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헌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재석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서야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그가 떠나고 나자, 정은은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 짐을 내려놓느라 바빴다.이미숙과 소진헌은 오랜만에 딸의 거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방 두 개에 거실 하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집이었다.배치와 인테리어는 오래된 느낌이 강했지만, 안에 있는 가구들은 모두 새것이었다. 소파, 서랍장, 전자 기구들까지, 부족한 게 없어 보였다.낡아서 개선할 수 없는 흠집들은 아기자기한 장식품들로 가려져 있었다. 흠이 있었지만, 그 흠마저도 나름대로 정성껏 숨긴 흔적이 역력했다.전체적으로 보면 꽤나 정교하고 아늑한 느낌이었다.원래 정은의 부모는 낡은 계단을 올라올 때부터 딸의 거주 환경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이미숙은 그런 딸의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정은이 직접 세낸 집을 이렇게 아늑하고 정성스럽게 꾸며놓았다는 사실에, 그리고 딸이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점에 대견함을 느꼈다.인생은 대충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생활에 대한 태도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딸이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았다.이미숙이 소진헌과 막 결혼했을 당시, 소진헌의 월급은 겨우 60만 원에 불과했다.그중 40만 원은 부모님께 용돈으로 드려야 했으니, 젊은 부부에게 남겨진 돈은 20만 원뿐이었다.정은이 태어난 후, 살림살이는 더 빠듯해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숙은 반달에 한 번씩 꼭 꽃을 샀다.형편이 괜찮을 때는 꽃집에서 비싼 꽃을 샀고, 월말이 되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주말에 등산을 가며 들꽃을 따다 꽃병에 꽂았다.정은은 어릴 적부터 이미숙이 참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심지어 가끔씩 보여주는 ‘대범함’은,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 같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그러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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