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그러나 남자는 문을 받치며 그녀가 닫지 못하게 막았다.수민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또 다른 일 있어?”“정말 날 모르는 거예요?”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은 섭섭함으로 가득 찼는데 은근히 울먹이고 있었다.수민은 웃으며 진지하게 그를 훑어보았다.그녀는 처음부터 문을 잘못 두드렸다는 이유를 믿지 않았다.이곳은 꼭대기층이었고, 스위트룸이 딱 두 칸밖에 없었으니까.그리고 다른 하나는 동건의 방이었다.남자는 자신이 문을 잘못 두드렸다고 했지만, 한밤중에 이렇게 입고 동건을 찾으러 갈 리가 없었다.그는 흰색 티셔츠에 연두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운동화까지 신고 있으니 그야말로 해맑은 대학생이었다.‘청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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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달빛은 물처럼 부드러웠고, 기나긴 밤이 지났다.이튿날 오전 9시, 동건은 깨어나자마자 수민을 찾아갔다.노크를 하려고 할 때, 문이 안에서 열렸다.“조...”‘엥!’한 젊은 남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머리카락이 약간 흐트러져 있었는데, 딱 봐도 금방 잠에서 깨어난 게 분명했다.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치자, 동건은 아예 멍해졌다.이에 비해 성후는 훨씬 담담했다. 그는 동건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쉿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안쪽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작게 말해요. 누나 아직 자고 있어요.”말을 마치고 바로 가버렸다.동건은 복도에서 멍을 때리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X발!”‘조수민이 뜻밖에도 내 호텔에서, 내가 안배해준 방에서, 내 맞은편에서 다른 남자와 잤다니?!’동건은 얼른 들어가서 고의로 문을 닫으며 큰 소리를 냈다.그러나 그의 호텔은 최고급이라 전부 무음문을 사용했기에 전혀 큰 동정을 낼 수 없었다.동건은 화가 나서 의자를 발로 찼지만, 바닥에 카펫을 깔았기 때문에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그 카펫은 심지어 퀄리티가 가장 좋은 것이었다.촤악.하다 못해 동건은 창가에 가서 커튼을 열었다. 햇빛이 방안에 쏟아지자, 수민은 마침내 깨어났다.“진성후, 이게 무슨 짓이야?! 방금 한 말 다 잊은 거야?!”수민은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났지만 햇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녀는 침대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그 사람이 성후인 줄 알고 명령했다.“커튼 닫으라고!”수민은 다 좋은데 유독 아침에 일어날 때 성질이 좀 있었다.평소에 정은조차 아침에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다.동건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지었다.여자의 목과 가슴에 키스 자국이 널려 있었고, 심지어 색깔조차 달랐다. 모두 성인이었기에 동건은 두 사람이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조수민! 너 아주 신이 났구나?”이 목소리에 수민은 멍해졌다.그녀가 눈을 깜박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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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왜 날 그렇게 쳐다봐? 빨리, 나 목말라 죽겠어!”동건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섰다.얼음물 한 잔을 마시니, 수민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나한테 무슨 볼일 있어?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니까 좀 부끄럽네...”남자가 물을 따르러 가는 틈을 타서 수민은 이미 옷을 다 입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어머, 벌써 11시라니!’“부끄러워? 우리 조수민 아가씨가?! 넌 아주 당당하던데!”동건은 마치 찔려 터진 고무공과 같았다. 전에는 겨우 참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 쌓인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했다.“당당하게 나에게 물 좀 따르라고 시켰잖아? 그게 부끄러워서 한 말이 아닌 것 같은데?”말을 마치자 동건은 작은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수민은 눈살을 찌푸렸다.“너 뭐 잘못 먹었어? 왜 나한테 성질이야?”“오늘 아침에 네 방에서 나간 그 남자부터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니야?”수민은 영문을 몰랐다.“설명할 게 뭐가 있어? 넌 여자와 잤다고 특별히 남에게 설명할 거니?”동건은 말문이 막혔다.“아니, 나도 지금 어쨌든 네 남자친구잖아?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난 뭐가 되는 건데?”그를 바라보는 수민의 눈빛은 더욱 의혹에 빠져들었다.“첫째, 넌 내 가짜 남자친구야. 둘째, 난 남들 앞에서 다른 남자와 잔 게 아니라, 단지 내 방에서 잤을 뿐인데. 이게 너한테 무슨 영향을 준다는 거지? 합작하기 전에 우리 이미 약속했잖아, 서로의 감정에 간섭하지 말자고. 난 계약을 위반한 적이 없어. 그런데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동건은 말로 수민을 이길 수가 없어서 짜증이 났다.수민은 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그나저나, 이 호텔 정말 좋네. 앞으로 여긴 내 방이야. 다음에 또 와야지.”‘방금 다음에 또 올 거라고 했어?!’“참, 이따가 프론트에 전화해서 룸 카드 한 장 더 준비해 달라고 해.”“뭐 하려고?”“한 장은 나 혼자 쓰고, 다른 한 장은 남에게 주려고!”‘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물어보다니.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아예 바보로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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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그전에.”“도련님께서 분부하셨으니...”“더 전에.”“1901호 방이 체크아웃을 마친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그 여자 이미 떠났다고?!”“네, 약 10분 전에요.”“젠장!”지배인은 영문을 몰랐다.“그 여자들 전부 나가라고 해! 보기만 해도 짜증 나니까.”‘아니, 전에 전화하셨을 땐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는데.’짜릿하고 두근거리는 이쪽과 달리, 정은 쪽은 여전히 평온했다.아침 7시, 그녀는 스스로 깨어난 다음, 아침을 차려 놓고 장을 보러 나갔다.9시,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 정은은 소진헌이 감탄하는 것을 들었다.“이야, 조 교수는 물리 연구를 잘 할 뿐만 아니라 화초를 다루는 데도 이렇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니!”신발을 바꾸던 정은은 잠시 멈칫했다.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베란다에서 들려왔다.“아니에요, 과찬이세요.”재석이었다.정은은 채소를 주방에 놓은 다음, 아침에 끓인 차 두 잔을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소진헌과 재석은 베란다 문을 등진 채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앞에는 예닐곱 개의 화분이 놓여 있었고, 흙과 식물이 함께 파였다.“아빠, 선배님, 차 좀 마셔요.”“정은이 돌아왔구나. 오늘 시간 있으니까 이 화분들 전부 정리해 줄게. 이 꽃들은 뿌리가 이미 썩었어.”말하면서 소진헌은 손을 뻗으며 차를 받으려 했다. 자신의 손에 진흙이 묻은 것을 보고 그는 얼른 손 씻으러 갔다.“선배님.”재석은 많이 똑똑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일회용 장갑을 꼈기 때문이다.장갑을 벗은 후, 그는 직접 컵을 받았다.“고마워.”“선배님은 언제 왔어요?”“30분 전에.”“오늘은 실험실에 안 가도 되는 거예요?”“오후에 갈 거야.”“그럼 어떻게...” ‘우리 집에 찾아온 거지?’정은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재석은 웃으며 대답했다.“조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 쓰레기를 버리러 가시는 아저씨와 부딪쳤거든.”소진헌은 또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재석이 오전에 한가하고 오후에야 실험실에 가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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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갑자기 되살아난 기억에 정은은 당황하기 그지없었다.‘남의 옷깃을 붙잡고 매달린 사람이 나라고?’남자와 눈을 마주치자, 정은은 어색해서 땅만 바라보았다.“생각났어?”“미안해요, 난...”“그런 문제를 물어볼 필요가 있겠어? 당연히 안 되지. 남이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드럼도 아니고. 너도 말했잖아. 많이 두드리면 바보가 된다고.”재석의 말 한마디에 어색한 분위기가 좀 풀렸다.“그럼 왜 내 머리를 두드린 거예요...”그녀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기억이 돌아오자, 정은도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분명히 선배님이 먼저 날 건드렸는데...’재석은 정색했다.“그래도 술 좀 적게 마셔. 맛있어도 욕심 부리지 말고.”“네.”정은은 또 어찌 반박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손을 씻고 돌아온 소진헌은 차를 들고 한 입에 마셨다.재석은 천천히 음미하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술에 관한 얘기요...”“참, 조 교수, 자네 점심에 여기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건 어떤가? 우리 술 한 잔 하자고. 지난번에 그 원자력 발전 신기술에 대해 말했잖아... 그때 얘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오늘 계속 이야기하자!”재석은 처음으로 바로 응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정은을 바라보았다.“넌 어떻게 생각해?”“술, 술은 마시지 말죠?”‘술을 마시다 또 무슨 망신을 당할지도 몰라!’“선배님은 오늘 오후에 실험실에 가야 하잖아요. 그러니 술을 마시면 안 돼요. 아빠도 술 마시지 말고 그냥 식사만 하세요.”소진헌은 고개를 끄덕였다.“조 교수는 마실 수 없지만, 우리 둘이 좀 마시면 되잖아.”“어?” 재석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정은이는 술을 아주 좋아하나 봐요?”“그럼, 어제도 나랑 술 한잔하자고 했는데, 정은이 엄마가 못 마시게 말렸거든.”정은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아빠도 참. 내가 이렇게 눈짓을 하고 있는데! 왜 선배님한테 이런 얘기까지 하시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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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이미숙은 어이가 없었다. ‘남을 칭찬할 때 꼭 자신을 어필한다니깐.’오후 1시, 재석은 떠날 준비를 했다.소진헌은 베란다에 앉아 계속 화분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얼른 정은을 불렀다.“정은아, 네 재석 삼촌 좀 배웅해줘!”재석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표정이 굳어졌다.정은은 재빨리 소파에서 일어섰다.“아빠, 그런 말씀 좀 하지 마세요! 선배님, 나 좀 기다려요...”“응.”정은이 재석을 문 밖으로 배웅하자, 소진헌은 작은 소리로 흥얼거렸다.“지난번에 조 교수를 내 동생으로 삼겠다고 했잖아. 그러니 당연히 삼촌이라고 불러야지...”...눈 깜짝할 사이에 소진헌과 이미숙은 이미 J시에서 이주 넘게 머물렀다. 정은은 때가 됐다 싶어 이미숙에게 나석천을 소개해 주려 했다.“엄마, 사실 이번에 아빠랑 같이 J시에 오라고 한 이유가 따로 있었어요.”“무슨 일인데?”정은은 서류 봉투를 꺼내 이미숙 앞으로 밀었다.“이것은 엄마와 유보영이란 사람과 체결한 계약서예요. 전에 전자판을 달라고 한 다음, 그것을 프린트해서 출판인과 지식 재산권 변호사에게 보여 줬어요...”이미숙은 가슴이 떨렸다.정은은 그녀에게 열어보라고 했다.“위에서 붉은 펜으로 표기된 곳은 모두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 계약상 이 출판사는 사실 유보영이 주주이고, 그 사람의 가족이 출자한 출판 스튜디오예요.”심지어 정규 출판사라고 할 수도 없었다.출판사는 정규 출판 자격이 있어야 정식으로 도서 번호를 가진 도서를 발행할 수 있지만, 이 스튜디오는 삽화, 오디오 소설, 웹 소설만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이미숙이 10년 동안 제대로 된 책을 발행하지 못했던 것은 그녀가 좋은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유보영이 출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래서 유보영은 이미숙이 쓴 시작과 대강을 전부 부결했던 것이다.“출판을 할 수 없는 이상, 애초에 왜 네 엄마를 찾아서 계약을 한 거야? 그것도 10년이란 계약을 체결했잖아?”이미숙은 이미 충격을 받아 멍해졌다. 소진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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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해외?”“네, 이 두 책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전자책 판매량과 종이책 판매량이 모두 상위권에 들어갔거든요.”이미숙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난 이 두 권의 책이 해외에서 발행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는데...”“제가 계산을 해봤는데, 그동안 『살기』와 『황량한 마을 학교』가 가져온 수익이 적어도 이 정도 할 거예요...”정은은 한 손을 내밀었다.소진헌이 말했다. “5천만 원?”“아빠, 더 대담하게 추측해 보세요.”“50억?!”정은은 고개를 저었다.“500억이에요.” 그것도 대충 계산한 결과였다.소진헌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엄마.”정은은 이미숙의 곁에 다가앉아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손을 맞잡았다.“지금 마음이 얼마나 복잡할지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이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계약이 끝난 만큼, 엄마와 유보영 사이의 10년 묵은 원한도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가 온 거예요. 지금 중요한 건 지나간 시간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거예요.”“경제적인 손해보다도,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버린 것이 더 가슴 아픈 일이라는 걸 저도 잘 알아요. 작가에게 십 년이란 시간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이니까요.”이미숙은 등을 돌리더니 훌쩍거리기 시작했다.“엄마가 그동안 미처 발행하지 못한 원고를 다른 한 편집장님에게 보냈는데, 가서 한번 만나 보세요.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거예요...”이미숙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그래.”그날 밤, 작은방에서 낮게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남자의 따뜻한 위로도 있었다.정은은 눈을 뜨고 천장을 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정은과 소진헌은 이미숙을 데리고 커피에 갔다.카페는 빌딩을 등지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지나자 안에 손님이 얼마 없었다.렉돌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른하게 프론트에 엎드려 있었다. 딩동거리는 문소리와 함께 고양이는 하품을 하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왼쪽 창가 자리에 얼굴이 네모난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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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그동안 이미숙은 꿈에서도 자신의 미스터리 작품이 다시 출판되길 바랐다.유보영을 찾아 몇 번이나 상의했지만, 그녀는 항상 다른 이유로 거절했다.그러나 지금, 앞의 이 남자가 갑자기 이 작품들을 출판할 수 있다고 말하다니.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었다.“만약 작가님께서 동의를 하신다면, 저희는 즉시 도서 번호를 신청할 것입니다. 동시에 인쇄공장과 매체에 연락하여 사전의 모든 준비를 마칠 것입니다. 그 후에는 조판, 인쇄, 홍보, 출시가 남았죠. 전체 과정은 두 달 안에 완성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저작권료와 후속 수입 배분에 관해서, 저희는 이렇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물론 다 보신 후에 의견을 제출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잘 상의할 수 있습니다.”나석천은 단단히 준비를 하고 왔다.제시된 저작권료와 배당 비율도 매우 성의가 있었다. 그 외에 그는 심지어 계약서까지 들고 왔다.이미숙은 처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나중에는 나석천의 말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나 선생님.”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미안해요...”나석천은 이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제시한 조건은 이미 상당히 완벽하지만, 제 자신 때문에 그래요. 저도 잠시 냉정을 취해야 할 것 같아요...”10년 동안 자신의 작품이 매몰된 이미숙은 지금 엄청난 경계를 하고 있었다.비록 나석천이 매우 솔직하고 성의가 넘쳤지만, 당시 유보영이 찾아와서 계약을 하려 했을 때도 이랬다.그러나 그 결과, 이미숙은 지금 트라우마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나석천은 실망을 느꼈지만, 그래도 이미숙의 선택을 존중했다.“이 작가님, 지금 작가님의 심정을 잘 이해합니다. 누가 이런 일을 당하더라도 한동안 우울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완벽한 미스터리 추리 작가는 일반 사람보다 더 이성적이고 명석할 것이라 믿습니다.”“이것은 제 명함입니다. 위에 저의 모든 연락처가 있으니, 만약 생각을 바꾸셨다면 저와 텐스출판사가 작가님이 가장 먼저 연락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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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정은과 소진헌은 카페 밖에 앉아 있었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이미숙이 심각한 표정을 하다가 마지막에 미안한 표정을 지은 것을 보니 분위기가 그렇게 유쾌하지 않은 것 같았다.나석천은 이미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했지만, 이때 이미숙이 고개를 들어 무슨 말을 했다. 그는 마치 불과 닿은 촛불처럼 열정이 다시 넘쳐흘렀다.그리고 다시 앉아서 계속 이미숙과 상의했다.이번에 이미숙이 말이 많아졌고, 무뚝뚝했던 얼굴도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얘기를 끝낼 때, 나석천은 일어나 다시 손을 내밀었다.“이 작가님, 저희와 즐거운 협력을 하셨으면 좋겠네요.”이번에 이미숙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일어나 악수했다.“고마워요. 사실 처음부터 수정한 원고를 내놓으셨다면, 저희의 대화가 많이 순조로웠을 텐데.”그러나 나석천은 고개를 흔들었다.“글은 아주 신성한 존재입이다. 그것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정서를 표현할 수 있으며, 아름다움을 찬양할 수 있지만, 유독 남을 이용하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이미숙은 감탄했다.“당신은 정말 좋은 편집장입니다. 이번에...”‘또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은은 이미숙에게 나석천의 첫인상에 대해 물었다.“착실하고, 성실하고, 성의가 있어.”“그래서, 지금 얘기를 끝내신 거예요?”“응. 난 이미 희망을 품지 않았지만, 그 성의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어. 자세히 생각해 보면,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거야. 그럼 서로에게 기회를 줘야지.”집에 돌아온 정은은 계약서를 뒤지다가 갑자기 감탄을 했다.이미숙은 고개를 돌렸다.“왜 그래?”소진헌은 즉시 다가왔다.“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정은은 고개를 저었다. 이 계약서에는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무척 평등했다. 심지어 이미숙에게 더 이롭기도 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계약서가 책 대신 작가를 체결했던 것이다.나석천이 작품만 보고 작가를 보지 않던 관례를 깨고, 이미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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